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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4-1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 혼들이 무지 역동적이네요! 칼라의 마술사로 알고 있던 샤갈과 전혀 느낌이 다른걸요!

싸이런스 2006-04-1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골이라는 자의 그림인가...

로쟈 2006-04-12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갈의 그림입니다. 소설의 내용을 채워넣어야 하는데 좀 미뤄지고 있습니다...

urblue 2006-04-1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고 있습니다. ^^
 

 

 

 

 

폰카로도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 내가 사진에 대해 특별한 조예를 갖고 있을 리 없다. 몇 사람의 사진가와 사진의 역사에 관한, 누드 사진의 역사에 관한 책 등이 내가 갖고 있는 전부이다. 물론 롤랑 바르트나 수잔 소택의 사진론, 그리고 존 버거의 사진 에세이 등도 갖고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외한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진 예술의 거장이라는 에드워드 웨스턴의 이름을 현재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회 소개 기사를 읽고 이번에 처음 알았을 정도의 문외한 말이다. 어딘서가 보았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은 아니었던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는 티나 모도티와의 커플 공동전에 대한 소개 기사를 그의 '작품들'과 함께 옮겨놓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또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비록 늦게 알게 되었으나 두고두고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옮겨오는 기사는 오늘자 한국일보(2006. 04. 10)의 것으로 작성자는 조윤정 기자이다.

 -“멕시코를 떠나는 것은 티나를 떠나는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20세기 사진 예술의 거장 에드워드 웨스턴(1886~1958)은 1926년 멕시코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며 작업노트 한 켠에 이렇게 끄적거렸다. 노트 속의 티나는, 그가 4년 동안 멕시코에 머물 때 함께 한 제자이자 연인으로 멕시코 혁명에 참가한 티나 모도티(1896~1942)였다.



-둘은 1919년 처음 만났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티나 모도티는 캘리포니아에 있던 웨스턴의 작업실에서 조수로 일하고 사진도 배웠다. 천연두로 남편을 잃은 모도티는 1923년 전쟁과 혁명, 변화의 혼돈으로 뒤엉킨 멕시코로 스승 웨스턴과 함께 건너간다. 당시 웨스턴은 부인을 둔 유부남이었다. 둘은 그곳에서 사진관을 함께 운영하고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에이 시케이로스, 프리다 칼로 등 아방 가르드 예술가와 만나 멕시코 르네상스를 주도하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사른다. 스승과 제자였던 둘은 그 사이에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들었다.



-정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은 모도티의 사진 기술은 거의 웨스턴으로부터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스턴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모도티의 대표작 ‘장미’는 장미가 카메라 렌즈 속에서 하나의 조각처럼 변신하는데 이것은 누드, 사막, 조개 등을 인위적 조작 없이 조리개 작업 만으로 세밀하고 분명하게 포착하는 웨스턴의 작품과 흡사하다.

-웨스턴의 ‘사막 위에 여자’는 사막 사진 위에 누드 사진을 잘라 붙인 것처럼 대상이 극명하다. ‘누드’는 솜털 하나와 털이 난 구멍, 살결까지 보일 정도로 세부 묘사가 날카롭고 정확하다. 웨스턴은 이들 작품을 통해 사진의 기계적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여자의 몸과 바이올린, 물위에 떠 다니는 배의 형상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웨스턴은 카메라가 사람의 눈보다 명확하고 세밀할 수 있다고 믿고 그 스타일로 작업에 몰두했다.



-모도티가 정치, 사회 운동에 적극 가담하며 사회적 이슈로 활동 범위를 넓히자 웨스턴은 심한 거부감을 느끼며 끝내 결별한다. 그러나 티나 모도티는 사랑을 잃고도 차가운 정치적 신념으로 꿋꿋이 살아가면서 멕시코 체류 10년 동안 역동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가난, 고통, 힘겨운 노동 등을 담아낸 모도티의 사진에서는 정밀함과 우아함이 독특하게 묻어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이데올로기 논쟁 때문에 70년 대까지 대중에게 공개되지 못했으나 91년 ‘장미’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당대 최고의 사진 경매가인 16만5,000달러에 낙찰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모도티와 헤어지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웨스턴은 피사체의 사실성을 더 강조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조개’(1927년)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정교한 조명으로 사진 속 조개 껍질이 금속성 기계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구겐하임 재단으로부터 상을 받은(1936년) 최초의 사진 작가였으며, 추상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적 시험을 시도했다.

-둘의 소름 끼치도록 사실적인 스트레이트 사진은 지금 ‘사진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 뤼미에르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의 전설’ 전은 5월 7일까지 계속된다.

06. 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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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a 2006-07-1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 님 서재를 자주 열람하는 철학도입니다. 나온다던 순수이성비판 재번역 출간 소식에 댓글을 따라 님의 서재까지,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퍼가고 싶어 망설이다 인사드립니다. 잠시 거닐어보니 저는 인문학도를 명패만 걸고 있었군요. 종종 들르겠습니다.
글구, 딴엔 예술을 짝사랑하는 철학도라 멀리 사는 데도(부산) 그 비싼 돈을 주고 클레 전을 보러갔었지요. 클레는 제가 좋아하는 벤야민이나 들뢰즈가 좋아하는 작가라... 들뢰즈가 여러 차례 얘기하는 클레의 책,<현대 예술 이론>을 누가 번역 좀 하면 좋으련만.. 그 페이퍼도 퍼갑니다.

로쟈 2006-07-1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을 짝사랑하는 철학도시라면 예출철학을 하시면 될 거 같은데요. 더불어, 클레의 <현대 예술이론>도 번역해주시면 저도 좋을 거 같습니다.^^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아티스트' 낸시 랭에 대해 몇 자 적는다(*그녀의 책 <비키니를 입은 현대미술>(랜덤하우스중앙, 2006)이 이 페이퍼를 쓴 이후에 출간됐다). 그녀를 만나본 적도, 그녀의 전시회에 가본 적도 없지만,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눈에 띄는 (미혼의) '여성 아티스트'로 소개하는 코너를 우연히 본 적은 있다('콘트라 섹슈얼'이란 프로그램). 그리고,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세계를 목표로 한다는) 그녀는 (적어도) '전국적인' 예술가가 되었다. TV광고에 나오는 건 물론 토론프로그램 패널을 거쳐서 케이블채널의 진행자까지 되었다고 하니까 가히 연예인 뺨친다(혹은 예술의 연예화?). 

