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볼일 때문에, 토요일에 연구실에 나왔다가 며칠전 주문한 책 두 권을 받았다. 살레클의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도서출판b)과 스탕달의 <사랑론>(펭귄북)이 그것인데, 스탕달의 책은 관심있는 주제와 관련하여 읽어볼 필요 때문에, 그리고 살레클의 책은 이미 (이 카페에서) 여러 차례 예고되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먼저 읽게 된 건 살레클의 책이었다. 1장만 잠깐 읽고 나서 다른 볼일을 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혹은 생각만큼) 재미있어서(!) 반나절을 날려버렸다(그래봐야 고작 1장을 꼼꼼하게 읽은 것인데!). 뒤늦게라도 다른 볼일에 손을 댈까 하다가, 번역과 관련한 몇 가지를 지적해둔다.
미리 전제할 것은 살레클의 책이 매우 쉽고(라캉이 직접 인용되는 부분들만 빼면) 재미있게 씌어진 책이라는 점이며, 번역 또한 무난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자/역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완벽한 번역이란 없는 법이고, 이 신간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저런 흠들이 눈에 띄는데, 그다지 대중적일 것 같지는 않지만(쉽다고 얘기한 건 상대적일 뿐이어서, 대학 초년생들이 읽기에는 버거울 듯하다), 개정판을 찍는다면 지적한 대목들이 일부라도 수정되기를 기대한다. 이 자리에서 지적할 부분은 1장 "당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당신을 사랑할 수 없어"에만 국한되며, 다른 장들에 대한 검토는 12월로 넘긴다.
1장의 내용은 두 편의 장편소설 <남아있는 나날>, <순수의 시대>와 단편 <뮤즈의 비극>에서의 '사랑'을 분석하는 데 전적으로 할애돼 있다. 두 장편은 모두 우리말로 번역돼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출시돼)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낯설지 않지만, <뮤즈의 비극>은 생소한 작품이다(단편이라니까 번역되어도 좋을 거 같은데). 번역에 대한 지적/의견은 번역본의 쪽수와 원서 (Per)Versions of Love and Hate(Verso, 2000)의 쪽수를 나란히 병기하면서 제시하도록 하겠다.
(1)국역 23쪽(원서 10쪽). 먼저, 사소한 것. "그는 타인들이 알아차릴 곳에서 스스로 행동에 연루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불능인 것이다."/"His actions are impotence because he is incapable of engaging himself in the action..."에서 그는 '연루시키다engage'의 능동적 주어이기 때문에, 수동형인 '연루되다'로 옮기는 것은 '불능'의 의미를 약화시킨다. 조금만 바꾼다면, '스스로를 연루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정도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중요한 것. 이어지는 대목에서 "보통은 사고의 내용에 부착되는 쾌락이 사고 행위 그 자체로 옮겨지는" 다음에, and 이하의 절이 누락됐다. 누락된 부분은 "and the satisfaction derived from reaching the conclusion of a line of thought is experienced as a sexual satisfaction."이다.
(2)국역 25쪽(원서 11쪽). "스티븐스에게 있어서 이 자리는 집사의 복무 원칙들/코드이다.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품격이다." 'dignity'를 품격이라고 옮기건 품위라고 옮기건 별 차이는 없다. 그런데, 같은 쪽에서 이후에 ‘품격’이라고 계속 옮겨진 단어는 'decency'이다. 나는 둘을 구별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맥상 'decency'는 ‘체면’으로 옮기는 것이 나을 듯싶다. 그리고 다음문단에서 ‘영국다움(Englishness)’은 ‘영국인다움’이 맞고, ‘억제된 세계(suppressed world)’는 ‘억압된 세계’라고 옮기고 싶다. 사소한 거지만, 이어지는 26쪽의 ‘범인(culprit)’은 ‘죄인’이나 ‘피고인’이 어떨까 싶다.
