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블랴나의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류블랴나 공항에 도착한 건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 18시간만이었다(22시간을 넘겼던 스페인문학기행의 기록은 갱신되지 않았다). 공항은 우리 지방공항 수준으로(규모가 더 큰 국내공항도 있으리라) 작고 아담했다. 류블랴나행 비행기도 소형기종이어서(키가 큰 유럽인은 비행기 천장에 머리가 닿았다) 수하물도 바로 나왔다. 주차장 대기하던 픽업버스에 올라 20여분 달려서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숙소에 닿았다. 6층 방에 짐을 푸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그리고 오늘, 류블랴나의 새벽과 아침을 차례로 사진에 담았다. 비로소 문학기행의 첫날이 밝았다.

어제 늦게 숙소에 든 탓에 오늘은 보통보다 늦게 일정을 시작한다. 류블랴나 구시가 훑어보기가 일정이고 도시의 유일한 대학이라는(류블랴나는 인구가 28만으로 역대급의 작은 수도다) 류블랴나 대학에까지 이르면 슬라보예 지젝과 류블랴나학파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그리고 한트케문학에 대한 입문적 소개와 함께 중유럽과 발칸의 경계 문제에 대한 쿤데라와 한트케의 의견차이를 해설하려 한다. 미리 그려본 오늘의 일과다. 오후까지 류블랴나 일정을 소화하면 4시경에는 블레드 호수 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오늘 밤의 숙박지는 블레드 호변이다.

교회 종소리가 가끔 울린다. 그와는 무관하지만 아침을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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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공항에 도착한 건 인친공항을 떠난 지 13시간 반이 지나서였다. 류블랴나행 비행기로 환승하는 것까지는 순조로웠지만, 출발이 늦어지고 있다. 기장의 안내로는 테크니컬한 문제라고 하는데(그 이상은 모르겠다) 최소 30분이상 지연될 모양이다. 한국과는 7시간 시차여서 현지시간으론 밤 10시가 지나고 있다(한국은 새벽 5식가 지났다). 아무래도 자정 안에 숙소에 들기는 어려울 모양이다.

여행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하는데 항공편도 예외는 아니다(언젠가 인천공항에서 출발 자체가 1시간여 지연됐던 일이 떠오른다). 장시간 비행에다가 시차까지 겹쳐서 다들 지친 상태인데 탈이 날까 염려된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선 환승대기 시간이 넉넉했지만 서점까지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대신에 슬로베니아 모더니즘의 대표작가 이반 찬카르(1876-1918)의 이름을 익히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슬로베니아 화폐에 들어간 시인/작가가 두 명인 듯한데 바로 오전에 적은 프란체 프레셰렌과 이반 찬카르다. 슬로베니아어가 소수민족어여서 문학적 성취만큼 널리 알려지진 않은 작가로 보인다(영어로는 몇작품 번역돼 있다).

한트케 연구서를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독립국가의 역사가 짧은 슬로베니아에서는 역사적 시대구분을 왕의 치세나 몇째 공화국이 아닌 작가로 대신한다고 한다. 프레셰렌 시대, 찬카르 시대, 하는 식이다. 나라가 작으니 그만큼 독자가 적어서 작가로선 불리할 터인데 그런 예우를 받는다니 상쇄가 되겠다.

예정보다 한시간 넘겨서 이제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기록은 류블랴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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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일본문학기행 때 고생한 기억 때문에(역대급으로 공항이 붐볐다) 계획보다 일찍 공항버스에 올랐다(집합시간에 맞춰 7시30분 버스를 타려다가 일찍 눈이 떠진 김에 6시40분 버스를 탔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건 8시10분. 환전하고 유심칩을 구입하니 이번 여행 참가자분들이 눈에 띄었다. 문학기행 모드가 되는 순간이었다(이 모드에선 언제나 여행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스위스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공항은 예상보다 한산해서 출국수속을 모두 마치는 데 한시간 남짓밖에 소요되지 않았다(지난번 일본행 시에는 2시간반 이상이 소요됐었다). 모처럼 여유롭게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어제에 이어서 출발전 소감을 적는다.

이번 여행도 항공편은 루프트한자다(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가장 많이 이용한 항공편 같다). 슬로베니아는 직항이 없어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게 된다. 환승 대기 시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서점에 들를지 모르겠다. 2017년 가을 카프카문학기행 때 처음 프랑크푸르트 공항서점에 들렀고 때마침 한강 작가의 영어판 책 두권(<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이 매대에 진열돼 있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한국작가의 베스트셀러 책이 극히 희소한 때였으니). 그때는 첫 목적지가 빈이었는데 직항이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사소한 인연이긴 해도 이후로 프랑크푸르트는 공항서점과 같이 떠올리게 된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날아갈 곳은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다. 사실 슬로베니아란 나라와 류블랴나란 도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전적으로 슬라보예 지젝 덕분이다. ‘동유럽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국내에 소개된 이 철학자의 이름을 접한 건 90년대 후반이지만 책을 정색하고 읽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고 이후에 나에겐 가장 중요한 동시대 철학자가 되었다(2004년에 타계한 자크 데리다와 함께). ‘지젝거리다‘란 말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는데 내가 바로 그 당사자 중 한명이다(‘지젝 전도사‘였잖은가!). 류블랴나는 내게 그 지젝과 그의 친구들(슬로베니아 라캉학파로 알려진 류블랴나 학파)의 도시였다.

