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869 호/2013-05-20

[FUTURE]미래 신소재, 군대를 더 강력하고 스마트하게!

 

2013년 KISTI의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미래기술은 KISTI에서 발간한 <미래기술백서 2013>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개발 중이며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기술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미래기술이 상용화 된 10년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또 이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기는 코앞에 북한땅이 보이는 강원도 철원의 전방 부대. 2023년이 됐는데도 아직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지 않았다. 남북한 지도자들이 심심할 때마다 대화를 하고, 만나고, 통일하자고 합의는 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 동안 서로간의 불신의 골이 깊긴 깊었나 보다.

하지만 저출산·초고령화 사회에 군대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산업현장에서는 일할 젊은이가 턱없이 부족한데 평시에 젊은이들을 무조건 군대로 보내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없다. 해답은 소수정예! 2018년부터 대대적인 군비 축소와 사병 감축으로 군인의 수는 약 60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3분의 1 가량 줄었다. 그러나 전체 군인 수를 줄이는 대신 첨단 전력 장비 도입과 구조 개편을 통한 군의 정예화로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고 있다. 특히 장교, 부사관 등 군 간부 비율을 25%에서 80%로 크게 늘려, 직업군인과 전문인력 중심으로 군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군대에서 내무반이라는 단어는 이제 옛말. 단체 생활이라는 미명하에 군대의 온갖 추억과 사고(?)의 근원이었던 내무반이 사라지고 군인들도 2인 1실의 기숙사 같은 숙소에서 생활하게 됐다. 평시에는 6시면 군 업무를 마치고 각자 숙소에서 고참이나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부나 자기계발 또는 휴식을 맘껏 취할 수 있게 됐다.

이덕재 중사. 올해 나이 25세. 군대 온지 6년이 지났다. 중사란 계급은 군대 내에서 핵심적인 위치. 군대의 실무를 도맡아 하면서 신참들을 잘 가르치고 다독여야 할 책임이 있다. 이덕재 중사는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먹기 위해 줄을 섰다. 플라스틱 식판에 밥과 국, 고기반찬과 채소를 담고 자리를 잡았다. 뭐든 일을 끝내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저녁식사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다.



식사를 다하고 이 중사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수저와 식판을 그대로 버린다. 요즘 수저와 식판은 모두 플라스틱 대체 신소재(환경친화형 플라스틱 소재)¹⁾로 만들어졌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음식쓰레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기 때문에 따로 들고 다니거나 씻을 필요가 없다. 군대처럼 늘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곳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숙소 및 모든 군 시설의 창문에는 자가세정 기능을 갖춘 펩티드 숲(forest of peptides)²⁾이 코팅돼 스스로 먼지와 수분을 제거하는 능력이 갖춰져 별도 청소가 필요 없게 됐다. 특히 창문마다 태양전지 패널이 설치돼 있어 웬만한 전기는 군 자체적으로 생산·조달하고 있다. 옛날의 태양전지 패널은 매일 닦고 씻지 않으면 이물질이 껴 태양에너지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펩티드 숲이 코팅된 태양전지 패널은 스스로 청소가 돼 에너지 효율이 매우 높다. 장병들은 점호나 생활검열이 있을 때마다 창문을 청소하던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좀 더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군인들의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군인의 상징인 군복은 강철보다 20배 튼튼하고, 방탄복 소재인 케블라 섬유보다 4배 강한 거미실크³⁾로 만들어졌다. 거미가 거미줄을 만드는 원리를 규명하고 이를 모방·활용해 대량생산에 성공했는데, 정말 거미줄처럼 가벼워 아무리 힘든 훈련과 행군을 하더라도 체력을 아낄 수 있다. 특히 전투 시 적의 총탄이나 포탄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도록 제작됐다.

게다가 군복에는 상상을 초월한 또 하나의 첨단 기술이 숨어 있는데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스마트 섬유 기술⁴⁾이 바로 그것이다. 환경대응 또는 자기감응 기능을 갖춘 섬유로서 섬유나 의복 자체가 외부자극을 감지하고 스스로 반응한다. 훈련 시 땀이 많이 난 경우 습도를 측정하고 통풍, 건조 기능을 스스로 강화한다거나 몸에 체온이 떨어졌을 때 발열 기능을 하는 등 알아서 처리해 주는 스마트 기능이 군복에 장착돼 있다.

