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는 멀리 진주에서 친한 언니가 서울로 놀러왔다. 처음 약속 시간은 2시 경이었는데 언니의 친구가 결혼할 남친 소개해 준다고 해서 3~4시쯤 나올 수 있다고 한다. 당시 내 친구가 3시에 시작하는 뮤지컬 하나와 6시에 시작하는 공연 표를 주었는데, 약속시간이 애매해져서 같이 보려던 3시 공연은 포기, 6시 공연은 거리도 먼데 늦게 만나서 가기 힘들 것 같아서 여기도 결국 못가게 되었다. 최종 4시에 보기로 했지만 결국 언니가 나타난 것은 4시 40분ㅠ.ㅠ 아흐 동동다리... 꽃별 공연 아쉽다. 해금 연주 듣고 싶었는데...

 

 

 

 

 

2. 월요일에 급하게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난 나더러 오라고 한 학교는 그곳이 어디든 제일 먼저 연락 준 곳으로 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으로 집을 나섰는데, 이날은 오리발 강습이 있는 수영장 가는 날!  학교가 집에서 많이 멀었다. 버스 한 번 타고 지하철 두번 타고서 1시간 30분을 가야 한다. 수영가방과 오리발은 지하철 사물함에 넣고 가리라 결심했는데, 지하철 역에 도착하고 보니 웬걸! 핵안보 정상회의 때문에 모든 사물함 사용 금지....ㅠ.ㅠ 아, 어쩜 좋아. 수영장 가방에 오리발에 내 가방까지, 가방 3개 바리바리 들고 머나먼 길 돌아 학교에 도착. 교문 없고 운동장 없는 학교 건물의 첫인상은 일단 고시원. 그리고 교무실은 면사무소 혹은 경찰서 분위기? 약속 시간은 5시였는데, 교감샘 30분 기다리고 그 다음에 교장샘 30분 기다리고, 그 다음에 몇몇 곡절이 있어서 다시 30분 기다리고...  어찌 됐든 화요일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다시 3개의 가방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갔지만, 이미 수영 강습 시간 끝났고, 이번주 주3회 강습은 모두 빠진 채로 한달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다음달 등록은 하지 못했다. 1년 8개월 동안 성실히 수영을 했는데 많이 아쉽다. 주변 상황이 안정적으로 변하면 오전 시간에 다니는 것으로 조정을 해봐야겠다.

 

3. 갈등이 많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를 안 써주기를 바랐다. 꽤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역대 최강이었다. 사물함도 없고 세면대도 없고, 컵하나를 씻으려고 해도 2층 화장실로 가야 하는 열악함은 둘째 치고, 야간 학교인지라 3시 반 출근에 10시 퇴근이라는 근무 조건이 왕복 3시간의 우리 집에선 좀처럼 답이 나오질 않았다.

 

4. 게다가 박복하게도, 화요일에는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300만부 돌파 기념 콘서트에 당첨되었고, 목요일에는 뮤지컬 닥터 지바고가 당첨되었다. 나 한가할 때는 늘 비켜가는 이런 행운이, 바빠지기 시작하면 몰려서 당첨되곤 한다. 주간 근무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인데, 야간 근무이기 때문에 모조리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속상해라....

 

 

 

 

 

 

 

 

 

5. 화요일은 인수인계 때문에 3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이날 내 수업은 8시에 하나뿐이었다. 무슨 시간표가 월수목은 5시간 연속 수업이고 화요일은 한시간, 금요일은 두시간. 쉬는 시간은 달랑 5분. 연속 5시간 수업이면 저녁 먹을 짬도 없다. 화장실 한번 다녀오면 쉬는 시간도 끝난다. 저녁밥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순간 인권을 탄압받는 기분이 들었달까.(ㅡㅡ;;;)

 

6. 여긴 1년 3학기제로 2년에 3년 과정을 모두 마치는, 만학도 위주의 대안학교다. 1학기에 내가 맡은 과목은 4과목. 이중 3과목은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은 되어도 내 전공이 아니어서 준비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화요일에 다음날 수업할 교과서를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왔다가 다음날 출근길, 가방끈이 끊어졌다. 지난 12월에 샀으니 한 3개월 만이다. 에잇...;;; 게다가 중1 교과서는 없어서 복사해서 써야 한단다. 헐, 교사 교과서가 없대...ㅜ.ㅜ 앞자리 사회 선생님 책을 빌려서 복사하려는데 엄청 싫은 티를 내신다. 결국 주간샘이 퇴근하는 5시 이후에 빌려보고 도로 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어제 교보문고 가서 교과서 사왔다.;;;

 

서점에 간 김에 신간 코너에서 내 이름자 박힌 책을 보고 돌아왔다. 지난 몇달 고생도 하고, 많이 배우게도 했던 책이다. 감격스럽다.

