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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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나라는 선진국이 되면서 자국의 통화가 강해졌다. 전후 일본의 복구 과정과 엔화 가치의 끝없는 상승 국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외국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마르크화 시절 독일이 그랬고, 프랑화 시절 프랑스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 스위스의 프랑이 그렇다. 국민소득은 늘어났지만, 자국 화폐가 그에 반비례해서 약해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 중앙은행, 그곳은 바로 자국의 돈을 지키는 곳이 아닌가! 어떻게 그곳에서 자국의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조치를 그것도 경기회복이라는 명분으로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오래된 사기극을 새로운 정부에서, 시민의 정부라고 이름 붙인 그곳에서 할 수 있는가?
-22쪽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권력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돈은? 더러운 곳에서 더 더러운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없는 사람들의 작은 돈이 모여 강한 사람들의 큰돈이 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은 감옥에 가는 것이 맞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후, 누구 한 명 잘못했다고 나섰던 사람이 있고, 누구 한 명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 1997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진 후, 감옥에 간 사람은 물론이고, 사과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돈이 관여된 전쟁에서는 자기 돈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 사태 때, 실업으로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붕괴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기가 그렇게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착하디착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실제로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나 자신들을 그렇게 방치한 사람 대신, 자신을 원망하면서 오늘도 힘겨운 삶을 버텨낸다.
-55쪽

그는 지금 청와대에서 왕따다.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청와대 주변의 경제학자들이 지나치게 레토릭 즉, 수사 가득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필요까지 있나 하고 스스로 반문할 만큼 그들의 말은 너무 어렵고 권위적이었다. 수치가 어렵고, 수치에 대한 해석이 어려운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말 자체를 일반인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장벽을 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에게도 그럴 필요가 있는가?
-73쪽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 대통령을 위해 급전을 빌려줄 곳은 없었다. 이제 IMF와 같이 정부가 급하면 돈을 가져다 쓰라고 만들어놓은 공식적인 기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파산을 공식화하는 선언이었다. 세상에 공짜 돈은 없다. 모든 돈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한국에서 국가부도의 정치적 대가는 혹독했다. 모두가 고생을 하는 것 같지만 대통령이 치러야 할 대가가 가장 컸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IMF 경제위기로 돈을 번 사람들을 통칭해서 강남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그 위기 한가운데에서 "이대로!"라고 외치며 건배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왜곡이나 과장 없이, 정말로 그래TEk. 새로운 정권이 경제적으로 숨통을 조여오자 은근히 IMF 같은 경제위기가 한 번 더 와서, 정치적 문제도 풀고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았다.
-116쪽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프리카를 만난 사람들은 원시림 등 정글이 울창한 지형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숲이 무성한 정글은 국가가 보호하는 자연공원뿐이다. 아프리카는 거의 사막에 가깝고 가끔 키가 작은 관목들이 서 있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 바오밥나무는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이런 관목지대 특히 사막화로 점점 더 관목지대가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수종 중 우점종인 나무는 바로 아카시아이다. 아카시아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프리카의 건기에도 능히 버틸 수 있는 나무이다. 인류는 바로 그 바오밥과 아카시아가 있는 곳에서 첫 출발을 하였다.
-147쪽

그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유럽 평원을 거쳐 마침내 도착한 곳이 바로 만주 벌판이다. 이곳 역시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만큼 황량한 지역이다. 이곳에 버티고 있는 또 다른 대형 수종이 바로 버드나무이다. 물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살 수 있고, 줄기만 꽂아도 번식할 수 있는 버드나무는 만주에서 한반도 남쪽은 물론 심지어 일본 본토까지. 이 드넓은 땅의 진정한 지배자였다. 평양의 옛 이름 ‘류경柳京’은 바로 버드나무들의 서울, 버드나무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북한이 김일성 80회 생일 기념으로 1987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류경호텔도 버드나무에서 온 이름이다.
-148쪽

버드나무. 그것은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경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상징이다. 박정희는 특히 버드나무를 싫어했다. 그는 이 나무를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흔히 보던 가난의 상징으로 여겼다. 박정희는 버드나무 대신에 아프리카에서 아카시아를 들여왔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결국 아카시아의 나라가 되었다. 한강에 있던 버드나무들은 더 이상 서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반면 대동강 강변과 그 상류인 보통강에는 여전히 버드나무가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북한 천연기념물 2호인 옥류능수버들은, 평양냉면 전문 체인점으로 유명해진 옥류관과 옥류교 사이에서 주로 자란다. 버드나무와 아키사아나무가 바로 우리 미래에 대한 질문이 아니겠는가?
-148쪽

김철용은 공손하기는 했지만, 예전의 북한지도자들처럼 경직된 모습은 아니었다. 버드나무는 부드러움으로 태풍을 이겨낸다. 과연 북한은 그런 부드러움으로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164쪽

지금 대통령은 조선조의 왕들이 수렴청정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유폐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다. 극심한 견제 속에서 그는 한 발만 잘못 벗어나면 언제든지 이 나라가 지급불능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협을 받아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집권 첫해에 의미 있는 정책을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그를 위축시켰다. 그러나 컨베이어 벨트와 조립용 기계가 끊임없는 파열음을 내고 있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이 모든 것에 대해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어쨌든 노동자들의 대통령이고, 시민들의 대통령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지지해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닌가? 그는 대한민국 돈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아니, 큰돈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덩치가 큰돈들은 대통령을 지지한 적이 없었고, 지금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푼돈들이 모여 큰돈이 된 것 아닌가? 큰돈들이 왜 그렇게 큰돈이 되었겠는가? 큰돈은 뭉치기 쉬운 습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조각조각 모인 돈들이 자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작은 돈들은 부수어지기 쉽다. 그게 작은 돈의 속성이자, 약점이다.
-172쪽

