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는 목욕이 필요해요! 모 윌렘스의 비둘기 시리즈
모 윌렘스 글.그림, 장선영 옮김 / 살림어린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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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저분하다고 주변의 원성을 듣는 비둘기가 한 마리 있다.

비둘기는 자신이 목욕할 필요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목욕은 전에도 했다고... 지금도 충분히 깨끗하다고... 목욕은 너네들이나 하라고...

그렇게 이리 핑계 대고 저리 핑계 대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던 비둘기가,

마침내 목욕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세계를 만나고야 말았다.

목욕이 이렇게 좋은 것이라는 걸, 때 벗기고 광택나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그림책은 목욕하기 싫어서 요리조리 도망치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다.

막상 물속에 들어가면 신나게 노는 아이들도 '목욕' 그 자체는 싫어할 때가 많다.

하지만 물속에 한 발자국 들여놓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법!

일단 물가로 인도만 하시라. 목욕의 진맛을 맛볼 것이다.


우리 말에서 참 오묘한 것이 뜨거운 국물을 먹었을 때, 뜨거운 온탕에 들어갔을 때 절로 나오는

"아, 시원하다~" 라는 표현이다.

누가 봐도 뜨거운 이 국물이, 이 수온이 어떻게 시원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 문화에 익숙해지면 절로 그런 표현이 나온다.

현재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이 표현이 이해가 가냐고 하니까 당연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동질감이 느껴져서 기뻤달까.^^


모 윌렘스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간결하고 단순한 그림이지만 유머가 가득해서 짧고 굵게 큰 재미를 준다. 

그의 다른 비둘기 시리즈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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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집까지는 버스 타고 30분. 걸어와도 30분.
오늘 처음으로 걸어왔다. 동행이 있어서 갈 수 있었는데 혼자서도 찾아올 수 있을 지는 아직 자신 없음.;;;;
수영 마치고도 걸어왔더니 현재 몸살기 느껴짐...ㅠㅠ
자야겠다. 내일과 모레는 회식인데 몸 사려야지...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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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5-04-0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직장과 집의 거리가 그 정도인데, 신학년이 시작된 이후 한번도 걸어서 하교하지 못했네요.

마노아 2015-04-02 00:04   좋아요 0 | URL
오늘은 걸어오는데 25분 걸렸어요. 질러오는 길 발견했거든요. 아침에도 걷고 싶지만 너무 언덕이어서 아침에는 버스 타는 걸로...;;;;
 

3월 달이 훅 지나가는 것 같다.

원래 3월은 아주아주 바쁜 달이었지만 올해는 유난히 바빴다.

정시 퇴근을 소망하지만 소원했달까.











읽고 나서 리뷰를 못 쓴 책이 열권이나 되어버렸다. 너무 재미 없게 읽어서 읽었다는 것도 홀랑 까먹어 버린 고교입시는 두달 정도 지난 것 같다. 미나토 가나에의 장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별로 할 말이 없는 작품으로는 '무의미의 축제'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대강 읽었다. 좀처럼 집중이 되질 않아서. 그렇다고 다시 읽고 싶지도 않았던... '여자 없는 남자들'은 상실의 시대보다는 좋았지만 여전히 하루키는 내 취향이 아니구나... 싶었고, 공허한 십자가는 아주 좋아서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다시금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고 역시 한달 이상은 족히 지난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도 우리 이제 그만 만나... 의 느낌으로 읽었다. 여기서 더 시간이 나지 않으면 이렇게 짧은 한줄로 리뷰를 대신할 지도...;;;


그 와중에도 이벤트 상품에 눈이 멀어 에코백도 두개를 받았고 셜록 열쇠고리도 받았다. 셜록 열쇠고리는 재제작하면서 주문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추리소설 25,000원에서 4만원으로 뛴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음. 하여간 막 공허한 십자가를 재밌게 본 뒤여서 냉큼 질러주었다. 열쇠고리가 예뻐, 예뻐. 아, 근데 사진을 안 찍었네... 



(냉큼 찍음!) 

아, 뽀대난다!