미술계에 계시는 분들의 말씀으론 작품 또한 최근에 가장 잘, 가장 많이 팔리는 축에 든다고 하니까(한편으론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겠다) 소위 '성공하는 예술가'의 한 전형으로서 손색이 없다. '문화현상으로서의 낸시 랭'에 미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이유이다. 여기서는 몇 개의 인터뷰/기사를 따라가면서 나의 의견을 보태도록 하겠다.    

먼저, "상큼한 매력의 요정 "세상의 권태여, 가라" 기분 좋은 파격과 긴장의 화신, 편견 깬 신세대 행위예술가"란 제하에 막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던 재작년(2004년) 5월 낸시 랭의 퍼포먼스를 취재한 주간한국의 소개기사. 자신을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전시할 줄 아는 이 '앙큼한' 아티스트에 대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YOU LOST! 내게 무릎을 꿇어! 나른한 봄날 오후, 식곤증에 시달리는 당신, 방심하다가는 이 앙큼한 고양이에게 당할지도 모른다. 당신 품에 와락 안겨 윤기 나는 하얀 털로 당신의 가슴을 간지럽히는 럭셔리한 고양이가 대뜸 하는 말, YOU LOST! 당신은 아직까지 근엄한 얼굴로 허허, 웃겠지만 이 고양이를 쉽게 보았다간 큰 코를 다칠지도 모른다. 온갖 끼와 잠재된 재주로 당신의 이성을 흔들어 놓을 애교의 메신저! 당신은 곧 그녀가 만드는 폭탄주를 마시고 견고한 이성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어둘 것이다. 큐티, 섹시, 키티, 낸시, 구호를 외치는 당신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것이 낸시랭이다."

"아담한 키에 앳된 얼굴, 틴에이저로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섹시한 몸의 그녀는 이른바 ‘몸짱’, ‘얼짱’, ‘애교짱’이다. 벌써 다섯 번째 개인전을 가질 만큼 자신의 분야에서 신세대 유망주로 떠오른 아티스트다. 20대 후반의 이 행위예술가는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단박에 깨부순다. 타인을 만나자 금세라도 품에 안길 듯 달려와 자신의 소니 소형 캠코더에 인사를 시키는 그녀."(*요컨대, '큐티, 섹시, 키티, 낸시'가 그녀의 컨셉/구호이며, '몸짱' '얼짱' '애교짱'이 무기이다.)

-첫 대면부터가 그녀의 초미니 스커트만큼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거부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낸시와 함께 있는 공간은 그녀가 만든 ‘이상한 나라’였다. 하늘의 구름이 갑자기 리라빛으로 변하고, 나무들이 춤을 추기도 하는 이 신기한 나라에서 호기심으로 가득찬 얼굴로 캠코더를 보며 인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안녕? 낸시! 난 오늘 널 만나러 왔단다. 낸시 랭이란 여자아이가 순진무구 애교 덩어리란 소문을 듣고 왔어. 넌 누구니. 후 아 유?”

-초록의 계절, 푸르른 숲이 주위를 뒤덮어 권태롭기까지 한 계절에 서프라이즈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위엄으로 가득찬 예술의 전당 지붕 아래, ‘SFAF(서울파인 아트 페스티벌) 한국 미술 열흘 장’ 오프닝에서 ‘싱싱 Sing’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낸시랭의 세 번째 퍼포먼스. 단발머리 낸시는 까만 선글라스에 발목까지 오는 버버리를 입고 한 손엔 잉글리시 콕스파니엘을 산책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여자로 분한다. 궁금증과 긴장으로 혼합된 그 순간에 버버리를 벗어 던지는 낸시. 그러자 비키니 차림의 싱싱한 몸이 노출되고, 순간 로비는 해변가로 변한다.

-베이비 오일을 바르고, 자신의 몸을 훔쳐보는 관객을 향해, 손을 뻗어 ‘오일을 발라 주세요’ 라고 애교를 떨다가, 성큼 다가오지 못하는 관객을 비웃기라고 하듯, 싱싱한 육체를 뽐내며 신문과 잡지로 도배된 기계 앞으로 다가간다. 언뜻 보아 권위와 보수로 똘똘 뭉친 신문과 잡지다. 껍질을 벗겨내듯, 옷을 벗듯, 훌러덩 벗겨내니, 노래방 기계가 나오고, 상큼한 요정처럼 ‘보랏빛 향기’ 를 부른다. 관객은 어느새 그녀에게 동화된다. 그녀의 하이힐과 빨간색 비키니 만큼이나 도발적인 퍼포먼스였다.

-이 여자가 바로 낸시 랭. 미국 국적 취득 전 한국이름은 박혜령. 한국인이면서 미국 국적을 지닌 낸시는 18세까지 이중국적으로 두 가지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누가 보아도 낸시 랭이란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자다. 낸시의 퍼포먼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베니스의 비엔날레에서 낸시랭은 초대받지 않은 예술가였지만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이라는 주제로 개막식 날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에 하이힐을 신고, 얼굴은 가부키를 연상시킬 만큼 허옇게, 어릿광대 마냥 페인팅을 한 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물론 낑깡 낑깡.(*내가 케이블 TV에서 본 프로그램에서도 이 퍼포먼스는 자세히 소개되었다.)

-낸시가 내는 불협화음은 어릴 적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꿔왔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표현해낸 것이었다. 비엔날레의 주제, ‘꿈과 갈등’과 딱 들어맞았다. 세계 여러 잡지에서는 이 어린 동양 여자아이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낸시의 데뷔작은 평범치 않게,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지나가는 서양인들이 낸시를 보고 하는 말, “You looks sad!"

-예사롭지 않은 낸시가 내뿜는 마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낸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기니가 이런 의문을 풀어준다. 요기니는 바로 낸시 랭 자신이다. 천사와 악마의 중간자적 존재로 인간과 신 사이의 영적인 메신저 역할을 하는 요기니에 타부를 개입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요기니를 탄생시켰다. 낸시는 요기니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 상처와 극복을 보여준다.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함께 지닌 요기니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여서 어쩐지 슬퍼 보이고 고독해 보이지만, 잠재된 파워와 끈길긴 생명력을 지녀 끊임없이 부활하는 영적인 존재다. “호랑이는 강한 동물이지만,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 고독한 영웅이잖아. 강한 것 같지만 늘 혼자 있는 외로운 동물. 내가 그렇다니까!”