(3)국역 29쪽에서. 3행의 ‘objet petit a’의 원어를 그대로 노출시켰는데, 우리의 번역 관행에 부합하는 거 같지 않다. ‘오브제 프티 아’라고 음역하고 괄호안에 넣어주어야 할 것이다. 52쪽의 그리스어 ‘ouden’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30쪽 인용문에서, ‘그곳이 어떤 곳인 질 알고 있지’는 띄어쓰기가 잘못돼 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고 있지’라고 고쳐져야 한다. 계속 사소한 걸 지적하면, 30쪽에서 ‘크나큰 사랑’은 'great love'를 번역한 것인데, 다른 곳에서는 다 ‘위대한 사랑’으로 옮겼으므로 (‘위대한’이건 ‘크나큰’이건) 통일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32쪽 하단부에서는 ‘엘렌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서 역시 'great'가 빠져 있다. 별거 아니지만, 가급적 모든 단어를 번역하는 역자의 번역습관을 고려하면, 실수가 아닌가 싶다. 따라서, ‘엘렌에 대한 자신의 위대한 사랑’으로 바뀌어야 한다.
(4)국역 33쪽(원서 16-7쪽). 스탕달의 <적과 흑>에 대한 내용인데, 사소한 거지만, ‘일정한 질서로(in a certain order)’는 ‘일정한 순서로’로 옮기는 게 어떨까 싶고(적어놓고 보니까 별 차이가 없긴 하지만), 조금 중요한 건 그 문단 마지막 대목. “담론적 제약들 배후에 숨어서 담론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그 어떤 무의식도 없다.” 원문은 이렇다. "- there is no unconscious hidden behind the discoursive constraints that 'express' themselves in the discourse." 여기서 'express'의 주어는 (단수인) ‘무의식’이 아니라, (복수인) ‘제약들’이다. 그래서 다시 옮기면, “담론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담론적 제약들 배후에 숨어 있는 무의식이란 없다.”
(5)국역 34쪽 하단부, 그리고 36쪽 인용문, 46-47쪽 등에서. 국역본에서는 동사 ‘mark’를 전부 ‘표식하다’로 옮겼는데, 우리말로 ‘표식하다’란 동사는 없다. 그리고 명사 ‘표식’은 ‘표지’와 같은 뜻으로 'index'를 가리킨다. 왜 역자가 ‘표시하다’란 말 대신에 부자연스러운 데다가 뜻도 맞지 않는 ‘표식하다’를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35쪽의 ‘향유’는 물론 주이상스(jouissance)를 옮긴 것인데, 이탤릭체로 된 주이상스를 그냥 ‘향유’라고 옮긴 것은 다소 불친절하다. 원어를 병기해주거나 적절한 설명이 각주로 첨부됐어야 하지 않을까. 나라면 ‘주이상스’라고 그대로 음역하거나(살레클의 방식이다),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향락’으로 옮기는 것을 택하겠다.
(6)국역 35쪽 끝문장. “사랑은 말 속에서 단어가 실패하는 바로 그 지점을 향한다.” 원문은 "Love addresses that point in speech where the word fails."(18쪽) 여기서 ‘단어’라고 옮긴 건 내 생각에 ‘그 단어(love라는)’이다. 그게 아니라면, 단어들(words)이라고 복수형이 와야 하지 않을까 한다. 'speech'는 흔히 ‘발화’로 번역되지만(역자도 아는 바일 것이다), 더 쉽게 ‘말’이라고 옮긴 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발화’라고 옮기는 순간 독자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진다. 그건 ‘기표(signifier)’도 마찬가지이다. 하긴 ‘라캉’이니 ‘큰 타자’니 하는 것부터가 독자에 대한 ‘모독’이긴 하지만...
