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와정 살인사건 1 - 시마다 소지의 팔묘촌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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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미타라이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 당황했다. 미타라이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라니 말이 되냐고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읽어나가면서 미타라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타라이의 그늘에 가려 생활하던 추리소설가인 미타라이의 친구 이시오카의 자신감없고 어리숙한 모습이 미타라이와 대조적이라 더욱 마음에 들어버린 것이다. 시마다 소지가 미타라이 대타로 이시오카를 내보냈는데 이시오카가 안타를 친 격이라고나 할까 딱 그런 느낌이었다.

1938년 일본 오카야마 현 도마타 군에서 일어난 '츠야마 30인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용와정이라는 여관을 배경으로 다시 시작되는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같은 소재를 다룬 요코미조 세이시의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팔묘촌>과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너무도 다른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971년 작품과 1996년 작품이라는 35년의 세월의 차이가 작품에 미친 영향과, 부자집이 배경인 살인자를 만들어 낸 것과 가난한 할머니 손에 자라는 부모없는 살인자를 그린 것, 거기다 한쪽은 전설을 다른 한쪽은 마을의 풍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 등 같은 모티브의 작품이 이렇게도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작가들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마다 소지가 후발 주자로 조금 더 마음이 쓰였겠지만 그 용기 또한 높이 사고 싶다.

우연히 자신에게 악업이 따라다닌다고 그것을 막기 위해 함께 어디를 가 달라고 미타라이를 찾아온 여자에게 마음 약한 이시오카는 그만 이끌려서 용와정이라는 이미 문을 닫은 여관에 하룻밤 머물게 된다. 그때 갑자기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누가 봐도 밀실 살인이다. 총에 맞았는데 총을 쏜 사람을 보지도 총소리도 듣지 못하고 불이 나서 닫힌 문을 뜯고 들어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사람들이 계속 총에 맞아 숨지고 시체가 사라져 엽기적인 모습으로 발견되기도 하는 둥 이 사건만으로도 이시오카는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무츠오의 유령까지 나타난다. 이시오카가 기절하지 않은게 용하다. 이 지경인데 이 사람들은 무츠오가 1938년 마을에 저지른 엽기적 살인 사건에 대해 입에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시오카는 그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책은 1편에서는 현재의 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고 2편에서 도이 무츠오가 저지른 1938년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도이 무츠오 사건을 너무도 길게 써내려가서 책이 이렇게 두꺼워졌다. 간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책을 덮은 뒤에는 오히려 작가가 도이 무츠오 사건을 더 부각시키고자 현재의 사건을 만들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아니 도이 무츠오 사건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그런데 너무 길어져서 그 핵심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달이 안되는 느낌이다.

<점성술 살인사건>과 <마신유희>에서도 느꼈지만 이것은 작가의 작품이 보여주는 일련의 패턴이다. 작가는 자신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작품에서는 너무 과했다. 한마디로 쌈박한 맛이 없다. 쉼없이 몰아대는 사건의 연속과 과거와 현재로 넘나드는 사건들로 인해 몰입해서 읽고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뭐야? 결국 이런 거야? 알맹이없는 쭉정이가 맛있어 그것을 먹고 알맹이는 더 맛있을거라 기대했다가 알맹이가 쭉정이임을 발견한 격이다. 차라리 밀실 사건에 올인을 하던지, 아니면 밀실 사건이 아닌 과거와의 빠른 연계로 움직이던지 했더라면 좀 더 적은 분량으로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남아 <용와정 환상>이라는 작품이 나온다고 한다. 이번에는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모양이다. 정작 이시오카는 안나오나? 흠, 그 작품은 좀 간결하고 세련된 작품이기를 바란다. 아무리 할 말이 많았어도 가지치기는 했어야 했다. 쓸데없이 복잡하고 사건만 등장하다 후다닥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미타라이가 등장하지 않으니 작가가 말이 많아진 격이니 원. 그나마 건진 건 이시오카뿐이로구만. 차라리 이시오카 시리즈를 내는 건 어떨지... 더 나을 것 같은데.

