제 2170 호/2014-07-14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똑똑한 자동차가 온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은 튼튼함과 안전성, 크기, 디자인이었다. 최근에는 고유가 추세가 지속되고 친환경 자동차가 주목받으며 연료 1리터당 평균 주행거리, 즉 연비 향상이 자동차 기술의 화두가 됐다.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가 배기량이 큰 자동차보다는 유지비를 고려해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선택하는 것이다. 수입 자동차들의 가격 인하와 앞선 연비 기술이 젊은 세대에 어필하는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연비 향상 기술과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기 자동차와 같은 친환경 자동차 기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자동으로 주행, 정지, 주차까지 하는 스마트 자동차 시스템 기술도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운전하지 않고 목표 지점만 입력하면 스스로 갈 수 있는 연구도 활발하다. 지난 5월 말 구글은 핸들이나 가속 페달, 브레이크가 전혀 없이 출발, 정지 버튼만 있는 무인 자동차를 공개했다. 차에 탄 후 목적지만 말하면 알아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구글이 이날 선보인 무인 자동차는 2인승 시제품으로 핸들, 가속페달, 브레이크가 전혀 없이 출발, 정지 버튼만 있는 단순한 차량이었다. 차에 탄 운전자는 사실 운전을 하는 게 아니어서 탑승자라고 부르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이 차는 차에 탄 후 목적지를 말하기만 하면 자동차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스스로 움직이고 판단하는 ‘똑똑한’ 자동차 기술의 현주소와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구글 무인 자동차 - 지난 5월 말 구글이 선보인 운전자가 없는 완전 무인 자동차. (출처 : 구글)


■ 이미 현실화된 스마트 안전 기술

구글의 무인 자동차 실험은 아직 상용화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테스트와 개선을 통해 몇 년 안에 일반 도로를 주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물론 무인 자동차가 일반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벤츠, 아우디, 볼보 등 선진국들의 자동차 기업들은 장기간의 연구 개발을 통해 차간 거리, 보행자 인지, 속도 조절, 자동 주차 기술 등을 이미 상용화했다. 완전한 무인 자동차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점에서 무인 자동차로 가기 위한 전 단계다. 자동차에 탑재된 레이더와 카메라, 센서, 소프트웨어 등이 이런 기능을 가능케 하는 핵심 기술이다.

이 중 자동차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술은 자율 응급 제동 시스템(AEB)이다. 교통사고 사전 대응 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기술은 레이더와 레이저, 비디오를 이용해 교통사고가 임박했음을 스스로 계산한다. 운전자가 미리 설정해 놓은 차간 거리가 유지되지 않으면 소프트웨어로 브레이크를 자동으로 조작한다. 볼보자동차가 이런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시티 세이프티’ 기능을 실제로 선보였다. 차간 거리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보행자가 나타났을 때 차량이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게 핵심이다.




시티세이프티 - 볼보자동차의 시티 세이프티 기능을 구현하는 각종 센서들, 장애물을 자동으로 감지해 브레이크를 작동한다. (출처 : 위키미디어)


지난 2013년 1월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아우디는 도심을 시속 60㎞ 이하로 자동 주행하는 기술을 소개했다. 또한, 운전자가 차량에서 내린 뒤 원격 조종으로 차가 알아서 주차하고 주차장 밖으로 호출했을 때 다시 운전자에게 오는 주차 시스템도 소개했다. 평행 주차나 후진주차 등이 어려운 여성이나 초보 운전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기술이다.

■ 구글이 무인 자동차 기술에 앞서는 이유

“앞으로 완성차 기업들의 경쟁 상대는 서로가 아니라 구글이 될 수 있다.”

많은 완성차 기업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오토모티브는 오는 2035년에는 무인 자동차가 1180만 대로 늘어나고, 2050년에는 대다수 자동차가 무인 자동차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무인 자동차 연구에 앞다퉈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무인 자동차는 카메라는 물론 각종 레이더와 센서가 신호등의 변화와 주변 차량의 움직임, 차선, 갑작스러운 장애물 출현과 같은 다양한 도로 상황의 변화를 읽고 스스로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밀한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 등 하드웨어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런 하드웨어를 자동차에 탑재한다고 무인 자동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가 받아들인 방대한 데이터를 눈 깜짝할 시간에 연산해야 하는 데이터 처리 기술이 필요하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 환경을 실시간 데이터로 가공, 최적의 결과를 내놓고 자동차를 제어하는 데, 이것은 컴퓨터 사이언스와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 억 건의 데이터를 눈 깜빡 할 사이에 읽어 들여 최적의 검색 결과를 내놓는 기술을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구글이 무인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구글 렉서스 - 구글이 수년 간 테스트하고 있는 무인 자동차. (출처 : 위키미디어)



■ 운전자를 인식하는 자동차

스마트 자동차는 운전자도 알아본다. 안전 운행을 돕는 최첨단 편의 장치들이 자동차에 속속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는 운전자의 생체 신호를 분석하는 기술이 활용된다.

