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1527 호/2012-01-23

전통놀이 백전백승의 비법을 알려주마

태연과 사촌은 설날을 맞아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 집에서 만났다. 이들은 결의에 가득찬 표정으로 뒷동산에 오른다. 일명 대머리 언덕으로 불리는 널찍한 산등성이는 누가 봐도 연날리기 최적의 장소다.

“자, 오늘은 반드시 지존을 가리기로 하자. 우리가 어찌어찌하다 동갑으로 태어났으나, 서열 없이 마구 이름을 부르는 불상사는 막아야 하는 법! 그리하여 오늘 이 대머리 언덕에서 역사적인 서열정하기를 하고자 한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태연과 사촌의 연이 동시에 하늘을 나른다. 이때 태연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어제 밤늦도록 아빠에게 배운 과학적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촌, 난 과학적으로 완전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너한테 도저히 질 수가 없네. 연실을 잡아당기면 왜 연이 높이 뜨는 줄 알아? 바로 ‘베르누이의 정리’ 때문일세. 유체의 속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고, 반대로 속도가 감소하면 압력이 커진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지.”

“잘난 척 하시기는. 그거랑 연날리기랑 무슨 상관이야!”

“이런 무식한 인생 같으니라고~! 잘 보게. 연줄을 잡아당기면 연의 앞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네. 그렇게 되면 유체(공기)가 지나가는 단면적 길이가 연의 윗부분은 길고 연의 아랫부분은 짧아지게 되지. 당연히 길이가 긴 윗부분을 지나는 공기가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이고, 속도가 빨라진 만큼 압력은 떨어지게 된다네. 이때 압력이 높은 아래쪽에서 낮은 위쪽으로 공기가 움직이면서 물체가 비행하도록 해주는 힘, 즉 ‘양력’이 생기는 것이지. 이러한 연유로 연줄을 앞으로 잡아당기면 연이 위로 쑥 올라가게 된다는 말씀이네.”

태연은 사촌 앞에서 얼레를 돌려 연실을 감는다. 아빠의 말처럼 연이 쑥~ 하고 솟아오른다. 완전 의기양양해진 태연은 이번엔 항력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면 그 방향을 따라 연은 뒤로 밀려나는 힘, 즉 항력을 받게 되지. 그리고 항력을 받으면 연은 밑으로 내려간다네. 다시 말해 연을 당기면 양력에 의해 올라가고 연실을 풀면 항력에 의해 밑으로 내려간단 말씀이지. 연싸움에서 상대방의 연 실을 끊을 때도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된다네. 상대방의 연이 공중에 정지해 있을 때 내 연실을 그 위에 올려 건 다음, 실을 재빨리 풀어주면 내 연이 밑으로 쑥 내려가면서 상대방 연실을 끊게 되는 거… 악!!!”

태연이 연싸움의 승리비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순간, 태연의 연이 똑 끊어지면서 하늘로 훌훌 날아가 버린다. 얘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이미 일격을 당한 것! 사촌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태연아, 과학도 좋지만 실전경험이 더 중요하지 않겠니? 이래봬도 난 실전으로 다져진 몸이라고! 과학자인 아빠한테 들은 대로 달달 외워서 원리를 설명한 건 참으로 가상하지만, 솔직히 공부도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잘하고. 이쯤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때?”

태연은 분노와 오기로 두 눈이 이글이글 탄다.
“흥! 원리도 모른 채 운 좋게 이긴 주제에 감히 나에게 오빠로 불리기 원하다니 가당치 않구나! 그럼 이번에는 수학적 원리로 가득한 윷놀이로 승부를 겨뤄보자꾸나!”

사촌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윷판과 윷을 꺼낸다. 태연은 머릿속으로 어젯밤 아빠가 해 준 얘기를 급히 떠올린다.

‘태연아, 윷짝의 윗면과 아랫면이 나올 확률이 동등하다는 가정 하에, 도가 나올 확률은 1/4, 개는 3/8, 걸은 1/4, 윷과 모는 1/16이야. 즉 ‘개-도·걸-윷·모’ 순으로 나온다는 거지. 그런데 윷짝은 정확한 반원 형태가 아니라 반원을 넘어 아래가 약간 잘려진 불룩한 모양이거든. 이런 형태적 특징을 고려하면 ‘걸-개-윷-도-모’ 순으로 윷짝이 많이 나온단다. 그러니까 윷판을 쓸 때 이런 확률을 생각해뒀다가 지름길로 가는 순간을 잘 포착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윷놀이를 할 수 있어. 전통놀이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는 비법이 바로 과학에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니?’

