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시간은 이른 새벽이다. 날이 밝으면 문학기행 5일차가 시작된다. 중반을 지나게 되는 것. 아침산책을 하고서 느즈막히 출발해서 점심은 베른에서 먹게 될 예정이다. 알려진 대로 베른은 스위스의 수도. ‘사실상 수도‘라는 표현을 쓰던데, 작은 나라이긴 해도 스위스는 자치주들의 연방국가라 수도의 의미가 우리와는 좀 다르다(같은 연방국가로 미합중국과 비교해볼 수 있겠다. 크기의 차이를 무시한다면 연방국가의 좋은 사례와 미심쩍은 사례).

문학기행에서 베른을 찾으려는 것은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 때문이다. 우리한테도 여러 작품이 번역소개돼 열성 독자층을 갖고 있는 작가. 발저의 작품, 특히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턴)를 강의에서 다룬 뒤엔 탐구작가의 목록에 올라가 있다. 베른에는 로베르트발저 센터가 있고 오늘 오후에 방문할 예정이다. 문학기행에서 오늘은 로베르트 발저 데이. 일정이 마무리되면 튠으로 이동하여 일박하고 내일 융프라우 등정을 준비한다.

오늘 일정에 대한 사전 점검이었고, 어제 찾은 시옹성과 레만호 사진, 팰리스호텔의 야경사진 등을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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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로는 어제 오후 몽트뢰에 도착해서 문학기행 4일차 일정에 들어갔다. 몽트뢰는 루가노호를 끼고 있던 루가노와 마찬가지로 레반호를 끼고 있는 호반도시(내가 도시 비교의 척도로 쓰는 인구를 검색해보니 루가노가 6만2천, 몽트뢰가 2만6천이다). 레만호는 꽤 큰 호수여서 스위스의 여러 도시를 거느리고 있는데 제네바와 로잔도 몽트뢰와 마찬가지로 레만호의 도시다.

몽트뢰를 다른 두 도시와 차별화시겨주는 게 있다면 시옹성(바이런의 서사시 ‘시옹성의 죄수‘ 덕에 유명해졌다는데 스위스에서는 해마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관광 명소다). 우리의 첫 일정도 시옹성 투어였다(불어 발음에 따라 쉬용성으로도 표기). 레만호변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러 짐을 내려놓은 뒤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시옹성에 닿았다. 레만호 가장자리 암반 위에 세워진 중세성으로 사진으로 많이 봐서 친숙한 외관이었다. 성 내부의 여러 방을 둘러보고 기념품을 구입하고 기념사진들을 찍었다.

그러고는 나보코프 투어로. 미국을 떠나 스위스로 이주한 나보코프가 여생을 보낸 팰리스 호텔이 몽트뢰에 위치하고 있다. 호숫가의 산책로 따라가다가 도로쪽으로 올라가니 사진으로 눈에 익은 외관의 팰리스 호텔이 보였다. 그리고 호텔 앞쪽 잔디 정원에 나보코프의 시그니처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다(사진으로는 프랑스 카부르의 그랜드호텔 같은 경관인 줄 알았다. 실제는 호텔과 동상 사이를 이차선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나보코프는 처음 1년간은 3층에서, 그 뒤로는 꼭대기층의 가장 전망 좋은 방에 종신 투숙했다(그 정도면 동상을 세워줄 만한가?). 그 기간에 <창백한 불꽃>을 포함한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나보코프의 장소로는 페테르부르크의 나보코프박물관이 가장 가볼만한 곳이지만(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기 전까지는 러시아문학기행을 기획할 수 없다) 이곳 팰리스 호텔도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이유.

동상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뒤에 다행히 아직 해가 남아있어서 우리는 공원묘지로 걸음을 옮겼다. 팰리스호텔에서는 도보로 15분거리. 거리는 가까웠지만 오르막길이었다. 묘지의 규모가 작은 건 아니었지만 안내지도에 묘역이 표시돼 있어서 나보코프 가족(아내와 아들이 같이 묻혔다)의 무덤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러시아 최대 망명작가가 이곳에 안식하고 있구나라는 감회를 잠시 느꼈다. 나보코프 데이의 마지막 일정이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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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이동이 있는 날이어서 아침일찍 버스에 올랐다. 엊저녁부터 비가 내린 루가노는 오늘도 비예보로 채워져 있다. 날은 밝았지만 검은 구름 때문에 어둑한 아침. 오늘 향하는 곳은 스위스 남서쪽의 몽트뢰다. 이탈리아와의 접경 루가노가 5시 방향이라면 몽트뢰는 8시 방향이고 프랑스에 더 가깝다(이름도 불어식이다).

오늘의 일정은 시옹성 둘러보기(바이런의 서사시 <시옹성의 포로>(1816)의 무대인데, 정작 작품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 않다)와 미국 시절을끝낸 나보코프가 여생을 보낸 팰리스 호텔 방문이다(나보코프의 동상이 서 있다). 여유가 있으면 공원묘지의 나보코프 무덤도 찾을 계획이다. 문학기행 시점에서는 나보코프 데이다.

이제 출발이다...