사람들 사이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해주세요’라고 쓰인 피켓들이 보였다. 보통은 ‘해결하라’ 혹은 ‘철폐하라’ 같은 명령조의 반말투로 적은 플래카드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해라체가 글자 수가 적어 팻말이나 플래카드처럼 많은 글자를 적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 유리한 이유도 있지만,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늘 외치는 사람과 들어줘야 하는 사람의 적대적 관계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영어나 불어는 존대어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집회나 시위에서 사용되는 명령형의 문구가 반드시 하대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집회에서 종종 존재어로 된 피켓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자신들이 직접 만든 정부라는 열망감도 반영된 것이었다. 말이라는 것은 누가 시킨다고 해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연스럽게 존칭과 존대가 피켓에서 공공의 언어로 돌아오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닌 사회,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 사람들 속에 잠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174쪽

몇 달간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대통령이 움직임을 보이자, 총리실 밑에서 자신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있던 경제 부처 관료들은 심하게 요동쳤다. 그들의 임명권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시민들이 만든 권력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힘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지환이 준비한 카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큰 카드 옆으로 작은 카드들을 몇 개 더 마련해놓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퇴직 공무원들의 로펌 취직을 10년간 금지하는 법안을 포함한 법률회사 관리에 관한 제도와 국회 등 로비에 관한 제도 정비였다.
-231쪽

오지환이 무장한 국정원 요원들과 외환은행 본사 딜링룸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저녁이 있는 삶’ 작전이 시작되었다.
-304쪽

한 국가의 돈의 운명은 그 나라의 경제적 운명과 일치한다. 그 나라의 경제가 강해지면 당연히 그 나라의 돈도 강해진다. 그리고 그 돈의 힘은 구매력 즉, 환율로 표시된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딱 한 나라, 그러한 돈의 법칙과 거꾸로 간 나라가 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던 시절 250원이던 달러화와 대비한 원화 환율이 그가 죽을 때에는 600원이 되었다. IMF 때는 평균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980원 수준까지 내려갔다가,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다시 1,200원 이상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한국의 GNP는 1인당 2만 달러를 넘어서게 되었지만, 몇 백 달러 시절보다 원화는 몇 배로 약해졌다. 원화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국민들의 구매력도 약해진다. 그 대신 대기업 특히, 수출을 하는 기업들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대한민국은 경제가 강해져도 원화는 더욱 약해지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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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7-2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는 무척 덥습니다.ㅠㅠ
너무 더워서 나가기가 싫네요...
더위조심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마노아 2013-07-26 23:40   좋아요 0 | URL
아, 오늘 서울도 불타올랐어요. 33도였는데 후끈후끈하더라구요.
그러다가 또 비가 온다고 하네요. 변덕스런 여름 날씨입니다.
우리는 평상심을 유지하며 이 여름을 잘 견디어 보자구요. 후애님도 주말 즐겁게 보내셔요~

saint236 2013-07-2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요? 예전에도 리뷰에서 썼지만 우석훈이 쓴 소설은....

마노아 2013-07-26 23:46   좋아요 0 | URL
소설은 소설가에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욕심이 앞섰어요.^^
 
따라와, 멋진 걸 보여 줄게 - 너트와 고리와 병뚜껑과 나사의 여행
수비 툴리 윤틸라 글.그림, 류지현 옮김 / 낮은산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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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와, 멋진 걸 보여줄게."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마어마한 자신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은, 보통 더 어릴 때에 가능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책과 음악과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내가 추천한 사람에게는 별 반응을 못 끌어내는 것에서 속상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어릴 적에는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작은 것들에도 크게 감탄하고 감동하고 또 열광하지 않던가. 보다 순수하고, 보다 계산이 적던 시절의 우리들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소소한 것들에서 출발했다. 그렇지만 어린이 눈높이에서만 멋진 것들은 아니다. 이미 충분히 다 자란 어른인 내게도 멋져 보이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림책은 매번 그렇게 독자를 놀래키고 감탄사를 터트리게 한다. 이 놀라운 색감이라니!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은하수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행성 하나. 작지만 뚜렷한 족적을 가진 이 아름다운 행성의 또 작은 도시, 그 안에 자리한 이곳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바닥에 깔아놓은 직물 천이 우주가 되고, 골판지는 지붕이 되었다. 솜뭉치는 둥실둥실 구름이 되었다.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 보자.



마루 위에 놓인 저 자그마한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천으로 이루어진 벽면과, 우표 한장이 충분히 아름다운 액자가 되어주는 이 공간 안에서 반짝이는 저것은!!! 아핫, 너트였다. 빛나는 삶을 꿈꾸는 너트는 이 좁은 공간을 떠나 먼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모름지기 여행에는 동반자가 있기 마련! 고리가 합류하기 무섭게 노란색 병뚜껑도 이들 일행과 뜻을 모으기로 했다. 지루했던 병뚜껑으로서는 아주아주 반가운 일이다. 



자그마한 이들 친구들이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험했다. 유리로 된 산을 넘고 곧게 떨어지는 폭포를 지나야 했던 것이다. 유리로 된 산의 정체는 뭘까? 아마도 세면대? 떨어지는 물줄기가 이들에게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거대하고 거친 물살로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여행을 계속했다. 주방에서 만난 피망과 파프리카는 강렬한 색감으로 일단 기선을 제압하는데, 이들의 여정은 주방 안 식탁 위에서 끝낼 수 없었다. 과감한 도약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점프!!! 이들이 뛰어내린 곳은 파랗고 차가운 바다! 반짝이는 직물은 푸른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뱃멀미를 일으킬 만큼! 



파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점점 거세어지더니 이윽고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어째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리처드 파커와 함께 밤을 맞이한 인도 소년 파이가 떠오른다. 거대한 바다는 느닷없이 블랙홀이 되어서는 세 모험가를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시커먼 구멍을 지나서 마침내 떨어진 곳에서는 환한 빛이 이들을 맞이했다. 대체 이들이 통과한 것은 무엇일까? 세탁기 배수관? 싱크대 관??? 아무튼 이들은 물방울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급작스럽게 맞이한 자유는 늘 위험을 동반하는 법! 빗자루가 슥슥 밀쳐대자 쓸려버린 너트는 바람이라고 착각했다. 낭만적인 반응이다!



