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마음 수업 - 내 안의 단단한 내면을 발견하는
마스노 슌묘.마쓰시게 유타카 지음, 왕현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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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조금씩 진정한 나를 향해 나아갑니다"

<고독한 미식가>라는 프로그램은 익히 알고 있기는 했으나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에 가수 성시경 씨가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 마쓰시게 유타카 씨와 일본의 맛집을 돌아다니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두 분이 소통하는 것을 보니 참 좋은 사람이겠다.. 싶은 생각은 들었다. 나는 참 이상하게도 걱정과 근심이 많아 보이는 관상 (?) 을 좀 좋아한다. ( ㅋㅋ 죄송 ) 뭔가 평소에도 조심성 있게 살아가는 스타일이 아닐까? 혼자 뇌피셜 돌리면서 말이다. 어쨌든 오늘 읽은 이 책 <불교 마음 수업>은 불교의 중심 주제인 "선" 사상을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이 책을 쓴 저자들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마스노 슌묘 작가는 주지스님이자 대학에서 교수직도 맡고 계신다. 선 사상과 일본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선의 정원'의 정원 디자이너로도 활약하는데, 이 분의 디자인이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그다음으로 마쓰시게 유타카씨는 그 "고독한 미식가" 속 주인공 고로 상이시다. 2012년부터 이 프로의 주인공을 계속 맡아 왔는데, 이 분이 현대인의 고독과 해방감을 정적이지만 아주 입체감 있게 잘 표현하셨다고. 이번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면서 내한을 하고 책도 내신 듯. 예전에는 별로 끌리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고독한 미식가"를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두 분이 대담을 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서문은 마쓰시게 유타카 씨가 썼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이 분은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 같은 사람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마쓰시게 유타카가 배우로 성공하지 못하고 힘들었을 때 그에게 길잡이가 되어준 사상인 불교의 "선"에 대한 본질을 이야기하는데, 대중들에게도 알려진 유명한 그림 "십우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십우도는 동자가 소를 찾는 여정을 담은 열 장의 그림을 나타내는데, 바로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 24p ~ 25p에는 한눈에 보는 십우도라는 제목으로 그림이 나와 있다. 첫 번째 "소를 찾아 나서다"라는 의미인 "심우"에서 시작한 그림은 열 번째 "사람들 속으로 걸어들어가다"라는 의미인 "입전수수"로 끝이 난다.

여기서 "심우도" 속에 들어있는 내용에 대해 잠깐만 말해보자면, 우선 "심우"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 찾기, 즉 진정한 나를 찾기는 것이라는 의미인데, 불교의 아주 중요한 가르침인 "제법무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얽혀 존재하고 있으므로 불교에서 바라보는 진정한 "나"라는 것은 결국 관계 속에 있다는 것. 십우도 두 번째 그림 "견우"에서는 소의 발자국, 즉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따라갈 길을 발견하는 동자의 모습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생활 속의 수행을 이야기한다. 네 번째 그림 "득우"는 방황 속 나를 찾는 여정이며 여섯 번째 그림 "기우귀가"는 결국 소를 찾아낸, 말하자면 깨달음 경지에 이른 동자가 집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스스로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즉, "메타인지"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이 부분이 꽝이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 같기는 하다.

예전에 죠셉 캠벨이라는 저자가 쓴 "신화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쓴 내용이 "십우도" 사상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웅은 집을 나와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개념인데, 정말 똑같지는 않겠지만 일단 사람들을 떠나 깨달음을 향한 치열한 수행 끝에 다시 돌아와 깨달음을 전파한다는 내용이 비슷하다는 느낌. 마쓰시게 유타카 씨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생생한 묘사로 대화를 이끌어간다면, 마스노 슌묘 스님은 좀 더 정리된 이론으로 깔끔하게 대화를 마무리하신다.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집필된 글. < 4장 : 길 위에서 만난 고민 >는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해 주는 코너인데, 일반인들이 겪을 수 있는 고민과 그것을 명쾌히 해결해 주는 두 사람의 대담이 있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특히 삶에 대해서 걱정 고민이 많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 <불교 마음 수업>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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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었지만 외로운 사람들 - 고독을 잃어버린 스마트폰 시대의 철학
다니가와 요시히로 지음, 지소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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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고독이 필요하다"

어제 저녁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신랑이 지나가는 말로 "뭐에 대한 책이냐?"라고 물었다. "철학책이다" 라고 했더니 뭐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지나가는 남자. 마침 36쪽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평온하다"라는 대목을 읽고 있었는데, 자기처럼 깊이 고민하지 않으려 하고,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현대인을 묘사한 장면에서 찰떡같이 그런 질문을 하다니...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다니가오 요시히로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라는 스페인 철학자에 대해 언급한다. 이 분이 특히 도시라는 배경을 통해 현대 사회 분석을 잘 하는 철학자라고.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자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자면, 1990년 출생으로 교토에 사는 젊은 철학자.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인간 환경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미술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철학자이지만 철학을 뛰어넘어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 중이라는 분. 요즘 우리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이유는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젊은 분이 참 바람직하다 싶다. 어쨌든 다시 책으로 가자면, 위에서 얘기한 36쪽에서 철학자 오르테가는 현대인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 현대인은 자신이 헤매고 있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 현대인은 타고난 방향치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스스로가 무식한 줄 모르는 무식자라는 말씀. 메타인지 부족?

