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2025 호/2013-12-23

온수매트, 전기매트와 뭐가 다를까?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것 같지 않아?”

매년 겨울마다 하는 소리지만 2013년 겨울에는 참말로 그렇다고 느껴진다. 가을이 그 정취를 느낄 새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11월 초순부터 내린 함박눈을 보며 올 겨울 추위를 걱정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쌀쌀한 날씨를 견디기 위해 난방기구의 인기도 높아졌다.

특히 ‘전자매트보다 전기세가 싸고 전자파 걱정이 없다’고 알려진 온수매트는 그야말로 불티난 듯 팔려나갔다. 그런데 최근 온수매트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믿었던 온수매트에게 배신당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우선 온수매트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온수매트는 따뜻한 물을 매트 안쪽에 연결된 호스로 보내 온돌 효과를 얻는 장치다. 전기보일러와 매트가 조합돼 있으며, 보일러에서 물을 끓인 후 매트와 연결된 호스를 따라 온수가 순환되며 열기가 매트 표면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가정용 보일러가 난방을 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인 온수매트는 히터와 순환펌프, 물통이 들어있는 보일러와 매트가 분리된 구조인데 히터와 순환펌프가 매트에 내장된 제품도 있다.

이와 달리 기존에 많이 썼던 전기장판이나 전기매트는 열선을 이용한다. 전기 저항이 큰 전선으로 전류를 흘려보내면 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장판이나 매트에 적용한 것이다. 온수매트 속 호스 대신 열선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 방식은 장판이나 매트 속에 전류를 흘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자파가 나오게 돼 있다. 반면 온수매트는 더운 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자파 노출에 대한 위험이 적다.

문제는 일부 업체에서 전자파에 대한 부분을 과장해서 알린 데 있다. ‘전자파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문구를 쓰는 바람에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일부 온수매트가 ‘EMF인증(전자기장환경인증)’을 받기는 했지만, 이는 전기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장을 시험해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제품이라는 뜻이다. 이 인증은 전기장 10V/m이하, 자기장 2mG(밀리가우스, 전자파 방출량 단위)이하라는 기준을 통과했다는 뜻이지 ‘전자파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2013년 11월 20일 방송했던 MBC ‘불만제로UP’을 보면 이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작진이 단국대 전자파연구실과 함께 시중에 유통 중인 각종 온수매트에 대한 전자파 측정 실험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측정에 사용한 모든 온수매트에서 전자파가 발생했고, 일부는 전자파 인체보호수치(833mG)의 5배에 가까운 수치가 나오기도 했다. 광고 등에서 알려진 ‘無전자파’는 확실히 거짓이었다.

그런데 물을 사용하는 온수매트 어디에서 전자파가 나온다는 것일까. 전자파 측정 실험결과에 따르면 전자파가 발생하는 위치는 매트와 연결된 보일러 부분으로 밝혀졌다. 온수매트는 보일러 부분에서 물을 가열하기 위해 전기를 쓰고, 물을 공급해주기 위한 모터 펌프가 들어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전자파가 나오고 있었다. 매트와 보일러 사이의 간격이 가까울수록 전자파가 많이 발생됐다.

만약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아기나 노약자가 매트 보일러 가까이에 오래 있다면 전자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전자파에 오래 노출되면 호르몬 분비체계나 면역세포가 영향을 받아 두통이나 수면장애, 기억력 상실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온수매트에서 나오는 전자파 영향을 덜 받으려면 보일러와 매트를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놓고 사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밖에도 온수매트를 사용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화재 위험성에 대한 대비다. 일부 업체는 온수매트에 전기 열선이 없기 때문에 화재 위험성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이를 확신할 수는 없다. 비록 최근 1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온수매트 화재에 관한 접수는 없었지만 온수매트도 전기용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혹시 보일러가 작동 중에 넘어지거나 온도나 전류에 이상이 생길 경우 즉시 전원을 차단하는 게 좋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도 조심해야 한다. 만약 온수매트와 연결된 호스가 잘못돼 뜨거운 물이 새어나오게 되면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연결 부분도 종종 살펴야 한다. 오랫동안 외출할 때는 코드나 플러그를 뽑고, 두꺼운 이불이나 라텍스와 함께 사용하지 않는 것이 화재를 피하는 길이다.