태연은 마구 머리를 굴려 윷판을 써본다. 그런데 이 무슨 확률을 거스르는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오늘따라 나오기 힘들다는 도만 계속해서 나오고, 윷이나 모는 나와 줄 생각을 않는다. 결국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 돼 태연은 패배할 위기에 처한다. 바로 이때, 아빠가 태연과 사촌의 경합을 구경하기 위해 대머리 동산에 나타난다.

“어떻게 돼 가고 있냐? 오빠의 탄생이냐, 혹은 누나의 탄생이냐?”

“아빠! 내가 아빠 말만 믿고 전통놀이 결투를 신청한 게 잘못이었어요. 과학보다 실전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전통놀이 말고 몸무게나 얼굴너비 같은 걸로 서열을 정하는 게 낫다고 했잖아요. 몸무게로 치면 내가 그냥 누나도 아니고 큰누나인데 저렇게 비쩍 마른 녀석한테 오빠라고 해야 하다니, 이건 정말 악몽이야~ 설날의 악몽!!”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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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2-01-24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스크림 내기 윷놀이에서, 윷놀이 경기 규칙을 모르는 다현양 홀로 모를 세 번이나 던졌다는 놀라운 사실!!!
 

   FOCUS 과학

제 1528 호/2012-01-23

우주날씨 예보 시대가 온다!

두 과학자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모니터에는 태양에서 발생한 거대한 폭발이 수성과 금성을 지나 지구를 삼키는 모습이 나타난다. 한 과학자가 “이건 슈퍼플레어야. 지구 위 모든 생명체가 죽게 될 거야”라고 얼이 빠져서 되뇌듯 말한다. 그리고 잠시 후 인류의 모든 문명과 지구의 생명체가 처참하게 파괴된다. 2009년 개봉된 영화 ‘노잉(Knowing)’의 한 장면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태양.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태양이 모든 생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태양에서 거대한 플레어 폭발 현상이 일어나면 모든 생명이 한 순간에 파괴될 수 있을까?

플레어는 태양의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좁은 영역에서 분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에너지 폭발현상이 가능한 이유는 태양을 구성하는 물질이 전자와 이온으로 분리된 플라즈마 상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즈마는 자기장과 상호작용하며 운동한다. 그러다 특정한 자기장 모양이 만들어지면 플라즈마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막히면서 에너지가 쌓이게 된다. 이 때 이 지역은 주위의 태양 표면보다 온도가 낮고 어둡게 보이는데 이것을 흑점이라고 부른다. 에너지가 모인 태양 흑점은 어느 순간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플레어를 만든다. 이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핵폭탄 수백만 개와 맞먹을 정도의 위력을 갖는다.

이렇게 큰 폭발이 태양에서 발생했는데 어떻게 지구가 안전하단 말인가? 영화에서는 분명 태양 폭발이 지구를 집어 삼켰는데 말이다. 혹시 이 영화를 자세히 본 독자라면 태양을 실제보다 크게 묘사했다는 것을 잡아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태양 반지름의 약 3배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태양 지름의 100배나 된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폭발은 강렬하지만 이렇게 먼 거리에 있으니 지구는 안전할 수밖에 없다. 일단 지금은 말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다. 태양이 수소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나면 헬륨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데, 이 때 태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지구 근처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별을 적색 거성이라 부른다. 이때가 되면 아마도 영화에서처럼 플레어 폭발에 의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걱정하기에는 너무 먼, 수십 억 년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현재 일어나는 플레어 폭발이 지구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강한 플레어가 발생하면 지구의 전리층을 교란시켜 전파, 통신이 두절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플레어 폭발과 더불어 많은 태양 입자들이 우주로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코로나 질량 방출(CME, Coronal Mass Ejection)이라고 한다. 태양 입자가 지구에 도달하게 되면 지구의 자기장을 교란시키고 인공위성의 작동을 멈출 수 있으며 우주에서 활동하는 우주인들은 많은 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다. 잘 모르고 지나갈 수 있지만 장거리 비행을 하는 승객들도 적지 않은 방사선에 노출된다. 뿐만 아니라 지구 자기장 변화에 의해 지표면에 많은 전류가 흐르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얼마나 큰 플레어가 폭발하면 이런 일이 생길까? 단순히 플레어의 세기와 이것에 의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큰 플레어 폭발 후 크고 작은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1989년 X15등급(뒤의 숫자가 크면 클수록 더 큰 플레어)의 플레어 폭발 후 북미 지역에서는 대규모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2003년에는 X17과 X10등급의 플레어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많은 위성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정도 규모의 플레어는 태양활동 극대기 동안 두세 차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정도를 슈퍼플레어로 부르기엔 좀 약하다.

