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의 전시회 소식을 접하고 주최기관인 소마미술관의 보도자료를 옮겨오려고 했으나, 오마이뉴스에 더 잘 정리된 기사가 있기에 그걸 대신 가져온다. 작성자는 김형순 기자이며 나는 기사에 따로 손대지 않았다. 이전에 한번 언급한 바 있지만(<지의 논리>와 관련하여), 나의 관심은 소쉬르의 언어학과 그와 동시대인인 클레의 방법론 사이의 유사성, 혹은 상관성에 놓여 있다(매개가 되는 것은 음악, 음악적 컴포지션이다). 그럴 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컴포지션 추상화들이다. 아무려나 국내에서는 최초의 전시회라고 하니까 언제 시간을 좀 내야겠다. 아래는 소마미술관이 내건 간략한 작가 소개이고(강조는 나의 것), 바로 이어지는 것이 오마이뉴스의 기사이다.

-환상적이고, 재치 있으면서, 때로는 괴기스럽기도 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준 파울 클레(1879-1940)는 현대 미술가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고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이다. 스위스 베른 근처에 있는 뮌헨부흐제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화가였으며, 1920년대에는 독일의 조형미술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폭넓은 독서를 하였고, 철학, 식물학, 생물학, 인류학 등 학문 전반에 대해 광범위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화가에게도 '폭넓은 독서'는 필수적이다). 그에게 있어 풍부한 이미지의 원천은 자연이었다. 그는 바다나 산, 들을 찾았고 조개껍질, 식물, 꽃, 나무 등을 관찰했다. 또 캔버스뿐 아니라 삼베, 천, 거즈, 나무판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으며, 유화, 템페라, 수채, 과슈, 동판, 드로잉 등 다양한 기법들을 실험했다.

-클레의 작품은 완전히 추상적이지도, 완전히 형상적이지도 않다. 그의 작품은 고도로 숙련된 드로잉 기법을 보여주는 한편, 색채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소품들로,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심원한 지성으로 파악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읽고,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원초적인 상징과 형태를 창조해냈다. 그의 미술은 시, 음악, 그리고 꿈에 가까우며, 한눈에 들어오는 미술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게 하는 미술이다. 마치 하나하나가 작은 보석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무려 9,100여 점에 달하는 클레의 작품들은 몇 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우리만큼 다양하고 다면적인 미술세계를 이룬다.

 
▲ 올림픽공원 옆 미술관, 마치 영화 제목 같다. 현대적 건축물이 조각 공원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 뒤로 움직이는 백남준 작품 '쿠베르탱'이 자리 잡고 있다.
ⓒ 김형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미술관이 이름을 바꾸고 새로 단장한 '소마(SOMA)미술관'에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동화적 환상과 다양하고 실험적인 형태와 색채를 표현한 20세기 미술의 거장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눈으로 마음으로' 전이 오는 7월2일까지 국내에서 처음으로 판화, 유화, 수채화, 드로잉 등 약 60점을 선보이며 열린다.

 
 
  파울 클레(Paul Klee) 생애 및 프로필  
 
 
 
▲ 아틀리에에서 작업에 여념이 없는 파울 클레
1879 12.18 스위스 뮌헨부흐제 출생
1898 뮌헨 이사.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
1906 릴리 슈툼프와 결혼
1910 첫 전시회 56점(베른, 취리히, 바젤 미술관)
1912 F. 마르크, W. 칸딘스키와 함께 '청기사 그룹전' 참가
1914 마케 등 친구들과 튀니지 여행
1920 '클레 회고전'에 362점 출품(골츠 갤러리)
1921 '바우하우스'에서 강의 시작
1925 '바우하우스' 데사우로 이전
1929 '탄생 50주년전'(뉴욕 근대미술관, 베를린 국립미술관)
1931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교수
1933 나치 압력으로 교수직에서 해고
1935 희귀병인 진행성 피부경색증 발병으로 다작 시도
1937 나치가 주관한 '퇴폐미술전'에서 100여점 압류
1938 스위스 시민권 획득
1940 6.29 스위스에서 사망
 
 
파울 클레는 우리가 익히 들어왔고 미술 교과서에서 많이 봐왔지만 뚜렷한 대표작이 연상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술의 본질을 추구했는지 모른다. 프랑스에서는 그를 '그림의 시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지적인 요소와 함께 시적 상징성과 타고난 음악적 감수성이 그림 속에서 잘 구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울 클레는 스위스 베른 근처 뮌헨부흐제(Münchenbuchsee) 음악가 집안에서 1879년 12월 18일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 클레는 성악가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 음악 교사가 된 사람이었고, 어머니 마리아 프리크도 슈투트가르트 음악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후에 결혼한 릴리 슈툼프도 피아노 교수였다.

그는 이렇게 음악의 한복판에서 살았지만 최종적으로는 미술을 택했다. '그림 한 점에 대하소설이 담겨 있다'든가 '예술의 꽃은 단연 미술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는 결국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음악을 포함하여 모든 지식과 경험을 미술 안에서 통합시켰다.

그의 작품이 조금 괴기하고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선묘와 추상적 기법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이 서정적 분위기 연출하는 것은 그가 기본적으로 낭만적인데다가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적 요소가 공상적이고 우화적인 요소로 승화되어 그림 속에 스며 있기 때문이리라.

 
▲ '미래의 남자(1933, 좌)', '비탄에 빠짐(1934)' 클레 작품은 독특한 선묘와 구도와 색채 이 모든 것들이 신비하고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하여 관람객 마음을 사로잡는다. 파울클레미술관 소장
ⓒ 김형순
 
갖가지 구도와 색채 실험

클레는 평생 일기를 거르지 않고 쓸 정도로 성실했고 지적 호기심을 불태우는 학생처럼 살았다. 철학, 식물학, 인류학 등 학문 전반에 대해 폭넓은 독서와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산과 바다, 꽃과 나무와 물고기 등 주변의 사물을 예의 관찰하였고 그 속에서 풍부한 이미지를 발굴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르네상스 화가들처럼 해부학에서 푸생이나 다비드, 밀레 등 고전주의 작가에 이르기까지 탐구했다. 또한 이글거리는 태양 이면에 인간의 번뇌를 표현한 고흐, 현대 회화를 연 세잔, 야수파의 선각자 마티스, 북유럽의 표현파 특히 입체파를 한 단계 끌어올려 오르피즘의 창시한 들로네 등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 '별들과 함께(1923)' 판지 위에 종이에 연필과 수채. 클레의 9천여 점 작품이 다 천차만별이지만 이 작품도 이채롭다. 엷고 진한 색채 간 대조와 어린이처럼 장난기 넘치는 해학과 유머가 돋보인다. 파울클레미술관 소장
ⓒ 김형순
 
그림 재료도 캔버스, 삼베, 천, 거즈, 나무판 등 복합 매체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안료로는 유화는 물론, 불투명한 수채 물감인 구아슈, 동판, 드로잉, 그리고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 썼다는 템페라 물감까지도 두루 시도했다.

무려 9146점에 달하는 작품은 제작한 클레는 사물의 원리를 다각도로 실험하고 검사하는 과학자 같은 작가로 보인다. 또한 그는 자신의 그림 하나도 모방하지 않으면서 다르게 그린 것 같다. 그는 이런 각고 끝에 그때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미술의 공간성 실험이나 시각적 확대, 현대적 조형성을 창조하여 20세기 미술계의 거장이 되었다.

