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때문에 바타이유에 관한 자료들을 읽고 있는데 문득 켜놓은 TV에서 오래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에 눈에 들어왔다. 대번에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1998)란 걸 알 수 있었는데, 신문의 프로그램란에서 확인하니까 맞다. 그의 영화다. 4월 22일(토) 밤 11시. <영원과 하루>.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11번째 영화이자 1998년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지난 2004년 11월에 개봉한 걸로 돼 있지만, 내가 본 건 그보다 훨씬 전 한 영화제에서였다(기억에는 동숭아트센터에서 봤다). 대부분의 시간을 졸면서!(나는 <율리시즈의 시선>도 영화관에서 볼 때는 반은 졸면서 봤다). <영원과 하루>에서도 인상적인 몇 장면이 있었지만 그걸 위한 132분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러시아 감독 타르코프스키와 겉보기에는 가장 유사한 영화적 스타일의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들을 나는 즐기는 편이 못된다(그의 영화들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영화'음악'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수면제 대용으로 보는 이들을 내가 기이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는 것은 내게 앙겔로플로스의 영화가 수면제이기 때문이다. '예술 영화'임에는 분명한데, 자신의 인생 여정을 영화에 비유하기도 하는 이 거장의 어떤 면이 내게 친숙하지 않은 걸까라는 게, 좀 미안한 마음에서 내가 갖게 된 자기변호성 의문이다. 

이번에 EBS에서 방영된 <영원과 하루>를 잠시 보다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씨네21>에 실린 짐 호버만의 평에서 일말의 해답을 찾았다(예술 감상에서 동지를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이번주 <씨네21>에 난 영화소개 기사와 함께 2년전에 실렸던 호버만의 영화평을 같이 옮겨놓는다(인용문에서의 강조는 물론 나의 것이다).

씨네21(2006. 04. 20)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글로 풀어내는 일은 참으로 덧없게 느껴진다. 말이 덧붙여질수록 그의 영화적 세계는 점점 멀어진다. 그의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옳은 태도는 입을 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그저 감상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열한 번째 영화가 궁금한 독자들께서는 이 글이 영화 감상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시기 바란다.

-<영원과 하루>는 죽음을 앞둔 그리스의 늙은 시인, 알렉산더의 이야기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대신 19세기의 시인, 솔로모스의 시어들을 찾아 나서는 데 보내기로 한다. 불멸의 시어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는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알바니아 난민 소년을 만나 시적인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영원한 진리를 찾아 떠난 여행이지만, 결국 그는 진리란 그가 경험한 시간 속에 내재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노년에 접어든 음유 시인 앙겔로풀로스의 회고록 혹은 자화상이다. <안개 속의 풍경>의 어린 소년부터 그의 많은 영화들 속에 등장했던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남자가 이 영화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된다. 알렉산더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여 생의 상처를 온몸에 새기고 이제 그 생의 끝에서 영원성을 갈망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 영원성이 알렉산더의 예술세계 혹은 누군가의 시적세계에 잠재된 것이 아니라, 아내와의 아름다웠던 추억, 난민 소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시어, 버스에서 잠을 자는 혁명군 등에게서 빛처럼 퍼져나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앙겔로풀로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외부의 관념적인 영원성으로 퇴각한 것이 아니라, 역사와 시간 속에 더욱 침투하여 불멸의 순간들을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뒤늦은 후회나 회환이 아니라, 영원이란 ‘이미 그곳에’ 늘 존재해왔음을 깨달은 노년의 쓸쓸한 성숙함이다(*이 영화가 지루한 것은 내가 아직 '노년'과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영원과 하루>에서도 익스트림 롱숏과 딥 포커스, 카메라의 느린 움직임은 영화에 시간의 무게를 실어준다. 안개가 낀 회색빛 그리스의 풍경, 침묵으로 말하는 여백의 공간 역시 여전하다. 솔로모스의 시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들과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풍경들 속에서 과거와 현실과 미래는 만나고, 젊은 앙겔로풀로스와 노년의 앙겔로풀로스는 조우한다.(*그래도 이 대목이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었다.) 그의 영화세계 속에서 역사는 그렇게 교차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남다은 기자)

씨네21(2004. 12. 15)  "자아 도취의 향연" -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가장 미약한 작품 <영원과 하루>

-유럽 예술영화의 쇠망을 느끼게 하며 칸영화제가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에 때를 맞춰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고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인 거장들의 최근작 두편이 선보였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하나의 선택>으로 보건대 유럽 예술영화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둔하기 짝이 없다.(*'거장'이란 말에 기죽지 않고 이렇게 말해주는 비평가가 국내에는 드물다. 가령, '국민감독' 임권택에 대해서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칸의 1998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원과 하루>는 수년 동안 내가 앉아 버티며 시청한 대여섯개의 앙겔로풀로스 영화들 중 가장 미약한 작품이다. 시 구절과 제멋대로의 피아노 연주, 해변가 아이의 멋진 이미지, 그리고 병원에 입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유럽을 상징하는 알렉산더 역의 브루노 간츠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는데 알렉산더는 진부한 배역에 맞게 위대한 작가이며 꽉 찬 중년에 시한부 질병을 앓고 있다. 그의 지병을 거대한 망상이라고 부르자. 앙겔로풀로스는 알렉산더가 하는 모든 일에 거의 세계사적인 의미를 부여할 테니까.(*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는 그러한 '거창한' 나르시시즘이 없다.)

-작가는 깨끗하게 다듬어지고 우스꽝스럽게 조용한 레브라도 개를 딸에게 맡기려고 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날을 시작한다. 그리고 납치되어 부유한 남색자들로 가득 찬 버려진 모텔로 끌려온 알바니아 소년을 구하게 된다. 이제부터 무뚝뚝하고 지겹게도 찰리 채플린의 <키드>가 반복되지만 영화 내내 형사 콜롬보가 입었을 듯한 레인코트를 입고 등을 꾸부정하게 하고 있는 간츠의 배역은 너무 기력이 쇠약해 그저 상냥하게 자신의 꼬마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노인과 소년, 부자와 가난뱅이, 베푸는 이와 귀염둥이, 문명과 그 불만족의 이 상징적인 공생관계는 알바니아의 수용소가 소개되고 알렉산더가 자신의 영혼지기로 생각하는 유배된 19세기 그리스 시인에 대해 임종의 상념에 젖어 있을 때 일종의 역사적 깊이를 얻게 된다. 하지만 내 참을성을 밀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영화감독의 지루하고 답답한 스타일이다. 연구의 대상이자 유머가 부재한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는 졸립게 하는 일련의 장면들과 거만한 줌의 사용들, 느려터진 화이트아웃들로 특징된다.(*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 효과는 거의 없지만 미장센은 어울리지도 않게 매혹적이다. 모든 집들은 건축 잡지의 사진들처럼 불이 밝혀져 있고 병원조차 잘 보존된 지방의 박물관 같은 느낌을 발산하며 도시의 시체 보관실도 유행하는 스테인리스스틸 느낌의 일류 식당처럼 느껴진다.

-<영원과 하루>는 드러내놓고 자기도취적이어서 알렉산더가 죽은 아내의 간지러운 러브레터들에 심취해있을 때조차 쉽게 이게 앙겔로풀로스가 자신에게 쓴 편지려니 싶어진다. 뭐가 더 터무니없을까? 알렉산더가 자기 개를 맡기기 위해 충실한 하인 아들의 가짜 민속결혼식에 방해가 되는 장면일까 아니면 길거리의 아이들이 죽은 동지의 어쭙잖은 소유물을 태우는 장면에서 오보에가 들려오고 카메라가 냉혹하게 움직일 때일까? 추상적 비표현주의자라고 불릴 만한 앙겔로풀로스에겐 인물들을 상상해내거나 배우들을 지도할 특정한 능력이 없다. <영원과 하루>에 좀더 위상있는 배우들이 나왔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뻣뻣하고 빈약하며 거만하고 한순간 그 자신의 효과에 취했다가 허위 철학에 눌려버린 완전히 예술영화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보이지 않는 위협>은 <스타워즈의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가리키는 게 아닌지? 한편, 주연을 맡은 배우 브루노 간츠는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로 나왔던 배우이다.)

-앙겔로풀로스의 단점이 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율리시즈의 시선>은 그 어떤 웅장한 무관심을 받았다. 아니 적어도 2번가에 있는 거의 버려진 황량한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의 빈 극장에서는 보여줄 만한 그런 영화였다. 그걸 봤다면 누구나 앙겔로풀로스가 마지막 유럽 예술영화를 만들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링컨센터의 위상 속에서 개봉되어 평범한 머천트와 아이보리의 공격적인 광고에 힘입고 있는 <영원과 하루>는 그런 분위기의 기이한 요약에 더 가깝다.

-“나 왜 유배 속에 삶을 살아왔나?”, “왜 우린 사랑할 줄 모르고 있었나” 따위의 영원한 질문들을 뻔뻔스럽게 헤대며 앙겔로풀로스는 잉마르 베리만의 무거운 망토를 걸치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도덕적 고통을 머리에 쓰고 미클로시 얀초의 형식주의를 사용하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비유적인 풍경을 찾다가 결국 바닷가에서 음치에다 뻣뻣하게 춤을 춰대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단원을 맞는다.(짐 호버만)(*감독 자신이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음을 알고 있을 때, 그의 영화는 지루해진다.)

 

참고로 지난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던 앙겔로플로스와의 인터뷰들 중 하나를 옮겨놓는다.

nkino(2004. 10. 15) "우리 시대 최고의 거장을 만나다"

-부산영화제와 한국을 처음 찾은 소감이 어떤가?
-테오 앙겔로플로스 |
솔직히 말하면 한국을 느낄 시간이 전혀 없었다. 호텔 방에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웃음) 주변의 호텔은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호텔 방에서 바로 바다가 보인다는 것 정도다. 시간이 되면 부산 관광이라도 하고 싶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리스의 좌파적인 전통 속에서 영화를 시작한 것으로 안다. 젊은 시절의 역사 체험이 영화에 미친 영향은 어떠한가?
-내가 영화를 시작한 때는 그리스가 한창 군부 독재 중이던 1970년이었다. 나나 조국인 그리스에게나 어려운 시기였다. 그 전에는 좌파계 신문사에서 영화비평가로 활동했다.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군인들이 도시를 점령했다. 군인들은 내가 일하던 신문사를 파괴하고, 아테네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첫 영화인 <범죄의 재구성>을 찍었다. 이 영화는 산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어느 정도는 고대 그리스 비극과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오긴 했지만, 결국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보통 외지인들이 그리스에서 떠올리는 이미지, 예를 들어 태양빛이 작열하는 유명한 섬들이나 관광지의 그런 이미지가 아닌, 그리스의 이면을 그려냈다. 남자들은 모두 다 외국으로 떠나고 나이든 여자들만 가득한 폐허가 된 그리스 마을. 결국 이 또한 당시 그리스 현실에 대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는 영화 검열이 엄격한 나라였다. 검열과 규제는 당신의 영화에서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쳤나?
-당연히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내용이 없어서 큰 문제는 없었는데, 문제는 두 번째 영화인 <1936년의 나날>에서부터 시작했다. 이 영화가 프랑스에서 개봉되었을 때는 정치적인 이슈를 간접적이고 암묵적으로 이야기하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는 그리스 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파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있었다. 이 영화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상영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영화 상영을 마쳤는데, 모인 사람들 누구도 영화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극장 안에는 대학생 들 뿐 아니라 검열 당국에서 나온 형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담겨있는 당시 그리스 상황에 대한 은유와 상징들을 그들이 눈치챌까봐 두려웠던 거다.(웃음)

-세 번째 영화인 <유랑극단>은 정치적인 주제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데 지친 나머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주제를 드러낸 작품이다. 영화가 혹시 개봉을 못한다고 해도, 일단 한 번 질러보자는 심사였다. 하지만 역시 사전 검열 문제 때문에 시나리오 없이 촬영을 진행해야만 했다. 혹시 문제가 생길까봐, 배우나 스탭, 제작자의 이름 모두를 크레딧에 올리지 않았다. 배우들도 촬영 당일이 되어야 자신들이 어떤 연기를 해야할 지 알게 되는 그런 도둑 촬영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의 영화 감독들 중 특별히 눈여겨 보는 감독이 있는가?
-사실 요즘에는 다른 사람들의 영화를 보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렇게 영화제에 가도, 인터뷰에 각종 행사에 끌려다니다 보면 영화 한 편 보기가 힘들다. 타인들의 영화가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태국 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 맘에 들었다. 그 외에는 아테네에서 본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러시아 영화 <귀환>, 그리고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등도 생각난다.