가장 큰 플레어는 1859년 발생한 플레어로, 지구에서 맨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정확한 측정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플레어 크기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앞에서 언급한 플레어 크기의 100배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이 거대한 슈퍼플레어가 그 당시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전파통신을 이용하던 시대도 아니었고 인공위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플레어가 오늘날 다시 폭발한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 아마 세계의 주요 도시는 암흑으로 변하고 인공위성들은 기능을 멈추고 GPS 신호를 이용하는 여러 국가 기관의 전산망은 순식간에 엉망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우주 재난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우주재난에 인류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리가 태풍이나 폭설 같은 기상재해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과 같이 우주재난도 미리 알 수 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과학자들은 마치 일기예보를 하듯 우주날씨 예보를 하고 있다.

현재 우주날씨 정보는 관련 산업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 항공사에서는 우주날씨를 보고 특정항로의 운항 여부를 결정한다. 천리안 위성이나 무궁화 위성을 운용하는 위성운용국에서 우주날씨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국내에서 나로호를 발사할 때도 우주날씨는 발사시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참고 정보가 됐다. 이렇듯 우주날씨는 우리 주변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천문연구원과 기상청, 국립전파연구원은 2013년 태양활동극대기를 대비해서 공동으로 우주날씨예보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지구의 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가 우주날씨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소빙하기였던 시기에는 태양의 흑점이 매우 적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이 우주날씨와 지구날씨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해 주고 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우주날씨 연구가 앞으로 지구 기후변화를 예측하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주날씨는 평소에 우리가 잊고 사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구도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그리고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공간(Space)도 우주(Space)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우주가 우주날씨 예보를 통해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글 : 이재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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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코트 - Jesus Hospita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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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순은 우유배달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여자입니다. 친정 식구들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로 교회 건축 헌금에 동참하라고 재촉하지만, 가난한 현순은 제 이름은 빼라며 자신은 다른 개척 교회를 다니고 있노라고 이야기를 종료시킵니다. 늙은 어머니는 어서 빨리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시더니, 정말 두달 뒤 쓰러지셔서 벌써 6개월째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병원비는 전혀 보태지 못하지만 어머니의 침상을 지키며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현순에게 언니와 남동생이 존엄사를 제안합니다. 의사 역시 생존 확률이 1%도 되지 않는다며 이 또한 환자를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현순은 불같이 화를 내며 가족들과 의사를 병실에서 쫓아내고 그 곁을 철저히 지킵니다. 현순은 기도 중에 분명히 어머니가 살아나신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그것을 철저히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순을 가족들은 불편하게 바라봅니다. 병원비를 내고 있는 것은 자신들인데, 한 푼 보태지 않는 현순이 홀로 효녀인 척 행세한다고 여기기도 하지요. 또한 그녀가 보여주는 행태들이 혹여 이단 종교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현순은 이런 형제들에게 더 세게 나갑니다. 언니에게는 그렇게 돈돈돈 하다가 형부 불덩이 받을거라며 조심하라고 했고, 남동생에게는 네가 무슨 짓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언니와 남동생은 내색은 하지 않지만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고 맙니다. 현순이, 정말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이제 오늘이 지나면 의사 선생님은 해외에 세미나 나가시고 한 달 뒤에나 돌아온다고 합니다. 병원비를 부담하고 있는 언니와 며느리는 애가 탑니다. 남편 눈치도 보이고 애들 과외비도 이만 저만 걱정이 아니거든요. 하여, 이들은 현순을 어머니 곁에서 떼어낼 방법을 모색합니다.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다고 안심시킨 뒤, 현순의 딸 수진을 불러내어 엄마를 집에 몇 시간 붙들어 두게 하는 게 이들의 계획이었지요.

