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가게 3
강풀 지음 / 재미주의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공포의 상징들은 모두 사랑의 증거였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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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링컨 : 뱀파이어 헌터

 

그러니까 이날은, 이 영화를 보려고 봤던 게 아니다. 예정되었던 학교 행사가 다음 날로 미뤄졌다는 문자를 송정역 지나면서 받았다. 무려 6시간이나 일찍 출근했지만 도착 두정거장 전에 받은 문자 때문에 울화가 확 치미면서! 어쩔 수 없이 김포cgv에 들러야 했던 것. 그리고 전날 사연 많은 사건 때문에 친구가 예매해주었던 이 영화를 못 보았던 관계로,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간 영화이기도 해서 보게 된 건데, 아주 두고두고 후회할 만한 선택이었다. 아니 이런 걸 왜 돈들여 만들지? ㅡ.ㅡ;;;;

 

설마 하니 제목의 '링컨'이 우리 모두가 아는 미국의 대통령일 줄은, 몰랐다. 그 대통령이 뱀파이어 헌터가 되어서 남부에 진을 치고 흑인들의 피를 빨아 먹고 있는 뱀파이어 집단을 소통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흑인을 해방시켜준다는 설정....

 

'원티드'는 무척 재미있게 보았지만 이 영화는 내용도 별로고 액션도 그닥 흥미롭지 않았다. 친구가 예매했던 것은 3D였는데, 3D로 안 보길 잘했어....;;;;;

 

★★☆

 

57. 공모자들

 

기업형 장기밀매 조직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충격은 더 크다. 희귀 혈액형 소유자들은 더더더 조심하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진정으로 무서웠다. 화면의 끔찍함만 놓고 이야기한다면 피에타와 누가 더 잔인한가 대결하는 것만 같다. 임창정은 코믹을 하지 않아도 역시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다. 그에게도 보다 다양한 배역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영화는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기록한다. 마지막 반전은 좀 지치는 감이 있었지만 아무튼, 그래도 괜찮은 영화였다.

 

★★★★

 

58. 피에타

 

베니스 영화제 수상을 얘기하기 전에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포스터와 제목에서 이미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비를 이야기하지만 참으로 잔인한 영화. <나쁜 남자> 조재현보다 더 나쁜 남자 이정진과, 그 나쁜 남자의 구원이자 절망인 어머니 조민수가 나온다. 이정진의 연기는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퍽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민수의 연기는 탁월했다. 게다가 그 미모라니! 보톡스의 힘 따위 필요로 하지 않는 원숙한 미모와 물오른 연기의 조합은 이 영화의 최대 공로자가 그녀임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고혹적인 깊은 눈매가 눈을 오래 사로잡는다. 눈빛으로 많은 것을 대신했다.

 

 

이 사진은 오늘 처음 보았는데 무척 매혹적이다. 제목과 아주 잘 어울린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올리비아 핫세가 떠올랐다. 베니스 영화제가 중복 수상도 가능했다면 그녀에게 아낌 없이 여우주연상을 주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 기대해 본다.

 

 

드레스도 마음에 들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는 포스터다. 영화 마지막에서 트럭이 새벽 도로를 지나갈 때 길게 이어지던 붉은 핏줄기. 무척 슬픈 장면이면서 동시에 무척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 씬에서도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생각이 났다. 속죄의 피 말이다. 이정진은 연기보다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안목에서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레드카펫 위의 정장 입은 모습을 보니 역시 훤칠한 것이 눈이 아주 훈훈했다.

 

 

아, 붉은 카펫 위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고혹적인 여배우의 모습에 감탄감탄! 코디 누구신가. 정말 근사한 드레스다.

 

 

청계천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던 감독님의 마음이 잘 그려진다. 미로 같은 골목골목길, 그곳의 기름밥 먹는 노동자들, 열심히 일하고도 빚더미에 싸여 사채빚을 쓰도록 내몰리는 사람들. 죽기 전에 원없이 돈을 써보는 게 애초 목표였다고 말한 자살 노동자가 아프게 떠오른다. 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어느 장면이 비슷한 시기에 본 다른 영화에서도 겹쳐서 어!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를 본 언저리였으니 '공모자들'이나 '간첩'일 텐데 뭐였더라? 폐가 같은 구조에 아테네 신전 같은 건물 구조가 네모 반듯한 모습이었는데 정확히 생각이 안 난다. 적어라도 둘 걸, 궁금하네....

 

아무튼, 김기덕 감독 작품 중에서는 비교적 '대중적'인 작품이었다. 짧고 굵게, 과감한 생략과 함께!

 

★★★★★

 

 

 

 

 

 

 

 

 

 

59. 광해, 왕이 된 남자

 

이 영화를 보던 날은 우리 집에서 3차대전이 벌어진 날이었다. 거의 육탄전이 벌어질 뻔한 엄마와 언니를 떼어놓고, 엄마를 달래 드릴 마음으로 억지로 극장으로 향했다. 기분이 너무 다운되어서 영화도 싫다고 버티는 엄니를 억지로 모시고 가서 본 광해, 덕분에 10분 늦게 들어가서 앞부분을 다소 잘리긴 했지만, 다행히도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엄마는 기분이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그만큼 깨알같은 재미가 쏟아지던, 또 다분히 감동적이기도 했던 영화였다.

 

광해군의 행보를 살펴 보면 잘한 것과 잘못한 것들이 명백히 구분된다. 뭐 누구라도 그럴 수 있지만 광해군은 꽤 극적으로 대비된다. 명나라의 눈치를 살피느라 백성을 총알받이로 내몰지 않은 것은 훌륭하나 그 백성들의 등뼈가 휘도록 역사를 일으킨 것은 무척이나 모순된 행동이다. 대동법을 시작하고 동의보감을 완성하고 그밖에 전란으로 무너지고 엉킨 것들을 다시 일으켜내려고 애쓴 것도 그의 치적이건만 무리한 옥사를 많이 일으킨 것도 또 역시 그의 과오이다. 영화는 이런 상반된 모습을 보인 그의 행적을 두 사람의 것으로 나눠버린다. 좋은 광해군과 나쁜 광해군으로. 좋은 광해군은 임금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광대 하선이다. 그는 임금 대신 아바타 역할을 했던 보름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진심을 전달한다. 나쁜 광해군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이용하고, 그리고 사람을 버린다. 그게 마음이든, 목숨이든.

