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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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솜씨는 역시 다르다. 어마어마한 흡인력으로 빨아들이는데, 엄청 속도감 있게 읽었다. 작년 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이 작품이었던가. 무려 세권이나 되는데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저자의 공력에 새삼 감탄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배경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을 찍고 있는 인물 군상들을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아주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리 가깝지 않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렇게 책을 통해 엿보고는, 내가 모르고 있던 모습들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새 중국이 이렇게까지!


확실히 중국은 놀라운 나라다.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메이드 인 차이나는 조롱과 함께 들먹인 이름이었는데, 이제 중국은 G2의 양축이 되어 세계 어디에서도 대국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G20 개막식에도 미국보다도 늦게 도착했던 중국 대표가 떠오른다. 그게 그들이 내세우는 오늘날의 위상이며 자존심인 게지. 


3권 분량의 책인데 내가 읽은 것은 아직 1권 분량인지라 여러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는 정도에서 그쳤다. 본격적인 진행은 2권에 들어가야 가능할 듯하다. 한국에서 쫓겨가다시피 해서 상해로 들어선 성형외과 의사 이야기도 궁금하고, 역사학도가 되기로 결정한 유학생의 중국인 여친의 집안도 궁금하다. 중국 사람 한국 사람 모두 무시하는 일본인 종합상사가 종국엔 큰 코 다치는지도 얼른 알고 싶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해도 감정이 생겨서 말이다...;;;;;


문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책 읽는 속도도 쭉쭉 빠진다. 그렇지만 문장을 곱씹으며 느끼게 되는 향기나 맛은 많이 부족했다. 그런 서정성은 작품의 성격과도 좀 안 어울리기도 하지만.


아직 2권과 3권을 주문하지 못했다. 리뷰 쓰고 책 주문하련다. 고고씽!

중국이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G2가 되었을 때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당사자인 중국도 어리뻥뻥했다니 다른 나라들이야 더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G2는 그만두고, 중국 1인당 GDP가 4천 불이 되려면 2040년쯤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지요.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도, 일본도, 당사자 중국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년 2010년에 일본을 걷어차고 G2 자리를 차지한 겁니다. 참, 예상을 30년이나 앞당겨버렸으니 각 나라가 받은 충격이 어땠겠어요. 일본은 날벼락 맞아 기절해 버렸고, 미국은 야구방망이로 뒤통수 맞아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유럽 국가들은 라이트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맞아 비틀비틀하고, 우리 한국사람들은 무슨 소린지 감이 잘 안 잡혀 눈을 껌벅껌벅하고 있는 상태지요.

G2를 한마디로 하자면 ‘세계 공장’이었던 중국이 ‘세계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뜻이고, 세계의 소비시장이 된 구체적인 예는 많지만, 두 가지만 들겠습니다. 상용차를 포함한 모든 자동차의 수가 2억 대를 넘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고, 여성들의 명품 사냥이 브라질을 밀어내고 2위가 되었으며, 미국마저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여성들의 그 기세는 이미 성형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14억 중에서 절반이 여성이고, 7억 중에서 절반이 예뻐지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시장이 무궁무진하고 망망대해라는 것이 실감이 안 되십니까?
-17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하면 싼 인건비, 짝퉁, 불량식품 같은 것만 생각하지 초스피드의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모든 분야의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선입관도 있고, 발전이나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사도 작용하고 그런 거지요.
-32

중국 특유의 꽌시란 한자로 관계라고 썼고, 그 뜻은 ‘연줄, 뒷배, 네트워크’ 등이 뭉뚱그려진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고, 나라 망치는 학연, 지연, 혈연을 다 합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것이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 꽌시 때문에 중국에 처음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한동안 정글을 헤매며 허방을 딛고, 넘어지고,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61

일본은 아주 괴상스러운 나라야, 아시아에서 솔선해서 서양문화를 제일 먼저 받아들였는데 딴 나라들에 비해서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거의 변하지 않은 세 가지가 있었어. 예수교가 전혀 기세를 펴지 못해 확산되지 않았고, 커피가 녹차에 막혀 영 맥을 못 추었고, 코카콜라가 마구 광고를 해대도 고전을 면치 못했지.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서양에서는 일본의 3대 불가사의라고 불렀어. 옷이나 건물들이 거의 서양식으로 바뀐 것하고는 영 딴판이었으니까. 근데 말야, 몇 년 전부터 한 가지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젊은 사람들이 커다란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유행을 일으킨 거야. 그런데 더 문제는 중국이야. 4천 년이 넘는 중국차의 아성 앞에서 커피 제까짓 게 꼼짝 못할 줄 알았지. 헌데 중국차의 만리장성마저 커피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거야.(...) 10위안짜리 점심 먹고 30위안짜리 커피컵 들고 나서면서, 그게 아주 세련되고 멋지고, 첨단 문화인이 된 것처럼 으스대는 꼴들 하고는.
-66