 

출판사에서 보내준다던 책은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학교로 보낸다는 걸 눈치 보여서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언제고 학교도 내게 편해질 순간이 오겠지..;;;

 

그리고 기다리던 문학상 신문!

다락방님은 지난 주에 받으셨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깜깜무소식이어서 마침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싶을 때에 주소를 물어오셨다. 그리고 다음날 받은 신문과 선물 책 한권! 같이 추천받은 깡패단의 방문은 오늘 주문할 생각이다.

 

 

 

 

금요일에 계약서를 썼는데, 기존 경력의 호봉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자기네 학교만의 특수성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결론은, 기존에 받던 월급보다 대략 월 50만원 정도가 덜 나온다. 아, 하늘이 노랗다. 뭔가 미심쩍고 수상쩍은 내 짐작들은 족벌 사학들의 경우의 수에 다 맞아떨어졌다. 금요일에 회식을 했는데, 기존에 수년째 근무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왜 이런 데를 왔냐고 막 나를 야단치거나 측은해하신다. 아, 어쩜 좋아.... 소주를 마신 것은 만 4년도 더 된 것 같다. 소주는 맛이 없어서 맥주를 달라는데 맥주 안주고 소맥을 준다. 소맥은 처음 마셔보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맥주의 가벼움에 소주의 무거움을 더한 느낌? 전반적으로 사이다 맛과 비슷! 반컵 마셨는데 다들 털고 일어선다. 한컵은 비울 생각이었는데 쩝...

 

7. 수업 시간은 아주.............. 역동적이었다. 내 어머니 아버지뻘 되시는 분들이 앉아 계시는 교실의 풍경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불쾌해질 걸쭉한 농담들이 마구 던져진다. 그냥, 웃었다. 공부하고자 하시는 열기는 대단하시나, 학습 능력은 애석하게도 많이 떨어지시는 만학도들. 짠하고 안쓰럽고, 그래서 좀 더 쉽게, 좀 더 재밌게 수업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된다. 아직은 갈길이 멀다. 숫적으로는 많지 않은 몇몇 이십대 초반의 청년들은, 멘탈 붕괴 상태의 무례함을 보여주지만, 어머니 아버지들은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셔서 불편할 정도다. 저녁 못먹는 공포가 있었는데, 다행히 쉬는 시간마다 뭔가 얻어먹게 된다. 어머니들이 갖고 오시는 고구마 반조각, 바나나 한개, 꿀떡 3개~ 이런 식으로...ㅎㅎㅎ

 

8. 여러 말못할 이야기들이 더 있는데.... 차마 못하겠고, 하여간 그렇게 되어서 아주 바쁜 며칠을 보냈다. 알라딘의 글들은 오늘 수요일자부터 몰아서 쭈욱 훑어봤다. 눈에 거의 안들어와서 제목만 확인하고 지나가는 수준이었다. 만우절 상품도 한개도 못 찾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 몸은 정직해서,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치니 화요일에는 목이 따끔거렸고, 목요일에는 편한 신발을 신었음에도 장시간 서 있어서인지 엄지발톱 두개가 안으로 파고드는 통증을 느꼈고, 금요일부터는 구상포진이 와서 입술이 부풀어 오르고 가렵다.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차차... 나아지겠지.

 

9. 비록 당첨 행운은 따랐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행운은 오질 않아서, 유홍준 교수님의 조계사 일정은 나의 야곱이 후배와 대신 갔고, 뮤지컬 닥터 지바고도 내 친구가 자신의 후배와 대신 다녀왔다. 그래도 아직 하나는 남아서, 어제 강풀 작가 북콘서트에 다녀왔다. 모처럼 콧바람을 쐰다고 좋아했는데, 어찌나 춥던지 과한 바람에 혼쭐이 났다. 그리하여서 현재 내 장바구니에 담긴 조명가게들...

 

월급이 소박할 테지만, 어쨌든 고정수입이니까 안심하고 1일자 알라딘 장바구니 지르기를 기꺼이 진행하리라. (방금 결제하고 왔다!)