낯설고 겁도 나는 여정이었지만 셋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아마 바람도 살며시 불어왔을 것이다. 셋은 함께여서 힘이 났고 도전은 끝이 없었다. 평범한 화단도 이들에게는 깊디깊은 숲속이고 정글이었다. 그리고 녹이 슨 관 안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나사를 만났다. 오래도록 혼자 지내왔던 나사라면 이제 갓 모험을 시작한 세 친구들에게 특별한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멋진 표현은 이것 아닐까?


"따라 와! 멋진 걸 보여 줄게!"


나사는 산 위로 올라가서 세 친구들에게 멀리 보이는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들 앞에 펼쳐졌을 것이다. 낮은 곳, 좁은 곳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그런 장면들을...



하지만 멋진 장면만 넋을 잃고 볼 수는 없다. 산을 올라갔으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법. 이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나사를 포함해서 넷으로 늘어난 인원으로! 작은 꽃송이 하나도 이들과 함께 있으면 거대한 숲으로 변신한다. 마법 같은 일이다. 어스름이 깔리는 저 노란 배경은 압도적인 색을 자랑한다. 검게 뒤로 물러난 풀잎이 밀림처럼 보인다. 이윽고 밤이 깊어왔다. 저 둥근 보름달을 배경으로 우뚝 선 네 친구들이 참으로 늠름하다. 



성냥갑은 이들에게 최고로 안락한 잠자리였다. 하룻동안 머나먼 여정을 소화한 이들은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다시 태양이 솟아올랐을 때, 풀숲에서 이들 네 친구가 담긴 성냥갑을 찾은 노란 장화의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슬을 머금고 햇볕에 반짝이는 이 친구들이 얼마나 눈부셔 보였을까?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아이에게는 이 소소하고 사소한 것이 충분히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방으로 옮겨진 너트와 나사.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난 고리와 병뚜껑이 있다. 다시 만나면 이들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해주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을 것이다. 모험은 이들을 더 성장시킬 것이고, 여행은 이들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너트와 고리와 병뚜껑과 나사의 멋진 여행! 어쩌면 이것은 자신만의 보물을 발견한 어린 아이의 상상력이 빚어낸 놀라운 모험담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이 작품을 만든 작가의 어릴 적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자라고 나서 보면 이런 걸 왜 모아두었을까 싶었던 물건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애착을 가졌던 그 물건들을 만났을 때, 혹은 모아두었을 때 가졌던 그 기쁨의 크기는 분명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눈에는 아이가 만든 소소하고 볼품없는 것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내게는 아이가 없으니 조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뿌듯해 하는지 생각해 봤다. 요새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들어오는 녀석들은 그때마다 자랑하기 바쁘다. 방문마다 그림이, 액자가 걸려 있고, 책장 위에도 소소한 작품들이 나름의 실력을 뽐내면서 자리를 빛낸다. 먼지 타서 청소하기 아주 애먹지만, 그래도 쉽사리 치울 수는 없다. 작품에 어린 애정과 정성, 그리고 노력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을 좋아하는 세현군은 자신의 방문에 저런 액자를 걸어두었다. 벌어지기까지 한 볼품없는 명패 같지만, 아이에게는 슈퍼히어로 문지기다. 다현양도 밀리지 않는다. 찰흙으로 빚어서 색칠까지 마친 명패엔 좋아하는 별님도 있고 호랑이 친구도 있다. 그런데 저 보라색 동글이는, 설마... 설마... 똥은 아니겠지??? 아, 똥일지도 몰라...ㅠ.ㅠ 애들은 원래 똥이랑 친한 법이니까~



방문마다, 냉장고마다, 그리고 칠판에까지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어떤 건 테이프로 붙이고 어떤 건 자석으로 고정시켰다. 재료도 다양하다. 도화지도 있고 비닐판도 있다. 다각형 모양의 저 상자는 여러 개의 종이접기가 동원되었다. 여름이라고 부채에 무지개도 그렸고, 엄마 사랑해요 꽃도 만들어왔다. 뭘 해도 예쁠 나이, 뭘 만들어도 대단해 보이는 그런 어린이들이다. 물론, 남의 집 아이가 이렇게 만들었으면 큰 감흥이 없을 것이다. 내 조카, 내 가족이어서 예쁘고 즐겁다. 그러니 우리 아이 작품 좀 보라고 카톡으로 사진 날리며 남을 귀찮게 하지는 않겠다. ^^


나는 어땠나 생각해 봤다. 그런 상상 해보지 않던가. 집에 불이 나서 당장 몇 가지만 들고 나갈 수 있다면 뭘 가져갈 것이냐고! 통장 없으면 돈 못 찾는 시대도 아니고... 불 났는데 무겁게 컴퓨터를 들고 갈 수도 없고...(그걸 생각하면 노트북이 필요할 것도 같지만...) 수많은 책을 들고 갈수도 없고... 그래서 내가 떠올릴 것은 나의 학창시절을 밝혀주었던 소설 공책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험난한 환경으로 도저히 맘 붙이고 뭘 할 수 없던 시절에 나는 열심히 소설을 썼다. 내가 엇나가지 않고 그래도 집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건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도 이야기를 전하는 걸 참 좋아했다. 몇 장의 글을 쓰고, 다음날 짝꿍에게 어제 쓴 이야기를 전하며 까르르 웃던 게 고3 시절의 스트레스를 풀던 우리의 방법이었다. 내가 그린 전조 얼굴이다. 하하핫, 저때만 해도 나는 장차 만화가가 될 줄 알았다. 같은 얼굴을 두번 못 그리는 실력으로 만화가를 꿈꾸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웃긴 일이지만, 그때는 진지했었다. 아래쪽 사진은 그 한해 뒤에 쓴 글이다. 저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마노아'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닉네임은 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소설 속 마노아는 남자고, 지금은 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왕자고, 아주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게다가 초능력도 가진! 뭐 그런 순정만화같은 캐릭터였다. 내 취향을 반영한 결과다. 지금 생각하니 참, 유치하구나. 그래도 뭐 소중하다.^^



스크랩북도 소중하다. 나의 스크랩북은 이승환과 그 밖의 것들로 구분되어 있다. 이승환은 나에게 우열을 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이므로 따로 티켓을 모았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억원짜리 저 지폐가 진짜라면 얼마나 좋을까~ 뭐 이런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다. 오늘 카페에서 100억 복권에 당첨되면 뭐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100억과 비교하니 1억은 참 소박하구나.^^ 그 아래 사진은 그밖의 문화 행사에 참여한 흔적들이다. 며칠 전에는 이슬람 문화전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차도르를 걸치고 히잡도 써보았다. 즐거운 경험이다. 저 스크랩 북들은 그렇게 내가 즐거워 했고, 내가 많은 걸 배워왔던 순간순간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기록은 그래서 소중하다. 귀차니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둬야지. 앞으로도 쭈욱!

