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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언어 - 삶과 죽음의 사회사, 2024 아우구스트 상 수상작
크리스티안 뤼크 지음, 김아영 옮김 / 북라이프 / 2024년 11월
평점 :
“무엇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절망에 이르게 하는가?”
우리는 함부로 '자살'이라는 단어를 올리기 힘들어한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아마 다양하지 않을까? 구성원이 죽음을 택함으로써 인구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신이 준 육체를 함부로 대하는 행위를 막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무거운 만큼 앞으로는 더 많은 토론과 분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안락사나 조력 자살과 같은, 시스템으로 들어올 수 있는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어 볼 시점이 왔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안 뤼크는 스웨덴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이다. 어릴 적 리즈 고모의 자살을 경험하기도 했고, 스스로 죽기를 원한 환자들을 많이 만나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 분은 "자살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신중하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서 함부로 "인권"을 들먹이지 않는다고 할까? 오히려 자살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죽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유들 -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 성폭행의 후유증, 테러에서 혼자 살아남은 사람의 고통 등등 - 을 사례로 들면서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도 얘기하지만 최대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자살"에 대한 철학 에세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인문 교양서나 심리학 저서라고 볼 수도 있는 이 책은, "자살이 왜 인간의 동반자가 되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서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당히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자살이 어쩔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살자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자면, 자살로 사망한 18세 소년의 아버지인 외르얀은 아들의 죽음으로 고통받기보다는, 삶을 끝내기로 선택한 그의 관점이 되어 보기로 결심한다. 그는 쉬쉬하기보다는 자살을 담론으로 삼는 쪽이 아이들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데, 굉장히 통찰력 있는 생각이라고 느껴졌다.
이 책에는 실로 다양한 자살의 사례가 보고된다. 이유 없이 삶을 끝내기로 한 16세 소년 요한의 사례부터 명예롭게 죽기를 선택하는 일본 사무라이의 할복 문화까지... 이 모든 사례들은 우리가 도저히 삶을 받아들일 수 없고,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으며, 고통만이 가득하다고 느낄 때 죽음을 택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시대와 문화에 따라 자살의 문턱이 더 높고 낮을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내가 제일 흥미롭게 보게 된 부분이 바로 6장 : 자기 죽음에 대한 통제이다. 이 장에서는 요즘 들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 즉 안락사 혹은 조력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데이비드 구달이라는 교수의 조력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 장을 시작한다. 구달은 104세라는 나이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저자가 안락사나 조력사에 대한 찬성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입장은 보다 신중하다. 어떤 정신병은 완치될 수 없기에 죽음이 허락되어야 한다던가 쉬운 죽음을 선택하게 만드는 자살 기계와 같은 것에 대해서 저자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쪽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49쪽 "나는 이러한 경험을 도려내고. 그 모든 세월을 뒤로한 채 다른 사람이 죽도록 하는 데 동참할 수 없다. 나는 내 길을 택해야 한다. 내 길은 사람들이 치명적인 약물을 발견하도록 돕는 게 아니다. 나는 삶의 편에 설 것이다." 죽음으로 가는 길을 쉽게만 만들 수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저자.
이 책은 함부로 단정 짓지 않고, 자살에 대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각도로 분석하고 살펴보고 신중히 고민해 보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정신병 환자들을 치료해 본 경험을 가진 의사로서, 충분히 치료가 될 수 있는 사례들도 보고하고 있고, 되도록 삶을 택하는 쪽으로 사람들을 유도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자살 문제가 두드러진다. 다리 난간을 높이는 것 같은 얄팍한 대책 말고, 좀 더 깊이 있는 분석과 토론으로 원인부터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제에 대한 깊은 사고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통찰력으로 가득한 책 [자살의 언어]를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