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이웃
김혜정 지음 / 문이당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늘 중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만을 떠돌아야 하는 생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단편집이다. 얼마 전 일본 작가 카쿠타 미스요의 <삼면 기사, 피로 얼룩진>이라는 단편집을 봤다. 그 작품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사회면 기사를 살펴보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었다. 기사 자체를 소재로 내용을 만든 일본 작품과는 달리 이 단편집은 그 기사가 중심이 아닌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 내고 있다. 단순히 비루하고 남루한 생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그 속을 살아 내야 하는 삶에 대한 살아 있는 시선이 돋보였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삶이라는 것이 던져주는 작은 물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었다.  

<수상한 이웃>은 변두리에 새로 생긴 아파트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혼자 사는 노파의 살인 사건으로 인해 살인범으로 몰린 조용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한 밤에 봉변당한 뻔한 일을 구조당한 여자의 이야기다. 누가 수상한 이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웃이 이웃이 아니게 된 지금 어쩌면 모든 이웃이 모든 이들의 이웃인 우리에게는 수상함 그 자체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오리, 날다>는 졸지에 아버지를 여의고 배다른 어린 동생 두명을 양육해야 하는 처지가 된 남자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생전에 사온 그림에서 자꾸 오리를 보는 남자는 어떻게든 동생들을 버리고 애인과 함께 아버지가 남겨준 돈으로 청춘의 삶을 살 생각이지만 이상하게 그의 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미스터리게 전개되는 과정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진짜 오리가 날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오리는 날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마음 속에서 오리를 날려 보내는 순간이 될 것이다. 이제 막 관계란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소통으로 다가가는 젊은이의 이야기였다.

<낭만 고양이>는 고양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나름의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작품이다. 도둑 고양이들이라고 불리는 떠돌이 고양이들이 처음부터 떠돌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야생 고양이가 있었다면 몰라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귀여움을 받던 애완동물이었다가 길을 잃거나 버림받은 것들의 삶, 그래도 시장 한 귀퉁이에서 좋은 사람이 있다 생각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삶이나 인간의 삶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 측은하기만 하다.

<등에>는 형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고자 애를 쓰는 인물의 이야기다. <오리, 날다>와 비슷하면서 다른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형을 뛰어넘고 싶었지만 결코 뛰어 넘지 못한 동생,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되어 도움을 준 나타샤라는 러시아 여자를 찾아 헤매는데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사랑이었을까? 과거였을까? 삶이 제 맘대로 된다면 그것이 어디 삶이라 할 수 있으랴 하고 삶은 가끔 사는 존재들에게 삶의 녹녹치않음을 알려준다. 알면서 사는 건 살아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운명이고. 

<아내의 신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의 병이 되고만 아내를 생각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신부 인형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마음을 놓는 아내와 그 이유를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남편, 가끔 살면서 지뢰가 하나씩 터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터지지 않더라도 지뢰를 밟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 누군가를 끌어 안고 함께 가느냐, 아니면 혼자 자폭하느냐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그런 느낌의 작품이었다. 소통할 수 없는 부부란 각기 다른 지뢰를 밟은 사람들이 아닐까. 서로 다른 것을 원하는 부부란 따로 자폭함을 선택한 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석구>는 착하기만 한 대학교 동창의 죽음으로 모인 동창들의 회상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에 이승철의 <미스터L의 회상> 한 구절이 나온다. 그 시가 마흔을 넘긴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올려본다.  

내 오래된 살과 뼈들이 뭉쳐
이만큼 오래 살아 준것, 참으로 고맙고
더러 눈물이 났다. 