중국에서는 흑인을 보기가 드물었다. 서양 대기업들은 중국 사람들이 유난히 흑인을 싫어한다는 걸 일찌감치 눈치챈 게 분명했다. 비즈니스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흑인들을 파견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리 없었던 것이다.
-99

중국인들은 8자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그 맹신은 가히 신앙적이다. 그 이유는 돈과 직결되어 있었다. 중국말 파차이는 ‘돈을 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발음 ‘파’가 숫자 8의 발음 ‘빠’와 얼핏 혼동할 정도로 같이 들린다. 돈을 많이 많이 벌어 떼부자가 되고 싶은 중국사람들에게 8자는 곧 돈이라 믿는 행운의 숫자가 되었다. 그래서 8자는 빨간색보다도 더 위에 오르는 신앙의 대상으로 떠받들려졌다. 그들의 8자에 대한 집착과 열광은 생활 도처에 나타난다. 8자 들어가는 날은 무조건 길일이 되고, 그래서 8월 8일 오후 8시에 결혼식을 시작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축의금도 888위안을 내는 사람이 최고의 하객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믿지 못하겠으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보면 된다. 그 개막식 날짜와 시간은 어떠했는가.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성화가 타올랐다.(...) 아파트 분양 때 8자 들어가는 동들의 8층 8호에 엄청난 웃돈이 붙고, 자동차 번호 8888이 1억 원에 거래되는 나라가 중국이었다. 이러한 광풍은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된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 세월이 해를 거듭해갈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천대받는 숫자가 있었다. 4자였다. 그 발음 ‘쓰'와 죽을 사(死) 자 발음 ‘쓰’가 높낮이만 약간 다를 뿐 음은 똑같았던 것이다.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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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7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장의 글을 한권도 읽지 못한 1인입니다 ㅠ
죽기 전에 태백산맥이라도 읽고 싶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마노아 2014-07-01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대하소설은 아리랑만 읽었네요. 태백산맥은 사두고서 먼지만 쌓이고...;;;
댓글이 많이 늦었네요. 푸른기침님도 7월 첫날, 즐거이 시작하셔요~
 
발레 하는 할아버지 - 제34회 샘터상 동화 부문 수상작 마음이 따스해지는 생활 동화
신원미 지음, 박연경 그림 / 머스트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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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 가족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고 그런 가정사에는 경제사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클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어린이도 한부모 가정의 아이다.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시고 할아버지가 손자를 돌보신다. 아이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창피하기만 하다. 하지만 얼마 전 사고의 위험을 겪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손주 손을 꼭 잡고 놓을 생각이 없으시다. 힘준 그 손길이 사랑이라는 걸 알아차리기엔 아이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이는 발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마음을 빼앗겨 버린 발레를 배우고 싶어 몇날 며칠을 엄마를 졸랐다. 집안 형편을 고려하건대 선뜻 허락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엄마는 결국 아이를 발레 학원에 보내주셨다. 언뜻 빌리 엘리어트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이가 빌리 엘리어트처럼 멋지게 도약했으면 좋겠다. 


남자 아이가 춤을 춘다니 여러모로 불만이 많았던 할아버지. 손주에게 어울려 보이지도 않고, 또 딸내미 고생하는 것 생각하면 여러모로 할아버지 입장에서 마뜩치 않다는 것이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러나 역시 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손주에게도 내리 사랑 꽂히는 할아버지시다. 창밖에 출몰했던 민머리 사건에 할아버지도 사실은 발레에 관심이 많으셨나 싶었는데 뜻밖의 전개에 마음 한쪽이 시큰해졌다. 물론 요즘같은 통신세대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반전이었지만, 아무튼 이야기의 결말이 따뜻하고 훈훈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자라고, 또 예쁜 아이의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면, 지금 할아버지가 보여주셨던 마음의 크기와 따스함을 분명히 기억할 테지. 그렇게 사랑은 흐르고 또 흘러 전달되고 이어진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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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는 날 마음똑똑 (책콩 그림책) 18
상드린 뒤마 로이 글, 브뤼노 로베르 그림, 이주영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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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코끼리, 기린, 악어가 초원의 왕이 되려고 나섰다. 사자는 대대로 초원의 왕이었으니 이번에도 자기가 왕이 될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투표라는 생소한 제도가 낯설었지만, 그래도 초원의 왕될 자는 자신 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코끼리도 기린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다. 나 정도라면 초원의 왕이 될 만하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투표 결과 초원의 왕으로 뽑힌 것은 악어였다. 세상에, 악어라니!


