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동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 10년 차 망원동 트레이너의 운동과 함께 사는 법
박정은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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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요즘은 운동을 게을리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수영, 요가, 헬스 등등 시간이 날 때마다 다양한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관리하곤 했다. 그만큼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직장에서 강행군을 해야 하는 시기도 잘 견딜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운동을 꾸준히 한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미용의 목적, 즉 살을 빼기 위한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지금은 근육량을 늘이고 각종 성인병 예방 그리고 관절 건강을 위해서라고 운동을 꾸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구체적으로 운동을 할 계획을 짜려고 생각해 보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나는 운동을 너무 어렵고 진지하게만 생각하는 걸까? 이 책 [우리는 운동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를 읽고 싶었던 이유는 바쁜 현대인들이 좀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 박정은 씨가 이미 10년 차 헬스 트레이너이기에 일반인들이 좀 쉽게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 책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실천 가능한 여러 운동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박정은 씨는 스스로를 읽고 쓰고 공부하는 10년 차 트레이너로 소개한다. 이화여대 체육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하고, 현재는 여성 전용 PT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책은 총 3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1장 [진지한 마음은 넣어두고 시작하기]에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법을 다룬다. 1장에는 저자가 여성 전용 헬스장을 차린 이유가 등장한다. 남성 트레이너의 시선처리나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 등의 사례가 소개되는데, 예전에 PT를 받는 동안 느꼈던 부분이 많이 등장해서 공감이 갔다.

2장 [제자리걸음도 운동입니다]에서는 실제로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운동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여러 의문들을 해결해 주는 듯 보인다. 마지막 3장 [우리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지]에서는 실제 트레이너가 말하는 몸과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제대로 식사하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이 책에는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는데, 우선 54쪽에는 과체중의 사람들이 오히려 건강하다는 통계를 이야기하며 완벽한 몸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84쪽에는 트레이너인 작가 본인도 싫어하는 운동이 있음을 말해준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작가, 그는 달리는 대신 경사를 오르며 걷는 유산소 운동을 택하게 된다. 굳이 특정 운동을 할 필요는 없고, 자신에게 제일 맞는 운동법을 찾으라는 저자의 말에 큰 공감이 갔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운동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집착한다거나 아니면 운동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금 덜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보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서 무리하게 운동을 한다거나 하면 오히려 몸을 망칠 수 있고, 약간 과체중이다 싶은 사람들이 오히려 오래 산다는, 희망적인 (?) 통계도 제시해 주면서 나같이 게으른 사람들에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운동을 통해서 수술을 하지 않고도 여러 증상이 완쾌된 상황 등 운동이 삶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는지를 보여준 이 책을 읽고 나서 힘들고 어렵고 짜증 나는 운동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조금 바꿀 수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 [우리는 운동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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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
한송이 외 지음 / 한송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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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잣대가 부담으로 다가올 때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줄 때

유명 인사도 아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도 아니기에 그 누구의 주목도 받을 수 없는 삶이긴 하지만 우리의 삶은 있는 그대로 중요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시간이 소중한 이유는 이 시간이 하나하나 쌓여서 우리의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젊을 때 일도 열심히 하고 여행도 열심히 다니고 사랑도 원 없이 해봐야 한다고 어른들이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당시에는 죽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겠지만 돌아보면 그때가 보석 같은 시기였다는 걸 우리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다. 우리는 그때 무지 특별했고, 특별했기에 더 힘들었다는 사실을.