마지막 사진은 아까 그 '전조'가 나오는 소설을 연재한 페이지다. 마지막 연재가 2005년이었는데 벌써 몇 년이 흐른 것인가. 조금만 더 쓰면 완결이었는데 끝을 못 맺고 한참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내 버킷 리스트에는 내 작품의 완결을 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불이 난다든지, 무인도에 가져갈 거라든지 하는 상상에 꼭 포함되는 나만의 소중한 것들은 바로 이 책들이다. 남들에게 내보이기는 꽤 창피하기도 하고, 나만큼 애착을 가질 수도 없는 그런 것들이지만 스스로에게는 "따라와, 멋진 걸 보여줄게!" 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친구들이다. 


오랜만에 추억에 젖어 보았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책은 아기자기한 상상력과 예쁜 그림들로 나를 즐겁게 했고, 더불어 추억 속을 서성이며 소중했던 시간들을 되새기게 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으로 백희나 작가의 책들이 떠오른다. 이 책처럼 상상력을 멋지게 발휘한, 소소한 것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소품들이 한참 뽐을 내는 즐거운 책이다. 그림책의 세계는 이렇게 넓고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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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곰 2013-07-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의 글을 보고 제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생각해보았어요. 학창시절 쪽지, 편지들. 그리고 몇권의 책들이네요. 아- 일억원이 든 통장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날이 올까요.. ㅎㅎㅎ

마노아 2013-07-26 14:48   좋아요 0 | URL
학창 시절에 썼던 편지나 카드 등은 모두 갖고 있는데 생각만큼 잘 들여다보지는 못해요. 그런데 이사를 가거나 방정리를 해도 결코 버리지는 못하겠더라구요. 결국은 소중한 추억인 거죠. 일억 통장이라, 아 '0'이 몇 개인가요. 아찔한 돈이에요. 상상으로도요.^^ㅎㅎㅎ
 

제 1914 호 / 2013-07-22

탯줄을 1분 이상 늦게 자르면 아기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호주 멜버른 트로브대학 의대 산과학전문의 수전 맥도널드 박사는 산모와 신생아 총 3,911쌍을 대상으로 탯줄을 자르는 시간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관찰·분석했다. 그 결과 탯줄을 1분 후에 자른 신생아는 이보다 빨리 자른 신생아보다 출생 24~48시간 후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고 출생 후 3~6개월 동안 철분 결핍 위험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출생체중도 탯줄을 늦게 자른 아기가 그렇지 않은 아기보다 무거웠다. 이는 탯줄을 늦게 잘라 산모의 혈액이 신생아에게 더 전달됐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생아의 철분 상태 개선을 위해 태어난 후 1~3분에 탯줄을 자르도록 권장하고 있다. 물론 이 연구결과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다. 미국산부인과학회는 탯줄을 자르는 시간으로 얻는 이득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출처 : 과학향기 

 

 

아침 거르면 당뇨병 위험 ‘급상승’  

제 1916 호/2013-07-22

아침을 거르면 당뇨병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학 의대의 라니아 메카리 박사팀은 여성 4만 6,289명을 대상으로 식습관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6년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아침식사를 일주일에 하루만 걸러도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이 20%나 높아졌다.

특히 하루 종일 일하는 여성들은 아침을 거를 때 당뇨병 발병 위험이 무려 54%나 더 높았다. 이 같은 결과는 여성들의 연령이나 비만도, 탄수화물 섭취량, 흡연과 음주 습관, 신체적 활동, 직장에서의 지위와 관계없이 나타났다.

메카리 박사는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우리 몸은 인슐린 수치가 적정해지는데 다음날 아침을 거르면 인슐린 수치가 낮아지고, 이는 뒤늦게 하루의 첫 식사를 하게 될 때 인슐린 수치의 급상승-급락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기상 후 2시간 내에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결과는 2013년 7월 ‘미국 임상영양 저널(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실렸다.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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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7-2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침을 꼭 먹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었군요.
일어나서 2시간 이내에 꼭 먹어야겠네요.
당뇨는 가족력이 있어 불안해서 관리를 잘 해야돼요.ㅠ

마노아 2013-07-25 00:41   좋아요 0 | URL
이거 아니어도 아침 안 먹으면 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저는 아침 잘 챙겨 먹어요. 아침에 먹을 게 없으면 전날 밤에 잠이 안 와요.^^;;; 울 엄니도 당뇨 수치가 안 좋은데 여러모로 주의를 기울여야겠어요. 근데 넘 자극적인 것 좋아하시고 엄청 빨리 많이 드시는 스타일...ㅜ.ㅜ
 
구석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68
정윤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6월
품절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



시째냐? 악아, 어찌고 사냐. 염치가 참 미제 같다만, 급허게 한 백마넌만 부치야 쓰겄다. 요런 말 안 헐라고 혔넌디, 요새 이빨이 영판 지랄 가터서 치과럴 댕기넌디, 웬수노무 쩐이 애초에 생각보담 불어나부렀다. 너도 어롤 거신디, 에미가 헐 수 읎어서 전활 들었다야. 정히 심에 부치면 어쩔 수 없고......

선운사 어름 다정민박 집에 밤마실 나갔다가, 스카이라던가 공중파인가로 바둑돌 놓던 채널에 눈 주고 있다가, 울 어매 전화 받았다. 다음 날 주머니 털고, 지갑 털고, 꾀죄죄한 통장 털고, 털어서, 다급한 쩌언 육십마넌만 서둘러 부쳤다.

나도 울 어매 폼으로 전활 들었다.

