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귀신 솔봉이 - 무인도에서 살아 온 책귀신 4
이상배 지음, 박정섭 그림 / 처음주니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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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귀신 동화 시리즈를 재밌게 읽었다. 이번에는 제목부터 책귀신이다.그것도 무려 무인도에서 살아 온 책귀신 솔봉이!


솔봉이가 처음부터 책귀신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솔봉이는 책을 아주 싫어했다. 엄마는 솔봉이에게 책을 읽히려고 사탕이라는 당근을 내밀었다. 책 보기 전에 하나, 책 본 다음에 또 하나. 맛있는 사탕을 먹기 위해서 책을 열심히 보았던 솔봉이는 그만 책의 마력에 빠져서 이젠 사탕 없이도 책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책보는 솔봉이가 멋있다고 말해주는 바람에 더더욱 책읽기에 박차를 가했다. 그 바람에 솔봉이의 별명은 책귀신이 되었다.



삼총사로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공귀신 차오름과 게임귀신 김동구다. 이들 모두와 함께 폐가에서 보내는 2박 3일 캠프에 가게 된 솔봉이는 '마음이 딴딴해지는 19가지 이야기' 책을 가지고 갔다. 한꼭지를 100번씩 읽기로 결정했으니 2박 3일 동안 읽기엔 충분하고도 남다. 



책읽는 솔봉이가 폐가에 갔다가 무인도에 가게 된 이야기, 그리고 책 속에서 소개된 책 이야기까지해서 이야기에 이야기가 새끼를 친다. 정말 책속에 풍덩 빠지는 기분이다. 특히 저승이 될 무인도를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가꿔버린 도티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달리 생각할 여지가 많은 이야기였다.



얼결에 무인도에 도착하게 된 세아이들은 어떻게 이 위기를 빠져나갈까. 솔봉이가 얼마 전에 읽었던 '2박 3일 무인도에서 수제비 끓여 먹기'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까. 


아이들이 겪었던 모험담은 이속에서 소개된 이야기보다는 사실 덜 재미있었다. 무인도에서 살아 온 책귀신 솔봉이보다 도깨비가 등장하는 책귀신이 어째 더 현실감이 있었다.^^ 삼총사로 묶었지만 솔봉이 외의 캐릭터들은 큰 역할을 해내지 못했던 것도 다소 아쉽다.


귀신은 반갑지 않지만 책귀신은 늘 환영이다. 진짜 벌레는 별로지만 책벌레는 좋다. 꿈틀대는 벌레 말고 책읽는 벌레 말이다. 어린이 날을 기념해서 오늘은 동화책을 자꾸 보게 된다. 다 읽었으니 조카에게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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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터치 바이블 - 소(小) 합본.색인 (NKS63EM) - 가죽.지퍼.NKS63EM 터치 바이블
대한기독교서회 편집부 엮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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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직장이 미션스쿨인지라 예배드릴 일이 많다. 요즘은 대부분 스크린을 사용하기 때문에 성경책 찬송가가 없어도 예배 드리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지켜보니 학생들이 일어나서 찬양 부르고 할 때는 스크린이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또 소규모 예배도 있고 하니 직장에도 성경책이 있었으면 했다. 자리에 커다란 성경책이 하나 있긴 한데 그건 개역개정판이 아니어서 거의 '북엔드' 역할을 하고 있다. 해서 이번에 성경책과 찬송가를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편하게 쓰려면 합본이 좋았다. 게다가 성경책은 종이 재질이 너무 얇아서 모서리가 늘 돌돌 말리곤 하는데, 그게 싫어서 지퍼 있는 성경책을 고르기로 했다. 봄날을 닮은 색깔인 핫핑크를 골랐는데, 본 사람들이 모두 예쁘다고 한다.(근데 리뷰 쓰려고 하니 알라딘에는 왜 꽃분홍색이 없을까??? 이상하다.) 사이즈가 작은데도 생각만큼 글자가 작지 않다. 눈 좋은 내가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정작 성경책 사고 첫번째 예배는 성경책 없이 토론 시간이어서 다소 실망(?)했지만, 여전히 내 자리 책꽂이에 꽃혀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 사이 부활절도 지났고, 그밖에도 매주 예배는 있으니까.