열에 장시간 노출될 때 입을 수 있는 저온 화상도 조심할 점이다. 이에 대비해 수면 중에는 온수매트의 온도를 체온에 가까운 37도 이하로 설정하는 것이 좋다. 잠이 들면 온도 변화에 둔감해져 아무래도 저온 화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1시간 정도 매트를 데워뒀다가 남은 열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모터 순환 방식을 사용하는 온수매트는 빠르게 가열되는 대신 소음이 나는 걸 감안해야 한다. 이 단점은 자연 순환 방식을 선택하면 해결할 수 있다. 단 이 방식은 가열시간이 모터 순환 방식보다 조금 더 길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한 도구는 날로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유지비가 적게 들면서 보다 안전한 장치들이 계속 개발될 것이다. 그러나 특정 장치 하나가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한다. 기존 기술을 조금씩 보완하며 한 발씩 앞으로 나갈 뿐이다.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맹신하기보다 꼼꼼히 따져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조금 더 현명하고 안전하게 가전제품을 이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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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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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바 모르게 이기적인 인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뜨거운 심장의 인간과 개가 있다. 속죄와 구원 속에서 벅찬 감동이 따라왔다. 올해의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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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12-23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옷. 올해의 베스트입니까?
읽어 보고 싶은데 다들 제가 읽기엔 좀 힘들꺼라 겁을 줘서....
우선은 보관함으로~

마노아 2013-12-23 12:42   좋아요 0 | URL
오늘 새벽에 다 읽었는데 오래오래 먹먹했어요.
아무개님은 저보다 더 감정이입이 되실 테지만, 그래도 정말 매력적인 친구들이 나오니까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쿠키와 스타 그리고 링고! 이 친구들이 그리워요.(>_<)
 
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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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크리스마스 날 아침, 도쿄의 조토 제3중학교 교정에서 2학년 남학생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경찰과 유가족은 죽은 학생 다쿠야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 짓는다. 다쿠야는 이미 한달 간 등교 거부를 하던 중이었고, 부모는 아이가 우울해 하고 있었으며 평소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위태로워 보였다고 고백했다. 다쿠야가 학교에 다니던 때에 교내 불량배 학생 3인조와 마찰이 있었지만, 그것이 아이의 죽음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사건은 정리되는 듯했는데, 뜻밖에도 그 불량배 학생들이 다쿠야를 옥상에서 미는 것을 보았다는 고발장이 날아온다. 하나는 교장선생님께,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경찰인 다쿠야의 같은 반 여학생에게, 또 하나는 담임 선생님께.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된다. 교장 선생님과 경찰 측은 고발장의 내용은 신뢰하지 않았지만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다쿠야의 학급 학생들 위주로 조토 제3중학교 학생들과 면담 시간을 갖는다. 경찰과 학교 측에서는 고발장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윤곽을 잡아내고 결정적인 심증도 갖고 있지만, 어린 학생인지라 이걸 표면화시키지 않고 수습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담임선생님께 보냈던 마지막 고발장이 문제가 되어서 미디어까지 가세하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고 제2, 제3의 희생자를 내면서 학교 전체에 검은 오로라를 덮어 버렸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이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시신의 첫 발견자가 보냈던 크리스마스, 학생이 죽은 뒤 찾아온 학교의 혼란, 학부모들의 항의, 학교측의 대응, 그리고 그 사이사이 학생들이 갖고 있는 고민과 그것에 대한 나름의 해법이 불러온 더 끔찍한 사태 등등... 사건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면서 더 크게, 역시 천천히 확장하면서 그 외연을 넓혀버렸다. 진행이 느린 탓에 700여 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은 아주 힘들었다. 직장에 두고서 조금씩 읽다 보니 다 읽는 데에도 무척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생각해 보면 모방범이나 이유도 이렇게 힘들게 읽었다. 가장 화끈하게, 가장 뜨겁게, 그리고 가장 급하게 읽어내려간 것은 처음 만났던 '화차'였다. 그때만큼의 격한 울렁임은 줄었지만 여전히 미미 여사의 내공은 무시할 수가 없어서, 캐릭터가 하나 등장할 때마다, 그 캐릭터의 심연을 들여볼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자아낸다. 작가가 이토록 정교하게 그물을 짜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급해지는 마음만 좀 달래놓는다면 이 긴 이야기를 따라가며, 혹은 질러가며 이야기 속에 풍덩 빠지는 재미가 매우 크다. 


내가 아직 1권밖에 읽지 못한 관계로 다쿠야가 정말로 자살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쿠야의 가족, 특히 다쿠야 덕분에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던 형이 밝히는 에피소드를 보면 자살로 보인다. 이 어마무지하게 냉혹하고 독점력 강한 소년이 자신의 몸을 던져서 사람들에게 주었던 각인과 상처를 생각하면 그는 거의 천재적인 두뇌를 타고난 게 아닐까 싶다. 