 

현순의 딸 수진은 현재 만삭입니다. 두어달 뒤면 아이가 세상에 나올 것입니다. 수진은 날카롭고 냉소적인 여자였습니다. 남편은 그런 수진 앞에서 쩔쩔 매었지요. 수진은 삼촌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 껄끄러웠지만, 엄마의 확신처럼 할머니가 살아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일단 엄마를 붙잡아두고 있던 수진은, 엄마의 옷장에서 할머니가 주신 밍크 코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밍크코트는 이모가 할머니에게 사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우유배달을 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 딸 현순에게 밍크코트를 내주었고, 현순은 미용실을 차리면서 급전이 필요했던 딸 수진을 위해서 코트를 팔았습니다. 자신이 언제 밍크 코트 팔아 그 돈 해달랐냐며 수진은 오열을 합니다. 결국엔 자기가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치미는 화는 이성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엄마가 원망스럽고, 종국엔 자신이 원망스럽고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수진은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대로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밤중에 급하게 병원으로 불려와 존엄사를 추진하려던 의사는 오전에는 현순에 의해,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는 그녀의 딸 수진에 의해 일을 방해받고 화딱지가 나서 돌아가 버립니다.

 

하룻동안에 벌어진 이 소동으로 가족들은 격렬한 싸움에 돌입합니다. 그동안 가슴 속에 쌓였던 원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합니다. 그리고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자부하고 살았지만, 자신 안에 있는 위선과 탐욕과 추잡한 욕망과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밍크코트'가 은유하는 바는 매우 날카롭습니다. 큰딸이 노모에게 선물한 효도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딸을 위해 할머니가 기꺼이 내준 사랑의 선물이기도 했고, 현순이 딸을 위해 안타깝게 팔아버린 애증의 물건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가질 수 있지만 사실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밍크코트는 그렇게 한 가족 안에서 사랑의 상징이자 부의 상징, 또 욕망을 대변합니다. 큰 딸 명순과 며느리가 시종일관 입고 나온 이 밍크코트는 자식의 과외비를 걱정하며 어머니의 존엄사를 요구하고, 또 그를 위해 계략을 꾸미는 이 시대 비틀어진 어머니들의 세태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또 그 밍크코트를 만들기 위해서 희생된 동물의 목숨값도 당연히 생각하게 되겠지요.

 

2011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개 부분에서 수상하고, 2011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차지한 이 웰메이드 영화는 어려운 주제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솜씨 좋게 녹여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거슬리며 사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신의 뜻을 제멋대로 해석한 채 원망만 앞세우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도 고발합니다. 또한 가족은 어떻습니까?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의지할 대상이지만 사실은 가장 시험에 들게 하고, 나를 핍박하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또 고약하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가족은 바로 그 가족의 이름으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연극배우 출신의 황정민의 연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현순 역에 몰입시켰습니다. 노메이크업으로 출연해서 영화의 맨 얼굴도 낱낱이 공개합니다. 종교와 신의 뜻, 그리고 용서라는 부분에서 영화 '밀양'을 떠올리지만, 그보다 더 완성된, 그리고 더 겸손한 결말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존엄사의 문제라고 한다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영화 '청원'도 함께 본다면 더 좋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트위터 멘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것입니다. '인간이 신에게 온전히 나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다.'

 

밍크코트, 따뜻하지만 잔인한 이름이지요. 가족 또한 그렇습니다. 종교 역시 그렇습니다. 그 이름들을 '잔인함' 대신 '따뜻함'으로 취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으로 보입니다. 내가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속얼굴을 직면한 순간, 부끄러움이 온 얼굴을 덮고 내 가슴을 덮쳐 분노와 설움과 당혹스러움에 몸둘 바를 모를 때, 기꺼이 무릎 꿇고 내 자신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신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 나약한 것은 아닐 겁니다. 당신 안에 신이 없다면, 진심 앞에 두 손을 드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당신의 마음에 자유를 줄 테니까요.