클레는 1912년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인 바실리 칸딘스키 및 프란츠 마르크와 알게 되어 상호 교류했으며 그들의 전위파 그룹인 '청기사파(Blaue Reiter)' 전시회도 참가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쾰른, 베를린 등 유명 사립미술관에서 초대를 받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 '언덕(1914, 하좌)', '색채 띠에 연결된 추상적 색채의 수채(1914, 하중)', '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1916, 상좌)' 글씨를 채색화로 형상화한 작품, '여러 층의 작은 구조물(1928, 우)' 튀니지 여행 후 채색의 확연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파울클레미술관
ⓒ 김형순
 
2년 후 30대 중반이 된 클레는 겨우 12일간 짧은 여행이었지만 어린 시절 친구인 루이 무아예와 동료 화가인 마케와 함께 튀니지로 여행을 가게 되는데 지중해 해안의 이글거리는 색이 주는 눈부신 광채에 반해 버렸다. 이 여행은 그의 미술을 자연 그대로의 현상에 대한 묘사로부터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는 더 강력한 추상적 화풍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본다면 극과 극이 통하나 보다. 아프리카의 가장 원시적 색채와 미술이 서구의 가장 전위적 미술의 원형이 된 것이다. 하긴 피카소나 마티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첨단 미술을 대표하는 입체파나 야수파도 결국은 아프리카 부족의 원시 조각이나 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 '수염이 있는(1939 좌)', '빛에 비추어진 나뭇잎(1929)' 두 작품이 10년간의 간격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구상에서 보다 확대된 추상으로 변모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추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미술 개념에 더 가까우리라. 파울클레미술관 소장
ⓒ 김형순
 
보이지 않는 색채와 소리까지 그리기

이는 이번 전시회 부제인 '눈으로 마음으로'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냥 '눈으로 보는 관점'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관점'으로 나누어 봐야 한다는 점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2층 전시실에 붙어 있는 클레의 명구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는 말과 전시 표제어는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대한 해석을 이 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박윤정씨에게 부탁드렸더니 그는 "그림은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심상의 표현"이라는 명쾌하고 멋진 해석을 내놓았다. 클레다운 이 명구에 전문가다운 해석이다. 이런 해석을 듣고 보니 이런 말이 떠오른다. "현대 미술은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더 나아가 들리지 않는 것도 그리는 것이다."

 
▲ '피라미드(1932)' 판지 위에 종이에 펜과 수채.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넘치는 작품으로 선과 면, 형태와 색채만으로 조형 효과를 최대화했다. 파울클레미술관 소장
ⓒ 김형순
 
위에 '피라미드(1932)'를 보게 되면 사람의 이목구비가 약간 보일 정도로 완전한 추상화는 아니지만, 이목구비를 그대로 그리는 것보다 선과 면이나 삼각형이나 사각형 같은 형태 그리고 여러 밝기의 붉은 색, 고동색 등 색채를 통해 사물의 이미지를 더 실감나게 보여준다. 바로 이런 것이 기하학적 구성과 추상적 미술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나치 박해와 불치병과 투쟁

한편 40대에 들어선 클레는 '바우하우스' 조형예술 학교에서 후배 양성에 힘쓴다. 당시 그의 별명은 '바우하우스 부처'였다고 하니 그의 미술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구도자적이었을 거라는 추리해 볼 수 있다. 이 학교가 바이마르 공화국 언론과 당시 따가운 여론에 밀려 1925년 문을 닫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결국 1931년 대학을 뒤셀도르프로 옮겼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아 1933년엔 나치에 의해 해임된다. 게다가 1937년 나치가 주관한 '퇴폐미술전'에서 102여점 자신의 작품이 압류하는 등 나치 탄압이 극에 달하자, "독일은 이르는 곳마다 시체 냄새가 난다"라 말을 남기고 스위스로 귀화했다. 그는 본의 아니게 가장 잔인한 한 시대의 생생한 증언자가 되었다.

 
▲ '눈(1938)' 삼베에 파스텔. 캔버스 대신에 삼베를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그는 이렇게 그림 재료에서도 두루 다각적 실험을 시도했다. 한눈으로 보이는 것을, 다른 한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 같다. 파울클레미술관 소장
ⓒ 김형순
 
1938년 작 '눈'이라는 작품은 당시 분위기를 풍긴다. '한눈으로 보고 다른 눈으로 느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들리지 않는 것도 들어라'라는 메시지도 포함된 것 같다. 제작 연도로 봐서 스위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로 나치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했을 것 같다.

클레는 말년에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희귀병인 피부경색증를 보이자 반대급부인지는 몰라도 놀라운 정도로 많은 작품을 쏟아 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초기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선묘와 다르게 병마로 손길이 무뎌지면서 선과 면이 단순해지고 굵어졌지만 원숙하고 중후한 아름다움으로 넘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그림자를 작품 전반에 담은 듯하다.

 
▲ '밤의 암탉(1939)' 작고 1년 전 작품으로 검붉은 바탕에 굵고 검은 선이 더욱 완숙해 보인다. 작가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에게도 감지되는 것 같다. 이 그림은 구상적 요소를 해체하여 추상적 바탕에 담았다. 추상파울클레미술관 소장
ⓒ 김형순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클레 그림은 때론 추상 화가답지 않게 고전적 느낌을 준다는 지적도 받는데, 이는 그가 미술과 음악, 추상과 구상, 서구적 미술과 비서구적 미술, 천진난만함과 괴기함, 차가운 지성과 따뜻한 서정 등 경계를 넘나들며 퓨전적 요소를 많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클레는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나중에 배워야 하는 작가라고 이 미술관 큐레이터 박윤정씨는 귀띔해 준다.

 
▲ '소문(1939)' 판지 위에 페이스트에 유채. 극도로 단순화한 형상과 구도를 띠고 있으며 돌고 도는 소문처럼 아래 작은 바퀴처럼 인생의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생사화복을 초월하여 말년의 대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그림 같다. 파울클레미술관 소장
ⓒ 김형순
 
한국 작가 중 그의 영감을 많이 받은 분이 장욱진 화백이 아닌가 싶다. 새와 나무가 많이 등장하는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에서 만나는 넉넉하고 한가로운 마음과 우화적이고 해학적 형식으로 표현한 장욱진 그림은 들여다볼수록 반추상이긴 하나 도교 풍의 한국판 클레 같다.

클레의 '보이게 하는 그림'과 장욱진의 '마음의 눈으로 그리는 그림'이 동서를 넘어서 서로 통한다고 생각하니 클레가 먼 나라 작가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작가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06. 04. 18.

 

 

 

  


P.S. 오래전에 호암아트홀에서 있었던 장욱진 전시회가 기억난다. 관련서와 기념품을 샀던 기억도. 그리고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던 기억도. 10년도 더 된 기억 같다. '도쿄풍의 한국판 클레'라... 그러고 보니, 닮은 점도 없지 않다. 한데, 클레도 자기 가족의 그림을 그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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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4-18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욱진 전시회 기념 도록과 슬라이드 필림을 갖고 있습니다.
그 때 님과 제가 같은 공간에 있었겠군요.
아참, 클레 이 화가를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강금실씨가 좋아한다죠? 아마두.
일단 퍼가요

로쟈 2006-04-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같은 공간에 있었다니 뒤늦게 영광입니다.^^

비자림 2006-07-1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울 클레의 그림을 좋아해요. 살짝 얻어 가서 찬찬히 다시 읽을게요. 감사합니다.^^
 

최근일자 교수신문(06 04. 12)의 해외동향란에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전성시대에 관한 특파원 보고가 실렸길래 여기에 옮겨놓는다. 필자는 빌레펠트대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정광진 통신원이다. 루만은 흔히 20세기 후반의 독일 사회학을 하버마스와 양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국내에서의 번역/소개는 그 지명도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소략하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그의 주저들이 소개되기를 기대한다(개인적인 관심은 그의 예술체계론이다.)  

-바야흐로 ‘루만의 전성시대’다. 니클라스 루만(1928~1998)은 생전에 6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와 30여년에 걸쳐 쌓아올린 체계이론으로 하버마스와 함께 독일의 대표 사회이론가로 명성을 누렸지만, 체계이론에 기초한 사회학 연구는 타계후 더 화려하게 만개하고 있다.

-루만과 체계이론에 대한 반향을 최근 출간된 서적과 논문으로 살피면 크게 다섯 줄기로 볼 수 있다. 우선 루만의 유고출간이다. 10여권 정도 나왔는데, 최근 것으론 <교육학 논문집>(2004)과 강의녹취록인 <사회이론입문>(2005)이 있다. 둘째, 이론 소개서들이다. ‘체계이론 입문서 시장’이라 할 정도로 루만이론을 쉽게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삽화와 도식을 곁들인 <쉽게 이해하는 루만>(2003)이 인기다. 셋째, 루만이론의 각론을 다른 학문·이론과 비교하는 것이다. 가령 루만의 정치이론에 관해 지난 3년간 발간된 연구서만 6권에 달한다. 넷째, 체계이론 자체를 발전시킨 연구들이다.