어쨌든 결론은 제목이 용와정이라는 용 모양으로 만든 여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그런지 용두사미(龍頭蛇尾)다. 그래도 용두는 재미있었다. 사미가 안타까울뿐. 용으로 시작해서 용을 쓰다가 용으로 끝이 나긴 했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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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1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목이 멋져요~~ 용두사미를 이렇게 기발하게 쓸 줄 아는 만두님 멋쟁이!

물만두 2008-04-19 16:18   좋아요 0 | URL
제목만 세번 바꿨답니다^^ㅋㅋㅋ

stella.K 2008-04-2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은 네개네요. 읽을만 한가 봅니다.^^

물만두 2008-04-21 11:11   좋아요 0 | URL
추리소설이니까요. 무엇보다 작가의 용기가 가상했다고나 할까요^^;;;

soyo12 2008-04-2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그렇더군요.
끝이 음.......어투 자체가 바껴서 혹시 번역을 두 분이 했나도 의심하는 중입니다.^.~

물만두 2008-04-21 11:12   좋아요 0 | URL
좀 길어서 그런 것도 같구요^^;;;
 

댓글이 달렸다고 멜이 와도 예전 글에 달리면 찾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2005년도에 쓴 글에 다신 댓글에 답글을 안 쓴 걸 알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 글이 많으리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침에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 글에 답글도 못 달고 참 못난 이가 저란 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마음 안 좋으셨다면 늦었지만 사과드려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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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1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섭했던 님이 계시다면, 만두님의 이런 마음 접수하고 '괜찮아~ 토닥토닥!' 하지 않을까요?
만두님, 날씨도 꾸리꾸리한데 기분은 상큼한 날 되세요!

물만두 2008-04-16 11:25   좋아요 0 | URL
섭한 분이 계시겠어요?
제가 미안해서 그러죠^^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paviana 2008-04-1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뭐땀시 갑자기 자학모드세요?
그분도 다 이해하실거에요. 이 서재에 오시는 분들 다 바다같은 맘씨(저 빼고요.전 벤댕이에요 ㅋㅋ)를 가진 분들이자나요. 걱정도 팔자세요.^^

물만두 2008-04-16 11:27   좋아요 0 | URL
자학이 아니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또 그런 제 모습을 봐서 사과겸 앞으로도 잘 봐달라고 하는 말이죠.
걱정이 정말 팔자예요.
님들 다 이해하실 거 알면서도 이러네요^^;;;

무스탕 2008-04-1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이렇게 봄이 만개해 있는데 그저 날리는 벚꽃잎에 같이 날려주세요~ ^^*

물만두 2008-04-16 11:28   좋아요 0 | URL
헤헤헤 나이탓인가 봅니다^^

조선인 2008-04-1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궁. 물만두님 정도가 미안하다고 하면 전 도리깨질을 당해야 해요. >.<

물만두 2008-04-16 14:02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제가 마실도 안다니고 글도 마이 안 올리고 그러니까 더 미안해서요^^;;;

카스피 2008-04-1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혹 제 얘긴가 깜짝 놀랐읍니다.저도 물만두님의 2004년에 쓰신 추억의 추리문고에 댓글좀 달았거든요.그래도 전 댓글에 답변안했다고 메일 안보내 드렸읍니다^^

물만두 2008-04-16 14:0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ㅠ.ㅠ
감사합니다^^ㅋㅋㅋ

L.SHIN 2008-04-16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서재 벽지도 이미지도 산뜻해졌군요. 이뻐요~

물만두 2008-04-16 14:03   좋아요 0 | URL
네, 변신을 한다고 좀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실 2008-04-16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섭했어요. 흥~~~~~~ ㅎㅎ

물만두 2008-04-16 14:55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섭하실 일이 있었나??? 아닌 거 같은데용^^ㅋㅋㅋ
글쿠 섭하면 옥상에서 한판 뜰까요?
날도 좋은데~^^

세실 2008-04-16 15:11   좋아요 0 | URL
푸하하 어찌 알았누. 전혀 안 섭하죵. 걍 만두님만 보면 시비걸고 싶어진다니깐~~ 참 올해 잔나비띠 대박이래요. 기대하세용!
정말 아름다운 봄날이네요.

