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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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회고하고 추억하는 게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 90년대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쳤던 사람으로서 그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90년대를 자주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도 그랬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명의 친구들은 나와 동갑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삼총사가 되어 함께 지낸 아이들에게는 다른 친구들이 끼어들기 힘든 틈을 가졌다. 


이야기의 처음을 열었던 지혜는 자신의 눈과 귀로 받아들인 것을 다시 내보내지 못하는 아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신세경이 맡았던 소이가 그랬듯이.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모든 걸 다 기억하고, 그래서 폭주하는 기억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아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을 싫어하고 말수도 없고 내성적인 아이다. 그러나 사실 지혜는 말도 많고 삐지기도 잘하는, 셋이 있을 때는 적극적인 성향의 아이였다. 


준모 역시 사연 많은 아이다. 틱 장애 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나쁜 뚜렛 증후군이었다. 영화 '수상한 고객들'에서 임주환이 맡은 김영탁이 그랬다. 의도하지 않아도 입만 열면 저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준모의 초등학교 시절이, 그리고 중학교 시절과 지금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이가 얼마나 큰 고통과 갈등을 겪었을지 얼마든지 짐작 가능하다. 


그리고 작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는 세미다. 다단계 사업으로 지명수배가 되어 이혼도장을 찍고 미국으로 도피한 엄마, 엄혹한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딸을 맡겨놓고 나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아빠를 둔 이 아이가 한남동 대저택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하여간 드라마 탓이야. 요즘 판검사가 무슨 대수라고. 품위 없게."

할머니가 품위를 따질 때마다 나는 혹시 내가 그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어 혼란스러워지곤 했다.- 33쪽


1994년 여름,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3384명이었다.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폐사한 가축의 빈 우리를 뉴스에서 보았다. 저런. 뜨거운 물에 우린 잎차를 마시던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할머니가 단언했다. 종말이 가까웠다니까요. 그들은 반팔 실내복 위에 칠부 소매의 얄따란 카디건을 덧입고 있었다. 그 집의 실내온도는 언제나 25.5도와 26도 사이를 유지했다. 나의 조부모는 한의사의 조언대로 찬 기운이 몸에 스며드는 일만큼 해로운 건 없다고 믿는 눈치였다. 세상에는 얼음도, 설탕도, 콜라도, 배달 치킨도 먹지 않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경건하지 않은 삶 말이다. -62쪽

1994년의 여름이란, 그 시간을 살아본 사람만이 기억할 수 있는 끔찍한 뜨거움이었다. 그 더운 날에도 세미는 방학 내내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찜통 더위 속에서 겨우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낡은 선풍기 한대가 도는 도서관에서 세미는 자신보다 하루라도 더 먼저 태어난 책들만 읽었다. 열여덟 인생이 지나치게 무거워서, 떠밀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게 안쓰러웠다.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엄마, 미워 죽겠지만 내칠 수 없는 아빠, 두렵고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신경 쓰이는 할머니, 그리고 누가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고모까지. 아이인데도 이미 어른으로 웃자라 버려야만 했던 이 아이의 인생이 사주 보는 젊은 아가씨에게도 보였나 보다. 


"학생은 꽃이에요, 절벽에 핀 풀꽃. 잊고 잊히며 살아야 해요.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오래 안고 가지 말아요. 무슨 일이더라도."

잔디밭에서 아무 풀도 짓밟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처럼 여자는 조심조심 말하고 있었다.

"사무쳐도, 아파도, 다 흘려보내요. 내 것이 아닌 듯. 그러면 꺾이지도 밟히지도 않을 거예요." -88쪽


절벽에 핀 외로운 풀꽃. 잊고 잊히며 살아야 한다는데, 그게 쉽게 된다면 인생이 이리 무거웠겠는가. 다 흘려보내라고 말해주지만, 흘려버리게 어디 세상이 가만 두던가. 세미의 엄마가 세미를 낳은 건 스무 살 때였다. 몸은 성인이었지만, 부모는 모두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최소한의 바람막이도 되어주지 못한 분별 없고 무책임한 못난 부모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 부모도 행복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선 안 되는 거였잖아!


