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 사라마구의 <모든 이름들>이 도시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출판되었다.
눈 먼 자들의 도시, 눈 뜬 자들의 도시가 뜨니 제목을 바꾸다니 좀 그렇다.
그나저나 난 모든 이름들로 사놓고 아직도 안보고 있다.

1975년에 발표된 이언 매큐언의 초기 단편집이라 더 기대가 된다.
속죄를 읽고 실망하고 암스테르담은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책은 또 나오고 있다.
눈 도장만 찍어둔다.

역사 스릴러를 쓰던 작가가 현대물을 썼다.
그것만으로도 흥미를 끈다.
이 작가의 현대물이 과연 역사물만큼 좋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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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2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냈어요=3=3=3=3

물만두 2008-02-22 12:00   좋아요 0 | URL
압니다. 그 책에서 메탐정과 범인 M의 대결이 압권이라는 거 안다니까요~

BRINY 2008-02-2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은 이언 매큐언 좋아하시네요. 전 별로 몰입이 안되더라구요.

물만두 2008-02-22 13:51   좋아요 0 | URL
위험한 이방인이었던가요? 그 작품이 좋아서 보게 되었는데 속죄에서 좀 실망을 했죠. 하지만 한번 좋아하면 눈길이 가더라구요.

Apple 2008-02-2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 발간에 깜짝놀란 사람..=_=;
아아..원제가 원래 저런걸까요, 아니면 출판사측에서 장난치는걸까요..하하...;;

물만두 2008-02-22 18:43   좋아요 0 | URL
원제목은 모든 이름들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soyo12 2008-02-23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마구를 한번 정독해야할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음..저렇게 제목을 바꾼 건 좀 씁쓸하네요.^.~

물만두 2008-02-24 12:15   좋아요 0 | URL
저두요.
 
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
존 번햄 슈워츠 지음, 김원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을 뺑소니 교통사고로 눈앞에서 잃었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 어느 날 갑자기 일주일에 단 한번 만날 수 있는 아들과 함께 보내고 늦게 전처에게 아들을 데려다 주다가 과속으로 한 아이를 치고 달아나게 된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 동시에 상반된 상황을 맞이하는 아들을 가진 두 아버지와 두 가정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현대 사회와 가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슬픈 작품이다.

이야기는 에단과 그레이스 부부와 드와이트를 통해 전개된다. 한 여름의 야외 음악회를 갔다 오다가 딸 에마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잠깐 들른 주유소에서 에단과 그레이스의 자랑이자 자존심 강한 조시는 아버지의 말에도 꼼짝하지 않고 도로에 서 있다. 그것을 어쩌지 못한 사이 조시는 드와이트가 몰던 차에 치어 사망한다. 그때 드와이트는 창문에 기대어 자다가 눈을 다친 아들 샘을 더 걱정하며 뺑소니를 쳤다. 그 후 에마는 자신 때문에 오빠가 죽었다는 자책감을 갖게 되고 아들을 잃은 에단과 그레이스는 심지어 조시대신 에마가 죽었다면 하는 망상까지 하게 되며 자신들을 더욱 책망하게 된다. 그리고 잡히지 않는 범인과 경찰을 증오하게 된다. 드와이트는 아들 샘에게 자신이 친 것은 개였다고 말하고 넘어가지만 점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렇지만 가까스로 잡은 아들과 만나게 된 기회를 잃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두 아버지는 거슬러 올라가 자신들의 상반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에단은 폭력에 무방비로 당한 뒤 비폭력만을 주장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아들에게 제대로 된 야단 한번 못치고 그것을 자율적 교육이라 생각하며 살게 되고, 상습적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드와이트는 폭력을 싫어하면서도 내재된 폭력성으로 인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구타하고 아내라고 생각하고 아들까지 구타해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긴 시간이 흘러 이제야 아들을 일주일에 한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 샘은 아버지의 행동을 잊지 않고 있다.

