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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 감독 영화가 갈수록 편해지고 쉬워지는 느낌이다. 재밌기로 치면 '하하하'가 더 신났지만 이번 작품도 꽤 좋았다. 꿈의 꿈의 꿈이 반복되고 그 사이사이 진짜 현실 이야기가 겹치는데, 해원이가 꿈을 꾸는 건지, 꿈이 해원이를 꾸는 건지(응?) 아리송송하게 연출한 것도 재밌었다.

 

아마도 홍상수 감독 작품 출연자 중 가장 미모의 배우였을 정은채.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엄마와는 오랜만에 만났고, 그래서 모녀 사이인데도 어색함이 흐른다. 촬영 당일에 쪽대본을 주고 사전에 대본을 주지 않는 홍상수 감독이니 자연스러울래야 자연스러울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오래 못 봤고, 앞으로도 오래 못 볼 엄마와 헤어진 해원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해원은 외로웠고, 그래서 곁에 누군가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불러낸 교수님은 해원의 불륜 상대. 둘은 술 한잔 하려다가 같은 과 학생들과 마주친다. 둘 사이가 들켰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교수 이선균과 그런 이선균 때문에 더 외롭고 힘든 해원이. 해원은 마음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어떤 바람을 가질 때마다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유명 감독의 사인도 받고, 갈팡질팡 어쩔줄 몰라하는 선균 대신 처음 보았는데도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오며 함께 결혼할 여자를 찾는 또 다른 교수가 나온다. 이선균이 그래줬으면 하고 바랐던 마음이 그렇게 투영되었을 것이다.

 

홍감독은 촬영 직전에 전화해서 참여할 수 있는 배우들을 불러 쓴다고 했다. 장소 선택도 그랬을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찍기로 한 날 예상하지 못했던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고, 그 안개 덕분에 마지막 부분은 해원의 꿈속 풍경이 더 그럴 듯하게 묘사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추가 효과다.

 

유준상과 예지원의 조합은 여전히 재밌었다. 두 사람이 하하하에서도 커플이었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캐릭터였는지는 시간이 흘러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튼 이쪽도 불륜 커플인데 이선균과 은채 커플과 달리 수년에 걸친 노하우(?) 혹은 연륜으로 불안불안하지는 않다. 혹시 조금은 불행할 수 있어도. 깃발이 흔들려서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말한 예지원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순간 감독은 시인으로 보였다. 또 사직동의 오래되고 작은 책방에서 내고 싶은 만큼의 돈을 내고 책을 가져가라고 했을 때 "그러면 내가 너무 드러나잖아요." 라고 말을 하는 해원의 대사도 좋았다. 매 순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모두 모아보면 그것이 나라는 인간의 총체가 될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의 총합이 나이듯이...

 

이 영화 볼 때 재밌는 일이 있었다. 대학로cgv 무비 꼴라쥬에서 보았는데 시작 전에 비비안 광고가 나왔다. 모델은 소지섭이었고 그가 "거기 D에 14번!"하고 부르는데 마침 내가 거기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던진 광고 문구지만 꼭 나한테 말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왈랑왈랑~

 

누구의 딸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해원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솔직했고, 자신의 감정에 진실했다. 도망가고 핑계대고 변명하는 남자보다 더 당당한 해원. 이름도 참 예쁘다.

 

 

 

 

 

 

 

 

 

 

 

 

★★★★

 

18. 링컨

 

 

아, 이 영화는 정말... 슬프다. 무려 150분에 달하는 영화를 본 이날, 난 시간이 그때 밖에 없었고 사실 무척 피곤했다. 그렇지만 영화가 너무 길어서 이날 밖에는 볼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피곤해도 보자~하고 극장에 입장했는데.... 입장만 하고 영화는 거의 보지 못했다. 150분 중 앞에 10분과 뒤에 20분을 빼고는 나머지 두시간을 내리 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말은 알지만 영화를 봤다고 하기는 무척 무리가 있는....;;;;

 

 

이 작품으로 또 다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링컨은 키가 몹시 컸다고 해서 어떤 배우가 연기를 할지 궁금했었다. 연기할 때 혹시 위로 올라가서 했을까? 뭐 이런 상상을 했는데, 그럴 필요 없이 배우 자체가 워낙 키가 크다. 187이던가. 사진만 봐도 그의 훤칠한 키가 확 드러난다. 수염 기른 마른 얼굴도 진짜 링컨을 연상케 한다. 캐스팅 잘 한 듯.

 

영화 마지막에 최종 투표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줄다리기를 무척 긴장감 있게 보여주었다. (내가 본 부분에서...;;;;) 토미 리 존스는 링컨의 반대편에 서 있었던 사람처럼 보였는데 투표를 위해서 연설하는 장면이 제법 인상 깊었고(너 같은 놈도 말할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의 소중함... 뭐 이런 느낌의 이야기), 또 마지막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는 장면은 반전처럼 느껴졌다. 확실히 연기 잘하는 관록의 배우들이다.

 

어쨌든, 난 이 영화를 봤지만 봤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므로 평점은 생략하겠다. 뭐 전체 영화의 20% 정도밖에 보질 못했으니 할 말도 없다. 너무 길어서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또 졸지 않으란 보장도 없다.^^;;;

 

 

 

 

 

 

 

 

 

 

 

 

 

19. 웜바디스

 

좀비 영화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지만, 꽃미남 좀비가 나온다면 다시 생각해볼 의향이 있다.^^

 

니콜라스 홀트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나왔다고 해서 찾아보니까 비스트 역이라고 한다. 발가락이 손가락으로 되어 있던 그 친구 말하는 건가? 배역을 알려줘도 기억이 가물가물. 그때는 별로 인상에 깊게 남지 않았나 보다.

 

웜바디스는 너그러움이 필요한 영화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지나치게 말이 안 되어서 마치 순정만화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게 핵심이다. 그냥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이런 느낌으로 예전에 아주 재밌게 보았던 영화로 '어거스트 러쉬'가 있다.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지나치게 겹치는, 판타지 같은 영화였지만 보는 내내 행복했던 영화였다. 개인적으론 그 영화가 훨씬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의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말은 안 되지만 풋!하고 웃음이 나오고 장면장면 꽤 좋은 컷들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심장이 뛰고, 다시 사랑을 알게 되는 좀비라면, 다시 인간이 될 자격쯤 있는 것 아닐까. 비록 그 상대 여자가 자신의 남자 친구 뇌를 먹은 좀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영화는 무척 아날로그적 감성을 건드린다. 엘피 판을 틀어주면서 음악을 즐기는 좀비라니, 이거 완전 여심 자극용 아닌가. 제일 근사했던 장면은 도망치던 둘이 쫓기다가 수영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다. 둘이 같이 손잡고 동시에 뛰어내린 게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안고 뒤로 떨어진 것이다. 물이 얼마나 깊을 지도 알 수 없고, 떨어지면서 어떤 위험이 또 있을지 알 수 없는 순간, 남자는 여자를 꼭 끌어안고 최대한 보호하면서 뛰었던 것이다. 그 부분에서 정말 심장이 쿵쿵!!

