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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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는 새삼스레 어떤 생각이 떠올라 눈을 가늘게 떴다. 가시와기 다쿠야가 학교에서 고립되었던 것처럼 다쿠야의 부모도 고립되어 있었다.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외톨이가 되면 보호자도 같은 처지가 된다. 외부와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이 없어져,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중요한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전혀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다.
-135쪽

아니야, 미야케. 농구부 활동에만 정신이 팔린 다케다는 너 같은 애 정말 몰라. 내가 누군지도 몰랐는걸. 같이 배심원을 하게 되기 전까지 몰랐단 말이야.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남들 눈에 띄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와 관계없는 곳에서 돌아간다.
-308쪽

난 어떤 어른이 되어도 괜찮으니, 별로 대단한 어른은 못 되겠지만, 저렇게 눈빛이 어두운 유령 같은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다. 그것이 구라타 마리코의 인생 목표다.
-397쪽

"혹시라도 귀찮거나 자포자기해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인정한다면, 그건 있었던 일을 없었던 걸로 하자는 말에 정말로 그래버린 저와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434쪽

-그제 뉴스에서, 체포된 가키우치 미나에라는 사람 사진을 봤을 때. 저런 얼굴을 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누구 얼굴인지 알았어.
내 얼굴이다. 주리는 생각했다. 가키우치 미나에의 얼굴은 나와 똑같다. 그것은 거짓말쟁이의 얼굴이다. 거짓말을 해서 남에게 상처 주고 자신도 상처 받는 인간의 얼굴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절망한 인간의 얼굴이다.
-그게 내 판결이야, 후지노.-508쪽

나는 이제 재판이 시작되기 전의 내가 아니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하루하루 새로운 날을 쌓아올리며 여기까지 왔다. 다음이 없는 게 아니다. 물러설 수가 없는 것이다.
-509쪽

그 피고인신문 이후로 슌지는 변호인과 제대로 눈도 맞추려 하지 않았다. 시종 부루퉁한 건 화가 났다는 표시일 테다. 아무리 변호를 위한 작전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고. 그렇지만 화가 폭발하진 않아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왜 대놓고 화를 못 내는지 모르는구나.
예전처럼 버럭버럭할 수 없는 건 네가 화가 난 게 아니라 상처받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왜 상처받았는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틀림없이.
틀림없이-그러길 바란다.-514쪽

"저희 부모님은 불행하게 인생을 마쳤지만 늘 불행했던 건 아니었어요. 아버지도 맨 정신일 때는 다정한 분이었고 어머니와 사이도 좋았죠. 나약하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574쪽

네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는 죽겠다. 이보다 비겁한 협박은 없다.
-580쪽

료코와 겐이치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고리가 목에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가시와기를 떠올릴 때마다 그 고리가 조여들었다. 한꺼번에 확 조여드는 게 아니다. 1밀리미터, 3밀리미터, 5밀리미터.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조여들었다고.
-594쪽

제 아버지는-가즈히코가 목소리를 낮췄다.
"알코올중독으로 이성을 잃었고, 그 결과 어머니에게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닫고 나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으며 실은 정식으로 처벌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나약했던 아버지는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스스로가 저지른 행동을 견뎌내지 못했어요. 그래도 자기 책임을 제삼자에게 덮어씌우지는 않았습니다. 나약했지만, 그렇게까지 비겁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죗값을 치렀던 겁니다."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가즈히코는 말했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면. 더 늦기 전에."-599쪽

살의는 공포와 분노와는 다르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굶주림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가리지 않고 통째로 삼키려 드는 굶주림이다. 나는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
-604쪽

"본 법정에 소환된 증인은 모두 선서를 했습니다. 평의에 들어가기 전 배심원 여러분도 마음속으로 선서해주십시오.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마주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해주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의 평결에는 오이데 슌지라는 한 중학교 3학년생의 마음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비뚤어지고 철없고 제멋대로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살아 있는 마음은 바뀔 수 있습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없애지 말아주십시오. 피고인이 이 법정에서 여러분에게 걸었던 것을 받아들여주십시오. 앞으로는 지금껏 시도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마주하고 변화해나갈 기회를 피고인에게 주십시오."
-621쪽

