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눈치 없는 언어들 - 알쏭달쏭하다가 기분이 묘해지고 급기야 이불킥을 날리게 되는 말
안현진 지음 / 월요일의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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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수신자와 발신자의 언어 전달 체계에서 많이 쓰이는 격언으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말이란 전달하는 상황이나 단어의 변화에 따라 변화구가 많은데, 유독 수신자를 탓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며 자신이 겪어내며 상처받고 감동받은 수많은 말들. 그리고 신조어들의 실체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하고 파악해 보려 노력한 것들과, 그때마다 느낀 언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독자와 나누고 싶다고 했다.

제목이 참 독특했다. 참 눈치 없는 언어들이라니 얼마나 눈치 없는 이야기들일까 싶었는데 실제로 가장 평범했고,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나누는 말들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특히나 개인의 속내를 많이 담아내고 있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로 우리가 위로할 때 많이 건네는 말인 '나도 그랬다'라는 말에서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을 때 우리가 가장 흔하게 건네는 말일 수 있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듣는 '나도 그랬다'가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킬까?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었다.
작가님은 요가를 수련 중이고 더 늘지 않는 실력에 대해 많은 고민을 갖고 있을 때 요가 선생님께 조언을 얻기 위했을 때 이 말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엄청나게 요가를 잘하는 선생님의 '나도 그랬다'는 전혀 공감되지 않고 '선생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을까?'라는 반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많이 도와주겠다'라는 말에 더 큰 위로를 받았다는 것에 새삼 공감에는 인정과 수용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잘해 줬니' 상대방과 감정이 상했을 때 부연으로 오는 말로, 가장 현타오는 말이라고 했다.
상대가 얼마나 잘해 줬는지 아는 것은 오롯이 본인이지만 자신이 베푼 것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토로하는 것은 말하는 주체자의 핵심이 서운함이라는 것을 비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 말을 꺼내기 전 상대방 서운함을 귀 기울여 살피기, 그 후 내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저 단어는 꺼내지 않기를 개인적으로 다짐하게 하는 말이었다.

이다음으로는 상대적으로 이직 경험을 많이 했던 작가님이 많이 들었던 말 중에 '원래 그렇다'라는 말에 대한 이야기도 유독 기억에 남는데, 어디를 옮기더라도 다른 곳도 다 마찬가지라는 말을 많이들 쉽게 하는데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이 끔찍하니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선택하고 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저런 힘 빠지는 말을 위로랍시고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니 개인적으로도 하나도 도움이 안 되었던 것같다는게 결론이었다.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타부타 하지 않고 '원래 그렇다'라는 힘 빠지는 말로 조언을 건네는 건 섣부르다는걸, 몇몇의 사람들에게 꼭 프린트해서 전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곳도 다 마찬가지라면 우리는 왜 직장과 학교를 옮기고 이사를 가는 것이며 노력하는 것인지 이 말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꼰대', '어린이', '마기꾼',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오랜만에 오는 지인의 연락' 등 일상에서 혼잣말로 이런 것쯤은?이라고 생각할법한 이야기가 작가님의 생각을 담아 글로 표현되고 있어서 굉장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다른 사람들을 너무 배려하는 것도,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도,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것도 힘든 사회생활에 대한 사회생활 선배로서의 좋은 조언과 덕담이 꼰대기없이 적혀져 있어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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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6 0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여러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요

러블리땡 2021-11-06 23:43   좋아요 1 | URL
옙 ㅎㅎ 눈치 챙기며 살아야겠다고 느꼈어요 ㅎㅎ 많은 사람들이 다 비슷하게 느낄것 같아요 ㅎㅎ

Conan 2021-11-06 0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꼰대기 없다는 말에 흥미가 생깁니다.~

러블리땡 2021-11-06 23:43   좋아요 0 | URL
막 혼날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글이 아니어서 그렇게 생각이 들었던것 같아요 ㅎㅎ

새파랑 2021-11-06 0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랬어‘ 이런 류의 말은 그렇게 위로가 안되는거 같아요. 상대방의 고민을 약간 낮춰보는 기분? ‘원래 그래‘도 그렇고 ㅋ 왠지 공감이 가네요~!!