 

 

창백한 얼굴에 혈색이 돌고, 혈관 자국도 지운 R은 근사한 미소년으로 돌아왔다.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 자체로 그를 사랑해주는 그녀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름으로 R 괜찮지 않은가. 내 발음으로는 잘 안 굴러가지만...

 

앗, 지금 검색해 보니 여주인공 아빠로 나온 장군이 존 말코비치였다. 정말 몰라봤네. 세월에 장사 없다. 끙!

 

 

 

 

 

 

 

 

 

 

 

 

 

★★★

 

20. 파파로티

 

이야기의 진행과 결말까지도 무척 뻔할 거라 여겼고, 실제로도 정말 뻔한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 영화는 대체로 중간 이상은 늘 먹고 들어간다. 음악 자체가 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제훈은 군대 가기 전에 영화를 몇 편이나 찍은 것일까. 그가 군대 갔다는 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

 

건달로 나올 때의 모습과 학생으로 나올 때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8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서른 채웠는데 여전히 교복이 잘 어울리는 앳된 얼굴이다.

 

 

그나저나 건달들은 왜 꼭 실크 소재 셔츠를 입을까나? 뭔가 이유가 있으려나??? 

 

한석규의 연기는 베를린보다 이쪽이 더 좋았다. 국정원 요원보다 시골 예고의 꼬장꼬장 선생님이 더 어울린다.

 

 

 

조진웅은 큰 비중이 아니었는데도 참 좋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분노의 윤리학'에서도 같이 나왔구나. ㅎㅎㅎ

강소라 연기는 좀 많이 부족했고, 오달수 연기는 늘 똑같지만 여전히 잘 어울린다.

 

작품에서 부른 '네순도르마'보다 '행복을 주는 사람'이 더 좋았다.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여러 알람 중 하나가 이 노래다. 마지막에 부르는 버전은 강요셉 혼자 부른 것이었는데, 한석규와 같이 부른 버전보다 역시 프로가 솔로로 부른 게 더 좋았다. 이제훈은 립싱크 하느라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목에 핏대 세워가며 불렀으니 말이다.

 

 

 

유튜브에서 강요셉 버전을 못 찾았는데 네이버 어느 블로그에 노래 올려진 것을 보았다. 퍼오기가 안 되어서 주소만 남긴다.

 

http://cafe.naver.com/bokmchurch/9644

 

몇 주 전에는 불후의 명곡 2 '해바라기' 편에서 알렉스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세련되게 편곡 그 노래도 꽤 좋았다. 그렇지만 나는 강요셉 버전이 갑!

 

이 영화를 시작으로 4월에도 연이어 음악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역시 음악은 늘 감동을 주는 아이콘이다. 음악 없는 세상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악기 연주하는 사람도 부럽지만 언제나 최고로 부러운 것은 역시 노래 잘하는 사람. 아, 어제 못 본 불후의 명곡 2 다시보기로 봐야겠다. kbs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

 

21. 장고-분노의 추적자

 

 

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라고 시작하는,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영화가 생각난다. '곰 같은 힘이여 솟아라!' 뭐 이런 구호를 외치는 주인공 장고가 주인공이었다. ㅎㅎㅎㅎ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분노의 추적자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피가 철철 흐르는 영화였다. 피 콸콸 장면에서 미학적 흥분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타란티노 감독은.

 

남북전쟁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현상금 사냥꾼으로 변신한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과 그에게 도움이 되면서 파트너가 된 장고(제이미 폭스)가 장고의 아내를 되찾아오기 위한 활약이 전체 내용이다.

 

 

전작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나쁜 독일인으로 나왔던 크리스토프 왈츠는 이 작품에서 좋은 독일인으로 나오는 게 재밌는 역설이다. 연기도 훌륭했다. 왈츠가 나오는 작품 중에서 별로였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뭔가 뚝심있는 배우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악역으로 나온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정한 악역은 옆에 있는 사무엘 루이 잭슨에게 넘겨줘야 했다. 이래서 때리는 시엄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미운가 보다. 영화에서 제대로 분노 지수 올려주었다.

 

 

악역 오브 악역의 자리는 빼앗겼지만 여전히 근사한 배우 레오! 다음 달에는 위대한 개츠비로 날 만나러 와줄 것이다. 그 전에 소설부터 봐야 하는데....(사두고 못 읽은 무수한 책 중의 하나...;;;;)

 

 

이름이 뭐냐고 묻자 장고라며 스펠링 하나하나 불러주던 장면이다. 몰랐는데, 여기서 오른쪽에 나온 배우가 왕년의 장고였다고. 의도적인 연출인가 보다. 하하핫!

 

내 친구 중에 저기 장고 역의 제이미 폭스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 있는데 영화 보는 내내 너무 닮아서 계속 깜딱깜딱 놀랐다.

 

이 영화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영화였지만, 거부감은커녕 시각적으로도 아주 아름답게 보였던 영화로 '렛미인'이 있었다. 리메이크작 말고 스웨덴 작 렛미인 말이다. 아마도 추구하는 성향이 다른 거겠지만, 타란티노의 피 철철 미학은 내게 어떤 짜릿함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의 작품에는 연기 잘하는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므로 티켓이 아까울 일은 없다.

 

 

 

 

 

 

 

 

 

 

 

 

★★★☆

 

22. 연애의 온도

 

헤어지고서 다시 시작한 연애를 여자 감독이 찍었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때마침 드림팩토리 회원 중 한분이 CGV 근무해서 시사회에 초대해 주셨다. 덕분에 언니와 함께 가서 재밌게 보고 옴. ㅎㅎㅎ

 

 

'굿바이 솔로' 때부터 연기 잘한다고 느꼈던 김민희는 '화차'에서 정점을 찍었고 이 영화에서도 무척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민기를 좋아하지만 연기만 보면 김민희 승!

 

영화는 시종일관 빵빵 터진다. 현실성은 무척 떨어지지만(아무리 정규직이어도 직장에서 저렇게 물의를 일으켰는데 저렇게 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그 은행이 차티스트~ 은행이라면 더 설득력이 떨어짐!!)