나이 마흔 넘어 세상을 산다는 건
석양빛 붉은 울음을 제 뼛속마다 고이
개켜 넣은 거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악머구리 끓듯 소랍스럽지 않게
저만큼 서로  한 뼘씩 거리를 둔 채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상처의 불꽃들
밤새 안녕하였다는 눈인사를
저 스스로에게 묵묵히 건네며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석구같은 친구는 이제 멸종되었다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누구도 석구같은 친구를 원하지 않고 자신이 되고자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슴 한껸 아리다 느낀다. 악어의 눈물같은 눈물을 흘리는 친구, 미안하다는 의미를 몰랐던 친구, 하지만 다시 그가 살아 그들 옆을 어슬렁거린다면 또 다시 귀찮아 하고 창피하게 생각할 친구들, 석구의 멸종은 진정한 친구의 멸종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 야곡>은 노래방 도우미가 되어야 하는 아줌마의 이야기가, <방 씨의 하루>는 교장 선생님과 외모가 빼닮은 일용직 숙직원이 된 방씨의 이야기가, <물 속에서 걷다>는 돈을 벌기 위해 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된 조선족 아줌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모두 같은 이야기다. 언젠가 신문 기사의 작은 사회면에서 본 이야기나 뉴스에 등장했던 이야기들, 그렇게 외면했지만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고 또 주변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 늘 주변인이기만 했던 사람들 이야기, 주변인에서조차 떠밀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비단 우리가 주변으로 몰아버린 것이 사람이나 동물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사람살이의 기본, 더 나아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생존권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무엇이랴 싶지만 단지 산다는 것만이 전부라면 인간이 세상을 사는 이유가 너무 초라하다 느껴지지 않을까.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이들 소외된 삶들을 통해 바라보게 하고자 한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38권부터 시작.
2달남았는데 150권 겨우 넘기겠구나.
이젠 집중력도 떨어지니 이 수준만 유지해야겠다.
10월에는 13권 읽었다.
야구만 아니었어도 몇권 더 읽었으련만 ㅡㅡ;;;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수상한 이웃
김혜정 지음 / 문이당 / 2006년 12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8년 11월 01일에 저장
절판

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8년 11월 03일에 저장
품절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8년 11월 06일에 저장
품절
페이드 어웨이
할런 코벤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8년 11월 08일에 저장
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8-11-0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진짜 야구 팬이시구낭! 150권도 넘흐 훌륭해요^^

물만두 2008-11-03 10:01   좋아요 0 | URL
이젠 예전만큼의 정열은 식었지만 나름 팬이랍니다^^;;;
 
나와 우리의 여름 - 제6회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독자상 수상작! 미도리의 책장 3
히구치 유스케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1988년에 발표된 작품이니 20년 전 작품이다. 참 오래 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딱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은 적다. 예를 들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지금은 하라 감독이 있는데 그가 선수 시절의 내용이 나온다. 슌이치의 아버지가 자이언츠 팬이라서 야구 중계를 보는 장면이 꽤 등장하는데 하라가 잘 쳐야 한다는 둥 하는 말이 그것이다. 이럴때는 이 작품이 언제를 배경으로 한 거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공중전화가 나오고 분위기가 약간 요즘과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는 몇 장면이 나오지만 작품 배경이 아닌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 작품이라 오히려 그런 것이 미세하게 추억처럼, 순수함의 상징인냥 느껴지기까지 한다. 청춘 미스터리라 발랄하고 상큼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읽는 이에게 자신의 청춘을 생각하게 만든다. 청춘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공감하게 만드는 그만의 독특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경찰인 까닭에 같은 반에 있는 듯 없는 듯 생각지도 않던 아이의 자살 소식을 알게 된다. 이와사와 노리코라는 여자 아이의. 그리고 그 아이가 임심한 채였다는 사실도. 슌이치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따로 사는 엄마와 만나고 오던 길에 같은 반 아사코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아이가 중학교때 아사코와 친하게 지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자살에 의문을 품고 어울리지 않던 둘이 그 여름 탐정 놀이를 하며 사귀게 된다. 자살에 의문을 품은 것은 열일곱살다운 의문이었다. 왜 그 아이는 신발을 벗고 마치 사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강에 뛰어든 것일까? 그 의문을 풀고 싶었던 슌이치와 아사코는 너무도 치기어린 마음으로 그 여름 함께 다니며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냉정하고 사람에게 관심이 없던 슌이치는 사랑에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알아야 하는 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무관심을, 죽음을 한낱 게임으로 생각한 것에 반성한다. 사람이 사는 것이 그리 단순하며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사코는 사카이파의 딸이라고 항상 떠들고 다니며 자신은 당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친했던 친구에게 피해가 갈까봐 일부러 피하기도 하고 다른 아이에게 야쿠자 딸이라는 말을 직접 듣고 쇼크를 받으며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알게 된다.  