러블리땡 2021-11-06 23:45   좋아요 2 | URL
그쵸 ㅎㅎ 위로를 위해서는 말 한마디 더 해주는거보다 마냥 들어주는게 더 좋을것 같다고 다시 한번 느꼈어요 ㅎㅎ 나이드니까 말만 많아지는걸 스스로 느끼고 있던 차에 제동을 걸어주는 글이었어요 ㅎㅎ

Kletos 2021-11-06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재밌네요 ㅎㅎ

러블리땡 2021-11-06 23:46   좋아요 0 | URL
사실 제목에 끌렸어요 ㅎㅎ
 
오네 산부인과
고다 도모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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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쓰구오는 산부인과 의사이자 주인공이다.
9개월 전 자신이 돌보던 산모가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건 이후 죄책감으로 은둔생활을 하다 어머니의 권유로 오네 산부인과로 이직하게 되었다.

오네 산부인과는 일본어 그대로 직역하자면 언니 산부인과라는 친근한 명칭만큼이나 독특한 직원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L.G.B.T라는 프렌들리한 클리닉이었다.
L는 레즈비언, G는 게이, B는 바이섹슈얼 T는 트랜스를 뜻하는 말로 게이인 원장, 조산사 오케이는 트랜스젠더, 젊은 의사 란마루는 호적상은 여성이지만 정신은 남자인 FTM, 조산사 에리카는 레즈비언이었다.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모두 자신들의 일에는 프로페셔널한 모습들에, 아직까지도 과거의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의기소침한 쓰구오는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보여졌다. 사실 오네 산부인과 관점으로 쓰구오 역시 스트레이트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바로 태아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며 쓰구오가 점차 자신의 어릴 적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과거 사건과 관계된 트라우마를 오네 산부인과의 사람들과 함께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었다.

참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환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되게 웃기는 말투를 일부러 쓰는 원장님, 그리고 트랜스젠더 오케이씨는 웬만한 남자들보다 듬직한 사람인데 쓰구오와 전 직장에서 만난 적 있었단 설정이 굉장히 뻘쭘하고도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소심한 쓰구오가 좋아하는 노래까지 함께 부르게 되는 오네 산부인과 적응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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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05 09: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상당히 독특한 산부인과네요 ^^ 완전 웃길거 같아요~!

러블리땡 2021-11-06 01:39   좋아요 2 | URL
넵 완전 재밌었어요 다들 캐릭터가 뚜렷해서 일본책 읽다보면 이름이 참 헷갈리던대 이건 헷갈릴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대략 굉장히 웃겼단 뜻입니당ㅋ😆🙂)

그레이스 2021-11-05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중그네 생각나는 내용!
우리나라에서는 산부인과 하면 순풍산부인과죠^^

러블리땡 2021-11-06 01:40   좋아요 1 | URL
엇 진짜요 그 공중그네랑 비교하면 딱일것 같네요ㅎㅎ 저 그 책도 굉장히 재밌게 봤거든요ㅎㅎ 😄
 
도망치고 싶을 때면 나는 여행을 떠났다
박희성 지음 / 프롬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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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자신을 소심하다고 표현했다.

왜소한 몸, 작은 목소리 등 소심한 사람을 묘사하는 말 대부분이 해당되는 사람, 이런 사람도 여행을 자주 다니고 거기다 아주 잘 다닌다니 궁금해졌다.

작가님은 굉장히 솔직했는데 자신처럼 소심하면 여행의 폭도 좁아진다고 했다. 여행 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눈치를 본다거나 남과 함께해야 하는 것들 중에 포기한 것들이 있다고 털어놓았는데, 그럼에도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고 소신껏 여러 나라를 오간 이야기들이 값지게 담겨 있었기에 기대감을 충족해 줬던 책이었다.

