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살인 1
조슈아 스파노글 지음, 조영학 옮김 / 신원문화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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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통제예방 센터(CDC)의 전직 의료형사 네이트 맥코믹 박사가 <격리병동>에서의 일로 환멸을 느껴 CDC를 그만두고 브룩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이어지는 시리즈다. 전형적인 천방지축 맥코믹이 겁없이 날뛰는 내용이다.

십년만에 싸우고 헤어졌던 친구가 도움을 요청한다. 맥코믹은 자신의 부정을 잘 알기에 친구의 도덕적 성향도 잘 알아서 그 친구의 참혹한 시신을 발견하고 그 친구가 남긴 얼굴에 종양이 가득한 남녀의 사진을 보고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내기로 한다.

왜 아시아인들만 이런 일을 당한 걸까? 이들은 왜 두려움에 떠는 걸까? 사건은 점점 맥코믹을 위험 속으로 몰아가고 발견되는 환자들은 사고나 살해를 당한 뒤다. 아, 맥코믹은 또 큰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빠져나올지가 궁금한데 역시 마지막은 참 어이없게 끝나고 만다. 이 시리즈는 마지막의 마무리가 참 마음에 안든다. 결말을 이렇게밖에 못 내는 것은 맥코믹이 언제나 버거운 상대와 싸우는데 능력은 안되고 이기고 살아남기는 해야하니까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완벽은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지만 때론 그 완벽을 인간 자체가 거부하게 되기도 한다.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말이다. 책을 보며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생각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자신이 알고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용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여전히 인간은 도리언 그레이를 꿈꾸고 있다. 결말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드리 헵번은 나이가 들어 더욱 아름다웠다. 그 모습 그대로 더 고왔더랬다. 그 아름다움은 그녀의 젊은 시절 <로마의 휴일>속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린 잘 안다. 알면서도 쉬운 길을 택한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쉬운 길일까? 인생에 쉬운 길이란 없다는 것을 그 길 끝에서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적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은 한권으로 출판해줬으면 좋겠다. 한 권짜리도 이 책 두권보다 두껍게 나오는 요즘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시리즈라 더 읽을만한 의학 스릴러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더 나을 것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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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미스터리 야!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주영 옮김 / 들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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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때 타임캡슐을 묻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십년 뒤, 이십년 뒤에 꺼내본다고 묻고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이런 행사를 하던 열풍처럼 지나갔던 일이 생각났다.
아마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타임캡슐용 용기를 만들어서 팔았겠지.

열 다섯 살에 생각하는 스물 다섯 살은 많지도 적지도 않고 너무 동떨어지지도 않은 나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어떤 십년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정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열 다섯 살에 생각하는 스물 다섯 살은 참으로 설레는 나이임에는 틀림없다.
많은 일들이 있었을거라 거창하게 생각할 나이니까.
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또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그렇지만 아직은 젊고 만나면 즐거울 수 있는 나이... 그래서 여기에서 열 다섯 살과 스물 다섯 살의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친구들이 등장하는 것이리라.

8명의 아이들과 선생님이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타임 캡슐을 학교에 묻었다.
여기에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 등교거부 학생도 2명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십년 뒤 만나서 파보기로 했다.
그 십년이 다가왔을 때 아이들은 저마다 똑같은 엽서를 받게 된다.
죽음을 선택받은 졸업생이라는 말이 담긴 섬뜩한 엽서를...
이때 다리가 부러져 졸업식까지 참석하지 못한 신참 사진 작가를 꿈꾸는 아야카가
의미있는 기획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편이오."라는 소리와 함께 언제, 어디서든 전해지는 엽서는
마치 아야카의 뒤를 밟는 듯한 느낌을 주고
그것을 누가 보냈는지 아이들은 저마다 불쾌하게 생각하는데
그 사이 반장 고스케가 사라지는 일까지 발생한다.

단순하고 간단한 형식의 작품이다.
출판사 시리즈에 맞게 영 어덜트 작품이다.
추리소설에 꼭 그런 타깃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가볍지만 그다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아이들은 잔인한 면이 있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준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고 받은 사람은 심했다고 말한다.
누구 말이 맞느냐를 떠나서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기억도 못하는 상처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서른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 지가 궁금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한 세대는 저절로 타입캡슐에 봉인되고 만다.
어쩌면 왕따라는 것도 사라질 것이다.
그때는 인간의 모자란 짓으로 기억되겠지.