무스탕 2008-04-16 15:19   좋아요 0 | URL
세실님. 쪽집게과외로 좀 찝어주시구랴.
어디에다 어느정도로 투자를 해야 웬숭이들이 대박날깝쑝~? ㅋㅋ

물만두 2008-04-16 15:56   좋아요 0 | URL
오오~ 그럼 콩고물 기대하겠사와요^^
이쁘게 보여야쥐.
세실님 알라뷰~
무스탕님 그런 건가요?
나도나도~ 잔나비끼리 대박내서 잔대파를 만들어요^^

세실 2008-04-16 16:47   좋아요 0 | URL
잔대파. 좋다~~~ 잔나비띠 모여라~
어머 무스탕님 양띠인줄 알았어요. ㅎㅎ
제가 아는 사람 2명 벌써 대박났어요.
한명은 경품으로 벽걸이 TV탔고, 또 한명은 150만원 상당 산삼을 탔네요.
전 아직 아무것도 없지만 믿어 보아요~~~ ㅎㅎ

물만두 2008-04-16 16:53   좋아요 0 | URL
허걱~ 벽걸이 티비에 산삼이라고라~
전 문화상품권 2만원 탔는데 우웅 부러버라~

무스탕 2008-04-16 16:59   좋아요 0 | URL
헉-! 벽걸이 티비랑 산삼 @.@
전 얼마전에 중고샵 관련 적립금 1천원 받은게 다구만..
그분들 뒤따라 다니면 벽걸이 티비 고정 볼트라도 얻을수 있을까요? ^^a

세실 2008-04-16 17:02   좋아요 0 | URL
하여간 소심한 만두님, 무스탕님...
그게 아니고 "나도 탈수 있다" 하는 자신감이 중요.
우린 최소한 자동차이상 타자구요~~~~
아침..저 산삼 한뿌리 얻었습니다. 아니 뺏었습니다. 음하하하~~

물만두 2008-04-16 17:34   좋아요 0 | URL
전 제 운을 그럼 다른 사람한테 팔꼬야요^^
왕대박나야하거든요~

chika 2008-04-16 23:37   좋아요 0 | URL
벽걸이 티비, 산삼...이런거 보다봉께 무스탕님도 천만원 받았다는 거로 읽고 턱빠질뻔 했슴다. ㅡㅡ;;;;;;;;;;;

물만두 2008-04-17 10:04   좋아요 0 | URL
치카답다~ㅋㅋㅋ

세실 2008-04-17 12:56   좋아요 0 | URL
푸하하 하여간 치카님다워요. 승입니다. ㅎㅎ

hnine 2008-04-1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그런 걸 미안해하시는군요.
저도요 ^^
언젠가 물만두님께서 올리셨던 연분홍치마 노래가 자꾸 흥얼거려지는 날입니다...

물만두 2008-04-16 15:58   좋아요 0 | URL
에치나인님 네, 마이 미안합니다.
앗, 연분홍치마 잊고 있었어요 ㅠ.ㅠ
기타부기땜시롱^^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4-1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안그랬습니다.~!

물만두 2008-04-16 16:51   좋아요 0 | URL
우리 M페밀리가 그러면 안되죠^^ 믿슙니다~!

마노아 2008-04-1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곡! 전 물만두님이 서재 떠나나 했습니다. 아니었군요. 너무 다행입니다. 서재 벽지 너무 고와요. 이런 색 참 좋아요^^

물만두 2008-04-16 19:18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왜 저를 보내려고 그러시와요~ㅋㅋㅋ
감사합니당^^

도넛공주 2008-04-1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물만두님,글이 많으니까 그렇지요~그러려니 하세요.만세!