형에게 맞은 뺨이 부어오르고, 세면실 바닥에 웅크려 앉은 그의 찢어진 입술에선 피가 흘렀지만, 그럼에도 사실 그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려움에 떨고, 울부짖고, 슬퍼하는 얼굴 바로 아래 그 엷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형을 바라보는 눈에 그 냉혹함이 깃들어 있었다.

발버둥쳐봐야 소용없어. 내가 이겼으니까.

형이 진 거야.

히로유키는 깨달았다. 진작 깨달았어야 하는 진실. 그가 설마설마하며 물러서고, 시선을 피하고, 그럼으로써 점점 더 자라도록 거들어버린 끔찍한 것.

이것이 녀석의 본성이다. -132쪽


몸이 약한 탓에 더 품안의 자식으로 싸고 돌던 다쿠야가 죽었으니 그 엄마의 상심이 얼마나 클지는 당연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엄마가 보여주는 병적인 집착은 거의 폭력에 가까웠다. 다쿠야가 아낀 러그를 그 방에 들어온 형이 밟았다고 적개심을 갖는 엄마라니! 심지어 아이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의혹을 갖게 되자 그 형한테 네가 죽인 건 아니지? 라고 묻는 엄마라니! 아, 이런 것도 엄마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심정이었다. 막장 부모는 다쿠야에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불량배 3인조의 우두머리 격인 오이데의 아버지는 어떠했던가. 많은 재산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협박하고 회유하고 윽박지르는 행태가 아주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막장 학생의 뒤에는 언제나 막장 학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달까. 


반면 이상적인 부모님도 계셨다. 학급의 반장을 맡은 료코의 아빠는 형사, 엄마는 부동산 감정사다. 두분 모두 바쁜 직장생활을 보내지만 한참 예민할 나이의 큰딸과, 사고뭉치 어린 여동생들에게 보여주는 다정함이 참 보기 좋았다. 열다섯이면 아직은 어리다고 보기에 충분할 텐데(게다가 이 작품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이니!)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을 내릴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는 신뢰의 부모님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선택권은 보장해주되 외부의 위험으로부터는 철적히 지켜주려는 본능도 잊지 않는다. 


마쓰코의 부모님도 그랬다. 뚱뚱한 탓에 오이데 패거리는 물론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괴롭힘을 당해 다이어트를 결심한 딸 아이에게 부모님이 전해주는 충고는 따스하고 믿음직했다. 


살을 빼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더없이 진지하게 마쓰코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아빠는 슬퍼보였다. 둘 다 마쓰코가 다이어트를 한다면 기꺼이 거들겠다고 약속했다. 언젠가 이런 때가 올 줄 알았다면서.

그리고 이런 말도 해주었다.

-하지만 마쓰코, 네가 살을 빼든 안 빼든 오이데와 이구치의 그런 행동은 잘못된 거야.

-네가 단지 그 두 사람에게 놀림받기 싫어서 살을 빼고 싶은 거라면 그것도 잘못이야.

-너는, 적어도 네 일에 대해서는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해.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기준으로 뭔가를 결정하면 안 돼. -578쪽


이런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마쓰코는 건강한 아이로 자랐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한 기운을 나눠줄 수 있는 씨앗을 스스로 제 안에 심어버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마쓰코의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이용하는 아이도 있었다. 미야케 주리. 안쓰러움을 느낄 만큼 심한 여드름 때문에 아이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건만, 무심하고 이기적인 부모들은 아이의 고민을 진지하게 여기지도 않고, 조금의 부지런함을 떨어 아이의 상태를 개선시켜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이기적인 부모 아래에서 이기적인 주리가 나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다. 착한 친구를 자신의 아래로 깔보고, 그 아이의 선함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채우려고 하고, 또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고도 죄책감마저 갖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폭력을 휘두르는 오이데 패거리도 위험하고 나쁘지만, 미야케 주리가 보여주는 폭력성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아찔한 위험을 동반한다. 또한 '말'이 가진 그 아득한 위험성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언론은 어떻던가. 모기 기자는 학교의 부당한 사후처리와 태도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여러 차례 이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잘못 짚었다. 그가 단두대에 올려서 가차 없이 머리를 치게 한 쓰자키 교장 선생님은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해주는 분이었다. 빛이 들지 않는 곳에 위치한 아이들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첫째도 둘째도 학생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교육자였다. 그러나 그가 언론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제기한 의혹은 학교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고, 더 큰 구덩이로 밀어붙이는 역할을 했다. 그걸 제대로 간파하고 휘둘리지 않으려고 정면도전한 료코의 반격이 1권의 끝을 장식했는데 무척 짜릿한 쾌감을 주기까지 했다. 역시 똑부러지구나, 료코!