 

 

 

 

10. 창덕궁 달빛 기행을 놓쳤다.

 

 

작년에 경복궁의 야간 감상이 워낙 훌륭했던 탓에 이번에도 가고 싶었는데 이미 매진된 상태에서 알아차렸다.

상반기는 접수 끝났고 하반기는 앞으로 6개월 뒤에 예매할 수 있다. 그때 놓치지 말고 꼭 잡아야 할 텐데!

비록 달빛기행은 못해도 창덕궁으로 봄꽃놀이 다녀오고 싶다. 일단 날부터 따스해진 뒤에... 요새 너무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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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2-04-0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마노아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혼이 쏙 빠져버려요.
모쪼록 힘!내시고,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나날이 되시길! ㅜㅜ

그나저나 달빛기행은 몰랐는데 사진만으로도 좀 많이 멋지네요.
가보고 싶다아아아아! ㅜㅜ

마노아 2012-04-02 10:10   좋아요 0 | URL
일상의 즐거움 회복을 위해 고고씽이에요.
하반기 달빛기행은 꼭 성공해야 할 텐데요. 같이 파이팅해요.^^

프레이야 2012-04-02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덕궁 달빛기행이 있군요. 다음엔 찬스 꼭 잡고 달빛 아래 노니는 아름다운 처자 마노아님으로요!!ㅎㅎㅎ
요새 은근히 춥죠? 봄바람이 아직은 쌀쌀해요. 감기조심하세용~~

마노아 2012-04-02 10:11   좋아요 0 | URL
매력적인 기행이지요? 달빛 아래를 거니는 아름다운 처자로 꼭 거듭나고 싶어요.
오늘은 저녁에 비소식도 있다고 하니 역시 쌀쌀할 것 같아요.
우리 꼭 건강챙겨요.^^

2012-04-02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2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2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2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3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3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2-04-03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덕궁 달빛 기행, 정말 좋은 정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새 직장 이야기,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마노아 2012-04-03 11:44   좋아요 0 | URL
하반기엔 우리 꼭꼭 성공하자구요.
새 직장은, 날마다 무언가 놀래킵니다. 역시 상상초월이에요...;;;;

BRINY 2012-04-0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덕궁 달빛 기행, 벌써 다 매진이라네요 ㅠ.ㅠ

마노아 2012-04-04 11:29   좋아요 0 | URL
제가 매진됐다고 위에 써놨는데...ㅎㅎㅎ
우리 하반기에 다시 도전해요.(>_<)

희망찬샘 2012-04-06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읽어도 맛깔스럽고 재미난 마노아님의 글, 편집자 데뷔(? 맞나요?)를 순오기님 서재에 들러서 보았습니다. 축하드려요.

마노아 2012-04-07 12:29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데뷔라니, 거창합니다. 좀 후하게 이름을 올려주셨더라구요. 축하 감사해요.^^

하늘바람 2012-04-0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빛 기행 참 멋져요
편집자 데뷔 넘 근사해요 무엇보다 좋은 출판사에서 하셔서 더 근사하고요.
역시 마노아님 짱이다 싶었어요.
새로 일하실 곳이 님을 좀 덜 힘들게 하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 가져봅니다

마노아 2012-04-07 23:33   좋아요 0 | URL
데뷔라니, 과한 말씀이세요. 그냥 배려로 같이 이름이 올랐네요. 보리가 좋은 출판사인 것은 분명하지만요.^^
새로 일하게 된 곳은.... 아직도 날마다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상상 그 이상이에요.
그래도 잘 해보렵니다.(>_<)

무스탕 2012-04-07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마노아님~♡
혹시 구로구쪽으로 출근하세요? 제가 아는곳 한 곳이 구로쪽에 있어서 문득 생각났어요. 아.. 안양에도 있다.
하여간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셔야 합니다. 저렇게 이쁜 꽃 걸어 놓으셨으니 그러리라 믿습니다 ^^
(전 어제에 이어 오늘, 내일도 출장이에요 ㅠ.ㅠ)

마노아 2012-04-07 23:34   좋아요 0 | URL
오, 구로구는 아니지만 서쪽인 것은 맞습니다.^^
오늘 프리지야 한다발을 사왔어요. 이 봄이 가기 전에 프리지야 향을 맡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내일도 연이어 출장이라니, 마음이 아파요. 비타민 드시고 힘냄셔요.^^

하늘바람 2012-04-08 11:55   좋아요 0 | URL
아 프리지아 저도 봄 가기전에 사야겠어요. 꼭!