-낯선 이의 팔짱을 쉽게 끼고, 가벼운 스킨 십으로 벽을 허물고, 친근감 있게 말을 트고, 허스키 코맹맹이 소리로 언니, 오빠, 선생님을 부르는 낸시. 버릇없어 보이기보다 타인에게 쉽게 문을 열어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순진해 보인다.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던 어머니를 둔덕에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웠던 유년시절, 용돈을 모아 산 천체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던 낸시는 공상의 나래를 꿈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낸시의 공상은 우주로 뻗어 나갔고, 자연스레 공상 과학 만화의 상상력은 그녀의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예술의 전당 지붕아래서 열리는 다섯 번째 개인전의 타부 요기니 시리즈는 기생의 가채머리를 한 동양 여성의 얼굴에 몸체는 로봇인 여전사가 등장한다. 낸시의 작품속 요기니는 대부분 잔다르크적 이미지의 여전사가 대부분이다. 여전사는 그녀와 닮은 그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낸시의 어머니는 낸시가 당신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기보다 영화관에 가면 중간 줄에 앉은 관객처럼 평범하고 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낸시에겐 꿈이 있다. 요기니를 통해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과 이상이다.

-너, 아직도 꿈을 꾸니? 나는 묻는다. 응, 나는 꿈을 자주 꾸어. 하늘을 나는 꿈.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새처럼 훨훨 나는 꿈을 꿀 때가 가장 행복해. 마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같잖아.

-긴장이 풀어지는 봄날 오후, 꿈을 현실로 불러들이는 이 여자를 조심하라. 자신의 분신 타부 요기니 시리즈로 낸시가 말하려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혼자놀던 외로운 아이는,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시켜줄 요기니를 탄생시켰지만, 결국 요기니를 통해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리고 오늘자(2006. 04. 09) 인터넷판 세계일보의 기사(여타의 많은 기사들도 대동소이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아티스트 낸시 랭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고 대통령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악수를 나누는 사람, 낸시 랭(27·한국명 박혜령). 연예인인지 디자이너인지 사람마다 아리송한 ‘답안’을 내놓는 이 사람, 요즘 TV만 틀면 여기저기 나온다. 초고속통신망 광고에서 머리에 깃털을 달고 고양이 캐릭터와 탭댄스를 추고, 패션브랜드 광고의 지폐뭉치 속에서 웃고 있다. KBS의 ‘파워 인터뷰’에 고정패널로 나와 몇 차례 돌출발언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슬며시 사라졌다. 그러더니 이번엔 케이블 음악채널 M.net에서 지난 3일부터 월∼금요일 오후 6시30분 ‘낸시 랭의 트렌드 리포트 必’에 진행자로 매일 저녁 나오며 카메라 앞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토크쇼도 한다. 본인 말대로 “연예인에게 오는 CF, 영화 등의 섭외는 다 들어온다”는 이 사람의 정체는 무얼까.



◆그녀에 대한 오해: 낸시 랭이 광장에 나온 건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거리 퍼포먼스. 초대받지 않은, 가난한 아티스트 낸시 랭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란제리 차림으로 하이힐을 신고 바이올린을 켰다. 이름하여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 터부 요기니 시리즈’. 이 파격적인 공연 이후 그는 2000년대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논쟁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퍼포먼스를 한 건 단지 돈이 없어서였다”고 설명한다.

-그를 만났을 때 가장 묻고 싶었던 말, 지난해 11월 KBS ‘파워 인터뷰’에 고정 패널로 출연했을 때의 문제의 발언을 되짚었다. 당시 그의 발언, “(천정배) 장관님도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보셨나요?” “저 엘리트 너무 좋아하거든요” 등은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낳았다. “엘리트는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거잖아요. 많이 가진 만큼 베풀지 않는 한국 엘리트의 현실이 문제이지, 엘리트가 문제는 아니잖아요? 전 명품도 좋아해요. 루이 뷔통부터 크리스천 디올까지, 좋아하는 순위별로 댈 수도 있죠. 누구나 원하는 걸 제가 굳이 숨기지 않은 게 잘못인가요.” 그녀는 ‘파워 인터뷰’에서도 “패널이 아닌 아티스트 낸시 랭으로 출연한 것뿐”이었다며 얼굴을 붉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지 않으면 불안해해요. 튀어나오면 못박고 싶어하죠.”(*나중에 다시 지적하겠지만, '누구나 원하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 것', 그게 '낸시 랭'표 아트의 핵심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필리핀에서 보낸 국제고등학교 시절 “전략적으로” 변호사를 사서 바꾼 이름이 낸시 랭(본명 박혜령)이다. ‘랭’은 그가 “비주얼과 타이포그래피, 국제성까지 감안해 만들었다”는 성이다.

◆걸어다니는 팝아티스트 낸시 랭: 아티스트 낸시 랭은 요즘 매일 출근을 한다. 매일 그가 아트디렉터로 있는패션브랜드 쌈지에 출근을 하고 M. Net 아이디어 회의와 녹화도 병행한다. 4월 말 출간 준비중인 책과 개인전, 또 최근 쌈지가 후원하는 입주 프로그램 작가로 선정돼 활동도 벌여야 한다. 도대체 언제 그 많은 일들을 수습할까. “꿈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는 침대 머리맡, 화장실, 핸드백 곳곳에 노트를 놓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놓는 ‘기록광’이라고 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낸시 랭’ 상표의 옷과 가방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가 디자인한 핸드백 안쪽엔 ‘메이드 인 차이나’ 대신에 ‘메이드 인 헤븐’이라고 씌어진 상표가 붙어 있다. 드라마 ‘궁’에서 윤은혜가 들었던 알루미늄 하드케이스의 핸드백 ‘매직박스’도 그의 작품.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면서 아티스트 고유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 가능할까.“국내에서 아티스트가 방송프로그램 진행을 통째로 맡는 건 처음이죠. 팝 아티스트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건 자연스런 작업인데도 말이죠. 방송을 통해 트렌드를 만들고 전달하며 재해석하는 아티스트 낸시 랭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줄 겁니다. ”

-“낸시 랭은 비즈니스를 예술과 접목시키는 걸 즐기는 사람이”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는 “미술가도 잘 되는 것 보여줘야 다른 분야처럼 관심과 투자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낸시 랭은 오는 6월 대대적으로 자선 기부파티를 벌일 계획도 털어놓는다. 작품 대신 계획서를 받아 13명의 젊은 예술가들을 뽑은 후 그들을 후원해 주겠다는 생각이 낸시 랭답다.