당신은 단 일 초도 우리 편이 되어준 적 없어요. 우리에게, 우리 학교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긴 해요?”

말을 할수록 몸이 떨렸다. 료코는 그 떨림을 억누르려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모기 씨가 우리 마음을 알 리 없어요. 미야케의 마음도, 아사이의 마음도, 하시다의 마음도 전혀 몰라요. 그저 우리 모두를 이용해 자기한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고, 자기가 싸우고 싶어서 안달난 적과 싸울 무기로 삼으려는 것뿐이잖아요!” -690쪽


지나치게 예민하고 그래서 몸이 약한 엄마를 둔 노다 겐이치의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가족이 건강하지 못한 것도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당연하다. 부모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자꾸 뒤흔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한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할 때의 긴장감이 어마어마했다. 아이가 맞닥뜨린, 아이가 선을 넘겨서 목격하고 만 자신의 또 다른 얼굴에 얼마나 절망했을지, 얼마나 무서웠을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본의아니게 웃자란 아이들,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미 그 마음에는 비정상적으로 자라버린 마음이 불안하게 자리한 애처로운 아이들을 부모가 만들어 낸다. '부모'라는 존재가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산이며 하늘로 존재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했다. 


담임 교사 모리우치라는 캐릭터도 할 말이 참 많다. 이 여자의 위선과 무책임함은 진절머리가 나지만, 그래도 그녀가 당한 억울함에는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찬물을 씌운 인물의 부당한 복수에 대해서 말이다. 자신이 누구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누가 미운지에 대한 표적을 잘못 세운 인물 덕분에 사건은 이렇게 커지고 말았다. 정작 자신은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고, 피해를 입은 모리우치와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모든 사람이 이 엉뚱한 판 위에서 제 의사와 상관없이 춤을 추고 있다. 애처로울 지경이다.


자, 이제 사건은 던져졌고, 배경 설명도 모두 끝마친 셈이다. 작가는 이렇게 커다란 판을 벌려놓고, 이제는 마치 자신이 창조해낸 주인공더러 알아서 뒷 이야기를 꾸려보라고 뒷짐지고 구경하는 기분이 든다. 작가의 창조물들은 엄청난 불행 속에 풍덩 빠져버렸고, 이제는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입시를 앞두고 있어 시간도 없고 마음도 급하고, 죽은 아이는 나랑 친하지도 않았고, 여러모로 이 모든 것에서 이제는 발을 빼고 잊고 싶었지만, 줄을 이어 벌어지는 사건들이 아이들의 발목을 자꾸 잡는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간접적으로는 이 모든 사건들의 당사자이기도 한 아이들의 손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숙명처럼 되어버렸다. 피할 수 없으니 바지 걷고 뛰어들게 된 것이다. 


해가 바뀌어 이제 겨우 열여섯. 아직도 많이 어린 이 아이들이 이 엄청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 갈지,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향해 다가갈지 기대가 되고 염려도 된다. 그래도 미미 여사니까, 이 아이들을 가볍게 보지 못하게 한다. 어려도 진실을 알아보는 눈이 분명 이들에게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런 마음으로 아직도 한참 남은 뒷이야기를 겁먹지 말고 시작해보련다. 손목은 좀 아프겠지만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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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12-2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연말 잘 마무리하고 계세요? 한 해 수고하셨어요. 고마워요^^

마노아 2013-12-22 23:1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반가워요!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어요. 한해의 마무리가 벅차네요.
한숨 돌리고 차분히 시간 보내야겠어요. 프레이야님 올 한해도 고마웠어요. ^^

2013-12-21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2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5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3-12-25 14:14   좋아요 0 | URL
네네, 우리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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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에게 맞은 뺨이 부어오르고, 세면실 바닥에 웅크려 앉은 그의 찢어진 입술에선 피가 흘렀지만, 그럼에도 사실 그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려움에 떨고, 울부짖고, 슬퍼하는 얼굴 바로 아래 그 엷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형을 바라보는 눈에 그 냉혹함이 깃들어 있었다.
발버둥쳐봐야 소용없어. 내가 이겼으니까.
형이 진 거야.
히로유키는 깨달았다. 진작 깨달았어야 하는 진실. 그가 설마설마하며 물러서고, 시선을 피하고, 그럼으로써 점점 더 자라도록 거들어버린 끔찍한 것.
이것이 녀석의 본성이다.-132쪽