우선 처음에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그때마다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무너지는 댐처럼 멘탈에 균열이 생길 때마다 보수를 위해 여행을 선택하고, 여러 나라의 여러 풍경과 값진 추억으로 멘탈을 회복하고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여러 장면에서 보였다. 굉장히 자신 없고 두려운 모습도 보였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섬세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온갖 여행지의 빠듯한 일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휴양지를 느긋하게 즐기며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그리고 태양빛이 뜨겁게 쏟아지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알람 없이 저절로 눈 떠지는 휴양지에서의 하루. 아침은 황제처럼 든든하게 채우고, 술을 못해도 빛나고 푸르른 하늘을 보며 절로 맥주 한 캔을 마시게 되던 여행지에서의 하루가 머릿속에 그려지듯 담아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는 자신의 방랑벽에 관한 이야기, 그리스식 커피 이야기를 담은 커피와의 여행이야기와 인도 여행에서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했던 일화를 담은 디지털 디톡스의 경험,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경험들 등 여행자로서의 이야기와 솔직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작가님만의 느낌을 담고 있어서 편안했고, 솔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자신의 내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여행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의미로 여행을 떠나고 싶게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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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4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른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러블리땡 2021-11-04 23:3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래도 여러가지가 점차 좋아지는것 같아 보이니까 조만간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ㅎㅎ

오거서 2021-11-05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제 뉴스에서 대한항공이 하와이행 운행을 재개했다고 하더라구요. 18개월 동안 중단되었다고. 머지 않은 것 같아요 ^^

러블리땡 2021-11-06 01:41   좋아요 0 | URL
오...진짜 위드 코로나 실감나네요ㅎㅎ ☺
 
과학은 지금 - 전 세계가 주목하는 2022 최신 연구 트렌드
국립과천과학관 지음 / 시공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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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멀고도 가깝게 느껴지는 요즘.
책 한 권으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책이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만난 신간이었다. 뇌과학, 인공지능, 반도체와 생명공학, 우주과학, 바이러스와 백신, 노화, 기후변화 등 요즘 가장 핫한 주제 25가지를 담아낸 필독서라는 소개가 읽기 전부터 눈에 띄었다.
 
많은 이야기를 가장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였으나, 솔직히 어려운 것도 없지 않았다. 과학은 멀고도 가까운 분야이기에 일상생활에 밀접한 정보들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백신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을 통해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한번 싸웠던 세포를 기억해내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면 저항을 준비하는 B 세포와 T 세포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현재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코로나19바이러스 항원 유전자를 mRNA 형태로 주입하여 체내 항원 단백질을 만들고 면역을 유도하는 기전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띄었는데, 이중나선으로 된 DNA와 달리 RNA는 온도와 체내 환경 변화에 민감하여 화학적 변형이 쉽게 오는 단점 때문에 백신들의 냉동 보관시설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바이러스 벡터 백신인 스푸트니크 v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의 항체 형성 방식과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하여 항원 단백질을 주입하는 방식인 노바백스 백신의 방식,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사백신과 생백신의 전통적 백신 제조법을 따른 중국의 시노팜 백신에 대한 차이점과 각 백신들의 기전들이 기억에 남았다.

