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예술론 강의에서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었고, 이번주부터는 <미를 욕보이다>를 읽는다. 강의자료를 만들다가 자연스레 앤디 워홀의 책들에도 눈길을 주게 된다. 더불어 단토의 책도 몇 권 더.


 













예술론 강의에서는 단토 입문격의 책으로 마지막 저작 <무엇이 예술인가>(2013)를 읽고, <예술의 종말 이후>(1997)를 다루었는데, <미를 욕보이다>(2003)는 그 사이에 발표된 책이다. 이어서 <앤디 워홀>(2009)을 읽을 수 있지만, 국내 번역서 <앤디 워홀 이야기>는 유감스럽게도 청소년 위인전으로 변조된 엉터리책이다. 단토의 <앤디 워홀>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쳐야 하기에, 워홀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을 따로 봐야 한다. 














워홀 소개서들을 제외하고 살펴보니 그래필 노블로 나온 <앤디 워홀>이 있다. <앤디 워홀의 철학>과 <앤디 워홀 일기>는 앞서 나온 책들. 
















단토에 관한 책으로는 <아서 단토: 팝의 철학자>도 있는데(비교저 얇은 책이다), 그의 <앤디 워홀>과 짝이 될 만하다. 단토는 팝아트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운동으로 평가하고 있기에(예술의 종말론이 바로 팝아트에서 이끌어내는 주장이다) '팝의 철학자'라는 별칭도 어색하진 않다. <미를 욕보이다>와 함께 읽어보려 한다. 















국내에 소개된 단토의 책 가운데 나머지는 주요 저작에 포함되는 <일상적인 것의 변용>과 <철학하는 예술> 등이다. <철학하는 예술> 등은 절판되었고 번역도 좋지 않아서 별로 의미가 없다. 대신 단토 사후에 나온 유작과 연구서들이 번역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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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이자 주말이었던 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마지막 주문들 가운데 하나는 배송이 월요일로 넘겨졌다) 마사 누스바움의 <연약한 선>이다('Nussbaum'은 여러 표기가 경합했는데 '누스바움'으로 안착되는 듯하다). 1947년생인 저자의 첫 주저로 1986년에 초판이 나왔고 15년 뒤인 2001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국내 소개된 20권쯤의 저서 가운데서도 가장 앞서는 책이면서 누스바움의 이력에서도 출발점에 해당하는 책(1971년부터 초고를 썼다고 한다. 대학원시절이었겠다). 개인적으로 두꺼운 원서를 일찌감치 구해둔 책이어서 번역서의 출간이 반가웠다. 
















누스바움의 책으로는 2021년에 나온 신작 <교만의 요새>도 최근 번역돼 나왔으니, 대략 시작과 끝에 해당한다고, 적자마자 확인해보니 1월에 <동물을 위한 정의>가 예고돼 있다. 75세라는 나이를 고려하면 아주 정력적이다. 


내가 처음 만난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의 저자이면서, 애국심론과 역량론의 저자였다. 고전학자 누스바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연약한 선>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이후에 주로 동정, 연민, 혐오, 수치, 분노 등의 감정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 주로 소개되었다. 40권에 가까운 전체 저작이 다 소개되진 않을테고 다 읽을 만한 여력도 갖고 있지 않지만 <연약한 선>에 대한 독서를 앞두고(2023년의 첫 관심저자가 내겐 누스바움과 앤디 워홀이다. 물론 강의와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는 저자들이다) 누스바움의 주요 저작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본다.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면) 여섯 권이다. 


<연약한 선>(1986/2001)






 










<인간성 수업>(1997)

















<성과 사회 정의>(미번역)
















<혐오와 수치심>(2004)















<혐오에서 인류애로>(2010)
















<역량의 창조>(2011)
















대략 주제별로 안배돼 있는데, 나로선 <정치적 감정>(2013)도 주요 저작으로 꼽고 있다. 국내에는 <감정의 격동>과 <분노와 용서> 등도 번역돼 있다.  
















미국의 대표적 여성 인문학자(미국의 첫 여성 고전학자다)로서 누스바움의 경험과 학문적 이력은 표본적 의미를 갖는다. 비록 7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전학계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지만, 현재는 세계적인 석학으로서의 평판을 누리고 있으며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2018년에는 베르그루엔 철학상을 받기도 했다(2016년부터 시상된 상으로 '철학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린다. 상금이 100만달러이며, 지난해 수상자가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다. 참고로 첫 수상자는 캐나다의 찰스 테일러였고, 누스바움은 미국의 첫 수상자였다. 여성으로서는 2017년 영국의 오노라 오닐에 이은 두번째 수상자). 
















덧붙이자면, 누스바움이 고전학자에서 출발하여 인문학 전반과 사회적 정의의 문제로까지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중요한 계기가 된 건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과의 만남, 그리고 협력이었다. 센의 저작들도 같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래 사진은 1992년의 누스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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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남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은 아내

2년 전 페이퍼다. 러시아 중단편 읽기가 해를 넘기게 됐는데 조셴코와 도블라토프의 작품은 이미 지난달에 읽었다(여성작가들을 남겨놓고 있다). 절판된 책들도 있어서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 기약할 수 없는 날들이 그렇게 또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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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계몽주의자 루소의 발언이다. 당찮은 자들이 권력을 쥔 나라에서 다시금 되새긴다. 노예법은 법이 아니며 노예제란 어떠한 합의의 대상도 될 수 없다...

따라서 사태를 어떤 방향에서 고찰하든 노예법이 무효인 것은, 그것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부조리하며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예제esclavage와 법droit, 이 말들은 모순되며 서로 배제한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말하는 것이든 한 인간이 한 인민에게 말하는 것이든, 다음의 말은 언제나 똑같이 당찮다. "나는 부담은 너만 지고 이득은 나만 누리는 합의를 너와 체결하며, 나는 내가 내키는 한에서 이 합의를 준수하고 너도 내가 내키는 한에서 준수한다. "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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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외상태

9년 전 리뷰다. 검찰공화국 1년차를 보내며 ‘예외검잘(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군부독재가 부족해서 얼빠진 검찰독재까지 겪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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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doza72 2022-12-30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올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년에 올해의 책으로 추천하신 목록 잘 읽었습니다. 수고스럽겠지만 2022 올해의 책을 한번 선정해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로쟈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책이 너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

로쟈 2023-01-03 23:51   좋아요 0 | URL
눈길을 끈 책과 읽은 책 사이에 간극이 이어서 보류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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