물만두 2008-04-16 19:18   좋아요 0 | URL
그래도 보면 죄송하거든요^^;;
도넛공주님 고마워요^^

chika 2008-04-16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언냣! '사과' 드려요, 라고 했꼬마는 왜 나한텐 안주는겨? 그럼 쓰거써요? =3=3=3

물만두 2008-04-17 10:05   좋아요 0 | URL
옥상에 차려놨으~
칼도 준비했으~
뭘 떨고 그랴~ 과도라구^^
빨랑와~ 기다리고 있을께~ 날씨 조오타~ (우드드득)

비로그인 2008-04-17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댓글만으로도 유쾌해질 수 있었어요.
잘 지내시지요?

물만두 2008-04-18 09:43   좋아요 0 | URL
그럼요^^
 

암으로 엄마를 잃은 오스케, 그리고 이상한 환영에 시달리는데 친구 아키의 엄마가 갑자기 자살을 하며 두 가족은 이상하게 얽히게 된다. 또 아빠들이 먹는 수상한 약은 무엇일까? 각자의 위치에서 진실을 알려고 하면서 남은 가족을 지키려고 두 아이는 애를 쓴다.
2007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작가의 대표작이니 기대가 된다.

에니메이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
일본 전공투세대의 이야기는 그들 나름의 한 시대의 흥망성쇄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것이 뱀파이어로 나타난 것 아닐까 싶다.
복간된 작품인데 어디 한번 보자.
독특하게도 에니메이션, 소설, 게임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라니 더 흥미롭다.

도서관 사서의 딜레마가 인류의 생존을 좌우한다?
도서관장이 연쇄 살인범이니 도서관을 빠져나가라는 경찰과 도서관을 나가지 말라는 한 여자.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
도서관 사서와 악마와의 싸움이라니 흠...

조선시대 조사관과 범인의 끝없는 두뇌 대결서라...
14편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어떨지...
꼭 이런 책 나오면 볼까 말까 고민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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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8-04-15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더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혹 이거 애니 dvd로 나온 것의 소설본인가요? 애니메이션은 전후가 없어선지 잘 이해가 안가던데... ㅠ.ㅠ
그나저나 물만두님은 정말 b급 소설의 달인이신것 같아요.^^

물만두 2008-04-15 17:14   좋아요 0 | URL
아뇨. 책 설명을 보니까 애니와 책이 다른 내용으로 연결되는 것 같더라구요.
전 애니는 안봐서 모르겠네요.
그냥 설레발치고 있을뿐입니다^^;;;
 
배반의 자화상
제프리 아처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with a Pipe. December 1888 - May 188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January 1889. Oil on canvas.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London, UK.

이 두 작품이 고흐가 귀를 자른 뒤 남긴 작품이다. 첫번째 작품이 이 책 속에서 살인까지도 저지르게 만드는 작품이어야 한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런데 책 속에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풍경속의 게이샤>라는 그림이 걸려 있는 두번째 작품이 개인 소장품이자 서로 차지하려는 그림으로 등장한다. 작가가 일부러 일본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바꾼 것 같다. 하긴 제목 자체가 <파이프를 문 귀를 자른 자화상>과 <귀를 자를 자화상>으로 서로 다르니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냥 두 그림을 비교해서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품을 읽는 내내 고흐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작품이 대접받고 있다는 걸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끔 신문에서 어느 화가의 경매가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뉴스를 접하면 늘 갖게 되는 생각이다. 그들은 그림을 사랑하는 것일까? 최고의 그림을 낙찰받을만한 재력을 과시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재산 증식의 또 다른 투자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 작품을 보면 끔찍한 소유욕과 집착, 그리고 과시욕이 어우러진 인간의 또 다른 근원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림과 대저택이 있는 순진하거나 잘 속아 넘어가거나 욕심이 과한 사람들만을 골라서 어떻게든 자신의 회사에서 돈을 대출받게 하고 빚을 못 갚게 만들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악명 높은 펜스턴 파이넨스라는 회사가 있다. 한번의 실수로 소더비에서 해고당하고 그 실수가 너무도 치명적이라 동종업게에서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안나는 바로 그 회사에 스카우트되지만 해고된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고흐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던 웬트워스가의 상속자는 누군가의 부엌칼에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안나는 어떻게든 그 사실을 모른 채 고흐의 자화상만을 팔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고객을 설득하러 가지만 이미 고흐의 자화상은 그 저택을 떠난 뒤다. 이때부터 안나는 고흐의 자화사을 지키기 위해, 펜스턴은 고흐의 자화상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지기 위해, FBI는 펜스턴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 안나를 쫓아 다니게 된다.