고속도로 사망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졸음운전을 막아주는 기술도 이미 나왔다. 졸음운전 경보장치는 자동차 내부 카메라가 운전자의 눈이 깜빡이는 속도와 초점을 인식해 졸음운전을 경보한다.

또 운전자 눈의 움직임과 핸들 조작 상태, 운전자 호흡을 통해 혈중 알코올 농도를 분석, 음주운전 여부를 판단해 속도를 줄이거나 아예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음주운전 방지 장치도 나와 있다. 일본 도요타가 개발한 시스템은 운전을 시작하기 전 핸들을 잡는 운전자 손의 땀 성분 등을 분석해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기도 한다. 운전자의 눈동자 움직임을 분석해 초점이 지나치게 흔들리면 음주운전으로 판단하고 자동으로 정지하는 시스템도 일부 자동차에 적용됐다.

스스로 움직이면서도 안전한 운행을 가능케 하는 ‘똑똑한’ 자동차는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른바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컴퓨터 사이언스의 진보로 이미 우리 눈앞에 현실이 됐다. 구글은 최근 핸들 없는 무인차를 선보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운전할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무인 자동차가 될 것이며, 사람이 볼 수 없는 사각지대까지 살필 수 있는 센서까지 탑재해 도심에서도 유용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교통 체증에서 벗어나 자동차에 탑승한 채로 책을 보거나 업무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글 : 김민수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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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7-1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럼 '김여사'는 이제 그만 없어지는건가요? ㅋㅋ
물론 저도 운전대 잡으면 바로 김여사가 될 현실이긴 하지만 뭐..

마노아 2014-07-14 13:13   좋아요 0 | URL
김여사도 못 되어본 우리 같아요.ㅋㅋㅋ
장농에서 버티다가 스마트한 자동차가 나오는 세대가 되었네요.^^;;;
 

제 2169 호/2014-07-09 

비행기 사고 서바이벌 가이드

시속 1000km로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은 공중을 날아가는 알루미늄 원통 안의 좁은 의자에 앉아 길게는 10여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당연히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까. 자동차 사고야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지만, 비행기 사고는 승객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을 운명에만 맡길 수는 없다. 실제로 비행기 사고의 생존율은 의외로 높다. 2013년 7월 일어났던 아시아나 214편 사고에서도 승무원과 승객이 적절히 대처한 결과 인명 손실을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 도중 활주로에 충돌해 부서지고 화재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총 307명 중 3명만이 사망했다. 그렇다면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불운한 사람에 끼지 않을 수 있을까. 가능한 생존 확률을 높이는 대처 방법을 알아보자.

흔히 비행기의 뒷자리에 앉는 게 생존율이 높다고 한다. 2007년 미국의 파퓰러 메카닉스는 1971년 이래 미국에서 일어난 20건의 비행기 추락 사건을 조사했다. 이들은 비행기의 좌석을 네 구역으로 나눈 뒤 각 구역의 생존율을 구했다. 그러나 20건 중 11건의 사고에서 뒷좌석에 앉은 승객의 생존율이 확실히 높았다. 11건 중에서 특히 7건의 사고에서는 가장 뒤에 앉은 승객이 가장 유리했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뒤쪽에 앉을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속설이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실험 결과도 있다. 대담하게도 아예 실제 비행기를 추락시켜서 위치에 따라 충격을 얼마나 받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자동차의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하는 충돌 실험과 같다. 다만 비행기 추락 실험은 규모가 자동차에 비할 바 없이 크기 때문에 실제 사례가 많지 않다. 198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연방항공청(FAA)이 보잉720기를 추락시킨 적이 있고, 2012년에 다시 NASA가 미국의 디스커버리 채널과 함께 보잉727기를 추락시킨 사례가 있다.