준모의 엄마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다. 얼마나 간절했을까. 아무리 애원해도 함께 가주지 않던 아들이 모처럼 기분 좋았던 어느 날 엄마를 따라 교회를 찾았다. 아아, 그런데 그 교회란 것이 흔히 보는 장로회나 감리교, 침례교  혹은 성결교 같은 게 아니었다. 교회당도 아닌 옥상에서 집회를 갖고 비닐봉지를 뒤집어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란, 내가 준모라도 혼비백산 도망칠 것 같다. 이후 아이가 더 마음의 문을 닫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면허 언제 땄어?

안 땄는데.”

그럼, 운전 잘해?”

몰라, 오늘이 처음이야.”

, 미쳤어 정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지혜는 허리가 꺾이도록 웃었다. 세미의 생일이었다. 어머니는 가게에서 쓰는 미니 승합차의 열쇠를 주면서 트렁크에 실린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가지고 가라고 했다. 차를 통째로 가지고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차가 없어진 사실을 알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맨 먼저 당황할 것이고 곧 화를 낼 것이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되지 않았다. 하느님에게 다 일러바치고 그분으로부터 답을 구할 테니까. 그리고 머잖아 편안해질 테니까. -145쪽


교회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요즘이었기 때문에 더 답답해졌다. 오 마이 갓!


작품 말미에 내 모든 것에 '안녕'을 고해야 하는 사건이 터진다. 스무살을 바라보고 있던 열아홉의 5월이었다. 그러니까 고3 5월이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돌봐야 할 사람을 까맣게 잊었던 것은 욕먹을 일이긴 했지만 하필 그때 그런 일이 터진 건 지독히 나쁜 우연이었다. 도움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정말 급한 일 있을 때 불러달라고 했던 걸 기억해준 건 고마웠다. 그렇지만 그 대가가 지독했다. 준모보다도 지혜에게. 무엇도 내버릴 수 없는 기억력을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그랬다. 비밀을 공유해준 대가로 이후 지혜는 자신을 가두고서 살아야 했다. 이게 정말 누군가가 모욕당하지 않는,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었을까? 문득, '아이 엠 러브'에서 틸다 스윈튼이 떠올랐다. 당시 그녀의 입장과 그녀가 갈망하던 모든 것에 동의하고 감정이입이 되었지만 그 타이밍이 아들의 죽음 뒤였기 때문에 온전히 인정해줄 수 없었다. 꼭 그런 기분. 이 선택을 반드시 해야 했던 거니? 


본인의 잘못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사건이었다면 아이의 선택을, 아이가 만들어낸 비밀에 동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책임소재가 분명히 따라올 일에 이런 식의 처리는 핑계로도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놓고 십여 년 뒤 서른에 접어들었을 때의 모습은 서로를 바꿔버린 느낌이었다. 잊고 잊히며, 다 흘려 보내서 꺾이지도 않고 밟히지도 않게 변한 것 같다. 대신, 그 멍에는 다른 사람에게 옮아갔다. 안녕은 한 명만 한 것이 아니라 셋이 같이 해버렸다. 


비밀은 지켜졌고, 나와 지혜와 준모는 다시 모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다.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인 거였다. 준모도 지혜도 어딘가에 혼자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아무리 우스운 영화를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 원래 다 그런 거라고들 말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228쪽


혼자 남겨지는 게 싫었는데, 사실은 나 혼자만 남겨지는 게 끔찍했다. 누구라도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모두 함께 아침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것은 더 잔인한 일 아닌가. 슬프고 슬픈 일이다.


직전에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아주 천천히 읽었다.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빠르게 읽히지 않아서 답답했고, 재미가 있음에도 느린 속도 때문에 갑갑했다. 이 작품은 아주 빠르게 읽힌다. 이야기도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제 몸을 찢었지만 나비가 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던 아이들의 이야기에 연민을 갖고 읽어냈다. 시작은 지혜가 열었고, 마무리는 준모가 닫았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전반적인 진행은 세미가 맡았다. 나름의 배분일 테지만, 다소 균형이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말미의 이야기가 무거운 기분을 더 가중시켜서 끝맛이 개운치가 않다. 그래도 준모가, 본인도 충분히 어렸던 그 아이가 마지막에 베푼 배려는 뜨겁고도 아릿했다. 너의 그린란드는, 너의 사막은 또 얼마나 춥고도 고독할까. 그래도 네 말을, 너의 욕을 알아들을 수 없는 그곳에서 네가 자유로울 거라고 위안을 가져본다. 얼음으로 가득한 성에서 엘사가 외롭지만 자유함을 느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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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30 0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31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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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드라마 탓이야. 요즘 판검사가 무슨 대수라고. 품위 없게."
할머니가 품위를 따질 때마다 나는 혹시 내가 그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어 혼란스러워지곤 했다.-33쪽