엄마가 책의 표지를 보시고 한마디 하셨다. "빈 라덴이니?" 헉... "으하하하 엄마, 고흐잖아." 이러고 책을 다 읽은 뒤 생각해보니 고흐가 빈 라덴처럼 닮아 보이는 것이 아닌가. 9.11 테러로 인해 고흐의 자화상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니 엄마의 말씀에서 예지력까지 느꼈다.

암살범이 뒤쫓는 줄도 모르는 안나의 행적을 따라가는 독자는 스릴을 한껏 경험하게 된다. 제프리 아처가 오랜만에 거장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제프리 아처라는 이름만으로도 반갑기 그지없다. 9.11 테러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도 나쁜 놈은 자기 이속만 챙기는 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왠지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정치 노선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루마니아 차우세스크 정권까지 들고 나오는데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같아 역시 작가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이 좀 약하다. 거기다 강력한 암살범이자 살인마인 부엌칼 살인마는 안나에게만은 손을 쓰지 못한다. 물론 우선이 고흐의 그림을 되찾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크란츠가 안나에게만 유독 빠져나갈 공간을 많이 만들어준 것은 좀 그랬다. 거기다 모처럼 등장한 트릭이 8.90년대에 많이 쓰인 범인 잡기 트릭이라니 아, 돌아온 건 좋았지만 막판에 이렇게 힘이 딸리나 하는 감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깝기까지 했다. 다만 티나의 정체가 가장 미스터리했는데 오호~ 놀랍다. 물론 잘 생각해보면 알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요즘은 내 머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지금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진 자는 더 갖기 위해 온갖 불법도 마다않고 못 가진 자는 나름대로 갖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그 가운데서 이상하게 가진 자는 가진 자에게 당하고 못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에게 당하는 공식 같은게 성립되는 듯이 보여진다. 일찌기 필립 말로가 생각할 수 없이 많은 돈을 번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그 많은 돈을 벌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바 있으니 결말은 잘 마무리되는 것 같지만 뒷 맛은 쓰다. 무슨 돈이 껌값 정도로 백만 단위로 뿌려지니 원...

그래도 웬만큼은 하는 잘 짜여진 미스터리 스릴러라 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뒷심이 딸리는 것은 로맨스로 위안을 삼고. 작가의 작품을 그래도 볼 수 있었음에 만족한다. <한푼도 더도말고 덜고말고>를 쓴 제프리 아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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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04-1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흐 이런 책도 있군요. 고흐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다니.. ^^

물만두 2008-04-16 16:45   좋아요 0 | URL
아닌데요? 고흐 작품을 가지려고 싸우는 스릴럽니다^^

슈가바인 2008-04-24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물만두 2008-04-24 11:19   좋아요 0 | URL
저는 기대가 좀 컸나봅니다.
 
콜링 - 어둠 속에서 부르는 목소리
야나기하라 케이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같은 보육원 출신으로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레이와 준야는 조금 독특한 청소업체를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체 청소다. 자살, 살인 등으로 방치된 사체나 그 뒤에 남은 잔재들을 모조리 깨끗하게 청소해서 원상복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틈틈히 집안 청소를 못하는 곳도 청소해주고 있다. 그러던 중 너무 늦게 발견된 시체의 청소를 맡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유령과 전파가 통했던 준야는 그곳에서 죽은 여자의 혼령을 본다. 그리고 그 자살로 추측되는 여자의 죽음이 궁금해서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의 일기를 올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녀의 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너무도 예쁜 여권 사진의 여자가 왜 갑자기 자살한 것일까? 아무리 사어버 세계라지만 그녀의 죽음을 알려주는데 그 중 한 여자에게서 그녀와 친구 사이였음을 알고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가져온 죽은 여자의 사진이 여권 사진과 달라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호러 미스터리라고 해서 무서울 거라는 것은 각오했다. 하지만 이렇게 독특한 소재로 우리 사회까지 관통해서 오늘날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을 줄은 몰랐다.

