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땀 세계여행
레지나 글.바느질 / 한겨레아이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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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내가 받은 아주 황당한 질문이 있다.
"북한이 어디에 있나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의 질문이었다. 난 잠시 당황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가, 아님 장난을 치는 것인가?
주변 아이들은 그런 바보같은 질문이 어디 있냐고 마구 구박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몰라서 물을 수는 없다고 여긴다.
지난 일년 동안 지도를 얼마나 많이 들여다봤는데... 아니더라도 남한에 살면서 북한을 모른다는 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
하여튼!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도 읽기에 더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홀로 다짐했다.
알고 보면 지도 보기도 엄청 재밌다는 걸 어린이들도, 청소년들도 모두 알아줬으면 한다.
물론! 지도보기를 좋아한다고, 즐겨한다고 해서 길치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그건 아니다. 내가 안다..;;;;

이 책은 좀 특별하다. 기존에 여러 나라를 소개하는 책들은 많았으니, 정보로 차별화를 두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으로 승부를 보았다. 그것도 무려 '바느질'로!
모두 열다섯 나라를 소개했는데, 다 사진을 찍자니 usb 전송이 안 되는 지금 내 컴퓨터 상황으로는 리뷰 쓰다가 성질 버릴 것 같아서 적당히 줄였다. 그래도 무려 10개 국이다. 하하핫! 고백하자면, 국기가 예쁜 나라들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첫 등장은 스웨덴이다. 아, 렛미인의 나라!! 복지국가의 나라!
이 추운 나라의 사람들이 이렇게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좋아한다는 게 뜻밖이기도 하고, 동시에 잘 이해가 되기도 한다. 추우니까 바깥 활동보다는 실내에서 이런 소일거리를 즐겼던 게 아닐까? 아무튼 달라헤스트 예쁘다. 방문에 걸어두고 싶다. 아니면 거울 앞이나 차 유리창에 달면 고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음성적일 것들이 이곳에서라면 양성화되어 있다는 것! 일단 그게 제일 먼저 생각났다. 풍차도 떠오르고 반 고흐와 플란더스의 개도 생각난다. 아로아 신발도~ 정식 이름은 '클롬펜'이라 부르는 나막신이라고, 나무를 통으로 깎아 만든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무척 편해 보였는데 나무 신발이 과연 편할까 싶다. 양말을 신으면 괜찮으려나.
풍차 그림도 예쁘다. 천을 덧대어서 표현했다. 이런 풍차가 새겨진 수영복이 갖고 싶었는데...
레이스와 비즈로 꾸민 국기가 곱다. 실제 사이즈는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맥주, 소시지, 자동차, 베토벤과 바흐, 베를린 장벽과 통일, 히틀러와 유대인 학살, 그리고 철저한 사과... 독일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다. 할 이야기가 많은 나라다.
독일의 국기는 독일과 함께 연상되는 '딱딱한' 느낌이 강한데, 비즈와 바느질로 꾸민 국기는 보다 따스한 느낌이다.
검정은 억압에 대한 저항,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 노랑은 진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장식에 빠지지 않는 레브쿠헨, 영어로 진저브레드. 생강과 벌꿀을 넣어 반죽하고 납작한 사람 모양으로 만든다고...
아핫, 그럼 장식한 다음에 나중에 먹는 건가? 갑자기 달달한 쿠키와 커피가 마시고 싶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나라 오스트리아! 클림트와 쉴레, 훈데르트바서가 태어난 나라 오스트리아!
가보지 못했지만 오스트리아는 어쩐지 미적 감각이 아주 출중한 나라일 것만 같다.
레이스와 비즈로 만든 오스트리아 국기는 두가지 색상만 사용했는데도 빼어나게 예쁘다.
최근 몇 년 동안 다녀왔던 전시회 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감탄했던 것이 바로 '훈데르트바서'전이었다.
기념품 사러 예술의 전당에 한번 더 다녀올 만큼 좋았던 게 떠오른다.
환경과 자연을 함께 사랑하면서 예술적 성취도 놓치지 않았던 훈데르트바서는 진정한 욕심쟁이, 우후훗!