(7)국역 37쪽 중간에 영화 <피아노>를 다룬 부분에서, ‘일정한 한 번의 만짐(a certain touch)에 몇 개의 피아노 건반이 해당하는가’. 이건 전형적인 번역투인데, ‘한 번 만지는 데 몇 개의 피아노 건반이 해당하는가’라고 옮기는 게 이상할까? 아니, 영화 내용을 고려하면, "어느 부위를 만지는 건 피아노 건반 몇 개에 해당하는지"로 옮겨야겠다. 그리고 39쪽 마지막 행의 ‘난포착적(elusive) 특성’이란 것도 현학적인 번역의 사례이다. ‘elusive’라고 원어까지 병기했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단어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멋쩍다. ‘난포착적’이란 말도 우리말이 아니고. 그냥 ‘포착하기 힘든’이라고 풀어주든가(더 풀면 ‘붙잡기 힘든’), ‘회피적’이라고 옮기는 게 어땠을지. 그리고 40쪽에서 “애너튼 부인은 ‘선들이 색의 가치를 갖는 오래된 프린트 가운데 하나’와 같은 존재로서 묘사되었다”고 했는데, 까다롭더라도 이 비유는 의역해줘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원문은 "one of those prints where the lines have the value of color"(21쪽)인데, 일단 ‘프린트’는 ‘인쇄물’(여기서 다루어지는 <뮤즈의 비극>은 책과 관련된 내용이다)이고, 'lines'는 작품의 ‘행(간)’ 'color'는 개성이나 체취 같은 걸 뜻하기도 한다. 네이티브 스피커의 조언을 구했으면 좋았을 듯싶다.
(8)국역 41쪽(원서 22쪽)의 소설 <뮤즈의 비극> 인용문. 이론서 번역자들이 대개 소설 번역에는 서툴기 쉬운데(나부터도 그렇지만), 이 인용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그는 글을 쓰려고 했다. 왜 그의 재능 속에 있는 위대한 어떤 것을 행하지 않겠는가?”라고 된 걸 보자. 원문은 "Of course he meant to write - why not do something great in his turn?" 먼저, 'turn'을 굳이 어려운 말로 ‘재능’이라고 옮긴 것이 문제이다. 그런 뜻이 있는 줄은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알았는데, 모르는 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 'in his turn'은 숙어 그대로 ‘그의 차례’라는 뜻이다. 그리고 'do something'에서의 'do'는 'write'를 받는 대동사 아닌가? 다시 번역하면, “물론 그도 글을 쓰려고 했다. 그라고 해서 왜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하겠는가?”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대목의 “적어도, 그의 최선을 말이다. 처음부터, 그의 것이 바로 그 최선의 것이어야 한다는 결의를 가지고서 말이다.”/"His best, at least; with the resolve, at the outset, that his should be the best." 우리말 번역으로는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는데, 다시 번역하면, “처음부터 그의 작품이 최고의 걸작이 되어야 한다는 결의를 갖고서 시작한다면, 적어도 자신의 최고작은 쓸 수 있을 것이다.”