이외에도 뉴럴링크에 대한 설명에서는 인간의 뇌에 직접 이식한 뉴럴링크로 컴퓨터에 대한 접근 속도가 직접적으로 빨라져 인간 자체의 성능이 월등해질 거라는 sf소설같은 설명이나, 점점 더 사용이 늘어나 생활 곳곳에서 활용도를 높이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 실제 2단계 이상의 실용화 중인 자율 주행차와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현재보다 더 넓게 실용화가 될 것인가에 대한 현재 연구 결과의 상황들을 통해 우리가 미래에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조금이나마 상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유전자 편집에 대한 이야기, 우주 탐사에 대한 현재 진행 상황들, 아레시보 천문대를 이어갈 앞으로의 천문대의 미래에 관한 설명들, 노화와 싸워 이기기위한치열한 연구진의 노력들, 날씨의 인공적 조절의 과제들과 인간의 무분별한 발달 뒤에 잊지말아야할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 그리고 우주에 관한 이야기까지 폭넓은 과학 지식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서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유익하고 나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되지 않게 정확한 팩트로 필요한 정보만 쏙쏙 골라 담아 전달해낸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변하는 과학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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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자를 쓴 여자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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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굴곡이라곤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민,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도전한 공무원 시험을 4년째 낙방한 것만 빼면 불운한 일도 별로 없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 남편을 만났고, 자연스레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며, 2년 만에 결혼하고 이듬해에 사내아이 은수를 갖게 되었고, 모든 행복은 그녀의 곁에만 머무는듯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수터에서 송장 나비를 만나고 3살 은수에게 송장 나비에 대해 설명하던 그때, 불운한 기운 하나가 쑥하고 지나간 걸 느끼게 된다. 사전에는 없는 단어 뜻을 가진 송장 나비, 보릿고개 이후 봄에 죽어나간 송장들 곁에 보였던 나비라는 뜻이 좋지 않다는 어릴 적 아버지의 설명이 떠올랐고, 그렇게 약수터에 불길한 기운의 송장 나비가 휘젓고 지나간 이후에 사건이 벌어진다.
산책으로 유모차에 은수를 데리고 약수터에 올랐다가 갑작스러운 요의에 아이를 유모차에 홀로 두고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 아이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끝으로 은수는 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여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민은 은수의 죽음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다. CCTV도 없어서 범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엄마였던 은수는 그날 무언가가 커튼 뒤에 숨어서 자신을 조롱하는 존재가 있었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은수를 해쳤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정신과에서 상담치료와 최면 치료를 받았으나 은수의 집착은 끝날 줄 몰랐고, 집안 한 곳이 증거 아닌 증거품으로 가득 찰 때까지 아이를 잃은 엄마의 행동은 계속되었다가, 장마로 약수터 등산로 입구가 무너지고 흙탕물화 되면서 민은 점점 안정을 찾게 된다.

은수가 죽고 3년째 되던 해, 남편과 민은 크리스마스이브 날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낡은 교회 앞에 바구니에 담긴 사내아이와 고양이를 함께 발견하게 되고, 남편의 적극적 권유로 입양을 하게 된다.
아이를 잃고 선물처럼 나타난 아이지만 입양한 동수란 아이와 아이의 고양이는 그녀를 살갑지 않았고, 갈수록 뭔가 의뭉스러웠으며, 그 둘의 행동에 가라앉았던 민의 의식이 다시 날카롭게 변해간다.
계속 키워오던 반려견 무지와의 사건과, 한밤중 아파트 헌 옷 수거함에서 낯선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자신의 집을 주시하던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어머니의 의문의 사망사건 등이 겹치며 평정심을 찾아가던 민의 한 가닥 남은 이성을 끊어지게 하고 망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민의 시점이 계속적으로 그려진다.
 
우선 민은 망상장애로 보이진 않았다. 확실히 그녀가 의심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걸로 보였고, 자신이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검은 모자 여인은 확실히 그녀 곁에 계속 맴도는 것이 느껴지는듯했다. 하지만 정신병원을 탈출하고 나서 그녀가 보는 것은 확실히 현실인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읽는 동안 내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줬었다.
현실과 망상 사이, 그리고 마지막은 자신이 보았던 검은 모자 여인이 되어가는 민의 모습이 가장 충격적인 결말로 느껴졌던 것 같다. 처음과 끝,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 위아래가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는 이야기란 뜻을 완독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실재와 허구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깨뜨리는 상황극에 한참을 몰입하고 나니 유독 현실감이 느껴지게 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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