부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혜는 싸늘하고 냉소적이었다. 나는 그것이 그애가 아직 그들을 포기하지 않은 증거임을 알고 있었다. 사랑은 어쨌든 상대를 포기하기 전의 상태이므로, 지혜가 부모를 사랑한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46쪽

1994년 여름,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3384명이었다.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폐사한 가축의 빈 우리를 뉴스에서 보았다. 저런. 뜨거운 물에 우린 잎차를 마시던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할머니가 단언했다. 종말이 가까웠다니까요. 그들은 반팔 실내복 위에 칠부 소매의 얄따란 카디건을 덧입고 있었다. 그 집의 실내온도는 언제나 25.5도와 26도 사이를 유지했다. 나의 조부모는 한의사의 조언대로 찬 기운이 몸에 스며드는 일만큼 해로운 건 없다고 믿는 눈치였다. 세상에는 얼음도, 설탕도, 콜라도, 배달 치킨도 먹지 않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경건하지 않은 삶 말이다.-62쪽

나는 도서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여름방학 동안 이곳은 거의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넓지 않은 열람실에 낡은 선풍기 한대가 권태롭게 돌아갔다.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유지시켜주는 바람이었다. 아릿한 먼지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졌다. 서가는 어둡고 서늘해서 숨어 있기 좋았다. 나는 세계문학전집이 순서대로 꽂힌 책장 밑에 쭈그려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각권의 맨 뒷장에는 초판 발행일이 인쇄되어 있었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보다 하루라도 먼저 나온 책들만 읽었다.-64쪽

책의 어떤 페이지에도 밑줄은 치지 않았다. 나만을 위한 빨간 줄을 긋는다고 해서 거기 새겨진 의미들이 내 것이 될 리 없을 테니. 나보다 오래 존재해온 글자들이 이 세계 어딘가 낡은 책장들 속에 납작 엎드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65쪽

그러고 보면 세미와 나 사이에는 거의 항상 지혜가 있었다. 셋은 비겁하고 안전한 숫자였다.
-127쪽

"면허 언제 땄어?
"안 땄는데."
"그럼, 운전 잘해?"
"몰라, 오늘이 처음이야."
"아, 미쳤어 정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지혜는 허리가 꺾이도록 웃었다. 세미의 생일이었다. 어머니는 가게에서 쓰는 미니 승합차의 열쇠를 주면서 트렁크에 실린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가지고 가라고 했다. 차를 통째로 가지고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차가 없어진 사실을 알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맨 먼저 당황할 것이고 곧 화를 낼 것이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되지 않았다. 하느님에게 다 일러바치고 그분으로부터 답을 구할 테니까. 그리고 머잖아 편안해질 테니까.-145쪽

각진 얼음 조각을 억지로 삼킨 듯 목구멍이 아렸다. 자정께 받자마자 끊는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엄마도, 성우 오빠도 이 집 전화번호를 알 리 없었다. 서툰 희망이 생 전체를 서서히 좀먹어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단호하게 체념하는 법을 배우기에 적절한 밤이었다.
-167쪽

준모는 과연 운전을 잘했다. 바르고 절도있는 운전이었다. 횡단보도의 금을 밟기 전에 부드럽게 멈춰 서고, 완전히 초록 신호등이 들어온 다음에야 움직였다. 누가 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습격당하지만 않는다면 그는 쎄렝게티 초원의 기린처럼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였다. 지혜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초식동물인 척 살 수 있을까?
-181쪽

출장 정원사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정원은 나날이 황량해졌다. 감나무 가지 꼭대기에 채 떨어지지 않은 홍시 한 개가 매달려 위태로이 흔들렸다. 봄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고집스럽게 천천히 진군하여 온 세상을 점령할 것이다.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그때가 오면 나는 여기를 떠나 또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뿌리라는 게 내게 있기나 하던가. 반포 주공아파트를 떠나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먼 곳에서 여기 한남동을 그리워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감나무에 홀로 매달린 열매 하나는 채 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긴 겨울을 살아남은 것이었다.
-207쪽