3월이 되면서 수영 선생님이 세번이나 바꼈다. 앞의 두분은 하루씩만 오셨는데 두번째 선생님은 배우 유해진을 닮은 분이었다. 이분이 여자샘이라는 게 함정! 암튼 세번째에 우리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후로 수영이 너무 재미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신입회원이 많아 혼자서 레일 3개를 카버해야 했다. 우리 쪽으로는 오질 못하셔...;;;; 


그게 아니어도 정체기가 온 것 같다. 운동 종목을 좀 바꾸고 싶은 느낌적 느낌. 그래서 헬쓰로 갈아탈까 한다. 여름도 다가오는데 근력운동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 3개월은 헬쓰를 하고 한여름에 다시 수영으로 돌아오면 좋지 않을까 구상 중이다. 근데 무릎... 괜찮을까??


드디어 꽃이 도착했다. 일주일 뒤 엄니 생신이고, 다시 일주일 뒤에는 부활절이니까. 지금의 최적의 타이밍!

꽃 도착에 앞서 엄니께 신신당부했다. 도착하자마자 사진 한장 찍어달라고.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읭? 



뭔가 어색했다. 뭐지? 뭐지???

이 화사한 꽃에 안 어울리게 이토록 소박한 화분은 뭐꼬?

앗, 그러고 보니 꽃을 감쌌던 포장지도 없다.

엄니께서 꽃 도착하자마자 과감하게 벗기셨다능!!!


아아... 내가 완성본 보고 싶어서, 그리도 신신당부했건만...

그래도 사진이라도 남았겠지 했는데, 사진도 못 찍으셨단다.

찍으려고 하니 본인 얼굴이 나왔다고....

하아, 왜 하필 셀카모드가...ㅜ.ㅜ



화병을 바꿔봤다. 



피아노 위로 위치를 옮겨 봤다.



비교컷을 위해 조화 옆에서도 한컷...

그래도 뭔가 어색해... 화분이나 배경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진을 못 찍어서 그런 건가? ㅠㅠ


다음 주에는 기필코 제대로 된 완성컷을 건지리라! 


지난 주에는 눈이 너무 건조해서 찢어지듯 아파서 안과를 다녀왔는데, 피곤한 눈을 꽃으로 정화시켜본다. 

미세먼지로 지친 숨결도 꽃향기로 씻어보자. 

춥지만, 그래도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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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3-25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셜록 열쇠고리 탐나서 계속 책을 들었다 놨다했는데. 빨간색 열쇠고리도 예쁘더라구요 ㅠㅠ

마노아 2015-03-25 00:50   좋아요 0 | URL
아아악, 못 들은 척 하겠어요! 빨간색도 이쁘단 말입니까? ㅜㅜ

다락방 2015-03-2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를 너무 좋아하고 상실의 시대 하루키도 정말 좋아해서 뭔가 좀 안타깝네요 ㅋㅋㅋㅋㅋ

마노아 2015-03-25 10:0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번보다 한결 좋아졌으니 다음 책은 좀 더 좋아질 것 같다는 기대가 있습니다.^^ㅎㅎㅎㅎ
 

  FOCUS 과학

제 2350 호/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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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


1887년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이화학당의 당장실로 열 살짜리 여자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그곳엔 아이가 생전 처음 보는 파란색 눈의 서양인 부인이 앉아 있었다. 부인은 아이를 반갑게 맞으며 난로 가까이 다가오라고 잡아당겼다. 

그 순간 아이는 두려움을 느꼈다. 부인이 자신을 난로 속에 잡아넣어 태워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 부인의 친절한 미소를 보며 아이는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 서양인 부인은 바로 이화학당의 설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었으며, 여자 아이는 이화학당 부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점동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개설된 시기는 1885년 8월이다. 그러나 첫 학생이 들어온 것은 그 이듬해인 1886년 5월이었다. 여성의 신교육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때라 양반집 자녀들이 오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이화학당에는 주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입학했으며 김점동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한 김점동은 특히 영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그래서 1890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김점동은 보구여관에서 일하고 있던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통역을 맡게 됐다. 보구여관(保救女館, 여성을 보호하고 구한다)은 병에 걸려도 아픈 부위를 의사에게 보이는 것을 꺼려하던 여성들을 위해 이화학당 구내에 개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이었다. 

그곳에서 김점동이 로제타 셔우드 홀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의사의 모습은 늘 칼을 들고 수술하는 것이었다. 당시 의사라는 직업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은 이유였다. 그런데 어느 날 구순구개열 환자, 속칭 언청이라 불리던 10대 소녀가 로제타의 수술을 받고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 후 김점동은 자신도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김점동은 남편 박유산과 함께 1895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리버티공립학교에 입학했다. 자신에게 의사의 꿈을 심어줬던 로제타 셔우드 홀의 친정이 바로 그 부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도움으로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그해 9월부터 김점동은 병원에 취직해 생활비를 벌면서 라틴어와 물리학, 수학 등을 공부했다. 