그렇다. 그애라면 마리코의 행동에 짜증을 냈을 게 틀림없다. 마리코만이 아니다. 마리코로 대표되는 위선. 순간의 기분에 휩쓸린 슬픔. 그애는 그런 걸 경멸할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던 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난데없이 신성시된다. 갑자기 모두의 마음을 끌어모은다. 다함께 공통의 죄의식을 떠안는다. 그리고 그 죄의식이 구체적인 비난으로 닥쳐오지 않으리라고 밝혀지자 울면서 안도한다.
-157쪽

그날 밤의 진상을 엄마가 알 리 없다. 맹세코 엄마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아빠가 약속했다. 그런데도 겐이치는 이따금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겐이치를 조금 무서워한다는 것을.
나는 한 번 아빠와 엄마를 죽이려 했다. 강을 건너려다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그 건너편을 보고 말았다.
그곳에는 아마 엄마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을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두 번 다시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본 것을 잊을 수는 없다. 내 몸은 여전히 작은 새처럼 아담하지만 안은 맹수처럼 변했다. 엄마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리라. 난 맹수를 낳지 않았어, 작고 귀여운, 내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연약한 카나리아를 낳았다고, 하면서.-560쪽

마쓰코를 놀린 것은 오이데 패거리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물꼬를 트자, 그만큼 심하지는 않아도 반 아이들이 하나둘 똑같이 놀리기 시작했다. 먼저 나서서는 못해도 누군가가 시작하면 덩달아 놀려댔다. 그리고 오이데 패거리가 마쓰코에게 흥미를 잃자 함께 놀리던 다른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뗐다.
반면 많이 친하지는 않아도 마쓰코가 당한 일에 화를 내거나 걱정해주는 반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도 가지각색이었다. 마쓰코를 괴롭히거나 놀리는 아이들을 야단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그냥 못 본 척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마쓰코가 시달려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선생님도 있고, 가만있지 말고 너도 받아치라며 화를 내는 선생님도 있었다.
선생님도 완벽하지 않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전부 알지는 못한다. 선생님도 싫은 일은 하기 싫어하고, 성가신 것은 피하려 한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을 학생들이 오히려 잘못을 분명하게 인식할 때도 있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할 때도 있다.-580쪽

"학교에서 마쓰코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나가서 분명히 밝힐 겁니다. 미야케라는 아이는 살아 있어요. 마쓰코는 죽었습니다. 살아 있는 아이가 죽으면 곤란하다고 해서 말이 없는 죽은 아이에게 전부 덮어씌운다면 저도 가만있진 않을 겁니다."-628쪽

"당신은 단 일 초도 우리 편이 되어준 적 없어요. 우리에게, 우리 학교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긴 해요?"
말을 할수록 몸이 떨렸다. 료코는 그 떨림을 억누르려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모기 씨가 우리 마음을 알 리 없어요. 미야케의 마음도, 아사이의 마음도, 하시다의 마음도 전혀 몰라요. 그저 우리 모두를 이용해 자기한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고, 자기가 싸우고 싶어서 안달난 적과 싸울 무기로 삼으려는 것뿐이잖아요!"-6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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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20 호/2013-12-16

[FUTURE] 2023년, 의료 한류가 세계를 휩쓴다!

 

2013년 KISTI의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미래기술은 KISTI에서 발간한 <미래기술백서 2013>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개발 중이며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기술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미래기술이 상용화 된 10년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또 이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장수대학병원 레지던트, 안철진은 감미로운 알람 음악을 들으며 잠을 깨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젯밤 늦게까지 당직 근무를 한 탓인지 몸이 쉽게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지각할 수 없다는 각오로 닥터 안은 지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용무를 보고나자 홀로그램을 통해 사이버 간호원, 비너스가 그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주기 시작했다.

“현재 주인님의 요중 포도당은 음성이며 간밤의 과로로 인해 알부민과 유로빌리노겐이 약양성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아질산염과 잠혈은 음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정상 상태로, 별도의 검진을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닥터 안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바라보자, 거울 속에서 비너스가 또 나타나 안구상태를 체크했다.