"내가 마음은 안 그런데 완이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고모는 말끝을 흐렸다. 고모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고모는 완이가 옆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아이라는 존재에 옭매여 살고 있었다. 완이를 버거워하고 또 그만큼 사랑했다.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명제는 참이며,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부모가 행복하다는 뜻은 아님을 나는 알게 되었다.-213쪽

비밀은 지켜졌고, 나와 지혜와 준모는 다시 모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다.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인 거였다. 준모도 지혜도 어딘가에 혼자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아무리 우스운 영화를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 원래 다 그런 거라고들 말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228쪽

"아니, 나도 같이 있을 거야."
자꾸 혀가 말렸지만 나는 또박또박 발음하려고 애썼다. 나 역시 진심이었다. 진심이라는 단어에 영원성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때의 나에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건 혼자만 배제되는 것이었다. 비겁하다고 낙인찍히는 것이었다.-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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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역을 맡은 이디나 멘젤이 부른 let it go다.


싱글 버전을 부른 데미 로바토의 let it go~ 쇼파를 덮은 하얀 천을 걷어낼 때 엘사가 망토 벗어 던질 때처럼 시원했다.


한국어 버전은 효린이 불렀다. 마지막에 계단 오를 때 입고 있던 하얀 드레스가 요정처럼 보였다. 
허스키해서 원곡 부른 목소리와 많이 닮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좀 힘이 달려보인 건 나만 그런 걸까??



그리고 25개 나라 말로 부른 let it go를 합친 영상이다. 신기하게도 한 나라 말로 부르는 것처럼 균질하게 들린다. 신기 신기! 한국어는 2분 조금 지나서 나온다. 귀 기울이시라! 여기 삽입된 곡은 박혜나가 부른 거라고 한다. 음, 박혜나라면 내가 옥주현 위키드 예매한 줄 알고 갔다가 박혜나 위키드인 것 알고 기암했던... 그 배우군..ㅎㅎㅎ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에일리가 불렀다. 아, 요즘 대세긴 대세구나. 이 노래가...^^
에일리 노래를 듣고 보니, 영어 구사 자유롭고, 알앤비 풍부하고, 가창력 끝내주는 박정현이 불렀어도 최고였겠다~싶네.



박혜나 씨 버전은 아직 정식으로 안 나온 건가? 찾기가 힘들다. 녹음 버전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음질이 안 좋다.


"Let It Go"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오늘밤 산위에 쌓인 눈은 하얗게 빛나고
Not a footprint to be seen
발자국도 보이지 않아
A kingdom of isolation and it looks like I’m the queen
고독의 왕국, 나는 그곳의 여왕같아
The wind is howling like this swirling storm inside 
바람은 소용돌이 치는 폭풍 안에 있는것 처럼 휘몰아쳐
Couldn’t keep it in, heaven knows I tried
견딜수가 없어, 하늘도 내가 노력했다는것을 알아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그들을 들이지마, 보이지도 않게 해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착한 소녀가 되어라 넌 항상 그래야만 해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감춰버려, 신경쓰지마, 그들이 알지 못하게 해
Well now they know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알겠지

Let it go, let it go
내버려둬
Can’t hold it back anymore
더이상 견딜수 없어
Let it go, let it go
내버려둬
Turn away and slam the door
돌아서서 문을 쾅 닫아버려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나는 그들이 뭐라고 하던지 상관안해
Let the storm rage on
폭풍이 사납게 몰아치도록 내버려둬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추위는 나를 괴롭히지 못해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s everything seems small
멀어지니 모든게 작아 보이는게 참 재밌어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한때 나를 지배했던 두려움들은
Can’t get to me at all
이젠 나를 괴롭힐 순 없어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줄 때가 됬어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 한계를 뛰어넘어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옳고 그른것도, 규칙도 나에겐 없어
I’m free
난 자유로워

Let it go, let it go
내버려둬
I am one with the wind and sky
난 바람과 하늘과 하나야
Let it go, let it go
내버려둬
You’ll never see me cry
너흰 절대 내가 우는 모습을 볼수 없을꺼야
Here I stand and Here I’ll stay
이곳에 내가 서있어, 이곳이 내가 머무를 곳이야
Let the storm rage on
폭풍이 사납게 몰아치도록 내버려둬

My power flurries through the air into the ground
내 힘이 흩날리는 눈 처럼 공기를 지나 땅으로 전해져
My soul is spiraling in frozen fractals all around
내 영혼이 얼어붙은 조각 사방으로 소용돌이쳐
And one thought crystallizes like an icy blast
하나의 생각은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처럼 확고해
I’m never going back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거야
The past is in the past
과거는 과거일뿐