-루만은 ‘루만학파’를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스스로를 한명의 체계이론가로 여겼던 것. 제자그룹이 있긴 하나 루만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체계이론을 심화·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주자로 D. 배커, R. 슈티히베, P. 푹스, A. 나세히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루만과 다른 접근법으로 혹은 그가 자세히 다루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연구서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끝으로, 구체적 사회학 연구에 체계이론을 적용시키는 경우다. 이에 해당하는 문헌은 워낙 다양한데, 특기할만한 점은 경험적 연구의 부재라는 체계이론에 대한 대표적 비판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만한 연구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연구는 대부분 ‘조직’이나 ‘상호작용’을 분석단위로 삼고 해석학적 방법론을 사용한다. 루만은 사회에 대한 분명한 이론없이 데이터를 모으고 해석하는 경험적 사회학과 고전의 뼈다귀만을 갉아먹고 있는 이론사회학 모두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에 필생의 과제를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합적 이론을 세우는 것으로 삼았다.

-루만과 후학들의 노력으로 체계이론은 어느때보다 정교해졌지만 경험적 연구와 친화성을 갖추는 일은 여전히 중요과제로 남아있다. 이를 해결 못한다면 루만의 전성시대는 체계이론가들만의 파티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밖에 체계이론가들은 독립된 논의의 지면도 확보하고 있는데, 체계이론적 사회 이론지를 표방하며 1995년 창간된 ‘Soziale Systeme’가 그것이다. 현재 편집장은 스위스 루체른 대학의 루돌프 슈티히베 교수가 맡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도 체계이론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체계이론 전성시대의 도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거시 사회이론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이 시대에 사회학도들을 끌어당기는 루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선 체계이론이 ‘세계사회’에서 ‘조직’, ‘상호작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현상을 하나의 이론틀로 설명하려는 드문 ‘슈퍼이론’이기 때문이다. 사회학 연구전통에서 오랫동안 사회는 국가와 동일시됐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심화된 지구화는 이러한 사회학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에 대한 사회학의 반응은 지구화를 하나의 현상으로 기술하거나, 조직, 네트워크 등 더 미시적인 차원에 시야를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만은 이미 1971년에 발표한 ‘세계사회’라는 논문에서 국가는 정치체계의 자기서술일 뿐이고 기능적으로 분화된 현대에는 유일한 하나의 ‘세계사회’가 있을 뿐이라는 테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기능적 분화, 지역적 분화, 사회, 조직 등 다양한 차원의 체계와 그들 간의 관계를 하나의 이론틀 안에서 연결시키려 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시도가 매끄럽게 진행된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야심찬 기획임엔 틀림없다.

-또 다른 이유로 체계이론의 개방성을 들 수 있다. 체계이론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은 기존 사회학도들에게 생소하고 난해하기로 악명높다. 하지만 일단 그 패러다임 속에 들어가 복잡한 개념들의 연결고리를 찾기만 하면 쉽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덧붙일 수 있기도 하다. 체계이론은 루만에 의해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사회에 대한 이론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매우 괴로운 정독의 시기를 거쳐야만 한다. 또한 독일어를 모르면 깊이 이해하기 어렵다. 극히 일부만 번역됐기 때문.

-외국인의 경우 설령 독일어를 익혔더라도 루만이 전제하고 있는 철학적, 사회과학적 전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소화하려면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제약 때문에 체계이론이 갖는 장점에도 불구, 비독일어권에서 루만의 전성시대가 도래하리라고 예측하기는 힘들다.(*그렇다면, 한국에서도 루만의 전성시대는 기대하기 어렵겠다.) 

-한국에서도 루만과 체계이론에 대해 소개된 내용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최근 연구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고, 루만의 저서 두 권과 한 권의 입문서가 번역됐을 따름이다. 하지만 예정대로 올 상반기에 루만의 주저로 꼽히는 <사회체계>(1984)가 박여성 제주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다면, 그것이 루만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가장 반가운 소식이면서 한편으론 두려운 소식이다. 그 방대한 분량을 고려한다면 책값은 얼마나?)  루만과 체계이론 소개를 또 다른 서구 이론의 ‘수입’으로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문닫아 걸고 한국어로만 학문할 수는 없는 이상 말이다. 그 보다는 한국 학문 생태계의 건강 유지와 자생력을 키워나가기 위한 ‘이론 다양성’의 자원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것이다. 편식은 건강에 해롭지 않은가.

06.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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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세상을 떠난 고 신상옥 감독에 관한 추모의 글들을 읽어보다가 몇년 전 <필름2.0>의 특집기사(2003. 05. 07)를 찾게 됐다. 김영진 편집위원의 글인데, '20세기 최고의 영화감독 7인'이 타이틀이다(오해가 있을까봐 페이퍼의 제목에는 '한국'을 더 집어넣었다). 아마도 설문조사에 토대하여 작성된 듯한데, 이 참에 잠시 한국영화 '거장들'의 면면을 확인/기억해 두도록 한다. 기사에서 거명되고 있는 그 7인의 감독은 임권택, 김기영, 유현목, 홍상수, 신상옥, 이창동, 이만희이다(이창동과 이만희는 공동 6위이다). 기사에 포함돼 있는 '응답자 코멘트'는 생략한다(대신에 간간이 '나의 코멘트'는 덧붙이겠다).  

 

 

 

 

-여기 모인 7인의 감독들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 남다른 작가 의식으로 역사에 기록될 이들에게 작가의 만신전을 바친다.

1위 임권택 뒤통수의 미학을 보여주는 감독

-임권택은 1980년대 후반 어느 인터뷰에서 "뒤통수를 찍어도 그 인물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내 영화의 목표“라고 말했다. 임권택의 영화는 무심하게 보면 흘려 지나치기 쉬운, 그 무수한 뒤통수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겉으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형식 속에서 인물의 감정과 세상의 공간적 기운을 꾹꾹 눌러 담는 자기만의 세계로 오랜 충무로 경력 끝에 도달한 미학을 펼쳐보이고 있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후 <춘향뎐> <취화선>의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임권택의 행보는 한 예술가의 고통스러운 성숙의 행로이기도 하면서 충무로라는 전통적인 한국 영화 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미학을 가늠할 수 있는 자취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1960년대 내내 오로지 먹고살기 위하여 영화를 찍었던 임권택은 흥미로운, 그러나 기억되지는 않는 숱한 오락 영화를 연출했으며 본인의 말에 따르면 1973년 작 <잡초>를 계기로 영화를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해 발언할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했다. <깃발 없는 기수> <족보> 등의 영화로 1970년대 후반 주목받지 못한 채 성큼 진전된 영화 세계에 이른 그는 <짝코> <만다라> 등의 영화를 통해 198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족보> <짝코> <만다라> 등은 물론이고 <티켓> <길소뜸> <서편제>, 최근작인 <취화선>에 이르기까지 임권택은 저마다의 도덕적, 인간적 결함을 안고 방황하며, 더러는 돌아오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거처할 곳을 찾는 등장인물을 그렸다.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당연히 길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는다. 빨치산 토벌 대장 송기열과 빨치산인 백공산의 일생에 걸친 추적과 도피의 삶을 다룬 <짝코>는 물론이고 <만다라>에서의 두 승려의 구도의 길, <길소뜸>에서 동진과 화영이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길, <개벽>에서 해월 최시형이 끊임없이 걷는 길은 모두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선이었다. 임권택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을 거둔 <서편제>에서도 길은 소리와 함께 주인공의 마음을 전해주는 풍경의 주제를 품고 있다.

 

 

 

 

-2002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취화선>에서 임권택은 적은 편집과 간결한 화면으로 생략과 압축을 취하는 특유의 스타일을 더 밀고나가면서 <춘향뎐>에서 시도했던 완벽한 형식주의의 세계를 한 예술가의 전기라는 이야기의 세계와 조화시켰다. 그는 여전히 감정의 노출을 절제하는 생략의 싸움을 벌인다. 장승업의 일대기로 이야기의 구심력을 삼으며, 장승업이 그리는 그림과 그가 그림에 채워 넣고자 했던 자연 산수의 풍경을 겹쳐놓은 채 이야기의 원심력을 매듭 짓는 <취화선>은 임권택의 통 큰 미학의 정체를 증명하고 있다. 역사적 상처에 대한 강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임권택은 플롯에 의존하지 않는 모자이크적인 에피소드 구성의 생략을 통해, 화면과 화면의 연결 사이에 큰 관념을 넣을 줄 아는 이 시대의 어른 감독이다. 그가 성취한 것과 성취하지 못한 것은 상당 부분 한국영화의 현재와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그래서 임권택은 영화의 거장이라기보다는 '한국 영화', '한국적 영화'의 거장이라고 해야 할 듯.) 