서술트릭의 명수라는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이라 세심하게 보려고 애를 썼는데
허술한 구석이 조금씩 보여서 좀 그랬다.
긴장감을 앞에서는 잔뜩 주고나서 뒤에서 너무 허무하게 터트려버렸다.
하긴 열 다섯 살짜리들에게 미스터리가 있다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명수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스물 다섯 살이라면 제법 미스터리를 제대로 만들어줘도 되는데 말이다.
그 사이를 넘나들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거겠지.
아야카의 마지막 행동도 너무 대범했고 말이다.
뭐, 첫 술에 배부르랴 하는 생각으로 두번째 작품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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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읽는 여인
브루노니아 배리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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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봤을 때 '레이스'란 말에 평범한 소설로 생각했다. 그런데 미스터리가 담긴 소설이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레이스와 미스터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도 궁금했다. 고모 할머니의 실종으로 15년만에 고향 세일럼으로 돌아온 타우너. 사람들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미쳤다고 생각하고 정신병원에도 들어갔었다. 그리고 마주하게 되는 할머니의 시신. 할머니가 유언으로 집을 타우너에게 남겨서 타우너는 어쩔 수 없이 세일럼에 잠시 머문다. 그리고 여전히 타우너는 자살한 쌍둥이 린들리를 마음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속에.

학대와 폭행을 피해 도망쳐 온 여인들의 피난처가 된 섬과 그 섬을 지키는 메이, 마녀 사냥의 추한 역사를 뒤로 한 채 마녀에 대한 것을 상품화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 그리고 아내를 폭행하고 도망을 갔다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캘빈교를 만들어 다시 세일럼에 나타나 마녀를 몰아내고 악마퇴치를 목적으로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미치광이 남자, 임신하고 구타당하고도 다시 돌아가 실종된 여자, 여기에 상처를 지닌 채 전근 온 경찰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타우너는 자신을 거짓말을 잘한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녀는 정신병원에서 치료 후유증으로 기억을 부분부분 상실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와 그녀가 쓴 글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지어낸 이야기고 어떤 부분이 남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짜여져 있다. 마치 레이스를 읽기 위해 눈물이 맺힐 정도로 레이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무언가를 보아도 그것을 잘못 해석할 수 있다고 에마의 레이스 읽기 가이드에 적힌 것처럼.

하지만 확실히 내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것은 학대받고 폭행당하는 여성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순히 한 여성만의 일로 끝나지 않고 자식에게까지 폭행을 가하게 만들게 되고 그러다가 되물림되기도 한다. 사랑과 용서라는 이름으로 폭력에 맞설 수 있을까? 그것은 폭력이 끝난 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 폭력은 폭력에 의한 끝이 아니면 죽음으로밖에 끝나지 않는다. 가정 폭력은 어쩌면 살인보다 더 무서운 범죄일지 모른다. 너무 쉽게 세상이 이 일을 방치하고 방관하고 있다. 이것은 여자만의 일도 아니고 남자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일도 아니고 확실한 범죄고 범죄 그 이상의 문제다.

책을 덮은 뒤 레이스의 환상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고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상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옛날 노예들이 숨어서 피난을 가려 머물던 땅을 파서 만든 골방이 남아 있듯이 도망다니고 숨어 있어야 하는 여성들을 위해 아직도 그 골방은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환상적이면서 사실적이고 미스터리하면서 잔인한 그런 작품이었다.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말을 레이스 받침대 주머니에 넣어 둔 에바 할머니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 대답으로 '마법이 풀렸어요. 이제 할머닌 자유예요.'라고 말한 타우너의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서 가슴 짠하게 울린다. 정말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적 환상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입은 이들에게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도 어디선가 레이스를 짜고 있을 조용한 여인들의 마음이 행복만을 레이스에 담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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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8-07-19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날인데 삼계탕 국물이라도 드셨나요? 더운여름날도 조심또 조심해야 되요.
근데 와글와글 월드컵책도 읽으셨대요. 제가 thank to 눌럿어요.다양한 종류를 읽으셨어요.^^

물만두 2008-07-21 10:53   좋아요 0 | URL
복날에 감기 걸렸으요 ㅜ.ㅜ
그 시리즈는 대부분 가지고 있답니다^^
 
청색의 수수께끼 밀리언셀러 클럽 82
아베 요이치 외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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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의 수수께끼에 이은 청색의 수수께끼는 색이 말해주듯 소재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적색의 수수께끼와 조금 차이를 보인다. 비로소 왜 색깔별로 작품을 나눴는지 알게 되었다. 청색은 말 그대로 청색일 수도 있지만 바다, 비관, 우울, 협박, 공포 등을 상징할 수 있다. 이 단편집에는 그런 다섯 작품이 수록되어 기발함과 유머, 그리고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아베 요이치의 <푸른 침묵>은 한 인물을 집요하게 찾아다니는 남자와 친구의 동반자살과 그 뒤 밝혀지는 친구에 대한 직업에 혼란스러움을 느낀 여자가 친구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점차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이 참 의미심장하다. 일본의 오늘에 대해 일본인 스스로의 자괴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모든 사실을 알고 느끼는 건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에 좀 더 위트있는 설정이었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가장 하드보일드한 작품이었음에도 말이다. 앞날에 대해 생각하는 여자가 남자 앞에 같은 직업으로 나타나면 재미있었을텐데.