Let it go, let it go
내버려둬
And I’ll rise like the break of dawn
새벽이 밝아 오는 것처럼 일어설거야
Let it go, let it go
내버려둬
That perfect girl is gone
그 완벽한 소녀는 이제 없어
Here I stand in the light of day
하루의 빛이 떠오르는 이곳에 나는 서있어
Let the storm rage on
폭풍이 사납게 몰아치도록 내버려둬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추위는 나를 괴롭히지 못해


며칠 동안 계속 이 노래들을 듣고 있다. 어린 안나가 눈사람 만들자고 조르던 귀여운 목소리가 귓가에서 재잘거린다. 다 떨쳐내고 자유를 찾은 엘사의 시원하면서도 외로운 노래가 얼마나 멋지던지!


한동안 픽사에 밀려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디즈니가 제대로 내공을 과시했다. 영화의 A부터 Z까지 마음에 들었다. 굳이 불만을 꼽는다면 급하게 만든 수문장 눈사람이 좀 성의 없게 그려졌다는 것?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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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연아 디아의 let it go
    from 그대가, 그대를 2014-02-06 01:42 
    진정 눈의 여왕같구나! 아름답다!디아의 렛잇고도 엄청나다. 음.. 효린 것보다 좋다. ^^
 
 
수퍼남매맘 2014-01-26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도 이 영화 봤는데 뜻도 모르면서 영어노래를 다 외우네요.
아이들은 더빙판 봤는데 자막판 다시 보고 싶다고 해요.
효린이 잘 부르긴 했는데 "let it go "를 " 다 잊어" 이렇게 부른다고 해요.
저도 애들 때문에 이 노래 들어보니 귀에 착착 감기네요.

마노아 2014-01-27 13:39   좋아요 0 | URL
아핫, 우리말 더빙판에서 엘사 역 맡은 배우가 '다 잊어'라고 부른다는 거군요.
효린이 그런가 해서 다시 들어봤는데 모두 let it go라고 불러서 응? 했어요.^^
생각해 보니 박혜나 버전에서 그렇게 부른 것 같네요.
들으면서 조금 이상하다 여기긴 했어요.
요새 이 노래가 사방에서 들리네요.
극장에도 가장 많이 걸려 있고요. 명절 특수도 누리겠어요.^^
 
솔로몬의 위증 2 - 결의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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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마지막에서 료코는 학교를 휩쓸었던 살인사건의 진실을 자신들의 손으로 파헤치겠노라고 결심했다. 의분에 가득차서 나온 말이었고, 어느 정도는 충동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신중한 아이는 한때의 감상으로 이런 커다란 일에 제 몸을 던지지 않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설명했고, 자신이 당한 부당한 대우를 역이용해서 유리한 패를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일종의 마음의 빚 덜기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심을 다해 변호인 측과 검사 측으로 나뉘어서 사건을 파고들다 보니 어느새 모두가 진심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제법 전문적인 느낌이 나는 법정인으로!


가장 시선했던 것은 변호인 가즈히코의 등장이다. 조토 제3중학교 학생도 아닌 가즈히코는 지난 해 크리스마스에 죽은 가시와기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같은 학원도 다녔던... 오이데 슌이의 변호를 맡으려 했던 후지노 료코가 검사가 되는 바람에 비어버린 자리를 가즈히코가 차지했다. 사건에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이데 슌지로부터는 객관적인 시선이 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변호인 낙점은 적절해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노다 겐이치가 '강 건너를 보고 온 눈'을 읽었을 때 그는 이 사건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1권 첫 시작에서 등장했던 공중전화 박스의 인물이 가즈히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사연과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그의 과거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똑똑하고 냉정한 아이가 한번씩 무너질 때를 생각하면 이번 재판은 오이데 슌지의 변호가 아니라 가즈히코의 변호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중2에서 중3으로 막 올라간 아이들, 그래봤자 열다섯, 열여섯인 아이들이 살인사건과 관련된 재판을 치른다. 어이없다고 치부하기 딱 좋은 상태지만,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아이들은 이 재판을 준비하면서 확실히 변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사실 재판을 시작하게 만든 후지노 료코가 제일 그랬다. 같은 반 학우였던 가시와기가 죽었을 때 반 아이들이 흐느껴 우는 걸 보며 짜증나 하던 게 그 아이였다. 평소에 전혀 친하지도 않았고, 한달 이상 등교거부를 하고 있어도 걱정조차 없던 사이였는데, 그 아이가 죽었다고 하니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본 것이다. 인정한다. 둘 모두 맞다고 본다. 후지노의 지적도 사실이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 그것도 나랑 동갑인, 그래서 아직 어린 학우가 자살했다고 한다면 이제껏 없던 관심도 새로 생겨서 안타깝고 가엾고 슬퍼질 수 있다. 그것 역시 인지상정이니까. 그러나 이후 반응은 다르다. 그때 눈물 한방울 안 흘렸던 후지노는 입시를 앞두고 이 사건에 끼기 싫어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진실에 도달하고자 애썼다. 이건 후지노가 우등생이어서 가능한 작업이 아니다. 진심으로 이 답답함을 깨부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재판의 당사자인 피고인 오이데 슌지. 불량 패거리의 리더이고, 학교와 친구들에게 참으로 민폐 덩어리인 아이였다. 그런 아이도, 만약 억울하게 살인자라는 오명을 쓴 거라면 마땅히 변호받아야 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야케 주리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가 고발장을 쓴 사람이라고 어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왜 그런 고발장을 썼는지, 정말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닌지... 