이 책의 부제가 바로 <고독을 잃어버린 스마트폰 시대의 철학>이고 저자는 주로 스마트폰 시대가 만들어낸 철학의 부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장 <연결되는 동안 잃어버린 '고독'>에서 저자는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나서부터 어디에 길들여졌고 또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에 대해서 논한다. 상시 접속해 있고 인터넷과 소통하느라 눈앞의 사람들과는 소통하기를 멈춘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반사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고립'과 '고독'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과 분리되어 무언가에 집중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고립'과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상태인 '고독'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립과 고독의 상실이 불러온 결과는 무엇일까? 저자는 여러 철학자들의 입을 빌리면서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는 주제로 이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고독에는 고립이 필요한 반면,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또렷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붕괴된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외로움에 취약한 것은 사실인데,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감각 자극과 다른 여러 자극으로 잠시 외로움을 잊지만 이후로 더욱더 큰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 니체가 말했던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려 한다"라는 것과 오르테가의 "미궁을 맴도는 모습"과 겹쳐 보이는 모습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위에서 남편을 욕하긴 했지만 나도 사실은 "철학"을 잘 알진 못한다.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이 책 <연결되었지만 외로운 사람들>은 아주 멋진 철학 입문서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쉬운 용어로 쓰여있고 ( 철학서에 등장하는 난해한 용어가 없다 ) 없으면 안 될 것 같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받게 되는 스마트폰의 해악에 대해서도 아주 잘 짚어준다. 감각이 지배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이 시대에 아주 시기적절하게 출간된 책이라는 생각이다. 마무리하기 전에 113쪽에서 읽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태도에 대해서 언급해 본다. 첫 번째 : 생각하는데도 연습은 필요하다 ( 성급하게 결과를 얻으려 하지 말길 ) 두 번째 : 쓰이는 대로 쓴다 ( 언어의 개념을 제대로 익히기 ) 세 번째 : 철학자의 상상력에 따라 읽는다 ( 일상과는 동떨어진 철학자의 상상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

철학책이 이렇게 쉽고 재미있고 실용적이기까지 하다니! 시류에 휩쓸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사람들이나 현재의 불안을 이기기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철학 입문서 <연결되었지만 외로운 사람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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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는 쉬운 영어로 말한다
션 파블로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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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네이비 색깔의 표지에 등장한 친숙한 얼굴. 나도 모르게 "어, 나 이 사람 아는데?"를 외치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에 관한 의견을 인터뷰하는 콘텐츠를 한번 본 것 같은데, 그 인터뷰어가 바로 저자 션 파블로였던 것. 인상도 선하고 한국어도 잘하는, 대표적인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이랄까? 아니면 13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하니,,, 외국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한국인?? 어쨌든 참 괜찮은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은 해왔는데, 이번에 이 책 <Speak Simple : 네이티브는 쉬운 영어로 말한다>을 들고 독자들 앞에 나타났다!


저자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션 파블로 씨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언어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쌓은 경험과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한국인의 영어 두통약'같은 영어책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평범한 한국인이라면 매일 영어 공부를 걱정하고 사는 게 사실! 하지만 바쁜 생활 속에 학원을 찾기가 힘들고 1 대 1 수업은 경제적으로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잘 쓰인 책 1권은 100명의 선생님 역할도 가능한 것.