 

(아아, 한참 쓰고 있는데 갑자기 창이 꺼져버렸다. 임시저장도 되어 있질 않다. 광해 리뷰는 다 썼는데 홀랑 날아갔다. 아아아... 오늘 여러모로 일진이 안 좋다...ㅜ.ㅜ)

 

다시, 기운을 내보다. 훌쩍....

 

이 영화를 보면 '데이브'가 바로 떠오른다. 아주, 아주 비슷하다. 결말 부분이 조금 다르긴 한데, 사건의 전개와 인물들의 설정은 무척 흡사하다. 패러디인가 오마쥬인가, 아님 우연의 일치인가! 모르지만, 개연성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데이브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 이 영화 속에서 하선이 해낸 일들은 '보름'이라는 시간은 아무리 허구라도 많이 무리수다. 그 부족한 부분들을 깨알같은 재미와 놀라운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의 매력으로 메꿔버린다. 천만 관객까지 동원할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롱런하는 것은 축하한다. 내년에는 연극으로도 올라가던데 그 역시 몹시 기대가 된다. 영화 '왕의 남자'가 겹쳐 보인다.

 

 

붉은 색과 아주 조화로운 금색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초조하고 예민하고 고독하기까지 한 임금 광해의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다.

 

 

다른 사진을 보니 오른쪽에는 감독이 저 자세로 앉아 있었다. 1인 2역이니 누군가 분명 대역을 하고서 장면을 찍었을 테니 당연한 구도다. 뭐 누군들 한 사람은 있었겠지. ㅎㅎㅎ 아무튼, 저 장면에서 손과 얼굴의 각도가 무척 예술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수트를 입어도 멋진 이병헌. 그의 최고 양복발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였다. 주먹을 쓸 땐 오히려 열려 있던 양복 자켓의 단추를 채우던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한효주는 참으로 단아한 매력이 있다. 수애 같은 느낌. 동양적인 느낌이 있다. 고전 작품도, 현대 작품도 두루 잘 소화해낸다. 너무 비슷하게 성형을 해서 매력이 없는 여타 배우들과는 차별성이 보인다. 순수 천연 얼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시크한 블랙 원피스, 참으로 탐나는구나!

 

 

오오, 찬란한 저 금빛 광채! 눈이 부실 지경이다. 저기 앉아서 책보면 눈부셔서 책을 못 읽을 것만 같다. 입이 참 커서인가. 이병헌은 웃는 모습도 아주 시원하다.

 

 

그 꿈 내가 이뤄드리리다! 이 대사 명장면이었다. 유머와 진지함을 모두 갖춘 진정한 연기자 류승룡! 아아아, 그가 허균으로 나오고, 그가 또 주인공인 영화 한편 나왔으면 좋겠다. 최종병기 활에서도, 내 아내의 모든 것과 이 영화 광해에서도, 그는 참으로 신명나게 빛난다. 아아 멋지다, 류승룡!

 

영화 중간에 이조판서를 '병조판서'로 잘못 부른 장면이 하나 있었고, 관원의 관모 날개가 아래로 처진 것은 살짝 아쉽다. 성종 이후로 관모는 평행을 이룬다. 그러니까 이 시대는 저렇게 날개라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됨. ㅎㅎ

 

 

연출도, 명암도, 그리고 눈빛도 모두 훌륭하다. 이병헌은 인물도 좋고 연기도 잘하지만 목소리도 또 으뜸이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기럭지 외에는 없다. 20년도 더 전에 본 뮤지컬 '코러스 라인'에서 그는 심사위원으로 나왔는데 그때 원없이 그의 생목소리를 들었는데 아직도 내 안에 감동으로 남아 있다. 사생활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지만 내 알바 아니고, 이병헌... 참 조으다.

 

 

★★★★★

 

 

 

 

 

 

 

 

 

 

60. 간첩

 

이 영화가 코믹물인 줄 모르고 본 덕분에 무척 재밌게 봤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를 본 직장 동료는 그게 다일 것 같다고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다행히도 그 소개 프로그램을 미리 보지 않았으니 아쉬울 건 없다. 북한을 소재로 한다면 감동을 주든가 아니면 아예 코믹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어줍잖은 반공 구도로 가면 역효과만 날 것 같고. 남한 생활 10년 이상 된다면, 정말 간첩신고보다 치솟는 물가상승이 더 무서울 것 같다. 전세값이 오죽 올랐는가. 간첩도 장애 아이를 키우는 게 쉬울 리 없고, 간첩도 독거 노인으로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간첩도 시골에서 소 키우고 있다면 한미FTA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여기 바로 그런 문제들 때문에 흰머리가 팍팍 늘어가는 간첩들이 십수년 만에 떨어진 지령 때문에 뭉쳤다. 표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 지켜야 할 가족도 많은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무에 착수한다. 이 표적을 제거하려고 뛰어든 과정과 작전은 무척 심각해서 잠시 재미가 덜하기도 했지만, 초반의 웃음과 결말의 찡한 감동, 또 반가운 반전 등은 그럭저럭 이 영화를 본전 생각나지 않게 만든다. 전작 '파괴된 사나이'도 그렇게 제법 괜찮게 본 영화였다. 그래도 김명민은 이런 배역보다 곧 이어 공중파에서 볼 '드라마의 제왕' 같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이 더 매력적일 것 같다. 하얀거탑의 부활이 되지 않을까 혼자 기대해 본다. 아님 말고. ㅎㅎㅎ

 

참, 유해진은 웃음기 하나 없이 인상 쓰면 정말 무서워 보인다. 후덜덜한 포스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음. 많이 웃고 살아야 할 인상이다. ^^

유해진 따라다니는 부하로 뮤지컬 배우 김법래가 출연했다. 뮤지컬 배우답게 목소리 울림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많이 오버스러웠다. 오만석이 처음 드라마 출연했을 때 마냥. 김법래 씨도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폭을 넓히려면 극무대와의 차별성을 좀 두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지만.

