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의 아침이 밝았다. 스위스문학기행 9일차이고 마지막 날이다(10일차는 비행기에서 맞는다). 일행은 대부분 조식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거나 짐정리를 하는 시간. 1시간반쯤 뒤에는 전용버스로 숙소를 떠나 공항으로 향하게 된다(일부는 또다른 여정을 위해 취리히 중앙역으로 간다고 한다). 올 때처럼 루프트한자를 타고서 귀국길에 오르게되는데 올 때와는 달리 뮌헨 공항을 경유하게 된다. 취리히를 떠나 인천공항에 안착하기까지는 15시간쯤 소요되는 것 같다. 올 때는 들뜬 마음이지만, 돌아갈 때는 가벼운 마음이다. 임무를 완수하고 귀대하는 심정이랄까.

공식적인 8일간을 돌이켜보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루하루의 시간이 복기가 가능할 만큼 충실한 시간이기도 했다. 토마스 만의 무덤에서 조이스의 무덤까지(사실 두곳 다 취리히에 있다)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전 문학기행까지 포함하면 토마스 만의 장소로 뤼벡-뮌헨-베네치아-다보스-취리히를 둘러보았고, 조이스의 경우는 더블린-파리-취리히를 되밟게 되었다. 헤세의 경우에도 고향 칼프에서 생을 마친 몬타뇰라까지. 그리고 니체의 실스마리아. 문학 독자이자 강사로서 최소한 입막음은 했다고 여겨진다.

더불어 취리히란 도시가 특히 1차세대전시 예술가(다다이스트)와 정치적 망명자들(뷔히너와 레닌)에게 가졌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고(다다는 파리로 건너가 빈의 정신분석과 합세해 초현실주의를 자극하고 취리히를 떠난 레닌은 1917년 4월테제를 발표한다) 스위스성과 스위스 모델에 대해서도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스위스는 연방제 국가의 좋은 모델이다). 그리고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의 풍광과 아름다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스위스문학기행을 통해서 얻은 것들이다.

문학기행은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예정인데, 일단은 일본(1월)과 오스트리아(4월)가 확정돼 있고 중국(10월)도 준비중이다. 독서와 배움에 끝이 없다면 문학기행의 여정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사진은 숙소에서 보이는 창밖 아침 풍경(중앙역이 가까이 있어서 철로와 기차가 보인다). 그리고 벽을 장식하고 있는 스위스의 풍경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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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모야 2024-10-30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죄송하지만, 문학기행 어디서 신청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로쟈 2024-10-30 17:51   좋아요 0 | URL
‘펀트래블‘ 여행사(https://funtravel.kr/main/index.html)에 공지됩니다.

나지모야 2024-10-3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취리히에서 마지막 만찬을 갖기 전 우연히 대형서점에 들렀다(문학기행의 마지막 숙박일 저녁은 항상 한식당에서 먹는다. 간혹 한식당의 요리나 반찬이 수준급이어서 놀라는 일도 있으나 보통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취리히 한식당도 그렇다) 오렐퓌슬리(Orell Füssli). 체인서점 같은데 번화가에 위치한 제법 규모 있는 서점이었다. 이번 문학기행에서 몽트뢰에서 들렀던 작은 서점에 이어서 두번째.

영어와 불어책도 없진 않지만 사실 대부분이 독어책이어서 나로선 구매보다 구경에 방점을 두었다. 집합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 발견한지라 바쁘게 둘러보았는데, 인상적인 것은 독어판 한강의 소설이 한 코너를 장식하고 있을 뿐더러 특히 <채식주의자>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는 점(<채식주의자> 외에 <그대의 차가운 손>과 <소년이 온다>가 한강 코너를 채우고 있었다). 전해 듣기에, 영어판은 품절됐다고 한다.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올려놓는다. 자유시간에 시간이 맞지 않아 타지 못한 취리히호의 유람선 사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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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10-2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독일 베스트셀러 1위가 한강 소설이라니, 감격이네요. 헉, 독일이 아니라 취리히네요. 이건 더 놀랍네요.
 

스위스문학기행 공식일정이 모두 끝나고 자유시간을 갖고 있다(쇼핑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도심의 한 골목광장 벤치에 앉아 나도 휴식을 취하는중. 오전에는 취리히 구시가와 그로스뮌스터 교회(종교개혁가 츠빙글리의 교회), 그리고 골목길에 나란히 붙어 있는 레닌하우스(레닌이 1916-17년에 세들었던 집)와 뷔히너하우스를 보았다(보았다는 말이 모호한데 집의 현판을 보았다). 취리히의 레닌에 관해 짧게 소개.