2위 김기영 '영화 작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

-“인간의 몸을 자르면 검은 피가 나온다”고 생전의 김기영 감독은 말했다. 김기영은 능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감독이다. 하길종 감독은 1970년대에 이미 “김기영은 누구보다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고 ‘영화 작가’란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이다”라고 그를 평했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낸 김기영의 황당무계한 발상과 독창성은 지금 봐도 무시무시하다. 1960년에 처음 발표한 뒤 그 뒤 여러 차례 리메이크해서 김기영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하녀> 시리즈는 가정부나 술집 여자가 중산층의 가정에 들어와 그 가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얘기다. 성적 억압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심리를 독특한 화면 색감과 공간 연출을 통해 파헤치며 농촌 출신 여자가 도시 가정을 무너뜨리는 이야기 구조에 은근히 근대화 과정에 있었던 한국 사회에 대한 계급적 통찰까지 새겨놓았다.

 

 

 

 

-그러나 김기영이 처음부터 사이코 스릴러영화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설>(1958), <10대의 반항>(1959) 등의 영화는 사실주의적 경향이 배어 있다. 그러나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김기영 특유의 염세적인 비틀린 유머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독특하게 풍기는 취향이 튀어 나온다. 심지어 김기영의 두번째 장편 극영화인 <양산도>(1955)에는 여주인공이 무덤에 있는 연인과 성교를 하고 함께 하늘로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1970년대의 김기영은 주로 문학 작품이 원작인 영화를 만들었으며 이광수와 이청준의 소설을 각각 영화로 만든 <흙>과 <이어도>는 원작의 분위기와는 저만큼 떨어져 있지만 영화적으로 훌륭하게 재구성된 이 시기의 걸작이다. 또한 이 시기에 김기영은 저예산 날림 영화지만 종잡을 수 없는 스타일을 지닌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등의 영화로 훗날 일부 영화광에게 컬트 감독으로 대접받기도 했다.

-하길종은 그런 김기영의 작품 세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김기영의 영화는 인습적인 줄거리 틀이 없고 인간의 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황만이 있다. 그는 다분히 실험적이고 편집광적인 태도로 인간의 의식 구조에 집착한다. 김기영은 항상 한국 사회의 한 측면을 과장된 수법으로 그렸지만 이야기가 황당무계하냐 아니냐는 것은 따질 필요가 없다. 이야기가 황당하다면 당대의 한국 사회를 황당무계하게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는 '영화작가'이면서 '감독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아닌가 싶다.) 

3위 유현목 '예술'을 하려 한 감독, 실제로 그렇게 한 감독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사가 이영일은 유현목의 <오발탄>에 대해 “이것은 한국 리얼리즘영화의 전형이다”라고 단언했다. <오발탄>은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한국영화가 아직 산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온전한 얼굴을 갖추기 전에 만들어진 <오발탄>은 지식인의 실존적 자의식과 몽타주와 화면 구성이라는 영화 미학의 양대 통사를 가장 체계적으로 구사한 걸작으로 칭송받았다.

-그때 이후로 유현목에게는 늘 ‘예술파 감독’이란 별명이 따라붙었다. <공처가 3대> <수학여행> <한> 등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유현목 영화의 본령은 역시 비판적인 현실 안목, 전후 불행한 삶의 조건을 내려받은 한국 사회에 대한 도저한 구원 의식, 영화의 미학적 표현에 예민한 손끝을 드러내는 일련의 진지한 작품에 있었다.

 

 

 

 

-<김약국집 딸들> <막차로 온 손님들> <문>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사람의 아들> 등 유현목의 주요 작품을 일별하다 보면, 우리는 그가 흔히 말하는 리얼리즘 스타일의 감독이라기보다는, 곧 현실을 응시하는 감독이라기보다는 현실을 어떻게 형식에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모더니즘 취향의 재능이 더 강한 감독임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동시대의 다른 한국영화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현목도 영화사에서 주문받은 작품을 만드는 자의 운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현목은 당대의 어떤 감독보다 인간의 실존적인 조건에 고민하고 그에 따르는 가난, 분단, 종교, 근대화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카메라의 눈을 들이댄 예민한 예술적 자아의 소유자였다. <오발탄>은 그런 유현목의 예술적 자아가 가장 의기충전했을 때 세상에 나온 작품이며 한국적인 사실주의의 범례로 남는, 동시에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예술적 자아의 증거물로 역사에 제출된, 유현목 영화 세계의 기념비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다른 영화들을 별로 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의 <오발탄>은 영화사의 과녁에 명중한 영화로 남을 것이다.) 

4위 홍상수 내게 거울을 비춰줘

-홍상수의 등장과 함께 한국영화는 ‘일상’이란 비평 어휘를 얻었다.(*그 일상은, 그러나 매우 '충격적인' 일상이었다. <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은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와 함께 쉽게 넘보지 못할, 전설적인 데뷔작으로 남을 것이다.) 대다수 극영화에서 간과하고 무시했던 일상의 극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홍상수의 영화에선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차곡차곡 모아진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서울에 이토록 누추하고 비루한 일상이 펼쳐진다는 것에 새삼스레 놀랐고, 그 심심해보이는 공간 속에서 그렇게 격정이 은밀하게 휘몰아친다는 것에 또 놀랐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이어 홍상수는 연애 삼부작이라 할 수 있는 <강원도의 힘> <오! 수정>을 연달아 내놓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여러 남녀가 엇갈리며 교차하는 사랑 이야기를 짜맞췄다면 <강원도의 힘>은 같은 시간에 강원도를 따로 여행하는 불륜 관계의 남녀 이야기를 각자의 시점에 따라 1,2부로 나눠 찍은 것이고 <오! 수정>은 남녀의 기억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펼쳐지는 연애담을 펼쳐놓는다.

 

 

 

 

-홍상수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의 표면을 꼼꼼하게 관찰하기 위해 영화 형식을 열어놓는 스타일에 능한 감독이며 조금씩 자기 스타일의 영역을 확장했다. <생활의 발견>은 한 남자가 두 여자를 여행중에 만나 진귀한 에피소드를 펼쳐놓는 또 한 편의 연애담이다. 홍상수는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그는 대부분의 대사와 행위를 현장에서 즉석에서 만들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영화의 전개를 관찰한다. 그것이 그의 영화의 톤을 멜로드라마의 정형화된 과장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슬픔과 웃음과 치욕과 기쁨을 오락가락하는 기묘한 초상화로 꾸민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거울을 보듯이 우리 삶을 보는 것이다. 매일 거울로 나를 바라보듯이" 라고 말했다. 그가 영화로 비춘 거울은 앞으로도 볼 만할 것이다.(*그의 <해변의 여인>을 빨리 보고 싶다.) 

5위 신상옥 1960년대 한국영화의 뿌리

-신상옥은 한 명의 영화감독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1960년대의 한국 영화 시스템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과장하자면 1960년대의 한국영화는 신상옥이 관여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대별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신상옥 감독을 감독이라고만 부르는 건 왠지 부족해 보인다. 그는 '한국영화 시스템' 자체였기에.) 신상옥이 설립한 신필름은 오늘날의 방송국 규모에 견줄 만한 규모와 인력으로 전근대적인 한국 영화 산업 시스템에서 최초로 메이저 스튜디오를 지향한 굉장한 한국 영화 제작의 본거지였다. 신필름을 무대로 신상옥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쌀> <상록수> 등의 예술적인 기품이 묻어나는 영화와 <빨간마후라>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등의 대작 전쟁 영화와 사극을 고루 찍었다. 신상옥의 작품 세계는 하나의 말로 요약될 수 없는, 대제작자의 욕망과 영화 작가의 욕망이 늘 충돌하는 다양한 색깔을 지닌 것이었지만 그것은 곧 그의 영화가 대다수 한국영화의 장르에 걸쳐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신상옥 본인의 표현을 빌면, “한국영화에선 처음으로 화면 사이즈 연출 감각이 드러나는 영화”였으며 <성춘향>은 컬러 현상으로, <빨간마후라>는 특수 효과로 한국 영화 기술사에 남는 영화기도 하다. 신상옥은 평생의 반려자인 최은희를 비롯해 수많은 감독과 배우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배출했고 잘 알려진 대로 1980년대에는 피랍된 북한에서도 자신의 연출 경력을 이어나갔다. 오늘날 신상옥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거대한 한국 영화 역사의 중간 뿌리를 묶음째로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에선 전근대적인 삶의 자취를 응시하면서도 영화 형식의 현대적인 발언을 대중적인 통로로 쏟아내려 한 맹렬한 야심을 읽을 수 있다.