보통 직사각형이기 마련인 국기에 비해 스위스 국기는 정사각형이구나!
스위스하면 뻐꾸기 시계도 떠오르고, 맥가이버 칼도 떠오르고, 바티칸 용병도 생각난다.
그리고 알프스 산도 빠질 수 없지! 천천히 진행하는 산악열차를 타보고 싶다.
아마도 절경일 풍경을 빠르게 지나치면서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인도는 땅이 무척 넓은데도 많은 인구 때문에 생각 외로 인구 밀도가 꽤 높다. 물론, 더 좁은 땅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우리나라보다는 넓직하게 살고 있지만, 아무튼 예상과 달리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다.
넓은 땅과 많은 인구! 수많은 언어와 수많은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
성장 잠재력이 아주 크지만 같은 이유로 분란의 여지도 많아 보이는 나라 인도.
그렇지만 역시 가보고 싶은 나라다.
나의 오랜 친구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왔는데, 가장 좋았던 해외 여행은 첫 여행지였던 인도를 꼽는다. 두달이라는 기간을 보냈기도 하고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발품을 팔면서 가장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좋은 인연도 만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다고...

인도 국기를 자세히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운데에 있는 수레바퀴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혹은 물레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인도스럽다. 비록 지금 인도에는 불교도보다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더 많지만...
아, 인도 하니까 이 밤중에 카레빵이 먹고 싶다. 운동 가기 전에 떡볶이로 저녁을 때웠더니 오밤중에 뱃속에서 요동을 친다.
타지마할도 천으로 예쁘게 묘사했다. 이렇게 아기자기해 보이지만 실물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겠지?
이 그림은 머리 맡에 붙여놓아도 예쁜 장식이 될 것 같다. 볼수록 마음에 든다.

싱가포르에는 말레이시아로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 현지 여자들과 결혼해 정착하면서 이룬 페라나칸이라는 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의 종교와 말레이시아의 의복, 유럽식 집 등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있다고...
엄격한 법 집행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그 덕분에 아주 깨끗한 거리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하는데, 너뭄 강박적으로 법을 집행하다 보면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꽤 받을 것도 같다.
중국에서 먹은 중국 음식은 아주 맛이 없었는데, 어쩐지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면 우리 입맛에 맞는 중국 요리를 먹을 것만 같다.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에 가서도 현지화된 맛있는 중국 요리, 아니 싱가포르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든다.
예쁜 사탕가게가 많다는 게 의외다. 이렇게 더운 나라에서! 목 안 마르려나???

캐나다를 고른 건 순전히 단추로 만든 국기 때문이다. 레이스 한 가운데에 박혀서 단풍잎을 묘사하고 있는 빨간 단추라니! 이 겨울에,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 시점에서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내 인생의 소설 다섯 안에 늘 끼게 되는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미안! 몽고메리 아줌마. 빨강 머리 앤보다 헌정도서인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가 더 감동적이었어요.ㅜ.ㅜ
아무튼! 빨강 머리앤은 영원한 고전이다. 아, 사랑스러운 앤!
요새도 가끔씩 우리가 보던 그 애니메이션 해주려나? 다시 해준다면 다시 보고 싶다.

브라질 하면 축구와 리우 카니발을 먼저 떠올리기 일쑤지만, 그래도 브라질의 최고 상징은 아마존강과 지구의 허파로 통하는 밀림이 아닐까? 물론, 이 강이 브라질만 통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큐의 한 획을 그었던 '아마존의 눈물'도 떠오른다. 올해는 어디서 하지? 광고를 보았는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난다. 3D로 찍었다는 것도 같고.... 아닌가??