엄니요? 근디 어째사끄라우. 해필 엊그저께 희재 요놈의 가시낭구헌티 멫 푼 올려불고 났더니만, 오늘사 말고 딱딱 글거봐도 육십마넌뻬끼 안 되야부요야. 메칠만 지둘리먼 한 오십마넌 더 맹글어서 부칠랑께 우선 급헌 대로 땜빵허고 보십시다 잉. 모처럼 큰맘 묵고 기별헌 거이 가튼디, 아싸리 못혀줘서 지도 잠 거시기허요야. 어찌겄소. 헐헐, 요새 사는 거이 다 그런단 말이요.

떠그럴, 사십마넌 땜에 그날 밤 오래 잠 달아나버렸다.-28쪽

우체국 앞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기억을 가진 사람과,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누구라도 한 사람을 기다려본 기억이 없는 사람의 인생의 무늬에는 어딘가 차이가 있을 것도 같았다.

모든 생의 바닥으로는 다른 빛깔의 그늘이 와서 깔리고, 모든 생의 그 그늘들은 다른 방식으로 스러지기도 할 것 같았다.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등에 대고서라도, 이제라도 '그'를 한번 기다리며 서 있어보라고, 가만히 말을 건네주고 싶었던 가을날이 있었다. -36쪽




집, 얼룩무늬의 털스웨터 한 벌로 평생을 나는 표범을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집이 어쩌면 저 한 벌의 털스웨터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부러움에 빠져본 적이 있다.

집, 아니 짐이여. 무거움이여.

집, 그러나 나는 내 말년의 모습이 조금쯤은 말라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적지 않다. 별로 그럴 일은 없을 듯하지만, 볼따구니의 살집이 한 점의 긴장도 없이 추욱 늘어지거나, 욕심의 뱃구레가 오크통처럼 불거져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았으면 싶다.

집, 표범이 아니라도, 실은 내 몸도 한 채 집이었구나.-89쪽

밥經


저를 다하여 하냥 온기를 게워 올리는

향처럼 피워 올리는

둥근 지붕부터 헐어 몸 열어주던

거기, 원적외선 담요보다

푹신하고 느른한

寺院 같던, 입으로 읽었던.-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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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야네 목장은 맨날 바빠! - 목장 농부 일과 사람 7
조혜란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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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시리즈 중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목장 농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2012년 작인데, 당시 출간 예정 도서로 20권의 책을 나열하고 있다. 현재 나와 있는 게 14권으로 뒤에 출간될 것으로 예정하고 있던 뮤지컬 배우와 채소장수가 먼저 나왔고, 사이사이 출간 예정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먼저 준비된 작품들이 번호를 당겨서 출간됐나 보다.
조카에게는 이 시리즈가 거의 다 있는데, 없는 번호가 세권인가 네권인가 있었다. 그 없는 것들 중에서 내 눈길을 끈 게 '노야네 목장은 맨날 바빠!'였다. 아마도 이름 때문인가 보다. 내 닉네임이 '마노아'이고, 친한 지인들은 모두들 나를 '노아'라고 부르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노야'니까.^^

학교에 다녀오는 노야를 온 집안 식구들이 반겨준다. 모두들 집이나 집주변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조카들은 집에 돌아왔을 때 이모가 있으면 무척 반가워 한다. 특히 둘째 조카 다현 양이. 재택 근무하면 아이들은 이런 점에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보고 싶은 사람을 저녁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볼 수 있으니~

식구들만 노야를 반겨주는 건 아니다. 노야네 목장에는 젖소들도 아주 많이 있으니까~ 이름들도 정겹다. 먹순이, 허연이, 점순이 등등~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우유를 한잔 마시는 노야. 어휴, 이건 무척 부러운 일인 걸.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 집에 있다 보니 우유 소비량이 장난 아니다. 안 그래도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에 우유값도 가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젖소들을 직접 돌보고 싶은 노야는 학교에 체험 학습 신청서를 냈다. 이제 보름 동안 집에서 어른들과 함께 소를 돌볼 예정이다. 우와 보름이라니! 도시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몸이 까만 먹순이의 눈망울이 참으로 순하다. 날짜표를 보니 2006년 생이다. 이 책이 작년에 나왔으니 60개월 조금 넘는 숫자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젖소들은 평균 몇 살까지 살까? 검색해 보니 12년 나오는데 정확한 수치인지 모르겠다. 지식인 답변인지라... 아무튼, 맞다고 생각하고 계산한다면 먹순이는 꽤 나이가 많은 소가 되겠다.

노야가 가장 좋아하는 소 먹순이. 노야는 먹순이가 풀을 씹어먹는 걸 볼 때면 자신도 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소가 뭘 먹는 걸 직접 본적은 없지만, 되새김질 한다는 것쯤은 안다. 배 속에 위가 무려 네 개나 있는 소이니, 소화불량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몇 번이나 되새김질 해서 잘게 부술 떼니까.

노야네 목장의 젖소는 모두 29마리다. 먹순이는 하루에 젖을 20리터나 만들어 낸다. 평균 값으로 계산해 보면 하루에 580리터를 짜내는 것이다. 목장에서 짠 젖을 바로 가게에서 파는 것은 아니다. 판매하기 위한 공정이 필요하다. 먼저 냉장차에 실어서 우유 공장으로 보내면 신선하고 좋은 젖인지 일단 검사를 하고, 젖에 섞인 먼지도 걸러낸다. 뜨거운 열로 나쁜 균을 없애고 식힌 다음 종이 갑이나 플라스틱 통에 담아 가게로 보낸다. 나 어릴 때는 비닐 팩에 든 우유를 배달해 주었는데... 그게 서울 우유였나, 서주 우유였나.. 서주는 아이스바 였던가? 암튼, 그 비닐에 든 우유 맛있었다. 요즘은 삼각형 모양 비닐 팩에 든 커피우유를 사랑한다. 지나치게 달달한 딸기 우유와 초콜릿 우유는 좋아하지 않지만, 흰우유와 커피우유는 아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2교시 끝나면 우유 급식을 먹었는데, 우유 빨리 먹기 시합해서 이긴 기억도 난다. 하하하....