마노아 2012-04-09 11:20   좋아요 0 | URL
봄은 프리지아와 함께 열고 닫아야 해요.^^

마녀고양이 2012-04-1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수업은 아주 역동적이었다 에서
모든 것이 설명되는군요, 이렇게 압축된 표현으로 많은 것을 알려주시다니....
마노아님, 힘드시겠지만 건강 챙기시구 스트레스 받지 마시구, 맥주도 안 사주고 소맥 먹이는 학교지만
예쁜 한해 되시기를.... 그런데 소맥 괜찮지 않아요? 저는 좋던데... 헤헤.

음, 월급이 50만원이나... 그 부분 역시 처절하게 느낌을 공감합니다. 화이팅!

마노아 2012-04-11 00:14   좋아요 0 | URL
목이 부어서 약을 먹는데, 이 약이 녹여 먹어야 하는 거예요. 근데 쉬는 시간이 짧아서 5분 동안 약이 녹지를 않네요...;;;;;
소맥, 처음 마셔봤는데 맛있었어요.^^ㅎㅎㅎ
월급은... 속상합니다. 크흐흑...ㅜ.ㅜ
 

출퇴근이 바빠진 계절이다. 방송 듣기로도 바쁜 나날이지만 책 읽기도 소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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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봄이건말 날씨는 아직도 봄이 아니다.

춘아, 춘아, 어서 달려오렴. 기꺼이 내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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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탠 전 + 간송 미술관
도착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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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그리는 4년여 시간 동안 숀탠이 가장 많이 들여다보고 영감을 얻었을 이민자들의 초상이 아닐까 싶다. 숀탠이 살고 있는 호주는 많은 이주민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 역시 중국계와 백인의 혼혈로 그런 이방인과 이주자의 삶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역사가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부모님께 바칩니다'라는 헌사부터가 벌써 뭉클하기만 하다.

한 남자가 짐을 싸고 있다. 많지 않은 짐꾸러미 중에서 가장 정성을 들인 것은 가족의 사진이다. 깨질까봐 포개어서 정성스럽게 포장한다. 동양의 어느 나라를 연상시키는 여인의 머리 모양이다. 그가 가야할 나라는 그 다른 생김새만큼 먼 곳일 것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할 만큼 지금 현실의 삶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낯선 곳에서의 삶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터! 그 두려움을 보여주듯 검은 괴물의 그림자가 짙게 드러난다.
작별의 순간, 울먹일 것 같은 아이에게 종이학으로 추억과 약속의 웃음을 선사하는 사려 깊은 아버지! 깊은 포옹으로 가족은 기약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눈다.

배를 타고 오랜 시간을 항해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건너 마침내 도착한 낯선 곳!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도전의 땅이지만 모든 것이 녹록치는 않다.
입국 심사에서부터 사람을 기죽인다. 잔뜩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의 그늘진 표정들!

그러나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길을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이 있다.
그 역시 이 사람처럼 언젠가 똑같은 과정을 거쳐 이렇게 길을 헤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누군가의 도움으로 사소한 어려움들을 극복해가며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어주는 기쁨은 분명 되물림 될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므로...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모여 있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위해서 온 이들도 있을 것이고,
살던 곳의 학대로부터 도망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주자일 수도 있고 난민일 수도 있다.
글자 한자 없이도 저자 숀탠은 수많은 이민자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짐작 가능하게 저 작은 화면 속에 빼곡하게 담아냈다. 저 안의 사람들이 가졌을 마음의 크기들, 그 결들이 그림 너머 내게로 잘 전달된다.

전쟁과 학살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 어둡고 무섭고, 서럽다.
저 기억들을 묻고 새출발을 해낸 많은 사람들, 그들의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이겨낸 이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고, 그 누적된 기억과 이야기가 또 다시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

긴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얼어붙은 땅에서도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난다.
그렇게 시간은 누군가에게 인내의 긴 터널을 지난 다음 새빛을 선사하고,
새 약속을, 새 희망을 꿈꾸게 한다.