 

 

 



-그가 꿈꾸는 예술가는 피카소, 달리, 앤디 워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천재적 재능과 다작을 남겼다는 것. 그리고 부와 명성을 ‘일찍이’ 누렸다는 거죠. 고흐는 싫어요.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살며 명작을 남겼지만, 사후에야 유명해졌잖아요?”

-작품보다 작가가 유명해지는 것에 불만은 없을까. “지난해 말 쌈지에서 낸시 랭 개인 전시회할 때 사람들이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다 들어왔어요. 쌈지 전시장 개장 이후 그렇게 성황인 건 처음이라 그러던데요.” “나르시시즘이 내 작품 키워드 중 하나”라는 그녀의 무한한 자신감과 솔직함이 부러워졌다.

'우리시대의 팝아티스트' 낸시 랭의 '아트'에 대한 나의 의견은 간단하다. 그녀의 이런저런 '아트'가 보여주는 것은 '탈승화의 예술', 혹은 '예술 이후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예술 이후의 예술' 혹은 '탈역사 시대의 예술'에 대해서는 미국의 철학자/비평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미술문화, 2004)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는데, 단토의 '예술종말론'의 영감은 낸시 랭의 우상이기도 한,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1964)에서 비롯됐었다. 

 

 

 

 

단토가 워홀의 작품에서 끌어내는 문제의식은 상품으로서의 '브릴로 박스'와 지각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과연 어떻게 (여전히) 예술일 수 있을까였다. 그러니까 예술과 비예술간의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의 문제가 '예술(시대)의 종언'을 이끌어낸 화두였다(덧붙이자면, 단토에게서 '예술의 종말'은 비극적인 음조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예술 다원주의'의 개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주는 낸시 랭의 '아트' 또한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본인 말대로, “연예인에게 오는 CF, 영화 등의 섭외는 다 들어온다"고 할 때, 우리는 겉으로 봐서는 그녀가 아티스트인지 연예인인지 식별하기 어렵다(그녀에겐 매일 출근하는 '직장'도 있다). 즉, 여기서도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이 개입하는 것.  

 

 

자본주의/대중문화 시대의 아티스트/연예인은 다 같이 대중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각자의 장기와 재능을 상품화함으로써 인기와 부를 획득한다. 애교와 끼가 '예술'인 낸시 랭은 노래와 댄스가 '예술'인 채연, 혹은 연기가 '예술'인 한고은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모두가 팝(pop)에 호소하는, 그럼으로써 한몫잡는 아티스트들 아닌가?(요즘은 '돈벌이'도 아트에 속한다.) 그렇다면, 단토가 앤디 워홀과 더불어 예술(미술)이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낸시 랭과 더불어 예술가의 종말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예술가의 종말' 이후에도 고흐처럼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살면서 명작을 남"기는 예술가들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가는 '예술가 다원주의' 시대의 한 유형 정도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탈승화의 예술'인가? 프로이트를 참조하자면, 예술은 기본적은 '승화'의 과정이자 결과물이었다. 할 포스터의 정리를 따라가보자: "프로이트는 예술을 승화의 과정이며 본능을 포기하는 협상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예술이 탈승화의 프로젝트라거나 문화가 금지하는 사항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보는 입장을 단호히 거부했다."(<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 31쪽, 번역 일부 수정) 승화(Sublimation)라는 건 리비도의 (비사회적) 욕망을 예술적 창조행위처럼 사회적으로 수용할 만한 양태로 치환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낸시 랭의 기원이라 할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퍼포먼스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은 승화의 전형적인 예이다. 다시 옮기면, "개막식 날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에 하이힐을 신고, 얼굴은 가부키를 연상시킬 만큼 허옇게, 어릿광대 마냥 페인팅을 한 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물론 낑깡 낑깡. 낸시가 내는 불협화음은 어릴 적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꿔왔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표현해낸 것이었다. 비엔날레의 주제, ‘꿈과 갈등’과 딱 들어맞았다."

거기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어릿광대의 불협화음 바이얼린 연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승화이다(그러니까 낸시 랭은 적어도 베니스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예술가'였다). 혹은 낸시 랭의 이러한 말: "너, 아직도 꿈을 꾸니? 나는 묻는다. 응, 나는 꿈을 자주 꾸어. 하늘을 나는 꿈.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새처럼 훨훨 나는 꿈을 꿀 때가 가장 행복해. 마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같잖아."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혹은 현실과 타협해 가는 과정, 그런 게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예술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예술을 탈승화의 프로젝트로 보는 입장에 반대했던 것이다. '탈승화(Desublimation)'란 자아의 중개/제약 없이 리비도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낸시는 요기니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 상처와 극복을 보여준다"라고 할 때 그 '극복'은 억압되지 않은 리비도의 자기 분출/표현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탈승화는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던 어머니를 둔덕에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웠던 유년시절"의 유산이기도 할 것인데, 그녀는 자신의 욕망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그녀의 '낑깡 낑깡'은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라, 한시적인 모습이었을 뿐이겠다).

가령, 이런 기사는 어떠한가? 데일리 서프라이즈(2006. 01. 01): "한국사회에 혜성처럼 등장해 이미 그녀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화 되어버린 아티스트 낸시랭(한국명 박혜령)의 파격 행보는 지금껏 우리 머릿속에 각인돼온 전통적 아티스트의 단상을 지극히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술 잡지나 공모전, 아트페어가 아닌 <바자>나 <엘르> 같은 패션지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던 낸시랭은 누구보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 솔직한 아티스트다."

여기서, 전통적 아티스트에 대한 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그녀가 '예술가 종말' 시대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며, '솔직한 아티스트'라는 것은 이 '나르시시즘의 예술가', 혹은 '공주병 예술가'가 자신의 욕망과 따로 타협하지 않는 '탈승화의 예술가'라는 걸 암시해준다. 예컨대, 그녀는 명품중독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퍼포먼스의 주제로 삼는다.