개역개정판으로 힘들게 사도신경 새로 외워놨는데, 이곳에선 옛날 사도신경을 외우는 바람에 요새 뒤죽박중 엉망이 되고 말았다. 기껏 외운 것을 다시 까먹으면 곤란하니, 옛날 사도신경은 성경책 앞부분 펼쳐놓고 읽는다. 수십년 외워왔던 것을 이렇게 보고 읽을 줄이야...^^;;;


화면으로 책 보는 것 안 좋아하듯이 성경책도 커다란 스크린보다 내 손에 쥐고 넘기는 게 좋다. 역시 책은 아날로그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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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뜨는 밤에 가부와 메이 이야기 7
기무라 유이치 글, 아베 히로시 그림,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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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와 메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대형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선채로 여섯 개 시리즈를 읽고는 와락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후 조카들에게도 선물하고 주변에도 추천을 많이 했다. 참 예쁜 이야기라고. 어른이 보아도 감동적인 사랑스런 이야기라고. 


그 동화의 끝은 많이 슬펐다. 어린이 그림책도 이런 결말이 필요한 거라고, 새삼 신선함에 감탄했다. 최근...이 아니라 조금 되었나? 드라마에서 이 책이 등장했고 다시 큰 관심을 받았다. 드라마를 보지 못해서 내용은 잘 모른다. 당시 이 책의 일곱번째 시리즈가 일본에서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마침이 책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 있어서 냉큼 구매했다. 하지만 그건 드라마 스토리 북이었다.ㅜ.ㅜ 드라마를 보지 못했으므로 그 책은 중고책으로 팔아버렸다. 그냥, 나의 흔한 삽질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진짜,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가 출간됐다. 두근두근, 조금의 긴장과 그보다 많은 기대를 품고 책을 보았다. 하얀 눈속으로 사라졌던 가부가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메이의 꿈이었다. 가부가 살아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꿈속에서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가부 없이는 숲도, 달도 의미가 없었다. 더군다나 가부는 늑대이면서 염소 친구인 자신을 위해서 희생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는 것은 이들의 관계에 변화가 왔다는 것! 그렇다. 가부는 살아 있었다. 다만 눈밭에서 뒹굴면서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었을 뿐이다. 기억상실증은 막장 드라마에서 너무 우려먹은 소재인지라, 진정 필요할 때에 실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설정이지만, 이들은 서로 천적의 관계이기 때문에 이런 중간장치는 몹시 중요하다. 다시 만난다면 둘은 우정을 나눈 친구가 아니라 먹이와 사냥꾼의 관계가 될 테니까.



마침내 맞닥뜨린 가부. 반가운 메이. 그러나 둘의 표정은 저렇게 다르다. 메이는 반가움에 목에 메인 얼굴이지만 가부는 먹음직스런 먹이를 눈앞에 둔 굶주린 늑대의 얼굴일 뿐이다.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이제 메이의 하얀 목덜미를 콱 물어버리면 한번에 숨통이 끊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어쩌면 메이라면 가부를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둘의 우정이라면, 가부가 알면서 메이를 잡아먹는 거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사고 나기 전에도 쫓길 때에 기꺼이 먹이가 되어주려 했던 메이였으니까.



자, 이제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가부는 끝내 메이를 한끼 식사거리로 만들 것인가. 메이는 가부가 살아있다는 기쁨 속에서 기꺼이 죽을 것인가. 폭풍우 치는 밤에 만났던 이들이 보름달 뜨는 밤에 재회할 것인가, 아니면 끝내 헤어질 것인가.


이야기는 여전히 감동적으로 흐르지만, 그래도 6번째 시리즈의 진한 감동과 여운에 비해서 아무래도 사족을 붙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책과 비교해서 나쁘지 않지만 시리즈와 비교한다면 감흥이 다소 떨어지니 별점은 하나 뺐다. 별 네개여도 가부와 메이 이야기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개인적인 아쉬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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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CUS 과학

제 2120 호/2014-05-05

모기와의 전쟁이 매년 빨라지는 이유

별들조차도 더위에 지쳐 조는 듯한 나른한 여름밤. 하지만 그 꿀맛 같은 단잠을 깨우기에는 그리 큰 소리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모기 소리 정도면 된다. 귓전에 울리는 앵앵대는 모기 소리에도 계속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신경이 무딘 사람은 별로 없다. 심지어 모기 소리보다 10만 배나 큰 기찻길 소음 속에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모기 소리는 참기 힘들 정도다.