 

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수시로 부딪혔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연인이 생길 기미가 보이자 안달복달 한다. 결국 다시 시작해보기로 하지만 처음에 헤어졌던 이유로 또 헤어지고 만다. 내가 여자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보기엔 이 영화에서는 남자가 좀 심했다. 본인이 상대방에게 미안할 짓을 했는데도 자신도 힘들다며 뻔뻔하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가. 충분히 화낼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다시 관계가 틀어질까 봐 꾹꾹 눌러 참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너만 참고 있다고 생각하지?" 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 쫘식이! 하고 꿀밤 한대 박아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싸우고 헤어지고 또 싸우고 헤어지지만 결국엔 끌리고 마는 건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악연이라고 해야 할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복수를 하고 또 그러면서도 집착하고, 알콩달콩 예쁘게 연애하는 장면들 모두가 좀 부러웠다. 그게 진심인 거다. 흑....

 

라미란 커플도 엄청 재밌었는데 말은 안 되지만 하여간 실컷 웃기는 했다.

 

 

 

 

 

 

 

 

 

 

 

 

 

★★★

 

23.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제주어로 '감자'를 지슬이라고 한다. 땅의 열매란 의미로 '지실'이 지슬로 굳어진 것.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며 화제를 모았고, 제주에서 먼저 개봉해서 서울로 올라온 영화다. 우리 역사에서 뜨거운 감자로 통하는 '제주4.3'을 다루고 있다. 보기도 전에 뭔가 심호흡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섰는데, 영화는 뜻밖에도 밝은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나라 배우들이 우리 말로 연기를 하지만 화면에는 자막이 깔려 있다. 제주 방언을 이해하지 못할 관객들을 위한 고려다. 무척이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제주가 육지 것들에게 갖고 있을 거리감이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8.15 해방 이후에도 우리 역사에 진정한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 제주는 더 그랬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제주 주민들이 어느날 갑자기 폭도로 몰려버렸고, 살아남기 위해서 이들은 도주를 해야 했고 숨어 지내야 했다. 군인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 주민들을 죽여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총을 들어야 했고, 아무 죄없는 사람도 쏴 죽일 수 있는 강심장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섬 전체 인구의 약 10% 가량에 해당하는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주 4.3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흘린 피보다 더 가혹한 것은 아직도 그들의 복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대통령이 직접 이 사건에 대해서 사과했지만, 그후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4월 3일은 국가 차원의 추모제가 열리고 위령제가 열려야 하는 그런 날이 되어야 마땅한데 대통령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참석하지 않았다. 뭐, 기대는 못 미쳤지만 예상은 했던 결과라고 해야 할까.

 

 

독특한 이름의 오멸 감독. 영화를 하나의 위령제, 혹은 굿판처럼 구성했다. 독특한 시도였다. 연기 한번 해보지 못한 제주 주민들을 출연진으로 삼은 것도 인상 깊다. 진짜 제주의 속살을 보여준 기분.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말하곤 하지만 영화 촬영 당시 정말 추웠다고 한다. 화면 밖에서 느끼기에도 스산하고 서럽게 추워 보였다. 다행히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상영되고 있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나의 영화에서 끝나지 않고 역사를 재정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는 제목이 이제는 끝나야 할 때이므로.

 

 

 

 

 

 

 

 

 

 

 

 

 

★★★★★

 

24. 지.아이.조2

 

지.아이.조 1편을 재밌게 보았다. 뵨사마가 출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봤겠지만, 그가 나와서 더 보고 싶었던 영화다. 1편에서 지아이조 요원들이 입고 달리던 슈퍼 수트가 이번 편에선 나오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 장면이 제일 멋있었는데...

 

1편의 주인공이 2편에서 너무 금방 죽어버려서 당황했다. 혹시 3편에서 알고 보니 살아있더라~ 하며 돌아오려나?

 

 

영화는 무척 단순한 구조다. 개인적으로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나 본 시리즈가 더 재미 있지만 이 영화처럼 와이어 액션을 화려하게 선보이면서 닌자 칼싸움도 보여주고 제대로 부수는 영화도 나름 액션의 묘미가 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단체로 핵무기를 폐기하는 장면이 긴장감을 주었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한반도의 정세가 참으로 심난했으니까. 영화 속에서도 가장 늦게 핵무기를 폐기하는 나라가 북한으로 묘사되었다. 영화처럼 모두가 동시에 핵을 포기해 주면 참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영화에서도 악당은 더 큰 무기를 혼자가 갖고 있을 생각에 런던을 완전 초토화시키면서 각국 정상들을 협박한다. 물론 그래픽 효과지만 땅이 뒤집어지고 건물들이 무너지며 그 위에 세워진 도시 문명이 순식간에 재가 되는 장면은 무척이나 살벌하고 아찔했다. 전쟁이라는 게 다시 터진다면 저런 화면은 영화가 아닌 우리의 눈앞에서 재생되리라.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프고 화가 난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제 계속 대머리 아저씨로 나갈 생각인가? 머리카락 한올 없이도 충분히 멋있는 아저씨이긴 하지만. 영화의 진행상 3편은 당연히 나오게 되어 있다. 꼭 제일 중요한 악당은 마지막에 도망친다. 일부러 놔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

 


3월 2일에는 이승환의 돌발 콘서트 '왕년'에 다녀왔다. 

 

 

흔히 팬들이 보내는 선물을 '조공'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 조공을 거부해 오던 이승환이 이번에는 협찬을 받았다. 본인 것이 아닌 같이 공연 보는 팬들을 위한 협찬들. 많은 팬들이 먹거리를 제공해 왔는데, 이날 먹은 찹쌀떡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 껍데기의 상호도 기억해 두었는데 두달 가까이 지나고 나니 홀랑 까먹었다. 전화해서 다녀오고 싶을 만큼 맛있었는데 아쉽아쉽....

 

난 돌콘을 갈 때면 노래 목록을 외어오곤 했다. 정기 공연은 곡수가 40곡 전후로 부르기 때문에 다 외워오기 힘들지만, 보통 돌발콘서트에 해당하는 돌콘은 20곡 안팎이기 때문에 외워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날 부른 노래는 이렇다.

 

오프닝 : 에릭 남(2곡)

 

1. 동지

2. 완벽한 추억

3.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인사. 가장 슬프다고 생각하는 노래 두곡

4. 남편

5. 마지막 인사(신혜양 앳된 얼굴)

6. 루머

7. warning

8. 개미혁명

9. 롹스타되기

10. 꽃

11. pray for me

12. 나는

13. 구식사랑

14. 참 쓰다

15. sorry(박시후 사건으로 노래 부를 때 몰입이 안 되었다고...;;;;)

16. 물어본다(준비해온 것들 사용하라고~휴폭 날림)

17. rewind

18. 소통의 오류

19. 그냥 그런 이야기

20. 퀴즈쇼

21. no pain, no gain

22. 붉은낙타

앵콜

23.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4. 단독전쟁

 

AR : 만추

 

오랜만에 제대로 달렸더니 삭신이 쑤셨지만 스트레스가 많이 완화된 느낌이었다. 돌아올 때에 무척 추웠지만 하나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건강한 하루를 보낸 느낌. 이 공연의 '앵콜' 공연이 4월에 있었지만 그것은 4월의 문화 생활에서 정리하도록 하자.