"결국 자살방지 특효약이란 건 없는 거네."
눈에 깃들었던 분노의 빛을 지우고 야마노 가나메가 중얼거렸다.
"음악가의 세계에도 비극은 무척 많아. 예술은 어떤 사람은 구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궁지에 몰아넣으니까."-630쪽

그 녀석은 악마다. 나는 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그런 인간이 있다. 남들과 공존하지 못하는. 항상 자신이 특별한 존재여야 직성이 풀리는.
하지만-
열네 살이란 본래 그런 나이가 아닐까. 누구나 자의식이 과도하고, 끊임없이 주위와 부딪치고, 마음은 우월감과 콤플렉스가 뒤섞여 불안정하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그 시기를 빠져나온다.
나도 그랬다. 다쿠야도 그랬다. 그런데 왜 다쿠야는 그것만으로 부족했을까.-635쪽

"지금까지 말 안 했으면, 이제 와서 굳이 말할 거 없어."
겐이치가 젓가락을 든 채 눈을 깜박거렸다.
"그런 얘기는 덮어두는 게 좋아. 말하고 싶은 건 그냥 한때의 충동일 뿐이야."-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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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CF라고... 짧은 영상이 많은 걸 함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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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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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작가의 우화집이다. 아주 직설화법으로 무장한!


뭐든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대표를 뽑을 때는 물론이고, 
집이나 음식을 나눌 때도,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할 때도 사람들은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연달아서 이기거나 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규칙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영원히 지기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한 사람, 이 규칙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마을의 위험한 일을 맡았다가 손을 다친 후로 주먹을 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 동안은 주먹만 내는 것으로도 웬만큼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서히 그가 주먹밖에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고,
그와의 대결에서는 모두가 보자기를 내었습니다.-45쪽


마을의 위험한 일을 하다가 다친 거였는데 마을의 누구도 그의 억울함을 돌보지 않는다. 억울하면 법을 바꾸라고 한다. 근데 그 법을 바꾸려면 가위바위보에서 이겨야만 한단다.



결국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사회의 법같지 않은가. 가진 자를 위해서만 굴러가곤 하는 그런 법들 말이다. 오늘 본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기업에서 보낸 협상가는 정치가 본질이 아니라 경제가 본질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경제를 주름 잡는 대기업이 하는 일에 너희 먼지 같은 것들은 밟혀 죽어도 끽 소리도 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 회장님은 법을 어기고도 대통령 특사로 친절하게 풀려난다. 영화 속에선 그 장면을 합법적 탈옥이라고 명명했다. 주먹을 펼 수 없는 상대를 향해서 오로지 보자기만 내면서 억울하면 이기라고 말을 하는 이 가혹한 사회. 저 무서운 법을 고집하는 인물의 옷차림이 성직자로 보인다는 것이 더 아찔하다.



검은 고양이에게 잡아 먹힌 흰쥐를 향해 멍청하다고 일갈하는 하얀 고양이가 있다. 어차피 잡아 먹힐 바에는 자기처럼 고귀한 자에게 먹혔어야지 족보도 없이 천박한 검은 쥐를 먹는 검은 고양이에게 먹힌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명예롭게 죽기 위해서 흰쥐들은 자체 회의를 거친다. 그 결과 스스로 나서서 흰 고야잉에게 잡아 먹힌다. 흰 고양이가 힘을 내서 검은 고양이를 물리쳐주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정작 그들은 몰랐다. 옆집에 진짜 검은 쥐가 있기나 한 건지... 걸핏하면 종북 빨갱이를 내세우며 가상의 적을 무장시켜서 공포를 조장하는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런 자들의 경박한 목소리에 달떠서 스스로 제 목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투표 때만 되면 이런 사람들이 늘어난다. 멀지 않은 지방 선거에서 이런 장면을 다시 목격할 것만 같아 벌써 숨이 막힌다. 옆집에 있다는 검은 쥐, 정말 보기나 한 거니? 흰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면 더 명예로운 것 확실하니? 