-당신은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감독이다.
-나는 그리스 국내에서 영화 작업을 하는 유일한 그리스 감독일 것이다. 물론 내게도 외국에서 일하자는 제안은 많이 오지만, 그리스에 남기로 결정하고 작업을 해왔다. 엘리아 카잔이나 존 카사베츠 같은 감독들은 그리스 출신이지만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고, 그리스에서 작업한 감독은 <희랍인 조르바>를 만든 마이클 카코야니스 정도가 있을 뿐이다. 현재 그리스 영화는 그리스 내부에서만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그리스 영화가 해외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유일한' 그리스 감독이라는 게 좀 놀랍다.)

내친 김에 인터뷰 하나 더. 인터뷰어는 오마이뉴스 심은주 기자이다. 타이틀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만약에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영화는 아직 종말에 다다르지 않은 것이 되겠다.)

오마이뉴스(2004. 10. 13) "여기, 영화 감독을 꿈꾸는 영화 학도가 있나요?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개인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며 이 영화 거장은 말문을 열었다. 그리스 출신의 영화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작가주의 예술영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감독으로 유명하다. 역사적·정치적 문제를 서정적인 느낌의 화면에 담아내는 그의 솜씨는 이미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 받아왔다.

-그런 그가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참가를 위해 처음으로 부산을 찾았다. 영화제 측이 감독과 관객들의 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처음 마련한 마스터클래스는 예매시작부터 매진을 기록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12일 오후 1시에 열린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마스터클래스는 어제 허우 샤오시엔에 이은 두 번째 시간.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한국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2시간 여 동안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은 문학과 법학 등을 공부했다. 굳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9살 때 마이클 커티스 감독의 영화 <더러운 얼굴의 천사(Angels with dirty face)>를 보고 놀란 이후로 영화가 내 삶 속에 들어왔다. 고교 졸업 후 영화학교에 들어갔는데, 특히 감독 일에 관심을 가졌었다. 당시 '영화가 날 필요로 하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고, 난 영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소규모의 영화 한 편을 찍었다."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평을 하자면?

"그 질문에 대한 내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영화를 스스로 평가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영화가 내겐 '여행'과 같다는 것이다. 단순한 작업이 아닌, 삶 그 자체다. 특히 시나리오나 사전 작업이 아닌, 촬영의 순간이 이런 기분을 더해준다. 난 촬영을 좋아한다."

-<안개 속의 풍경>은 흔히 희망에 대한 영화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을 정의할 순 없다. 하지만 희망은 심오하고 깊은 감정이라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안토니오니의 영화 <유랑>에서 인물들이 모두 자살을 택하자, 이를 본 관객들은 그 영화가 희망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안토니오니는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행위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다. 나에게 희망은 영웅적인 절망이다."

-당신의 시선은 늘 발칸반도에 머무른다. 다른 곳을 이야기할 생각은 없는가?
"일본에 갔을 때 한 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인간의 비극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았다. 한참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울며 내게 달려들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라 소개한 그는, 내 영화 <유랑극단>을 보며 자신의, 자기 민족의 이야기 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내 생각엔 인간의 정신나간 행동을 발칸 지역을 배경으로 해서 보여줘도 한국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처럼 국제적인 것이 없다. 국수주의가 모든 이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당신의 영화는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회화적이다. 좋아하는 화가가 있다면? 
"난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기에 대신 영화 만드는 일을 한다. 실제 모든 회화의 역사는 내 영화와 연관이 있다. 꼬집어 특정 화가를 말할 순 없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피카소를, 달리의 그림을 보면 달리를 흡수한다. 잘 되든, 안 되든 회화 속의 색이나 이미지를 소화해서 영화에 반영하고자 하는 편이다.

-영화에서 당신은 클로즈업을 거의 안 쓴다. 왜 그런가?
"내 작품들은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시테라섬으로의 여행> 이전엔 정치와 역사를 담아내는 데 몰두했고, 그 이후엔 역사는 배경에 두고 전면에 개인과 인간의 운명을 담아냈다. <유랑극단>이나 <알렉산더 대왕> 같은 영화들은 브레히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들이다. <시테라섬으로의 여행> 이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의 정의와 브레히트의 연극의 정의를 함께 사용한다. 브레히트의 연극의 정의 가운데 '거리감'은 베르히만과 고다르에게도 영향을 끼쳤고, 내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 생각하나?
"내 영화 중 하나인 <비키퍼>는 혁명으로 죽었으나 그래도 계속된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많은 이가 TV만 보며 정치와 역사적인 문제들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우린 꿈을 갖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해야만 한다."

-당신 영화의 배우들은 연기가 훌륭하다. 특별히 지도하는 바가 있다면?
"배우들은 각자가 모두 다르다. 그런 만큼 '소통'이 중요하다. 이 때의 소통이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의 교환을 통해 가능해야 한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스킨십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율리시즈의 시선>을 보면 생각한다. 도대체 당신에게 시선의 해방과 구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율리시즈의 시선>에서 조셉슨은 시네마떼끄 관장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없어져 버린 시선을 수집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나는 시선에 대해, '과연 나는 아직도 진실을 보고 있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처음 내가 카메라 화면을 보았을 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발견했듯 계속 그러고 싶단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을 담고 싶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마스터 클래스 시작과 끝에 플라톤의 말을 인용했다. "자신을 알려면 타인에게 자신을 비추어야 한다." 그는 관객없는 영화는 그저 필름이란 물질일 뿐이라며 감독의 시선이 타인의 시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마지막에 자신이 준비한 시를 읽어주며 그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에 답례했다...

06.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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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er 2006-04-23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짐 호버만의 글은 제 친구가 번역하고 있는데요,
이 글을 보고 반가와서 링크해줬더니 잘 읽었다고 전해달라는군요.
말씀하신 대로 '보이지 않는 위협'은 '보이지 않는 위험'의 오타였다고 하네요. ^^
한편 호버만은 브루노 간츠를 제외한 전체 캐스트가 빈약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는군요.
덩달아 저도 잘 읽었습니다. ^^

로쟈 2006-04-23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이미 읽으셨던 글일 텐데 잘 읽으셨다니 머쓱합니다...

푸른별 2006-04-2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난감함이 아주 명확하게 설명이 되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 교수가 지난달 18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정교-진보운동-사회주의'라는 주제의 초청강연을 가졌다(이날 강연에는 학생들과 시민 17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 녹취록이 있기에 옮겨온다. 많은 분들이 일독해 보시도록 권유하기 위해서이다(종교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녹취록은 '푸하'님의 서재에서, 그리고 강연회 사진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갖고 온 것이다. 군데군데 굵은 글씨로 표시한 강조와 간혹 덧붙여진 군말은 나의 것이다.  

-하필이면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일종의 변명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1∼2년 전에 민중 신학과 가까운 한 기독교 계통의 잡지로부터 현대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죄송합니다. 못쓰겠습니다'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제 학술 분야가 원래 기독교보다 고대사였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좀더 많이 한 부분도 있었고, 또 신자가 아닌 신분으로 비판하기에는 뭔가가 쉽게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사실 그때 제가 거절의 말씀을 드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이건 굳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결국 불교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만   '기업 활동에 대해서 이념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기업 활동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얼핏 보면 신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신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현존하는 종교 조직에 대한 발언입니다.(*종교사회학에서는 상식적인 얘기이다. 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자리' 곧 '좋은 목'이라는 사실을 목사님들의 상식이듯이. 이미지는 김종서 교수의 <종교사회학>(서울대출판부, 2005)을 가져왔는데, 내가 오래전에 종교학 과목을 수강하며 읽었던 책은 오경환의 <종교사회학>(서광사, 1990)이다.) 그리고 사실은 외국의 사회인류학이라든가 사회학 같은 부문에서는, 특히 종교사회학에서는 요즘  '종교 시장'이라는 용어를 거의 별 거부감 없이 쓰다 보니까 저도 약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어쨌든 한국의 경우 사찰이든 교회든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일종의 기업 활동으로 보이는 신앙 활동의 형태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이념적 입장에서 비판하기가 왠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업 활동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아는 소위 기복 장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사찰이나 교회를 찾을 때는 마음 속에 일종의 거래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찾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말씀이지요. 예컨대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기도하면 내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겠지" 하고 생각할 때 여기서 신의 축복이란 게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 잘 하고 기도를 잘 하면, 대학교 입학뿐 아니라 예컨대 직장에서도 인간 관계가 원만해져서 안 짤리겠죠. 그러니까, 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결국에는 여유있는 생활하고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통력이 있다,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거래할 수 있다"는 조직에 가입해서, 헌금이라는 이름이든 성금이란 이름이든 불전이란 이름이든, 어떤 명목으로 거기에다 일종의 물질적 대가를 바치고 그 대신에 상당히 현실적인 성격의 축복을 돌려 받는, 성격의 신앙 생활이 우리한테는 아주 익숙해진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기복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복 신앙은 꼭 구체적으로 '자녀 입학하게 해 달라',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 하는 것뿐만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현실 생활이 원만하고, '현실적인 잣대'로 봤을 때 행복한 생활을 초자연적 힘에 의해서 돌려받으려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이든 교회든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이와 같은 넓은 의미의 기복을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대가를 받고, 또 그 대가로 사찰의 경우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대형 불상을 짓고, 교회 같으면 단일 교회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말하자면 기복 장사를 잘 한다는 것을 건물이나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거래나 장사에 대해서 이념적 입장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복 장사, 종교를 신통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거래하는 곳으로 이해한다는 것, 또는 종교의 대상으로 신이나 초자연적 힘, 또는 그 힘을 빌려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제그제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비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신라의 이차돈이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신라 법흥왕 때의 순교자 이차돈을 잘 기억하시겠지만, 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법흥왕이 이차돈을 희생시킨 거죠. 대신들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이차돈을 죽였는데, 결국 대신들의 반대가 무로 돌아가고 불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이야기인데, 혹시 여러분은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삼국유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이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동기가 됐는데, 이차돈이 참수당하기 직전에 '만약 부처님에게 신통력이 있다면, 부처님에게 기적을 일으킬 권세가 있다면, 내가 죽고 나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고 참수당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피 대신에 하얀 물, 그러니까 우유와 같은 색깔의 하얀 물이 갑자기 목에서 솟아 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대신들이 부처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무서운 신인 줄 알고 거기에 감복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설화적인 이야기이고, 불교를 믿는 수행자의 목을 칠 때 하얀색의 액체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붓다의 본생담(本生譚), '자타카'에서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설화로서는 유래가 깊은 설화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신라에서 생긴 설화도 전혀 아닙니다.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라 사람들한테 초기의 붓다, 초기의 부처가 바로 기적을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진 그런 신통한 존재였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 승려나 순교자 이차돈 같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만한 신통력의 소유자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달했다는 것을 상당한 민족적 긍지로 삼는데, 만약  일본서기 , 일본의 공식 역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 성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수했을 때, '부처를 믿으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이고 붓다가 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붓다라는 신이 힘이 세고 무서운 신통력을 갖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초자연적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종교에다 초자연적 힘을 부여하고, 종교 전문가들, 성직자들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섭고도 신비한 도사로 생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고 우리 역사 속에 상당히 깊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기복과 오늘날의 기복은 상당히 다릅니다. 기복은 복을 빈다는 이야기인데, 복을 누구를 위해서 비는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녀가 수능시험을 볼 때 어머님이 사찰에 가서 대입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입 기도라는 게 결국 내 옆에서 기도를 하는 다른 아줌마의 아들보다 내 아들을 먼저 입학시켜 달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청중 웃음), 기도는 같이 하지만 결국 그 속에는 상당한 경쟁 관념이 내재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현대의 기복은 완전히 장삿속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원자화된 개인, 말하자면 옆의 아줌마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만을 입학시켜 달라는, 개인·개체 위주의 장사인데, 전통적인 기복이 이것보다는 약간 차원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 시대 때 미륵상이나 아미타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어떤 명을 새겼는가 하면, 나의 부모를 비롯한 칠세(七世) 친척들을 극락왕생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국토가 태평하고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게끔 하소서 하는 명을 새겼습니다. 결국 나뿐만 아니고 국가 전체가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뭔가를 받도록 비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기복 신앙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문화 속에 얽히고설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때는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기가 왠지 참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때 제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하면,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 삼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복 장사에는 사찰이나 교회라는 공급자가 있는가 하면, 그 장사를 제발 해 달라고 하는 수요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사찰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수요만 그대로 남는다면, 예를 들어 무당이나 점쟁이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요자로 하여금 이런 기복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공급자나 수요자만을 인격적으로 탓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다 하더라도 소위 '상도덕'은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상도덕' 아시죠? 장사할 때 그래도 어기면 안 되는 일종의 '상도'가 있는데, 기복 장사하는 과정에선 이것이 너무도 많이 어겨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 재벌들끼리 장사를 해도, 만약 LG 휴대폰 쪽에서 '삼성 휴대폰이 곧 고장날 것이니 삼성 휴대폰을 사는 사람은 그것을 행복하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성 흑색 광고를 낸다면 이것은 아마 당장 재판을 받아 상당한 돈을 물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불신지옥'이라고 외친다면 이건 사실 LG 휴대폰만이 진리고 삼성 휴대폰이 거짓이라는 말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인데. 그걸 또 '불신지옥'이라고 외칠 때에는 꼭 '불신(佛信)지옥', 그러니까 '불교를 믿는다면 지옥이다' 라고 들리기 때문에... (청중 웃음) 이것은 상도덕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도 장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청중 웃음)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고용자를 막 다루면 안 되지 않습니까?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한다고 해서 삼성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성말고 무노조 경영하는 곳이 '종교 재벌'들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혹시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에서 노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죠?(청중 웃음)