 

다시 일주일 뒤는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던 3월 9일이었다. 이날 큰 조카는 아빠와 함께 인라인을 타러 갔고, 둘째 조카랑 언니는 나와 함께 낙산 벽화마을에 갔다. 날이 어찌나 덥던지 반팔을 입어야 할 날씨여서 입고 갔던 트렌치 코트는 내내 들고 다녔고, 입고 있던 모직 치마와 스타킹도 버거웠다.

 

 

올라가는 입구에서 마주친 구조물.

 

 

쭉 뻗은 다리 위에 신사와 강아지가 서 있다. 요 구도가 참 마음에 든다. 나도 저기 끝에 올라가 보고 싶다.

 

 

예전에 갔던 벽화마을 들에 비해서는 감동이 덜했다. 아마 비슷비슷한 그림들에 익숙해진 까닭이고 날이 덥고 목이 타서 흥이 덜했는지도 모르겠다. 근처 카페에 사둔 소셜 쿠폰이 있어서 음료수를 먹었는데, 양이 너무 작아서 추가로 좀 더 시켜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음날로 있을 언니의 생일을 축하하며 미리 저녁도 먹어두었다. 모처러 햇볕을 잔뜩 쬐고 걷기도 많이 걸은 날이었다. 그리고 저런 날씨는 아직까지 다시 오지 않았다. 이제 내일 모레면 4월도 끝인데 정말 너무한다. 봄은 홀랑 건너 뛰고 바로 여름 직행일 것만 같다. 계절을 도둑맞은 기분이다.ㅜ.ㅜ

 

이튿날인 일요일에는 '기막힌 스캔들'이란 연극이 당첨됐다. 작년 연말에 결혼을 한 친구와 같이 보고 왔는데, 이렇게 재밌는 작품일 줄 미처 몰랐다. 서로 다른 상대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부부의 요절복통 하룻밤을 소재로 했는데 여기에 어쩌다가 끼어들게 된 '요리사' 배역이 정말정말 웃겼다. 좀처럼 재밌다 소리도 하지 않고, 작품 보고 나서 박수도 치지 않는 내 친구가 무려 재미있다고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이 친구를 아홉살 적부터 알고 지냈으니 수십 년 동안 처음 보는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그만큼 배꼽 빠지게 웃었다는 얘기다. 돈 주고 봐도 아깝지 않을 그런 연극이었다. 제목은 좀 흔하지만, 작품은 굿굿! 이 영화의 한 부분이 '로마 위드 러브'와 몹시 겹친다. 아주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걸 잘 소화해낸 합이 잘 맞는 배우들의 명연기에 브라보~!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인문카페 창비에서 '어깨동무 북토크' 행사를 다녀왔다. 혼자라도 다녀오길 잘했던 소중한 시간!

 

당시 다녀와서 쓴 후기다.

 

http://blog.aladin.co.kr/manoa/6302484

 

 

 

 

 

 

 

 

 

 

 

 

3월의 문화생활 정리를 빨리 하고 싶었는데 4월의 끄트머리에 와서야 페이퍼를 쓰게 되었다. 정신 없이 보낸 4월이다. 그 4월도 이제 굿바이를 하려고 한다. 아, 2013년이 벌써 1/3이나 지나가고 있다. 초조해지는 기분이다. 정신 차리자. 아직 2/3가 남았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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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딸도아닌해원, 홍상수, 이선균, 정은채, 김자옥, 기주봉, 김의성, 유준상, 예지원, 류덕환, 제인버킨, 하하하, 외로움, , 불륜, 안재홍, 배유람, 신선, 정다원, 링컨, 스티븐스필버그, 아카데미남우주연상, 다니엘데이루이스, 남북전쟁, 노예해방, 투표, 토미리존스, 아브라함링컨, 데이비드스트라탄, 샐리필드, 조셉고든레빗, 헌법13조수정안, 평화, 결단, 제임스스페이더, 리페이스, 잭키얼헤일리, 자레드해리스, 마이클스털버그, 존호키스, 조셉크로스, 데이빗스트라탄, 월튼고긴스, 할홀브룩, 팀블레이크넬슨, 웜바디스, 조나단레빈, 니콜라스홀트, 테레사팔머, 존말코비치, 애널리팁튼, 데이브프랑코, 코리하드릭트, 좀비, 어거스트러쉬, 판타지, 순정만화, 아날로그, 감성자극, 롭코드리, 돈포드, 빈센트르클레르, 저스틴브래들리, 조나단듀브스키, 패트릭사본구이, 루스치앙, 키바린크, 토드펜넬, 아이샤잇사, 조시라비올렛, 존토퍼, 브렌트스카그포드, 아서홀든, 크리스티안폴, 다이아나로라, 파파로티, 윤종찬, 한석규, 이제훈, 오달수, 조진웅, 강소라, 건달, 실화, 해바라기, 행복을주는사람, 네순도르마, 루치아노파바로티, 성악천재, 음악영화, 이재용, 진경, 이상훈, 이도연, 양한열, 차종호, 윤진하, 김용훈, 이유준, 배성우, 정민성, 강성수, 김상균, 성유빈, 손영순, 윤영균, 오창경, 박정민, 강성하, 황의권, 박재운, 김수진, 이한샘, 정승철, 홍준표, 이상협, 최영진, 김지석, 장고, 분노의추적자, 쿠엔틴타란티노, 제이미폭스, 크리스토프왈츠,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 케리워싱턴, 사무엘루이잭슨, 렛미인, 미학, 느와르, 바스터즈, 연기파배우, 악역, 복수, 아카데미남우조연상, 돈존슨, 로라카요우엣, rza, 프랑코네로, 제임스레마, 앰버탐블린, 조벨, 데니스크리스토퍼, 브루스던, 조나힐, M.C.게이니, 제임스루소, 톰사비니, 토드알렌, 마이클보웬, 마이클바콜, 렉스린, 톰우팻, 루이스스미스, 게리그럽스, 존자럿, 제로드번치, J.D.에버모어, 네드벨러미, 자말더프, 제임스팍스, 쿠퍼허카비, 리치몽고메리, 에린피켓, 에반파크, 새미로티비, 에드릭브라운, 데이비드스틴, 니콜칼리시아, 미스티업햄, 오마J.도시, 샤론피에르-루이, 캐서린램버트, 킴로빌라드, 덕두햄, 섀넌하즐렛, 라티스타운즈-쿠엘라, 쉐너스타인, 제이크가버, 저스틴홀, 엘턴르블랭, 자니오토, 마크울라노, 에드워드J.클레어, 윌리엄허드슨, 킴콜린스, 매튜패롯, 연애의온도, 노덕, 김민희, 이민기, 최무성, 라미란, 하연수, 이문정, 김강현, 최귀화, 박병은, 연애, 인연, 악연, 은행, 사내커플, 정종열, 문창길, 신연숙, 서지승, 이진혁, 최재호, 김선희, 김문종, 공호석, 김자영, 한영수, 박팔영, 태인호, 구본석, 박지은, 김미야, 박진영, 김태현, 전정훈, 이경헌, 김소라, 현정애, 화차, 굿바이솔로, 물오른연기, 연애의디테일, 시사회, 오멸,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양정원, 박순동, 성민철, 조은, 장경섭, 어성욱, 김형진, 제주, 감자, 지슬, 선댄스영화제, 제주4.3., 끝나지않은세월, 당신과나의뜨거운감자, 위령제, 굿판, 학살, 폭도, 민간인학살, 백종환, 이경식, 최은미, 손욱, 강희, 김순덕, 김동호, 제주도, 방언, 자막, 지.아이.조2, 존추, 이병헌, 브루스윌리스, 드웨인존슨, 채닝테이텀, 애드리앤팰리키, 레이스티븐슨, 레이파크, 조셉마젤로, 아놀드보슬루, 에로디영, 조나단프라이스, D.J.코트로나, 페런테이어, 일리아볼록, 맷제랄드, 아제이메타, 마르셀로튜버트, 로버트카트리니, 마이클아브멘, 보브라세우스, 조크레스트, 조셉신트론, 에드워드R.콕스, 진베킨헤이미스주니어, 레이헤르난데즈, 제프리호우, WB브라운2세, 아민조셉, 존C.클레인, 신시아르블랭, 조안나리즈, 짐팰머, 캐서린킴푼, 세스시에너린, 니콜라스시몬스, 테리리스미스, 더크란툴레인, 애덤버니어, 트래비스웡, 마이클워즈니악, 미션임파서블, 본시리즈, 대머리, 액션영화, 악당, 북한, 핵무기, 전쟁, 닌자, 칼싸움, 뵨사마, 이승환, 돌콘, 왕년, 콘서트, 협찬, 조공, 낙산벽화마을, 날씨, , 어깨동무, 인권만화, 북토크, 인문카페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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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4-2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소지섭이...D라고 외쳤군요..D라........음....아하핫...