6위 이창동 영화감독은 지금 출장중

-이창동의 영화 세계는 한국 영화 역사의 오랜 화두였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맨 얼굴로 서로 부딪치는 격전장이다. 이창동 본인은 리얼리즘적 태도를 대중적 화술과 조화시키려는 것이 자신의 영화 세계라고 말하지만 <박하사탕>과 <오아시스> 등의 그의 영화에서 현실을 재현해 보여주려는 그의 태도는 관객의 반응을 섬세하게 고려해 '과연 영화를 보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집요하게 묻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창동은 잘 알려진대로 소설가 출신이며 그의 모든 영화는 상징적 의미가 정연한 논리 체계로 완벽하게 짜여진 폐쇄적 소우주다. 그의 영화에서의 공간과 사물은 어느 것도 무심히 존재하는 법이 없다. 이미 의미론적으로 꽉 채워진 세계에 주인공은 던져져 있으며 그 세계에서 이창동은 삶의 구체적인 꼴을 그리는 자기만의 내기를 건다.(*<박하사탕>을 통해서 이창동은 많은 이들의 시대에 대한 채무를 대신 갚아주었다. 그 점에 대해서 나는 늘 그에게 감사한다. 약간의 채무감을 느끼면서.) 

 

 

 

 

-일산과 영등포를 통해 현재와 과거의 한국 사회에서 잃어버렸고 잃어가고 있는 가치를 담아내려 한 데뷔작 <초록물고기> 이후 <박하사탕>을 통해 이창동은 본격적으로 현실과 영화 형식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낸다.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되고 독재 정권 시절의 대공분실에서 일하며, 가구점을 운영하는 천민 자본가로 증권에 투자했다가 신세를 망치는, 한국 현대사의 이런저런 현장에 늘 가까이 있던 인물이다. 그는 그 대가로 인간성의 파멸이라는 천형을 받는다. 그를 구원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영화의 플롯이다. 역순 구조의 플롯을 통해 이 인물은 역사적 인과 관계의 희생자라는 천형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

-세번째 영화 <오아시스>에서 이창동은 꽉 짜인 의미론적 세계에 불행한 남녀의 사랑을 던져놓고 들고 찍기로 일관하는 느슨한 카메라로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관객의 시선의 정체를 거꾸로 되묻고 있다. 잔인하지만 동시에 통렬한 이 방식을 통해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 잠깐 ‘출장중’이다.(*물론 그는 출장에서 돌아왔다. 그의 <밀양>은 언제 햇볕에 나오는지?) 

6위 이만희 시대를 잘못 만난 공인받은 천재

-이만희는 전설의 걸작, 그렇지만 현재 프린트가 남아 있지 않은 <만추>의 감독 바로 그 사람이다. 동세대의 감독들로부터 가장 인정받는 천재가 이만희였으며 자기 삶을 거의 방치하듯이 마구잡이로 영화를 찍었는데도 늘 수일한 영화의 완성도를 일궈냈던 불가사의한 재능의 소유자도 바로 그 사람이다. 이만희는 출세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이래 어떤 소재의 영화를 만들어도 탁월한 시각미를 지닌, 동시에 긴장감을 주는 이야기를 짜내는 재능으로 부러움을 샀다. 그는 도회적인 우수와 고독을 그리는 데 특히 뛰어났으며 도시 공간을 그리는 데 능했던, 체질적으로 현대적인 감수성을 지닌 감독이었다.(*이만희는 김기영에 이어서 최근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거장이다.) 

 

 

 

 

-한국 영화감독들 가운데 드물게 추리영화를 만드는데도 뛰어났던 이만희는 당시의 억압적인 정치 현실에 좌절해 늘 술에 절어 살았으며 제작자가 의뢰한 숱한 영화를 마구잡이로 찍었지만 자기 색깔을 놓치진 않았다. 심지어 반공 전쟁 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등의 영화도 이만희가 메가폰을 잡자 상투적인 전쟁 무용담을 벗어나는, 체제와 인간의 대결 의식이라는 주제 의식이 돌출되는 박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만희는 아쉽게도 너무 빨리 세상을 등졌다.

-그의 유작인 <삼포가는 길>(1975)은 황석영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 것이며 영화 속 세 주인공의 따라지 인생에는 당시 한국 사회에 맺힌 슬픔과 삶의 흥이 격정적으로 담겨 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한국의 스산한, 그렇지만 고향 같은 푸근함을 동시에 간직한 남도의 풍경을 아스라이 전해주는 이만희 최후의 유작이다.

06. 04. 18.

P.S. 사랑도 이젠 소용 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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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8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4-1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마무리가 한발 늦었군요...

로쟈 2006-04-18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제가 이명세나 박찬욱 감독의 (최근) 영화를 별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거 같군요. 취향이야 제각각이니까요...
 

우리말로는 좀 어색하지만, "Everybody, O.K.?"라고 하면 훨씬 간명하고 정감있는(?) 제목이다. 부활절 인사로도 어울리고. 언제나처럼 (가족을 위해) 불들려 부활절 예배를 보러 나가는 길에 혼자 10분 늦게 나가면서 잠시 본 케이블TV. 남선호 감독의 데뷔작 <모두들, 괜찮아요?>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감독도 영화도 모두 생소했다. 영화주간지를 (꼼꼼히 읽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매주 챙겨보는 편인데, 이런 식으로 '건너뛴' 영화들이 나온다. <씨네21>에서 좀 크게 다루었던 듯한데, 요즘 본전 생각하다가 놓친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알게 된 거지만, 감독은 러시아 영화학교 졸업후 10년간 '입봉'을 준비해온 처지이며, 그의 데뷔작이 '자기 얘기'라는 건 충분히 이해할/동정할 만한 일이다(이런 건 남의 얘기 같지 않다). 원래는 '영화감독이 되는 법' 프로젝트였다나. 영화감독 '지망생'이라는 건 명분이고, 그것의 현실태는 무위도식하면서 아내를 등쳐먹는 '백수'이다. 거기에 치매끼가 있는 아버지와 돼바라진 아들, 이 세 남자를 부양하며 사는 주부 가장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런 설정만으로도 딱 '내 스타일'이다(옆사람은 '이상한 영화들'만 좋아한다고 하지만). 내가 지지하는 영화란 얘기이다.

해서, 작년에 나온 <나의 결혼원정기>에 이어서 2006년을 대표할 만한 코미디로 잠정 추천한다. 다 보지도 않은 영화이지만, 영화의 얼개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은' 영화라고 생각해서이다. 물론 나로서는 현재 이런 영화를 미리 개봉관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좋은 처지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도 고려되어야겠지만. 대신에 내가 하는/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자리에서나마 좀 띄워주는 것이다. 먼저 이지영 기자의 가벼운 프리뷰.

무비위크(06. 03. 20) 10년째 감독 데뷔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훈(김유석)은 마누라를 내조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에겐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이순재)이 있고, 언제나 아빠 편인 아들내미도 있다. 시나리오를 쓰고, 가끔 번역도 하며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는 상훈의 소소한 일상. 특별히 나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다. 한편 남편의 뒷바라지에 있는 대로 날카로워진 아내 민경(김호정)은 노는 남편과 걸핏하면 집을 나갔다 들어오는 친정아버지 때문에 심경이 괴롭다. 이렇게 오순도순 네 가족의 하루는 늘 비슷한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다.

-먼저 이 영화의 남선호 감독은 그 프로필이 독특하다. 주인공 상훈(김유석)처럼 그 역시 비슷한 인생을 걸어왔다. 남선호 감독은 남들이 모두 알아주는 서울대씩이나(?) 나와서 러시아 국가 영화 위원회 로스키노 산하 영화 학교를 졸업했다. 어디 그뿐이랴. 본인 말로는 Q채널 다큐멘터리 제작 등 소일거리들을 해왔다지만 그의 이력서에 6개월 이상 다닌 정식 직장이란 없다. 극단에서 연출 활동도 했고, 여균동 감독의 장편영화(*<맨>)에 조감독으로 참여했다지만 88년에 졸업한 사람의 이력치고는 너무 허전하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야 첫 작품을 가지고 나타나게 된 걸까. 그 과정과 이유가 궁금하다면, 그의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를 보면 된다.