아무튼! 풍부한 삼림자원을 뜻하는 초록 바탕과, 광물자원을 표현한 노란 마름모. 그리고 파란색 동그라미에 그려진 27개의 별은 브라질을 이루는 26개 자치구와 1개의 연방자치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흰색 띠에는 포르투갈어로 '질서와 진보'라고 씌어 있다.
왜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는지, 남미의 다른 나라들은 스페인어를 쓰는지에 대해서 얘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아, 그리고 내년 월드컵도 브라질이지? 역시 브라질이 핫하다!

내가 고른 마지막 나라는 이집트다. 아무래도 내가 다녀온 곳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갔다.
국토의 90%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구밀도가 꽤 높은 나라다.
모두 나일강 덕분이다. 문명의 젖줄 역할을 해준 나일강!
그 문명을 기록하게 해준 파피루스.
신비롭고 거대한 오랜 유적들.
이 나라에서는 천년 쯤 되는 돌쯤은 눈길을 끌지 않는다고...;;;;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투탕카멘 등등... 해줄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이럴 때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이 '먼나라 이웃나라' 되겠다.

내가 처음으로 맞춰 본 1000피스 퍼즐은 세계지도였는데, 지도 아래 쪽에 세계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안 그래도 자잘한 그림을 다시 자잘한 조각으로 맞추었으니 그 조각조각들도 국기의 모양을 익히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액자 앞을 지날 때 한번씩 들여다 보곤 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국기들을 더 유심히 볼 것 같다.

한땀한땀 따라가며 해보는 세계 여행! 비록 15개 나라에 불과하지만, 각 나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끄는 데는 충분할 듯하다.
펠트 천 위에 레이스와 비즈, 단추 등으로 장식한 그림들을 보면서 나만의 작품을 구성해보면 더 대단한 작품이 나올 지도...

이렇게 지도를 곁에 두고 꿈을 꾸다 보면, 언제고 내 발로 직접 이곳들을 돌아보며 다닐 날도 올 것이다. 같이 꿈꿔 보자.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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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2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6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3-12-13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아아~~ 호빗2를 아이맥스로 볼 수 없네요. 그대신 메가박스 3D ATMOS를 예매했어요.

마노아 2013-12-16 00:01   좋아요 0 | URL
cgv에서 4dx로 볼 생각이었는데 극장에 걸리지를 않네요. 저도 메가박스나 롯데 쪽 알아봐야겠어요.
아, 카르멘 보고 오셨나요? 저 보고 왔는데 생각 외로 많이 재미가 없네요. 흑흑...ㅜ.ㅜ

BRINY 2013-12-17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르멘 1월 관극 예정인데 류정한에게 맞는 역이 아니라고 해서 저도 걱정이에요. 라만차를 볼 걸 그랬나하구요. 다행히 BC카드 할인으로 예매하긴 했는데요...
전 위키드도 별로였네요. 산만했어요.

마노아 2013-12-18 12:46   좋아요 0 | URL
류정한에게 안 어울리기도 하지만 일단 극 자체가 좀 별로예요. 상당히 '올드'하답니다...;;;
저는 1월에 위키드 예매해 놨는데 아 어쩜 좋아요..;;;;
우리 이번 연말 연초 공연 대진이 좀 별로네요. 올해의 시작은 레베카로 아주 화려했는데 말이에요.^^;;

BRINY 2013-12-1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베카와 엘리자벳이 최고였죠...다른 거 안보고 그것만 더 볼 걸 그랬어요.
근데 류정한이 프랑켄슈타인을 한다더라구요. 이건 괜찮을 거 같아요!

마노아 2013-12-18 14:59   좋아요 0 | URL
그쵸? 그 두 편이 갑이었어요!
아, 그런데 류정한이 프랑켄슈타인을 하는군요! 오, 이거 신선하네요. 기대가 됩니다. 검색 좀 해봐야겠어요.^^

BRINY 2013-12-1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에 박은태와 한지상도 이름 올렸더라구요. 배역이 완전 궁금해요~
전 올해에 류정한 나오는 작품도 3편 봤지만, 한지상 나오는 것도 3편 봤네요.
지저스크라이스트 안 보러 간게 한이 될 뿐입니다.