2. 다니엘 데이 루이스...데이 윌비 블러드..에서 한계를 보여줬다 생각했는데..그게 끝이 아니였군요..허허..

3. 뱀파이어+멜로, 좀비+멜로....자 이제 늑대인간+멜로(사실 이 소재는 옛날에 나왔음)이나 강시+멜로가 나올 기세...

4. 조폭들이 실크 소재의 옷을 즐겨 입는 이유는 쉽게 말해 칼 맞았을 때 찢기 편하다는 이유 때문이랍니다. (아 물론 뻥!)

5. 전 장고를 보면서 정체되어가는 타란티노를 느꼈어요. 뭐랄까 그냥 제자리 맴맴 도는 느낌. 프랑코 네로랑 농담 따먹기 저 장면은 아주...뒤집어졌다는...(사실 장고라는 영화가 웨스턴 쪽에서는 제법 임팩트가 강한지라..)

6. 김민희씨는 나름 차곡차곡 발전을 하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물의를 일으킨 GQ와의 인터뷰 내용은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네요)



마노아 2013-04-29 10:26   좋아요 0 | URL
호곡, 소지섭 군의 D는 혹시 열이 아니라 '컵'이었을까요? ('' )( '')
라스트 모히칸을 제대로 봐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저는 오디오로만 들었거든요. 정은임 프로에서요~
늑대인간은 별로 구미를 안 당기네요. 그냥 헐크가 나아요.(응?)
오, 실크 소재는 무척 설득력이 있어요!
바스터즈보다 장고가 좀 떨어지긴 했어요. 자기 색깔은 있지만 타란티노가 제 취향이 아닌 건 분명해요.
김민희의 인터뷰는 못 봤는데 별안간 궁금해지네요.^^ 아, 지난 주는 김민희 열애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긴 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2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지섭의 호명이 심장이 뛰었군요 !!!!!!!!!!!!!!!!!!!!!!!!!!!!!!!!!!!!!!

마노아 2013-04-29 17:54   좋아요 0 | URL
지슬도 같은 자리에서 보았는데 또 호명됐어요. 역시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ㅎㅎㅎ

2016-11-04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9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르케스 찾기 2016-11-09 22:14   좋아요 0 | URL
송지나, 노희경 작가님은 제 Role model 이셨습니다ㅋㅋ
저는 스산한 느낌의 11월이 제일 좋습니다. 선선하고 아직 남은 무언가가 있고, 하늘도 이쁘고,,,
광장에 뛰쳐들때 꼭 외투챙기길 바랍니다. 안 추워야 오래 버티죠ㅋㅋ

마노아 2016-11-11 23:25   좋아요 1 | URL
멋진 두 작가님이시죠.
여기에 인정옥 작가님 추가해 봅니다. 요새는 통 작품이 없어서 아쉽네요.
내일이네요! 투쟁마저도 축제로 승화시키는 새로운 힘을 만들어 보아요~

마르케스 찾기 2016-11-11 23:48   좋아요 0 | URL
우와~~ 글쵸!!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맞죠? 그분,,,
네 멋대로 해라에서 환자 취급하는 여자말고 자신을 남자로 봐주는 여자에게로 가는,,,
비슷한 사랑의 느낌, 아일랜드,,,

독일의 수상은 친구에게 적은(우리 입장에서는 쥐꼬리 만큼) 돈을 빌리고도 사임했는 데,,,,
하야가 안되면 탄핵으로 가야 하건 만,,, 탄핵을 적극나서는 정치인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마노아 2016-11-13 13:52   좋아요 1 | URL
백번도 더 탄핵될 만한 죄를 저질렀으니 탄핵되어야 마땅하건만....
국회에서는 탄핵 추진하고 국민들은 퇴진하라 외치고, 양방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담주에 수능 끝나면 학생들도 더 뛰쳐나올 것 같네요.
지치지 않게 체력관리 해야겠습니다.^^
 