레닌의 망명지이기도 했지만 취리히는 다다이즘의 산실이기도 했다. 다다와 관련된 카페와 카바레 볼테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바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제임스 조이스로 향했다(우연히 고트프리트 켈러가 어릴때부터 서른살 때까지 살았다는 집의 현판을 보게 돼 다행이었다.켈러 공원 방문을 대체할 수 있었다). 더블린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 단골 펍을 그대로 옮겨왔다는 식당이다. 조이스를 떠올리며 아일랜드산 기네스 맥주와 요리를 즐겼다(식사도 맛있는 편).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트램을 타고서 도심에서 좀 떨어진 묘지를 찾아갔다. 조이스와 가족이 묻혀 있는 묘지로 안내판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토마스 만의 무덤을 찾으며 시작된 일정이 조이스의 무덤 방문으로 종료되었다). 조이스의 죽음과 함께 그의 문학이 갖는 현재적 의의에 대해 짧은 강의을 하고 기념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로써 계획했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기내 일박을 빼면 이제 마지막 저녁식사와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일박을 남겨놓고 있다. 10번째 문학기행이 무탈하게 마무리되고 있어서 다행스럽다.

무탈귀국하면 휴식 대신 빼곡한 강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스위스의 기억과 경험이 또 추억으로 남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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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취리히로 향하는 중이다. 휴일이기도 하지만 가을축제 기간이기도 해서 바젤 도심은 시끌벅적하다. 오전에 바젤미술관을 찾기 전에 들른 곳은 바젤대학이다. 유럽의 대학들처럼 바젤대학도 건물이 이곳저곳 흩어져 있다고 하고 우리가 찾은 곳은 본관건물이었다. 미술관과의 동선을 고려한 것으로 간단히 바젤과 연관된 학자들을 상기했다. 부르크하르트와 니체, 칼 융 등.
(...)

스위스를 한바퀴 돌고 다시 취리히다. 일요일인 오늘은 ‘미술관 데이‘였는데 아마도 스위스를 대표할 만한 미술관 두 곳을 하루에 방문했다. 바젤미술관과 취리히미술관(쿤스트하우스)이다(로댕의 걸작 조각들을 하루에 만날 수 있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바젤에는 ‘칼레의 시민들‘이, 그리고 취리히에는 ‘지옥문‘이 서 있었다). 내일(월)은 휴관일이어서 불가피하게 하루에 몰아서 진행하게 되었는데. 짧아도 두 시간은 그림들을 보러 여러층을 다녀야 하기에 미술관 투어는 많은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오늘도 바젤미술관을 둘러보는데 두 시간, 그리고 취리히 미술관 관람에 두 시간이 소요되었다(취리히미술관은 소장 작품이 많아서 당초 3시간 관람을 예정했으나 취리히의 교통체증으로 관람시간을 줄여서 진행했다). 바젤에서는 역시나 홀바인의 그림이 인상에 남았고, 취리히에서는 자코메티의 조각과 회화(몇년전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자코메티 특별전에서보다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네의 수련 연작과 프란시스 베이컨의 3부작 등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몇 편의 그림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미술관 관람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해가 진 뒤에야 취리히미술관을 빠져나와 제임스 조이스의 묘지 방문은 내일로 미뤄졌다. 취리히 도심투어 이후 제임스 조이스 펍에서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묘지 방문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자고일어나봐야 알겠다. 아마도 묘지방문이 스위스문학기행의 마지막 공식일정이 될 듯싶다...

(아래 그림은 홀바인의 ‘무덤속의 그리스도‘를 나눠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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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의 아침이 밝았다. 구름이 많이 낀 날씨이지만 어제 튠에서 일찍 환해졌는데 간밤에 서머타임이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상당수 유럽국가에서 3월하순부터 10월하순까지 1시간 당기는 서머타임제를 실시한다. 어제는(지난밤은) 그게 해제되는 날이었는데(마지막주 일요일새벽 3시가 2시로 돌려짐으로써 1시간이 늘어난다) 덕분에 같은 시각에 일어난다면 한시간 더 잔 게 된다. 덕분에 피로가 좀더 풀린 느낌.

라인강변의 바젤은 스위스에서 취리히와 제네바 다음으로 큰 도시다(로잔과 베른이 그 뒤를 잇는다). 바젤을 찾는 목적은 다양하겠으나 이번 문학기행에서는 바젤미술관에서 홀바인의 그림(무덤속의 그리스도)을 보는 게 핵심 미션이다. 1867년 8월, 도스토옙스키가 유럽여행중에 처음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그림으로 그의 소설 <백치>(1869)에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소설 <백치>와 홀바인의 그림에 대해서는 어제 인터라켄에서 바젤로 이동하는 중에 강의했다(문학기행에서 나의 담당인 문학강의는 주로 이동중에 진행된다. 거기에 짧은 현장강의가 더해진다).

바젤미술관에 가기 전에 우리는 바젤대학을 지나갈 예정인데 15세기(1460)에 건립된 스위스 최고(最古) 대학이다. 바젤을 대표하는 학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1860)의 저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이고(헤세의 <유리알 유희>(1943)에 나오는 야코부스 신부의 모델이다), 니체가 소장 문헌학 교수로 재직한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니체와 바젤의 인연은 끝이 좋지 았았지만. 니체는 <유리알 유희>에서 요제프 크네히트의 친구 테굴라리우스로 등장한다). 바젤대학이 내게 의미를 갖는다면 그 두 사람 때문이다.

바젤미술관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나서는 곧 취리히로 향하게 된다. 스위스를 한바퀴 돌아서 처음 출발지로 가는 셈. 스위스문학기행의도 어느덧 막바지 일정으로 접어드는 중이다...

(사진은 숙소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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