청춘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답게 슌이치의 아사코에 대한 감정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담임 선생님에 대한 남학생다운 동경도 드러내고, 슌이치 아버지의 청춘도 담아내고 있다. 슌이 담임 선생님에게 반한 아버지를 보며 밀어주면서도 자신이 동경하는 선생님을 새어머니로 같이 살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귀엽고 솔직한 면과 슌의 아버지와 아사코의 어머니에 이어 명문가 아들과 야쿠자의 딸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다시 대를 이어 만난 운명같은 두 집안 아이들의 사랑까지 순수하게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재미있게 쓰여져서 금방 읽어버리게 된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라는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 작품에 난 이 영화 제목을 부제로 쓰고 싶다. 정말 그 여름, 소년은 소녀를 만났다. 매미가 7년에 한번 땅에서 나와 울던 여름, 소년은 비로소 청춘의 날개를 폈다. 청춘이란 이름은 얼마나 멋진 것이냐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청춘을 아름답게 청춘답게 날개를 펴고 맞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슌이치와 아사코의 청춘은 아름답다. 투정을 부리고 아이처럼 울어도 예쁘고 참아 줄 수 있고, 투덜거리고 빈정거려도 멋있고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속에서 열 일곱, 나의 청춘을 생각한다. 까마득히 지나간 날들을. 내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내 청춘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려나. 그나저나 아사코라는 이름에서 피천득님의 <인연>을 떠올리게 된다. 암튼 모든 청춘은 어쨌든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르헨 2008-10-3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미스터리 같지 않은걸요...^^진짜 오래된 작품이네요. 올림픽때 나왔으니...^^
네...모든 청춘은 어쨌든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물만두 2008-10-31 14:32   좋아요 0 | URL
표지는 진짜 소녀가 소년을 만나는 걸로 뒤에 소년이 있습니다.

2008-10-31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31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3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3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전에 나온 <사라진 시간>과 같은 작품.
빌 밸린저 작품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
아니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셰익스피어 유언장의 비밀이라...
실제 유언장이 있었다니 놀랍다.
그것으로 작가는 팩션을 만들었다.
이제 팩션은 세익스피어가 대세인가?
마치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는 느낌을 줄 것 같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400년 동안 비밀을 간직한 채 잠들어 있던 비밀의 정원이라...
그곳에 어떤 비밀이 있을까?
미스터리와 스릴을 어떻게 안겨줄 것인가?
한 가족의 봉인된 비밀이 정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풀리게 된다.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에 수록되었던 12편 중 9편이 실렸다.
아토다 다카시의 <취미를 가진 여자>, 이쿠시마 지로의 <외로운 왕>, 레이 라의 <증언>이 빠졌다. 모두 좋은 작품이라 절판 도서를 찾던 독자들이나 못 본 독자들에게 반가운 작품들이다.

http://blog.aladin.co.kr/mulmandu/43437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메트리오스 2008-10-3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비지 가든...묘하게 끌리는 분위긴데요?^^

물만두 2008-10-30 17:00   좋아요 0 | URL
데메트리오스님 방가방가^^
분위기는 딱 제 스타일인데 어떨지는 읽어봐야 알겠습니다.
 
클로버의 악당들
퍼시벌 와일드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카드 및 각종 사기 도박만을 소재로 사기 도박꾼을 응징하는 단편들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퀸의 정원>이라는 엘러리 퀸이 작가들의 걸작 단편집을 연도순으로 뽑은 리스트인데 1854년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부터 1967년 케멀맨의 <9마일은 너무 멀다>까지 모두 125편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단편집은 1929년에 나온 세 단편들 중 하나에 뽑혔으니 그 해 나온 작품 가운데 엘러리 퀸의 마음에 든 세 편 중 하나라는 얘기가 된다. 그것만으로 이 작품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엘러리 퀸이 보증한 작품이니까. 