2023년에는 그래핀 활용 차세대 반도체 소자기술⁵⁾이 상용화돼 첨단무기에 쓰이고 있다. ‘그래핀’은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연구주제였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기술로 구현된 것이다. 그래핀은 두께가 0.35nm밖에 안 되는데도 강철보다 100배나 강하다. 전기적인 특성도 강력해 상온에서 구리보다 100배 많은 전류를,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 이 그래핀을 이용해 현재 최첨단 초소형 반도체부터 투명하고 구부러지는 터치스크린, 태양전지판을 만드는 등 활용 범위가 광범위하다. 꿈의 신소재 그래핀은 모든 무기의 초경량, 최첨단을 가능케 해 대한민국 군인 하나하나를 최첨단 장비로 무장케 하고, 일당백의 전투 능력을 가지게 만들었다.

2023년. 군대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건강한 신체와 영특한 두뇌를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정되고 부러워하는 직업 중 하나가 됐다. 비록 수적인 면에서는 적지만 첨단무기와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된 군인들이 있기에 국민들은 두 발 뻗고 편안히 잠들 수 있다. 이덕재 중사는 다시 한 번 직업군인으로서 자신의 소명과 의지를 다지며 오늘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미래 기술]

1) 플라스틱 대체 신소재(환경친화형 플라스틱 소재) : 석유 합성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신소재. 생분해성 플라스틱 핵심기술개발을 토대로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화학 플라스틱에 비해 물성이 낮은 점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 새로운 용도를 창출하고 있음. 5~6년 후 기술 실현 예정

2) 자가세정 기능을 갖춘 펩티드 숲(forest of peptides) 활용 기술 : 창문, 태양전지 패널 등에 펩티드 숲을 코팅해 스스로 먼지와 수분을 제거하도록 한 기술. 1~2년 후 기술 실현 예정.

3) 거미실크의 생물 공학적 대량생산 기술 : 강철보다 20배 튼튼하고, 방탄복 소재인 케블라 섬유보다 4배 강한 거미실크가 생산되는 원리를 규명하고 이를 모방·활용해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 기술. 3~4년 후 기술 실현 예정.

4)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스마트 섬유 기술 : 스마트 기능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환경대응 또는 자기감응 기능을 갖춘 섬유로서 섬유나 의복 자체가 외부자극을 감지하고 스스로 반응하는 섬유소재 및 제품. 3~4년 후 기술 실현 예정.

5) 그래핀 활용 차세대 반도체 소자기술 : 기존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는 포스트 실리콘 그래핀 기술. 전자전하 이동 시 산란이 발생하지 않아 이동속도가 빠르며 우수한 열전도로 인한 발열문제 저감 등의 장점을 가짐. 10년 후 기술 실현 예정.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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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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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며 관능적이기까지 하다니! 귀파주는 가게, 나도 가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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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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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했다. 작가 천명관에 대해서 들은 말이다. 몇 쪽 읽어보지도 않고 그말을 수긍했다. 책장이 파라라락 넘어간다. 좀처럼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나도 빨리 읽는다고 착각할 정도로 책장이 넘어갔다. 재미있었다. 심각한 이야기가 나와도 재미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머 감각이 대단했다. 이 놀라운 말빨! 그러니까 대세는 유머일까? 박민규도 떠오르고 성석제도 떠올랐다.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무겁기만 한 책은 재미 없을 것 같다. 부담스러울 수 있다. 심각한 이야기를 진중하게 던질 때에도 가끔은 웃어줄 곳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런 쉼표를 만들 줄 아는 작가들이 인기를 얻는 것 같다.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작가분들께 고마움을 느낀다. 쉬어갈 짬을 만들어 주어서......