예전엔 노야네 목장도 우유 공장에 소젖을 팔았는데, 우유 공장은 소젖을 딱 정해진 양만큼만 가져갔다. 노야네 젖소들은 그보다 많은 젖을 냈는데 말이다. 젖이 덜 필요하면 덜 짜내면 좋겠지만 젖소 사정이 어디 그런가. 날마다 짜야 하고, 날마다 많이 남는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별수 없이 할머니는 우유로 맛있는 간식을 만들게 되었다. 우유로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제품으로 버터, 치즈 요구르트가 있다. 우유갑에 우유를 반만 넣고 한참 동안 마구 흔든 다음, 우유갑 벽에 얇게 붙은 버터를 긁어내면 고소한 버터가 완성된다고 한다. 우와, 이건 꽤 많은 에너지를 요해 보인다. 힘들겠다.ㅜ.ㅜ

치즈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쉬워 보였다. 우유에 소금을 넣고 끓이다가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불을 끄고 식초나 레몬즙을 넣으면 몽글몽글 뭉치는데, 보자기에 받쳐서 꼭꼭 눌러 물기를 빼면 치즈 완성이다. 오, 소금이 들어가서 짭짜름 했구나!!

요구르트는 보다 간단하지만 시간은 많이 걸린다. 그릇에 따뜻한 우유와 요구르트를 넣고 잘 섞은 다음 밥솥에 넣고 보온 단추를 누른다. 40분쯤 지나면 보온을 끄고 가만히 둔다. 그대로 8시간 기다리면 새콤한 요구르트 완성! 다 만들어진 요구르트를 차게 식혀서 꿀이나 잼을 섞으면 그게 바로 요플레가 되는 거지!

언니가 갖고 있는 주방기기 중에 요구르트 제조기가 있다. 밤에 자기 전에 버튼 눌러놓으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플레인 요구르트가 완성되어 있다. 그러면 딸기잼을 섞어서 먹는데 아주 맛나다. 식빵을 구워서 발라 먹으면 또 맛있다. 우유 좋아하는 나는 요플레도 아주 좋아한다. 플레인은 심심하지만, 그래도 유제품은 다 좋아하는지라 그것도 역시 즐긴다. 아, 자꾸 요플레 먹고 싶어지네....

요구르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내친김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구르트는 만들기로 할머니와 노야는 뜻을 모았다. 학교로 돌아갈 날짜는 한참 남아 있으니 노야의 도전은 끊길 염려도 없다.

할머니는 요구르트를 대량으로 만들되 맛있게 만드는 법을 연구하셨다. 요구르트 제조에 꼭 필요한 건 우유, 젖산균, 따뜻한 온도다. 노야는 맛을 보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전기밥솥에 넣어두고 너무 오래 보온을 해버리면 순두부처럼 익어버린다. 너무 뜨겁게 하면 곤란! 포도즙도 넣어 보고 사과즙도 넣어 봤다. 과일즙을 너무 많이 넣으면 묽어지고 만다. 적절한 양 조절은 필수! 전기 오븐에 넣고 3시간도 기다려 보고 7시간을 관찰하기도 했다. 입맛에 딱 맞는 발효 시간을 찾기 위해서였다. 심혈을 기울인 실험 끝에 가장 맛있는 요구르트를 드디어 만들어 냈다. 바로 사과즙을 넣은 요구르트다!

기어이 최고의 맛을 찾아냈는데 노야네 식구만 먹고 끝낼 수는 없는 것!
할머니는 큰 통에 요구르트를 만들어 여러 친척 집에 보냈다. 하루면 도착하는 놀라운 우리나라 택배 서비스가 큰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친척 집 뿐아니라 이웃집에도 맛을 선보였다. 모두들 맛있다며 아주 좋아했다. 공짜라서가 아니라 정말 맛있을 것 같다. 사과맛 요구르트라니!!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박람회에도 다녀오셨다. 그곳에서 연 시식회에서도 요구르트의 반응은 끝내줬다. 너무 무리한 일정으로 할머니가 잠시 자리 보전을 하시긴 했지만 희소식이 들려왔다. 요구르트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아픈 할머니가 기운 차리고 벌떡 일어나게 만들만한 소식이 아닐까.

친척들과 이웃들도 모두 맛있다며 사먹고 싶다고 했다. 어떤 식품 회사는 아주 많이 주문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할머니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노야네는 공장을 짓기로 했다. 요구르트를 대량 제조할 수 있는 공장 말이다.그렇게 해서 공장을 운영한 지는 벌써 일년이 되었다. 안 그래도 바빴던 노야네 집이 얼마나 더 바빠졌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자 이제 노야네 목장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살펴 보자.
목장에서 소를 돌보는 일은 할아버지가 전담하신다. 먹이도 주고, 소들이 노는 운동장도 청소한다. 소똥으로 거름도 만들고~
소들이 노는 '운동장'에 눈길이 간다. 사람도 좁은 집에서 갑갑함을 느끼듯이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소는 체격도 아주 크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공간도 넓다. 그런 소를 따닥따닥 붙여놓고 풀이 아닌 사료, 그것도 동족을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이니 미친 소가 나오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아픈 소가 생기면 바로 달려가신다. 새끼를 낳을 때는 산파 역할을 해주시고, 절룩이는 소가 있으면 바로 치료를 해주신다. 배탈이 난 소에게는 붙잡아 두고 약을 먹이신다. 할아버지는 젖소들에게 의사샘과 마찬가지다.

소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소들이 놀고 쉬고 자는 운동장에는 왕겨를 깔아준다. 소똥을 바로바로 치워주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더러워진다. 그러면 왕겨를 싹 걷어내고 깨끗한 겨를 새로 깔아준다.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는 소들이 행복해지면 젖도 더 잘 나오고 더 영양가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소똥과 왕겨를 섞어서 헛간에 쌓아 두신다. 이렇게 하면 역시 영양가 높은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뭐, 냄새는 아주 대단할 테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거름은 노야 아빠가 쓰신다. 아빠는 소들이 먹을 풀을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노야 아빠는 농부라고 해야 할까?
아빠는 트랙터로 밭을 가신다. 그러면 거름과 흙이 잘 섞이고 풀이 뿌리를 잘 내린다.
씨가 골고루 자리잡도록 땅을 곱게 고르고, 씨를 뿌리고 나면 흙을 살짝 덮는다.
그렇게 여섯 달쯤 보살피면 풀이 노야 키만큼 자란다. 세상에! 그렇게 크게 자랄 줄 몰랐다. 소가 먹을 풀이 많이 필요한 곳에서는 이렇게 풀을 재배하는구나!