-사실은, 삼성보다 대형 교회에서 주인이 아닌 '밑에 사람'으로 일하기가 훨씬 불안합니다. 대형 교회의 부목이나 전도사, 운전사 정도면   뭐 월급이 박한 건 그렇다 치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죠. 주목의 마음에 안 들고 노선을 달리 하면 자르는 데 별 절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노조를 만드는 시도를 2년 전부터 한 것 같은데, 아직 대다수 대형 교회들에 노조가 없습니다. 고용된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대형 교회도 그렇지만 최근 부산의 삼광사라는 대형 사찰에서 노조 탄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정규직 사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다 사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매일노동뉴스>에서 알게 됐습니다. 결국 장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사를 해서는 무노조 삼성보다 더 못된 장사가 될 것 같아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아무리 장사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업체가 정치에 부당하게 압박을 주면 안 된다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FTA 투자 협정을 맺고자 하는데 실제로는 이 협정이 체결되면 가장 혜택을 볼 기업체가 어느 기업체인지 뻔하거든요. 삼성입니다. 삼성에서는 아마도 FTA가 맺어지기를 대단히 바라고 있겠지만, 만약에 삼성이 이를 위해 정치권에 상당히 노골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미군을 찬양한다든가 'We Love America!'를 부른다면 이것도 결국엔 일종의 기업체의 정치적 압박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미국과의 역사적 관계도 있고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 전체의 정치를 한 집단 위주로 하려고 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또, [그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올 때 드는 생각은,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 중 하나, 즉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로마제국'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다스리면서 사람들한테 라틴어 대신 영어를 가르쳐 주고 공동 문화를 만들어 주고 문명의 공간을 확보해 준다." 이것은 미 제국의 주류 지식인들이 제국을 옹호하는 입장의 골자 중 하나인데, 그러면 미 제국의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결국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의 깃발을 들고 다니는 꼴이 되는데,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은 바로 로마제국이 아닙니까?(청중 웃음) 그러니까, 그런 역사적 관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상당히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로마제국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숭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무한의 힘의 상징인 성조기를 숭배하는 것인지 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체에 대해서 한 가지 문제 삼는 부분이 '탈세'인데, 종교단체 같은 경우엔 탈세도 아니고 '무세'입니다. 세금을 아예 안 냅니다(청중 웃음). 만약, 주요 종교단체들의 수익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예컨대 대형 교회에서 세금을 내서 그 세금 전액이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의 실천에 쓰인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선에 쓰인다든가 이런 조건을 내세워 세금을 낸다면 이것은 교리에 반대되는 부분이 전혀 없을 텐데, 어쨌든 탈세도 아닌 '무세'라니 이건 참 '상도덕'상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청중웃음).



-또, 제가 늘 한국 종교에 관해 문제 삼고자 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상품 강매'입니다. 일반 회사가 그렇게 하면 당장 걸리겠지만, 예를 들어 종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예배시키는 것은 결국 '상품 강매'와 다른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들이 신앙 시장에서 본인들의 상품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추진하는 것까진 좋은데, 본인들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한테까지 그 상품을 사게끔 강제한다면 이건 헌법상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도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주류 종교를 얘기할 때, 이것은 단순히 기복 장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성질의 훨씬 더 복합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한인 사회에 왜 하필이면 교회가 그렇게 많은가 물어보면 그것은 신앙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교회가 일종의 네트워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미국의 한인 사회나 유럽의 한인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하게 돼 있습니다. 교회들이 일부러 왕따 시키지 않더라도 저절로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것이 좀더 극명하게 나타날 뿐이지만, 한국 안에서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연, 즉 교회와 교맥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 흔히 '관계 자본'이라고 말하는 3연, 즉 학연·혈연·지연말고도 '교연'을 분명히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나 사찰의 경우에는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사회나 기존 질서에 뭔가 신성한 듯한 외피를 덮어 주고 기존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신의 도움을 받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평생 살면서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공인(public figure)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일찍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가주의적인 주입을 받아 국가를 대단한 숭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만, 국가를 존경하기가 좀 힘들어요.

-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다들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추상적인 국가'를 숭배해도 '구체적인 국가'를 존경하기란 좀 힘듭니다. 존경하고 싶어도 곧잘 무슨 최연희 의원의 성파문이든 무슨 파문이든 (청중 웃음)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한다든가 태극기로 상징되는 추상적인 대한민국이 숭배 대상이 돼도 구체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고급관료들이 존경 대상이 되기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 의식이라든가 어떤 공적인 의식에 대통령을 모신다고 하면 아마 참석자들이 대단히 좋아할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노무현 씨라는 한 개인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대통령직에 추상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대통령도 왔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계 서열에서는 대단히 높은 사람이 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노사모 빼고는 인격적으로 노무현 씨를 아주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청중 웃음)

-그러니까, '추상적인 권위 인정'과 '구체적인 인격적 존경,'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우리가 제도적으로도 존경하게끔 돼 있지만, 좀 신비한 옷을 입고 신비한 말씀을 하고 뭔가 신성한 듯한 아우라(청중 웃음), [즉] 후광을 갖고 나타날 추기경님이나 큰스님이다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제도적인 인정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존경까지도 하게 돼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공인된 종교 지도자들이 이 체제가 나쁘다든가, 이 체제를 우리가 빨리 바꿔야 한다든가, 이 체제의 문제점이 무엇이라는 말씀을 잘 안 하시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청중 웃음), 사실 맞다고 할 수도 없고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말씀을 하도 잘하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존재 자체는 체제를 상당 부분 합리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으신 스님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 인터뷰하시고 법문다운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에는 별 문제가 없어도   어차피 그 말씀 상당 부분이 당나라 후기나 송나라 때 선사들의 책에서 다 베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말씀이라 별 문제는 없는데   주류 언론에다가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권위를 높여주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이 체제가 인간이 살 만하고 이 체제가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라는 환상을 피지배자들한테 상당히 효과적으로 덮어씌우는 면이 있는 건데 이것은 굳이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실,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사람이 여러 가지 주장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피임을 종교적 죄악으로 본 겁니다. 그것이 종교적으로 맞다 틀리다 하는 건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아프리카, 특히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에이즈가 지금 대단히 치성(熾盛)을 부리고 있어서 예컨대 잠비아나 나미비아의 경우에는 에이즈에 전염된 사람이 이미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입니다. 이미 나라가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보호 없는 섹스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대단히 위협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교시에 피임하지 않을 경우 곧잘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황의 말씀을 듣고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에이즈에 걸려 죽은 사람이 과연 몇 만 명이 되는지 대단히 궁금할 따름입니다.

-낙태 수술에 대한 교황의 입장도 아주 단호하셨는데, 현실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어차피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가는 결국 사회적 살인처럼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종교 입장을 따라서 많은 여인들이 결국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결국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뜨렸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죽었을 적에 한국 언론들도 그렇지만 외국 언론에서도 그것을 언급하는 언론이 몇 군데밖에 안 됐고, 대다수는 요한 바오로를 거의 새로운 성인으로 모시고 그랬습니다. 요한 바오로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여러 언론 중에서도 한두 군데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세계 지배계급에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굳이 한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성하다 싶은 지도자로 상징되는 종교가 원자화·개체화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국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나 인격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의 불행은 여러분이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인격을 수양해서 언제든지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신과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래하면 일단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그런데, 이 메시지는 이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 예수님이나 부처님하고는 별 관계가 없고 바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이자 노동자들한테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인격이나 수양 문제로 돌리기를 원하는 게 아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기복 장사하는 기업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기업체의 정체는 체제 전체를 합리화하고 공고화하고 아주 당연할 뿐만 아니라 거의 신성하다 싶은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맑스가 종교에 대해서 한 말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제일 유명해졌는데, 그 문장에서는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종교는 맑스가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이자 민중을 위한 아편'이라고 이야기한 건데, 그런 면에서 맑스는 신음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종교를 찾게 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맑스는 종교가 단순히 위에서 강요하는 '아편'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사람들이 바꾸지 않는 한은  결국 민중이 저절로 찾게 돼 있는 불가피한 것, 또는 일부분이나마 민중의 현실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종교 이단들이 바로 민중의 반항 의지, 저항 의지를 대변했고, 말 그대로 민중의 신음소리를 담았다는 것이 맑스의 종교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의 한국 현실을 중심으로 본다면 종교는 과연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에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민중을 위한 아편'에 더 가깝습니까? 둘 다 종교의 기능을 묘사하는 얘기인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보다 그 신음 소리를 진통시켜 주고 침묵을 강요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상처가 아프지 않게 진통시키는 일종의 마취제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아주 아플 때 마취제를 먹게 돼 있지만, 마취제·진통제를 먹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당분간 아프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그래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무엇이냐면, 지금의 종교가 기존 체제를 옹립하고 합리화하고 체제로 인한 개인의 불행을 개인적인, 상당히 자기 기만적인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들의 원래 모습이 과연 맞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가 정말 민중을 위한 아편 정도라면 하필이면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존재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기만이라면 상당히 빨리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인데, 또 실제로는 신음하는 소리, 짓밟힌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담지 않은 종교는 지금 봤을 때는 그렇게 오래 안 가요.