-애초에 ‘영화감독이 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던 시나리오는 주인공 상훈의 입을 통해 감독 지망생의 하루를 보여준다. 상훈은 마누라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궁색하게(?) 살고는 있지만 그다지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며 때로는 당당하다. 맘씨도 좋지, 장인어른을 모시면서도 다른 남편들처럼 툴툴대지 않는다. 한때 잘나갔던 무용수였던 와이프는 이제 먹고 살기 바쁜 학원선생님이 되어 있다. 자, 이 모든 상황에서 집안 꼴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 주인공 상훈과 그의 아내 민경(김호정)은 공과금 연체료 문제로 목에 핏대 세워가며 싸운다. 그리고 꽥꽥 소리 지르는 아내 앞에서 상훈은 이렇게 외친다. “그래, 나도 남들처럼 벌어다주면 될 것 아니야?!”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크고 작은 웃음을 자아낸다. 어쩜 이리도 우리네 사는 이야기와 꼭 같은지 실로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줄을 잇는다. 특별한 사연이나 사건 없이 마무리되는 구성 역시 편안하기 그지없다. 억지로 커다란 자극을 삽입했었더라면 오히려 억지스러울 뻔했다. 남선호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아, 저렇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감독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이런 류의 일장연설도 백수로서의 자질이자 조건이다.) 이 영화는 그런 감독의 의도에 충분히 화답한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찌푸린 인상보다는 화사한 미소를 띤 채 극장 문을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한석 기자의 좀 진지한 리뷰. 그는 이 영화를 '서로 사랑하는 개털 인생에 대한 영화'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영화 제목은 개털 인생들에 대한 안부 인사 정도 되겠다.

씨네21(06. 03. 21) 상훈(김유석)은 7년째 데뷔작을 기다리는 만년 영화감독 준비생이다. 하지만 그를 응원하는 어린 아들 병국(강산)의 웅변을 빌려 말하자면, 그도 엄연히 영화감독이다. “영화 한편도 안 만든 영화감독이 어디 있느냐”는 친구의 놀림에도 병국은 “수박장수가 하루 종일 수박 한개를 못 팔았다고 수박장수가 아니냐”고 응수하며 아버지를 변호한다. 한편 상훈에게는 아들 병국처럼 힘이 되는 응원 가족이 있는가 하면, 함께 사는 장인처럼 애먹이는 가족도 있다. 치매에 걸려 툭하면 가출하는 장인(이순재)은 시간 많은 상훈이 주로 돌보아야 하는 골치 아픈 보호대상이다. 장인은 젊은 시절 역마살 낀 삶을 살았고, 가무를 낙으로 여기며 살아온 소문난 한량이었고,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서로 배다른 아들딸을 낳았지만, 지금은 치매로 그들을 구별조차 못하며 막내딸 민경(김호정)의 집에 얹혀산다.

-민경, 남편 상훈의 소개에 의하면 그녀는 촉망받는 무용가 지망생이었지만, 지금은 아귀같이 소리지르며 학원생들을 호통치는 억척이 무용학원 원장이다. 동시에 그녀는 아들 병국과 남편 상훈과 아버지의 생계까지 모두 떠맡고 있는, 지치고 상처받은 이 집안의 진짜 가장이다. 바로 이들이 <모두들, 괜찮아요?>의 가족 구성원이다. 이 가족에게 괜찮지 않은 일들이 조금씩 벌어진다. 착하기는 하지만 실없이 구는 상훈이 다른 여자에게 과도한 친절과 관심을 표하면서 아내 민경은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게다가 민경의 배다른 오빠가 아버지를 찾아오며 집안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그런 일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몰래 녹음기를 켜두고 있던 상훈의 행동이 결국 부부싸움을 불러 별거에까지 이른다.

-<모두들, 괜찮아요?>의 애초 제목은 <영화감독이 되는 법>이었다. 제목이 바뀐 것인데, 내용을 이해하는 표지로는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상훈은 말끝마다 영화감독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실상 영화에는 상훈의 사회적 처지를 절실하게 상기시킬 만한 내용, 즉 영화감독이 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절차를 밟는 것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일화가 거의 없다. 동료의 촬영장에서 잠깐이나마 현장의 공기를 맡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정도다. 일화는 오로지 가족간 관계 내에, 그것도 언제나 화해 가능한 상태로만 잠재적으로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식으로 뒤덮인 사회의 일면을 비릿하게 풍자하거나, 그 반대로 아름다운 꿈을 잡기 위해 무작정 갈망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처럼 교수가 되기 위해 돈을 갖다바치거나 억지로 폭탄주를 마셔야 하는 사회적 설움의 에피소드, <불후의 명작>처럼 로맨스로 현시된 사회적 인정의 판타지 등으로 나아가지 않는 영화다. 인물들이 고민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이 집안, 이 가족의 문제다. 그러므로 <모두들, 괜찮아요?>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이야기 혹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하나쯤 속해 있는 어느 서민층 가족 공동체의 이야기다.(*참고로 말하자면,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는 '사회적 약자'인 시간강사 일반에 '백수'의 이미지를 들씌운, 사상이 의심스러운 영화이다!) 

-남선호 감독은 그 이야기를 하는 방법으로 자전적 경험에서 영화의 상당 부분을 뽑아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장편 데뷔작을 만들기 위해 준비해온 상황 자체가 그 자신의 경험이고, 영화 속 가족 캐릭터의 구현도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며 가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자전적인 솔직함에 기초하면서도 자기 연민으로 채워진 일기장이나 반성문이 되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게다가 역량있는 배우들과 그들이 맡은 흥미로운 인물들은 서로를 잘 찾아들어 그 장점을 더 살려준다. 대체로 3인의 배우들- 김유석, 김호정, 이순재- 은 각자의 초상을 잘 그려내는데, 그중에서도 민경 역을 맡은 김호정은 천성적으로 갖고 있는 여러 음색의 목소리를 잘 드러낸다. <플란다스의 개>에 비슷한 역할을 맡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각자의 초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으로 놓고 보아야 의미가 통하는 가족 초상에 관한 삼면화라고 이 영화를 이해할 때, 서로의 화폭이 묶여 뭔가 흥미로움을 발생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마도 그건 이상하게 이 영화에 강박적으로 배어 있는 소박함의 지향 때문에 생긴 결함이 아닌가 싶다. 소박해야 한다는 자기 규율의 느낌, 그건 저예산의 표현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되도록 영화를 거창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자의식이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 뭔가 수사와 장치들이 따라붙으면 안 된다고 결정한 셈이다. 하지만 소박한 인물들을 살게 하는 것과 영화 자체가 소박한 무엇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의미다.

-물론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빈자들의, 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힘을 내는 빈자들의 영화’라 불릴 만한 구석이 있다. 이건 결국 같은 의미에서 서로 사랑하는 개털 인생에 대한 영화다.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간 민경에게 무속인은 남편 상훈을 가리켜 ‘개털 인생’이라고 말하는데, 상훈만 개털인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상훈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촉망받는 무용가의 꿈을 접고 힘들게 학원을 운영하는 민경도 개털이고, 세월의 힘에 밀려 자아를 잃고 육신만 남은 그녀의 아버지도 개털이다. 그리고 그걸 보는 관객도 상당수는 그들만큼 개털이고, 빈자다. 모두들 괜찮냐고 물어보는 건 그런 마음에서 나온 표현일 것이다. 삶의 암담함이 목까지 차올라 점쟁이라도 찾고 싶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라면 이 가족의 초상을 감싸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여기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 많다. 영화가 항상 영화적인 말걸기를 따로 시도해야 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비영화적인 면에 의해 이해 가능한 영화가 된다는 것은 영화로서는 슬픈 일이 아닌가. 더구나 이 영화는 일반 모두를 겨냥해 보편적 감정이 전달되기를 희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 더 풍부한 조음이 필요했거나, 더 집요한 천착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남는다. 비유컨대 <모두들, 괜찮아요?>는 재즈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무언가로 받아들여지길 스스로 희망한 것 같은데, 의아한 건 그 백미가 될 만한 즉흥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이 영화의 감동이 '비영화적인 면'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되겠다. 기자는 '개털' 감독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게 아닐까? "감독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는 감독에게 말이다.)

06.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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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4-17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결혼원정기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이것도 관심 두어 볼께요.