 

 

덧)영화의 촬영 장소가 우리 집 근처입니다. 심지어 등장하는 아파트 두 개 중에 하나는 울 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라지요. 하하하, 자막 올라갈 때 웃었습니다.

 

토요일 밤, 영화관 안에 홀로 앉아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관의 그날 마지막 손님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손님 때문에 필름을 돌리고 퇴근하지 못하고 문앞을 지킨 직원과, 문을 닫지 못해서 역시 마무리를 하지 못한 관리실 기사님까지 모두, 참 송구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좋은 영화를 찾아주는 관객이 있고, 상영해주는 영화관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웰메이드 독립영화, 포레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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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1-24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군요.
그러잖아도 찜해두고 있는데 마노아님 리뷰로 어서 보고 싶어져요^^

마노아 2012-01-24 00:49   좋아요 1 | URL
아직 1월이지만 '올해의 영화'로 손색이 없는 영화였어요.
좋은 영화가 많아서 참 좋아요.^^

차트랑 2012-01-25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이끌려 방문하게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문외한이지만 상징성을 읽어내도록 장치한 영화인 듯 합니다.
독립영화는 영.화.만이 가지는 그 특성들을
잘 살리려 노력하는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재, 캐릭터, 언어 그리고 영상과 음악,
그 모두를 아직은 잘 활용하고 살려내려 노력하는 그 흔적들 말입니다.

어쩌면 기존의 영화 관련자들이 초심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페이퍼에 감사드립니다

마노아 2012-01-25 13:5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차트랑공님.
영화 제목은 예고편을 보다가 따왔어요. 밍크코트도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준 많은 상징들이 제목에 모두 포함된다고 생각되어서요.
실력있고 감 좋고 메시지까지 있는 좋은 독립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 영화들이 무사히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왜 초대하지 않아?
다이애나 케인 블루선덜 글 그림, 윤정숙 옮김 / 느림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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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니는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캐슬린이 찰스에게 묻는 말을 듣고 맙니다.

"파티는 몇 시야?"

토요일 1시라고 찰스가 대답했습니다. 미니는 당연히 찰스가 파티를 연다고 생각했지요.

자신에게도 초대장을 보냈을 것 같아서 집까지 줄곧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우편함에 초대장은 보이지 않았어요.

 

 

전화벨이 울리자 쏜살 같이 달려가 받아보았지만, 전화 속 찰스는 파티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저녁 식사 도중에 전화벨이 울렸을 때도 미니는 재빠르게 달려가 보았지만 그건 잘못 걸린 전화였어요.

 

미니는 다음 날 찰스가 꼭꼭 얘기해 줄 거라고, 자신을 파티에 초대해 줄 거라고 여기며, 애써 잠을 청했지요.

받아쓰기 공부도 해보았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미니는 찰스가 초대장을 보냈는데 자신에게 전달이 되지 않은 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다른 집에 잘못 배달되었다든가, 아니면 토네이도 같은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잖아요.

내일은 분명 초대장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또 다시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하지만 찰스는 끝내 파티 이야기도, 초대장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요.

받아쓰기에 100점을 맞았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지요.

또르르 눈물이 흘러 '초대'라는 글자 위에 떨어졌어요.

글자를 본 순간 미니는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초대'라는 글자를 찰스에게 보여주면 분명 자신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릴 거라고 여긴 것이죠.

하지만 시험지를 펄럭이자 다른 친구에게 잘난척 한다는 핀잔이나 받고 말았어요.

미니는 여전히 초대장을 받지 못했고, 운명의 토요일이 도착했어요.

찰스의 집에는 파티용 풍선이 가득 매달려 있었지만, 초대받지 못한 미니는 그곳에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미니의 마음이 얼마나 어두웠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가요.

 

자, 이렇게 이 이야기는 슬프게 끝이 날까요?

그럴리가요! 생각지 못한 반전이 일어나면서 미니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납니다.

아래 그림의 넘어져 있는 저 아이가 찰스예요.

둘이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미니의 고민이 해결된 게 분명하지요. 