 

작품의 화자는 둘째 아들 인모다. 십이 년 전에 만든 영화가 대박으로 망하면서 빚더미에 올랐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으며, 아내와는 이혼했고 보증금 다 까먹고 월세마저도 밀려서 사면초가에 몰렸던 그를 구원해낸 것은 엄마의 전화 한통이었다. 닭죽 해놓았으니 먹으러 오라고 한 그 말은 인모를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 집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인모는 눌러앉아버렸다. 이미 그 집에는 앞서 엄마한테 얹혀 살고 있는 쉰두 살의 큰형 한모가 있었지만, 마흔 여덟의 인모도 물러날 데가 없었다. 둘이 합해서 둘로 나눠도 벌써 평균 나이 오십이다. 거기에 칠순이 넘은 엄마가 계시고, 마흔 다섯의 막내 여동생 미연이 열여섯 딸을 데리고 집에 들어앉았다. 두번째 결혼마저도 깨뜨릴 위기 순간에 말이다.

 

그러니 이미 '고령화 가족'이라는 제목은 설명되었다. 평균 나이 49세. 십년 전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상금으로 마련한 낡은 빌라 24평 집에 이렇게 다섯 식구가 북적이며 살게 되었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할퀴며 버럭버럭 성도 내지만, 그런 자식들을 엄마는 매일 같이 고기를 먹이며 거둬주셨다. 뿐인가? 엄마는 오히려 자식들이 모두 들어와 살고부터 얼굴에서 더 빛이 났다. 자식들을 챙겨주는 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마치 결기라도 보이듯 매 끼니마다 고기를 삶고 굽는 엄마만이 이 집에서 유일하게 웃는 낯이다.

 

이 집에서 가장 많이 배웠고, 또 가장 공부도 잘했다던 영화감독 출신 인모는 그런 엄마가 수상했다. 혹시 잘 먹이다가 마지막에는 고기에 청산가리를 넣고 다 함께 죽자는 의미는 아닐까 의심마저 하면서. 그런 상상이 될만큼 지금 그들의 처지는 기구하고 황량하고 짜증이 났던 것이다. 인생 다 망쳤다고 여기는 인모만 기구했던 게 아니었다. 큰형 한모는 전과 5범이다. 그 중에는 강간미수까지 있으니 죄질이 아주 불량하다. 120kg이나 나가는 거구의 이 사내를 인모는 미워했다. 한심해서 미워했고 미안해서 미워했다. 그가 뭐가 미안해서 미워하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작품 후반부에 가서야 나온다. 그리고 그 대목은 이 책에서 가장 울컥했던 부분 중 하나였다. 그래, 우리는 이런 감정들로 살아가지. 그렇게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변명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지만 사실은 그 죄책감으로 더 스스로를 갉아먹고는 하지. 그게 우리 모습이었어......

 

여동생은 두번의 이혼도 모자라 세번째 남편감을 데리고 왔다. 할머니로부터 삼촌들에 엄마까지, 하나같이 콩가루인 이 집안에서 가출을 결행하는 미연의 딸 민경. 그 과정에서 폭발해버린 미연의 절규가 또 한번 독자의 마음을 울렸다.

 

아마 다들 눈치 채고 있었을 거야. 근데 왜들 모른 척했어? 그때 누군가 따귀라도 갈기면서 욕이라도 하지 그랬어. 아니면 머리라도 깎아서 집에 들어앉히든가. 그런데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씨발, 무슨 가족이 그래? -132쪽

그러니까 나는 이 대목에서 기시감을 느꼈던 것이다. 비단 우리집뿐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군가의 집에서도 보았던 어떤 모습을 확인한 것이다. 그 순간 어찌나 얼굴이 홧홧하던지... 여기서만 그랬던 게 아니다. 앞서 말했던 미안한 마음을 미움으로 바꿔버렸던 인모에게서, 원죄를 끌어안고 속죄하듯 살았던 이들 삼남매의 엄마에게서 한줌씩은 우리 가족의 모습을, 내가 가졌던 마음의 짐을 확인했던 것이다. 바로 이 콩가루 집안 이야기에서.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 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141쪽

 

그랬다. 인모는 이 가족에 대해서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부끄럽고 화딱지가 났다. 그런데, 그 인모가 이 집에서는 가장 우대받으며 산 인생이었다. 본인은 몰랐지만, 알았어도 인정하지 않고, 알려들지 않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가장 많은 배려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가장 이기적이었던 것이 인모 자신이었다. 인모는 그것을 모든 것을 다 잃고, 가족 외에는 가진 게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때에야 깨달았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야.