악어는 자신이 이제부터 초식동물로 거듭나겠노라며 호언장담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지킬 수도 없고 지킬 마음도 없는 공약을 내건 것이다. 악어는 악어의 눈물이라도 흘리듯이 착한 시늉을 했다. 초원의 유권자들은 홀랑 넘어가버렸다. 실제의 악어를 떠올리면 상상이 안 되지만, 그림책 속의 악어는 충분히 귀엽고 재치 있어 보였다. 하지만 선거거 끝나자 악어는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악어는 말도 안 되는 악법을 만들었고 초원의 동물들을 탄압했다. 스스로 뽑은 대표에 의해서 학대를 받게 되는 초원의 친구들. 아, 이거 대한민국의 현실을 지나치게 잘 반영한 것이 아닌가. 이 작품이 우리나라 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식의 눈먼 공약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속이 쓰리구나.


결국 초원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옛날의 아름다운 곳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들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안산의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을 더 많이 지지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3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그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안산 단원고가 경기도에 있는데도, 그들의 선택은 이렇다는 것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스타일의 투표를 하시는 분들은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렸지만.


어린이 친구들에게도 투표의 중요성과, 거짓 약속을 알아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보기가 될 것 같다. 앙증맞은 그림도 아이들에게는 이야기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모르던 책인데 조카 덕분에 읽게 되었다.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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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 컵라면에 이어 간식 셋팅하고 경기 기다립니다. 
1:0 승리 예상
이 글은 성지가 됩니다 ㅋ

* ㅜㅠ 이 글은 전반 26분만에 망글이 되었습니다...


****


라고, 새벽에 공장장님 페북에 올라온 사진.

내 눈엔 배경의 책이 더 돋보이는데!









요기까진 알겠고.... 그 아래 두권은 모르겠다. 마지막 빨간 표지는 '만들어진 신'인가???

하늘색 표지는 뭘까. 지지 않는다는 말...은 표지가 아닌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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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4-06-24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 '이 인간이 정말' 아닐까요?

마노아 2014-06-24 08:34   좋아요 0 | URL
오, 폰트랑 색이랑 맞는 것 같아요. 역시 능력자!

하이드 2014-06-24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빨간책 '만들어진 신'은 아닌데, 저런 표지 많고, 뭐, 한글자도 안 보이니 알 수가 없네요 ㅎㅎ

마노아 2014-06-24 08:34   좋아요 0 | URL
뭘까요. 색깔 외에는 단서가 없네요. 궁금한데 말입죠. ㅎㅎㅎ

무스탕 2014-06-2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장장님 페북에 질문을 남겨요. 궁금해 죽갔다구!!! 오랜 팬 하나 살리라구!!!

잘 지내고 계시죠? 오랜만이라 심장이 벌렁벌렁... +_+

마노아 2014-06-24 13:52   좋아요 0 | URL
댓글이 몇백개가 있어서 남겨도 답변 받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보다 무스탕님! 넘넘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와락!!!

아무개 2014-06-2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열대? 막 찍자 찍어~ ㅋㅋ

마노아 2014-06-24 13:52   좋아요 0 | URL
판형이 딱 그쪽인데 말입지요. 아, 궁금해 궁금해...^^ㅎㅎㅎ
 

  제 2155 호/2014-06-23

 

[Keyword로 읽는 과학]외상 후 스트레스(PTSD), 이해와 믿음으로 극복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실종자 304명 중 292명(6월 17일 기준)이 주검으로 돌아왔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담당자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국가의 무능함에 온 국민은 슬픔을 넘어서 분노했다. 국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해 전문가를 투입하고 있지만, 유가족과 생존자가 상담에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원고를 위기 극복 연구학교로 지정했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지금 생존자와 유가족은 어떤 아픔 가운데 있는 걸까.

■ 끝없는 절망의 시간이 온다

재난 직후(3~7일) 사람은 아픔과 피곤함도 잊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 실종자 가족은 잠도 못 자고 밤낮을 울며 실신 직전의 상태가 돼도 실종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팽목항으로 뛰었다.