-예컨대, 최근에 만들어진 소위 신흥종교들 중에는 상당히 빨리 쇠퇴하는 종교들이 꽤 있는데, 통일교만 해도 1960∼70년대에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교세 확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실제로 교세가 상당히 쇠미해졌습니다. 기존의 신자도 많이 탈락하고 새로운 신자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실제 통일교 교리에서는 이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선명한테 카리스마가 있지만 문선명이 미국의 지도층·지배층하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무래도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신흥종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개 아픈 사람의 신음 소리를 담아 주지 않는 종교는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이 때까지 장수해 온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민중 편에 섰던 것이고, 민중의 그 신음 소리를 많이 담고 민중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쪽으로 나아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나 붓다, 무하마드의 카리스마를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용하려면 일단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 붓다나 예수님, 무하마드에게 그 카리스마를 만들어 준 것이 아마도 종교 속에 담겨 있는, 그러니까 초기 불교나 초기 기독교, 초기 이슬람에 담겨 있는 상당히 강력한 평등 정신이나 저항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저항 정신이란 말이 아마 지금의 불교를 보면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제도 불교는 저항과 전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실제로 붓다라는 사람 - 원래 상류계급에 속했다가 진리를 찾겠다고 혼자 뛰쳐나와 6년 동안 고생해 결국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붓다 - 은 그 깨달은 것이 공(空)과 연기(緣起)라는 진리였는데, 이 진리대로라면 당시 인도 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나 남녀차별이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이 실제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불경을 통해서는 읽어내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대다수 불경들이 붓다가 죽은 뒤 4∼5백 년 뒤에 만들어진 글들입니다. 거기에 붓다가 그렇게 말했다고 돼 있지만, 그건 사실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실제 붓다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들 중에서도 붓다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담았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마 <숫타니파타> 라든가 그 정도 경전 몇 개이고요, <니카야>, <아함경(阿含經)> 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기 경전도 붓다가 죽은 지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가 실제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마  숫타니파타 를 보면 대충 알 수가 있겠지만   윤색된 부분도 있고 가미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붓다는 처음에 깨닫고 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평등을 많이 얘기했습니다.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이냐? 바라문은 인도의 성직자 계급입니다. 당시에는 계급 질서 맨 위에 있었다는 성직자 계급인데, 이 바라문에게 붓다가 얘기한 것은 사람 귀하다는 것이 결국에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절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내 종이다, 내 종이 아니다. 동류다, 이류다' 이렇게 서로 차별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다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이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공허하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만들어지는 이유와 결과의 순환이다" 이런 것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영구한 계급 차별이라는 부분이 개입될 수 없는 그런 가르침을 만든 것입니다.

-붓다는 만인 평등을 외치기도 하고, 동물 죽여서 제사 지내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원칙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또, 붓다의 생활 방식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탁발 아니었습니까? 탁발이라 하면 동냥을 구하는 것인데, 실제 붓다가 탁발하면서 뭘 했었냐면 요즘 말로 아마 심리정신과의 상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이 밥을 줄 때는 뭘 물어보지 않습니까? 붓다가 그 대답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생활 문제 풀어 주고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말하자면 상담을 해 주고 식량을 받는 그런 거래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민중과 아주 가까운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붓다는 기적을 절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신통력이나 기적이라는 부분은 붓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부활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한테 붓다는 '그래요? 한 번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마을에서 친척 중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사람을 한 번 찾아 주면 제가 당신 아들도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하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신통력, 초자연적 힘, 신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붓다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민중한테 붓다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붓다에게 한 가지 좀 아쉬운 점은, 붓다는 일종의 초기 공산주의적인 공동체인 승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제자, 수행자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살기로 한 것인데요. 그것은 어찌 보면 민중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효과가 있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그런 저항의 태도, 아주 소극적인 저항의 태도에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붓다는 자기 부인 야쇼타라와 아들 라후라를 내버려두어도 그들을 먹여 살릴 만한 사람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훨씬 더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붓다의 제자들 중에는 대개 수행 생활을 해도 되는 상당한 재력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결국 그 사람들이 붓다가 죽자마자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편한 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붓다의 제자 중에는 노예 출신들도 있었는데, 붓다가 죽고 나서는 노비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노비나 왕의 고용자한테는 스님이 되는 기회를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다가 했는지 아니면 그 제자가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초기 불교의 주류 승단에서 한 것 같은데, 처음부터 여성이 승려가 되는 데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팔경법'[尼八敬戒]이라는 건데, 여덟 가지로 여승이 남자 승려를 공경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 어린 남자스님이라 하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 스님이 먼저 꼭 절해야 한다든가 하는 법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붓다에게 가탁(假託)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제자들이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불교는 상당 부분 아주 초기부터 왜곡되기 시작했고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는데, 인도를 통일했다는 아쇼카왕 때는 불교가 왕의 국교가 돼서 거의 원래 정신을 이미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이미 절대평등주의적이고 남녀평등주의적인 붓다의 가르침과는 거의 관계 없다 싶은, 이미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붓다라는 스승의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후기의 승단, 후기의 승려들이 그것을 계속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고, 바로 그런 붓다의 카리스마는 불교가 그래도 죽지 않고 계속 민중들한테 인기가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에 대한 묘사와 놀랍게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복음서를 읽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특히 누가복음에는 계급투쟁적이라 할까요. 상류 계급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이 담겨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리라' 하고 돼 있고,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말은 체제에 편입된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도 그렇지만 그런 체제 반대적인 발언들이 가장 많은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으로 기술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로마제국이 망할 것이고, 로마제국에 협력했던 부자들이 결국 벌을 받을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최종 편집되는 것은 180년대라고들 추정하고 있습니다. 180년대에 이미 기독교는 거의 체제에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체제에 협력하고 있던 교단 지도자들이 '부자들이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 갈 수 없다'는 예수의 진짜 말씀을 남겨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예수의 카리스마가 그 사람들한테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만약에 부자들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2세기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화됐는데, 그래도 예수의 원래 정신은 상징적으로라도 복음서에 담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예수의 정신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짓밟힌 사람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편집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4복음서 -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 - 에는 재미있게도 노예의 존재나 노예제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 겁니다. 예수가 살았다고 믿어지는 1세기 초반에는 노예제가 경제의 주춧돌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대단히 많았고, 예수가 부자 보고 하늘나라 못 간다고 했다면 분명히 노예 문제에 대해 발언을 안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노예에 대한 얘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 그러니까 기독교 보수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나중에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 하고 말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그대로 신약에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그 편집 과정에서는 말하자면 대중한테 어필할 수 있는 미끼 밥을 남겨 두기는 했는데, 상당 부분은 바울 사도와 그 제자들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메워진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지만 또 아주 재미있는 예가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하마드라는 사람은 메카라는 상업 도시에서 '거지가 왜 이렇게 많은가. 왜 부자들은 이렇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못사는가' 이런 불만이 출발점이 돼서 새로운 종교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무하마드와 그 공동체가 메디나에서 망명중이었을 때, 당시에 예배할 수 있는 장소가 무하마드의 집뿐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를 봤습니다.

-그런데 무하마드가 죽고 나서 무하마드의 계승자 우마르가 거의 맨 먼저 개악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는 예배를 따로 봐야 한다'는 법률을 정한 겁니다. 무하마드의 원래 육성을 담은 코란의 기록을 보면 여성의 권리를 상당 부분 주장했습니다. 이혼권이나 피임권리나 유산상속권이나, 여자와 남자는 원래 알라신에 의해서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등 여성 권리에 대한 주장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중의 이슬람 율법을 보면 이게 상당 부분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슬람권의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상당 부분 서구의 페미니즘에서도 영감을 받지만, '무하마드의 진짜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슬람을 페미니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을 보든, 기독교를 보든, 불교를 보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에서 고등 종교의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제가 뭔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기존 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것을 결론 삼아 끝내겠습니다.

 

 

 



-결국 지금 성직자 집단이 대표하는 기존의 제도권 종교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그 종교를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실, 옛날에 한용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약 붓다의 가르침이 맞다면 나도 붓다가 될 수 있는 존재인데 왜 사찰에 가서 불상 앞에 절해야 하는가. 나 자신에게 절해도 되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또는 "명부전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내 자신이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재판관한테 뇌물 주는 것하고 무엇이 다르냐. 결국에는 내가 죄가 없으면 왕생할 거고 죄가 있다면 아무리 빌어도 안 될 텐데, 뇌물 주듯이 비는 게 다 뭐냐" 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살려서 우리가 기존 종교가 분명히 그 원래 정신과 다른 부분을 당연히 비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맑스주의자가 된다 하더라도 속류 맑시스트나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종교, 그 정체는 무용지물이다. 마약이다' 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의 진짜 의지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많은 민중이 모였는지, 왜 그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한테 이렇게 귀중한 이름들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빈민들의 집에 딱 두 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차베스 대통령이죠. 그러니까 양쪽을 상당히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하여튼 왜 하필이면 수많은 빈민들한테 예수는 지금도 이렇게 영감을 주는지, 우리가 진정한 맑시스트라면 스탈린주의 식으로 종교를 무조건 팽개치기보다는 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원래 종교의 모습에 대해 나름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사실 이 문제는 러시아의 볼셰비키들에게도 고전적인 문제였다. '건신론(God-building)'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고리키의 <어머니>나 <고백> 같은 작품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많이 반영돼 있다. '오래된 미래'는 '종교-진보운동-사회주의'의 문제에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적 예수의 삶으로부터 진보운동의 영감을 얻고자 하는 김규항의 경우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06. 0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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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04-22 13:56   좋아요 0 | URL
좀 길어서 일단 퍼갑니다. ^^;; 곧 읽고 답글 다시 달겠습니다. ~

로쟈 2006-04-23 02:22   좋아요 0 | URL
마이페이퍼 쓰기의 툴바가 말썽이어서 매번 작업이 지체되고 있는데, 벌써 퍼가셨군요.^^

와넬 2006-05-11 14:02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푸른하늘 2006-05-21 18:20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평소 한국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 논지를 취하고 있었던 저에게 상당히 공감을 주는 글입니다..

로쟈 2006-05-21 18:39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 아니라 '좋은 강연'입니다.^^

곰돌이 2006-07-13 10:04   좋아요 0 | URL
박노자 교수... 어떻게 이렇게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를 이렇게 너무나 쉽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 그 능력에 혀를 내두룰 수 밖에 없네요... 정리 감사하구요 퍼갈게요.

비로그인 2009-02-03 16:28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제 개인홈으로 퍼가도 될까요? 물론 출처는 밝히구요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강조할 만한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 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로 불렸던 수잔 손택의 <강조해야 할 것>(시울, 2006)이다. "2004년 작고한 20세기의 대표적 예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수전 손택의 에세이 41편을 모"은 책으로 "고전이 된 첫 에세이집 <해석에 반대한다> 출간 이후 40여년만에 발간된" 것이며, "그녀의 마지막 에세이집"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책은 <해석에 반대한다>(이후, 2002),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 <우울한 열정>(시울, 2005)에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번에 이 연재에서 다루었던 <우울한 열정>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강조해야 할 것>이 도착했으니 대략 난감이다. 덥석 집어물 형편도 아니면서 무시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 지성계의 여왕'이란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만한 여성 지성인이 많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강조해야 할 것> 이후에 (그녀의 소설들이 남아있지만) 더 나올 만한 책도 없다는 것.  