에세이 [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는 어떻게 보면 "나"와 비슷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야기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각각의 이야기가 특별하다. 공교육을 거치지 않고 홈스쿨링을 통해서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지녀온 사람도 있고, 먼 타국에서 시집와서 아이를 키우다가 보험 영업이라는 힘든 일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사람도 있다. 이혼이라는 크나큰 아픔을 겪은 사람도 있고, 젊음과 진취성이라는 두 가지 능력만을 가지고 겁도 없이 다양한 직업에 뛰어들어 쓰라린 경험을 해본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좀 더 가시밭길을 걸어온 작가들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 책 [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는 각양각색의 빛깔을 가진 6명의 작가 이야기가 실려있다. 실패한 이야기도 성공한 이야기도 솔직 담백하게 담겨 있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한송이 작가는 21쪽에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우리가 어떤 말을 선택하고 사용하는지는 삶과 인격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다. 긍정적인 언어와 태도를 통해 우리의 얼굴에, 그리고 삶에 더 좋은 흔적을 남길 수 있음을 기억하자. " 살면 살수록 예쁜 말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정말 공감되는 글이었다. 왕학철 작가의 글에서는 젊은이 만의 패기가 넘쳐흐른다. 47쪽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 여러분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고 있는가? 어떠한 외압에도 당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 자유롭고 당당하게 책임을 지며 살고 있는가?" 이 글을 읽고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왕학철 작가의 글에서는 젊은이다운 당당한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신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드미트리 작가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공교육 시스템보다는 홈스쿨링을 선택했던 저자. 그래서 그런지 사고방식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이나 죽음과 같은 내면적인 주제에 대해서 어릴 적부터 고민이 많았고 이런 것들을 극복해야 할 테마로 삼았던 저자. 특히 고독과 자유, 주체적 사고방식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글을 썼는데, 나도 이런 추상적인 개념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저자의 글이 재미있게 다가온 것 같다. 이뿐만 아니라, 세렌디피티 (우연한 행운이나 기회)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저자가 신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신비로움?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 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외에도 중국에서 낯선 땅으로 넘어와서 아이만 키우다가 보험 영업직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성공을 이루어낸 조유나 작가와 힘든 간호사 생활 그리고 어머니와의 영원한 작별 등으로 힘든 시기를 요가와 명상 등으로 극복해낸 안나 Lee 작가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누구의 인생인들 특별하지 않겠는가? 다들 가지고 있는 추억 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보면 대하소설은 안될지 몰라도 단편 소설 정도는 써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 인생의 힘듦을 극복하고 성공도 이루고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인 [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정말 특별한 우리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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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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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 싶었던 나의 노란 집

그저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을 뿐인데....

노란색 과일하면 예전에는 바나나를 떠올렸었는데, 이제는 아마도 "레몬"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만큼 이 소설 [노란 집]이 나에게 던지는 레몬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소설 [노란 집]은 주인공 이토 하나가 어린 시절부터 겪은 생활고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행복 그리고 마치 그 행복을 비웃기라도 하든 이어지는 불행 등을 다루는 소설이다. 노란색은 그녀에게 정말 의미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인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이 아마도 스낵바 "레몬"을 기미코와 함께 경영하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노란 집]은 굉장히 흡인력이 있다. 캐릭터 묘사, 이야기 구성 그리고 작가의 필력까지 ... 하나도 빠짐없이 완성도가 높다.

주인공 "이토 하나"는 아버지의 존재를 잘 못 느끼며 자랐다. 아마도 엄마가 유부남의 애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 다 쓰러져가는 공영 주택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엄마가 동네의 스낵바에 다니면서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생활을 하고 있다. 가난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건지, 하나에게서 가난의 냄새를 맡은 아이들은 그녀를 "비빈바"라 부르며 놀린다. ( 일본 말로 빈보가 가난하다는 뜻이고, 비빈바는 빈보에 캐릭터 이름을 붙여 만든 별명 ) 삶을 다소 헐렁하게 사는 엄마는 다양한 친구들이 집에 드나들게 놔두게 되고, 그중 한 명이 바로 기미코 씨였다. 기미코 씨는 다정한 여성이라 집에 잘 붙어있지 않는 엄마 대신 어린 하나를 잘 돌봐줬다. 그러나 기미코 씨는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갈 때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천성이 굉장히 야무지고 강한 하나.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은다. 엄마에게서 독립하겠다는 일념으로 몇백만 원 되는 지폐를 모아서 상자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하나. 그런데 하루아침에 돈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알고 보니 엄마를 계속 스토킹해왔던 엄마의 전 남자친구가 집까지 찾아와서 생떼를 부렸고, 바로 그날 돈이 몽땅 사라지게 된 것. 절망하고 몸부림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하나가 우울해있던 그때, 사라졌던 기미코가 홀연히 하나를 찾아오게 된다. 그동안 하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들은 기미코는 하나에게 함께 스낵바를 차리자는 제안을 하고, 그들은 함께 낡은 건물의 3층에 "레몬"이라는 이름의 스낵바를 차리게 되는데........