사이버 세계라는 좋은 만남의 장인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쉽게 드러냈다 감출 수 있는 고독한 세계이기도 한 공간에서 이미 살아가거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여전히 현실 세계에서는 외모지상주의로 치닫고 있어 그것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고독도 들여다보게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호스트와 호스테스라는 직업으로 산 쇼와 사리나가 오히려 건강한 현대인으로 보이기까지 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엔 명백하게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과거에 많이 사용되었던 치명적인 그 어떤 독보다도 잔인한 독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그 독에 노출되어 있을지 모른다. 읽어보면 알게 된다. 그 끔찍한 독의 정체는.

199쪽에서 사리나는 준야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의 작은 배려나 자상함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거라고 난 믿어. 그런 걸로 사람은 구원을 받기도 하고, 그걸 얻지 못해서 죽을 정도로 추락하기도 하는 거야."

맞다. 그 작은 걸 우린 남에게 주기를 참 꺼려한다. 남의 험은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으면서 좀 넘어가주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빈 말이나마 '괜찮아. 좋아. 그런 점이 오히려 네 장점이야.' 등 이런 말은 인색하다.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 자신도 원하면서 남에게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린 정말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나눠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간절한 콜링인지 모른다.

256쪽에서 257쪽에 걸쳐서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이 작품을 잘 나타내는 문장이다.

'페르소나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쓰게 되는 가면, 그림자는 뒤에 감춰진 본질, 잠재적인 욕망.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대립하면서 서로 보완하는 관계, 한쪽이 희다면 다른 한쪽은 검다. 한쪽이 플러스라면 다른 한쪽은 마이너스, 페르소나의 가면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그림자도 더욱 검고 거대해진다.
페르소나에 이끌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린 너무 많은 가면을 쓰게 되었다.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면이 그만큼 많이 필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가면을 너무 많이 쓰면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은 자명한 이치다. 결국 가면이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는 것이니까 너무 많이 감추다보면 자연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가면속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왜 본 모습 그대로 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단점만을 보고 장점은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다른 사람들의 비아냥에 놀아나는 것일까? 그렇게 자신감을 잃어버린 자신에게 무슨 존재가치가 있다고. 그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페르소나에 이끌려 가고 있다. 페르소나 때문에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이다. 나락으로 말이다.

예전에도 이런 얘기를 했다. 다리를 하나 잃게 된 소녀가 수술을 받고 목발을 집고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세상아, 비켜라. 내가 간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다. 고독과 고립은 누군가가 억지로 만들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만드는 페르소나, 그리고 그림자로 만드는 창살없는 감옥, 마음의 감옥이다.

작가는 간단한 플롯을 가지고 하나의 꽉 짜여진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 대한 생각과 공포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사회 문제를 일본이 대신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놓치기 아까운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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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팬더 2008-04-1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치기 아까운 좋은 작품이다 란 물만두님의 맨트가 저를 또 유혹하는군요. 그런데 다른 질문좀 드려도 될까요?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재밌게 읽어서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구입 고려중인데 물만두님 리뷰는 없더라구요. 3월 독서 리스트에는 있으시던데 어떤가요? 읽을만 한가요? 다른 분들 리뷰들이 좀 그래서요. 군인이다 보니 책을 최대한 알짜로만 구입할수 밖에 없다보니... ㅜㅜ 간단한 감상평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만두 2008-04-13 15:57   좋아요 0 | URL
리뷰가 없다구요? 올렸는데요. 흠... 저도 좀 그랬는데 다음에 나오는 작품과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고 하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http://blog.aladdin.co.kr/mulmandu/1953325
제 리뷰는 여기 있어요^^

핑크팬더 2008-04-1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올리셨군요. 감사합니다. ^^

물만두 2008-04-14 11:00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