마노아 2013-12-20 08:47   좋아요 0 | URL
류정한에 박은태, 안유진-까지 예매를 맞추려고 했는데 같이 보는 언니가 멀리 지방에서 와서 차 시간 때문에 서지영으로 바꿨어요. 서지영 싫은데...;;;
뭐 어쩔 수 없죠.^^
저는 저번에 갈라쇼에서 한지상 잠깐 봤어요.
예전에 임태경 버전 지저스를 재미 없게 봐서 또 보고 싶진 않더라구요.
저는 이번에 JK김동욱 버전의 영웅 보고 싶은데, 예전에 영웅도 그닥 재미 없게 봤던 터라 고민하고 있어요. 하하핫^^ㅎㅎㅎ

BRINY 2013-12-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켄 예매하셨군요!
다들 오픈 첫날 출동하셨나봐요.
프랑켄 여자배우들은 끌리는 사람이 없지만, 남자배우들은 기대 가득이에요.
가이드송 찾아서 들어보니, 류정한, 박은태에게 어울리겠더라구요.
저도 꼭 그 2명에 맞춰서 예매하려구요.
2월에 라만차도 봐야겠구, 연달아 쏟아지는 공연에 바쁘네요~

마노아 2013-12-20 13:10   좋아요 0 | URL
보통 오픈 첫날에 예매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어제는 때마침 그 시간에 공강이었어요.
게다가 오픈한다고 문자도 날아오구요. 그래서 거의 충동적으로 예매!
하핫, 두 배우의 케미를 기대해 보자구요.
전 예전에 안유진 헤드윅을 재밌게 보아서 이번에 만나고 싶었는데 연이 안 닿네요.
서지영은 몬테크리스토였나? 어디서 보고 굉장히 별로였는데 제목도 기억이 안 나네요. ;;;;;
우리 겨울 방학하면 전시회 하나 같이 봐요. 뭐 있나 슬슬 찾아봐야겠어요.^^

순오기 2013-12-2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땀 한땀 장인의 정신으로 쓴 포토리뷰~ 공감 꾹! ^^

마노아 2013-12-22 23:2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번 달에는 그림책도 거의 못 봤어요. 어휴, 얼른 시간 좀 내야겠어요.^^
 

   FOCUS 과학

제 2015 호/2013-12-09

주파수 전쟁이 벌어진다…“700MHz를 확보하라”

‘주파수’ 확보를 놓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주파수 전쟁’은 주로 이동통신회사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국가의 공공재인 주파수를 기업에 할당하는 방법으로 2011년부터 ‘경매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통신회사들은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원하는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기도 했다. 일단 좋은 주파수만 손에 넣으면 타사보다 더 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인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에 쓰던 주파수와 비슷한 대역을 낙찰 받으면 시설투자비도 아낄 수 있다.

이러한 ‘주파수 대전’에 최근 방송업계들도 뛰어들었다. 새롭게 등장한 고화질 방송, 울트라HD(UHD) TV 때문이다. UHD TV는 현재 화질이 가장 좋다는 풀HD TV보다 화소(화면을 전기적으로 분해한 최소 단위의 점. 화소수가 많을수록 해상도가 높은 화면을 얻을 수 있다)의 숫자가 4배나 더 많아 영화관용 디지털 화면과 비슷한 해상도를 자랑한다. 이 정도의 해상도를 30인치 크기의 TV로 보면 실물과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다. 문제는 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송보다 훨씬 많은 전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TV 방송을 가정까지 보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지상파 방송처럼 방송국 안테나를 통해 보내거나, 인공위성을 이용하거나, 이용자의 집까지 케이블을 까는 것이다. 케이블 방식은 직접 선을 이용해 송출하기 때문에 용량이나 속도 면에서는 다른 두 방법보다 편하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에게 UHD-TV를 보라고 유료 케이블을 까는 건 다소 어폐가 있다. 앞으로 UHD-TV가 점점 더 보편화 되면 이를 전파에 실어 보낼 대역을 확보해야 한다.