두 가정 모두 전형적인 미국 내 중산층 가정, 또는 현대의 가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자식에게 나약한 부모, 자기 자식을 위대하게 생각하는 부모, 편애하는 부모, 이혼한 부모, 폭력적인 부모, 그러면서 뒤늦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뒤에 후회하는 부모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 아버지와 아들은 공존한다. 아들은 언젠가 아버지가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딸은 언젠가 어머니가 되기 마련이고. 하지만 이들은 늘 시행착오를 겪는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단지 노력하는 부모가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완벽한 자식은 없다. 부모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식만 있을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 뭉클해진다. 에단의 선택은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드와이트의 선택 또한 아버지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느낌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는 모든 아버지들의 위대한 모습을 보았다. 약간 어긋나고 삐그덕 거리는 가정들이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중심을 잡으려는 아버지, 자식을 위하는 아버지가 있어 세상은 아직도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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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79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지음, 윤우섭 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러시아 추리소설은 아직 우리에게는 좀 낯설다. 알렉산드라 마리니나의 아나스타샤 시리즈가 몇 편 번역된 것을 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러시아는 문학의 나라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추리소설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작품을 탄생시킨 나라다. 그러니 러시아 추리소설을 무시하는 것은 어쩌면 편협하고도 독자의 독서를 편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시점에 이 단편선은 새롭고도 익숙하게 러시아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열편의 작품들 모두 크리스마스와 새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어린 딸을 유괴당하고 남편과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한 여인에게 자신의 딸과 닮은 지하철역에서 앵벌이를 하는 소녀가 등장하는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오지랖 넓은 탐정의 걱정이 담기 이야기다. 그 속에서 러시아 사회에서 유괴된 아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단편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다. <공포의 인질 또는 내 고독의 이야기>는 남편을 청부 살해당한 여자의 이야기다. 대낮에 대로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는 러시아가 점점 서구화로 나아간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천사가 지나갔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투철한 신경질쟁이 의사의 자신이 담당한 환자를 누군가 살해했는지를 알아내려 고군분투하는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이지 웨이>는 폭설 속에서 버스로 달리는 러시아의 길을 연상시키면서 그 안에서 전통적인 러시아의 삶과 서구 물질의 묘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BMW라던가 제목인 이지 웨이라는 상표의 배낭 같은 물건과 러시아 전통 음식을 싸가지고 친구 집에 가는 모습 속에서 미스터리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새해 이야기>는 친구들 걱정만 하는 여자와 그래도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자칭 산타가 꾸미는 유쾌한 소품이다. <행복한 크리스마스>는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 참견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는 순수함을 느낄 수 있지만 점점 그것이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복수의 물결>은 러시아 대학은 공부를 잘하면 공짜로 들어가고 못하면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서 요즘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장난이 아닌데 부러움을 느끼게 만든 작품이다. 그러면서 대학에 가기 위해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하녀로 일을 하기로 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맹랑한 십대의 미스터리를 풀고 미래를 생각하는 기특한 작품이다. <예정된 살인>은 현 러시아의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피아가 등장하고 경찰이 등장하고 신흥 부자가 등장한,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 현대 자동차에 기뻐하는 주인공이 고맙게 느껴지다니. 가장 러시아다운 소란스러우면서 전통과 현대가 복잡하게 얽힌 작품이다. 사람 이름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일상의 미스터리가 유행인 요즘 러시아의 일상의 미스터리는 일본적 일상의 미스터리에 약간은 식상해진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단편선이다. 기발한 트릭이나 대단한 사건, 반전은 없지만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작은 미스터리 소품을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들을 같은 계절로 묶어 보여주니 작품들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 단편선을 계기로 전통적 러시아 추리소설이 더 많이 출판되기를 바란다.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앞두고 출판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독특한 단편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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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작품을 보게 되다니...
그저 영광일뿐이다.
빌 벨린저의 이 작품을 읽지 않고 추리마니아라고 할 수는 없는 일...
그러니까 그동안 나는 부끄러웠다 ㅡ..ㅡ
결말 봉인 초판본이라고???
빨랑 사야겠다!!!

카다레의 실존적 추리소설 - 미스터리 형식 속에 결합한 권력에 대한 우화
이 작품은 먼저 작품이 있어서 그 작품을 읽고 봐야 한다.