홀로 떠나왔던 아버지는 편지를 보내며 그리움을 달래고 달래었을 것이다.
떠나온 곳에 남아있던 가족들도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보태며 다시 만날 날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재회가 이뤄진다.
함께 한 상에서 밥을 먹어야 식구, 그리고 가족!
가족은 다시금 함께 식사를 하며 웃음을 나누는 따뜻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어린 딸은 동전 한개를 받아들고 심부름을 가다가 낯선 이를 만난다.
이제 막 도착했을 이 이방인은 소녀에게 길을 묻는다.
소녀는 친절하게 길을 짚어준다.
아이의 아버지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길을 알려준 고마운 천사처럼!
그렇게 새 역사가 되풀이 되어 창조된다.
하나의 시작이며 하나의 끝이기도 한 '도착'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하나의 글자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울림을 주는 진정한 문학이다. 이 말없는 그림책에 경의를 표한다.

호주에서 이미 연극으로 올려진 바, 우리나라에도 연극 작품으로 무대가 올려진다.
엘지 아트센터, 5월 3일부터 6일까지다.
가족의 달 5월에, 부모님 생각이 간절한 그 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보인다.

과연 이 대사 없는 작품을, 이렇게 이국적이고 이색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배경을 어떻게 무대로 옮길지 무척 궁금하다.
어떤 방식이든 분명 독자와 관객을 감동시킬 거라고 기대한다.
언제나 마음을 깊게 울리는 숀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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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4-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숀텐의 도착은 못 봤는데 '도착'이 그런 의미였군요. 중의적인~~~~

마노아 2012-04-02 10:16   좋아요 0 | URL
대단한 작가님이에요. 이렇게 글없는 그림책, 정말 좋아요.^^

희망찬샘 2012-04-0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가지고 있어요. 제겐 어려운 책이었어요. 이국적, 이색적, 몽환적~ 맞아요. 딱 그 분위기!!! 연극이라는 영역으로의 전환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노아 2012-04-07 12:18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려워서 출판사 소개를 읽고 다시 봤어요. 그랬더니 조금 더 이해가 되더라구요.
알라딘에서 연극 초대권 응모하고 있던데 평일이어서 응모도 못했어요. 아쉬워요.
 
소미네 똥가게에 초대합니다!
너도 멋진 똥을 누고 싶지?
클라우스 케자르 체러 글, 필립 태거르트 그림, 김경연 옮김 / 살림어린이 / 2011년 10월
절판


리뷰 쓴 게 통으로 날아갔다. 아아아...ㅜ.ㅜ

다시 쓰려니 힘이 쭉 빠진다. 기억을 더듬어서....;;;;;

커다란 똥무더기! 저 똥들의 주인은 대체 누구?
바로 똥코끼리! 코끼리쯤 되면 이 정도 규모의 대단한 똥도 쌀 수 있다나 뭐라나!

해변가에서 후딱 멋진 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 사냥꾼을 단숨에 제압하기도 하고,
열심히 농사 짓는 농부에게 크고 달디 단 딸기를 선사하기도 한다.
게다가 배고픈 파리 부인에게는 진수성찬을!!

헨젤과 그레텔은 빵부스러기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표시했지만 새들이 모두 먹어버려서 길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똥코끼리의 강렬한 똥은 누구도 그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집으로 반드시 돌아간다. ^^
방귀 소리는 나팔 소리로 음악이 되어버리고,
불난 학교의 불도 바로 꺼버리는 똥도사!
그렇다면 그 학교는 그야말로 똥통학교???
시뻘건 불을 내뿜는 성난 화산의 분화구도 막을 수 있는 대단한 똥코끼리!
그래도 화산은 좀 심했다.^^

이렇게 멋진 활약을 보았으니,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멋진 똥을 누고 싶어졌을까?
그렇다면 바로 변기통으로 고고씽!!!

유아들의 배변훈련 책으로 안성맞춤이다.
소미네 똥가게가 재미와 귀여움이 있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배변의 중요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스티커도 아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 것이다.
내가 떼어서 붙여보고 싶지만, 참아야지. 그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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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밥 먹을 때 똥 얘기 하지 말라니까!!!
    from 그대가, 그대를 2013-05-14 23:15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말린 자두를 먹는다. 변비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 먹고도 말린 자두를 두알 먹는다. 역시 변비에 좋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을 똥! 우리 몸에서 뗄 수도 없는 중요한 똥! 그러나 '똥덩어리!' 소리가 욕으로 들릴 만큼 무시 당하는 가엾은 똥! '바른 우리 말 읽기책'으로 기획돈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이야기의 첫 시작은 '똥' 이 담당했다. 어린 동생 동만이의 별명은 '똥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