풀을 거두는 날, 트랙터가 바삐 움직인다. 첫번째 트랙터가 풀을 눕히고 잘게 썰면 두 번째트랙터가 둥글게 만다. 그러면 세 번째 트랙터가 비닐로 꼭꼭 싼다. 오, 시골길 지날 때 논에 쌓여 있던 둥근 비닐이 이거였구나! 오늘 처음 알았다. 그동안 무척 궁금해 했는데, 같이 보던 다른 사람들도 그게 뭔지 몰랐나 보다.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시 촌뜨기는 이게 문제다. 당최 농사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ㅜ.ㅜ

그런데 이 비닐 속에 비밀이 하나 있다. 풀이 비닐 속에서 누렇게 익어가면서 발효가 되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비밀은 젖산균이다. 요구르트에 넣는 그 젖산균을 비닐 속에 넣었던 것이다.
잘 익은 풀이랑 마른풀이랑 볏짚과 영양제를 섞어서 소들을 먹인다. 풀을 먹은 소는 맛있는 젖을 내고, 똥을 눈다. 그 똥이 다시 거름이 되어 풀을 잘 키우고, 소를 살 찌운다.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순환이다. 버릴 게 하나 없는 노야네 목장 시스템이다.

해드 뜨기 전 할머니는 불을 환하게 밝히고 소젖을 짜신다. 젖 짜는 방에 들어온 소들은 줄지어 서서서는 탱탱하게 부푼 젖을 짜 주기를 기다린다.
할머니는 젖꼭지를 깨끗하게 삶은 헝겊으로 꼼꼼히 닦고는 빨대 네 개가 달린 기계를 젖에 끼우신다. 그리고 탱탱하게 불은 젖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짠다. 그러면 소들은 시원해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젖은 저녁에도 한 번 더 짜야 한다. 하루에 두 번은 짜줘야 하니 굉장히 바쁠 것이다.
막내 고모가 시골에서 목장을 하시는데 가족 행사에도 한번 나오시질 못한다. 하루도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건비를 따로 쓰지 않는 한 바깥 나들이는 택도 없을 듯하다.

자, 이렇게 짜놓은 젖을 삼촌이 요구르트 공장으로 가져가신다. 요구르트를 만들기 전 먼저 통 안을 깨끗이 세척하는 게 중요하다. 커다란 통 안으로 심지어 직접 들어가서 닦는다. 금방 상할 수 있는 성질의 요구르트니 날마다 깨끗하게 닦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우유가 닿았던 기계들도 싹싹 닦고, 우유가 지나가는 길은 뜨거운 물로 소독한다. 노야도 열심히 삼촌을 도와서 일을 한다.

세척이 끝나면 소젖을 큰 통에 넣고 뜨겁게 데워 균을 없앤다. 그림을 보니 통 주변으로 뜨거운 물이 지나면서 우유를 데우고, 찬물이 지나가면서 우유를 식힌다. 우유에 물이 섞이면 안 되니 통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을 것이다.
식는 과정이 끝나면 젖산균을 넣고 다섯 시간을 기다린다. 기계 작업이어서인지 8시간씩 기다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완성된 요구르트는 포장 작업을 통해서 판매용으로 거듭난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와서 요구르트를 병에 담고 상표를 붙이고, 날짜도 찍어서 상자에 담는다. 지역에 일자리까지 창출했으니 노야네 목장과 요구르트 공장은 얼마나 대단한 기여를 한 것인가. 괜히 독자인 내가 으쓱해진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택배 차가 도착한다. 모두들 나와서 요구르트를 차에 싣는다. 이게 액체 종류이니 얼마나 무겁겠는가. 택배 기사님께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일손을 거드니 일도 빨리 끝난다. 역시 택배 업체까지 일거리를 늘려준 노야네 목장!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요구르트는 대한민국 곳곳으로 전해졌다. 강화도, 파주, 인제, 강릉, 횡성에도 가고,
태백, 단양, 아산, 안성, 이천, 수원에도 가고~
청양, 공주, 안동, 경주도 지나치지 않는다.
제주도, 진도, 칠곡, 광주, 남원, 전주까지 구석구석 안 가는 곳이 없다.
이 모든 지역들을 소개하면서 해당 지역의 특산물도 같이 등장한다.
초등 고학년 정도라면 사회 시간에 들어보았을 이름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역 특산물이 맞는지 그림을 보면서 확인하는 작업이 재밌었다.
역시 어릴 때 배운 게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가 보다. ^^

요리 잘하시는 할머니는 요구르트만 만드시진 않는다. 밭에서 따온 시금치와 단호박, 무화과와 고구마를 가지고 케이크도 만드신다. 우와아!!!!
요구르트 스펀지 케이크는 그 옛날 내가 자주 만들던 밥통 케이크를 연상 시켰다. 한동안 밀가루 가지고 씨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밀가루 언제 떨어지냐고 아우성치던 엄니의 한숨까지....;;;;

시금치 케이크는 어떤 맛일지 잘 상상이 안 간다. 작가님은 아주 맛있다고 쓰셨는데 정말일까? 칼국수 중에 주황색, 초록색 색깔을 낸 면이 있다. 그때 초록색 면발은 시금치로 만든 거라고 들었는데 정말인가? 본연의 맛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다만 초록 빛깔을 내는 정도라면 그 비쥬얼은 또 먹음직스러울지 궁금해졌다. 따끈따끈한 빵을 생각하면 나름 맛있어 보일지도......

