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도일이 명탐정 셜록 홈즈를 폭포에 빠뜨려 죽였을 때 항의와 애도의 편지가 빗발쳤다. 최근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 다음 편(7월 16일 출간 예정)에서 주요인물 한 명을 죽이겠다고 밝히자 팬들은 벌써부터 난리가 났다.

요즘 미국 독자들은 죽어버린 등장인물 하나 때문에 패닉 상태다. 추리소설 작가 엘리자베스 조지(56)의 최신작 ‘목격자 없음(With No One as Witness)’에서다. 충격을 받은 독자들은 아마존닷컴, 반스앤노블 등 인터넷 북 사이트에 “잔혹하고 끔찍한 행위” “독자에게 핵폭탄을 투하했다” “작가에게 배신당했다” 등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조지는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리소설의 여제’(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영국식 추리물의 대가’(뉴욕 타임스) ‘영국의 전통을 이어가는 탁월한 미국 소설가’(시카고 트리뷴) 등 언론의 찬사를 받는 작가다. 오하이오주 워런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랐다. 7살 때 처음 단편을 써봤고 고교 재학 중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3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 1988년 첫 소설 ‘위대한 구출’로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상, 프랑스 추리문학상 등을 타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위대한 구출’의 주인공은 귀족(백작) 출신인 런던경시청 경위 토마스 린리와 뒷골목 출신 경사 바바라 하버스. 여기서 시작된 ‘린리 시리즈’는 2005년작 제13권 ‘목격자 없음’까지 이어져 왔다. 13권 모두 TV 드라마로 제작돼 미국과 영국에서 방영됐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무엇보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미국 작가가 영국 이야기를 쓴다는 점이다.그는 해마다 영국을 방문해 지도를 갖고 다니면서 거리를 꼼꼼하게 관찰하고 영국의 속어와 사투리를 일일이 받아 적는 등 배경 연구를 철저히 한 뒤 집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인인데 왜 영국 배경 소설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홈페이지(www.elizabethgeorgeonline.com)에서 “그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는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곳을 배경으로 쓸 걸”이라며 익살을 부리기도 했다.

“비틀스가 미국을 ‘침공’한 1960년대부터 영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에 가서도 영국 소설에 자꾸 손이 갔다. 66년 런던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세미나에 갔다가 영국과 사랑에 빠졌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영국 아닌 다른 곳을 배경으로 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영국 얘기를 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명탐정 셜록 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사색가 탐정 엘큘 포와로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평가받는 조지의 ‘린리 시리즈’는 그러나 이번에 비극적 결말을 선보여 논란이 됐다. 린리 경위와 하버스 경사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목격자 없음’에서 중요인물이 죽어버리자 팬들이 인터넷 곳곳에서 항의를 쏟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 전개상 꼭 필요한 사건”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작가의 임무는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이고 이 책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3월에 나온 ‘목격자 없음’은 지금까지 20만 부가 팔렸으며 뉴욕 타임스 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3주째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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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5-0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는 번역이 안되었나 봐요..?! 기사를 읽으니 호기심이 뭉게뭉게.
 
 전출처 : 딸기 > 로즈마리님을 위한 교양과학서 안내 (1)

알라딘에서 내가 세번째로 좋아하는 로즈마리님이 마이리스트에 코멘트 남겨주신 것을 뒤늦게 발견.
과학서적 중에서 중학생 정도가 볼만한 재미있고 쉬운 책을 골라달라고 하셨는데, 저는 로즈마리님이 중학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답니다. ^^

제가 읽은 많지 않은 과학책들 중에서, 과학동네 분위기를 엿보는데 도움이 될만한,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쉬운 책들을 몇권 골라볼께요. 로즈마리님께 보탬이 됐음 좋겠네요.

물리학 분야 

이 쪽은요, 결국 아인슈타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인슈타인으로 끝난다고 해도 될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인슈타인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인슈타인이 던져놓은 과제들을 그 후예들이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 그것이 아인슈타인 이후의 물리학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1단계: 과학동네 분위기 엿보기- 맛뵈기용 책들

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 생각의나무

이 책이 탁월합니다. 과학책들 읽으시려면, 무조건 이 책으로 시작하셔도 좋다고 봅니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물리학 교양서적이 그나마 우리 출판계에서 이정도라도 독자 층을 넓힐 수 있게 된 공은 사실 파인만 박사에게 돌려야 합니다. '파인만 열풍'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책입니다. 이 책을 교양과학서로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책 자체가 재미있어요.