전파란 고속도로와 같다. ‘한 시간에 얼마나 많은 차를 보낼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건 제한속도보다는 도로의 너비다. 16차선 도로와 2차선 도로에 지나갈 수 있는 차량 숫자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즉 이동통신기기의 데이터 전송속도는 주파수보다는 대역폭(전파의 폭)이 중요하다.

AM 라디오와 FM 라디오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AM 방송은 잡음이 많고 음질도 좋지 못한데 반해 FM 방송은 생생한 스테레오 음질로 깨끗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FM 방송이 주파수가 더 높아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대역폭 때문이다.

예를 들어 KBS2 FM 라디오는 주파수로 89.1MHz를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89.0~89.2MHz를 쓴다. 즉 0.2MHz의 폭만큼 넓은 길에 전파를 보내는 것이다. 반면 AM 라디오의 대역폭은 0.009MHz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겨우 사람 목소리 정도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도 대역폭 확보가 중요하다. 고용량 사진, 동영상 등을 주고받아야 하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데이터 요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파수는 어떻게 배분하는 걸까. 나라마다 주파수별로 다양한 전파기기를 사용해야 하니 국제적으로 쓸 수 있는 주파수의 대역도 서로 약속을 해서 정한다. 우선 주파수가 0.3MHz 이하로 낮은 초장파, 장파 등은 해상통신, 표지통신, 선박이나 항공기의 유도 등 비상용으로 많이 쓰인다. 0.3~800MHz 정도의 주파수는 단파방송, 국제방송, FM 라디오, TV방송 등에 고루 쓰인다.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 몫으로 할당되는 건 보통 800MHz부터다. 3GHz(기가헤르츠, 1GHz= 1,000MHz) 이상이면 직진성이 매우 강해져 인공위성이나 우주통신 등 특별한 경우에만 쓰인다. 결국 개인용 이동통신에는 약 800MHz~3.0GHz 사이의 전파만 쓰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이 주파수 내에서 어떻게든 최대한 서비스를 해야 하는 ‘제약’에 묶여 있다.

그런데 최근 이 규칙에 변동이 생길 여지가 생겼다. 이동통신 업계들은 구식 아날로그 TV 방송 종료 후 정부가 회수해서 가지고 있는, 700MHz 인근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한다면 전파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방송과 통신업계 양 진영에서 연달아 세미나를 개최하며 ‘700MHz 주파수는 우리가 사용해야 한다’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급속한 스마트폰 보급과 4세대 이후 이동통신 서비스 등장으로 새로운 주파수 대역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대로 방송통신업계에서는 ‘아날로그 TV 방송에 쓰였던 700MHz대 주파수를 디지털 방송용으로 할당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양측의 논리가 충돌하는 지점은 ‘공익성’이다. 방송 측은 주파수가 공공재인 만큼 자신들이 활용해야 더 국민편익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TV 같은 뉴미디어는 훨씬 고도의 영상압축 기술이 필요하기에 반드시 여유 주파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통신사 측은 더 값싸고 좋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다며 경제성을 무기로 내 세우고 있다. 정부는 주파수를 기업들에게 판매하지 않고 임대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주파수 전쟁’은 이동통신과 방송 시장이 새로운 기술로 재편될 때마다 벌어질 전망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2013년 말까지 3,162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1년 1월 기준 5,496TB(테라바이트, 1TB=1,024GB)였던 국내 무선 데이터 전송량은 2015년에 8.7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주파수는 한정된 자원이다. 전파가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공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효율적이면서도 대중을 위한 정부의 전파활용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 : 전승민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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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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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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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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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어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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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절판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한다. 울게 하고 웃게 한다.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더 나은 환경과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다음,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해서 한 걸은 내딛게 하는 건 책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40쪽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섭고 아프기까지 했다. 캐서린을 따라 겁이 났지만, 스튜어트 덕분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문을 여러 차례 점검하며 숫자를 셀 때 나도 같이 세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걸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자신의 집이 미묘하게 바뀐 걸 느낄 때, 나는 거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곳으로부터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러려면 빨리 읽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결국 그녀가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까 강박증을 이겨내는지, 출소한 전 연인과 맞서 싸우는지, 이 모든 과정들을 지켜보고 싶었다.-80쪽