 

★★★☆

 

 

 

 

 

 

 

 

 

 

 

61. 메리다와 마법의 숲

 

추석 연휴를 앞두고 모처럼 단축수업으로 일찍 귀가하는 길에 왠지 아쉬워서 보게 된 영화다. 줄거리를 전혀 모르고 보게 되었는데 포스터에 바로 영화의 핵심 내용이 나온다. '곰이 된 엄마를 구하라!' 정숙한 공주의 삶을 강요하는 엄마와 달리 자유분방하고 에너지 넘치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공주 메리다는 활쏘기의 명수다.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한호흡 참아내고서 날리는 그녀의 활은 그야말로 짜릿함 그 자체였다. 박제된 삶을 거부하고자 비밀의 숲에서 마법의 주문을 건 메리다는, 그 부작용으로 곰이 되어버린 엄마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기 위함 모험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엄마의 사랑을 메리다가 깨닫고,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엄마의 훈훈한 결말은 당연한 바. 그래도 감동이 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개구쟁이 삼총사 어린 동생들이 설치고 다니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영화지만 지나치게 현실감이 들었달까.ㅜ.ㅜ

 

영화 시작 전에 보름달을 쪼개서 초승달(그믐달이었나?)로 만드는 석공들의 짧은 애니가 한편 소개되었다. 영화 금방 시작 안 한다고 살짝 화가 날 뻔했지만, 이 짧은 애니가 어찌나 예쁘던지 그런 마음은 삭 사라져버렸다.

 

자막이 올라갈 때 스티브 잡스에게 헌정하는 문구가 등장했다. 아, 벌써 일년이 되었구나. 그나저나 아이패드 미니가 나온다는데, 내가 원했던 사이즈가 이제 나와서 살짝 아쉽다. 근데 여전히 전화 기능은 없나? 그 사이즈에 전화 기능까지 있다면 안성맞춤일 것 같은데 말이다. 나야 아이패드2가 있으니 당장 살 일은 없지만서도...

 

★★★☆

 

 

 

 

 

 

 

 

 

62. 테이큰2

 

추석 연휴, 집안의 불화로 스트레스는 쌓이고, 그래서 크게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볼 게 없어서 보게 된 영화였다. 그냥 1탄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싶었다. 벌써 몇 해가 지났고, 그때도 꽤 나이가 있었던 리암 니슨은 그 사이 더 늙고 말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서 액션 영화는 솔직히 무리로 보였다. 움직임이 많이 느렸고 둔해 보였다. 대사로도 나오지만 정말 '지쳐' 보인다. 아무래도 시리즈 3탄은 좀 무리이지 않을까? 딸 킴 역의 매기 그레이스의 연기가 엄마 팜케 얀센보다 더 좋았다. 근데 매기 그레이스가 브레이킹 던에도 나왔던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 달에 브레이킹 던 마지막 편이 개봉되니 그때 확인해 봐야겠다. 설마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슥 지나가는 역은 아니겠지??

 

★★★

 

 

 

 

 

 

 

 

 

영화 이외의 9월 문화 생활이 더 있었는데, '어린왕자전'과 '노블레스 명품 콘서트', 그리고 여의도에서 있었던 '평생학습축제'는 이전 페이퍼에서 얘기하고 지나갔으니 패쓰하겠다. 아, 루브르 박물관도 이야기를 했었구나. 역시 패쓰!

 

마지막으로 남는 게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다.

이 작품을 예매해 놓고서 디킨스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고 진도가 썩 나가질 못했다. 추석 연휴 시작되던 토요일에 전을 4시간 부치고 충무아트홀에 도착해 보니 피곤이 노도처럼 몰려왔다. 그 결과 초반에 살~짝 졸았다.ㅜ.ㅜ

 

 

 

책에서는 주인공이 찰스 다네이지만, 뮤지컬에서는 시드니 칼튼 쪽에 더 중심을 두었다. 그러니 류정한이 시드니인 것 당연한 것!(편애 모드!) 소설은 충분히 훌륭했지만 지나치게 장황했다. 그래서 쫌! 몰입이 힘들었다. 반면 뮤지컬은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압축해냈다. 소설의 줄거리도 제대로 반영했고, 극적인 요소도 극대화시켰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소개되는 뮤지컬들을 보면 내용이나 노래에서 다소 기대에 못 미칠 때가 있기는 하지만 '무대 연출'에서만큼은 실망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 작품도 그랬다. 그 다양한 무대 연출들이라니. 기술과 자본, 그리고 쌓아온 노하우의 힘일 것이다. 암튼, 엔딩은 참으로 절절! 최근 개봉한 용의자 X보다도 더 절절한 희생과 사랑이었다. 류칼튼님, 사랑해요! 맨 오브 라만차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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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2-10-29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영화를 많이 보시는군요..^^ 전 위의 영화 중 단 한편의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테이큰2의 예고편을 보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섭게 변신하는 아버지보다 세월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마노아 2012-10-29 20:35   좋아요 0 | URL
세월의 힘, 막을 도리가 없네요. 메피님, 요즘은 조금 한가해졌나요? 메피님 이름이 보니까 무척 반가워요.^^

프레이야 2012-10-29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셋 찌찌뽕ㅎㅎ 두도시이야기 뮤지컬 부러워요, 마노아님. 근데 언니랑 어머니 싸움은 잘 해결되셨는지요. ㅠㅠ

마노아 2012-10-29 20:36   좋아요 0 | URL
뮤지컬 참 좋았어요. 다시금 류정한 러브러브 타오르고 있답니다. ^^
아아아, 두 사람의 싸움은 1차, 2차, 3차... 뭐 끝이 보이질 않네요. 파장이 저한테까지 많이 미치고 있어요.ㅜ.ㅜ