시간이 지나면서(사고 후 1~3개월) 초기의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지만 유가족은 체육관에 모여 있으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매스컴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고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갖는다.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고 죽은 아이의 유가족은 살아남은 이를 보며 우리아이 몫까지 열심히 살아달라며 진심어린 격려를 보낸다. 살아남은 아이도 용기를 얻고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을 한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사고가 난 뒤 2~3여 개월이 지나면 끝없는 절망기가 찾아온다. 매스컴과 주변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자신들이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면서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생각에 막막하고 두려워진다. 잃은 가족과 함께 했던 공간에서 그리움과 슬픔은 더욱 커진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피로도 몰려들면서 두려움, 죄책감, 허무함과 같은 여러 감정이 뒤섞이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유가족의 잇단 자살 기도가 그 예다.

친구를 구하려다 죽은 아이의 부모는 만약 내 아이가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지 않았더라면, 내 아이가 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원망과 그리움이 커진다. 또 생존한 아이는 ‘그 친구가 살았어야 했는데’라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유정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연구원은 “이 시기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회복의 중요한 시작”이라며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은 이 때”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직 외상이 진행 중인 유가족에게 사고 직후 전문가가 찾아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에는 재경험 현상(플래시백)도 두드러진다. 생존자는 사건과 연관될 수 있는 물건이나 상황, 냄새나 촉각만으로도 사고가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을 꾼다. 대구 지하철 사고의 트라우마 극복 과정에 대해 다룬 논문 ‘트라우마 내러티브 재구성과 회복효과, 2010’을 보면 사고 이후 노래를 못하게 된 성악과 학생의 상담 내용이 담겨있다. 사고 당시 다른 사람보다 숨을 잘 참아 기관지 손상이 적었음에도 더 이상 노래를 못하게 된 이유는 고음이나 음을 길게 끌기 위해 숨을 참을 때마다 사고의 고통이 떠올라서였다. 전문가들은 “일본 쓰나미 생존자의 경우 김치찌개에 올려진 두부를 보고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들이 생각나 구토 증세를 호소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또 신경이 예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과하게 반응하게 된다. 사고와 관련된 것을 피하거나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이 도움을 목적으로 사고에 대해 이야기 해 보라고 묻거나 성급한 충고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오히려 당사자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귀 기울여주고 언제나 당신이 옆에서 지원해준다는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 국가에 대한 신뢰 회복과 온 국민의 이해 필요해

끝없는 실망 끝에는 회복기(사고 6개월~1년 후)가 온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고를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극복하고 새 삶을 꾸리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시기다. 사고를 잊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고는 기억의 일부로 남는다. 혼란과 갈등도 계속된다. 매년 4월 16일이면 평소보다 더 우울한 시간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내면의 죄책감과 불안감, 슬픔을 딛고 일어서야 심리적인 회복이 된다.

충격이 너무 커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 해리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사고에 대한 기억만 지워져 사고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고의 기억을 ‘나’의 경험과 분리시켜 사고는 기억하지만, 내가 겪은 사고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신분열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회복기에는 국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가 그들을 지켜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정부는 사고 경험자가 다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되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아야 한다.

미국 정부는 9.11 테러 이후 전문가를 소집해 교통과 바다 생태계, 건축, 시민들의 충격 등 전 분야에 걸쳐 10년간 뉴욕시가 입은 피해에 대해 조사했다. 그동안 정부는 피해자들이 다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심리 치료는 물론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하면 새로운 것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고 다른 주로 이사를 원하는 이에게는 주거를 제공했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는 이에게는 후견인도 지원했다.

또 매년 9월 11일이면 대통령이 TV 연설을 통해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여,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것임을 강조하며 국가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갔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날이 갈수록 커져 생존자와 유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세월호 사고의 외상을 겪고 있다. 생존자를 위한 국가의 지원은 단원고를 위기 극복학교로 지정해 낙인을 찍는 일부터 시작했다. 고등학생은 성인과 달리 가치관이나 자신만의 세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단원고 학생들은 이 상황에서 일어날 것이라 상상조차 못했던 사고가 벌어지면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 유정 연구원은 “어른이 외상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집을 보수하고 수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학생들은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라며 “위기 극복 학교 지정은 다시 자신만의 새로운 집을 짓는 아이들의 토대에 ‘어딘가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외부 전문가가 아닌 학교 선생님이나 지역 사람들의 교육을 통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치유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 상담실을 늘리거나 수업의 일부를 활용해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의 감정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외부의 의식을 덜하면서 다시 축구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미국이 9.11 사건을 극복하는 데는 국민들의 힘도 컸다.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전 국민이 추모 촛불 점등을 하는 등 그들의 슬픔을 함께 하고 격려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생존자의 회복에 중요한 요건”이라며 “그들을 잊지 않는 것, 그들 곁에 우리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모든 이들이 이해와 믿음으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http://scent.ndsl.kr/sctColDetail.do?seq=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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