내 귀는 황금 귀 꿈터 지식지혜 시리즈 16
최정현 지음, 대성 그림 / 꿈터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양들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에 황금 귀를 가진 양 봄이가 살았다.
남들과 다른, 유난히 튀는 황금 귀가 봄이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엄마가 짜 주신 흰 양털 귀마개를 끼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봄이의 귀마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아무리 찾아보고 둘러보아도 귀마개를 찾을 수가 없다.
엄마는 봄이의 귀가 훌륭하다고 말해 주었지만 봄이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서 귀마개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봄이!
예쁜 꽃들도 나비들도 봄이의 귀마개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날도 좋은데 귀마개를 찾는 봄이가 꽃들과 나비 눈에는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이상한 건 귀가 아니라 그 귀를 감추려는 봄이지만, 봄이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친절한 나비들은 불편해하는 봄이를 위해 자신들의 날개로 귀를 감춰주었다.
벚꽃 나무도 꽃잎을 떨어뜨려서 봄이의 귀를 감춰주었지만 바람이 부니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속상해서 훌쩍이는 봄이에게 초록색 귀를 가진 토끼가 다가왔다.
세상에, 초록색 귀라니! 그야말로 신기신기!
남들과 다른 귀를 가진 토끼야말로 봄이의 고민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토끼는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봄이의 귀가 얼마나 근사한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토끼는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럴 수가! 초록색 귀를 가진 토끼도 모자라서 분홍색 코끼리에 궁둥이가 파란 원숭이, 보라색 털을 가진 오리에 무지개색 꼬리털을 가진 너구리까지 있는 게 아닌가!
이들은 남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남다른 점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즐거워했다.
여기서 봄이가 큰 깨달음을 얻는다. 달라진 마음으로 돌아보니 자신의 황금귀도 멋지기만 하다.
마을의 친구들도 봄이의 멋진 귀를 보며 감탄했다. 이제껏 다르기 때문에 차별받을 거라고 걱정했던 봄이었는데, 오히려 '다름'을 이유로 차별을 했던 것은 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다른 게 '틀림'이 아님을 봄이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도 사실은 백조였던 것처럼, 우리 봄이도 멋진 양일 뿐이다.
'짧은 귀 토끼'와 함께 읽으면 좋겠다.
이렇게 다름과 차별에 대해서 묶어서 읽는다면 이야기할 게 더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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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3번 안석뽕 - 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271
진형민 지음, 한지선 그림 / 창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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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진이 기호 3번으로 전교 학생 회장으로 출마하게 된 것은 순전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교실에서 단짝 친구 조조와 기무라와 시덥잖은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반장 고경태가 한무리의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는 중요한 얘기 해야 하니까 교실을 비워달라고 했던 게 출발이었다. 슬쩍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고까워진 기무라가 우리도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 중요한 얘기가 부풀고 부풀어서 1번으로 출마한 고경태에 이어 3번으로 안석진이 회장 선거에 나가게 된 것!

 

욱하는 심리도 있었고, 경태 옆에 있던 부반장 서영지가 신경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그렇게 다짜고짜 회장 선거에 나가게 됐으니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후보 등록서를 내기 위해서 친구들의 추천서도 내야 하고, 선거 운동에 각 반을 돌며 유세도 해야 했다. 어째, 판이 점점 커진다.

 

좀 전에 조조와 기무라라고 했는데, 추천인 명단을 보니 이해가 간다. 조지호의 이름을 빠르게 발음해서 조조, 김을하의 이름을 연음으로 읽어서 기무라가 된 것이다. 이름도 재치 있다.

 

얼떨결에 회장 선거에 나가게 되었지만, 칼을 뽑았으면 최소한 지우개라도 찔러야 한다는 각오로 석진이도 열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깐! 왜 석진이가 안석뽕!이 되었는가! 그것은 석진이네가 떡집을 하기 때문이다. 떡하면 한석봉이 떠오르기 마련. 그래서 시장에서 석진이의 별명은 석뽕이다. 석진이는 그게 싫지만, 늦게 출마해서 여러모로 시간이 없는 이쪽에서는 기억에 남을 한방이 필요했고, 그래서 싫어하는 별명이지만 써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 이름 덕분에 여러모로 인기를 끌었다.

 

붓글씨를 잘 쓰는 석진이가 한석봉 역할을 하고, 조조는 할머니 고무줄 치마를 입고 얼굴에 연지곤지까지 찍고는 가래떡 휘두르며 막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펼쳐든 선거 구호!

 

 

마치 호 같다. 석뽕 안석진! 근사한 이름이다. 1번 후보 고경태가 지나치게 성적을 강조한 것에 대비되는 구호다. 이쯤에서 앞의 후보들 공약도 같이 보겠다.

 

 

고경태의 이미지가 확 그려진다. 모두가 공부를 잘 하는데 일렬로 줄을 세우는 체계에서 어떻게 1등이 다 나오겠는가. 아마 고경태 자신이 다같이 일등하는 건 제일 싫어할 것만 같다. 학생회장에는 관심 없지만 게임 팩 사준다는 엄마의 감언이설에 출마한 기호 2번 방민규는 네 가지가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다. 작가님 의도인지 모르겠는데 보는 순간 싸가지 없는...으로 바꿔 읽히게 된다. 싸움 없고 왕따 없고 거짓말 없고 쓰레기 없는 학교야 금상첨화지만, 이렇게 '안티'를 강조한 선거는 이기기 어렵다는 걸, 민규가 알기는 어렵겠지?

 

아무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인공 안석뽕이니, 석뽕이의 공약도 보러 가자.

 

시험을 일 년에 한 번만 보자고 하겠습니다. 그게 안 되면 한 학기에 한 번. 그것도 안 되면 제발 문제라도 쉽게 내 달라고 하겠습니다.

 

아, 굉장히 구체적이다. 시험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아이의 입장이 잘 보인다. 참고로, 석뽕이 파는 이 공약을 직접 아이들을 만나서 물어보고 만든 것이다. 그러니 석뽕이와 조조와 기무라만의 바람은 아닌 것이다. 대다수 어린이들의 바람이라는 것!

 

기분 나빠서 공부가 더 안 된다고 말하는 당참까지! 국영수가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나도 참 싫다. 나는 제발 역사 수업 좀 늘리자고 하고 싶지만... ^^

 

의무교육이라면 수학여행도, 준비물도 모두 학교에서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그럴 만한 재정이 없는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써야 마땅한 돈이 엉뚱한 데서 새고 마땅히 걷어야 할 세금을 안 걷으니 문제라고 여긴다.

 

그리고 5번은 아주아주 크게 공감한다. 이건 직무유기다. 툭하면 학부모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다. 학교에 올 수 있는 엄마나 못 오는 엄마나, 그 엄마들의 아이가 모두 불만이다. 도우미나 할머니나 이모라도 보내라는 문구도 있던데 정말 열이 화르륵! 내 비록 학부형 아니라 급식도우미 참여해본 적은 없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이런 인력 창출은 학부모의 몫이 아니라 역시 국가와 교육 당국의 몫이라고 본다. 대한민국 갈 길 아직 한참 남았다.

 

일등만 좋아하는 학교 너나 가지라고, 모두가 좋아하는 학교 만들자는 아이의 말이 재밌으면서도 콱! 박힌다. 우리 아이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학교가 싫은 공간이 되었을까.... 서글프다.