신의 방정식
아미르 D.액설 지음, 김희봉 옮김 / 지호

물리학계의 최근 성과까지 포괄하고 있어서,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E=mc2 를 읽고 나서 이 책을 보시면 내용이 술술 읽힐 거예요.


발견하는 즐거움
리처드 파인만 지음, 승영조 외 옮김 / 승산

파인만의 강연록입니다. 어떤 부분은 사실 좀 어렵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마인드' 혹은 '탐구하는 정신'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 감이 잡힌달까요.

2단계: 맛뵈기를 넘어선 교양을 쌓자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
리처드 파인만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1단계 책들을 읽었는데 영 재미가 없더라, 하시면 2단계는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물리학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1단계에서 '꽤 재미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주셨으면...


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아예 용기를 내서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책이 꽤 두껍고 값도 비싸지요. '초끈이론'이란 말에 지레 기죽지 마세요.
앞부분, 상대성 이론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잘 되어있고, 찬찬히 읽어보면 재밌습니다.

3단계: 물리학과 문학, 철학의 아름다운 만남
물리학 자체에 대해선 저도 아는 바가 없고 이해도 못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쪽으로 경도된 마인드를 좀 수정해야겠다 싶을 때에, 이 동네 책을 읽으면 기분이 정말 상쾌해집니다(뭐... 가끔씩 머리가 어지러울 때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3단계에서 소개해드리는 책들은, 제가 읽으면서 '정말 어렵다'고 느꼈던, 그러나 느무느무 멋졌던 책들입니다.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면, 아니 15%만 이해하면 어떻습니까. 켐브리지나 옥스퍼드의 물리학자들은 그야말로 전인적인 교양인들인가봅디다. 문학책도 이렇게 멋지기 힘들 거예요.


우주 양자 마음
로저 펜로즈 외 3인 지음, 김성원.최경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이렇게 어려운 책은 살다살다 첨이었다... 고 해도 과장은 아닙니다마는.
후까시 팍팍, 폼 팍팍 납니다, 이거 읽으면.


無○眞空 - 철학, 수학, 물리학을 관통하는 Nothing에 관한 우주론적 사유
존 배로우 지음, 고중숙 옮김 / 해나무

로즈마리님이라면, 특히 이 책을 절대적으로!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4단계: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보게 해주는 책들
'사고방식' 말그대로 '생각하는 방법'이란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책들입니다.


숨겨진 질서 - 복잡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존 홀런드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외 옮김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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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9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스크바 일기] 는 발터 벤야민의 개인적 삶에 대한 관심을 쫓다 만난 책이다. 그의 매력적인 언어철학과 알레고리론, 역사와 맑스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역사철학, 19세기 유럽 근대문화에 대한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 '파사젠베르크'등을 알기 전에 난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쫓는 베를린에서 그가 살았던 집들과 학교 , 그의 자전적 글들( [베를린 연대기]등 ) 에 언급된 베를린 거리들을 순례하면서, 그곳에 숨겨져 있을 그의 삶과 기억의 흔적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런 발굴작업은 도대체 어느 곳에 무엇이 묻혀져 있는지 알지 못하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의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를 통해 벤야민이 말했던 기억의 '발굴작업'이 단지 물리적 공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삶의 흔적들은 그가 출판하거나 신문 혹은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 속에서도 '발굴'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텍스트들 속에서 '살균처리'된 그의 삶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것은 마치 멋지게 차려입은 연회복 뒷자락에 붙어 있는 세탁소 영수증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건 거대하고 멋지게만 보이는 이론과 사상, 그리고 철학이 사실상 우리의 진부하고 고통스러우며 자질구레한 일상적 삶의 체험으로부터 길어져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과 기쁨이 결합된 복잡한 감정이었다.