친절한 소개나 리뷰를 미리 참조하고서 책을 손에 잡는 게 유익할 듯싶은데, "총 3부 구성으로, 해박한 교양 지식과 다독으로 유명한 지은이답게 수많은 예술 작품에 대한 글들, 그리고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지은이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1부 '내가 본 것들'은 영화와 회화, 오페라, 연극, 사진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2부 '내가 읽은 것들'에서는 그녀 스스로 정전으로 생각하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돈키호테, 롤랑 바르트 이외에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상당수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는 예술에 대한 안목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안목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되겠지만, 맥락을 알 수 없기에 헤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리고, "3부 '그곳과 이곳'에서는 수전 손택의 사적인 이야기가 그녀의 사유와 얽혀들어간다. 첫 출간 30년 후 <해석에 반대한다>의 현재적 효용성은 어떠한가에 대한 논의, 전쟁중인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에피소드와 번역의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그 가운데 지식인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날카롭게 설파한다." 나라면 3부부터 읽기 시작하겠다.

 

 

 

 

두번째 책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 2006). 주말에 각 언론에서 생각보다 많이/크게 다루어서 의외라고 생각한 책이기도 하다. 지난 2004년에 출간된 <도덕의 정치>(백성, 2004)에 대해서는 비교적 잠잠했었기 때문이다(<도덕의 정치>는 당시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산 책으로 기억된다. 한편 알라딘에는 이 책의 저자가 '조지레이 코프'로 잘못 기입돼 있다). 레이코프는 자주 공동작업을 하는 마크 존슨과 함께 현대 인지언어학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언어학자이다(그러니까 포스트-촘스키의 선두주자쯤 된다). 별로 읽을 짬은 내지는 못했지만, 그가 출간한 모든 책을 나는 챙겨둔다(물론 번역서들이다). 참고로 말하면, 러시아에서도 몇년 전부터의 그의 책들이 하나둘 소개되고 있다.

언어학자의 정치론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은 물론 촘스키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와 인지언어학의 거목은 관점이 약간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일차적인 호기심은 그것이다. 물론 공통점도 있을 텐데, 그건 당연히 '언어(말)'에 대한 관심일 터(우연찮게도 같이 나온 촘스키의 최신간의 제목은 <여론조작>(에코리브르, 2006)이다). 

소개의 말을 잠깐 따라가본다: ""문제는 말[언어]이다." 노엄 촘스키와 함께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꼽히는 지은이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치를 바라보며 내놓은 결론이다. 왜 말일까? 그건 말이 유권자들이 세계를 보는 프레임[생각의 틀]을 결정짓고, 이는 곧 정치적 입장과 투표 성향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언어의 문제에 주목하여 미국 민주당의 선거 승리전략에 대해 실제적인 지침들을 조언으로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4년 출간 이후 민주당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2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정치와 언론에서 '프레임' 개념이 새로을 각광받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어쩌면 정치언어학 도서로 분류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계속 따라가보면, "지은이의 전작 <도덕의 정치>를 기반으로 책이 내놓는 주장은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의 실패와 거짓말을 공격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유권자들이 진보 진영에 투표해 줄거란 환상은 버려야 한다는 것.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이 아닌 정체성에 맞추어 투표하며, 그들의 프레임에 맞지 않는 진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범한 서민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겉으로 보기엔 이해 불가능한 현상을 명쾌하게 증명해낸 것." 우리의 경우엔, 언론학자 강준만이 언어학자였다면 썼을 만한 책처럼 보인다. 더불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언어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다.

"터미네이터를 연기한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배경에 대한 분석을 비롯하여 각종 미국 정치 담론에 말과 프레임의 힘이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쉬운 내용 구성 안에서 언어학과 정치학이 흥미로운 결합하여 한국 정치 환경을 해석하는 데에도 강력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하니까 선거의 계절을 맞이하여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그런데, 내 <도덕의 정치>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 것일까?

 

 

 

 

세번째 책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으로 잘 알려진" 저자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돌베개, 2006). "지은이가 9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시론·시평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하니까 분량에 비해서는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지만, 그건 글의 형식상의 문제이고 내용상으로는 책의 제목 만큼이나 무겁고 갑갑할 것이니 미리 각오하고 읽는 편이 낫겠다. "'"난민'도 '국민'도 될 수 없는 추방자(디아스포라)의 감수성을 지닌 재일조선인인 지은이의 주변을 둘러싼 일본과 한국 사회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는 책.

난민 얘기가 나오니까 떠오르는 건 작년 봄에 <씨네21>(2005. 05. 13) '유토피/디스토피아'란에 실렸던 이진경 교수의 칼럼이다. '난민이 필요한 나라'라는 제목. 이 참에 한번 더 읽어본다.

-난민, 어느 한 나라에서 정부에 항거하거나 지배체제를 전복하려던 꿈을 꾸다 체포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사람들이다. 망명, 여전히 전복의 꿈을 버리지 못해서, 혹은 전복을 꿈꾸던 삶을 등질 수 없어서 자신의 나라를 뒤로 한 채 이국 땅을 떠도는 행위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자국 정부가 자신에게 할당한 지위에서 벗어나 떠도는 이탈자들이고, 새로운 체제나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자 꿈꾸는 탈주자들이다. 그들은 최소한 자국 정부와 혹은 자신의 국가와 맞서는 위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맞먹는 지위를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 외부에서 살기에, 한 사회의 내부에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안에서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내부에선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들의 시계가 망명하던 시간에 멈추어버린, 그래서 그렇게 할 능력을 잃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사는 나라의 외부자고 망명자, 난민이기에, 그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어디서도 외부자다. 내부에, 그 친숙함에 안주하려는 것을 방해하고, 익숙함의 관성에 따라가는 것을 막는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의 나라, 혹은 자신이 사는 나라에 긴장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없는 것을 밀어넣는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것이 만들어지게 한다. 그들은 언제나 저주받은 삶, 피곤하고 힘든 삶을 강요받지만, 그것을 좀더 나은 삶으로 되돌려준다. 비록 그것이 의도된 것은 아니라 해도 말이다. 망명자나 난민의 이러한 역할은 그들이 꿈꾸는 것을 실현하는가 여부에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어디서든 외부자라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망명자나 난민이 아예 없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원하는 누구나 쉽게 그런 외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망명이 자유로운 사회. 그리고 되돌아오는 귀국도 자유로운 사회.(*'망명이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망명자'는 여전히 '망명자'인가?)

-이런 점에서 보자면, 망명이 꼭 정치적 핍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억압에 의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국적을 던져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일전에 내가 아는 한 선배는 붕괴한 소련으로 늦은 유학을 떠나면서 자신의 소련행을 “문화적 이유에 의한 망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귀국할 수 없게 하는 위협이 없다고는 해도, 이런 망명이 결국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낼 것은 분명하다.(*그런 소련행을 환영할 '러시아인'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요즘 러시아에는 스킨헤드 경계령이 다시 떨어졌다.) 

-이른바 ‘임시정부’를 자처한 망명자들에 의해 수립된 나라, 가장 저명한 정치지도자가 오랜 망명생활을 한 끝에 대통령이 된 과거를 가진 나라, 그러나 난민협정에 가입하기 전에는 물론, 뒤늦게 가입한 뒤에도 10년이 넘도록 단 한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라, 그리고 미얀마의 망명자들처럼 정치적으로 곤혹스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난민보다는 불법체류자 다루듯 처리하는 나라, 목숨이 걸린 문제를 서류에 동그라미 치는 ‘서면회의’로 처리하는 나라, 난민된 사정이나 현재의 처지에 귀기울이기보다는 그가 돌아가도 결국 죽지는 않을 거라는(사람은 정말 얼마나 죽기 어려운 것인지!) 생각으로 안심하고 추방명령을 내리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사는 나라다. 이 나라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혹시 윤리적, 혹은 도의적 이유에 의한 망명자들인지도 모른다. 정말 난민이 필요한 나라다.

칼럼을 읽을 당시에 몇 마디 촌평을 페이퍼로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다른 일들에 치여 흐지부지됐었다. 칼럼의 반어적인 문제제기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내가 가졌던 소박한 의문은 '난민'과 '망명자'자 과연 같은 부류인가? '한번쯤 국적을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한번" 해본 사람과 난민/망명자는 같은 부류인가? 하는 점. 그런 의문은 '노마드적 사유(노마디즘)'와 '노마드'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나의 기본적인 입장에서 비롯된다. 물론 저자 서경식이 다루는 건 '재일 조선인'이라는 진짜 '난민', 혹은 국민도 난민도 아닌 어중간한 '난민'이다. 구체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책소개를 따라가자면, "총 3부 구성으로, 1부는 본격적인 시론과 시평에 앞서 지은이의 정치적 관점과 윤리적 감수성을 개괄할 수 있는 짤막한 에세이들을 실었다. 2부에서는 식민지배 시기부터 재일조선인의 과거를 구성하는 주요 사건들을 돌이켜보며 이들을 타자로 취급하고 차별하는 일본과 한국의 문제를 강도높게 비판한다. 국민의 영역 안에 들어와야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류라는 것."

 



 

 

"책 전반에서 드러나는 근대 국가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또다른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다. 3부에선 윤이상, 에드워드 사이드 등 국가주의의 폭력에 저항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애도한다. 국가에 의해 배제당하고 추방당하고 희생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 우리 안에 숨어있는 근대의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네번째 책은 팔 다리가 없는 장애를 딛고 화가가 된 여성, 앨리슨 래퍼(1965- )의 자서전 <앨리슨 래퍼 이야기>(황금나침반, 2006)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쏟아지던 편견과 배척을 이겨내고, 독창적인 예술가이자 당당한 엄마로 살아가게 된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그 래퍼가 23일(오늘) 방한했다.



'살아있는 비너스'라고 불리는 "앨리슨 래퍼는 양쪽 팔이 모두 없고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이 넓적다리뼈에 발이 달려 있는 형상의, 이른바 '해표지증'이라는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얼마나 살 수 있을까를 모두가 의심했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자신의 벗은 몸에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조각 같은 영상을 표현하는 구족화가이자 사진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니까 책은 그냥 한 예술가의 자서전이다.



그녀는 "이혼한 뒤인 1999년에 임신을 했고, 아이 역시 같은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출산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생명을 지키기로 결정하고, 건강한 남자아기를 낳았다. 임신 9개월의 앨리슨 래퍼의 모습은, 트라팔가 광장에 역사적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조각상의 모델이 되었다. 모성 및 장애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앨리슨의 예술작품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2005년 세계 여성 성취상'과 대영제국국민훈장(MBE)이 그녀에게 수여되었다."

한마디로 대단하다. 더불어 드는 생각은 장애나 콤플렉스가 없는 미래 '생명복제시대'의 인간이란 '위대함'의 조건을 박탈당한 '평균인'이 아닐까란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초상은' 완벽하지만 위대하지는 않은' 인간들의 군집은 아닐까?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2006). 중앙일보의 리뷰는 "거침없는 '역사 비빔' 스페셜"이란 타이틀을 뽑았는데, 이 '비빔(퓨전)'에 있어서 저자의 솜씨는 단연 독보적이란 걸 우리는 이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에서 확인한 바 있다. 저자가 다시 3년만에 내놓은 책은 "시공간, 인간, 성(性), 몸, 앎, 글쓰기 등을 주제로 2001년부터 5년여간 써온, 한국 근대성의 기원과 다양한 양상들을 살피고 탈근대의 미래를 논의하는 11개의 글을 실었다."

"책 전반에서 지은이가 시도하는 접근법은 근대, 18세기, 탈근대 이렇게 세 가지 시간대를 서로 충돌시키고 넘나드는 것이다. 즉 근대의 담론을 이질적인 다른 두 시간대의 담론에 '밀어넣음'으로써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 "푸코가 고고학적 탐사를 무기로 근대성의 지축을 뒤흔든 전사라면, 연암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올라 종횡으로 누비는 나비다!" '나비와 전사'라는 제목은 이 접근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다산, 이옥, 옹녀와 변강쇠, 대장금, 그리고 허준, 노신, 달라이라마 등 18세기와 탈근대 담론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지니 소문난 잔치상으로 충분하다. 챙겨먹는 건 독자의 몫이다.