사실 그런 이유만으로 문학기행에 류블랴나를 포함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거기에 페터 한트케가 더해지면서 명분이 생겼다(한트케와 슬로베니아에 대해선 따로 다룰 예정이다). 남부 오스트리아 출신의 한트케는 어머니가 슬로베니아인이다(그러니까 한트케의 외가가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어가 한트케로선 어머니의 언어, 모어인 셈이다. 아버지의 나라(생부와 계부가 독일인이다)와 어머니의 나라(슬로베니아) 사이 오스트리아의 작가 한트케! 한트케문학의 흥미로운 문학지리다.

이 두 사람의 생존 철학자, 작가를 명분삼아 류블랴나를 방문하기로 결정한 뒤, 늦게서야 알게 된 작가가 슬로베니아의 국민시인 프란체 프레셰렌(1800-1849)이다. 류블랴나 도심광장에 동상이 서 있고 광장의 이름 자체가 프레셰렌광장인 데서 그의 위상과 상징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에겐 작품이 전혀 소개되지 않아 낯설 수밖에 없는데, 슬로베니아인들에겐 김소월과 한용운을 합해놓은 것 같은 존재다(소월과 만해를 같이 언급한 것은 우리 시인들의 작품 편수가 적어서다).

아마도 류블랴나에서의 첫 일정은 프레셰렌광장을 찾아 그의 삶과 문학을 잠시 음미해보는 일일 듯하다. 온라인에 떠있는 그의 시의 영어본과 한글본(AI번역)을 참고해서 나도 몇마디 소개의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의 본격일정이 그렇게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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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문학기행 당일 아침에 공항으로 가는 길에 적은 소회를 하루 당겨서 적는다. 내일아침 공항버스로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익숙한 출국 절차가 진행될 터이다. 이번에는 참가자가 적은 편이어서(역대 두번째) 어깨가 가볍게도 느껴진다(일정은 하루 늘어서 짐은 더 늘어날지 모른다. 책짐이 관건이다).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은 당초 지난해에는 중유럽문학기행으로 기획했다가 무산돼 재조정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빈)와 헝가리(부다페스트) 일정은 그대로이지만 체코(프라하와 브루노)가 빠지는 대신 슬로베니아(류블랴나와 블레드)와 오스트리아의 다른 두 도시(클라겐푸르트와 잘츠부르크)가 포함되었다. ‘중유럽‘이란 말은 쿤데라에게서 가져온 것인데 중유럽의 나머지 두 나라, 체코와 폴란드는 내년 1월에 찾을 예정이다(그렇게 치면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은 2부작 중유럽문학기행의 1부가 된다).

슬로베니아와 헝가리가 포함됐지만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이라고 정한 것은 이 지역이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오스트리아제국(내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했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을 포함한(한때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끼지도)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던 지역이다.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이번 문학기행의 초점은 세기말 빈(비엔나 1900)과 부다페스트(부다페스트 1900)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1차세계대전을 경계로 삼으면 말 그대로 장기 19세기말이다) 범오스트리아의 지성사와 문화사는 세계사적으로도 주목을 끌 만큼 다채롭고 화려하다. 소위 ‘빈 모더니즘‘에 견줄 만한 모더니즘 예술운동은 파리의 모더니즘 정도가 아닐까 싶다(시간순서로는 빈이 가장 앞서고 취리히를 경유해서 파리로 건너가는 듯싶다).

나의 관심은 그러한 예술적 성취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고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이다(예컨대 빈과 부다페스트의 카페 문화). 더불어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음악(모차르트와 말러, 쇤베르크 등)과 미술(클림트와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 그리고 건축들도 자연스레 감상하게 될 것이다. 빈과 부다페스트의 도시 경관과 함께 중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는 블레드 호수와 잘츠부르크의 수려한 자연경관도 이번 문학기행의 볼거리이다.

전체 일정에 대한 어림은 이미 마친 상태에서 읽은 책(+읽어야 할 책)을 챙기는 일이 남았는데, 무게도 고려해야 해서 오스트리아 역사 관련서는 <아주 짧은 합스부르크사>를 골랐다. 장시간 비행(내일 인천공항에서 이륙하면 환승을 포함해 총 16시간반쯤 지나야 첫 목적지 류블랴나에 도착하게 된다)에 읽을 책 가운데 하나로. 역사서는 문학기행에서도 언제나 조감도로 필요하다. 책장에서 빼낸 책으로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콘사이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원제는 ‘가장 짧은 유럽사‘)를 경유해서 <아주 짧은 합스부르크사>로 넘어가는 것이 내가 선택한 경로다(가장 짧은 경로!)

마치 입시 전날의 수험생처럼 이 책들을 뒤적이며 최종정리를 하다가 잠이 들 것 같다. 그러고는 마침내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의 첫날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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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사이렌 소리와 뱃고동 소리

<이방인> 번역 논쟁이 벌써 11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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