(후략)

조금은 긴 이 서문은 나같이 책을 순서대로 읽어야 직성이 풀리며, 책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접하고 나서 내 느낌과 비교해서 접하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뒤로 가서 '옮긴이의 말' 로  붙었으면 좋았겠다 싶긴하다. 그런데, 긴줄 모르고 읽기 시작한 서문이 첫장부터 꽤나 마음에 든다.

처음 접하는 발터 벤야민의 책이다. 몇장 안 읽은 지금 나오는 '파사젠 베르크'가 무슨 뜻일까 궁금한거 빼고는 재미있게 넘어간다.

괜히 열등감에 하는 말이긴 한데,  이 책이야 일기의 탈을 쓴 한 사상가의 사유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 사실 아직 어떤 책이다 알정도로 몇장 읽지도 않긴 했지만 , 느낌에) 아니, 특히나 검열이 안 된 개인적인 기록이기에 더욱더 좀 쉬운 말로 알아들을 수 있게 나와야 할텐데 하는 우려가 채 몇장 읽기 전부터 든다.

그러니깐  내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건 '페르마의 정리'나 '양자역학' 같은거라도 '국민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인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닌 이상, 혹은 책이 전문가나 전공자만을 위한 책이 아닌 이상, 쉽게 가는게 좋다.  진짜루.

발터 벤야민의 책 더 읽고 싶어질것 같은데 무얼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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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bahnstrasse 2005-04-2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사젠 베르크Das Passagen- Werk"
한국에서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파리의 passage를 기억해보면 감이 잡힐 겁니다. 다음은 책 소개-ㅂ-;;

The Arcades Project is Benjamin's effort to represent and to critique the bourgeois experience of nineteenth-century history, and, in so doing, to liberate the suppressed "true history" that underlay the ideological mask. In the bustling, cluttered arcades, street and interior merge and historical time is broken up into kaleidoscopic distractions and displays of ephemera. Here, at a distance from what is normally meant by "progress," Benjamin finds the lost time(s) embedded in the spaces of things.

그리고, 벤야민을 '쉽게' 읽는다는 것이 저로서는 불가능하더군요. 평생 잡고 읽을 대상이라는 생각이. 벤야민에 대한 쉬운 책이라면, 한길사의 로로로 판 벤야민 평전과 문지의 벤야민 전기 정도를 들 수 있을 겁니다.

하이드 2005-04-30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난 쉽게 읽을꺼에요 기필코. 아마존 뒤져봐야겠어요 근데;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파리의 빠사쥐도 영 감이 안오니 어째요. 국민학생한테 얘기하듯이 쉽게..는 저를 위한 글이었어요. 아무튼. 지금 읽는 책 읽고 귀찮게 해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einbahnstrasse 2005-04-3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집만 12권이고, 미발표수고가 산더미 같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제가 아는 게 신통하지 않아 난감할 뿐-ㅂ-;;
 
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책 표지에 반했어. 그 다음엔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모데라토 칸타빌레' . 뭐였더라, 책에 나오겠지 뭐. 그리고 나서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녀랑 어른 남자랑 사랑하는 그런 영화였지 아마? 그래. 그 양갈래로 머리한 배우. 생각난다. 하얀 원피스에 하얀 모자에. 약간 못난 이에 활짝 웃는 모습. 활짝 웃는데 디게 쓸쓸하고 씁쓸하기까지 해보이던 그 모습.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 이 작은 책을 꺼내들고 표지를 다시 봤다. 이런 짧은 앞머리에 굽슬한 파마의 숏커트머리는 절대로 프랑스 여자에게만 어울리는 머리야. 단정하고 부드러운 눈썹에 눈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짙고 긴 속눈썹. 오만해 보이는 코에 도톰한 입술은 자존심이 강해보여. 동그란 얼굴에 감춰져 있는 귀는 아주 귀여울 것 같아. 브이자로 파인 검은 옷을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어. '악보 위쪽에 뭐라고 씌어 있는지 읽어볼래? ' 피아노 선생이 물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하고 아이가 대답했다.