 

 

 

 

다소 예외적이지만, 여섯번째 책도 꼽아본다. 존 릭던의 <1905 아인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랜덤하우스중앙, 2006). 1905년, 러시아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고, 우리에겐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에 아인슈타인은 무려 5편의 세기적인 논문들을 써냈는데, 그 논문들 이야기란다. "당시 물리학의 상황배경을 설명하고, 아인슈타인이 이들 논문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발전시키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보여주어, 아인슈타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에필로그에서는 1905년 이후 물리학계의 흐름을 다루어 아인슈타인이 미친 영향을 실감하게 해준다." 과학사 산책으로 더없이 유익해 보인다.

게다가 책은 "수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본문 중간에 삽화를 삽입하여 일반인들도 큰 어려움 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아인슈타인의 인간적인 면보다는 학자로서의 면모에 집중하고, 상대성이론 이외에 아인슈타인이 남긴 과학적 업적들을 대거 다루어,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여타의 '아인슈타인'까지 같이 챙겨서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일곱번째 책은 러시아 특파원으로 활동한 일본인 기자 에가시라 히로시의 <푸틴의 제국>(달과소, 2006). 몇년 전에 나온 <푸틴 자서전>(문학사상사, 2001)과 함께 현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그의 '제국'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될 듯하여 꼽아둔다. 나로선 불가피한 '전공관련서'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고(얼마나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 있을지는 궁금하기도 하고 미지수이기도 하다).

소개를 약간 옮겨오면, "지은이는 일본 특파원 기자로 활약한 경험을 바탕으로 푸틴 정권의 권력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미디어와 의회를 장악함은 물론, 소련 해체 이후 엄청난 부를 획득한 신흥 재벌(올리카키)들이 차지한 자원사업을 다시 국영화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푸틴 정권의 활동상이 자세히 그려진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체첸 간 분쟁이 푸틴 정권에게 의미하는 바는 어떤 것인지, 남북정당회담에서 드러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놓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야심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주변 4강 중에서 미, 일, 중에 대한 전문가들은 많다. 당신의 '희소가치'를 좀 살리기 위해서라면, '러시아'에 좀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연구의 미답지들은 그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널려 있기에 5년만 공부하면, 자기분야의 국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 러시아이다. 당신에게 러시아를 권한다.

06. 0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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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인터뷰를 옮겨오도록 한다. 작년 봄 한겨레(2005. 05. 31)에 실렸던 것으로 대담자는 컬럼비아대학에서 고진의 강의를 듣기도 한 황종연 교수이다(<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저자 서문에는 두 사람이 인연이 잠깐 언급돼 있다). 동아시아 지성들과의 연쇄 대담 시리즈의 한 꼭지였는데, 타이틀은 "중/일은 '동양은 하나'라고 말해선 안돼"이며, 주요 화제는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이다. 작년봄에 읽을 때에는 굳이 옮겨오거나 할 생각이 없었지만,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보인다. 고진에 입문하시려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강조는 나의 것이다.

-고려대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긴키대 교수를 황종연 동국대 국문학 교수가 만났다. 황 교수는 <문학동네> 편집위원을 겸하면서 ‘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문학’ 등을 주제로 삼은 활발한 문학평론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라타니와 황 교수는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 한·일 민족주의 극복 등에 관해 대담했다. 

황종연= 동아시아론이 유력한 지역주의 담론이 됐다. 이런 지역주의 유행은 ‘중화 체제’ 붕괴 이후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한다. 어떤 중대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라타니= 세계사 전체에서 역사의 반복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120년 전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1880년대의 동아시아를 살펴보면 지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현재 중국은 제3세계 사회주의 국가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청나라 말기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로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제국주의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유럽의 공동체 형성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지역적 공동체화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동아시아는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갖고 있는 동시에, 중동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놓여 있다.

황종연= 동아시아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기 이전부터 나름의 교역 체제를 갖고 있었다. 핵심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 체제다. 여기서 유래한 국제적 교역 공동체가 현재 동아시아 경제의 강력한 통합 고리를 이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동아시아 경제 통합의 움직임과 관련해 과거 중화 제국 체제와는 다른 어떤 초국민국가적 질서가 가능한가.

가라타니= 조공은 구 제국의 세계적 모습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 두루 존재했다. 이때 구 제국주의는 국민국가를 확장한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다른 국민국가를 지배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각지의 국민국가 형성을 (저해한 게 아니라) 촉발시켰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는 각 국민국가들이 민족 자결을 주장하게 만들었다. 그 시기 한국, 중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독립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때의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경계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런 제국주의를 파괴하면서 현대의 국민국가가 성립됐다. 유럽의 경우에는 제국의 이념이 유럽 통합의 이념 아래 계속됐다.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분쟁하지 말자는 형태로 유럽연합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유럽은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을 형성했다. 나는 제국주의가 아닌 지역 공동체를 제국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동아시아에서 그런 제국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다.

-1880년대에도 여러 선택의 길이 있었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결합했다. 일본은 현재 중국 공산당과 북한에 의한 군사적 위협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종류의 위협은 없다. 그 위협은 외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위협으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또는 동아시아 제국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황종연=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에서는 국민국가 이념과 함께 지역 정치공동체의 이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근대 일본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담론 전통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의 아시아주의나 동양론은 제국주의와 얽혀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 공동체 주장을 들을 때면 역사의 악몽이 떠오른다.

가라타니= 어떤 슬로건이건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오카쿠라 덴싱이 말한 ‘동양’이라는 이상은 대단히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동양’은 그가 일본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인도의 독립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 시기의) 동양 또는 아시아는 하나라는 말은 오카쿠라라는 사람을 내쫓은 ‘국가’의 말이다. 그러니 말 자체가 아니라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동양이 하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그런 말을 하는 게 적절하지 못하다. 한국이나 대만이 아시아 공동체를 말하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장래에 형성이 된다면 그 열쇠를 쥔 것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이다. 북한과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5개 나라 가운데 스스로 시민운동을 일으킨 것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80년대 이후 일본에 출현한 포스트모던한 상황에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하나는 ‘백치의 천국’이 될 가능성, 다른 하나는 광신적 내셔널리즘으로 나아갈 가능성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가라타니=당시 내 예언이 맞은 것 같다.(웃음) 1980년대 일본인들의 행동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백치들의 천국’은 세계적 현상이 돼버렸다. 미국의 경우 한편으론 백치 천국이 되고 있고, 한편으론 기독교나 유대교의 근본주의가 퍼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것이다. 세계 근대 시스템 전체를 모더니즘이라 본다면, 이를 뛰어넘는 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지금 (서구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안에 국한된 것이다. 실제로는 이를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황종연= 지금 우리는 상호연관성이 전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여러 문화가 중첩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런 만큼 확고한 소속감과 충성심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다중적 소속감과 다면적 충성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코스모폴리턴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언젠가 한일작가회의에 참석해 칸트의 코스모폴리턴한 이상에 대해 말했었다.

 

 

 

 

가라타니= 작가회의에서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웃음) 칸트가 말한 ‘공공(public)’이라는 개념은 공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흔히 공공을 국가나 민족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칸트는 반대로 매우 ‘자기 중심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칸트는 한 개인이 가족이나 국가에 속해 살아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공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공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코스모폴리턴이다. 그래서 코스모폴리터니즘은 민족적·지역적인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를 부정하면 오히려 진정한 코스모폴리터니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국민국가를 극복한다고 해서 이를 부정하게 된다면, 오히려 보다 국가적·민족적인 흐름에 빠질 수 있다.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자기가 처한 위치를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이다.

황종연= 최근 한일 양국의 대중 언론은 일제히 내셔널리즘으로 복귀하고 있는 듯하다. 한일 양국의 민간에서는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내셔널리즘을 넘어선 연합이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라타니= 내셔널리즘의 문제는 각 국가 안에서 해결돼야 한다. 한국인이 일본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일본인이 한국 내셔널리즘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굉장히 모순된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상대의 내셔널리즘에 대해 언급하면서 상대의 내셔널리즘을 강화하고 있다.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난 2000년 한일 작가회의에 참석한 뒤에 나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한국을 비판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통해 일본에도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이런 신뢰 속에서 ‘연합’이라는 것이 가능하다.(정리 안수찬 기자)

06. 0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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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최신작인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 2006)의 표제 강연문을 나는 이미 <문학동네>(2004년 겨울호) 버전으로 읽은 바 있지만, 저자 자신이 단행본에 수록하면서 전면적인 개정을 가했다고 하므로 다시 읽어봄 직하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펼쳐놓는다. 원래는 2003년 10월, 고진이 몸담고 있던 긴키대학의 한 연속강연에서 행한 강의록인데, 출간을 위해서 꼼꼼하게 다시 가필을 한 듯하다.

재작년에 이 글이 번역/소개되면서 언론의 주목과 함께 문단에도 잠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데, 당시 한겨레 신문(2004. 11. 26)의 최재봉 기자는 '혁명을 팽개친... 문학은 끝장났다'라는 제목으로 그 내용을 정리/소개했었다. 새롭게 고진의 이야기를 따라가보기 전에 먼저 기사를 읽어본다(*를 한 코멘트와 강조는 나의 것이다).

-‘문학이 죽었다’는 말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오래 전에 확인된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다. 문학의 의연한 생존을 확신하는 이들에게 그런 선언은 양치기 소년의 되풀이되는 거짓말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문학의 죽음에 관한 풍문이야말로 거꾸로 문학의 생존 근거이자 양식이라는 주장조차 나오는 판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살아 있는가. 여기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글이 있다.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일본의 문학평론가 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63)의 <근대문학의 종말>이 그것이다. 이 글은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행한 강연을 풀어 쓴 것이다.

 

 

 

 

-가라타니의 논리는 ‘문학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영구혁명중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주관성)’이라는 사르트르의 정의에서 출발한다. 쉽게 말하자면 정치가 감당하지 못하는 혁명의 핵심을 문학이 담당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체적 비평과 포스트모던 문학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근대문학’은 이런 혁명적 역할을 담당했지만, 그것은 일본의 경우에 ‘1980년대에 끝났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미국은 더 일러서 1950년대로 시점이 올라간다.