다시 데일리 서프라이즈: "신드롬이라 부를 만한 예외적 상황들을 끌어내며 한 해 동안 대한민국 현대미술계의 이슈 메이커가 되었던 그녀는 자신에 대한 극단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미술계의 핵심부로 다가서고 있다. ‘아이 러브 루이비통’을 외치며 예일 로고를 작품에 등장시키는 철저한 세속성과 싱싱한 육체를 이용한 섹스어필한 퍼포먼스는 이중성을 벗어던진 홑겹의 재현 방식으로 음습하지 않은 경쾌함 마저 전해 준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고립감에 빠져 무게에 짓눌린 현대미술계의 핵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건드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중성을 벗어던진 홑겹의 재현방식'이 암시적으로 뜻하는 것 또한 그녀가 리비도(이드)와 자아 간의 타협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술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확히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그녀는 우리시대의 초현실주의 아티스트이다. 혹은 그녀의 예술적 주체는 초현실적 주체이다. 대부분 잔다르크적 이미지의 로봇 여전사인 그녀의 대표 아이템 '타부 요기니'처럼. 나는 그녀의 로봇-요기니가 욕망과 타협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녀가 대놓고 말하는 자신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천재적 재능"을 인정받으면서, "다작"을 통해 "부와 명성을 ‘일찍이’ 누리는 것"이다. 우리시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런 걸 바란다고 해도, 적어도 '현실'에서는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대놓고 돈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낸시 랭의 '현실'은 우리의 '초현실'이다(혹은 우리시대는 이미 '탈승화의 시대'인가? 하긴 '부자되세요!'라고 인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06. 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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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04-09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오늘 저도 낸시랭에 관한 글을 퍼왔는데 로쟈님도 낸시랭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시라니...이런 우연의 일치가...^^ 일단 퍼가고 날카로운 분석과 의견 부탁드려요~

로쟈 2006-04-1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카로운 분석과 의견'은 아니고, 그냥 낸시 랭 현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았을 뿐입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랭이 뉴스메이커 구실을 워낙 톡톡히 하고 있는지라...

사마천 2006-04-1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글과 사진을 직접 정리하셨나요? 와... 백남준도 초기에는 머리를 붓삼아 먹 뭍여가지고 글쓰더군요. 일종의 퍼포먼스는 새로운 벽깨는 시도였다고 합니다. 이 아가씨의 장점도 튀는 것 내지 자신감 만은 아니겠지요. 훨씬 많은 무엇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로쟈 2006-04-1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들을 따다 붙이는 건 단순작업입니다(간혹 애로사항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물론, 낸시 랭의 장래는 그녀에게 달려있을 겁니다. 저는 새로운 타입의 아티스트 유형을 그녀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에 대한 호오의 문제는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로쟈 2006-05-0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두 가지 요점 중 하나는 그러한 '언론 플레이' 덕분에 낸시 랭의 경우 '아티스트'인지 '연예인'인지 구별되지 않으며 때문에 '예술가 종언 시대의 예술'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건 '공감'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노나 백남준이나 다 '사기'를 쳤지만, 그들에겐 '아티스트'의 아우라가 있었죠. 낸시 랭은 그런 '아우라'를 갖지 않는 국내 최초의(?) 아티스트가 아닐까요?(덕분에 많이들 불편해 하시는?) 그에 대한 '평가'는 행간에서 읽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2006-05-0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인원님의 흥분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가급적이면 예의를 갖춰서 페이퍼를 썼지만, 대략적인 행간의 의미는 낸시 랭 타입의 '연예인-아티스트'에 대한 불편함을 적어놓은 것입니다(그건 '부자되세요!'라는 노골적인 인사말에 대한 불편함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예술의 경계선을 갖고 놀아도 결과는 예술이라는 점입니다"라고 하신 건 저와 의견이 전혀 상반되는데, 저는 낸시 랭이 예술가도 아니며(그래서 '예술가 종말 시대의 예술가'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그래서 '예술 종말 시대의 예술'이라고 적었고 '탈승화의 예술'이라고 적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자본만능시대의 '천박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거라면, 낸시 랭은 징후적으로 중요한 '작가'일 수 있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노골적으로 그녀만큼 돈을 밝히는 작가가 따로 더 있는지요?). '천박한 시대'에 어울리는 '천박한 아티스트'란 의미에서. 더불어, 무슨 '책장사' 운운하시는 건지? 반론을 제기하시는 건 언제나 환영이지만, 글은 제대로 읽고 제기해주십시오...

로쟈 2006-05-0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관적인 시간낭비'에 동참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책장사를 계속 거드실 필요는 없을 거 같고(이건 애당초에 개입하실 필요가 없었던 문제 같습니다), '예술 장사꾼'들 신경쓰지 마시고(평범한 고흐도 그렇게 신경을 썼던가요? 미술사에 제가 무지해서), 진정한 예술에 정진하시길 기원합니다...

뱃살공주 2006-05-0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도 인간인 이상 당연히 무관심보다는 나쁘게라도 인정받고 싶었을 거여요. 그러나 대부분은 성공보다는 작품에 애착을 더 느끼기 때문에 현실과 쉽게 타협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당당한 비굴함이 솔직함이 될 수 없듯이. 아무래도 재미있게 일하는데 파리들이 주변에서 맴돌면 성가시지 않을 사람 없잖아요?
그나저나 정리 잘 하셨네요. 시간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

로쟈 2006-05-09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당한 이미지들을 찾느라고 '시간'이 좀 들긴 했는데, 그 이미지들이 그나마 도망가지 않고 얌전하게 있네요.^^

2007-01-08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낮에 EBS 세계명화에서 짐 자무쉬(1953- )의 <천국보다 낯선>(1984)을 다시 봤다. 집안 청소를 하면서 봤기 때문에 제대로 봤다기보다는 그냥 틀어놨었다고 해야 맞겠다(중간에는 분리수거도 하러 내려갔다 오고). 사실 이 영화는 국내에 개봉되기 이전에 아주 오래전 한 대학의 영화제에서 거푸 두 번을 본 적이 있다. 이후에 개봉관에서도 한번 보고. 그러는 사이에 80년대 대학가의 '전설'이었던 이 영화는 이젠 '낯익은' 영화가 되었다. '포스트모던적'이었던 영화의 포스터는 거의 키치가 되었고.   

<천국보다 낯선>은 얼마전 최근작 <브로큰 플라워>(2005)가 국내 개봉된바 있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기린아' 짐 자무쉬의 두번째 장편영화이고, 일설에는 빔 벤더스가 <파리, 텍사스>(1984)를 찍고 남은 필름으로 찍은 영화이다(자무시는 벤더스의 조감독 출신이다). 영화 속 이야기나 화면은 쓸쓸하고 황량하지만, 처음 볼 때는 아주 낯설고 참신한 영화였다(빅토르 슈클로프스키의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자면, 예술은 '낯설게 하기'이다). '진공청소기를 돌리다'는 '악어의 목을 조르다'라고 표현하는 게 '미국식'이라고, 헝가리에서 날아온 사촌동생 에바에게 '미국인' 윌리가 한 수 가르쳐주는 대사처럼. 나 또한 악어의 목을 한참 조르고 난 후에 이 페이퍼를 쓴다.