고집스런 아이는 백번도 더 말해준 그 뜻을 끝끝내 말하지 않는다.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 '보통빠르기로 노래하듯이' 가만히 따라해본다. 소리지르는 피아노 선생 앞의 얼굴 굳어진 아이 대신 가만히 되뇌어 본다.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그날 그 시간. 피아노 레슨 중. 아이가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을 이야기 하지 않아 혼나고 있는 그 시간 밖에는 여느때처럼 사이렌 소리가 들렸는데, 평소와 달랐던 것은 여자의 비명소리였다. 길게 이어지는 비명소리. 그리고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음에 분명한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 '내일이면 무슨 일인지 알겠죠' 아이의 엄마와 피아노 선생은 이야기 하고, 레슨은 계속되고, 피아노 선생은 계속 화내고, 아이는 고집 부리다가 피아노 치다가 다시 멈췄다가 다시 치기를 반복한다. 아이의 엄마는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아이를 끊임없이 독려하고 피아노 선생님에겐 변명을 늘어 놓는다.

레슨이 끝났다. 피아노 선생님집에서 내려와서 거리로 나선 엄마와 아이.

'여자의 비명' 이 끝난 그 까페 앞을 지난다. 광기에 휩싸인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자를 애무한다. 남자는 피범벅이다. 여자에게 키스하고 여자 옆에 눕는다. 경찰이 오고 그를 데려간다.

그 강렬한 사건후의 소진. 재로 남은 남자. 를 본 여자는 몹시 흔들린다. 그녀를 십여년동안 지탱하고 있던 받침 하나가 빠지면서 이제 그녀가 기울어 쓰러지는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그녀의 티내지 않으려는 노력이 먹히는 시간이다.

소도시 공자주의 아내 '안'  그녀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움쭉달쑥 못했던 십여년동안에서 벗어나려 한다. 저택 밖의 창문으로 공장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 중에 한 둘은 목련꽃 향기가 짙은 밤이면 떠올려 보곤 한다. 그녀의 일탈의 징조이다.

부둣가로 산책을 나가 노동자들의 까페로 들어가 쇼벵을 만난다. 그 둘은 어쩌면 예전부터 알았고, 어쩌면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고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그 날 사랑해서 여자의 부탁에 의해서 사랑해서 총을 쏜 사랑해서 파멸한 연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본인들을 거기에 대입시켜 사건을 되풀이 한다. 사랑을 되풀이 한다.

그녀의 의심. ' 아이가 정말 존재하는지 '에 대한 의심은 나로 하여금 '쇼벵'의 존재에 대한 의심. 나아가서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인가' 에 대한 의심까지 들게 한다.

책의 마지막은 그들이 예정했던 수순으로 끝난다.

소소한 내용이 머리에 박히기보다는 그 여운만이 길게 남는 책이다. 후르륵 마셔야 했지만, 맛이나 향따위 음미하며 마실 수 없었지만, 카페인과 같은 각성제가 나도 모르는새 더 빨리 흡수되어, 그 여운이 더 긴 책이다. 그렇게 또 빨리 잊혀질 책이려나.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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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4-2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을 때 뭔지 모르게 프랑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어요.
책을 덮으면서 심호흡을 했던 기억도 나구요. 뒤라스의 글은 늘 그런 것 같네요^^

히나 2005-04-2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뒤라스 이 아줌마가 좋아요 부영사나 에밀리 엘의 사랑도 넘 좋아요..

하이드 2005-04-2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책은 도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이냣!

비연 2005-04-2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영사는 절판되었더군요..흠. 이것도 재미난 건 사실입니다.

moonnight 2005-04-2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 글 좋아하는데.. 리뷰 감사합니다!
 
브라운 신부의 지혜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1
G. K. 체스터튼 지음, 박용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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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압니다. 이 드라마틱한 배경에 지루하고 짧으며 무매력이 매력인 브라운 신부.

그렇지만, 제가 웃느라 숨막혀 하며, 눈물 글썽이는.

이 소설을 저는 차마 권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키가 작고 볼품 없는 사나이. 손에 든 모자와 우산조차 큰 짐처럼 다루기 힘들어보이는. 그나마 검정 우산은 흔한 것으로 벌써 수리했어야 할 상태. 넓은 차양이 위로 말려간 검정 모자. 아무튼. 소박하고 무능한 사람의 표본같은' 주인공.  주인공을 사랑해야 할 작가마저도 맨날 소개할때 '키가 작고 볼품 없는... ' 으로 브라운 신부를 묘사하고 있으니, 저와 같은 심정인걸까요?