후지노는 재판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진실과 맞닥뜨린다. 머리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검사로서 자신의 증인을 믿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믿어야 하니까 믿는 게 아니라, 믿으니까 믿어지는 진짜 신뢰를 확인한다. 이 똑똑한 아이가 재판에서 어떤 활약을 할지 사뭇 기대가 된다. 반대편 변호인도 보통 인물이 아니니 말이다.


노다 겐이치의 성장도 눈부셨다. 이 아이는 그야말로 강 건너편을 보고 온 아이다. 그때 그렇게 절망에 몸부림치던, 그래서 무서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했던 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다는 변했다. 평소에 얌전하고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던 노다 겐이치. 성적으로 눈길을 끌거나, 말썽을 부려서 관심을 갖게 하는 아이가 아니라면 학교에서 집중받기 힘들다. 노다도 그랬다. 그런 노다의 장점들이 변호인의 조수 역할을 하면서 여려 면에서 관찰되었다. 세심하고 따뜻한 아이다. 노다가 변하니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변했다. 좋은 쪽으로. 그렇게 가족의 상처가 아주 조금씩 아물어가는 듯 보인다. 다행스럽다. 


망나니 아빠를 둔 오이데 슌지. 이 재판의 피고인인 오이데. 이 아이도 자랐다. 느리지만, 아주 더디게 천천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도 성장했다. 몸은 이미 어른이지만 마음은 자라지 않은 아이어른이었던 오이데도 변화를 보였다. 폭력 아빠 밑에서 폭력으로만 모든 걸 해결할 줄 알았던 상처입은 짐승 같던 이 아이가 주변 사람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맞을까 봐 걱정했고,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의 손길을 잡을 줄 알게 되었다. 흡사 늑대 소년같던 아이가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구사하는 것처럼 변했다. 이제 이 아이도 자신이 저질렀던 무수한 악행들과 찬찬히 마주할 때가 왔다. 6일에 걸쳐 이루어질 3권의 재판에서 오이데 슌지도 진정으로 구원받고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학생들은 어린대로 그 순수함과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어른은 어른대로 그 성숙함으로, 또 배려하는 마음으로 따스함을 느끼게 했다. 딸을 잃고 마음이 지옥이었을 마쓰코의 엄마는 재판의 검사를 맡고 있는 료코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네 입장이 이렇게 곤란해지는 건 마쓰코도 원치 않을 거야."

"제가 시작한 일인걸요."