“현재 주인님의 시력은 좌 1.0, 우 1.0이며 평균안압은 좌 20, 우 20으로 어제에 비해 조금 높아졌지만 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2023년, 우리나라는 IT, BT, NT 분야의 지속적 융합 연구로 유비쿼터스 맞춤의학이 크게 발전했다. 이에 의학의 패러다임이 치료의학보다 예방의학 쪽으로 옮겨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데이터베이스 기반 생체계측 및 건강 모니터링 시스템¹⁾이다. 이는 생체 이식형 생체징후 모니터링 기술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건강 이력을 측정하고, 이를 이용해 건강 이력을 관리하고 에이전트하는 기술이다. 사이버 간호원이 언제 어디서나 환자의 상태를 관리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기술의 한 예다. 특히 과도한 음주나 흡연, 과로에 노출돼 있고, 바빠서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병원으로 출근한 닥터 안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를 켠다. 그가 맡은 분야는 글로벌 화상진단 파트. 화상통신을 통해 전 세계 환자들의 경과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곳이다. 닥터 안이 맡은 지역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인데, 지금은 배라파스키 환자를 화상으로 진찰하고 있다. 이 환자는 위암 3기로 수술을 받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려다가 의료기술이 발달한 대한민국으로 선회한 케이스다. 그의 선택대로 한국에서의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암은 재발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경과를 알기 위해 무작정 한국에 머무를 수는 없는 상황.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수대학병원 측에서는 원격 진단 및 치료기기 개발 기술²⁾을 도입해 환자의 편의를 돕고 있다.

2023년, 의료 한류가 세계를 휩쓴다

위암 3기였던 배라파스키 환자는 초음파를 암에 집중적으로 조사해 암 조직을 정확히 괴사시킴으로써 수술하지 않고 암을 치료하는 방법인 수술 없이 종양을 치료하는 초음파 기술³⁾을 사용했다. 이 시술은 암을 칼로 도려낸 것 같아 ‘하이프 나이프’라고도 한다. 수술을 마친 후 배라파스키 환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달 후 닥터 안은 원격 진단으로 그의 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실시간 영상과 계기 모니터로 환자를 확인한 닥터 안은 더 이상 암이 발전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약물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한 달 후에 경과를 다시 보기로 했다. 배라파스키 환자도 결과에 안심한 듯 여러 차례 화상을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상위 5%의 인재들이 꾸준히 의예과를 지원한 덕에 2023년 대한민국의 의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거기다 IT, BT, NT의 꾸준한 융합으로 우리 의료기술과 서비스는 세계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어려운 수술은 먼저 한국에서 받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 그리고 원격 진단을 통해 꾸준히 케어 받는 등 독특한 환자 관리 서비스에 전 세계인이 매료되고 있다.

2023년, 한류는 엔터테인먼트에 이어 의료 분야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미래 기술]

1) 데이터베이스 기반 생체계측 및 건강 모니터링 시스템 : 생체 이식형 생체징후 모니터링 기술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건강 이력을 측정하고, 이를 이용해 건강 이력을 관리․에이전트하는 기술. 개인 맞춤형 치료를 위해 유전자 정보와 기존 사례 DB를 기반으로 의료 치료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은 2017년쯤 기술개발이 완료되고 2020년 내외 사회적으로 상용화될 전망. 기술의 예상 실현 시기는 5~6년 후.

2) 원격 진단 및 치료기기 개발 기술 : 환자진료 개선 등을 목적으로 전자적인 통신망을 통해 어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전달된 의료정보를 활용하는 기술. 홈케어는 U-헬스 중 가장 빠르게 발전한 분야로 현재 실용화가 이뤄지고 있고 모바일 헬스 케어 및 웨어러블 헬스 케어에 대한 연구개발도 활발히 진행 중. 기술의 예상 실현 시기는 1~2년 후.

3) 수술 없이 종양을 치료하는 초음파 기술 : 초음파를 암에 집중적으로 조사해 암조직을 정확히 괴사시킴으로써 수술하지 않고 암을 치료하는 암 치료기기. 암을 칼로 도려낸 것 같아 ‘하이프 나이프’라고도 지칭. 종양 초음파 기술은 이미 국내외적으로 기술개발이 상당 부분 이뤄져 있고 해외의 경우 치료법으로 사용되고 있음. 기술의 예상 실현 시기는 3~4년 후.

참고 : <KISTI 미래백서 2013>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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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12-1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은 의료민영화부터 막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