이처럼 사람들은 기찻길 소음보다 모기 소리를 더 싫어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싫은 것은 모기 소리가 아니라, 모기 그 자체이다. 모기에게 물리면 벌겋게 부어오르고 가려울 뿐 아니라, 운이 없다면 꽤 심각한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모기는 작지만 그들이 옮기는 질병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모기들이 가벼운 가려움증과 발진 등을 일으키는데 그치지만, 작은빨간집모기(일본뇌염), 중국얼룩날개모기(말라리아), 아에데스 알보픽투스(뎅기열) 같은 모기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 밖에도 모기는 황열이나 웨스트나일열과 같은 질병도 모기에 물려 전염된다.

모기가 옮기는 질환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큰지는 말라리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약 500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리며 이 중에서 100~200만명이 사망한다. 이는 이전에 비해서 많이 줄어든 수치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 3세계의 5세 미만 어린이들의 사망과 청력 손실의 주요 원인은 말라리아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기는 뇌염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는 연간 300~900명이 모기가 옮기는 일본 뇌염으로 사망했다. 이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뇌염이 남긴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곤 했었다. 비록 1970년대 이후에는 백신의 보급으로 발병률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모기는 우리에게 말라리아 원충과 뇌염 바이러스가 혼합된 질병이 폭탄처럼 인식되고 있다.

모기에 대한 인식이 ‘질병 폭탄’인 만큼 인류는 오랜 세월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왔다. 모기장을 둘러치고 모깃불을 피우고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가 서식하는 물웅덩이를 없애 모기를 박멸하려고 했다. 그리고 말라리아 치료제와 황열 백신과 뇌염 백신을 개발하는 적극적인 대처법도 등장했다. 또한, DDT를 비롯한 각종 살충제를 개발해 모기를 박멸하는 과격한 방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지만, 아직 모기의 박멸까지는 길이 멀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그나마 모기로부터 안전한 시기였던 겨울마저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보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 빨간집모기의 경우, 지난 2000년에는 5월 3일에서야 처음으로 발견됐었다. 하지만 매년 하루씩 발견 시기가 단축되어 2013년에는 4월 18일에 최초 발견이 보고되었을 정도로 출현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심지어 추위가 한창인 11월~12월에도 모기가 관찰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최근 모기의 출현 시기는 더 빠르고 더 길어지고 있다.

곤충류에 속하는 모기는 기온이 평균 섭씨 14~41도 사이에서만 성충으로 활동할 수 있다. 모기의 활동시기가 빨라지고 길어진 것은 그만큼 기온과 환경이 따뜻하고 온화하게 변화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학자들은 모기의 등장 시기가 더 빨라진 것에는 온실 효과의 증가로 인한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온실 효과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봄이 오는 시기가 빨라졌고, 이에 맞추어 모기의 활동 시기도 빨라졌다는 것이다.

모기만이 아니다. 실제로 기상청의 관측에 따르면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같은 대표적인 봄꽃들의 개화 시기 역시도 지난 30년 전에 비해 6~8일 정도 앞당겨졌다고 한다.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한 기온 상승은 기온이 오르는 봄의 시작을 앞당겼고, 그 결과 봄의 전령사들도 이전보다 빨리 찾아오는 셈이다.

덩달아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모기 역시도 바삐 오는 봄을 따라 날갯짓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은 모기의 출현 시기를 앞당겼을 뿐 아니라, 모기의 서식지까지도 넓히는 이중 효과를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모기들은 주로 열대 지역에 서식하기에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는 말라리아 때문에 많은 피해를 받았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내에서도 해발 1,624m인 케냐의 나이로비, 1,479m인 짐바브웨의 하라레 같이 고위도 지역은 서늘한 기온 덕분에 모기가 서식하지 못하는 ‘말라리아 안전지대’에 속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프리카 고지대 역시 말라리아로부터 ‘안전’하지 못하게 됐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 곳 고산 지대들의 기온이 올라가자 모기 역시도 따라 올라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질병학자들은 기후변화를 이 같은 모기 서식지 확대 현상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다.