(*)엄밀하게 말하면, 고진은 (가령 앨빈 커넌처럼) '문학의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근대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근대문학'이란 (근대)소설과 동의어이다. "따라서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것은 소설 또는 소설가가 중요했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러한 소설/소설가의 전범으로 고진의 들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가 '근본적으로 소설가'라고 간주하는 사르트르이다. 그는 문학이 "영구혁명중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이라고 주장했던 것. 그런 (과잉)부담으로부터 문학이 자유로울 때, 그건 곧 (근대)문학의 죽음/종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진이 보기에) 프랑스의 경우에는 1960년대 들어서 사르트르의 시대가 끝나고, '소설' 대신에 '에크리튀르' 같은 개념이 보급되면서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경우엔 1950년대이고, 일본의 경우엔 1980년대라는 것. 이러한 현상을 고진은 대중문화(텔레비전)의 보급/발달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제도적 상관물은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즉 문창과의 등장과 급증이다. 가령, 포크너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사창가의 포주가 돼 보라고 권유했지만, 요즘에 등단하는 작가들은 사창가 출신들이 아니라 대개가 문창과 출신들인 것. 하지만, 정작 고진이 문학의 종언을 실감한 것은 한국의 경우를 목도하면서라고.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가라타니 고진은 지난 2000년 서울에서 열린 한 문학행사에 참석해 ‘일본에서 문학은 죽었다’고 발언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는 문학평론가인 자신이 평론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인데, 그러면서도 한국에서만은 문학의 역할이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해 대조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 그는 한국에서도, 미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끝장이 났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문학이 사소해졌다는 것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일본문학의 죽음에 대한 고진의 선언과 짝을 이루었던 것은 (문학이 아닌) '상품'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브랜드의 세계화였다. 고진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90년대 이후 하루키는 한국 독자들도 열성적으로 읽기 시작했다는 사실. "한국에서는 문학의 역할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을 거라고" 예견했지만, 그건 오판이었던 것이다. 문학코너의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하루키의 작품들을 이런 관점에서 다시 읽자면, '문학 상실의 시대', '문학의 유령', '문학의 저편', '문학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식이 될 것이다. 하루키로선 그게 별로 유감스러운 게 아닌데, 그에겐 문학 대신에 위스키가 있으며, 게다가 브래지어 위를 흐르는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하루키의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문학의 급속한 쇠퇴는 1990년대 말에 일어나게 되는데, 그걸 징후적으로 드러내주는 작가는 김영하가 아닌가 싶다(그는 신경숙이나 윤대녕, 공지영 같은 '진지한' 작가들과 경향/유형을 달리하며 등장했다). '우리는 문학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문학)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다오', '엘리베이터에 낀 문학은 어떻게 되었나', '문학은 왜 (아직도 버티고 있나)' 등등. 문학의 죽음 이후의 문학? 그건 '포스트잇'으로서의 문학이며, '랄랄라 하우스'이다.

-가라타니는 문학은 자신에게 부여되는 지적·도덕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문학으로서 존립할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한 과제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면, 문학은 단지 오락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문학’은 오락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나아가 일본 만화처럼 세계적인 상품으로 팔리는 문학을 권장하기조차 한다. 다만, 거기에다 본디 의미의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말자는 것이다.

(*)고진의 표현을 빌자면, "문학으로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던 시대가 끝났다고 한다면,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도 소설가라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그저 직업적 직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물론 여전히 1억원 고료, 5천만원 고료의 소설을 쓰는 일은 가능하다. 더불어 가능한 것은 소설가가 미국과 일본에서처럼 문창과 교수가 되고 문화센터의 강사가 되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도 되는 일이다(잘 나가는 소설가에 국한된 일이긴 하지만). 그걸 '사회적 책임'으로 용인하는 태도가 가능하듯이. 하지만, '문학'이 윤리적/지적인 과제를 짊어지기 때문에 영향력을 갖는 시대는 기본적으로 끝났다. 그 잔영만이 있을 뿐이다, 라는 게 고진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고진의 말을 직접 옮기자면,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을어 주시기 바랍니다.(*우리의 처지에서 보자면, '한류'에 한몫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상당히 있습니다(*한국에서 팔리는 일본 소설의 경우를 고려해보면, 멜로계에도 상당히 있다). 한편, 순수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됩니다."

 

 

 

 

(*)즉, 작가가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어떤 종류의 '문학'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고나 쓰라는 것이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이지만, 90년대 중반 <문학동네>의 창간은 한국문단에서 '문학의 종언'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됨 직하다. '창작과 비평'이니 '문학과 지성'이니 하는 '문학시대'의 거창한 타이틀을 그들은 내걸지 않았다(그들은 잘난 체하지 않았다). 그냥 '문학동네'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들은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문학이 무엇인지 감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때문에 창간 10주년이 되는 해에 게재된 고진의 평문 '근대문학의 종말'은 일면 '문학동네'의 뒤늦은 마니페스토로도 읽힌다. 문학동네 여러분,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본디 의미의 문학에 충실한 사례로서 그는 역설적이게도 ‘문학을 그만둔’ 두 사람의 사례를 든다. 부커상 수상작인 <작은 것들의 신>의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그리고 <녹색평론> 발행인인 ‘전직’ 평론가 김종철씨가 그들이다. “위기의 시대에 한가롭게 소설 따위를 쓸 수는 없다”는 로이,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문학이 지극히 협소한 것만 다루게 되었”기 때문에 문학을 그만두었다는 김종철씨야말로 “‘문학’을 정통적으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반대로, “순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밖에는 읽히지 못할 통속적인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나 “그 존재가 문학의 죽음을 역력하게 증명할 뿐인 패거리”는 문학의 생존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그는 일갈한다. 그는 “역사적 이념도 지적·도덕적인 내용도 없이 공허한 형식적 게임에 목숨을 거는” ‘일본적 스노비즘’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면서 “문학을 떠나서 생각하라”고 결론 삼아 제안한다.(*기사는 여기까지이다.)

 

 

 

 

(*)먼저, 로이 이야기: "그녀는 처녀작으로 (부커)상을 받은 후, 소설은 쓰지 않고 인도에서 댐건설 반대운동, 반전운동 등으로 분주합니다. 발표하는 저작도 그런 종류의 에세이뿐입니다. 구미에서 인기를 얻은 인도 작가는 아메리카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화려한 문단생활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 소설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로이는 자신은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 쓸 것이 있을 때만 쓰며, 이런 위기의 시대에 무사태평하게 소설 따위를 쓰고 있을 수는 없다는 식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로이의 언동은 문학이 책임지고 있던 사회적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김종철 이야기: "김종철이라는 고명한 문학비평가는 문학을 그만두고 생태운동을 시작하며,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할까봐 하는 말이지만, 그는 최근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읽었는데, 이번이 네번째라고 말하는 타입의 인물입니다(*즉 대단한 문학애호가라는 것). 나는 왜 문학을 그만 두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문학을 했던 것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 그런 것이 문학이라면 내게는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동감을 표했습니다."

(*)문학비평가 김종철의 경우를 사례로 제시하기 이전에 고진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의 학생운동이다. 노동운동이 탄압받던 독재시대에 강렬한 정치운동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언 한국에서의  학생운동도 실제의 정치운동,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레 종언을 고하지 않았느냐고(물론 이건 고진의 탁견이 아니라 그냥 상식이다). "한국에서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그것이 노동운동이 불가능한 시대, 일반적으로 정치운동이 불가능한 시대의 대리적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통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 학생운동은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문학도 그것과 닮았습니다. 실제 한국에서 문학은 학생운동과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학이 모든 것을 떠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가 지나갔고, (문학으로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적어도 현저하게).

(*)이미 대학의 총학생회가 비운동권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는 건 뉴스거리도 되지 않지만, 투표율 저조로 투표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겨우겨우 당선자를 낸 올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는 노골적으로 反운동권을 표방하고 나선 '30대 인디밴드 가수'였다('학생운동의 종언'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동아일보(06. 04. 15)의 분석기사는 이렇다. 강조는 나의 것이다.

 

-대학 총학생회(총학)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2일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황라열(30) 씨의 독특한 이력이 알려진 뒤부터다. 현실적인 공약을 내세운 인디밴드 가수 출신의 황 씨는 거대담론을 외쳤던 운동권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탈(脫)이념’ 현상 가속화=이번 서울대 총학 선거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대학 총학 선거에서도 비운동권 출신 후보가 당선됐다. 이는 몇 년 전부터 급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한 ‘탈이념’ 현상이 갈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각 대학의 동아리들도 대체로 이 같은 현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치적, 이념적 이슈보다는 학교생활이나 취업 등과 관련된 학내 활동에 학생들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 여기에 특히 올해 들어 두드러진 현상은 총학 구성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가 급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총학은 지난해 11월 ‘총학 선거에서 투표율이 50%를 넘겨야 한다’는 규정에 걸려 구성이 무산됐다. 이후 이달 4일부터 재선거를 한 뒤 투표 기간과 시간까지 연장하면서 결국 최종 투표율 50.6%로 가까스로 구성됐다. 고려대 총학도 지난해 투표율 저조로 총학 선거가 무산되자 재선거를 하고서야 투표율이 커트라인을 통과한 경우다. 52.7%라는 투표율 역시 학교 측에서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병설 보건대 2, 3학년생 표를 제외하면 51.1%로 떨어진다. 서울시립대와 동국대의 경우 지난해 저조한 투표율로 총학 선거가 무산돼 총학 없이 1년을 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이 이념 추구든 현실적 공약이든 총학 선거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旻)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의 정치적 관심사와 개별 사안에 따라 ‘∼빠’, ‘∼안티’ 등의 형태로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다”며 “자기 관심사에 따라 조직하고 어울리는 대학생들이 굳이 총학 조직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학 학생회, 대안 찾기에 나섰지만…=이에 따라 아직 뚜렷한 지향점은 없지만 일부에서는 운동권도, 비운동권도 아닌 ‘제3의 대안’을 찾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001년 이후 ‘명예혁명’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비운동권을 자처한 한양대의 경우 5년째 총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학 총학생회장인 신재웅(23) 씨는 “당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 대항하며 비운동권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운동권도 비운동권도 아니다”라며 “기존 학생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봉사, 학내 복지 개선 활동 등이 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주요 요소”라고 설명했다.

 

-건국대 손석호(26) 총학 집행위원장은 “학생운동 1세대가 정치투쟁이 목적이었다면 2세대는 학내 문제에 집중했다”며 “이제 3세대 학생회는 학생들과 소통하고 학내 문제를 해결한 뒤 학생들과 관련된 정치 문제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宋虎根) 교수는 “투표율은 떨어지고 선거 형태도 다양해지는 것은 자기 계발, 개성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요즘 학생들의 특성이 집단운동 형태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소집단과 집단운동의 정체성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날씨도 궂은 날이지만, 대학가에서는 (오늘) 4.19 기념행사도 대거 취소하거나 축소하고 있는 형편이라고(중간고사 기간과 겹치기 때문에!).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은 지난 17일부터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등록금 동결 등의 이슈르 내세우며 단식농성중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런 게 대학가의 현실이다. 요는 정치와 정치참여 방식이 변화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으며, 예전과 같은 학생운동은 더이상 그러한 시대의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근대문학은 끝났다." 이건 오버가 아니다.

한국문학의 경우 4.19세대와 함께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어야 하지만, (일본과 달리) 얼마간 연장된 것은 학생운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80년 광주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80년대 한국문학은 '위대한' 문학이다. 이건 그 문학의 퀄리티와는 다소 무관하다. 문학의 위대함은 문학성과 같은 내적 자질이나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외부'에 의해 규정된다. 시대가 위대한 인물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시대는 위대한 문학을 요청한다. 이런 시대에는 문학에 '과부하'가 걸린다. 우리의 80년대가 그러했다.

 

 

 

 

역설적인 것은 그러한 '과부하'로부터 도망가는 문학까지도 위대함의 아우라를 나눠갖는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문학시대'의 마지막 비평가라 할 고 김현(1942-1990)의 비평이 위대했다고 생각한다(그는 자신이 생의 마지막까지 4.19세대로서 사고하고 글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요구에 복무하는 문학에 맞서 문학의 자율성을 끝까지 옹호하고자 했지만, 그러한 긴장관계 바깥의 '통속적인' 문학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의 문학주의적 태도를 '식물성의 저항'으로 요약하고 있는 작가 이인성도 그의 문학적 성취와 무관하게 대단한 작가이다. '낯선 문학 속으로', '문학의 한없이 낮은 숨결', '마지막 문학의 상상' 등이 그가 문학시대,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운동으로서의 문학시대'에 고집스레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인성의 소설들이 맥이 풀리게 되는 것은 90년대 접어들면서 문학에 대한 시대적, 정치적 과부하가 더이상 걸리지 않게 되면서부터이다. '미쳐버리고 싶은' 시대, 하지만 '미쳐지지 않는' 시대에, 그의 문학은 그냥 '강 어귀에 섬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와는 대비되는 것이 80년대의 대표작가에서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나리오 작가/조감독을 거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는 이창동이다. 그는 문학의 시대가 곧 물건너간다는 걸 예감했던 것일까?(최근의 사례로는 역시나 작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재중 감독 장률이 있다.)