두 번째 추락 실험은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져 대중에게 공개됐다. 그 결과는 앞선 파퓰러 메카닉스의 조사 내용과 흔히 알려진 속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은 다큐멘터리에서 비행기가 충돌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먼저 비행기의 앞바퀴가 부러지면서 동체가 충격을 받아 조종사와 가장 앞쪽 승객이 탄 부분이 통째로 뜯겨 나간다.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니 가장 앞쪽의 더미(충돌실험용 인형)가 받는 힘은 12G(중력, Gravity)에 달했다. 날개 부근에 탄 더미는 8G, 꼬리 쪽에 탄 더미는 가장 적은 6G의 힘을 받았다. 뒤쪽에 승객이 탔다면 걸어서 비행기를 탈출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건 비행기가 앞부분부터 부딪쳤을 때 이야기다. 지난 번 아시아나 214편 사건처럼 뒤쪽부터 부딪쳤다면 오히려 앞쪽이 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앞쪽부터 부딪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뒤쪽이 좀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는 게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비행 자료를 기록해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블랙박스가 있는 곳이 바로 비행기의 꼬리다. 블랙박스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만큼 꼬리가 충격을 덜 받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무리 충격을 적게 받는다고 해도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다. 아시아나214편 사고에서도 승객이 비행기 밖으로 튕겨 나가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충돌 시에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안전띠를 매고 ‘브레이스 포지션’(Brace Position)을 취해야 한다. 브레이스 포지션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머리를 감싸고 팔을 앞좌석 등받이에 붙이는 자세다. 앞에 좌석이 없는 경우에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감싼 뒤 머리를 무릎에 대면 된다.

보잉727 추락 실험에서는 이 브레이스 포지션이 실제로 유용한지도 알아봤다. 더미 두 개를 비슷한 위치에 앉힌 뒤 하나는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다른 하나는 곧게 앉아 있는 자세로 두고 비행기를 추락시켰다. 조사 결과 브레이스 포지션을 하고 있던 더미는 종아리에 압박을 받아 뒤로 밀리면서 의자 아래쪽에 발목이 부딪쳤다. 발목 골절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곧게 앉아 있던 더미는 앞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뇌진탕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상체는 급격히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허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또한, 허공에 날아다니는 파편이 얼굴과 가슴 부위를 때렸다. 더미 실험을 담당한 신디 비르 미국 웨인 주립대 바이오공학과 교수는 “브레이스 포지션이 머리를 보호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세”라며 “사고가 날 경우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충격에 대비할 것을 권한다.”라고 말했다.

추락한 비행기가 멈췄을 때 다행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면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연기가 나고 있다면 몸을 숙이고 움직여야 한다. 전원 90초 이내에 탈출해야 하는데, 이른바 ‘90초 규칙’이다. 추락한 뒤 화재가 발생하고 90초가 지나면 불이 서서히 타다가 산소가 공급되면서 선실 안이 일순간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오버’ 현상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든 새 여객기는 승인을 받기 전에 90초 탈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비상구가 50%만 열린 상황에서 모든 승객이 90초 안에 탈출할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2008년 에어버스의 A380기 시험 때도 870명의 승객이 78초 만에 전원 탈출했다. 물론 실제로는 탈출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보잉727 추락 실험에서도 비행기의 배선이 튀어나오면서 길을 막아 승객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솔직히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승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좌석을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부터 부딪칠지 뒤부터 부딪칠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결국 응급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은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모범 교본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탈 때 비상구의 위치를 확인해 두고, 산소마스크와 구명조끼의 사용법을 숙지하며, 사고가 예상될 경우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몇 가지 쓸모 있는 행동 지침은 있다. 일단 직항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고는 대부분 이착륙 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직항을 이용하면 사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단단한 물건은 충격을 받았을 때 흉기로 돌변할 수 있으니 가급적 몸에 지니지 말자. 짐칸에도 떨어지면 위험할 정도로 무거운 짐을 올려놓지 말자. 그리고 비행 중에도 항상 안전벨트를 차는 게 좋다.

또한, 술은 많이 마시지 말자. 사고가 났을 때 재빨리 대피하려면 맑은 정신으로 있어야 한다. 게다가 기압이 낮은 공중에서는 평소보다 알코올의 영향을 더 받는다.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온 뒤에는 폭발에 대비해 최대한 빨리 멀어져야 한다. 새어 나온 연료가 완전히 증발할 때까지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구조를 받으려면 비행기 잔해 근처에서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

앞으로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기보다는 생존 지침을 철저히 숙지한 뒤 확률과 맞서 보자.

글 : 고호관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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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65 호/2014-07-07

 

냉장고를 이기는 극한생물?!