또한 모기가 사라지는 시기가 늦춰지는 것 역시도 바뀐 생활 환경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도시화되고 조밀화 되면서 아파트의 보급이 늘어난 것이 모기에게는 호재(好材)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파트에는 물탱크와 온수 탱크 같은 저수 시설과 지하 주차장의 배수구처럼 겨울에도 외부에 비해 기온이 따뜻하고 얼지 않는 ‘물웅덩이’가 늘 존재한다. 이곳에서 성충 상태로 겨울을 나는 모기들도 생겨나는 실정이다.

특히나 날개에 힘이 약해 높은 곳은 올라가지 못하는 모기들에게 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그들의 날개를 대신해 더 높은 곳의 먹잇감(?)에게 데려다주는 로켓이 되고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아파트 시설들이 모기와의 전쟁에 있어서는 오히려 적군인 모기에게 이롭게 이용되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길기만 했던 겨울이 끝나고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햇살의 따뜻함을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봄날과 함께 찾아온 불청객 모기와의 귀찮은 전투가 이제 또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의 다양한 모기 방제 장치들에 더해 기존의 살충제보다는 생태계와 환경에 악영향을 덜 미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보다 훨씬 이전인 2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아온 모기들을 완전히 내몰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의 노력이 필요할 듯 보인다. 올해도 찾아올 모기와의 전쟁에서 부디 무사하시길!

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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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구판절판


수도자는 순명(順命)해야 하고 수도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인간(humanitas), 흙(humus), 겸손(humilitas)은 모두 같은 라틴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24쪽

안젤로는 초콜릿을 노수사님들의 입에 넣어주고는 노수사님들의 식판에 담긴 밥을 자신의 입에도 넣었다.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꼭 같이 고통받기를 정말 바라실까요? 토마스 수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병실에서 자기는 아파서 물도 삼키지 못하면서 제가 친척들이 사 온 주스며 빵을 먹고 있는 걸 보기를 그리 좋아하셨는데요."
-37쪽

할머니는 나를 사랑했고 아버지도 나를 사랑했으며 어머니도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제각기 떨어져 불화했으며, 나는 그들이 나에 대해 퍼붓는 사랑에서보다 그들의 불화에서 나오는, 그들끼리의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불행에 더 깊이 영향받았다.
-47쪽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역설하면서 가난한 자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교회, 낙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왜 젊은 엄마들이 배 속에 든 자신의 아이를 죽일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조금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교회,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강대국의 무기 판매에 아무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 이혼은 죄라고 하면서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불행하게 사는지 보이는데도 모른 척하는 교회! 동성애가 무슨 취향인 줄 아는 교회! 그 교회가 나를, 여자들과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수도원의 형제들이 노동한 대가인 그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수사들과 같은 수위로 처벌하려 하는군. ‘부자가 재산을 자랑할 때 약탈과 착취가 묵인되고, 군지휘관이 승전보를 알릴 때 대량 학살이 묵인되고, 고관대작이 권력을 뽐낼 때 폭력이 묵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것들이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있음을 의심하라!’하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67쪽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69쪽

"미카엘이 제일 걱정이에요. 단식을 하고 계명을 지키고 계율을 지키는 거 너무 중요하지요. 중요하지만 가끔 미카엘은 매사에 너무 열심히라서 나는 그게 걱정이에요. 하느님 나라는 공부하듯 승진하듯 고시 보듯 내 힘으로 가는 데가 아니거든요. 속세에서 1등 하듯 여기서 단식 지키고 속세에서 근무 열심히 하듯이 여기서 기도 많이 하는 건 속세의 방식이지요. 하느님 나라는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기쁘게 살아내는 거예요. 복음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사는 거거든요."
-107쪽

"힘들지요. 하느님, 이 늙은이를 빨리 데려가시지 않고 이렇게 내버려두어서 무얼 얻으시려는 건지 궁금하지요. 그러나 내가 물어도 늘 그렇듯 대답이 없으세요. 80년이 넘도록 물어도 대답 없는 양반이니 말이지요. 다만 내가 알게 된 게 있다면 내가 평화 가운데 있다는 거예요. 젊었을 때 나는 평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겨우 하나 알게 되었어요. 평화는 고통 가운데서, 혼란 가운데서, 병과 늙음 그리고 죽음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붙들고 있는 거라는 걸."
-108쪽