단호박 치즈 케이크! 오오오,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오늘 돌잔치에 다녀왔는데 단호박은 먹지 않았다. 며칠 전에 급식으로 먹었으므로 굳이 배부른 메뉴는 사양한 것이다. 근데 이 밤중에 막 떠오르네...;;;;

옥수수 막대 과자! 과자까지 만드시다니, 할머니는 진정한 마이더스의 손!
무과과 잼 땅콩 과자도 있다. 아, 정말 다채로운 메뉴들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고구마 비스킷도 대령이요~
그야말로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들이 아닌가!
이렇게 만든 것들은 칼로리도 그다지 안 높을 것만 같다. 시판되는 제품들과는 DNA가 다르다! 놀라워라!

그런데 대체 이렇게 많은 케이크와 과자는 왜 만든 것일까?
오늘이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젖소와 함께 생활한 지 30년이 된 날이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젖소와 함께 기념해야 하는 법!
손님들도 초대했다. 요구르트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과 택배 기사님, 그리고 노야네 가족이 모두 모였다. 결국 마을의 이웃들이 뭉친 것이다.
손님들도 센스 있게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그리고 초대한 손님들에게 한껏 준비한 음식들을 내오는 노야네 가족들. 머리에 두른 장식이 꼭 아메리카 원주민을 떠올리게 한다.
손님들만 먹는 것은 아니다. 제일 공이 많은 젖소들에게도 상 주는 걸 잊지 않으신다. 할머니와 노야는 버터와 당근, 감자와 고구마, 사과랑 들깨를 젖소들에게 조금씩 먹였다. 그러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우와, 그런데 소들이 저런 것도 먹는구나. 놀랍다!!!

노야의 학교 친구들도 목장에 왔다. 보름만에 보는 친구는 어쩐지 조금 자란 것 같다. 보다 성숙해진 느낌!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다. 할머니가 솜씨를 부린 갖은 음식들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 케이크에 과자에 우유라니! 환상의 조합이 아닌가.

마을 안에서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일할 공간이 있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공부도 하는 이러한 흐름이 참으로 이상적으로 보인다. 요즘처럼 대기업이 지방까지 모두 독식해버린 시스템에서는 지역에서 만들어진 돈이 서울로 그대로 이동하는 게 일반화되어 있다. 뭐 이뿐인가. 지방에서 만든 전기도 서울로 서울로 이동한다. 밀양의 송전탑이 새삼 떠오른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노야네 목장과 공장,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 정겹고 훈훈하다.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책 속 이야기이다.
요구르트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주었다. 사막의 유목민들이 우연히 발효된 우유를 알게 된 게 그 시작이었다. 몽골 관련 책들을 보면 우유를 이용한 엄청나게 다양한 유제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유제품 아니어도 우리와 무척 비슷한 식생활을 찾을 수 있는데 그걸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추천!!

우리나라는 유난히 발효 음식이 발달한 편이다. 또 어떤 발효 음식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힌트는 우리가 아주 자주 먹는다는 것!!

소에 대한 이야기도 실었다. 일하는 소 하면 황소! 젖을 내주는 젖소! 고기를 내주는 육우가 그것들이다. 도무지 버릴 게 없는 소에 대해서도 얘기해보면 좋겠다. 가죽과 뿔, 심지어 피까지! 정말 알뜰하게 소를 사용하는 인간들이다. 이게 소한테는 좋은 게 아니겠지? 채식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좀 미안하긴 하다.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동물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줄 만큼의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 동물들 역시 깨끗한 환경을 좋아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한다. 소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그렇다. 뭐, 인간도 당연히 빠질 수 없고!

나 역시 계속 혼자 자버릇 하니까 이제 누구랑 방을 같이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나보다 훨씬 훨씬 몸집이 큰 소들은 오죽하겠나. 그런 면에서 노야네 목장은 참으로 훌륭하다!

마지막에 작가님 이야기도 나왔다. 꽤 긴 편인데 그림 그려지듯이 아주 자세하게, 생동감 있게 이야기에 전달되었다. 작가님 글솜씨가 끝내줍니다! 작품으로 뭐가 있나 살펴보니 내가 읽은 책들도 꽤 됐다. 어쩐지 더 반갑다.^^

도움 주신 분들 이름도 나오는데 취재를 간 목장 이름은 '평촌 목장'이다. 그리고 세상에! '신노야'라는 이름도 있다. 목장집 사람인가 보다. 진짜 노야 씨는 이 책을 보고 얼마나 기뻤을까. 노야 씨가 아이인지 어른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또 괜시리 반갑기만 하다. 나랑 이름이 비슷해요. 아주 많이!!

책의 양장본 표지 안쪽 그림이다. 시작할 때의 그림은 밑그림 정도인데, 뒷장의 안쪽에는 정확한 위치까지 이름을 써가며 적어주었다. 작가님 스케치 밑그림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 보라고 실어주신 거겠지만, 쫌! 반가웠다.^^

노야네 목장은 무척 바쁘다. 다들 자기가 해야할 몫이 있고, 그게 서로 맞물려서 잘 굴러가기 때문에 바빠도 여유가 있고 활기차며, 무엇보다도 영양가가 있다. 가업을 이어서 기업을 이끄는 것도 마음에 들고, 식구들이 얼굴 붉히지 않고 협업하는 것도 보기 좋다. 아이가 보름이나 집안 일을 거드는데 학교 가서 공부하라고 내쫓지 않은 것도 흐뭇했다. 살아있는 교육을 현장에서 직접 배우는데 어딜 가라는 말인가. 이런 게 참교육이지!

'일과 사람' 시리즈는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그 일의 속성을 편안하고도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일과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다가가기가 쉽고 일과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보다 쉽고 재밌다. 즉 재미와 정보를 함께 제공해 주니 얼마나 좋은 시리즈인가.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사계절은 '기획'에 있어서는 늘 발군이었다. 이 책도 그렇다. 우리 조카의 책장에도 시리즈로 묶여서 꽂혀 있는 것도 그 증거다. 한 번 사면 이어서 계속 사게 만드는 놀라운 힘! 그리고 독자를 만족시키는 놀라운 저력!

조금 묵혀 두었다가 8월 조카 생일에 선물로 줄 생각이다. 가족들이 목장 체험이나 견학을 다녀올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나중에라도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조카는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반가워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
유익한 독서였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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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17: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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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5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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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0 05: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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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0 1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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