순오기 2012-10-30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겹치는 건 4편이네요~ 피에타, 광해, 간첩, 테이큰2~
세월 앞에 장사없는 리암 리슨~ ㅠㅠ

마노아 2012-10-30 01:07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 변함 없는 사실이 슬펐어요. 흑...ㅜ.ㅜ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 보리 한국사 2
김용심 지음 / 보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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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묘하게도 왕위라는 것은 언제나 전부, 아니면 ‘전무’를 요구한다. .... 이 무시무시한 ‘권력’이라는 저주의 힘이 영조를 짓눌렀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영조는,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그것도 아들에게 잃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40쪽

하지만 꼼꼼히 따져 보면 이것은 정말로 열녀를 기록하는 글이 아니다. 왜냐하면 첫 부분부터 열녀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아무개 둘째 딸 신 씨, 아무개 첫째 부인 박 씨" 하는 식으로 그 아버지나 남편의 이름으로 소개된다. 정작 본인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것이다. 중간 부분도 마찬가지. ... 오로지 얼마나 남편을, 시댁 어른을, 자식과 살림을 잘 돌보는지만 적어 내려간다. 마지막 부분 또한 거의 다 "군자 왈, 이 열녀의 지극한 정절을 깊이 치하하노니......"로 시작되는, 글을 쓴 남성의 평가로 끝난다. 가장 여성답다는 열녀전의 기록이 완벽하게 남자의 눈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결말도 언제나 똑같아서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최고의 열녀라고 부르짖으며 끝을 맺는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모두 열녀가 되어 그 한 몸 죽여서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자! 그렇게 거창하게 외치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글. 이른바 과부의 ‘죽음’을 조장하는 글이 바로 열녀전인 것이다.
-141쪽

그래서 소품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돌의 생김새를 말했을 뿐인데도, 단숨에 잘못된 세상 풍속을 짚어 내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아주 작은 것, 사소한 것,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들을 나열하고 늘어놓는 것뿐인데도, 바로 거기에서 유교라는 거대한 세계관마저 휘청 흔들리는 한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치 의도하지 않은 듯, 그렇지만 울림은 크게. 그래서 소품체가 위험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길로 떨어뜨린다고 정조는 걱정하였던 것이다.
-183쪽

박지원이 그 뛰어난 해학과 재치로 우둔한 사람들을 ‘일깨우는’ 글을 썼다면, 이옥은 그 우둔한 백성들의 하나가 되어서 말없이 묵묵하게 그들의 모습을 ‘기록할’ 뿐이었다. 그 기록에는 양반이라지만 실은 양반답지 않은, 무인에 서얼에 한미한 가문인 이옥 자신의 처지가 녹아 있었고, 그럼으로써 그 어떤 선입견이나 판단 없이 백성들 자체가 되어 그 삶을 충실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187쪽

박지원은 열녀전에서 부당한 인습과 악습을 비판했다. 박지원이 쓰고자 하는 주제는 악습이고, 그 악습의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옥은 부당한 악습을 쓰기보다는 그 악습에 맞부딪치는 ‘여성’이 주제였고, 그 악습으로 인한 ‘고통’을 드러낼 뿐이다. 그 여인들과 함께 아파하든, 또는 아예 외면하든 그것은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 하지만 그 고통들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 그대로 가만있지 못하고 그 고통을 토해 내게 하는 어떤 것, 바로 그것이 이옥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194쪽

생각해 보면 정조처럼 문체의 의미를, 곧 글쓰기의 의미를 과대평가한 임금은 없다. 순진하게도 정조는 문체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같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고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또한, 정조처럼 문체를 과소평가한 임금도 없다. 정조는 위로부터 개혁을 통해 얼마든지 문체가 바뀐다고 보았기에 문체반정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문체라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움직인다는 사실, 임금 개인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힘과 의지가 들어가야 비로소 변화한다는 사실을 정조는 간과하고 있었다. 문체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 살아 숨 쉬는 힘을 결정적으로 과소평가한 것이다.
-206쪽

그러나 여름 벌레는, 비록 차가운 겨울을 보지는 못할망정 내년 여름에는 또다시 그 모든 얼음이 녹는 뜨거운 계절이 올 것임을 알고 있다. 오히려 겨울을 안다고 여름 벌레의 돌아올 여름을 비웃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에 죽는 벌레에게 겨울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의 바름(겨울)만이 최고라 주장하는 억지에 가깝다.
-211쪽

정조는 문체를 바르게 바꿔서 세상을 바르게 만든다는 원대한 꿈을 결코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뜨거운 여름 속의 얼음 군왕이 되어 역사의 한 갈피 속으로 사라져 간다. 문체반정은 어쩌면 바로 그 임금 정조의 가장 서러운 자기 긍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정조, 그에게 글은 ‘바른’ 것이었다. 바른 것이어야 했다.
-215쪽

시대는 흐르고 있었다. 정조는 그 흐름을 거스르려 하였다. 성리학이라는 얼음 갑옷을 입고 문체반정이라는 칼을 휘두르면서. 그러나 시대의 뜨거운 강 속에서 얼음 갑옷은 이내 산산이 녹아서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그래도 정조는 끝까지 그 무거운 얼음 갑옷을 결코 벗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믿는 ‘바름’이었으므로.
박지원은 그 흐름의 정점에 조용히 서 있었다. 아니, 눈을 부릅뜨고 제자리에 서서 누더기를 걸친 채 ‘살아 있는’ 햇빛을 즐겼다. 그것만으로도 시대는 요동을 쳤다. 그래도 박지원은 끝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은 채, 자신의 눈으로 살아 꿈틀거리며 바뀌는 시대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옥은 기꺼이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굳이 맞서지도, 조급하게 재촉하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함께 흐르면서 다만 자신이 갖고 있는 뜻만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허름한 홑옷이 쓸려가는 날, 진정으로 ‘멋진’ 비단옷의 가치가 드러날 것을 믿었다. 그때까지는 그저 세월과 함께 흐르면 그만이었다.
-242쪽