먼저, 의례적인 영화 줄거리를 이미지들과 함께 옮겨온다. 영화는 '신세계(The New World)', '1년 후(One year Later)', '천국(Paradise)'이란 소제목으로 나뉘어진다.

-뉴욕 빈민가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윌리에게 어느 날 사촌 에바가 찾아온다. 갑자기 군식구를 떠맡게 된 윌리는 처음엔 그녀를 성가셔 하지만 10일이 지나 에바가 떠날 무렵이 되자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낀다.  

-일년 후 윌리는 친구 에디와 함께 에바를 만나러 클리블랜드로 무작정 떠난다. 괴짜 로티 아주머니와 함께 사는 에바는 핫도그 가게 점원으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세 사람은 함께 플로리다로 떠나기로 한다. 이들의 여정은 개경주에서 윌리와 에디가 가진 돈을 거의 다 날리게 되면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남은 돈을 털어 경마에서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있을 때 에바는 우연치 않게 큰 돈을 손에 넣는다.  

-윌리와 에디를 기다리던 에바는 결국 혼자 공항으로 떠나고, 세 사람은 뿔뿔이 흩어진다. 언제 도착했건 이방인이기는 마찬가지인 이민자들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하고 꿈같은 파라다이스와는 거리가 멀다. 신세계의 꿈을 안고 도착한 에바에게 이 거대한 나라는 뉴욕이건, 클리블랜드건, 플로리다건 간에 쓸쓸하고 황량할 뿐이다. 

<천국보다 낯선>은 한겨레신문이 선정한 세계영화 100선에도 꼽혔던 작품이니만큼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작품 해설은 이렇다. 

 

 

 

 

-헝가리 아가씨 에바가 뉴욕에 사는 건달 친척 윌리의 집에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천국보다 낯선>은 착상이 도전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미국 사회의 풍경은 아메리칸 드림, 모든 것이 넘쳐나는 풍요의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 흑백 장편영화는 삭막하고 스산하기조차 한 미국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영화로 청년 감독 짐 자무쉬는 84년의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과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 표범상을 받았다. 그는 단숨에 뉴욕 독립영화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천국보다 낯선>은 미국영화지만 사실 미국영화라기보다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럽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화면이 한 장면을 이루는 길게 찍기, 시선의 비상한 집중을 요구하는 고정된 카메라 스타일, 서로 진정한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관계, 여기저기 떠돌지만 정신적으로 건조한 삶의 조건, 긴 페이드 아웃의 화면전환이 주는 형식의 단절감 등은 무엇보다 대리만족을 주는 이야기체 영화를 중시했던 미국영화의 전통과는 별로 상관없다. 자무쉬는 빔 벤더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 브레송 등의 유럽 영화감독과 일본 영화의 대가 오즈 야스지로 등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빌려와 황폐한 미국 생활의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영화 표현의 뿌리를 여러 혈통에서 빌려온 셈이다. 그래서 곧잘 '포스트모던'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자무쉬 영화의 새로움은 유럽영화에서는 이미 상투화한 진술을 미국의 상황으로 옮겨놓은 낯설음에서 온다. 예를 들면 에바와 에바의 사촌 오빠 윌리가 식탁에서 TV 디너에 관해 대화하는 장면같은 것이다. "티브이 디너 안먹을래?" "안먹어, 배 고프지 않아." "왜 티브이 디너라고 부르지?" "그냥... 티브이를 보면서 먹으니까... 텔레비전말이야." "텔레비전이 뭔지는 나도 알아." "그 고기는 어디서 난거야?" "뭐?" "그 고기는 어디서 난거야?" "쇠고기지 뭐." "쇠고기야? 고기같이 보이지 않는데." "휴... 상관하지마. 어쨌든 여기선 이런 걸 먹는다구. 고기, 야채, 디저트, 그리고 설거지할 필요도 없어." 이런 식의 반복된 대화의 연속과 단조로운 양식은 황폐한 미국생활을 암시하는 놀라운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자무쉬는 원래 이 영화의 1부인 <신세계>를 단편영화로 발표했었다. 영화가 평판이 좋자 자무쉬는 두 단락을 더 붙여서 장편영화로 공개했다. 그러나 1부 '신세계'에 이어 추가된 '일년 후'와 '천국'은 1부의 부연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뉴욕에서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로 옮겨 다닌다. 이 여정은 야만의 땅에 문명을 심으며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걷던 신화적인 여정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장소이동 모티브에는 더 이상 상징적인 의미가 없다. 클리블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주인공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고 중얼거린다.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저 천국보다 낯선 곳일 뿐이다.

-자무쉬는 그러나 <천국보다 낯선> 이후에 만든 영화들에서 <천국보다 낯선>의 신선함에 맞먹는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형식이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는 종래의 미국적인 이미지를 뒤집는데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재미있는 것은 이 관심이 모방과 짜집기와 재구성이라는 80년대 이후의 양식적 경향 속에서 추구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미국적인 감독이다.

한데, 영화를 여러 차례 보다 보면, 메시지는 모두 증발해버리고, 형식미나 디테일 정도만이 인상에 남는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그러한 디테일은 여주인공 에바가 듣는 음악들인데, 그 중에서도 'Screamin' Jay Hawkins'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는 잴러시 호킨스(Jalacy Hawkins; 1929-2000)의 '절규하는' 로큰롤 'I put a spell on you'(1956)가 가장 인상적이다(http://www.youtube.com/watch?v=bvWf9djVg9c).  

I put a spell on you
Because you're mine.
I can't stand the things that you do.
No, no, no, I ain't lyin'.
No.
I don't care if you don't want me
'Cause I'm yours, yours, yours anyhow.
Yeah, I'm yours, yours, yours.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Yeah! Yeah! Yeah! Yeah....
I put a spell on you.
Lord! Lord! Lord! ...
.'Cause you're mine, yeah.
I can't stand the things that you do
When you're foolin' around.
I don't care if you don't want me.
'Cause I'm yours, yours, yours anyhow.

Yeah, yours, yours, yours!
I can't stand your foolin' around.
If I can't have you,
No one will!