"미카엘 수사님, 요한 수사님.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또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어내고 좋아하셨지 뭐가 되고 나서 좋아하시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너무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하려고 하면 넘어집니다. 우리는 작고 가난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께 모든 걸 맡기고 겸손하게 기다릴 뿐이지요. 우리가 해야 하고 오직 하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의 먹을 것, 우리의 입을 것, 우리의 시간과 선의를 그것이 모자라는 이웃과 나누는 거지요. 예수님은 교회 건물을 세우지도 않았고 시위를 주동하지도 않았으며 학교를 창립하지도 않았으며 한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전쟁터에 가시지도 않았잖아요."
-108쪽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했던 거야. 작고 가난한 형제에 대한 사랑...... 나는 예수가 승천하기 전에 주고 갔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내 말투에는 사랑이 없었고 내 편지의 내용에는 평화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어. 왜 토마스 수사님을 간호하는데, 그 터무니없이 눈이 맑고 명랑한, 지금은 어린아이보다 못하게 되어 대소변조차 혼자 보지 못하고 넣어주는 음식의 반을 흘리는 늙은 수사님을 보면서 나는 그걸 깨닫게 되었을까? 그분이 하도 잔잔하셔서 내 얼굴이 비추어졌는데, 나는 거기서 사랑을 빙자한 증오로 가득하고 평화를 빙자하여 전쟁을 불사하는 가증스러운 한 영혼을 보게 된 거라구."
-113쪽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찍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삶을 결정하고 거꾸로 삶의 과정이 죽음을 평가하게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런 질문에도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신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책임을 신에게 돌려버림으로써 실은 나는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아빠스님이 이야기했던 "이 고통 속에서 신이 내게 물으시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 실은 내가 이 고통 때문에 뜻밖에도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165쪽

"안젤로 수사님은 정말 친척이 아무도 없었어요. ‘전 여기서 나가면 아무도 없어요’ 그러기에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나 봐요. 이 세상에 사고무친인 사람이 그렇게 날마다 방실방실 웃고 다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언제나 내게도 상냥하고 친절했지요. ‘문지기 수사님이 문을 지켜주시니 저는 정말 좋아요. 날마다 오갈 때마다 여기서 뵐 수 있으니 참 기뻐요.’ 아무것도 아닌 제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 사람 하나밖에 없었어요. 순간 내가 뭐 예쁜 여자도 아니고 저게 정말일까 의심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안젤로 수사님이 ‘수사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하고 이 문을 오갈 때면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참 기쁜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저절로 환해졌답니다. 가끔 그 젊은 수사님이 햇빛 속에 서 있을 때는 같은 남자가 보아도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꼭 늠름한 해바라기 같았고, 그냥 지상에 뚝 떨어진, 정말 안젤로라는 이름 그대로 천사였나 싶었어요."
-166쪽

여자는 내가 내미는 포도주를 한잔 마시고 겨우 입을 열다가 다시 울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로 손이 갔다. 그렇게 위로의 손길을 뻗으면서 나는 내가 가진 지극한 슬픔도 그보다 더 지극히 슬픈 사람을 위로하면 덜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나의 고통을 잠시 잊었고 그녀의 고통에 깊이 감화되었다. 뭐랄까, 아래로만 치닫던 슬픔이 나의 아픔에만 집중되던 고통이 다른 이를 향해만 가던 분노가 평화와 위로와 나눔으로 반전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도 나는 마음이 아플 때는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쏟는 것으로 나의 고통을 달래곤 했다. 어쩌면 치유는 위로받는 자에게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에게 일어나는지 모르니까. 아니, 위로받는 자와 위로하는 자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고통받는다고 느낄 때야말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168쪽

이상하다. 이 지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살아 있었으면 그저 그렇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을 평범하고 시시한 한 사람의 생이 죽어서야 모든 이의 삶 속에 선명해지는 것. 아마 대표적인 이가 예수였겠지.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이 아닐까.
-170쪽