이 작품과 함께 2부작으로 쓰인 작품이다.
그런데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다니 암튼 모든 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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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2-1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와 손톱 저도 기대기대!!!!+_+

물만두 2008-02-20 11:04   좋아요 0 | URL
저두요~
 
손톱
김종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악몽을 꾼다. 악몽 속에서 주인공 홍지인은 범죄자다. 그것도 흉악한. 그런 그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악몽에서 놀라 깨어나면 손톱 하나가 빠져서 사라지고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개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섬뜩한데다가 자신의 꿈속에 등장해서 자신을 죽이려던 남자를 세준의 차를 타고 가다 얼핏 보기까지 한다. 그때 친구와 동업을 하는 네일 아트 숍에 노숙자 같은 이가 찾아와 “라만고”라는 단어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다. 뒤 이어 그 노숙자 또한 자신의 악몽 속에서 자신이 된 범죄자임을 알고 경악하게 된다. 이것은 예지몽일까, 아니면 딸을 살해당한 슬픔과 괴로움으로 인한 정신적 노이로제가 우연을 만든 것일까. 손톱은 계속 사라지고 악몽은 점점 그녀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 간다.

어릴 적 버린 손톱을 먹은 생쥐가 인간으로 변신을 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인간의 손톱은 어떤 존재로 각인되어 있어서 이런 이야기들이 우화나 전설, 풍습 속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하찮게 여기는 작은 것에도 의미가 있고 귀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까. 그래서 이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손톱이나 발톱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을 잃어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의 가장 무서운 점은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 나는 오히려 악몽이나 그 악몽이 현실 속의 이야기로 등장하는 것, 그런 일들이 소설은 물론이고 우리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덜 무서웠다. 하지만 마지막 홍지인의 선택은 오히려 섬뜩하게 만들었다. 어떤 것이 악몽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읽고 나서 몽롱해졌다. 차라리 악몽이 덜 공포감을 주니...

사실 작가가 이 작품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가 내심 걱정스러웠다. 답은 제시되었고 답 안에서 마지막을 장식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을 사용할지가 궁금했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인간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공포를 독특하게 표현했지만 그 인간들의 공포의 나열이 스릴러처럼 조여 오기보다는 나중에는 풀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이러다 용두사미 되는 건 아닐까 우려했는데 에필로그로 작가는 마지막에 인간의 내재된 근원적 공포를 극한까지 끌어내버렸다.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장자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나를 꿈꾸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현실과 꿈의 모호함. 그것과 이 작품은 통하고 있다. 악몽속의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니면 꿈에서 깨어난 내가 진짜 나인지 점점 모호해지고 나를 비롯한 현실의 모든 것을 믿지 못하게 되는 공포. 이것은 스티븐 킹이 자주 쓰는 안개로 뒤덮이는 공포와 같다. 그 알 수 없는 공포와 서서히 공포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드러나고 드러남과 동시에 선과 악은 비틀려 그것마저 모호함을 띠게 만든다. 이 작품이 표현하고자 한 공포의 실체는 바로 이것, 인간의 선택이라는 공포다.

‘라만고’라는 왕족의 손톱 발톱을 먹어치우는 희한한 직업이 마다가스카르 섬의 베스틸레로족의 풍습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마지막 에필로그가 이 작품을 빛내주는 원동력이다. 영화로도 나온다고 하니 기대된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포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이 표출되는 것이다. 공포문학은 사회의 그런 깊은 문제점을 성찰하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작품이다. 작가는 이런 점을 강조하고자 이상의 시 <거울>을 사용했다고 본다. 현대를 살아가며 공포문학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자신의 폐부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공포는 인간의 내면, 즉 영혼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이고 그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선택하는 것은 인간 각자의 몫이다. 그 선택의 몫을 빼앗는 것 또한 공포다. 그것이 손톱이 빠지는 악몽보다 더 끔찍할 거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것이 내가 공포문학을 읽는 이유이고 공포문학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외면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잔인함, 공포를 읽는다. 거울 속 내 영혼을 찾기 위해서. 아니 현실 속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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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9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9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pple 2008-02-1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이책 재밌었죠?ㅇ.,ㅇ 긴장감도 넘치고,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도 않고...
저는 뒤가 궁금해서 잠도 못자고 봤다니까요.^^;;

물만두 2008-02-19 16:52   좋아요 1 | URL
저는 마지막 에필로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Mephistopheles 2008-02-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저 책의 표지모델은 너무나도 익숙한......ㅋㅋ

물만두 2008-02-22 10:13   좋아요 0 | URL
오오~ 책도 출판하시더니 모델도 하셨어요^^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2-22 17:18   좋아요 0 | URL
설마요...살뭐시기 청님이라는 분의 서재 이미지랑 똑같아요.^^

물만두 2008-02-22 18:45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렇군요.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당췌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이노무 머리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