잿빛 늑대는 숫자적으로 더 적은 흰 염소만 골라서 잡아 먹었다. 처음에는 늑대만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도망치던 검은 염소가 차차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여기며 경계를 게을리 했다. 뿐만 아니라 흰 염소가 여기 있다고 일러 바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흰 염소가 모두 사라지고 난 뒤 다음 사냥감이 된 것은 당연히 그들이었다. 연대해야 할 때 나 몰라라 한다면, 다음 차례는 당신이라는 것... 당신은 늑대가 아니라 염소라는 것... 기억해야 할 것이다. 


냄비 속의 개구리 편도 인상 깊었다.


"요 근래에는 나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했어. 하지만 나는 곧 이것이 단순한 고통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이 고통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나는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만하며 살았는지 반성하게 해서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지. 또한 이 고통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무한한 용기가 샘솟아 더 이상 무엇도 괴롭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지. 이 고통은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일 거야."
개구리들은 모두 그를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들도 고통을 선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민한 개구리는 고통을 참을 수도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냄비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
개구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민한 개구리처럼 불평불만만 늘어놓다가 이 순간의 소중함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152쪽


냄비의 물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데 인내심 강하다고 자부하는 개구리는 이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예민한 개구리 하나만이 이건 그저 고통일 뿐이라고 소리를 높이지만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사회의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함에 대해서 시스템이 문제라고 말을 하면 패배자의 변명이라고 일축해버릴 때가 많다. 더군다나 각 개인도 그걸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원망하고 비관하며 스스로 낮아진다. 내일을 소망하며 오늘을 포기할 때, 결국 내일도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는가?



까마귀들은 자신과 달리 포인트가 있는 깃털을 가진 새들을 동경했다. 그들을 따라하느라고 자신을 내팽개쳤다. 꾀꼬리는 따라할 만했다. 닭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점점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빛깔의 새들을 모사했다. 그러나 공작이 나타났다. 이제 어쩔 것인가.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격이다. 까마귀는 까마귀여서 당당하고 멋진 것이다. 어울리지도 않고 가당치도 않은 공작을 꿈꾸지 말자. 공작은 공작 나름의 열등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여러 편 실려 있다. 오늘의 현실을 과감히 꼬집고 비틀어버리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곳에 권력과 자본의 횡포가, 대기업의 폭력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우리가 몸으로 체험한 용산의 참사가, 쌍용자동차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없어져야 할 이야기들이다. 조삼모사의 원숭이도 되지 말고, 개돼지도 되지 말고, 내것이 아닌 깃털로 위장한 까마귀도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화가 아니다. 은유도 아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이고 투시경이고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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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찾기 2016-09-2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규석 작가님의 저서는
스쳐읽지 않고
다 구매하여 모았답니다ㅋㅋ

마노아 2016-09-24 16:30   좋아요 1 | URL
애정하는 최작가님♡
 
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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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태도를 권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런 얘기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너무 많아서 당연하게 생각되고, 당연한 것이 되다 보니 다르게 생각해야 할 나머지 절반의 상황에서도 같은 관점으로만 사태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할 때도 있지만 중이 절을 고쳐야 할 때도 있는 게 세상 아닌가.
-5쪽

뭐든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대표를 뽑을 때는 물론이고,
집이나 음식을 나눌 때도,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할 때도 사람들은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연달아서 이기거나 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규칙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영원히 지기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한 사람, 이 규칙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마을의 위험한 일을 맡았다가 손을 다친 후로 주먹을 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 동안은 주먹만 내는 것으로도 웬만큼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서히 그가 주먹밖에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고,
그와의 대결에서는 모두가 보자기를 내었습니다.-45쪽