"우리 안젤로가...... 우리 안젤로 수사가......"
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주름진 얼굴로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의 거무튀튀한 입술에서 나오는 우리, 라는 말이 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노수사님이 다가와 나를 안았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그리고 오래 울었다.
-175쪽

"하느님, 참 늙고 병들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시지, 왜 그들을...... 왜 그들을."
나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닦으면서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라거나 "여기서 뜻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면 마음속에서 일어났을 폭풍 같은 냉소가 그에게는 일지 않았다. 그는 약한 우리의 믿음으로 인한 고통을 이해했고 공감해주었다. 나는 그 후로도 가끔 생각했는데, 결국 진정하고 강한 믿음을 가진 이만이 약하고 흔들리는 이들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11쪽

"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 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 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
-239쪽

"그런데 요한 수사 그거 아나? 이 세상에 참나무란 건 없다는 거 말이야. 참나무란 참나무 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들의 공통 명칭이라는 것을. 자료를 좀 찾아보니까 수피를 잘라내어서 굴피집의 지붕으로 썼다는 굴참나무-우리 수도원에서 순교자를 여럿 냈던 옥사덕의 지붕 자재도 아마 이 굴참나무였을 거야-, 떡을 상하지 않게 감싸주었다는 떡갈나무, 예전에 신발 깔창으로 대기 좋았다는 신갈나무, 묵을 쑤어 먹으면 제일 맛있는 열매를 맺는다는 졸참나무, 거기서 열린 도토리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도토리묵을 쑤었다는 상수리나무...... 한마디로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가 다 참나무라는 거야."
-313쪽

"참나무는 20년은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하네. 물론 그 전에 그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 싹을 틔우는 것도 몇 개 되지 않고 말이야. 그렇게 싹이 났다고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죽는 일도 비일비재. 여러 해충에 약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다니...... 그때 생각했어. 이렇게 약하고 어찌 보면 느린 나무에게 참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 조상들을 말이야. 심지어 평균 수명도 짧았을 그 시기에 자신이 심었다 해도 살아서는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그 나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참이라는 말을 붙여주다니......
나는 어쩌면 우리 수도자들이 참나무 등속과 닮은 건 아닌가 생각해보았네...... 우리도 참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다 모여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우리를 모두 수도자라고 부르지만, 모양도 다 다르고 쓰임새도 다 다르고 심지어 제복들도 다르고....... 그렇지만 우리는 수도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거...... 닮았다고....... 그렇게 20년을 잘 참아내면 참나무는 수백 년을 살기도 하네. 풍성한 그늘과 열매를 주고 퇴비가 되는 잎을 주기도 하며 숯을 만들게 하고-통일신라 시대에 경주에서 피웠다는 연기 안 나는 사치스러운 숯이 이것이라네-표고버섯의 토양이 되기도 하지."
-314쪽

‘압니다. 할 수 없는 이유 9999가지를요. 그러나 합시다. 이건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건 흥정의 대상도 고려의 대상도 아닙니다.’
-334쪽

영하 20도의 눈보라 치는 항구를 떠나 사흘 만에 도착한 그 나라의 남쪽 항구는 영상 1도. 생명과도 같이 보드라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거제도의 주민들이 우리 배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주먹밥을 준비해 부두에 나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맑고 신선한 이 나라의 물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 선원들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지요. 예수라는 이름도 없고 교회도 없고 심지어 십자가도 없는 이곳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341쪽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342쪽

두 사람이 죽었다는 말과 동시에 마리너스 수사님의 입에서 강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마치 죽음의 소식이라고는 세상에서 처음 들은 사람처럼 깊게 탄식했다. 순간 그보다 내가 더 놀라고 있었다. 나는 그가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본 죽음은 내가 살아서 본 사람의 수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더 깊이 탄식하고 있었다. 문득 그가 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어떤 죽음도 상투적이지 않다. 수십 억의 사람이 태어난다 해도 어떤 태어남도 진부하지 않듯이 말이다. 나는 그에게 온전히 나의 슬픔을 이해받고 있는 듯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나는 미카엘과 안젤로가 죽은 후 처음으로 위로받고 치유받는 것 같았다.
-354쪽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깊이 절망하겠습니다. 더 높이 희망하기 위해서.
-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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