로쟈 2006-04-1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괜찮은 영화'일 거 같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결혼식에 갔다가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 2006)의 역자를 만났다. 바로 물어본 것은 책의 근간 여부였는데, 벌써 깔렸다는 것이었다, 이번주에 말이다(알라딘의 새로나온 책 코너는 언제나 뒷북친다). 몇달 전 근간 소식을 접하고 고대하던 책이었던 만큼 제일 먼저 꼽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이미지를 띄우는 기능이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이 페이퍼는 언제 완결될지 알 수 없다).

 

 

 

 

한 차례 날려먹고 다시 쓴다. 하지만 조금 짧게. 어쨌든 가라타니 고진(1941- )은 현재 비평가로서 일본 최강이며 그런 만큼 최우량의 퀄리티를 보증한다. 신간 또한 예외가 아닐 거라고 믿어봄 직하다. 책의 표제가 된 글은 이미 <문학동네>(2004년 겨울호)에 '근대문학이 종말'이란 제목으로 게재되어 국내에서도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그걸 포함하고 있는 고진의 최신간 비평집이 <근대문학의 종언>이며 일어판은 작년 11월에 출간됐다. 그런데 불과 5개월 만에 국역본이 출간된 것이니까 이런 유형의 책에 관한 한국의 출판관행에 견주어 이례적이며 파격적이다. 그 '스피드'에 있어서 거의 일본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자와 출판사의 '순발력'이 놀라울 뿐(역자는 이미 고진의 비평집 <언어와 비극>(도서출판b, 2004)를 옮긴 바 있는 '전문가'이다).  

 

일어본의 부제는 '가라타니 고진의 현재'이고, '가라타니 고진 사상, 총결산과 새로운 전개'라는 광고문구가 큼지막하게 달려 있다. 그의 <일본근대 문학의 기원>이 '대외적인' 출세작이었으므로 <근대문학의 종언>을 계기로 '총결산'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래저래 합당하다. 그 종언 이후의 새로운 전개(신전개)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두번째 책은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페이비언 사회주의>(아카넷, 2006)이다.  흔히 신랄한 독설가이자 <인간과 초인> 같은 희곡 작가로 잘 알려진 버나드 쇼이지만, 사회주의 사상서까지 쓴 줄은 미처 몰랐었다. '이상주의, 점진주의, 의회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주의 이념으로 영국 노동당의 정치노선을 대변한다는 것이 페이비어니즘인데, 쇼는 그 핵심멤버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가 될 만한 칼럼의 일부를 옮겨오면 이렇다. 김성이 교수(이화여대, 사회복지학)의 국민일보 칼럼(05. 12. 14)이었다.

 

 

 

 

-근세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기인한다. 베버리지는 “나는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적 조건하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 라는 이념으로 영국 사회보장에 기초가 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초로 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하는 영국의 사회보장제도가 설립되게 되었다. 이베버리지에게 영향을 준 것은 영국의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페이비언 협회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버리지는 청년기 때 토인비홀에서 불우이웃을 위한 사랑실천 운동을 했으며, 페이비언 협회에 가입하여 자본주의의 자유시장체제와 사회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페이비언 협회는 1884년 영국에서 소수의 지식인에 의해 설립되어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단체로 발전되었다. 페이비언(Fabian)이란 한니발 대군을 격파한 로마 장군 파비우스(Fabius)에서 기인한다. 그는 카르타고 전쟁에서 접전을 피하고 꾸물거린다고 로마 시민으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호기를 포착해서 한니발을 격퇴하여 로마를 구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페이비언주의의 기본 이념은 점진적 사회개혁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페이비언 협회는 사회개혁의 네 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첫째, 민주적이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사회개혁에 대하여 대응할 준비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둘째, 점진적이어야 한다. 개혁의 속도가 사회혼란을 야기시켜서는 안 된다. 셋째, 도덕적이어야 한다. 부도덕한 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더욱 도덕적이어야 한다. 넷째,그 어떤 개혁도 입헌적이고 평화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페이비언 협회는 침투와 설득이라는 전략으로서 사회개혁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설득의 대상으로 삼았다. 페이비언 협회의 노력 결과 런던의회가 개최되었고 구빈활동에 개혁을 가져와 영국 복지국가의 기본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복지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복지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조화로운 박애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뉴라이트운동은 모든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해야 하며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해치는 어떠한 장애물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맞서 싸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한 싸움은 설득과 관용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뉴라이트의 정치이념이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어찌됐든 사회주의 아닌가!), 그리고 현재의 영국이 '복지국가'의 모델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페이비언 사회주의 유래와 내용은 그러하다고 한다. 쇼의 책은 그 이념적 정수를 짚어내고 있는 책이고. 버나드 쇼의 신간들 가운데에서는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이너북, 2005)을 바그너의 원작 <니벨룽의 반지>(책과소금, 2005)와 함께 읽어보는 게 그간의 희망사항이었는데, <페이비언 사회주의>를  추가해야 될 모양이다. 덧붙여, 지난번에 자유주의 관련서들을 짚어보았던 김에 이번에는 사회주의 관련서 몇 권의 이미지도 띄워둔다.   

 

 

 

 

세번째 책은 지구상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던 나라, 그리고는 현실 사회주의를 지난 세기에 끝장낸 나라 러시아의 경제사를 다룬 따찌야나 찌모쉬나의 <러시아 경제사>(한길사, 2006)이다. 다루는 범위는 방대해서 고대 러시아부터 푸틴(뿌찐) 시대까지이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총2부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기술되어 있다. 제1부은 고대부터 1917년 10월 혁명 이전까지의 시기인데, 기존 연구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부분들-고대와 중세의 러시아 경제-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좀더 상세히 알 수 있다. 제2부는 10월 혁명부터 뿌찐 시대 초기까지의 경제개혁을 다루고 있는데, 기존의 책들과는 시각이 전혀 새로운 뿐만 아니라, 1990년대의 시장경제 체제개혁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워낙에 이 분야의 책들이 드문지라 따로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 경제발전사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정치, 사회 등 폭넓은 범위에 걸쳐 풍부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교양서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하니까 두루 읽어보심이 어떠할까? 참고로, 저명한 경제사학자 알렉 노브의 <소련경제사>(창비, 1998)는 이미 오래전에 출간된 바 있다. 나란히 꽂아둠이 마땅하다.  

 

 

 

 

네번째 책은 알코올 소비 세계 1위국인 러시아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테마의 책이기도 한데(러시아의 술 얘기는 <굿모닝 러시아> 참조),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장 메종디외의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알코올>(정신의서가, 2006)이다. 부제는 '사랑의 이야기'.(아마 러시아판이었다면, '알코올 중독 이야기' 정도가 부제로 어울림직하다.) 내용은 제목 대로라면,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알코올이 무슨 역할을 할까, 정도를 기대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알코올 중독이라고 말하는 알코올 의존증과 남성성·여성성의 관련성을 살펴본다"고.

"오랫동안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을 치료해 온 지은이가 만난 남녀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의 사례를 분석하여 술의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사랑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벗겨낸다. 이 책은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흔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알코올 의존자들은 어쩌다가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을까? 이는 알코올 중독의 원인이 술뿐이 아닌 심리적인 데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은이가 찾아낸 심리적 원인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고정된 타입을 강요하는 사회문화이다. 남성은 과음으로 남성성을 확인하고 싶어하고, 반대로 여성은 여성스러움이 강요하는 결함을 은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술 없이는 이성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남녀의 생리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사람은 관계를 가깝게 만들기 위해 술을 마시는가, 아니면 술은 역설적으로 관계를 갈라놓는 벽인가의 흥미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이런 내용 소개보다 좀더 눈길을 끄는 것은 책의 한 소제목인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술을 마셔요, 내 사랑"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러브샷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러브샷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바 없다. 우리는 흔히 사랑하고 싶지만/있지만,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두고서 술을 마신다. 엄청. 그게 알코올 중독의 흔한 시작 아닌가?(하다못해 황태자 주지훈도 한번 실연을 하고 소주를 하루에 3-4병씩 한달을 퍼마셨다지 않은가?) 그리고는 이렇게 주절거리곤 한다: "당신과 나, 알코올과 함께, 죽는 날까지". 결론? "알코올이냐 여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알코올이라면 황태자급에 해당하는 이들이 작가, 예술가들이다. 이 주당들의 면면들은 <알코올과 예술가>(마음산책, 2002), <작가와 알코올 중독>(랜덤하우스중앙, 2005) 등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문학작품으로는 '미라보 다리'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문학과지성사, 2001)이 가장 유명하다. 이 시집 연구서로는 황현산 교수의 <얼굴 없는 희망>(문학과지성사, 1990)이 있다.  