가을 선거에서 시장과 맞붙게 될 호적수가 지난주에 앤젤리나 V.리코에서 앤젤리나 V.아리코로 개명했다. 알파벳 순으로 기호 1번을 배정받기 위한 실수였다. 하지만 어제 로코 D.카로차 시장이 로코 D.아아아아카로차(aaaaCarozza)로 이름을 바꿨다. (83쪽)

"시장님의 새 이름을 방송에서 어떻게 발음해야 합니까?"
"카로차입니다. 에이 네 개는 묵음입니다."-57쪽

완벽한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그러니까 나는 이종격투기 선수인 바다 하리를 닮은 벌목꾼과 사랑에 빠지는 거다. 어쩔 수 없이. 그래서 그와 나는 딸 둘 아들 둘을 낳는 거다. 숲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 나와 바다 하리가 낳은 아이 넷은 60명 벌목꾼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나는 주방 보조를 하면서 부주방장이 되고,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점점 더 뚱뚱해진다. 그러나 바다 하리는 뚱뚱해서 뒤뚱뒤뚱 걷는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고 여전히 튼튼하게 나무를 벤다. 아, 정말 아름답고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가.-183쪽

슬픔에 풍덩 빠져 있어서 자신을 돌보기 힘든데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어김없이 끔찍하다. 그때 일을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주변 일들을 잠시 멈추고 내 방에 틀어박혀 내 슬픔에 집중할 수 있다면,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를 잃고, 부모님이 아프고 또 그 외의 마음이 심하게 다치는 일들에 대해서는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업무에서 물러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실연을 당해서 자 바닥 깊은 곳으로 한없이 침잠해갈 때, 실연 휴가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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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중학교 3학년 겨울에 이사간 집에 다락방이 있었다. 좁은 집이었고, 언니들도 독방이 없는 터 내방은 당연히 없었는데, 잡동사니가 가득한 다락방을 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열심히 치우고 정리하고 닦고서 가만히 누워 보았다. 햇볕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고, 뭔가 따뜻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햇볕에 데워진 먼지 냄새였다. 아무튼! 나만의 그 공간에 집에 있던 문학전집도 몇 권 갖다 놓고 책도 좀 읽었더랬다. 나만의 조용한 시간이었고 독립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빨간 머리 앤이 살던 그 집이 떠오르는 낭만적인 구석도 있었지만, 계절적으로 다락방은 너무 추웠다. 결국 몇 번 못 올라가고 그곳엔 다시 먼지가 쌓였다. 대신 난 식구들이 모두 TV를 보는 방 한구석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등돌리고 읽다가 눈물 한방울 또르르 흘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끄럽고 복잡한 공간에서 어떻게 집중이 됐던 걸까 의아할 지경이지만, 그때는 그게 가능했다. 그리고 그때의 오랜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이 책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이유경 작가님의 블로그 닉네임은 '다락방'이다. '다락방의 꽃들'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했는데, 이 이름을 들으니 또 어릴적 기억을 마구 건드린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한동네 살던 친구와 같이 등하교를 했는데, 친구는 자기 언니의 소설을 몰래 몇 구절 읽고 학교 가는 길에 나에게 들려주고는 했다. 그때 들었던 몇몇 책 중에 하나가 바로 '다락방의 꽃들'이었는데, 친구와 나는 다락방에 갇힌 아이들이 가엾다고 참으로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친구는 자기 언니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고 나도 그 뒷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심지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제인 에어'와 마구 섞여 있기까지 했다!) 그렇게 '다락방'이라는 이름은 구석지기도 하고 비밀스럽기도 하고 또 조금씩은 서글픈 이름이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락방은 내게 유쾌하고 밝고 명랑한 느낌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다 이 책의 저자 때문이다. 