 

석뽕이를 학생 회장으로 미는 친구 조조는 거의 책사 역할을 맡고 있다.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조조의 분석은 이랬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선거 때마다 공부 잘하는 애를 찍는 이유는 그런 애들만 후보에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부분도 크게 공감간다. 물론, 공부 못하는 학생이 출마해도 뽑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네 선거를 보시라. 서민들일수록 돈있고 권력 있고, 그래서 서민 삶에는 별로 관심 없고 약속도 지킬 생각 없는 여당만 죽어라 찍어주지 않던가.

 

이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학생회장 선거를 통해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해주며 동시에 어른의 이야기도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석뽕이네 담임 선생님은 정말 폭탄이었다. 6학년에 올라온지 한달이 되어가는데, 이 아이들이 자신이 맡은 반 아이라는 걸 몰랐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아웃 오브 관심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같은 반에서 후보가 두 명이나 나왔으니 후보를 통일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대놓고 석진이에게 압력을 넣는다. 석뽕이는 그걸 자신에 대한 관심을 착각하지만. 그 착각이 독자는 더 가슴이 아프다.

 

"후보가 없는 반도 많은데 한 반에서 후보가 둘이나 나가는 게 좀 그렇기도 하고, 같은 반 친구끼리 적이 되어 싸우는 건 아무래도 좋아 보이지가 않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안석진?"

 

"또 우리 반 애들을 생각해 봐라.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할지 얼마나 고민이 되겠냐, 석진아?"

 

"남북이 분단되어 사는 것도 가슴 아픈데, 우리끼리 가랄져서 꼭 이래야 되겠냐? 우리가 앞장서서 통일하는 마음으로다 후보 통일을 하는 건 어떻겠냐, 안석진?"

 

아, 정말 욕나온다. 자기 반 학생 얼굴도 못 알아본 자격미달 교사가 편파적으로 학생 회장 후보를 밀고 있다. 이럴 때만 그럴싸하게 써먹는 통일도 역겹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나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샘이 떠오른다. 2학기 시작한 첫날에 복도에 있던 우리 반 학생한테 너는 몇 반이냐고 물었다. 자기네 반 학생을 한학기가 지났는데 모르고 있다가 몇 반이냐고 묻는 무신경함과 뻔뻔함이라니. 그 선생이 자기 기분 나쁠 때 애를 줘 팼던 것도 기억난다. 에잇!

 

학생회장 선거만 너무 오래 얘기했다. 이야기에는 두 개의 축이 있다. 학교 하나, 시장 하나다. 석뽕이네 집은 시장에서 떡집을 하고 조조네 할머니는 시장에서 순댓국집을 한다. 그 밖에 슈퍼집 딸 백보리도 있고, 동네에는 시장에서 장사하는 집이 많다. 그런데 시장 앞에 떡하니 대형 마트가 들어선 것이다. 대형 마트 영업 규제를 피해서 서둘러 등록부터 해버린 이 업체에는 구청과 경찰서까지 모두 의기투합한 흔적이 보인다. 시장 사람들이 사색이 된 것은 당연하다. 아직 어리고 철도 없는 석뽕이 등은 새로 들어선 피마트가 자기네 집에 드리울 어두운 그림자는 짐작도 못하지만, 커서 슈퍼 사장이 되겠다고 벌써부터 다짐한 백보리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저 어둠의 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백발 마녀 백보리의 활약도 이 책에서는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린이 책이라고 해서 어린이 이야기만 담지 않았고, 어린이와 어른의 세계 모두에 걸쳐서 무척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진지하지만 유머 감각을 절대 잃지 않으면서!

 

다시 회장 선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각 반을 돌면서 하는 선거 유세해서 조조와 기무라의 조합이 재밌었다.

 

"우리 쭝국 살람은 기호 3번 찍는다해. 석뽕 선생 가라사대 꼴찌한테도 박수를 쳐 주라 했다해. 이 반 꼴찌 누구냐해? 다같이 박수, 박수 쳐 주자해!"

 

조조에게 밀릴 기무라가 아니다.

 

"아노, 우리 일본 사람도 기호 3번, 남바 쓰리, 안석뽕을 찍스므니다. 1등은 1번 찍고, 2등은 2번 찍고, 3등부터는 무조건 3번을 찍어야 하므니다. 그래야 아리가또, 아리가또 보재기마쓰!"

 

문득 또 다시 기억 하나를 건드렸다. 중학교 3학년 졸업여행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 배정된 방은 두 개였고, 원하는 방을 숙소로 쓰라고 했다. 아이들은 알아서 들어가고 싶은 방에 가방을 풀었는데, 나와 같이 방에 들어간 내 친구가 이 방 싫다고, 옆 방으로 가자고 했다. 왜 싫다고 하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꼭 그 방을 고집할 필요도 없어서 친구 따라 옆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옆 방에 들어서고 나서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첫번째 방은 공부 잘하는 애들만 들어가 있었고, 옮긴 방에는 반대로 공부 못하는 애들만 들어가 있었다. 누가 일부러 나눈 것도 아닌데 그렇게 갈라서 방을 쓰게 된 것이다. 내가 첫번째 방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던 것과, 내 친구가 그 방을 불편해했던 사실들이 입맛을 쓰게 했다. 옮긴 두번째 방에서 내가 불편했냐고? 그럴 리가. 아주 재밌게 놀다가 왔다. 그렇지만 방에 들어섰을 때 알아차린 그 차이점에서 받은 서늘한 감각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세계건 어른들의 세계건 줄 세우고 나누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는 깨달음으로...

 

괜히 심각해졌다. 즐거운 이야기 속으로 다시 가보자.. 이 책은 '차례'도 재밌다. 이 재밌는 제목들을 보시라.

빨리 저 소제목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지 않는가? 다짜고짜 금요일을 지나서 정 그러시다면 월요일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디가 어때서 목요일이 무척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그 날 연극 당첨되어서 볼 것이므로...^^

 

이야기의 마무리도 훈훈했다. 선거 과정에서 석뽕이가 좀 더 성숙해졌고, 깨달음도 많아졌다. 무척 불공정한 어른들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럼에도 공정한 세상의 이치를 읽은 기분이랄까. 문제 많은 교사도 나왔지만, 관록을 무시할 수 없는 멋진 교감 선생님도 나왔고, 굉장히 찌질해 보이지만 사실은 슈퍼영웅일지도 모를 거봉 선생도 등장했다. 첫사랑에 눈을 뜰 법한 아이의 설레는 감정도 잘 표현되었고, 우리 사회에서 땀흘려 노력하며 열심히 가정을 꾸려나가는 서민들의 소박하고 애틋한 삶 이야기도 잘 드러났다. 이 책이 대상을 받은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공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보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이 작품이 첫 작품이다. 첫번째부터 홈런을 쳐준 기분이다. 이후의 후속작도 기다릴 테니 열심히 써주세요~

 

마지막에 나온 작가의 말은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어른들 마음을 대변한 것만 같다. 그래서 위로가 되었다고, 고맙다는 말도 남기고 싶다. 중간 부분만 옮겨 보면 이렇다.  