 

 

 

 

네번째 책은 미국의 전설적인 얼터너티브 록밴드 '너바나'의 리드싱어였던 커트 코베인(1967-1994)의 평전으로, 음악/연예 전문기자라는 찰스 크로스의 <커트 코베인 평전>(이룸, 2006)이다. 27살에 자살을 선택한 코베인은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이를 정서적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 냉소 등을 펑크록에 담아 표출했다고.

 

 

 

 

사실 나는 너바나의 음악이나 커트 코베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그의 아내였던 커트니 러브를 먼저 알았을 정도이다).

미국의 현대 팝음악에 대한 나의 취향은 '도어즈'의 짐 모리슨에서 R.E.M 정도까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에 '전설'로 남은 리더이고, 그룹인지라('너바나'는 물론 불교에서 해탈을 뜻하는 '니르바나'를 영어식으로 읽어준 것이다. 그런데, 밴드 이름이 '니르바나'라고 하면 왜 촌스럽게 들릴까?) 이런저런 귀동냥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었다. 또,코베인의 개인사 못지 않게 당대의 문화사에 대한 식견도 얻을 수 있을 거 같아 이 평전에 눈길이 간다.  

다소 늦게 눈에 띄었지만, 이 평전과 마침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론 조지프 하스/앤드류 포터 공저의 <혁명을 팝니다>(마티, 2006)가 있다. 하버마스의 제자들이라는 두 저자는 1960년대 이후 서구를 휩쓴 반문화(counter culture) 운동의 '신화'를 낱낱히 까발린다고. 한 서평에 따르면, "잘못된 반문화의 이상에 헌신"해온 서구의 진보 좌파에 대한 통렬한 공격을 가한다. '문화적 저항'이란 신화에 (아직도) 기대와 미련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으로 보인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작가 김훈의 첫 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 2006)이다. 여러 일간지에서 이에 관한 기사를 싣고 있는데, 여기서는 문화일보(06. 04. 17)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온다.

-김훈(58). 1995년에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를 펴낸 직후 바로 문단의 큰 나무가 돼버린 사나이. 장편소설 <칼의 노래>(2001년), <현의 노래>(2004년)로 우리말 문학의 아름다움을 한껏 쳐든 언어의 수공업자. 그가 첫 중·단편 소설집 ‘강산무진(江山無盡)’을 펴냈다. 8편의 작품을 모은 책의 제목은 조선 후기 화가 이인문의 산수화 이름에서 따왔다. 책이 담고 있는 풍경은 이승과 저승, 생시와 꿈의 경계를 넘어 무한히 펼쳐져 있는 그림의 강산을 닮았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삶의 불우(不憂)와 슬픔을 늙어가는 육신에 혼자서 짊어지고 막막한 시선으로 이 세상과 그 너머의 풍경을 응시한다. 이들은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도 ‘밥벌이’를 신경써야 하는 당대의 일상을 아픈 심신으로 힘껏 견디면서도 끝내 신음소리를 흘리지 않는다.(*김훈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 쓴다. 에세이스트들의 천형처럼.)

-지난 13일 저녁, 경기 일산에 있는 작가의 집 주변의 한 맥주전문점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가능하면 소설 이야기를 피하려 했다. 출판사 측은 그가 소설집 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를 싫다고 해서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문예지 ‘문학동네’의 신수정 주간과 류보선, 서영채, 이문재, 황종연씨 등 편집위원들, 그리고 일산파 젊은 문인들인 김연수, 김중혁씨 등이 ‘김훈 선생’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며 소설동네의 경사를 축하했다.

-첫 소설집을 낸 작가는 이날 미치도록 부끄럽다고 되뇌었다. 그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억지로 말을 시키자, 이번 소설집이 ‘나’의 이야기에 머무르고 ‘너’ ‘우리’에게까지 넓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더듬더듬 말을 꺼내놨다. 자전거 레이서로서 시속 30㎞까지 달릴 수 있다고 자랑을 할 때와는 판이한, 어눌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나는 편협한 글밖에 못 써요. 개인만 가지고 쓰잖아요. 시대 전체를 보고 역사의 구조를 통찰하는 황석영, 조정래 같은 작가도 있는데, 나는 그게 안 보이니…. 그래도 내 팔자가 있기 때문에 나는 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의 ‘내 글’은 아내의 죽음을 맞거나(‘화장’) 자신이 암에 걸려 죽음 앞에 있으며(표제작 ‘강산무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뒀고(‘고향의 그림자’) 하청업체 사장을 하다가 부도후 택시운전을 하는(‘배웅’) 인물들이 주변 사람들의 삶과 부딪치며 빚어내는 내면 풍경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신 주간은 책 뒤의 해설을 통해 그의 소설이 고대(‘빗살무늬의 토기’)와 역사(‘칼의 노래’ ‘현의 노래’)를 거쳐 3각 꼭짓점처럼 당대의 현실에 이르렀다고 묘파했다.

-탁월한 문학기자로,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소설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 때, 많은 이들이 그의 문체로 소설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나도 그렇다.) 삶에 깃든 슬픔과 허무를 아름다움으로 한껏 밀어올리는 그의 문체 미학이 저잣거리의 잡사를 다루는 소설에 들어올 수 없다고 여겼던 것. 그는 그러나 발품을 팔아 얻어낸 삶의 거래 현황을 소설 속에서 치밀하게 묘사, 현장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우리 삶의 남루한 구석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독자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안기고 있다.(*아직 확언할 수 없다.) 신 주간은 이를 “새로운 형태의 서정을 획득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주변의 높은 평가와 달리 작가 스스로는 “산문보다 소설 쓰는 게 훨씬 어렵고, 짧은 구조에 완결성을 가져야 하는 단편 쓰기는 참 힘들다”며 “소설을 업으로 삼지 못하고 아마추어로 영원히 머물 것”이라며 사뭇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내 생각도 그렇다.) 그는 그러면서도 소설을 쓰는 일은 모국어와 몸을 힘껏 써야 한다는 점에서 연애하는 것과 같다며 소년처럼 설레는 듯한 미소를 보여주기도 했다. 소설에서 ‘몸’의 미학에 천착해 온 그는 집필할 때 연필로 쓰는 것을 고집하는 까닭이 어깨로부터 팔에 전해지는 힘을 느끼는 게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내가 김훈에게서 가장 높이 사는 것은 이 '소년'의 '연필로 쓰기'이다. 소설의 내용은 상관없다. 거기에 비하면 사소하다. 작가 김훈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앞으로의 창작 계획을 묻자 그는 요즘 병자호란, 한일합방 등 우리 역사의 치욕이 어떻게 된 것인지 책과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인간의 삶은 영광과 자존, 찬란함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소설이 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게 내 일이지요.”(*그 역사의 치욕이 그의 치욕과 어떻게 상관적인지는 다른 자리에서 지적한 바 있다. 김훈에 대한 나의 신뢰는 간혹 위악적인 그의 포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관성'에 대한 그의 집요한 몰입에 놓인다. 그는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이며, 자신의/역사의 치욕을 되뇌일 것이다. 나는 그가 훌륭한 소설가가 아니어도/못 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06. 04. 15-17.

P.S. 마감후에 눈에 띈 책은 (드디어 출간된) 미하일 바흐친의 <말의 미학>(길, 2006). 원제는 '언어적 창조의 미학'인데, 보기 이해하기 쉬운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바흐친 사후에 편집된 책으로 기억되는데(러시아판 1979년), 초기 바흐친의 주요 이론적 관심과 주장들을 모아놓은 그의 주저이다. 국내에서 한풀 꺾인 듯한 바흐친 '열기'에 다시 기름을 붓는 격이 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모처럼 출간된 '무게' 있는 저서(580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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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4-16 22:03   좋아요 0 | URL
커트 코베인 사진이 눈에 확 띄네요. 책 소개 기대할께요..^^

로쟈 2006-04-16 23:16   좋아요 0 | URL
이미지를 띄우는 기능이 먹통이어서 손놓고 있습니다. 별거 아닌 걸로 질질 끌어서 머쓱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