처음 다락방님을 온라인이 아닌 곳에서 만난 때는 내가 심적으로 가장 힘들 때였는데, 그녀의 해피 바이러스는 금세 나를 감염시켜서 얼굴 근육이 마비되도록 웃다가 헤어진 기억이 난다. 그녀의 말과 몸짓, 표정과 심지어 식성마저도 나는 즐겁기만 하다. 그 즐거움과 못지 않은 따뜻함이 이 책에 옮겨져 있다. 내가 누리고 있던 그 행복한 기운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게 된 것은 인류애적 관점에서 보자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다소 아쉽다. 차별화된 기쁨이 공개된 것만 같아서. 


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큰 즐거움이다.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만남이 생기면 서로에게 줄 책을 준비하게 되었다.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을 상대방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그런 판타지는 생각보다 충족되기가 어려웠다. 상대방이 이미 읽었거나 갖고 있을 수 있고, 내게 참 좋았던 그 책이 그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다. 그녀는 아주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별로인 책을 선물 받았다고 해서 좋았다고 포장하는 법은 없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제 어떤 책을 갖고 싶냐고 미리 물어본다. 혹은 책이 아닌 다른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한다. 책에 있어서라면 이미 자기만의 세계관이 충분히 잡혀 있고, 호불호도 분명한 그녀이기 때문에 낭만은 좀 떨어지지만 그편이 더 나은 선택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다락방님의 독서는 내게 좋은 선택지가 되어버렸다. 간혹 내게 익숙하지 않고 낯선 책이 책장에 꽂혀 있을 때 검색을 해보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다락방님의 페이퍼가 등장하고 만다. 그것은 그녀의 글을 읽고 호기심이 동해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렇다! 그녀의 글들은 늘 책구매 지름신을 부르고 만다. 유리지갑을 더 위태롭게 만들지만 결코 싫지 않은, 게다가 설레기까지 하는 소비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목록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더 늘어나고 말았다. 


가을 선거에서 시장과 맞붙게 될 호적수가 지난주에 앤젤리나 V.리코에서 앤젤리나 V.아리코로 개명했다. 알파벳 순으로 기호 1번을 배정받기 위한 실수였다. 하지만 어제 로코 D.카로차 시장이 로코 D.아아아아카로차(aaaaCarozza)로 이름을 바꿨다. 

(...)

"시장님의 새 이름을 방송에서 어떻게 발음해야 합니까?"

"카로차입니다. 에이 네 개는 묵음입니다." (56-57쪽)


'악당들의 섬'이라는 책을 다루면서 저자가 소개한 유머감각이다. 난 이 글을 블로그에서 작년에 처음 보았는데, 직장에서 읽다가 너무 크게 웃는 바람에 동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이 대목을 읽어주었는데, 그들은 전혀 웃지도 않고 그게 뭐가 웃기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a 네개가 묵음이라는데 안 웃기다니! 그들은 내가 문과생이고 자신들은 이과 출신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정리했다. 비록 그들 때문에 다소 흥이 떨어지긴 했지만 이 부분은 이 책을 통해 다시 읽어도 여전히 빵 터지게 웃기다. 다락방님은 책의 줄거리를 세세하게 설명하는 법이 없고,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주는 일도 많지 않지만 이렇게 적은 부분만으로도 관심을 끌게 하고 크게 웃거나 크게 울컥하게 만든다. 


많은 이야기들이 소설에서 시작하지만 삼천포로 빠지면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로 통하는데 이게 또 엄청난 반전 매력이 있다. '그 숲에는 남자로 가득했네'라는 책을 읽으면서는 도시를 사랑하는 전형적인 도시녀인 다락방님이 숲에서 벌목꾼들을 위한 요리사가 되고 싶은 열망까지 갖게 한다.