사랑을 선택할 수 있던가요. 사랑은 빠지는 거죠. 사랑이란 나락으로 떨어지는(Fall in love) 거죠. 어쩔 수 없죠 뭐. 저는 이미 발 헛디뎌 빠져버린걸요.

내가 봐도 참 지루하고, 그나마 단편이라 호흡이 짧기에 근근히 읽어냅니다만, 브라운 신부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참 드라마틱 합니다. 사람도, 배경도, 악당도, 조연도. 그러니깐 그 자신만 빼고 말이죠. 

'도둑 천국'이라는 단편에 나오는 무스카리와 에차를 볼까요? 무스카리는 무스카리스럽고 에차는 에차스럽습니다.

'무스카리는 어디든 칼집과 만돌린 케이스를 들고 다녔다. 그 칼은 많은 빛나는 결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온 것이었다. ... 무스카리는 결코 허풍쟁이도 아니고 어린아이도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한시도 참을 수 없어 자신이 그렇게 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정열적인 라틴 사람일 뿐이었다. 무스카리의 시는 여느 사람의 산문처럼 이해하기 쉬웠다. 명예와 예술과 미인을 열렬하고 솔직히 숭배했다. 그것은 모호한 이상과 타협으로 만족하는 북유럽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었다. 모호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의 솔직함이 위험한 것으로 보였으며, 범죄의 냄새마저 풍겼다. 무스카리는 너무 단순하여 오히려 신용을 얻지 못했다..'

바로 이때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 열매가 맺혀 황금빛으로 빛나는 키 작은 오렌지 나무로 반쯤 가려진 테이블에서 한 사나이가 일어나 다가왔다. 무스카리에게 싸움을 거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그와는 대조적인 옷차림이었다.

'사나이는 검은색과 흰색 바둑판 무늬의 트위드 양복을 입고 있었다. 칼라를 빳빳이 세우고 핑크색 넥타이를 맸으며 끝이 뾰죽한 노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피서지 바닷가를 찾아온 순진한 런던 사람처럼 평범하면서도 눈을 끄는 차림이었다. ... 이탈리아 사람 같은 머리,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가무잡잠한 피부에 명랑해 보이는 느낌. 그 머리가 보드지처럼 빳빳이 선 칼라와 멋부린 핑크 넥타이 위에 오똑 서 있었다.'

이 드라마틱한 두 남자와 '고대 그리스인 같은 금발, 맑고 발그레한 볼, 여신 같은 모습이 사파이어를 녹인 듯한 바다와 잘 조화된 그녀. 에셀 해로게이트'의 이야기.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눈에 콩깍지가 씌인 저는요.

'시저의 머리' 에서는 한 여자가 집안의 가보인 동전을 훔치고 괴인에게 쫓기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녀의 말을 빌면 그 괴인은 ' 코의 다른 부분은 제대로인데 끝부분이 꼬부라져 있었습니다. 아직 물렁물렁할 때 장난감 망치로 옆에서 내리친 것 같았어요. 그다지 기형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었으나 내게는 말할 수 없이 공포스러운 대상이었습니다. 사나이는 저녁 햇살에 붉게 물든 물 속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피바다에서 나타난괴상한 바닷짐승처럼 우뚝 서 있었는데, 어째서 그 비뚤어진 코 끝이 그토록 내 상상력을 자극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사나이는 그 코를 마치 손가락처럼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정말 코가 움직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 라는군요. 아 , 이 부분에서 옆에서 자던 개가 깜짝놀라 쳐다볼 만큼 큰소리로 웃어제쳤어요.아, 웃으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너무 웃긴걸요. 원래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숟가락으로 밥을 퍼 먹어도 웃음이 마구 난다던데. 그 비슷한 증상인걸까요. 코를 손가락처럼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 괴인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무섭고, 음침해요. 그리고 재미있어요. 그나마 현실감각을 놓지 않고 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는건 브라운 신부님 덕분이에요.