우선 이 책의 구성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우선 <문장 훈련 코너>가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상당히 많이 쓰는 표현들, 예를 들자면 "커피 마시러 가자 - Let's get coffee "라던가 "여기가 숨은 맛집이래 - This place is a hidden gem"와 같은 표현들이 영어 문장으로 소개된다. 딱 보기에 원어민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표현인데 쉽기까지 하다. 오른쪽 상단에는 QR코드가 있어서 원어민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있기에 바로바로 따라 읽으면서 연습할 수 있다. 다음에는 <대화 연습 코너>가 있는데, 우리말 대화문과 네이티브 영어 대화문이 따로 존재하기에 번갈아가면서 연습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냥 문장과 대화문으로만 이루어진 책일까? 대답은 "아니오"이다. 10일 단위로 공부를 끝내고 나면 <망각 방지 장치>라고 하는 연습 문제가 있어서 공부한 부분을 복습할 수 있다. 이 부분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선 1단계는 <Fill the Gap!>이라고 해서 특정 문장에 비워진 칸을 채워 넣는 것이다. 2단계는 <Write to Win!>이라고 해서 제한 시간 동안 주관식 20문제를 풀어보면 된다. 1단계에는 보기가 주어지지만 2단계는 보기 없이 하는 게 포인트! 3단계는 <Speak to Conquer!>라고 해서 마치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실전에서 대화하듯 연습할 수 있게 하는 코너이다. 내용 자체도 상당히 좋지만 복습을 할 수 있는 연습 문제의 퀄리티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총 500페이지가 넘는 다소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표현들이 매우 쉬운 영어로 소개되어 있고 편집마저 너무 깔끔하기에 공부하기 너무 좋은 책이다. "감이 떨어졌나 봐 - Maybe she's lost her touch." 나 "너는 항상 바쁘구나 - You're always on the go!"와 같은 우리가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평소에 정말 많이 쓰는 표현들이 나오므로 엄청나게 실용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어 공부를 위해서 미드나 영드를 볼 때 조금은 알아듣지만 가끔 들리는 낯선 표현으로 인해서 버벅거렸던 적이 있는가? 혹은 최근에 사귀게 된 원어민 친구와 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주 쉽지만 동시에 매우 실용적인 영어 회화책 <Speak Simple - 네이티브는 쉬운 영어로 말한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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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
정희승 지음 / 작가의집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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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한 지옥 같은 세계는 이제 멀리 사라졌다

우리는 보통 생존기라는 말을 들으면 지진이나 해일 혹은 큰 화재와 같은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화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학대하는 부모 밑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자란 사람들이 무사히 어른으로 성장한 경우를 두고도 생존기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가족으로부터 사랑만 받고 커도 온갖 문제를 가질 수 있는 게 인간이기에, 힘든 아동기 시절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내가 읽은 책 <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도 누군가의 생존기라고 볼 수 있다. 친딸에게 성적인 접촉을 가하고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가한 아버지.... 작가의 들려줄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저자 정희승씨는 가난한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가 둘, 그리고 공장을 다니며 살림도 야무지게 하는 따뜻한 엄마...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가난이라는 문제는 늘 그들 가족을 괴롭혔다. 하지만 가난은 저자 정희승씨에게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악마와 같은 존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의 친아빠였던 것. 맞벌이를 하던 엄마는 낮에 긴 시간 동안 공장에 있어야 했고, 특히 야간 근무를 하던 때에는 밤새도록 집에 못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속옷 차림만을 한 채 딸을 불러서 몸의 이곳저곳을 안마하라고 시킨 다음, 마수와도 같은 손길을 딸에게 뻗치게 되는데....

동시대를 살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로서 나는 책을 읽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남편에게 머리채를 잡혀서 동물처럼 끌려다니던 저자의 엄마..... 너무 맞아서 퉁퉁 부어오른 엄마의 얼굴을 저자는 떠올린다. 사실 80년대 ~ 90년대 한국에서의 여성 지위는 형편없이 낮았기에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동네를 이런 식으로 떠들썩하게 만든 집안이 한두 군데 있기는 했다. 하지만 딸에게 성추행 혹은 성폭행과 같은 몹쓸 짓을 하는 경우는 정말 다른 문제이다. 저자는 거대한 두부 덩어리 같은 아버지의 몸이 자신을 누르던 날의 공포, 그리고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던 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한 아버지를 막으려고 빨랫줄로 문고리를 칭칭 감았던 날의 터질 듯한 긴장감을 떠올린다. 과거의 공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어른이 되고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린 후 저자는 그제야 심리 상담을 받으며 과거와 현재를 분리시키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 와중에 부모님으로부터 "회복탄력성"이라는 긍정적인 자질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도 좋은 수확이긴 하지만 저자는 심리학 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유년기를 지옥으로 만든 남자, 즉 자신의 아버지가 "악성 나르시시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왜 그가 그런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3살에 아빠를 잃은 저자의 아버지는 엄마가 재혼을 하는 바람에 새아버지와 살게 된다. 그러나 새아버지는 이유 없이 그를 때리고 학대했고, 그런 이유로 저자의 아버지는 중학생 때부터 홀로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악마의 탈을 쓴 남자가 탄생하게 된 것....