 

어찌 보면 이 책은 나이 오십줄의 중년 남자의 '성장 소설'일지도 모른다.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기만적이었던 이 사내는 반세기 가까이 살고나서야 자신이 가족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고, 엄마가 무엇에 희열을 느끼는지 당연히 몰랐다. 형 한모가 자신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알지 못했고, 동생 미연이 무엇에 가장 서러워하는지 알지 못했다. 조카딸은, 사실 얼굴도 몰랐고 이름은 당연히 몰랐다. 그랬던 그가 변해갔다. 엄마의 인생을, 엄마의 사랑을 이해해 가기 시작했고, 형에게 빚을 갚고 싶어했고, 여동생과 조카에게도 신세를 갚고 싶어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껏 추켜세웠던 알량한 자존심도 포기했다. 내려놓을 무언가를 가졌을 때에야 그는 제 안에 가진 게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비워내고 나서야 채워지는 제 마음의 그릇을!

 

그리고 사랑을 믿지 않고, 따라서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그가, 뒤늦게야 사랑의 충만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 은총의 세례를 입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줄 알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고, 신으로부터 추방당한 것만 같던 그의 인생에 여명이 들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은 바로 그의 콩가루 가족에서부터였다. 거기가 시작이었다.

 

작품을 재밌게 읽었다. 다음 날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잡아 놓았기 때문에 다 읽고서 자고 싶었다. 다행히 연휴의 시작이었고, 새벽 3시까지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중간에 딴짓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빠져들었다. 많이 웃었고 꽤 뭉클했으며 마음에 묵직한 것들도 여럿 새겨넣었다. 좋은 작품이다. 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원작이 훨씬 좋다. 영화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봐야 한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만 데려다 놓는다고 좋은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니까...;;;;

 

여기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헤밍웨이가 아기였을 때,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나는 버팔로 빌을 몰라요’였다고 한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처음 한 말은 ‘개가 불쌍해’였다고 알려져 있다. 역시 비범한 작가들은 뭔가 달라도 처음부터 다른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뭐였을까? 그것을 말해줄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그것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맘마. -287쪽

 

덧글) 오타 발견했다.

 

257쪽

언덕을 높고 가팔랐다. >>> 언덕은 높고 가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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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5-2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 참 말빨 죽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소설의 그 말빨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나 보네요.
좋은 배우들이 좋은 영화를 보증해주는건 역시 아니였군요.좀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군요.

마노아 2013-05-20 23:33   좋아요 0 | URL
소설에 비해서 배우들이 너무 젊었어요. 소설만큼 망가지지도 않구요. 그런 부분에서 좀 아쉽더라구요.
그리고 작품엠서 인모가 헤밍웨이를 읽으면서 생각하고 나누는 것들이 영화에는 나오지 않으니까 마지막에 좀 생뚱맞은 선언이 되어버리기도 하구요. 결정적으로 결말이 달라요. 영화는 좀 신파로 흘렀어요...;;;;

프레이야 2013-05-2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어요. 책이 좀 늦은 감이 있지요.ㅎㅎ
영화 속 대사를 거의 원작의 글에서 그대로 쓴 부분이 많더군요. 저는 천명관이 이 소설로 처음이에요.
작은딸이 먼저 읽고는 좀 저속한 것 같아,라고 말해서 웃었어요. 아인 영화는 안 봤구요.
욕설이나 뭐 비속어가 하도 많이 나오니 그런 것 같아요.
삶의 너절한 뒷골목을 이해하긴 어린 나이이지요.ㅎㅎ 그렇게 대답해줬어요.
저는 이제 '고래'를 찾아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영화에선 윤제문이 멋졌어요.^^