말과 글을 일치시켜 쓰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꾸밈이나 허식이 없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거나 지식으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듯이 글을 쓰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구나 다 함께 그 뜻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글인 것이지요.
-253쪽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바꾸거나 개혁할 때 "천명을 받았다", 또는 "혁명을 일으켰다" 같은 말을 쓰지요. 비슷해 보이는 두 말은 그러나 전혀 다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명은 대개 왕이나 천자, 영웅 들이 받습니다. 왕은 하늘의 자식이라거나,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영웅 같은 말들은 다 이 천명을 받아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때의 천명은 하늘 천(天)을 써서 사람이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을 뜻하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사람이 고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바로 혁명입니다. 여기서 혁은 가죽 혁(革)을 씁니다. 가죽은 그냥은 쓸 수 없고 꼭 사람이 손질을 해서 써야 하지요. 곧 천명을 손질할 수 있다, 천명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혁명이 것입니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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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 보리 한국사 2
김용심 지음 / 보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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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보리 한국사’ 시리즈는 역사를 읽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고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나쁜 세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먼저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있을 것은 있게 만들고 없을 것은 없게 만드는 그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며 책장을 넘겨본다. 이 조차도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작은 노력일 거라고 믿으며.

 

시리즈의 첫 책은 “선조, 나는 이렇게 본다” 였다. 의미 있게 읽었지만 정작 리뷰는 쓰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째 책인 이 책도 그렇게 지나치게 될까 봐 조바심을 내며 얼른 책을 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본다’ 시리즈의 두 번째 대상은 문체반정이다. '문체반정'이란 당시 유행하던 소설 문체를 엄격하게 금하는 문화 정책이다. 사실 정조 시대에는 이 사건을 ‘반정’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용어로 표현하지 않았다. 이 단어는 후대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만큼 이 사건이 문화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정조는 호학군주였다. 학문의 깊이도 깊었고 그 박학함도 누군가의 추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본시 책읽기를 즐겨했던 성품으로 느껴지지만 아비를 잃고 살얼음 같은 세손 시절을 지나 왕위에 오르기까지 느껴야 했던 지극한 생명의 위험이 그를 더더욱 밤을 새워 책을 읽게 만들었을 것이다. 온 조정이 자신을 죄인의 아들이라며 쫓아내려고 하는 형국에서 그는 그 어떤 꼬투리도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던 그 날 아침까지도 엮어서 펴냈던 소설책과 같은 소품을 정조는 결코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 아비와의 차이점도 증명해야 했지만 정조 자신의 성향도 소품에는 취미가 없었다. 오히려 재미도 모르고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소품류의 수입도 금할 만큼 치를 떨었지만 그렇다고 정말 세상에서 소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고, 그걸 원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조에게는 이 문체반정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명백한 사상통제로 보고 또 누군가는 이를 통해서 노론의 공격으로부터 남인을 지켜내기 위함이라고 보았는데, 내 생각에는 둘 모두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소품체를 썼던 관료들에게 자송문(반성문)을 내게 했고, 벼슬을 빼앗았다가 되돌려주기도 했다. 명백히 사상적 탄압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또 이때 정조로부터 꾸중을 들은 인사들이 노론 인사였고, 이가환 등에 대한 공격을 너희 노론들이 고전(성리학)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더 큰 잘못이라고 받아친 것도 정조였다. 얼마 전에 발견된 그의 비밀 어찰에서는 심지어 그가 그렇게 파르르 떨던 소품 형식의 문체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니 정조가 정이라고 믿는, 바름이라고 믿고 있는 가치 성리학으로 올곧이 나아갈 것을 원했던 이 고지식한 임금님께 문체반정은 꼭 필요했던 수단으로 보인다.

 

자, 임금이 문체반정을 선포했다. 문체가 바르지 않아 세상 풍속이 바뀌었다고 선전포고를 했으니 싸워야 할 대상도 필요하다. 정조는 이 뒤엎어야 할 문체의 중심에 박지원이 있다고 꼭 집어서 이야기했다. 열하일기로 연암체를 선보인 이 거장이 임금의 레이더 망에 바로 걸린 것이다. 그리고 또 한명, 이옥이 있다. 일개 유생에 불과했지만 번번이 임금의 예리한 검열에 걸려 장원에 급제하고도 꼴찌로 밀려나기도 했던 불우한 사나이. 책은 그렇게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 시기에 있었던 치열한 문체 싸움을 전달하고 있다. 그 시대가 어떤 사회였는지,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은 각자 어떤 창과 방패를 들고 싸웠는지를 말이다.

 

생각해 보면 정조처럼 문체의 의미를, 곧 글쓰기의 의미를 과대평가한 임금은 없다. 순진하게도 정조는 문체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같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고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또한, 정조처럼 문체를 과소평가한 임금도 없다. 정조는 위로부터 개혁을 통해 얼마든지 문체가 바뀐다고 보았기에 문체반정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문체라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움직인다는 사실, 임금 개인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힘과 의지가 들어가야 비로소 변화한다는 사실을 정조는 간과하고 있었다. 문체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 살아 숨 쉬는 힘을 결정적으로 과소평가한 것이다. -206쪽

 

진정 정조는 누구보다 문체를 과대평가했고, 또 동시에 과소평가했다. 그를 가리켜 개혁군주라 일컫는 것에 굳이 거부반응을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그 시대를 극복해내지 못했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자연인으로서의 그에게 가지는 애틋함과 달리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아무래도 봉건 군주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거기까지는 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자, 박지원 얘기를 해보자. 문체를 어지럽히는 주범으로 지목된 이 사나이는 임금이 써서 올리라고 하는 순정한 문체를 거부한다. 너무 잘못해서 반성문도 쓰지 못하겠다고 능청스럽게 빠져나갔던 이 인물에게 정조는 면전에서 글을 써내라고 명을 내렸다. 거기에 대해서 박지원은 과연 임금이 원하는 글을 써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이 괴짜 양반은 오히려 가장 소품스런 글을 써서 올린다. 무인 이방익이 중국에서 표류했다가 돌아온 이야기를 쓰면서 연암은 이방익의 아버지 이광빈의 일본 표류기로 역공을 펼친다. 물론 여기에 대해 정조가 어떤 보복성 징계를 한 바는 없다. 오히려 풋!하고 웃음을 터트리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된다. ‘철즙을 물들이지 않았더라’로 대표되는 이광빈의 이야기는 이 책 속의 또 다른 이야기로 등장하며 독자의 관심을 확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독자의 심금을 울린 것은 '열녀전'이었다.