혼자만 잊혀졌다고, 따돌림을 당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때의 기분을 상상할 수 있나요?

어린 시절에 그래보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또 한편, 초대하고 싶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초대하지 못했던 내 좋은 친구의 섭섭해하던 얼굴도 떠오릅니다. 용기를 내지 못해 우정을 아프게 한 못난 내 모습이 부끄럽네요.

 

이 책은 참으로 좋은 책입니다. 아이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했고,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지요.

더불어, 초대받지 못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해주어서 좋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기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지요.

지난 해, 학급 친구들과의 관계 문제로 많이 속상해 한 큰 조카에게 줄 책입니다.

조카는 빼빼로 데이에 반 아이들 모두에게 초콜릿을 주었지만, 단 하나도 받아오지 못했어요.

아이보다 아이 엄마의 충격이 더 컸지요. 대체 이런 상술 뿐인 날이 왜 생겨서 이렇게 속상한 아이를 만드는지, 이모도 한참 마음이 아팠지요.

솔직한 내 마음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큰 일에도, 작은 일에도 많이 있습니다. 소소한 일에서부터 진실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 때, 더 큰 마음의 문도 활짝 열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용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초대받고 싶고, 또 초대하고 싶은 많은 이들을 가진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당신의 마음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싶어요. 내 마음속으로도, 기꺼이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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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1-23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이렇게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고, 저는 또 한가지, 마음대로 상상하고 오해하지 않기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어요.

마노아 2012-01-23 10:12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hnine님 덕분이지요.
전에 서재에서 소개하신 것 보고서 완전 푹 빠졌어요. 참으로 좋은 책이에요.^^
 
머리의 뿔 쯤이야!
핑크 공주 핑크 공주 1
빅토리아 칸 외 지음, 정준형 옮김 / 달리 / 2009년 5월
절판


어느 비오는 날, 밖에 나가 놀 수가 없어 컵케이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핑크 색을 사랑하는 아이는 핑크색 컵케이크를 만들었고 신나게 먹었다.
음식을 가려 먹는 동생 피터의 몫까지 몽땅 먹어치웠다.
그러고도 더 먹겠다고 떼를 쓰다가 엄마에게 혼이 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또 먹겠다고 조르다가 아빠에게도 혼이 났다.
그리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에!
온 몸이 핑크색으로 물들어 있지 뭔가!

엄마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지만 아이는 기뻐 죽겠다.
스스로 핑크 요정이 된 것 같아서 차오르는 환희를 주체하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은 지독한 핑크병 환자라고 진단을 내리고는 일주일 동안 핑크색 컵케이크, 핑크색 풍선껌, 핑크색 솜사탕 금지령을 내렸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초록색 야채를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다는 것!
하지만 핑크색 꽃들과 뒤섞여 잇자 벌이 날아와 콧등에 앉았을 때는 식겁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핑크색과 컵케이크!
엄마가 숨겨 놓은 컵케이크를 손에 넣기 위한 아이의 도전은 거의 목숨 거는 수준!
그렇게 욕심껏 컵케이크를 잔뜩 먹고 난 다음 날, 사단이 나고 말았다.
핑크색을 뛰어넘어 빨강색으로 물들어 버린 것이다.
오, 마이, 갓!!
레드를 사랑하는 독자 눈에는 빨간 피부의 아이가 귀여워 보이건만 아이는 제대로 혼쭐이 났다.

결국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가기 위해 의사샘의 충고대로 초록 음식들을 섭취, 아니 흡입하기 시작했다.
초록색 야채 주스, 완두콩, 오이, 브로콜리, 시금치, 상추, 양배추 등등....
이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이!
엄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다.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심심하겠지?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식의 이야기 구조는 사실 익숙하다.
데이비드 스몰의 '머리에 뿔이 났어요'는 거의 흡사한 완결구조를 가졌고,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의 결말도 비슷한 형식을 갖고 있다.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교훈적이고, 적당히 유쾌하다.
핑크를 사랑하고 '공주'에 열광하는 다현양에게 줄 설날 선물이다.
불현듯 설날이 몇 시간 뒤라는 것을 깨닫고 급히 동화책을 집어들었다.
많이 주면 밀려서 아주 조금만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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