후지와라 이오리의 <다나에>는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이라는 잊지못할 작품을 읽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하지 못한 나에게는 정말 작품만으로도 좋았다. 역시 인간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여전함을 느꼈다. 렘브란트의 <다나에> 그림 훼손 사건처럼 전시된 유일한 장인의 초상화가 훼손되고 범인에게 전화를 받는 화가, 과연 범인이 노리는 것은 누구고 무엇일까?
다나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다소 감정적으로 흐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화가의 쓸쓸한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작품들 가운데 유일하게 청색을 쓰는 화가라는 특징에서 블루하면 기본적으로 생각나는 우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의 작품은 렘브란트의 <다나에>다.



와타나베 요코의 <터닝 포인트>는 보안사라는 백화점에서 절도범을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색다른 직업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백화점에서 실수를 한 보안사 대신 투입된 주인공은 절도범을 잡지만 대어라고 생각한 중국인 세 여자는 놓치게 된다. 분명 절도범이라는 느낌은 드는데 빈틈을 보이기는 커녕 그녀를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제목과는 그다지 상관없어보이는 사건인데 이 안에 일본인의 아시아인에 대한 시각이 들어 있다. 아마도 한국인도 이들은 이렇게 보지 않을까 싶지만 어디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있는 거니까 그다지 신경쓸 건 없겠지만 이 방법은 우리나라에서도 쓰지 않을까 싶다.

이케이도 준의 <사이버 라디오>는 독특한 작품이다. 머리 속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주파수를 잡듯이 잡아내서 그것을 이용해 사기를 치고 사는 인물의 대담한 사기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의 에도가와 람포 작품이 아닌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을 읽었다. 그 작품도 좋았지만 에도가와 람포 수상 작품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또 든다.

