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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와 예일학파 - 모더니티총서 7
페터 지마 지음, 김혜진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문예미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페터 지마의 이 책은 데리다의 해체론과 '예일 마피아'라 불리는 그 미국식 적용(예일학파)에 대한 가장 뛰어난 입문서로서 읽힌다. 지마는 이미 여러 저작들을 통해 문학이론 분야에서의 뛰어난 '지도 제작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왔는데, 그가 그리고 있는 해체론의 지도 또한 명쾌하고 일목요연하다. 게다가, 막힘이 없는 훌륭한 번역에도 크게 빚지고 있을 테지만(몇 군데 오타가 흠이지만), 재미있다!
물론 이 책은 대중적인 교양서는 아니다. 데리다의 몇몇 저작이 국내에 소개돼 있지만, 아직까지도 해체론은 일종의 '막가파식 무정부주의'로 치부되기도 한다. 게다가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예일학파 구성원들의 저작은 해롤드 블룸의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입문서이긴 하지만, 문학비평과 이론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난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읽기'이론으로서의 해체론이란 게 어떤 것이고, 그것은 어떤 사상적 계보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이 개개 비평가들에게 어떤 식의 변주를 얻고 있는가에 대해 약간의 흥미를 갖고 따라가 본다면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먼저, 해체론은 해체(구성)론이다. 그건 일종의 번역론이고, 언어의 이동건축술이다. 번역론으로서의 해체론은 번역불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칸트미학의 어법으로 표현하자면, '예술작품은 개념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예술작품에 대한 개념적 이해 혹은 규정은 반드시 그 잉여(나머지)를 남기게 된다는 것. 따라서 모든 이해는 불충분하며 언제나 아포리아(불가해한 곤경)에 직면하게 된다. 그 아포리아를 데리다는 윤리적인 유희의 공간으로 만들고 폴 드 만 같은 비평가는 (이해의) 마비의 장소로 지목한다. 이러한 해체론의 선구적 계보로 지마가 제시하는 것은 칸트미학과 슐레겔의 낭만주의, 청년헤겔파, 그리고 니체이다. 사실 이러한 해체론의 윤곽은 그의 주저 <문예미학>에서 이미 암시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지마는 해체론적 전략에 비교적 호의적이면서도 때론 비판의 칼날을 감추지 않는다. 그 비판은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텍스트사회학적 입장에서 도출된다. 저자는 예술작품의 미적 자율성을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사회학적 규정과 양립할 수 있음을 줄곧 논증해 왔는데, 해체론은 그러한 사회학적 규정 혹은 사회 비판(헤겔과 하버마스 계보)에 무기력하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그리하여 저자인 지마에게서 문예미학, 혹은 문학이론은 칸트와 헤겔 사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해체론과 비판이론 사이의 변증법적 지양이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마는 이 책에서 아도르노의 문학론을 이전의 저작들에서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지마는 몇 년 전에 방한하여 국내 대학에서 특별강연을 하기도 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의 독어강연을 들으며 그때 받은 인상은 그가 훤칠하면서도 소탈한 유럽 신사라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인상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다. 더불어 오스트리아(중부유럽의 중립국)에 있는 대학에 오래 재직하고 있으면서 독어/독일철학, 불어/프랑스철학에 동시에 정통하다는 점이 그의 중립적인(지양적인!) 문학이론을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