아래는 엊저녁 루가노 사진 몇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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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날 핵심 일정은 몬타뇰라의 헤세 박물관을 찾는 것이었다. 몬타뇰라가 스위스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루가노 시의 일부라고 해도 믿어줄 것 같다. 루가노 시는 이탈리아 국경에 가까운 도시로 이탈리아어가 통용된다(알려진 대로 스위스는 다언어 국가인데 독일어 사용자가 인구의 70퍼센트, 프랑스어 20퍼센트, 그리고 이탈리아어 10퍼센트라고 한다). 루가노는 루가노 호를 안고 있는 호반 도시이고 몬타뇰라는 루가노 호수의 전경이 발아래 펼쳐지는 산동네다. 산동네로는 대형차량이 진입할 수 없어서 일행은 버스에서 하차하여 20분 가량 언덕길을 올라갔다.

헤세가 몬타뇰라로 이주한 것은 결혼생활의 위기를 겪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던 1919년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아내의 정신질환, 그리고 자신의 신경쇠약으로 고통받던 헤세는 융의 제자 자크 랑 박사의 면담치료 덕에 위기를 극복한다. 그 치료담이기도 한 것이 <데미안>(1919)이다. 인생이란 각자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여정이라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가족을 떠나서 홀로 몬타뇰라의 카사 카무치(카무치의 집)으로 옮겨온 것은 그러한 깨달음을 몸소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할까. 카사 카무치는 17세기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개성을 뽐낸다. 헤세는 작은 방 하나에 세 들어 살면서 새로운 삶을 실천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 시절의 모습이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1919)에 그려진다.

헤세의 몬타뇰라 시절은 거주지를 기준으로 두 시기로 나뉜다. 카사 카무치(1919-1931)와 카사 로사(1931-1962) 시기. 카사 카무치 시기에 헤세의 첫아내 베르누이와 이혼하고 두번째 아내 루트 뱅거와의 짧은 결혼생활도 종지부를 찍는다. <싯다르타>(1922)와 <황야의 이리>(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가 이 시기에 쓰인다. 헤세의 마지막 대작 <유리알 유희>는 카사 로사 시기의 대표작. 니논과의 세번째 결혼생활이 카사 로사에서 이루어진다.

헤세 박물관은 바로 카사 카무치의 부속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미처 몰랐던 사실인데 카사 카무치나 카사 로사나 지금은 모두 개인 소유여서 박물관이 들어서지 못했다. 차선으로 마련된 것이 현재의 박물관이고(말하자면 헤세가 살았던 집의 옆집이다) 1997년에 개관했으니 역사도 생각보다는 짧은 편이다.

헤세 박물관에서 나온 노 여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카사 카무치 주변과 외관, 그리고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일부는 이미 사진과 영상으로 보아온 것이어서 친숙했다. 관람을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은 뒤에 일행은 헤세의 무덤으로 가기 위해 언덕길을 내려왔다. 곧바로 가로수가 멋지게 늘어선 아본디오 성당으로 항했으나 성당 부속의 묘지는 도로 맞은 편에 있었다. 성당 묘지라고는 해도 규모가 있는 편이었는데 미리 사진에서 보고온 터라 헤세의 무덤을 찾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번째 아내 니논이 헤세 곁에 나란히 묻혀 있었다.

헤세 일정을 마무리하며 나는 주로 <데미안>의 주제와 문제성에 대해 짧게 강의했다. 스위스문학기행 3일차의 일정이 그렇게 소화되었고 일행은 점심을 먹은 뒤 루가노 호숫가와 구도심 산책에 나섰다. 이탈리아어 지역에 온 만큼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언덕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해가 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우중산책 길이 되었다. 핵심 일정을 끝낸 뒤여서 어떤 비가 오더라도 무방했다. 루가노 호수를 바라보며 여행자의 마음도 호수를 닮아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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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다보스를 떠나 몬타뇰라로 향하고 있다. 3시간 소요되는 거리. 헤세박물관으로 직행할 예정인데, 가이드 예약시간이 10시반으로 당겨져 출발도 당겼지만 아무래도 늦어질 모양이다. 스위스에서는 버스의 제한속도가 80킬로여서(산길이 많아서 그런 듯싶다) 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면도 있다.

오늘의 일정은 몬타놀라를 찾아 헤세박물관과 무덤을 둘러보고 점식식사 후에 근교의 관광도시 루가노 도심산책을 하는 것이다.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취리히에서 마무리하게 이번 여행의 동선은 대략 스위스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것이다. 어제 찾은 실스마리아가 3시 방향이라면 오늘 가볼 몬타뇰라는 5시나 6시 방향이다.

이동중에는 가이드의 스위스 이야기와 함께 문학강의를 곁들이게 되는데 어제부터 계속 토마스 만과 헤세를 비교하는 강의, 그리고 헤세문학 전반에 대한 소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헤세의 몬타뇰라 시기는 1919년부터 1962년 사망할 때까지이므로 42년간이고 생의 절반이다. 작품으로는 <데미안> 이후 <유리알 유희>(1942)에 이르는 모든 작품이 몬타뇰라의 소산이다. 헤세의 생애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2018년 독일문학기행 때 찾은 헤세의 고향 칼프에 이어서 그가 생을 마친 몬타뇰라 방문을 앞두게 되니 감회를 품게 된다.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중학생 시절 최애작가였던 <수레바퀴 아래서>의 작가 헤세. 곧 그의 공간으로 들어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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