 

 

 

 

고진에 따르면, 과거 네이션 형성에 기반이 되었던 근대소설은 더 이상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 해서,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면, 소설을 쓰는 것보다 영화를 만드는 쪽이 빠르겠죠. 혹은 만화가 좋을 것입니다. 요컨대, 활자문화가 아니라, 시청각으로 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쪽이 대중이 접근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라고 충고한다. 가령, 새로운 시대의 도스토예프스키를 이젠 영화나 만화에서나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게 억측만은 아닌 것. 만화를 좀 아는 지인은 우라사와 나오키,  미우라 켄타로, 후루야 미노루 등을 내게 권했다(일찍이 루카치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고 공언한 바 있으니, 그는 소설의 언어로 만화를 그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만화의 시대인가?(물론 올해는 축구의 해이지만.)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의 문제가 문학이나 소설의 차원에서만 사고될 수 없으며, 그렇게 돼서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문학이나 소설만을 생각하면 잘 이해되지 않으며 의미도 없습니다. 원래 근대라는 개념만 해도 매우 불명료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근대비판이나 포스트모던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더욱 불명료해질 뿐입니다. 이런 문제는 세계자본주의의 전개 속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66쪽) 하지만, 그의 사고를 따라가는 건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분량상/시간상 '근대문학의 종언'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06. 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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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4-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아룬타티 로이나 김종철의 태도가 방관자의 태도(더러운 거 몸에 묻히고 싶지않은)처럼 보입니다. 문학이야말로 "협소"한 것들의 설왕설래는 아닌지... 김영하의 경우 오히려 저홀로 발랄해지려는 게 안쓰러울때도 있습니다. [검은꽃]은 그이의 "발광"이었다는 생각이...

로쟈 2006-04-1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관자적 태도'라는 건 좀 모호한 표현 아닐까요? 두 사람 다 문학에 기대했던 사회적 역할이 막혀버리자 다른 방식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것인 텐데요. 더불어, '협소한 것들의 설왕설래'라는 건 문학 이후의 문학 아닐까요? 역사적으로 문학이 대단했던 시대가 있었고(문학이 잘 나서가 아니라 다만 시대적 조건이 그러한 문학을 요구했었던 것이지만), 다만 그 시대가 이제는 '과거'라는 게 문학종말론의 요지입니다...

twoshot 2006-04-1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관자의 태도'가 모호한 표현이긴 합니다. 헌데 제가 보기에 아룬다티 로이나 김종철이나(저 '녹색문학'으로 가버린) 어째 '문학'을 떠나버린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투철함'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정치적으로 저도 충분히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사소함'들을 애써 '괄호'치려는 것처럼 보일때가 있었습니다.

로쟈 2006-04-1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나버린 사람'처럼'이 아니라 (잠정적으로라도) 떠난 사람들 아닌가요? 그리고,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더불어 고진이 문제삼는 것은 문학의 사소화, 오락화이구요(그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twoshot 2006-04-1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횡설수설한 김에 마저 적겠습니다. 문학의 종언이다...그렇다면 영화도 마찬가지..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대가 다시 오지않을 것 같은 것처럼 타르코프스키나 베리만의 시대도 끝났다..는 식의 표현은 그저 탄식이나 안타까움으로 충분하다는 거죠.고진이 " 한국에서도, 미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끝장이 났다는 견해를 내놓"았다고 하는데(여기서 제가 꼬였습니다) 이런 표현은 그저 오만으로만 보입니다. 그 사람 한국말 할 줄아나요? 그럼 한국문학은? 한국문학에 대한 상찬은 그럼 그저 '주례사'였던건가요? 무슨 '종언'을 말할 게 아니라 누구처럼 꾸준히 '월평'을 쓰는게 더 생산적으로 보입니다.

yoonta 2006-04-19 0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문학이 "자신에게 부여되는 지적·도덕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문학으로서 존립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2000년대 작가?는 바로 귀여니가 아닐까요? ..그의 글들을 보면 정말 저게 문학인지 일기장인지 혼동스럽죠..
그런데 제가 궁금한게 뭐냐면 문학이 죽었다면 그 이후에 나오는 글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오락거리로서 심심풀이로서 기능하는 문학이 (근대)문학이 아니라면 그러한 (근대)문학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하더라도 문학이라는 자기표현행위자체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죽었다"기 보다는 단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일 뿐이라고 보는게 정확하지 않을까요? 때문에 문학의 사회적 문화적 기능이 변화되는 것일 뿐인데 그것을 보고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좀 오바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비록 그가 문학종말론을 이야기함으로써 강조하고자하는 "시대의 변화"에 대해 상당부분 동의하긴 하지만요.
그리고 앞으로 김영하나 하루키나 귀여니같은 작가들이 점점 더 늘고 문학의 주류로 자리잡는다고 하더라도 사르트르와 같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하리라고 봅니다. 물론 그처럼 사회적 대중적 파급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더라도요.

p.s.아참 그리고 한가지 제안을 드리면 페이퍼를 읽을때 로쟈님 코멘트와 인용글이 혼동될때가 많거든요? 두가지를 글자체를 달리하던가 색을 바꿔서 써주시는게 어떨까요?..로쟈님글을 즐겨보는 애독자로서 종종느끼는 불편함이 있어 한번 말씀드려봅니다. ^^

로쟈 2006-04-1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다 문학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고 계시군요. 이미 철학의 종말, 역사의 종말, 인간의 종말까지 다 유행담론처럼 지나가 버린 상황에서 '문학의 종말' 정도 언급되는 게 기이할 것도 없지 않을까요? 문학의 시대-영화의 시대-TV의 시대-멀티미디어 시대-모바일시대(?) 등으로 이행해가고 있다는 게 억지일까요? 보다 자세한 제 의견은 본문에서 개진하겠습니다.

yoonta님/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한데, 인용과 코멘트에 대한 제 구분은 (-)와 (*)입니다. 최소한의 구분이지만, 눈에는 띄게 해놓고 있습니다. 글에 칼라는 입히는 건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

그리고, "제가 궁금한게 뭐냐면 문학이 죽었다면 그 이후에 나오는 글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오락거리로서 심심풀이로서 기능하는 문학이 (근대)문학이 아니라면 그러한 (근대)문학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하더라도 문학이라는 자기표현행위자체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죽었다"기 보다는 단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일 뿐이라고 보는게 정확하지 않을까요?"라고 하신 건 고진의 주장과 배치되지 않습니다. 고진이 말하는 건 '정치운동으로서의 근대문학의 종언'일 뿐이니까. 덧붙이지면, 그 종언 이후의 '오락거리로서, 심심풀이로서 기능하는 문학'이 이전의 후광을 자기것인 양 잘난 체하지 말라는 것뿐입니다...

니브리티 2006-04-1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이 잘난체 하지 마라! 라고 말했다면 아마 하루키는 꼰대의 훈계 정도로 흘려버리지 싶네요.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진정성의 소비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요. 다만 그것이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제스처(이미 죽은 근대문학식 제스처vs쿨한 제스처)의 형태로 나타날 뿐이지 둘 모두 '삶의 진정성'을 옹호하긴 마찬가지죠. 근데 그들이 옹호하는 '삶의 진정성'이라는 것이 사실 허구라면? 아니 그들이 말하는 진정성이 사실은 발화와 동시에 소비되는 방식(그러나 문화적 축적과 성장이라는 생산적 소비양식으로서의 소비)일 뿐이라면... 말이죠.

니브리티 2006-04-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로쟈님 지인께서 권한 만화는 그 세계의 입문용으로 꽤 괜찮아 보이네요. 세 명 모두 일정정도의 꽤 큰 범위의 매니아를 거느리고 있죠. 요즘 저는 <충사>라는 만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기생수>나 <에덴>같은 중급고전들도 대단한 포스를 가지고 있죠. 만화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해요...^^

로쟈 2006-04-1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브리티님마저 무궁무진한 만화의 세계에 빠져계시다면, '근대문학의 종언'은 그냥 사실 확인 정도의 의미만 갖겠습니다(아무런 센세이션 없이).^^ 제가 고진에게 공감하는 것은 제스처나 진정성의 문제가 아닌 객관적 정세(=역사성)에 근거하고 있어서입니다. 저는 그게 고진의 파워라고 생각합니다.

사량 2006-04-19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플랭카드... 어이없네요. '탈이념'이란 게 몰상식, 몰염치, 무례 등등과 같은 뜻일까요.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에 대한 혐오가 요즘에는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어요. 대학에서든 인터넷에서든 비아냥거릴 수 있는 자유도 사실 어느 날 하늘에서 문득 떨어졌던 게 아닌데 말입니다.

로쟈 2006-04-2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연대에 정치가 '현실'이었던 만큼 요즘의 反정치, 혹은 '다른 정치'도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문학과 2000년대 문학이 다른 것처럼...(그리고 플랜카드가 걸린 곳은 고대 같은데, 일부 총학 학생들의 점거농성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이 출교' 처분을 받았다고 뉴스에 크게 뜨는군요. 교권을 무시했다고.)

니브리티 2006-04-1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문학하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는 경우가 있어요. 특히 서사적 틀 안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영상매체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그렇지만 그 불안이 어떤 경로로 유포된 것인지는 뻔히 보이는 그런 것)과 불만 말이죠. 그런데 들뢰즈가 영화와 철학을 함께 펼쳐낼 때 저는 거기서 어떤 장르적 우위나 우월감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정말 고진이 정세판단을 했다면 문학의 종언이 아니라 근대의 종언이었겠죠. 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했었는데 거기서 배운 것이라곤 역사=진실이라는 등식의 허구였습니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실망)과 주관적 보상을 넘어선, 진리라고만 말할 수 없는 어떤 근본에 대한 강력한 주장 같은 것을 저는 믿습니다.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판단컨대 고진이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은 <문학의 죽음>이 아니라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해 본적도 없는데 혁명의 시대가 가버렸다는 말이 씁쓸하게 들리는 것만큼이나, 제가 종언을 선언으로 읽고자 하는 저를 문학근본주의자로 이끌고 갈 수도 있고 그에 따라 끌려가고 싶기도 하는 욕망을, 또한 부인하지는 않지만... 이라고 써놓고보니 대책없는 낭만주의자로 보이는군용...ㅜ.ㅜ

로쟈 2006-04-20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직접 읽어보시는 편이 빠를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브리핑'은 얼마간 축약하고 단순화시키니까요. 고진의 주장은 특정한 한 종류의 문학, 하지만 역사적 근대에 지배적이었던 그 문학이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므로, 문학 일반의 죽음과는 무관합니다. 물론 그때의 '문학'이 일반적으로는 '근대문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때의 종언은 애도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비관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문학이 해오던 것을 영화니 만화니 뭐니 하는 다른 영역, 다른 매체가 대신한다고 해서 크게 억울하거나 분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물론 그때도 어떤 영화인가, 만화인가가 문제가 되겠죠. '통속적인' 영화/만화를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영화하는 친구들의 오해처럼). '늙으면 죽어야지'란 속된 표현도 있는데, 현장에선 뛰기엔 (근대)문학은 충분히 늙었습니다. 지금 교태를 부리며 번성하는 건 다른 문학이죠. 아직 '잔영'으로 일부 남아있는 근대문학, 즉 '정치'나 '종교'로서의 문학을 약간 빼면...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고진이 말하는 근대문학은 '문학은 위대하다' '문학은 전부다'라고 말할 때의 그 문학입니다. 요즘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이 뭐 별거나' 아니면, '고게 좀 재미있네, 귀엽네' 수준이죠. 후자를 전자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waits 2006-04-22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어려워라. 저는 조용히 추천하고 퍼갑니다. 늘 감사해요...^^;;

2020-04-18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