마노아 2013-05-20 23:34   좋아요 0 | URL
책 먼저 보고 싶어서 개봉하고도 한참 있다가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대사는 거의 비슷한데 짧은 시간안에 소설의 내용을 다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었지요.
저는 영화 속 인물들이 더 망가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충분히 소화하고 빛내줄 배우들인데 감독님이 너무 몸사리지 않았나 싶더라구요.
저도 뒤늦게야 고래를 읽어야겠어요. 고래 소개 받은지도 정말 한참 전인데 말이지요.
윤제문은 늘 멋져요. 배우들은 하나같이 다 좋았건만 원작의 함량에는 아쉽더라구요. ^^;;;
 
내가 미운 날 보리 어린이 25
오승강 지음, 장경혜 그림 / 보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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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운이 소풍날

누나가 아파
병원 가느라
도시락도 못 가져가는 소풍날.

먹을 것이라도
많이 사 먹으라고
어머니가 주신 돈 오천 원.

가만히 계산해 보자.
백 원짜리 과자는 오십 개
이백 원짜리 과자는 스물다섯 개
배가 터질 것 같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재운이 산 것
백 원짜리 공책 스무 권
천 원짜리 연필 두 다스
오십 원짜리 지우개 스무 개.

모두 제 먹을 것만
가방에 가득 싸
어깨에 메고 줄지어 선
아이들 사이에

먹고 싶은 것 참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줄 학용품을 들고
기쁜 얼굴로 서 있는
도움반 아이
재운이 소풍날.-22쪽

다시 옮긴 교실

다 낡아
바람 숭숭 들어오는
슬레이트 교실.

겨울날
우리 교실에
어느 어른 다녀가신 뒤
교무실 옆
새로 지은 교실로 이사 갔다가

봄이 오자
비워 둔 옛날 교실
다시 옮겨 왔어요.

새로운 동무 두 명
함께 왔어요.

새로 지을
새 교실에
들어가기 위해

이곳에 다시 왔다
선생님은 말했어요.

말하는 선생님 얼굴
슬퍼 보였어요.

그러나 우리는 만세를 불렀어요.
유치원과 우리 교실만 있는
외딴 교실.

마음대로 놀 수 있어 좋았어요.
눈치 보지 않고
소리 지르며
뛰어놀 수 있어 좋았어요.-25쪽

내가 미운 날

내가 술래일 때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다가도
저희들이 술래 되면
나를 바보라고 놀리며
술래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럴 때 나는 정말 바보처럼
히히 웃고 말지만
참지 못하고 울고 달려들 땐
되레 저희들이 울며 집에 갑니다.

내가 더 많이 맞었어도
바보 자식이 남의 아들 때렸다고
아주머니들은 우리 집에 달려와서
우리 엄마까지 울려 놓고 갑니다.

그런 날 엄마는
내 등 어루만지며 섧게 웁니다.
너는 아무 죄 없다며
다 내 죄라시며 섧게 웁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우리 엄마 정말 죄 없습니다.
놀려도 끝까지 참지 못한 내가 죄 있습니다.
끝까지 참지 못한 내가 밉습니다.-46쪽

걱정

아침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너희에게
과자 사 준다고 따라오라면
어떻게 할래?"

모두가 안 따라가겠다 하는데
수정이는 따라간다 합니다.
과자 먹고 싶어 따라간다 합니다.

"수정아, 따라가면 집에 못 온다.
엄마 아빠 못 본다."
따라가면 안 된다고
선생님과 우리들이 아무리 말려도

"그래도 간다. 그래도 간다."
가겠다고 울면서
수정이는 말합니다.
악을 써 가며 말합니다.

우리는 걱정이 되어
정말 걱정이 되어
공부가 끝난 뒤
줄을 지어 집에 갔습니다.
수정이 앞세워 함께 갔습니다.-51쪽

수정이 저만 아는 말

수정이 학교에서 하는 말은
네 가지밖에 없다.
네 가지 말
하지 않고 아껴 둔다.