 

나중에는 세상을 좀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괜히 언짢고 싫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맨주먹으로 용을 쓰다가 주눅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화난 얼굴을 했지만 속으로는 혼자 무서웠던 겁니다. 나는 그렇게 겨우 어른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착하지 않은 어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의심이 많고, 때때로 거짓말을 하고, 매일매일 눈을 홉뜨고 세상을 째려봅니다. 이런 얘기 창피하지만, 아직 겁도 많습니다.

 

겁많은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와 달리 용감하고 씩씩한 석뽕이와 친구들. 그들의 또 다른 도전을 기대하며, 응원하며, 그리고 격려하며 축복하겠다. 결국은 나 자신을 향한 위로이며 도전이며 성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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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3번 안석뽕 - 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271
진형민 지음, 한지선 그림 / 창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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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떡집이 싫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석뽕이가 싫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건 아버지 엄마 탓이 아니라 전부 다 한석봉 어머니 탓이다. 따지고 보면 떡과 석봉이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처음 만든 건 바로 그 아줌마 아닌가. 바느질이나 다림질이나 암튼 다른 일도 많은데 굳이 떡을 썰겠다고 고집을 피울 건 뭔가. 거기다 불까지 다 꺼 놓고 칼질을 하다니, 어린애 앞에서 공포 영화 찍을 일 있나? 하여간 지금이나 옛날이나 엄마들은 애들 공부시키려고 별짓을 다 한다.-28쪽

시장통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가게에 들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돈이 필요할 때만 가고 보통은 곧장 학원에 가거나 집 근처로 가서 논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시장을 들락대지만 4학년만 되면 저절로 안 그러게 된다.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써내라 할 때도 그냥 '사업'이라고만 쓴다. 그 사업이란 것이 문덕시장 '옛날족발집'이거나 '남해수산물매장'이거나 '사철과일도소매'라는 사실을 꼬치꼬치 다 밝히는 애는 없다.-33쪽

한 가지 좀 신기했던 건 공부 지긋지긋하다던 애들이 입만 열면 공부 얘기를 꺼낸다는 사실이었다. 성적 나쁜 게 창피해서 공부 까짓것 너나 하라고 오기를 부렸을 뿐, 속으로는 이렇게나 공부 걱정을 하고 있었나 보다.
-57쪽

여자애들은 얼굴이 잘생기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추거나 최소한 축구 할 때 골이라도 몇 번 넣어 줘야 알은척을 하고 말도 걸어온다. 이도 저도 아닌 남자애들은 교실 구석에 세워 놓은 대걸레랑 똑같은 신세다. 대걸레한테 관심을 갖거나 말을 붙이는 사람은 없다. 대걸레는 그냥 청소 시간에 청소만 잘하면 된다. -58쪽

드디어 내게도 곰이 필요한 때가 찾아왔다. 나는 거봉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입이 무거운 곰 두 마리를 불러다 내 양옆에 한 마리씩 앉혀 두고 곰곰이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125쪽

고경태와 방민규가 연설을 하는 동안 나는 단상 위 후보자석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 자리는 언제나 강당 저 아래쪽 나란히 맞춰 서 있는 수십 개의 줄 어디쯤이었다. 거기서 누군가의 구령에 맞춰 똑바로 줄을 서거나 누군가의 지휘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몸을 비트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런데 단상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주 달랐다. 작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 어느 순간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걸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조각조각인 우리들이 다 모이면 이런 그림이 되는구나, 하는 걸 나는 난생처음 깨달았다.-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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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13
토모코 니노미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돌아온 치아키. 그러나 노다메는 류카의 교회 성극의 대타로 불려가 부재중이다. 어쩔 수 없이 건물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 벽그리는 화가 아저씨와 와인을 마시게 된 치아키. 그리고 아주 잠깐 듣게 된 아버지 이야기.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버려진 상처가 싶은 치아키는 더 이상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화가가 그린 아버지 연주의 추상화가 궁금했지만 아직은 들여다볼 수 없다. 치아키의 마음이 좀 더 열리기 전까지는.

 

치아키는 새 일을 맡았다. 백년도 더 되는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된 것이다. 심지어 이 말레 오케스트라는 슈트레제먼이 젊었을 적 지휘를 하던 곳이기도 했다. 기대를 갖고서 찾아간 말레 오케스트라는, 그러나 지금 회원들이 연주 도중 성을 내며 뛰쳐나갈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오만하고 안하무인인 콘서트 마스터에, 연주 중이던 지휘자도 도망을 가버렸고, 툭하면 연주자가 부족해서 대타를 세우는 그런 곳이었다. 라이징 스타 오케스트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치아키에게 아주아주 어려운 과제가 떨어진 것이다. 엘리제는 치아키를 제대로 몰아가고 있다.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말이다. 넘어야 할 산이 높고 험하지만, 그런 만큼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치아키가 반드시 해낼 거라고 믿으니까.

 

갑작스럽게 연주자가 부족해서 노다메가 연주회에 불려왔다. 치아키와 첫 협주가 가능해진 것이다. 노다메가 얼마나 흥분했을지, 또 벅찼을지도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다음에 겪을 노다메의 실망이 미리 안타깝다. 치아키와의 협주는 서로가 좀 더 무르익었을 때로 미뤄야 할 것이다. 경쟁자는 아니지만 경계하게 만드는 손 루이가 와 있으니까.

 

적극적인 노다메 덕분에 쿠로키도 조금은 열린 마인드를 보이려고 노력 중이다. 노다메가 끼친 밝고 건강한 에너지다. 비록 엽기적이긴 하지만 무척 사랑스러운 성격이다. 어쩌면 작가분이 이런 성격일까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니노미야 토모코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들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단 개그가 되는데, 그중에서도 'Green'이 가장 압권이었다. 장편은 노다메 칸타빌레 뿐인데 앞으로도 쭈욱 롱런할 작가라고 믿는다. 13권이니 이제 노다메 칸타빌레의 이야기 절반을 넘어섰다. 나머지도 부지런히 읽자.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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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4-2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저때 노다메와 치아키가 협주를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마노아님. 노다메는 다시 보는 거에요? 마노아님이시라면, 노다메 처음일리 없을텐데 싶어서요. ^^

마노아 2013-04-28 17:15   좋아요 0 | URL
하하핫, 다시 보는 것 맞아요. 완결되면 다시 보겠다 다짐했는데 완결되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다시 읽게 되네요. 그것도 3월 초에 읽다가 바빠서 끊기고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