(9)국역 41쪽 하단에서 “예술적 천재, 그녀가 감탄하는 대상, 가능한 어떤 사랑”이 병렬돼 있는데, 모두 ‘사람’을 뜻하므로 ‘가능한 어떤 사랑(a possible love)’은 ‘가능한 연인’(‘연인이 될 만한 사람’) 정도로 옮겨지는 것이 좋을 듯하다. 43쪽에서. 이건 오역이라기보다는 선택의 문제인데, 역자는 ‘woman’은 모두 ‘여자’로 옮겼다. 나는 ‘여성’이라는 역어를 선택하고 싶은데, 라캉 정신분석학에서의 'woman'은 생물학적 젠더와는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성별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성차화(sexuation)의 결과인데, 이것은 생물학적 성과는 다르다. 우리가 갓 태어난 아이를 (“남성이야, 여성이야”라고 묻지 않고) “남자(애)야, 여자(애)야”라고 묻는 것처럼, 우리말에서 남자/여자는 자연적인, 생물학적인 성(sex)을 가리킬 때 더 적합하다. 거꾸로, 정신분석학에서의 성(sexuality)은 남성/여성으로 구별해서 표기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그래서 “여자는 없다”라는 라캉의 명제는 “여성은 없다”로 옮기는 것이 더 타당하다. 때문에, 온통 ‘여자’로 옮겨진 대목들은 나로선 읽기에 불편하다. 아울러 역자에게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10) 43쪽 하단. 인명의 문제인데, ‘캐서린 밀로트(Catherine Millot)’는 프랑스인이므로, 관례상 ‘카트린 미요’쯤으로 번역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48쪽의 ‘에릭 로렌트(Eric Laurent)’도 마찬가지인데, ‘에릭 로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47쪽의 ‘조안 리비에르(Joan Riviere)’는 여성인데, ‘그에게 있어’라고 해서 남성으로 받았다(원문에선 관계사 'for whom'으로 처리돼 있다). 당연히 ‘그녀에게 있어서’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46쪽부터 나오는 ‘남근(phallus)’. 역시 일반인이 흔히 알고 있는 (프로이트식의) ‘남근(penis)’과 이 ‘팔루스’로서의 ‘남근’이 갖는 차이점에 대한 설명이 아쉽다. 일반 독자들이 이 부분의 논의를 따라가는 건 매우 힘들어 보인다.
(11)국역 49쪽 중간에서, ‘애너튼 부인의 파토스는’이라고 시작되는 부분. 이것은 물론 'The pathos of Mrs. Anerton,'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pathos’는 우리말에서 ‘파토스(=정념)’가 아니라 ‘비애(감)’란 뜻의 ‘페이소스’이다(‘고통’이란 뜻도 함축). 50쪽 하단에서, “그녀가 왜 그를 거부했는가”는 "그녀가 왜 그를 거부하지 않았는가(why she did not reject him...)"(원서 27쪽)의 오역이다. 52쪽엔 (나 혼자 생각에) 재미있는 번역이 나오는데, “애너튼 부인은 그녀가 실비아가 아니라는 것을 폭로함으로써”에서 ‘것’은 'truth'를 옮긴 것이다. 당연히 ‘진실’이라고 옮기면 될 텐데, 다른 곳들에서 ‘truth’는 전부 ‘진리’라고 번역했기 때문에(여기서는 어색하다) ‘진실’이라고 옮기는 것이 꺼려진 것은 아닐까?(나의 추측은 진실일까? 그냥 ‘것’일까?) 중간에 “소크라테스가 스스로를 사랑받는 자로서 인정하여 사랑을 되돌려주기를 거부한 것은”이라고 돼 있는 부분은 중의적이어서 오독하기 쉽다.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가 스스로를 사랑받는 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사랑을 되돌려주기를 거부한 것은”이라고 하는 게 나을 듯하다.
(12)국역 53쪽(원서 29쪽).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 얘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나는 바로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할 여자를 원하지 않는다” 다음에 어찌된 일인지 한 문장이 누락됐다. 아마도 편집과정에서의 실수인 듯싶은데, 이건 좀 치명적이다. 이 대목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역전의 논리(reversed logic)’(‘전도된 논리’ 나을 듯)가 성립하지 않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빠진 문장은 이렇다. "Finally I would like to meet one that will love me for my millions.(궁극적으로 나는 나의 재산 때문에 나를 사랑해 줄 여성을 만나고 싶다.)"
마지막으로 옥의 티. 57쪽의 각주 14번에서 <순수의 시대>의 국역본 서지가 누락됐다. 곧바로 쪽수만 나와 있는데, 국역본은 <순수의 시대>, 오리진, 1993이다.
몇 가지 지적하는 데 꼬박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혹 역자를 포함하여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기탄없이 제시해 주시기 바란다. 나도 한 수 배우게 되면, 그걸로 교정료를 대신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