1896년 10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한 김점동은 각고의 노력 끝에 4년 만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됐다. 당시만 해도 서양의학을 공부해 의사가 된 이는 미국에서 최초로 의사 자격증을 딴 서재필과 일본에서 의학교를 졸업한 김익남 뿐이었다. 김점동은 그들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 의사가 된 것이다. 




김점동이 미국에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박유산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큰 역할을 했다. 생활비와 아내의 학비를 대기 위해 박유산은 농장에서의 막노동과 험한 식당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아내의 졸업을 2개월 앞두고는 폐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미국에서 남편의 장례를 치른 김점동은 1900년 10월 귀국했다. 그해 12월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잡지인 <신학월보> 창간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부인 의학박사 환국하심. 박유신 씨 부인은 6년 전 이화학당을 졸업한 사람인데, 내외가 부인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 씨를 모시고 미국까지 가셨더니 공부를 잘하시고 영어를 족히 배울뿐더러 그 부인이 의학교에서 공부하여 의학사 졸업장을 받고 지난 10월에 대한에 환국하였다. (중략) 미국에 가셔서 견문과 학식이 넉넉하심에 우리 대한의 부녀들을 많이 건져내시기를 바라오며 또 대한에 이러한 부인이 처음 있게 됨을 치하하노라.”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그는 소녀 시절 의료보조로 일했던 보구여관의 책임의사로 의료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던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가 죽은 남편을 기념해 평양에 기홀병원(起忽病院)을 세우자,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평양에 부임한 지 10개월 만에 30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또한 평양의 여성치료소인 광혜여원(廣惠女院)에서도 진료했으며, 황해도와 평안도 등을 순회하면서 무료진료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가 만든 기홀병원 부속 맹아학교와 간호학교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고종 황제로부터 은메달을 받았다. 

김점동은 엄동설한에도 당나귀가 끄는 썰매를 타고 환자를 찾아갈 만큼 열성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 여성 의사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으나, 그의 인술(仁術)은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김점동이 수술로 환자를 간단히 낫게 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귀신이 재주를 피운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명의로 알려졌다. 

진료 활동 외에도 그는 근대적 위생 관념을 보급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또 인공관을 이용해 방광질 누관 폐쇄수술을 집도하는 등 의미 있는 의료적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의료 활동을 벌이던 김점동은 자신의 몸에 질병이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질병은 바로 남편을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죽게 한 폐결핵이었다. 

김점동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뒤늦게 베이징으로 요양을 떠나기도 했으나, 1910년 4월 13일 서울의 둘째 언니 집에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아무런 소생을 남기지 않은 35세의 짧은 생이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926년 7월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의 아들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이 한국으로 건너와 해주구세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그는 1928년 결핵환자를 퇴치한다는 명분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 요양원인 해주구세요양원을 세웠으며, 1932년에는 해주구세요양원 이름으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셔우드 홀은 늘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던 김점동을 이모처럼 따랐다. 그가 이처럼 우리나라의 결핵환자들을 위해 노력한 이유 중 하나는 김점동의 죽음 이후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은 김점동 덕분에 발행된 셈이다.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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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3-24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점동, 셔우드 홀.... 크리스마스 씰...
그 시대의 결핵은 지금의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었던 듯...
기억해야 될 이름... 이런 분들이 있기에 의학도 사회도 점점 좋아지는 것이겠죠,
오늘의 대한민국 생각하면 기막힌 것도 많지만...ㅠ

마노아 2015-03-24 23:18   좋아요 0 | URL
학교 문턱이 그리도 높던 시절에 이리 힘들게 공부를 마쳤는데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네요.
그 헌신이 놀랍고 고맙습니다.
해마다 사던 크리스마스 씰인데, 이번 해에도 잊지 말아야겠어요.
이분들의이름을 기억하면서요...

무해한모리군 2015-03-2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해를 살아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사신분이 있네요... 나는 뭐했나 ^^;;

마노아 2015-03-25 11:27   좋아요 0 | URL
숙연해지면서 부끄럽게 만드는 열정의 주인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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