완벽한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그러니까 나는 이종격투기 선수인 바다 하리를 닮은 벌목꾼과 사랑에 빠지는 거다. 어쩔 수 없이. 그래서 그와 나는 딸 둘 아들 둘을 낳는 거다. 숲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 나와 바다 하리가 낳은 아이 넷은 60명 벌목꾼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나는 주방 보조를 하면서 부주방장이 되고,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점점 더 뚱뚱해진다. 그러나 바다 하리는 뚱뚱해서 뒤뚱뒤뚱 걷는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고 여전히 튼튼하게 나무를 벤다. 아, 정말 아름답고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가. -183쪽


삼천포는 보여줬고, 반전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라. 그녀의 상상력은 늘 상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재밌었던 책, 좋았던 책,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그런 책 이야기만 쏟은 것이 아니다. 때로 다락방님은 소설적 재능도 마구 펼쳐 보였다. 이 책의 제 4장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실린 글들이 유난히 좋다. 특히 블로그에 썼을 때부터 나를 반하게 만든 '순례자의 책'과 '순수의 시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독자마저도 달콤하고 짜릿한 쾌감을 갖게 한다. 이것이 상상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책의 제목이 '독서공감'인데, 독서에서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강하게 공감하는 것이 작가 자신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섭고 아프기까지 했다. 캐서린을 따라 겁이 났지만, 스튜어트 덕분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문을 여러 차례 점검하며 숫자를 셀 때 나도 같이 세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걸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자신의 집이 미묘하게 바뀐 걸 느낄 때, 나는 거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곳으로부터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러려면 빨리 읽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결국 그녀가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까 강박증을 이겨내는지, 출소한 전 연인과 맞서 싸우는지, 이 모든 과정들을 지켜보고 싶었다. -80쪽

 

그녀의 몰입도는 굉장해서 소설 속 인물과 이미 물아일체가 되어 있고, 그 사건과 그 감정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공감을 끌어낸다. 그러니 독서공감이 '사람'을 읽게 만든다. 사람이 있고, 삶이 있고, 그리고 사랑이 있다. 이 책 속에, 그리고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독자에게도.


12월이 되었고, 2013년이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차에 집어든 이 책은 유난히 손이 시려운 나에게 따뜻한 입김이 되어주었다. 긴긴 겨울밤이 다가올 것이고, 이맘 때면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 테지만, 그럴 때 위로해줄 좋은 책도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새삼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더 풍성하고 더 재밌고, 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아직도 블로그에 많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그것이 큰 위로가 된다. 기왕에 공개된 차별화된 기쁨이 더더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때는 그녀의 소설적 재능도, 시트콤 작가 같은 유머 감각도 더 크게 펼쳐보였으면 좋겠다. 세상과 사물에 대해 예리한 관찰력을 가졌고, 필력도 훌륭하며 무엇보다도 성실하기까지 한 작가님에 대한 기대가 크다. 다락방님의 오감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 씨앗이 어떻게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지 즐겁게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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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12-0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이런...
전 리뷰 안 쓸랍니다. 아니..
못쓰겠네요. 이렇게 애정이 담뿍 담긴 마노아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못쓰겠네요...

그런데 웃긴건 다락방님 글 읽을때는 다락방님 목소리가
마노아님 글 읽을때는 마노아님 목소리가 들리는거 같아요. 하하핫 ^0^

마노아 2013-12-09 09:35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밑줄긋기 궁금해요. 어떤 부분에 밑줄 그으셨어요?
우히히힛, 제 목소리가 들렸나요? 냐핫, 그것도 좋은걸요.
우리 조만간 만나서 독서공감 이야기 더해요. 유훗!!!

그렇게혜윰 2013-12-0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해피바이러스~~와, 정말 궁금하네요^^

마노아 2013-12-09 23:54   좋아요 0 | URL
만나면 더 큰 바이러스에 덜컥! 감염이 되지만, 글만 보고도 충분히 감염될 수 있어요. 게다가 백신도 없다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