I love you, you, you!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you, you!
I don't care if you don't want me.
'Cause I'm yours, yours, yours anyhow.

witchesattea.jpg

가사에서 'I put a spell on you'는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걸어요'라고 옮긴 경우도 있던데) '나는 당신에게 주문을 걸어요'란 뜻이겠다. 왜냐면, "당신은 내 거니까." 마지막 가사도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을 나를 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어쨌거나 당신 거니까."란 식이니까, 거의 '당신'의 목을 조르는 내용이다.

해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은 '천국보다 낯선' 아메리카가 우리에게 거는 '주문'인지도 모르겠다. 벤더스의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황량한 텍사스 사막에 '파리'라는 지명이 붙은 것처럼, <천국보다 낯선>에서는 황량한 들판이 (천국보다 낯선) '천국'에 비유된다. 우리가 에바처럼 서 있는 이 자리, 끊임없이 주문/마법이 필요한 이 자리...

 

06. 04. 09. 

 

 

 

 

 P.S. 한편, 아메리카의 반대편 러시아에서 '악어'하면 떠오르는 두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풍자소설 <악어>와 러시아 어린이들의 친구이자 마스코트 <체브라시카>에 등장하는 악어 친구 '게나'이다. <악어>는 당대 19세기 유럽이란 (천국보다 낯선) '천국'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신랄한 풍자와 조소를 담고 있는 작품이며, <체브라시카>는 원송이도 아니고 곰도 아닌 주인공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험담이다. 동물원에 출퇴근하다가 체브라시카의 모험을 따라나선 악어 게나는 그런 체브라시카를 도와주는 친구. 만약 아이가 미키마우스 대신에 이런 만화/동화를 좋아한다면, (아메리칸 스타일이 아닌) 러시안 스타일로 키우셔도 되겠다...   

P.S. 짐 자무시(자무쉬)의 인터뷰집이 출간됐다. <짐 자무시>(마음산책, 2007). "1981년부터 2000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다양한 국적의 인터뷰어들이 기록한 열다섯 편의 글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소개에 따르면, "인터뷰는 '영원한 휴가'부터 '커피와 담배'에 이르기까지, 짐 자무시 자신이 영화에 담고자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에피소드 외에, 그의 삶과 개인적 이야기를 담은 글들도 많다. 그의 세계관, 정치적인 입장 등이 드러나기도 하며, 로베르토 베니니, 카우리스마키 형제, 빔 벤더스 등과 같은 동료들과의 만남이 소개되기도 한다."

아직 빔 벤더스에 관한 책도 변변한 게 나오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의외이긴 한데, 여하튼 반갑다. 짐 자무시보다 더 고대하는 건 아키 카우리스마키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언젠가 소개한 바 있지만 나는 러시아어에서 나온 연구서 하나를 갖고 있다). "원서인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에 수록된 17편의 인터뷰 가운데, 15편을 골라 편집했다."고 하는데, 굳이 2편을 뺄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07.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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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때문에 바타이유를 읽다가(생각보다 안 읽히는 대목이 많다) 기분전환 삼아 자료 검색을 했다. 그러다 발견한 글꼭지는 얼마전(2006. 03. 24) '한겨레'의 기획연재 '스크린 속 나의 연인'에 게재되었던 글이다. 영화 <분홍신>의 프로듀서 신창길씨가 필자이고, 그는 거기서 <비포 선라이즈>(1995)의 '셀린느'(줄리 델피를) 자신의' 연인'으로 호출하고 있었다. 한데, 그게 나에겐 줄리 델피와 바타이유의 '희귀한' 접속점을 알게 해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단은 필자의 그 연애담을 조금 따라가본다.  

 -그녀는 내가 결혼을 생각하게 만든 첫번째 여자였다. 가장 가슴 벅찬 열망과 가장 고통스런 비애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 그녀.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당시 그녀는 실패한 연애의 상처로 인해 심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난 달콤한 탈출구였다. 영화 하겠다고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을 다니고 있었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진지하게 삶을 꾸려가는 것이 진정 의미있는 인생일 거라고, 순진하고 치기어린 얘기들을 들려주었고, 그녀는 나와 함께 대학로와 인사동을 오가며 영화와 공연장을 순례하고 둘만의 여행으로 고단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연애의 모양새는 갖췄지만,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했던 그녀와의 관계는 매순간 희열과 좌절의 극단을 넘나들게 했다. 내가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던 것은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희와 열정을 붙잡고 싶은 욕망에서였다. 그녀의 일상이 편안해지고 문화탐험을 위주로 한 교양연애도 시들해지자, 결국 그녀는 좀 더 안정되고 부가가치 높은 삶을 향해 나를 떠나고 말았다. 결혼이라는 선택을 통해 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삶을 위치지우고 싶어한 그녀는, 결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내비친 나를 정말 순진하고 치기 어리게 바라보았다.

-내가 가진 현실적인 불확실함까지 감내할 자신이 없었던 그녀의 선택에 난 크게 반발하지 않았지만, 희열과 열정이 사라진 공백과 허탈의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그때, 코아아트홀 일요일 조조상영에서 만난 그녀 ‘셀린느’(<비포 선라이즈>의 줄리 델피)는, 그때까지 내가 알던 연애와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한순간에 뒤집어놓은, 말 그대로 ‘발견’이었다(*나도 코아아트홀에서 봤었는데). 그동안 내가 붙들려 있었던 연애가 얼마나 과도한 욕망과 집착으로 버무려진 열병덩어리였는지, 정말 내가 사랑을 느끼는 대상은 누구이며 사랑을 이뤄가는 내용과 방식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 뒤통수를 치는 듯한 깨우침을 ‘셀린느’는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룻밤의 시간뿐. 비엔나 거리를 거닐면서 제시와 셀린느는 참 많은 얘기를 나눈다. 고즈녁히 책을 보며 대화를 하는 그녀. 서글서글한 눈매에 담백한 인상의 그녀는 지적이고 사려 깊기까지 하다. 매력적인 눈웃음에 천진한 미소, 나긋한 목소리에 맑고 풍부한 감수성까지…. 내가 제시가 되어 비엔나의 밤거리를 함께 거니는 듯 나른한 흥분에 빠져들었다. 제시가 그녀에게 처음 말을 건네게 만든, 기차 안에서 그녀가 읽고 있었던 바타이유의 <죽은 자>도 서점을 뒤져가며 열심히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불행히도 번역본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셀린느가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 바타이유의 <죽은 자>라고 하니까, 아마도 그의 소설 'The Dead Man'을 가리키는 것 같고, 보통의 영역본에는 'My Mother', 'Madame Edwarda'와 함께 묶여 있다(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 바타이유 소설선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여하튼 그래서 '줄리 델피와 바타이유'가 한데 묶이게 되는 것.  