 

박지원은 몇 편의 열녀전을 쓴 바 있다. 기존의 사대부들이 쓰곤 했던 열녀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초기 열녀전과 달리 마지막에 그가 쓴 열녀전은 놀라운 차이점을 보인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 보면 이것은 정말로 열녀를 기록하는 글이 아니다. 왜냐하면 첫 부분부터 열녀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아무개 둘째 딸 신 씨, 아무개 첫째 부인 박 씨” 하는 식으로 그 아버지나 남편의 이름으로 소개된다. 정작 본인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것이다. 중간 부분도 마찬가지. (...) 오로지 얼마나 남편을, 시댁 어른을, 자식과 살림을 잘 돌보는지만 적어 내려간다. 마지막 부분 또한 거의 다 “군자 왈, 이 열녀의 지극한 정절을 깊이 치하하노니......”로 시작되는, 글을 쓴 남성의 평가로 끝난다. 가장 여성답다는 열녀전의 기록이 완벽하게 남자의 눈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결말도 언제나 똑같아서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최고의 열녀라고 부르짖으며 끝을 맺는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모두 열녀가 되어 그 한 몸 죽여서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자! 그렇게 거창하게 외치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글. 이른바 과부의 ‘죽음’을 조장하는 글이 바로 열녀전인 것이다. -141쪽

 

이름조차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열녀전의 주인공인 그녀들은 자신의 이야기는 없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오로지 시댁 식구들을 위한 희생양으로 살다가 마지막까지 사대부 남자의 평가로 끝맺음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목숨으로 값을 치러야 했다. 그 희생의 악순환을 박지원은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런 악순환의 한축을 자신이 담당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하여, 박지원은 새로운 열녀전을 썼다. 무려 과부의 ‘욕망’이 등장하는, 온전히 그녀가 주인공인 열녀전을 말이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명백하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이어지고 있는 이 인습을, 억압된 관습의 문제점을 낱낱이 고발한 것이다. 그런 글은 임금이 강조하는 순정한 문체로 쓸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명이 다해 가고 있는 고전 경서의 낡은 문체를 끌어안고, 여전히 성리학 질서에서 비켜가지 않는 이상 정치를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임금에게 던지는 반성 아닌 반성문, 동시에 최고의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물론 이 열녀전이 임금께 올려진 글은 아니었지만.

 

이제 이옥에게로 가보자. 그동안 내가 접한 이옥의 이야기는 그를 시대의 희생양, 가련한 피해자로만 보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소개된 이옥은 비록 문체반정의 최대 피해자이긴 하더라도 그로 인해 불행해진 사내로 보이지는 않는다. 과거 시험에만 매달리던 젊은 시절에 그가 가졌을 낭패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는 벌을 받아 충군에 동원되었을 때조차 그 자신의 문체를 버리지 않았고 더더욱 탐닉하는 모습을 보였다.

 

궁한 사내, 남쪽 동네에서 남몰래 한탄하고

나이 많은 처녀, 북쪽 대궐에 알려졌네.

여러 재상들, 서쪽 성에서 혼례 일을 맡고

정겨운 부부, 동쪽 평상에서 은혜에 감격하네. -166쪽

 

나라가 나서서 가난한 처녀총각들을 혼인시켜주었는데, 그만 실수록 누락된 노총각이 드디어 장가가게 된 장면을 ‘희곡’으로 그려냈다. 사방위가 대구를 이루며 그날의 경쾌함을 눈에 선하게 그려내었다.

 

“이 달이 무슨 달인가? 눈앞에는 아지랑이가 흔들흔들, 푸른 사초 둑에는 새 잎이 뾰족뾰족, 물억새는 서걱서걱 소리를 내고, 종달새는 세 발까지 날아오르는 달. 그런데 삼 년 묵은 말가죽만 오호롱 지호롱. 늙은 도령의 심사, 이에 참기 어렵구나.” -167쪽

 

이쯤 되면 이 노총각이 얼마나 마음이 달떴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노총각만 그랬겠는가. 마침내 시집가게 된 노처녀의 마음 또한 왈랑거려 참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멍멍이를 붙들고 내일모레 시집간다고 자랑을 했을까.

 

이옥의 글은 생명이 있었다. 벼룩에게 물리는 순간을 읊은 다음 글을 보시라.

 

마치 은바늘로 터진 솔기를 꿰매는 듯

재빨리 살갗을 파고드는데,

장미꽃에 잘못 부딪혀

붉은 가시에 살갗이 찔린 듯

피와 신경이 놀라고 자지러져

사람으로 하여금 배겨내지 못하게 한다.

 

이에 손톱으로 쳐 누르자

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창자는 볼 수 없고

다만 한 떨기 복사꽃 같은 피가 보였다.

이옥, ≪경금소부≫, <벼룩을 읊은 부> -234쪽

 

진짜 눈앞에서 벼룩이 살갗을 물어뜯는 현장을 목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마지막에 한 떨기 복사꽃으로 피어난 핏방울까지,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글솜씨다. 이런 글쓰기에서 자부심을 느낄, 재미와 만족을 느낄 사나이에게 고전 문체로만 글을 쓰라고 하니, 그야말로 생고문이 아닐 수 없다.