주인공 빌 파믈리는 어려서 집을 떠나 카드 도박꾼이 되어 여러가지 사기 도박을 배운다. 하지만 6년 뒤 다른 사기 도박꾼에게 쫓겨나 화물 기차에 몸을 싣는 신세가 된다. 그 기차가 우연히 가던 곳이 그가 떠나온 고향이었다. 그는 주저하다 고향에서 내리고 집을 찾아간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변했음을 알고 나가라고 하고 그는 있겠다고 하다 아버지와 카드 게임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 앞에서 사기를 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이 작품이 첫 단편인 <심벌>이다.  

이후 마음을 잡고 아버지 밑에서 착실한 농부가 된 빌에게 토니 클랙혼이라는 애물단지가 운명적으로 떨어지게 되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 <사기꾼의 카드>다. 토니 클랙혼은 이 만남 뒤 빌과 형 동생하는 사이가 되고 계속 그를 사기범들로 안내하고 빌도 자신이 예전에 저지를 잘못을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심정으로 토니의 의뢰를 맡는다. <포크 도그>는 트릭과 그 트릭을 깨는 방법이 참으로 기발했다. 토니의 아내이자 빌이 좋아하는 밀리의 사촌이 대학 등록금을 사기 도박꾼에게 당한 일이니 자진해서라도 나설만한 일이었다. <레드 앤 블랙>은 카드가 아닌 룰렛이 소재로 등장한다. 그나저나 인간을 봐가면서 응징이 아닌 손을 씻거나 속죄를 바라는 점이 이 작품들을 구성하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이다. 도박의 이면에 그들은 청교도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양심의 문제>는 빌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빌과 함께 빌의 활약을 보면서 계속 돈을 따거나 잃는 것을 보면 의심하게 되어버린 토니가 문제를 일으켜 클럽 탈퇴라는 불명예를 지게 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디킨스나 오헨리풍의 작품이다. <초보의 행운>은 토니가 드디어 빌을 대신해서 사건 해결을 위임받고 나선다는 이야기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불기둥>은 정말 트릭도 여러가지지만 사람을 속이기 위한 사기의 수단도 여러가지라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해변에서 수영팬티만 입고 카드를 하는데 속임수가 어디 있는 것인지 기발한 속임수였다. <붉은 느릅나무 껍질>은 체스가 소재인 작품이다. 단지 불쾌하고 잘난척하는 사람을 쫓아내기 위해 체스의 'ㅊ'자도 모르는 빌이 트릭을 개발해서 클럽에서 모두가 싫어하는 자에게 대결한다는 내용이다.  

<타락 천사의 모험>은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이 아닌데 역자의 노력으로 수록되어 읽을 행운을 누리게 된 작품이다. 또 우리의 토니가 일을 저지른다. 한 남자를 사기 도박꾼으로 만든 것이다. 토니는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빌과 얘기하던 중 중대한 실수였음을 알게 되고 진범을 찾아 나선다. 카드에 표시를 한 진짜 범인을. 다른 작품들과 그래서 약간 다른 느낌을 주지만 이 작품이 결국 전체적인 면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작품들은 빌 파믈리가 그랬듯이 도덕적으로 개과천선하기를 바라고 쓰여졌다. 빌 파믈리가 그랬듯이 보복이나 복수, 또는 응징이 아니라 다시는 사기를 치지 않을 기회를 주고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믿고 그들이 자신의 양심에 귀 기울여 스스로 죄를 뉘우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빌은 언제나 트릭만을 밝히고 나면 범인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다. 1929년의 미국 뉴욕을 무대로 도박꾼들에게 바라기에는 좀 무리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이런 작품을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 게임이나 그 어떤 돈을 건 게임이라도 정직하게만 한다면 상관없다는 그 당시, 아니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정서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것을 표현하기에 카드 게임만한 것은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미국의 모습을 청교도식으로 단순하고 간결하게 잘 표현한 작품집이다.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단편집을 펴내는 것도 드문 일이다. '경마'라는 하나의 소재로만 평생 글을 쓴 딕 프랜시스가 생각났다. 뭐, 이 작가는 그렇게 전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또 사기의 속임수가 보여주는 트릭 속에서 다른 작품 속 트릭도 연상될 것이다. 클로버의 악당들, 엘러리 퀸이 당대 반할만 한 사기 도박꾼을 잡는 전직 사기 도박꾼이자 이제는 착실한 농부인 빌 파믈리의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10-30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30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