-그때 이후, 별 내세울 것도 없는 내 사랑과 연애는 이른바 ‘셀린느 찾기’의 흥미롭고도 지난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신념어린 의지(!) 끝에 마침내, 나는 나의 셀린느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제시와 셀린느가 <비포 선셋>에서 다시 만난 바로 그때, 나는 나의 셀린느와 함께 옛날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크린 속 10년 만에 만난 그들은, 지난 시간의 엇갈림과 회한 속에 아쉬운 두 번째 이별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객석의 나는 흐뭇한 행복감을 만끽하며 나의 셀린느의 손을 꼭 쥔 채, 그들을 애틋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보는 셀린느. 늘어난 잔주름과 시간이 남기고 간 흔적들은 오랜만의 그녀에게서 발견한 안타까움이었지만, 나에게 그녀는, 사려깊고 당당하며 진지하고 순수한 10년 전 비엔나 밤거리의 셀린느, 그대로였다.

(*)나는 <비포 선셋>(2004)은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작년에 비디오로 봤는데(그러니까 해가 뜨고 지기까지 내겐 10년이 걸렸다), 어느덧 '선라이즈'보다 '선셋'에 더 공감하는 나이가 됐음을 확인하고 좀 씁슬했다. 내친 김에 <비포 선셋>에 등장하는 제시와 셀린느의 '10년후'도 따라가보기로 한다. 사이즈가 좀 큰게 흠이군...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비엔나'를 품고 있지만(이 스틸 사진들 속에 각자의 연인들을 채워넣는 일은 부득불하며 불가피하다. 그것이 어떤 풍경이든지간에), 비엔나에도 해는 진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시간에, 젠장, 책까지 읽어야 하다니!..

Before Sunset

06. 04. 09.

P.S. 때아닌 감상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해서, 얼마전에 나온 유기환 교수의 <조르주 바타이유>(살림, 2006)에 대한 동아일보의 리뷰(2006. 02. 25)를 옮겨온다. 책은 나도 단번에 읽었었는데, 리뷰를 쓰는 건 다른 일들에 밀려 늦추어졌었다. 조만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흔히 바타이유의 사상은 난해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은 난해하기보다는 난삽하고, 복잡하기보다는 산만하다고 해야 옳을 듯하다.”(*난삽하고 산만하다는 걸 <저주의 몫>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됐다.) 흔히 ‘저주받은 작가’로 불리는 조르주 바타이유(1897∼1962)의 사상 체계를 조리 있게 정리한 이 책에서 불문학자인 유기환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이렇게 바타이유에 대해 독자들이 품고 있는 ‘죄책감’을 말끔히 씻어 준다.

 

 

 

 

 

-바타이유는 초현실주의의 제왕 브르통과 실존주의의 지존 사르트르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비판을 했던 작가였다(*서로 사이가 다 안 좋았다). 이는 그의 글이 니체의 강한 영향 아래 애초부터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함에 따라 늘 모순과 역설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타이유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저주의 몫>(1949년)과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꼽히는 <에로티시즘>(1957년)을 통해 그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준다(*<에로티시즘>이 아니라 <에로티즘>이다. 영역본도 그렇게 표기한다). 특히 그의 정치경제학 저서라고 할 <저주의 몫>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바타이유는 마르크스처럼 ‘과잉(잉여)’의 문제에 천착했다. 마르크스는 이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지만 바타이유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봤다. 태양이 지구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보내는 것처럼. 문제는 이 과잉 자체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양차 대전의 발발은 바로 과잉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발생한 부작용의 극치였다. 바타이유는 이 과잉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비생산적 소비’를 제시한다. 그것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대가 없이 증여하거나 심지어 불태우는 ‘포틀래치’처럼 수요공급의 법칙에 어긋나는 소비다. 바타이유가 발견한 이 ‘소비의 경제학’은 오늘날 얼마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서는가.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행위를 뜻하는 에로티시즘은 그러한 비생산적 소비의 또 다른 대표 사례다. 인간이 에로티시즘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비록 순간일지라도 타자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며 금기의 위반을 통해 증대하는 쾌락의 경제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전히 바타이유에 대한 저주의 봉인을 풀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금기와 위반의 변증법적 사유를 통해, ‘돌이 될 것’이라는 위협에도 신이 돌아보지 말라고 했던 곳을 응시함으로써 예언력을 획득한 그의 신탁을 듣기 위함은 아닐까.

바타이유의 관점에서 볼 때, 제시와 셀린느의 사랑은 '사랑의 이전의 사랑' 혹은 '에로티즘 없는 사랑'이다('비포 러브'라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거기엔 어떠한 과잉도 어떠한 비생산적 소비도 자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정의 너울거림에 잠시 삶을 의탁하지만, 그 경계에서 다시 회수해간다. 그들의 만남과 대화에는 언제나 테이블 하나 정도의 거리가 끼여드는 것. 그 거리는 (불가피하다고 믿어지기에) 아쉽고, 안타깝고, 서운하고, 애틋하다. 그러한 여운 속에 그들이 남겨놓은 질문은 한 가지이다. '그들은 정말 사랑한 걸까?' 예의상, 이 질문을 우리 자신들에게는 던지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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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4-09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진지하게 삶을 꾸려가는 것이 진정 의미있는 인생일 거라고,
순진하고 치기어린 얘기들을 들려주었고

이게 과연 10년 전에 완료된 필자의 생각일까요?
괜히 이렇게 썼겠죠.
인생에 심통이 나서.
흥미진진한 페이퍼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손에 들고 있던 책(혹은 읽고 있던)
을 따라가 보는 것도 재밌겠는데요?^^

로쟈 2006-04-09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진하고 치기어린 얘기들'이야 뭐 수시로 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10전이건 후이건...

릴케 현상 2006-04-09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볼 때 바타이유 책을 발견했어요. ㅋㅋ 전 머리 빈 양키남과 한 지성하는 불녀를 대비시키는 설정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더랬죠

로쟈 2006-04-0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썰미가 있으시네요. 저는 하도 오래전이라. 하긴 불남/양키녀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