‘여름 돼지고기는 잘 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저온 보관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절, 여름은 돼지를 잡기에 적합한 시절이 아니었다. 덥고 습한 우리나라 특유의 기온 탓에 여름에는 도살 직후부터 고기는 부패가 시작됐다. 그래서 모처럼 몸보신한다고 돼지고기를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려 오히려 몸이 축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절, 아낙네들은 여름이면 3일에 한 번 김치를 담가야 했다. 더운 날씨는 김치 속 유산균 뿐 아니라 다른 세균들의 번식도 부추겼기에, 김치는 3일이면 물러 버렸고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우리네 입맛 탓에 여름철에는 번거롭더라도 김치를 조금씩 자주 담가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 조선 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국산 냉장고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65년(금성사-현 LG에서 만든 ‘눈꽃냉장고’)이었지만, 냉장고 한 대의 가격이 대졸 초임자의 여덟 달 월급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서 이를 갖춘 집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하여 우리네 어머니들이 3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가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난 건 냉장고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1980년대부터였다.

냉장고의 보급은 식품 보관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우리는 이제 매일 조금씩 귀찮게 장을 보지 않아도, 한꺼번에 식재료를 사다가 보관하거나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 가능해졌다. 저온 보관은 식품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식품을 저온으로 보존하는 기술은 크게 냉동과 냉장법으로 나뉜다. 냉동은 빙점(氷點, 0℃로 물이 얼기 시작하거나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의 온도) 이하로 물질을 보관하는 것이다. 냉장은 빙점보다는 높으나 실온보다는 훨씬 낮은 상태(일반적으로 0~10℃)로 보관하는 것이다.

식품을 차게 보존하면 일반적으로 보존 기간이 늘어난다. 그 이유는 첫째, 식재료가 가진 효소의 활성을 억제해 변성을 막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껍질을 벗긴 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는 갈변 현상은 사과 속에 포함된 페놀 성분이 폴리페놀 옥시다아제라는 효소에 의해 산소와 반응해 갈색을 지닌 퀴논류로 변화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껍질을 벗긴 사과라도 즉시 냉장고에 넣으면 갈변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효소에 의해 매개되는 반응은 효소의 활성이 저하되면 반응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데, 대부분의 효소들이 단백질로 이루어져 온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둘째, 식품을 차게 보존하면 미생물의 증식도 억제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단백질은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데, 미생물 역시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므로 온도 변화에 따라 활성도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인간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가장 활성을 나타내며 온도가 떨어지면 활성이 저하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냉장고 속에 넣어둔 음식은 언제나 신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극한 생물(extrempphiles)이라 하여 도저히 생물이 살아갈 것 같지 않는 고온이나 저온, 고압, 고염분, 낮거나 높은 pH를 지닌 곳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존재한다. 특히나 미생물은 선호하는 생장 온도에 따라 저온균(psychrophile, 15~20℃ 이하), 중온균(mesophile, 20~45℃), 고온균(thermophile, 45℃ 이상)으로 분류되는데,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저온균들은 빙점에 가까운 냉장실 속에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하며 그 중 일부는 오히려 냉장실 속에서 활발하게 증식하기도 한다.




실온에서 장염 비브리오균의 번식 속도
(출처 : 국가정보포털, http://health.mw.go.kr/AttachFiles/Content/Image/s02_103_i02.jpg)


예를 들어 식중독을 일으키는 장염 비브리오균은 최적 조건에서는 10분에 1번씩 분열할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하다. 상온에 방치한 음식물 중에 장염 비브리오 균이 단 1마리라도 있을 경우, 겨우 4시간 뒷면 이들은 100만 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 따라서 상온에 몇 시간 동안 방치했던 음식물(특히 수산물)이라면 이미 장염 비브리오균은 식중독을 일으키기 충분한 수로 번식한 뒤라 아무리 냉장고 속에 넣어도 식중독을 예방할 수 없다.