"하지만 넌 아직 어린아이잖니. 도망쳐도 괜찮아."  -398쪽


일련의 사건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임 교장 쓰자키 선생님도 그랬다. 좋은 선생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속물이거나 무책임한 선생들이 많았던 학교에서 처음부터 온전히 학생들의 편이셨던 쓰자키 선생님은 이번에도 역시 존경의 눈빛을 보내게 만들었다. 제몫의 역할을 잘해내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동시에 기꺼이 방패도 되어주고 무기도 되어주는 그런 어른, 그런 선생님. 그런 분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참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강렬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것은 '억울함'이라고 들었다. 공감이 간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들고, 한겨울에도 열로 달아오르게 하는 감정이란 다름 아닌 억울함 아니던가. 그 억울함 때문에 수년 동안 거리 시위를 하고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이 작품 속 아이들도 그랬다. 어른들도 그랬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싶어했고, 그래서 진실을 밝히고 싶어했다. 이제 바로 그 진실을 밝혀낼 재판의 막이 오른다. 아이들이 치르는 교내재판이니 법적 효력도 없고, 얼마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모두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진실에 이미 많이 다가섰다. 이미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지금껏 드러났던 것과 전혀 다른, 혹은 허를 찌르는 새로운 진실과 마주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기꺼이 마음을 열고 참여하겠다. 진실은 후련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프기도 하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으니. 나 역시 겐이치처럼, 가즈히코처럼 제 그림자를 밟고서 지켜보겠다. 누구도 그림자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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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1-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걸 장르소설이라고 하나요?아닌가??
리뷰 읽으면 한번 읽어 보고 싶다 생각하다가도
이상하게 딱 손이 안가네요.

아..저는 언제 이렇게 잘! 그리고 성실하게 리뷰를 써볼까요. ㅜ..ㅜ


마노아 2014-01-24 13:28   좋아요 0 | URL
미스테리 혹은 추리물 장르소설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확실히 밤을 새워 읽을 만큼 흡인력이 있는 소설은 이쪽 장르 같아요.
감동 때문보다는 재미 때문이지만요.^^
읽는 데 워낙 오래 걸려서 리뷰 쓰고 나니까 막 후련해요.
3권은 며칠 쉬었다 읽어야겠어요.(>_<)
 
솔로몬의 위증 2 - 결의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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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시와기를 어른아이라고 생각했어."
몸은 어린아이인 채 머리만 어른이 된 녀석-
"반면에 오이데는 아이어른. 덩치나 하는 짓은 어른인데 머리가 어린애야. 정반대지."
어른아이와 아이어른은 어울릴 수 없다. 어른아이는 그 사실을 알지만, 아이어른은 모른다.-323쪽

"정말로 현명한 녀석은 시간과 타협할 줄 알아. 자기가 아이라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꼭 남에게 말하거나 일기에 쓰지 않더라도 알고는 있어. 아니까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거야."
-324쪽

"눈보라까지는 아니지만 이따금 웅웅대는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나. 특히 한밤중에. 눈 내리는 밤이 고요하다는 건 단순한 고정관념일 수도 있어."-349쪽

"이번 교내재판이 그애한테도 좋은 ‘자리’가 되면 좋겠구나."
어떤 ‘자리’일까. 거짓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무대?
"고발장을 쓴 그 여자애한테도."
가자미 선생이 가게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리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자기 말에 귀기울이고 믿고 편들고 함께 싸워주는 경험이 절실하게 필요할지도 몰라. 바로 지금 너희가 슌지 군에게 해주는 것처럼."-377쪽

"가시와기랑 노다는 같은 부류로 보였어.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어. 어쩌면 료짱도 그랬을지 모르고."
얌전하다. 눈에 띄지 않는다. 이렇다 할 장점이 없다. 인기가 없다. 여자애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겐이치는 속으로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하지만 개성은 달라. 그 당연한 걸, 학교에 갇혀 한데 섞여 있다보면 잊어버려. 선생님들도 그러지 않을까. 뭐랄까, 대충 뭉뚱그려버리지."-425쪽

"네가 미야케를 안 좋게 생각하는 건 알아. 얘기를 들어보니 별로 호감가는 애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알겠어. 그렇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말이라고 모두 거짓이라 단정하는 건 잘못이야.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오이데가 살인자 취급을 받았다는 걸 우리는 잊으면 안 돼."-434쪽

진실을 밝혀내려면 이런 서툰 연기가 필요해요. 오이데 슌지 패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들을 저질렀는가. 학교와 동급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쳤는가. 피해자 중 한 명인 미야케 주리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는가. 그런 것들을 다 알면서도 학교는 얼마나 수수방관했는가. 그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기 위해 우리 검사 측은 굳이 불리한 제비를 뽑은 거예요. 처음부터 진 싸움이라고요, 아버님.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면,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보고도 못 본 체한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 미야케 주리의 거짓말을 믿기로 했어요. 한 번쯤 온 힘을 다해 그애 편이 되어주기로 결심했어요. 우리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패배하는 쪽을 선택한 거예요.-5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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