시라누이 교스케의 <온천 잠입>은 정말 읽으면서 포복절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 단편집에서 제일 좋았다. 온천으로 드라마를 찍으러 온 삼류 여배우와 그를 후원해주던 사업이 망한 아저씨가 여배우와 알몸으로 노천탕에 있다가 동반 자살을 하자며 덤벼들자 여배우는 도망가고 아저씨는 쫓아가다 어느 온천탕에서 아저씨를 살짝 때리고 도망을 쳤는데 그만 아저씨가 죽은 채 발견된다. 이때부터 온천 여관과 여배우 사이에 온천 잠입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정말 이 작가의 에도가와 람포상 수상 작품은 꼭 보고 싶다. 이렇게 재미나게 글을 쓰다니. 추리소설 읽으면서 유쾌하다고 하면 좀 그렇지만 너무너무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다 읽고 나니 청색은 시원하고 쿨함을 뜻하는 것도 같다. 소재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적인 면에서다. 블루라고 하면 우울하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청색이라고 하면 우리는 다르게 느끼니까. 앞으로 나올 흑색과 백색의 수수께끼는 어떤 소재로 묶여 나올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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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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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 시작되어 처음 황금기를 맞았던 시대의 중편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출판된 작품들로 작품 자체만으로도 읽는 가치는 충분하다. 요즘은 추리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이 출판되고 있다. 하지만 그 외형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을 알게 된다. 잘 팔리는 것 같다고 너도나도 출판하는 묻지마식 일본 추리소설과 <다빈치 코드>의 성공으로 서양 작품은 팩션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서 무늬만 팩션인 작품도 있고. 물론 좋은 작품이 잘 팔리면 좋겠지만 그것이 독자들의 선택권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그 시점에 나온 이런 책은 치우친 추리소설 출판계에 중심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프랭크 보스퍼는 처음 보는 작간데 그가 남긴 유일한 작품이 <3층 살인사건>이라고 한다. 희곡을 소설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문체와 당시 하숙집의 풍경, 그들의 일상적 모습을 유쾌하고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대의 스릴을 위한 반전이 아닌 재치넘치는 반전은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재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숙집, 일을 잘 못하는 하녀, 억척스런 하숙집 여주인과 마음씨 좋은 딸, 존재감없는 아버지, 그리고 아는 것 많은 하숙인, 말 많은 노처녀, 인도인 학생, 무명의 작가, 이들 사이에 점점 높아가는 긴장감, 드디어 일어나는 살인 사건... 마치 그 시대 영국의 하숙집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고 연극을 보는 것처럼 다소 과장된 것 같은 표현은 화자가 작가이기 때문이겠지만 그 덕분에 독특한 재미를 만끽했다.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데드 얼라이브>는 그가 마지막에 설명하고 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지금처럼 과학 수사가 발전된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재판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미국의 배심원제도의 헛점은 지금도 논란거리지만 우리나라도 그 배심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시작 단계이니만큼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가 나쁜 형제와 농장 관리인, 이들 사이에 나타난 어여쁜 사촌, 나이 많은 노처녀 누나와 농장 관리인 편만 드는 아버지, 그리고 시골이라 이들 사이를 잘 아는 이웃들. 어느 날 이들이 싸우고 농장 관리인이 사라졌다면? 불에 탄 뼈와 그가 지니고 다니던 칼과 형의 지팡이가 함께 나타난다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단순한 작품이지만 이 안에 간과할 수 없는 심리적 맹점이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의 <안개 속에서>와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의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은 엘러리 퀸이 선정한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125편의 단편집 안에 들어 있는 작품들이다. 메이슨의 작품은 The four corners of this world에 수록 되어 있는 단편이다. <안개 속에서>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회원제 클럽 안에서 4명의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국의 해군 증강에 대한 국회 표결을 막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고 싶다는 남자가 국회로 가려는 의원의 발길을 잡기 위해 처음 만난 남자에게 이야기를 종용하고 이에 미 해군이라는 남자는 자신이 간 밤의 안개 속에서 겪은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영국의 안개가 그렇게 짙은 것인지 안개에 대한 묘사가 스티븐 킹의 안개에 대한 묘사보다는 간결하지만 이해하기 쉬웠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은 그야말로 반전 그 자체였다. 영국의 회원 클럽 안의 묘사, 시대상의 반영은 재미를 한층 더해주는 양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개라는 것은 결국 그날의 날씨를 뜻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머리 속 생각을 뜻하기도 한다. 안개는 그런 이중적 의미로 남는다.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의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은 메이슨이 창조한 아노 탐정을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다. <독화살의 집>을 읽을때는 아노 탐정을 그렇게 자세히 알기 어려웠는데 이 작품을 통해 아노 탐정의 외양에서 그의 친구 리카르도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포와로와 헤이스팅스처럼, 홈즈와 왓슨처럼 말이다. 한 젊은 친구가 지난 밤에 만난 여자가 겪은 절도와 살인 사건 이야기로 작품은 시작되는데 아노는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젊은이가 마약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환각에 의한 착각일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건이 신문에 나고 젊은 여인이 나타나자 사건에 흥미를 갖게 된다. 아노 탐정의 매력이 가득 담긴 고전 탐정물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버클 핸드백>은 부유한 말치 가문의 딸 클레어의 실종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간호사가 간호사를 위장해 탐정으로 나선다는 독특한 설정의 작품이다. 라인하트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만나기가 어려운지 말이다. 아동용으로 <나선계단의 비밀>을 읽은게 아마도 전부인 것 같다. 이런 힐다 애덤스 시리즈 정도는 출판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간호사 탐정이라니 독창적이지 않은가. 여기에 여성 심리 묘사가 좋고 과도한 잔인함없이 스릴과 미스터리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지금 읽어도 손색없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고전 추리소설들이지만 그 나름의 색깔은 각기 다르다. 현대물로 보면 일상의 미스터리, 법정 미스터리, 모험 미스터리, 탐정 미스터리, 실종 미스터리로 나누어볼 수 있겠지만 고전 추리소설은 그렇게 나누지 않아도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치있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현대물의 과도한 반전, 잔인함, 서스펜스에 너무 흥분되었다고 생각된다면 이런 고전 추리소설을 읽으며 미스터리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미스터리는 단순한 오락을 위한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가보자. 고전 미스터리의 황금기로. 미스터리의 황금기를 개척한 그 시대 작가들이 작품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 들어보자. 그리고 황금을 캐다가 현대물에 입혀보자. 모든 추리소설의 시대를 골든에이지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5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두께가 상당하다. 그 두께만큼 읽고 나면 뿌듯해지는 황금같은 작품들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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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8-07-1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저도 이책 읽고 있는데 참 재미있는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고전기의 단편 소설들이 계속해서 출간되었으면 하네요

물만두 2008-07-17 16:06   좋아요 0 | URL
이스라엘 장월의 작품이 나왔더군요^^

카스피 2008-07-17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스라엘 장월의 책은 출판사에서 비닐로 꽁꽁싸매서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수가 없네요.좀 읽어봐야 살지 말지 할텐데... 너무 한것 같아요 ㅡ.ㅡ

물만두 2008-07-17 19:07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인터넷만 이용해서^^;;;

madrabbit7 2008-07-18 12:09   좋아요 0 | URL
방금 출판사에서 책을 받았는데 일본 미스터리 단편 "빨간고양이"를 실은 꼬마책과 함께 빅 보우 미스터리를 랩으로 싸놓았군요. 책이 쉼쉬기 힘들겠단 생각이 들지만 꼬마북은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아요. 이웃에 살면 한 권 가져다 드릴 텐데 아쉽네요^^;

물만두 2008-07-18 14:12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