역시 식중독을 일으키는 리스테리아균 역시 추위에 강해 냉장고는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이들로 인한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운 여름철에는 단시간이라도 냉장 상태가 유지되지 않았던 우유나 유제품, 육류나 생선류는 가급적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심지어 여름철에는 고기의 핏물을 빼기 위해 찬물에 담가 놓는 경우라도 때로는 위험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에라도 고기를 담근 즉시 그릇째 냉장실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이런 균들은 저온 상태에서 단지 생존이 가능할 뿐이지만, 개중에는 저온 상태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별종들도 존재한다. 여시니아균의 경우, 빙점에 가까운 저온에서도 얼마든지 번식할 수 있어서 여시니아균으로 오염된 물과 우유, 유제품, 육류 등은 냉장고 속에 넣어두어도 계속해서 번식하여 숫자를 늘린다. 또한 곰팡이의 일종인 푸른곰팡이는 10℃이하 저온에서 활발하게 번식하므로 신선한 상태에서 냉장고 속에 넣어둔 채소나 과일, 식빵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들에게서 푸르게 피어난 곰팡이 자국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저온 세균만 주의하면 냉장고에 보관한 음식을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아쉽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No’다. 식중독은 살아있는 세균이나 노로바이러스처럼 미생물 그 자체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미생물이 만들어 분비한 독소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황색포도상구균이 만들어낸 독소다. 황색포도상구균은 저온에서 생존이 어려우며 특히나 조리를 위해 끓이게 되면 바로 사멸한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장독소는 냉장고 속에 넣어두어도 파괴되지 않으며, 심지어 이들은 100℃에서 60분간 끓여야 겨우 없어질 정도로 내열성이 강하다. 따라서 이미 황색포도상구균이 자라고 있던 식재료는 저온 보관해서 익혀 먹는다고 해도 식중독을 예방하기 어렵다.

냉장고는 식품이 본래 지닌 효소의 활성을 저해하고 미생물의 활동을 억제시켜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유용한 존재다. 이 유용한 존재가 계속해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냉장고의 기능은 원래 신선했던 식품의 신선도를 ‘조금 더 오래’ 유지시켜줄 뿐, ‘계속’ 유지시킬 수는 없으며, 처음부터 미생물에 상당히 오염된 음식물이라면 이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것만 주의한다면 우리는 더운 여름철에도 기름진 돼지고기와 신선한 생선회를 실컷 먹고 난 뒤 입가심으로 얼음처럼 시원한 수박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얼마든지 음미할 수 있다. 이 평범한 일상은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누리지 못했던 호사인 것이다.

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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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일 InStyle 2014.7
중앙M&B 편집부 엮음 / jcontentree M&B(월간지)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잡지 보는 취미가 없다. 이상하게도. 아주 좋아하는 배우나 뮤지션이 나와서 그 기사만 발췌해서 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잡지를 즐겨 보지 않는다. 미용실에서조차도. 읽을 책은 거의 늘 들고 다니는 편이고, 정 읽을 게 없으면 그때서야 보는 게 잡지책이다.

 

그런 나도 잡지를 종종 사곤 한다. 바로 부록 때문에! 이번 달 인스타일 부록은 샴푸 컬렉션과 립 크레용이다.

 

 

샴푸와 트리트먼트다. 손상된 머리에 좋다고 한다. 현재 샴푸 다 써가는 중인데 갈아탈 생각이다.

수영장 갈 때 들고 가기도 좋은 휴대용 사이즈다. 굿!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녀석이다. 립 크레용이다. 크레파스처럼 생겼는데 바르기가 아주 쉽다.

발색도 좋고 지속력도 괜찮다. 색상은 랜덤이었는데, 제시된 네가지 색상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어느 쪽으로 와도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요새는 아침에 이 녀석을 바르고 마무리 단계에서 립글로스로 포인트를 준다.

손가락으로 문지를 필요도 없고, 립스틱 붓도 필요가 없다. 딱 내 마음에 든다.

부록은 실물을 보거나 사용해 보고 산 게 아니어서 어느 정도 복불복인데, 이번 잡지의 부록은 무척 내 마음에 들었다.

 

전에 로드샵에서 화장품 살 때 직원분이 내게 추천해 주기를 피부색을 고려해서 '피치'빛의 립스틱이 어울릴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실제로 갖고 있는 것들 중에는 오렌지 빛깔이 많고 또 잘 어울린다. 좀 더 어릴 때에는 핑크빛을 주로 발랐다. 이제 탐나는 색은 고혹적인 레드인데, 과연 어울릴 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무튼, 이 체리 파르페도 내 입술에 잘 맞다.

 

다음 달 부록들도 눈여겨 보리라! 반짝!!


덧글) 미안해요. 잡지는 보지 않아서 할 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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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7-1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잡지는 잘 보지 않아서, 해마다 친구가 보내준 신년호도 다 읽지 않았어요.ㅜ

마노아 2014-07-15 23: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책욕심 많은 우리인데 잡지는 왜 이리 안 읽힐까요.^^;;;
 

그다지 책을 못 읽고 지나간 상반기였다고 기억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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