동무가 울고 있을 때
동무가 저를 귀찮게 할 때

수정이 저만 아는 말
아껴 둔 말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메타비타 주세요
치이토오스
죽도시장
태엑시.

수정이 아껴 둔 네 가지 말
무슨 암호와도 같은
저만 아는 말이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다.-74쪽

아무도 쓰지 못한 이름

아침 자습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을
적어 내도록 하셨다.

그러나 나는 쓰지 못했다,
할아버지 이름도
할머니 이름도.

옆을 둘러보니
경식이도 아름이도
연필을 쥐고
겸연쩍게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외국 가수들 이름은
노래만 들어도
척척 알아맞힐 수 있는데

야구 선수들 생일도
이름만 대면
척척 대답할 수 있는데

우리들은 아무도 몰랐다.
자기 할아버지 이름은
자기 할머니 이름은.

시험지를 모아 쥔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씁쓸한 얼굴로
우리들 얼굴을 바라보셨다.

무슨 말씀이라도 하실 듯한
선생님 얼굴을 보며
우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꾸만 얼굴을 감추고 싶었다.-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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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꼭대기 까치네 집 (CD 2장 + 손악보책 1권) - 임길택 노래상자
임길택 시, 백창우 곡 / 보리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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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우 아저씨네 노래창고 중 임길택 노래 상자다.
제목은 나무꼭대기 까치네 집
악보와 사진이 담긴 책이 하나 들어 있고, 시디가 두장 들어 있다.
그 자체로 시집이며 사진집이고 또 악보집이다.

이것도 폰트일까? 백창우 아저씨 노래 상자 뿐아니라 다른 노래 책도 이렇게 줄 그어 있고, 꼭 이런 글씨로 쓰여 있다. 손 글씨인가 폰트인가... 틀린 글자 지운 흔적까지도... 궁금하다.
백창우 아저씨는 엄청나게 많은 노래를 만들었지만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가수들도 정규 앨범 열 장이면 노래가 100곡이 넘어가고 비정규 앨범까지 포함하면 노래가 엄청 늘어나는데 가사 다 모를 것 같다. 곡조도 조금씩 닮을 수도 있고...
백창우 아저씨는 노래가 정말 많으니까 다 기억하기는 아무래도 무리!

임길택 선생님 미소가 지나치게 해맑아서 슬퍼진다.
다시 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그랬다.
저렇게 맑은 웃음 짓는 분이 왜 그리 일찍 세상을 떠야 했는지... 다시금 안타까움이 솟는다.


나 혼자 자라겠어요 - 임길택 60p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어디서 죽는 줄 모르는
하늘의 새
바라볼수록 신기해요.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어요.
나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투병 중이실 때 사진이 아닐까 싶다. 무척 초췌하다.
마른 얼굴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완행버스 -임길택 62p

아버지가 손을 들어도
내가 손을 들어도
가던 길 스르르 멈추어 선다.

언덕길 힘들게 오르다가도
손 드는 우리들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우리 마을 지붕들처럼
흙먼지 뒤집어 쓰고 다니지만
이 다음에 나도
그런 완행버스 같은 사람이
되고만 싶다.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만 싶다.

'산골 아이' 읽다가 예전에 읽은 '들꽃 아이'를 다시 찾아보았다.
2009년에 읽었으니 4년 전이다.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흘러버렸다.
임길택 선생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선생님의 부재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한다.
아무래도 너무 이른 나이에 가셔서 그런 것 같다.
좀 더 천수를 누린 선생님들은 이렇게까지 서럽지는 않은데 말이다.

부추꽃이 이렇게 예쁜 꽃이었구나.
검은 배경 속에서 더 하얗게, 더 청초하게 피었다.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임길택 67p

빗물에 패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하실까요.

대구를 이렇게 잘 맞출 줄이야.
저 시집 읽을 때도 이 짧은 시에 감탄하며 눈물 흘렸지. 너무 슬퍼...

논두렁 구불구불 개여뀌 달맞이꽃 도랑물...
발음하는 것마다 예쁘다. 우리 말 참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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