소설 [노란 집]은 뉴스로부터 "기미코"라는 매우 낯익은 이름을 들은 현재의 하나가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현재로부터 약 25년 전쯤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젊은 시절 하나의 고군분투가 정말 눈물겹다. 가난의 굴레라는 건, 마치 늪과 같아서 한번 빠지게 되면 복구가 어렵다. 그냥 더 빠지지 않기 위해서 허우적대면서 살아간다고 해야 할까? 뿐만 아니라 악순환의 굴레에 한번 갇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영혼의 빛을 잃어간다. 악착같이 살아도 가난과 불행이 연속으로 타격을 하게 되면, 마치 KO 패를 당한 복싱 선수처럼 그렇게 살아간달까? 하나의 엄마도, 기미코도, 영수도... 이 소설 [노란 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마치 뿌리 없는 나무처럼 연약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노란 집]에 등장하는 스낵바 "레몬", 그리고 노란색은 어쩌면 하나가 한 번도 손에 넣어보지 못한 많은 돈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기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미코, 하나, 하나의 엄마, 모모코, 란 그리고 영수... 이 소설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상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고 살아남기 위해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아무 일이 없던 시기, 돈을 버는 족족 미래를 그리며 모아가는 시기는 희망으로 인해서 행복했지만 그 행복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이어 발생하는 불운은 하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엄마가 사기에 휘말리며 하나가 모아둔 돈을 다 가져가고, 스낵바 레몬이 갑자기 일어난 화재로 인해 재가 되고 만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하나는 하지 말아야 할 불법적인 일에 휘말리게 되는데....

소설 [노란 집]은 인생을 악전고투하듯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렇게 불행만 닥치는지... 밑바닥 인생들의 필사적인 삶이랄까? 하나와 하나 주변의 인물들의 삶에 대해 그냥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날 때부터 불행했기에 그 그림자를 지우기가 상당히 어려워보이기도 했다. 마치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사막에서 모래를 움켜쥐며 살아가는 인생이랄까... 그런 이미지가 그려졌다. 집을 노랗게 칠했던 것처럼, 스낵바 레몬에서 즐겁게 일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하나의 삶은 무지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책을 덮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굉장히 흡인력있는 소설 [노란 집]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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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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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내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해 내려 노력해야 한다."

N.K.제미신은 몇 년 전 부서진 대지 시리즈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작가이다. 땅을 뒤흔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인 "오로진" 그들은 차별과 억압을 피해 조용히 살다가 갑자기 닥친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내면의 힘에 눈뜨게 된다. SF 소설이라 미래를 배경으로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인류의 과거와 기원을 다루는 느낌이 들어서 오래된 미래가 떠올랐던 소설이었다.

이번에는 그 천재적인 작가의 데뷔작인 유산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 [ 십만 왕국]을 읽게 되었다. 이책도 부서진 대지 시리즈 못지않게 대단히 독특하다. 우선 신과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여 살 뿐 만 아니라, 신들이 노예처럼 인간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회가 그려진다. 강력한 권위를 바탕으로 거대한 대륙을 통치하는 아라메리 가문의 사람들은 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정적을 제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 질서, 등을 상징하는 신 이템파스를 모시는 아라메리 가문은 이교도 행위 등 어긋한 짓을 하는 자에겐 가차 없이 죽음을 안기는 다소 잔혹한 사람들이다.

주인공 예이네는 후진 국가인 다르의 지도자였다. 그녀는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외할아버지가 통치자로 있는 세늠 대륙의 중심지인 하늘궁으로 소환된다. 외할아버지인 데카르타는 후계자가 2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낯선 자나 다름없는 아예네를 후계자로 지명하지만, 그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다. 낮은 지위의 남자와 결혼한 죄로 쫓겨났던 어머니 키네스, 심지어 어머니의 죽음이 데카르타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마저 예이네에게 있는데, 자신을 후계자로 임명한 데카르타의 의도는 뭘까?

어쨌든 후계자로 임명된 예이네가 할 일은 정치적 암투에서 살아남는 일. 특히 그녀의 이모에 해당되는 데카르타의 딸 시미나의 공격은 노골적이다. 그녀는 밤의 신인 나하도스의 능력을 이용하여 예이네의 목숨을 노리게 되는데....

제미신 작가의 작품이 으레 그러왔듯, 이 작품도 굉장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신과 인간이 뒤섞이고, 다양한 인종과 계급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순혈과 반혈, 즉 어떤 피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고, 이마에 새겨진, 계급을 의미하는 인장을 가지고 있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이 책이 특이한 이유는, 신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신은 낮에는 인간으로 살다가 밤이 되면 초월적으로 변하고 굉장히 위험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차피 아라메리 가문의 발아래에 묶여있는 노예 신세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분노에 찬, 불순한 눈빛으로 호시탐탐 쿠데타를 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예이네가 하늘궁으로 오게 된 순간, 그녀는 굶주린 야수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이야기의 전부일까? 냉혹하고 잔인한 아라메리 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자신만의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게 이 소설의 핵심이다.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정치적 암투와 이해관계를 파악해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비밀, 그리고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의 열쇠를 찾아가는 예이네.. 처음에는 이야기의 구조를 파악하느라 다소 힘들었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세계관이 뚜렷해지면서 이야기가 점점 재미있어진다. 특히 집요하게 주인공을 유혹하는 위험한 남자이자 밤의 신인 나하도스라는 캐릭터가 두드러진다.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목숨까지 내줘야 할 듯한 야수 같은 신 나하도스.. 과연 예이네의 운명은????