 

정조가 고전 문체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면, 이옥은 그 반대편에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롭고 창의력이 넘치는, 생명이 돋아나는 그런 새 문체를 갈고 닦은 이옥, 그리고 그 중간에서 조화로움을 추구했던 박지원까지.

 

여기, 18세기에 가장 치열하게 문체를 두고 고민한 세 사람이 놓여 있다. 얼음 갑옷을 입고서 뜨거운 태양빛에 제 몸을 내던졌던 임금 정조. 얼음이 녹아 내려가도 결코 포기할 줄 몰랐던 강철 사나이에게 글은 ‘바른’ 것이었다. 바른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박지원은 누더기를 걸친 채 살아있는 햇볕을 즐겼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이옥은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면서 자신의 뜻을, 자신의 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언젠가 자신이 입은 허름한 홑옷이 쓸려가는 날, 진정으로 ‘멋진’ 비단옷의 가치가 드러날 것을 믿었다. 그러니 그는 불행하지 않은 사나이였다.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세 사람을 둘러싼 문체반정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했다. 지금 왜 우리가 그 시절의 문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앞서 이 역사 시리즈의 출간의 변을 언급했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렇다면 어떤 문체를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저자는 이렇게 풀어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바꾸거나 개혁할 때 “천명을 받았다”, 또는 “혁명을 일으켰다” 같은 말을 쓰지요. 비슷해 보이는 두 말은 그러나 전혀 다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명은 대개 왕이나 천자, 영웅 들이 받습니다. 왕은 하늘의 자식이라거나,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영웅 같은 말들은 다 이 천명을 받아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때의 천명은 하늘 천(天)을 써서 사람이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을 뜻하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사람이 고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바로 혁명입니다. 여기서 혁은 가죽 혁(革)을 씁니다. 가죽은 그냥은 쓸 수 없고 꼭 사람이 손질을 해서 써야 하지요. 곧 천명을 손질할 수 있다, 천명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혁명인 것입니다. -256쪽

 

천명에 가까웠던 정조는 문체를 바꾸려 하였지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문체를 바꿔낸 이들은 가죽을 손질할 수 있는 사람들, 곧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조금씩 문체를 바꾸고 현실을 바꾸고, 그렇게 더 나은 세상,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게 우리의 소명이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책임이자 기쁨이다.

 

제법 딱딱할 법한 주제건만 기대 이상으로 이 책은 재미있다. 소개되는 인물들이 워낙 입체적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입과 손을 빌려 읽게 되는 글들이 또 하나의 이야기 세계를 창조해 냈다. 적절히 문답법을 섞어서 쓰는 저자의 글솜씨도 재미에 큰몫을 담당했다. 부록으로는 문체반정이 진행되는 와중에 정조가 노론 신하와 나눈 대담이 소개되고 있다. 이 말발도 좋고 글발도 좋은 임금님이 작정하고 덤벼든 신하 하나를 어떻게 요리해내는지 그 솜씨 한 번 구경해 보시라. 두 번째 부록은 ‘빨간펜’ 선생님 정조가 자신의 글을 밑줄 그어가며 수정하고 풀이하는 가상의 글잔치 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과연 정조는 자신의 날카로운 검열을 어찌 피해갈 것인가. 세 번째 부록은 ≪조선왕조실록≫ 속 문체반정에 관한 기록들을 발췌한 것이다. 은근히 실록을 읽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그 방대한 양을 다 읽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관심 가는 부분을 뽑아 읽는 정도의 노력이라면 말이다. 아시아 1위, 그리고 세계 5위에 빛나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을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 번 도전해볼 법한 노력이라 하겠다.

 

이 책의 시리즈는 10권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선조와 정조의 문체반정이 출간되었고, 근간으로 동학과 김삿갓이 대기 중이라고 한다. 관심 가는 내용들이다. 다음 시리즈도 충분히 기대해 본다.

 

덧글) 무척 즐거운 독서였지만 원문 인용의 녹색이 눈을 피로하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색도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아서 더 힘들었다. 책이 많이 팔려서 다음 쇄에는 폰트 수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역사책도 아주아주 잘 팔리는 우리네 책문화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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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10-26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조와 박지원이 있었다지만,
모두 '한문'으로 하는 문체반정이었을 뿐,
삶으로 파고들지는 못했어요.

박지원이 농민을 안타까이 여기는 시를 쓰기는 했어도
스스로 농민이 안 되었을 뿐더러
농민들이 쓰는 '한국말'로 글을 쓴 적도 없어요.
언제나 한문으로 '권력자'와 '지식인'한테 보여주는 글만 썼지요.

문체반정이란 무엇일까요.

마노아 2012-10-26 23:09   좋아요 0 | URL
정조보다는 박지원이 앞으로 나아갔고, 그보다는 이옥이 훨씬 더 많이 나아간 것 같아요.
자신의 계급을 극복해내지 못한 한계성은 그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 같고, 그래도 그 중에서 박지원은 좀 나은 편 아닐까요? 적어도 그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려고 애썼잖아요.

파란놀 2012-10-28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민들을 가엾게 여기는 글을 쓰기는 하되
농민이 읽을 수 없는 한문으로 쓰던 예전 분들은
처음부터 아예 농민이 읽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던 임금들보다
조금 더 나은 편이라 할 테지만,
'좀 나은 편'이라고 해서 백성과 함께 살았을까...는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 계급을 털지 못한 한계는 '대다수'가 아니라 '모두'이지 싶어요.
맹사성 같은 사람을 빼고는
아마 '모두'가 아니랴 싶어요.

왜냐하면, 스스로 농사지어 밥먹던 지식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거든요.

마노아 2012-10-29 20:34   좋아요 0 | URL
글 잘 읽었어요. 옳은 말씀이에요.