어른이 된 후 저자는 비로소 엄마와 두 오빠에게 아버지의 만행을 알린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에만 분노할 뿐, 혹시나 저자가 다른 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까 봐 숨기기에 급급한다. 거기에 실망한 저자는 가족과의 절연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 심리 상담과 심리학 공부를 통해서 저자는 어느 정도 악마의 손길이 남긴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긴 한다. 물론 가족과의 절연을 택한 것도 그녀에게는 고통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을 딛고 이제 그녀는 인생에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아픔을 지닌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서 살기도 하는데, 저자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에 이런 책도 내면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 같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는 오직 행복해지기를 택하려는 저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너무나 끔찍했던 과거였지만 그로부터 더욱더 성장하고 자유로워진 저자의 이야기 <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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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퀼라의 그림자 요다 픽션 Yoda Fiction 7
듀나 지음 / 요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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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블랙핑크나 아이브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면 이런 느낌일까? 거장의 주특기가 마치 성대한 축제처럼 피어나 있는 책이다"

팀을 이루어 악당들과 싸우는 정의의 용사들... 그런데 그 용사들이 마치 팬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아이돌 같다고 할까? 이 연작 소설집 <아퀼라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그러하다. 우선 이 책에는 각각 6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시간의 흐름이 약간 뒤틀리고 주인공과 화자가 바뀌는 식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아퀼라나 블루 스펙터스라는 이름의 팀을 이루는 이 아이들은 불을 일으키거나 염력을 쓰는 등의 능력이 있고 알파 히어로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아이돌과 비슷하다는 의미가 과연 뭘까?

연작 소설집 <아퀼라의 그림자>의 세계관을 이루는 배경은 대충 이러하다. 과거의 어느 날, 지하철 공사를 하던 대구의 어느 지하에서 프로스페로 생태계라는 것이 발견되면서 엄청나게 퍼져나간 적사병으로 인해 남한 인구 거의 3분의 1이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이로 인해서 남한은 전 세계로부터 격리가 되고 보균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능력 ( 감응력, 염력, 발화력 등등)을 드러내며 알파가 된다. 이렇게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 중에서 악당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폭주하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지만 ( 늙은이들만을 표적으로 삼는 경우도 있음 ) 그런 악당들의 대척점에서 그들을 막아내고 처단하는 알파 히어로들이 생기게 된다.

이미 남한은 무정부 상태로 보이고 ( 내 생각에는 ) 아마도 폐허가 되었을만한 남한을 이끌어가는 세력들은 알파 히어로들을 보유하고 훈련시키고 그들을 아이돌처럼 만들어서 방송 프로그램과 팬픽 소설까지 만들어내는 K-포스와 같은 회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책과 같은 제목이자 첫 번째 이야기인 <아퀼라의 그림자>를 비롯하여 나머지 5편의 단편들이 누군가가 쓴 팬픽이라고 가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단편들은 이 책 속에서도 캐릭터들이 읽는 팬픽으로 등장한다는 점. 소설 속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설정이 재미있었다.

라스푸틴이 과연 누구이고 왜 이 일을 저질렀다는 말인가?를 추적하는 게 재미있었던 단편 <아퀼라의 그림자> 어쩌면 라스푸틴의 탄생? 혹은 기원이라고도 볼 수 있을 단편 <마지막 테스트> 대구의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견되었다던 그 프로스페로 생태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단편 <캘리번> 이 단편에서는 아마도 최초의 아이돌 알파 히어로라고 할 수 있을 블루 스펙터스 멤버들의 탄생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또한 적사병으로 죽은 시체들이 갈기갈기 찢겼다가 다시 붙으면서 아나콘다와 같은 괴물이 되는 기괴한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단편 <모두가 세니를 사랑했다>에서는 슈퍼히어로와 슈퍼 악당들의 끝없는 전투라는 틀 안에 갇혀버리게 되어버린 고립된 한국을 위해 희생하는 알파 히어로 세니의 모습이 집중 조명된다.

우리가 보통 "아이돌을 사랑하는 일" 즉 "덕질"에 푹 빠져버린 사람들을 광팬이라 부르지 않는가? 이 책 <아퀼라의 그림자>는 누군가의 광팬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읽는다면 참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계에서 온 알 수 없는 존재가 퍼트린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보균자가 되어 살아남은 능력자들은 "알파 히어로"라는 강력한 집단이 된다. 이들은 악당들을 깨부수지만 동시에 음악에 조예도 깊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도 보유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아이돌스타"라는 사실. 이들은 악당을 무찌르는 동시에 남한을 "고립"과 "격리"라는 지경으로 빠뜨린 프로스페로 생태계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과연 이들은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뭔가 기괴하고 독특하면서도 알록달록한 미래 세상을 보여주는 작가 듀나. 이 책을 읽다 보니 내란 종식을 위해서 컬러풀한 응원봉을 든 이 땅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혼란과 절망을 종식시키는 것은 누군가를 향한, 아니 온 존재를 향한 사랑이라는 사실. 그 사실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응원이 보이고 느껴지는 듯한 SF 소설 <아퀼라의 그림자>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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