농장 주인의 말에 모두들 곰곰이 생각을 했지만 자기도 좋으면서 남들은 불만을 가지지 않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끙끙거리고만 있었다.
그때 열다섯 냥 받는 일꾼 하나가 체념하듯 내질렀다.
"그러면 차라리 작업반장한테 줘 버리쇼. 그 사람이야 어차피 몇 냥 더 받아 봐야 티도 안 날 만큼 돈이 많으니 어느 누가 불만을 가지겠소."
모두들 그게 낫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작업반장은 매달 천 냥하고도 스무 냥 정도를 더 받게 되었다.
다른 일꾼들은 뭔가 알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지만, 다들 그만 잊기로 했다.-77쪽

혼자가 된 빨강이는 일이 두 배나 많아지긴 했지만 즐겁게 일했습니다.
농장 전체를 책임지는 솜씨 좋은 일꾼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주인은 훨씬 더 즐거웠습니다.-91쪽

어느 날 무료함과 외로움에 지친 조물주는 자신을 즐겁게 해줄 개를 만들었다.
개들은 당당하면서 아름다웠고 온순하면서 용맹했다.
조물주는 그의 창조물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개들은 그들의 주인처럼 무료함에 지쳐 갔다.
그들에겐 그들의 용맹과 당당함을 증명할 무엇이 필요했다.
조물주는 자신의 사랑스런 개들을 위해 돼지를 선물했다.
돼지를 받은 개들은 늘 웃었고 늘 행복했다.
돼지들은 매일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죽었다.
끊임없는 고통과 두려움에 지친 돼지들은 조물주에게 간청했다.
"개들을 없애 주십시오."
"내가 그들을 아낀다."
"그러면 저희에게서 개들을 멀리 떼어 놔 주십시오."
"내가 그들을 아끼고 그들이 너희를 즐긴다."
"그렇다면 저희에게 이 고통을 이길 무언가를 주십시오."
연민을 느낀 조물주는 돼지들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
망각과 웃음.
선물을 받은 돼지들은 여전히 고통받았지만 개처럼 웃을 수 있었다.
웃으면서 잊었고 잊으면서 웃었다.
그래서 개처럼 행복했다.-125쪽

"세상은 늘상 변하기 마련이야. 지금까지 뜨거웠던 적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란 법이 있나? 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적응해서 살면 되는 거야.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나 괜한 불평을 늘어놓지."-150쪽

"요 근래에는 나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했어. 하지만 나는 곧 이것이 단순한 고통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이 고통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나는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만하며 살았는지 반성하게 해서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지. 또한 이 고통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무한한 용기가 샘솟아 더 이상 무엇도 괴롭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지. 이 고통은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일 거야."
개구리들은 모두 그를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들도 고통을 선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민한 개구리는 고통을 참을 수도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냄비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
개구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민한 개구리처럼 불평불만만 늘어놓다가 이 순간의 소중함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152쪽

숲의 표면은 그대로였지만 저절로 순환하던 숲의 역사는 멈춰 버렸다. 나무들이 커다란 몸을 유지하는 데만 온 힘을 쏟느라 새로운 씨앗을 떨어뜨리지도 않았고, 설사 새로이 싹을 틔우는 씨앗이 있다 해도 한 줌의 햇빛조차 흘려버리지 않을 만큼 빼곡한 잎의 성벽에 막혀 숲의 아래쪽은 늘상 밤보다 어두웠기 때문에 어떤 새싹도 자랄 수 없었다.
어둠을 싫어하는 동물들, 꽃을 찾던 동물들도 다른 숲을 찾아 떠났다. 새들이 사라지자 나무를 먹는 벌레들만 폭발하듯 늘어났다. 벌레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패배한 죽어 쓰러진 나무들의 썩은 몸만이 숲에 남은 유일한 양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먹고 먹이며 순환하던 나무들은 이제 이웃의 나무가 죽어야만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삶 또한 머지않아 모두의 파멸로 끝이 날 터였다.-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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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go


진정 눈의 여왕같구나! 아름답다!



디아의 렛잇고도 엄청나다. 음.. 효린 것보다 좋다. ^^



그리고 기발한 패러디 영상! 강원도 교육감이 직접 제작한 것일까? 아님 의뢰를? 아무튼 교육하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니 더 호감이 간다. 이런 유머 감각과 센스가 우리 교육에 필요하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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