2012-10-30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30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쟁이 입 막는 법? 2012 이그노벨상이 알려주마   FUSION 과학

제 1718 호/2012-10-17

수다쟁이 입 막는 법? 2012 이그노벨상이 알려주마

2012년 올해도 어김없이 하버드대학 샌더스 강당에서는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의 수상 목록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이 평화상 선정 논란에 시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그노벨상의 수상목록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한번쯤 호기심을 가졌을 문제들에 대해 과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올해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본산업기술종합연구소 가즈타카 구리하라 연구팀은 쉴 새 없이 떠드는 수다쟁이의 입을 막을 방법을 연구해 음향상을 수상했다. ‘스피치 재머(Speech Jammer)’라는 이 장치는 누군가 말을 하면 수십 분의 1초 간격을 두고 자기 말을 다시 듣게 해서, 자기가 얼마나 말을 많이 하고 있는지 깨닫게 만드는 장치다.

자신이 말을 한 이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하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현상에서 착안했다. 이 장치는 마이크에 잡힌 소리를 약 0.2초 후에 지향성 스피커로 최대 약 30m 떨어진 발화자에게 되돌려 준다. 연구자는 시상식에 참여해 이 발명품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이로써 일본은 6년 연속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귀가 솔깃해질 연구도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 기계공학과의 H.C 매이어와 R. 크레체트니코프는 ‘커피를 들고 걸으면 왜 쏟아질까?’라는 연구로 이그노벨상 유체역학상을 수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들고 다니고, 또 종종 엎지르게 된다. 연구진은 이 흔한 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걷는 속도와 컵에 담긴 액체의 양 등 조건의 변화에 따라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분석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연구진은 일반적인 커피 컵의 크기와 커피라는 물질적 특성, 걷는 행위에는 엎지르는 현상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꽉 찬 커피잔을 들고 있다면 천천히 걷거나 아예 다 마시고 걷는 것이 안전하겠다.

긴 머리를 하나로 즐겨 묶는 사람이라면 이 연구를 주목하자.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은 포니테일, 즉 말총 모양이 되도록 머리카락을 뒤로 모아 하나로 묶는 머리 모양에 대한 연구가 차지했다. 긴 머리를 상큼하게 묶고 공원을 시원하게 달리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달리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며 상체를 움직이지 않더라도, 뒤통수에 묶인 머리만은 좌우로 흔들린다. 조셉 켈러, 레이먼드 골드스테인 등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유니레버 사의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호기심을 품었고 말총머리의 모양과 움직일 때 힘의 균형 문제를 조사하고 나섰다. 시계추 같이 단단한 것부터 줄처럼 유연한 것까지 다양한 모양의 말총을 대상으로 각각의 진동 양태를 선방정식으로 풀어냈다.

건강검진을 앞둔 사람에게 솔깃할 연구도 있다. 신경과학상은 기능성자기공명장치(fMRI)와 관련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크레이그 베닛 연구팀은 뇌 속 혈류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fMRI를 죽은 연어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죽은 연어의 촬영 결과에서도 뇌가 활성화됐을 때 나타나는 데이터들이 발견됐다. 물론 이것은 거짓 양성 반응이다. 이 연구는 MRI 등 뇌 촬영 결과를 무조건 믿는 경향에 경종을 울리는 결과다.

이 밖에도 2012년 이그노벨상은 흥미로운 연구를 다수 소개한다. 해부학상은 침팬지의 인식 기능을 연구한 네덜란드 연구자 프란스 드 바알과 제니퍼 포로르니가 수상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침팬지는 엉덩이가 나온 뒷모습 사진을 보고 다른 침팬지를 구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는 원래 침팬지가 처음 본 상대의 성별을 얼굴로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을 연구하려고 했다. 때문에 성별에 따라 모양이 다른 엉덩이 사진을 이용했다. 그런데 실험 과정에서 침팬지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동료일 경우 얼굴과 엉덩이를 완벽히 매치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참고로 침팬지는 얼굴만으로는 성별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심리학상은 왼쪽으로 자세를 기울였을 때 에펠탑이 더 작게 보인다는 사실을 입증한 애니타 얼랜드, 롤프 즈완, 튤리와 과달루페가 수상했다. 이 연구에는 닌텐도의 게임기인 ‘위 밸런스 보드(Wii Balance Board)’가 사용됐다. 연구진은 33명의 대학생을 이 위 밸런스 보드 위에 서게 한 뒤 왼쪽, 오른쪽으로 기울인 상태에서 에펠탑의 높이를 평가하게 했다.

평화상은 오래된 탄약을 이용해 사물을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한 러시아의 SKN회사가, 화학상은 스웨덴 앤더스뢰프 지역 주민의 머리카락이 녹색으로 변하는 이유를 밝힌 스웨덴 화학자가 수상했다.

2012년 노벨문학상은 한국 시인 고은이나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등 동아시아권 작가의 수상이 점쳐졌던 까닭에 더욱 기대를 모았다. 결국 중국 소설가 모옌이 수상했으니 아주 빗나간 예상은 아니게 됐다. 그렇다면 이그노벨상은 누구에게 문학상을 수여했을까? 수상자는 미국 회계감사원으로, 수상작은 2012년 5월 10일 발표한 보고서와 연구 작업에 드는 비용 추정에 관한 보고서였다.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준비를 위한 보고서 작성을 권고하는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공로”였다. 먼저 웃고 그 다음 생각하게 만드는, 이그노벨상 다운 선정작이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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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7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10-17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지인 중에 정말 잠시도 입을 가만 있지 않는 언니가 있어요.
저도 이 글 보고 그 언니 생각났어요. 스피치 재머라니!! ㅎㅎ
제게 가끔 오는 이명 생각도 했는데요, 귀가 울리면 내가 말하기가 불편한 경험이요.
내가 말을 하면 아주 잠시 후 그말이 내 귀에 들리거든요. 그니까 그게 스피치 재머의 원리??ㅎㅎ, 이러면서요.

마노아 2012-10-18 16:35   좋아요 0 | URL
저도 좀 말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상대방이 내게서 스피치 재머를 생각한다면 아아, 그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ㅎㅎㅎ
그런데 이명이라니, 어감은 문학적이지만 당사자는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프레이야님, 이 가을, 우리 조금 느리게 살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