그의 파트너인 대도였던 탐정 플랑보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죠. 그에 대한 묘사는 '브라운 탐정의 동심' 에 좀 더 자세히 나와요. 그 이야기를 알고 보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죠. 플랑보의 활약은 '팬드라곤의 멸망'과 '징의 신'에 도 나오는데요, 특히 '징의 신'에서는 브라운 신부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죠.

'바로 그때였다. 사나이는 눈이 아찔할 만큼 빠른 동작으로 신부에게 달려들었다. 브라운 신부는 사나이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이 위기 일발의 순간에 뒤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플랑보는 아무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커다란 두 갈색 손을 긴 철제 의자에 걸치고 있었으므로 사나이의 어깨 모양이 갑자기 달라진 순간 그 큰 의자를 번쩍 눈 위로 들어올려 사형수의 목을 자르는 형리가 도끼를 내리치는 자세를 취했다. ... 저물어가는 저녁 햇살에 비친 플랑보의 긴 그림자는 에펠탑을 들고 있는 거인 같았다. 이 큰 철퇴가 내리쳐졌을 때의 충격보다 그 그림자에 더 크게 압도당한 기묘한 사나이는 당황하여 몸을 돌리더니 쏜살같이 호텔 안으로 달려갔다. 그 뒤에는 사나이의 손에서 빠져나온 날이 넓은 단검이 떨어진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서 이곳을 떠납시다!" 플랑보는 큰 의자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듯 땅에 도로 놓자 키 작은 신부의 팔을 잡고 살벌한 회색 뒤뜰을 달려나갔다. ... 플랑보의 두 어깨가 부풀어오르며 모양이 달라졌다. 걸쇠 세 개와 자물쇠 한 개가 한꺼번에 뜯겨지며 동시에 플랑보는 커다란 뒷문을 마치 가자 성 문을 둘러 멘 삼손처럼 가볍게 들고 밖으로 나왔다... 세번째 총알이 뒤꿈치 바로 뒤에서 눈과 먼지를 날림과 동시에 플랑보가 던진 문짝이 정원 울타리 너머로 가서 떨어졌다. 다음 순간 플랑보는 아무 말 없이 몸집 작은 신부를 번쩍 어깨에 둘러메더니 긴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시우드를 향해 내달았다. '

이런 저런 여전히 지루하고 드라마틱하고 재미있고, 웃겨 죽는 에피소드들이 많네요.

반어법 아니고요, 워낙에 재미없다는 분들이 많아서, 권해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 홀딱 반했다고요. 그냥 그렇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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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4-27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더라구요 ㅜ.ㅡ

panda78 2005-04-27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브라운 신부님 참 좋아해요. ^^
근데 북하우스 브라운 신부 전집은 뒤로 갈 수록, 참크래커를 물도 우유도 주스도 없이 한 통 다 먹는 기분이 들었다구요..;;;

물만두 2005-04-27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로 갈수록 딸리죠...

하이드 2005-04-27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풉. 판다님의 비유란 . 정말이지. 확 와닿는군요.

하이드 2005-04-2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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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뒤에는 읽지 말까부다요.

-_-a


panda78 2005-04-2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새로 나오면 그 때 재 도전을.. ^^;; 아무래도 번역 탓도 있을 거 같아서요.
다섯 권 전부 번역자가 다른데다, 번역자들 모두 이전에 번역한 책도 없다던데요. 그래서 그럴지도..;;

▶◀소굼 2005-04-2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운 신부가 만만해 뵈였을까요; ;

비연 2005-04-2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다는 분들이 있었군요..전 너무 좋았는데.
북하우스 책 다섯권 다 읽었거든요. 판다님 말씀엔 동의합니다...헤~
뒤로 갈수록 좀 그렇더군요...그래도 추천하고 싶슴다~^^

dreamer79 2005-07-2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하이드님의 평을 추천합니다. 브라운 신부를 추천하지 않는 또 한 사람으로서. 말씀하신대로 온갖 드라마틱 한 사건 속에서도 눈을 껌벅대며 무슨 물건을 잊어 버리기라도 한듯 두리번거리는 무매력의 브라운 신부. (솔직한 심정은, 공유하기 아까운건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