풋내기에 불과했던 인물이 점점 내면의 힘에 눈을 뜨게 되면서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는 영웅 서사시인데, 아마도 뒤로 갈수록 치명적인 로맨스 (나하도스와)가 그려질 듯. 그러나 뭔가 그와의 관계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 같기도... 출생의 비밀?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한 판타지이다. 새로운 판타지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픈 소설인 [십만왕국]

"신과 인간의 운명을 둘러싼 압도적 스케일의 대서사시,

21세기 판타지 소설의 지표 N.K. 기념비적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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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 콤마
이승훈 지음 / 서랍의날씨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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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사람이 한 거다."

꿈처럼 신비롭게 다가온 소설 [코마, 콤마] 내 경우는 천연색의 꿈을 꾸기도 하고 누군가가 꿈속에서 내게 말을 거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가 하면 정말 현실 같았던 꿈 때문에 깬 후 놀랐던 마음을 쓸어내린 적도 있다. 소설 [코마, 콤마]에서 코마 환자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보호자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여행을 하게 된다. 현실을 반영한 듯한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의 끔찍한 악몽 속으로 들어온 듯한 여행을 하는 보호자들. 그러던 와중에 일어난 심상치 않은 사건들... 설정부터 신비롭지만 갑자기 발생한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설 [코마, 콤마]로 들어가 본다.

주인공 성훈은 6년 전, 코마에 빠져버린 약혼녀 수영의 의식을 되찾기 위해 김 교수와 최 교수가 공동 진행하는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말하자면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수영의 의식으로 들어가게 되는 성훈. 실험 와중에 만난 수영의 기억 혹은 관념 혹은 수영의 의식은 자신이 코마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성훈이 6년 전 행방불명되었다가 갑자기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원망한다. 수영은 성훈을 기다리던 와중에 불행한 자신을 받아준 동생 영훈과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충격적인 점은 성훈에게는 동생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실험에 참여한 다른 팀의 보호자인 지선 씨는 치매를 앓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코마에 빠진 엄마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는 치매 상태인 엄마의 의식을 대변하는 듯 뿌연 연기로 가득하고 어두침침한 그녀의 의식 속에서 천진난만한 어린 엄마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결국 어른이 된 엄마는 무서운 얼굴로 지선에게 돌아가라는 말만 외친다. 없는 동생과 데이트를 한다는 수영 그리고 자꾸만 돌아가라고 등을 떠미는 엄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겪게 된 성훈과 지선... 실험 결과는 시원찮고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등 찝찝한 일이 계속되는데...

그러던 와중에 실험을 끝낸 후 빠르게 사라져버린 지선이 다시 연구실로 돌아오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서 비상이 걸리게 되고, 두 교수들은 성훈에게 지선 엄마 서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아주길 바란다. 서현의 의식 속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 성훈... 과연 그 사실은 무엇이고, 지선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일까?

꿈, 의식, 무의식 등등 인간의 심리를 다룬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굉장히 재미있게 읽혔던 소설 [코마, 콤마] 이 책을 읽는 동안 영화 [더 셀]이 생각났다. 연쇄 살인범이 가둬놓은 피해자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 코마 상태에 빠진 범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FBI 요원과 심리 치료사의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영화인데, 어린 시절에 학대를 경험하고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 범인의 과거가 그의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서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위험하게 펼쳐진다. 매우 컬러풀하고 다소 충격적인 영상 [ 데미안 허스트의 말 해부상 등등 ] 도 나와서 아직 기억에 남은 영화인데, 이 소설하고

주제면에서 어울리는 듯?

소설 [코마, 콤마]에서도 현실이 아닌 코마 환자들 의식 속 환경을 잘 구현해냈다고 생각한다. 먹구름으로 가득 찬 듯한 치매 환자 서현의 의식 세계 도 잘 묘사된 것 같고, 엄마의 과도한 양육에 지쳐버려 자살을 시도했던 환자 선호의 의식은 마치 불타고 남은 재처럼 바스러지는 형태로 나타나 그의 지친 마음을 잘 표현해낸 듯. 마치 현실로 돌아오기 싫은 듯한, 혹은 현실로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각 환자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잘 묘사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우리 의학이 코마 환자들의 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발달은 되지 않았지만 나름 설득력 있게 쓰인 소설 [코마, 콤마]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 반전 때문에 두 배로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의식과 무의식 그 신비를 탐험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소설이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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