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40쪽에 에가미가 아리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미스터리의 본질은 환상 소설. 그 원류는 수수께끼를 향한 향수라네.  
   

 

이 말이 작가가 신본격 추리소설을 쓰는 이유라는 대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일본 ‘신본격파’로 불리는 것은 그들은 여전히 서구에서는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는 코넌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 딕슨 카 등이 주름잡던 트릭을 위주로 하던 고전 추리소설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는 작품 속에서 엘러리 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이 작품도 그의 작품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방학을 이용해서 등산을 간 아리스가 속한 추리동호회는 산을 오르기 전 카페에서 같은 산에 오르는 비슷한 또래 대학생 남, 녀를 만나 함께 지내게 된다. 각기 다른 대학인 학생들도 있고 알고 보니 같은 학교 학생인 경우도 있어 더욱 친해지게 된 그들이지만 잘 놀다가 다음날 갑자기 한 여학생이 말도 없이 하산을 하는 돌발 상황을 맞게 되고 이어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산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내려간 여학생을 걱정할 틈도 없이 날벼락처럼 화산에 이어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야말로 클로즈드 서클이 된 것이다. 고립된 상황, 범인은 그들 가운데 있고, 증거를 찾는 것은 범인의 트릭을 깨는 것뿐인 전형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작가는 엘러리 퀸의 <샴쌍둥이의 비밀>에서 소재를 가져왔다고 작품에서 말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말을 빌어서 말이다. 그 작품에서는 산불이 나서 퀸 부자가 저택에 피신을 하는 상황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엘러리 퀸의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아무튼 산불이 화산폭발로 바꿔서 작품을 쓰고 있다.

거의 다 읽었을 즈음 작가는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물론 나는 범인을 못 맞췄다. 이유는? 이름 외우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그나저나 ‘학생 아리스 시리즈’인데 아리스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 대학 신입생으로서 연애를 위해 매진할 뿐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마치 홈즈 시리즈여야 하는데 왓슨 시리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음 작품에서는 본격적인 실력 발휘를 하리라 믿어본다. 그럼 아리스 대신 사건을 푸는 탐정 역할은 누가 할까? 궁금한 독자는 책을 읽으시길... 김전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고전 트릭에 대한 향수가 있고 범인이 누구인지 맞추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국민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는 법이라는 걸 정치가들은 모른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 서민을 위해, 이를테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말을 하지만 그렇게 행하는 정치인은 보지 못했다. 나라가 아무리 못살아도 잘살던 때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라가 어렵다 생각이 들 때 예전을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그로인해 선거에서 여당이 야당에게 참패를 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주요 무대인 이 작품에서 한물간 역사학자는 20세기 가장 위험한 인물은 히틀러가 아니라 스탈린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남겼다는 노트를 찾아 마치 인디애나 존스처럼 돌아다닌다. 하여튼 서양의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은 모두 툼레이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도대체 왜 남의 나라 역사에 참견을 하고 남의 나라 유물에 손을 대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네 나라로 가져갈 생각만 하는지... 

러시아에서 스탈린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는 것은 러시아 국민에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시대에는 광기가 있었을지언정 목표가 있고 자신들이 잘하고 있으며 위대하다는 망상은 가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들어오자 그들은 자본주의자들에게 너무 쉽고 빠르게 잠식당했고 나라는 쪼개졌고 여전히 가난은 물러가지 않고 더 가난해져서 재빨리 자본주의를 파악한 자들 몇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가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난으로 인해 그들은 미국과 동등, 아니 서구 어느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자긍심마저 잃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그들이 스탈린을 찾는 것이 서구인의 눈에서 보면 비이성적으로 보이겠지만 그들에게는 타당한 일이다. 과거가 더 좋았다는 뜻이니까.

우리나라 속담에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있다. 오죽했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요즘 깨닫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선 통계에서도 국민이 잘 살 때는 현 대통령의 당이 지지를 받고 못 살 때는 반대당이 지지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은 비단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탈린이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자본주의-시온주의자들의 시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스탈린에 대해 잘 모르지만 히틀러를 소재로 쓰다 이제 식상하다 싶어 스탈린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라면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행하는 일들이 옳다고 말하는 건가? 미국이 이라크전을 벌인 것이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건가? 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장군은 군사지역도 아닌 민간인 지역임을 알고 독일인이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폭격을 감행해서 많은 이들을 전쟁이라는 이름하에 살상했다. 그리고 영국에는 그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비단 스탈린만이 위험한 인물은 아니라고 본다. 독재를 하는 사람은 언제든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나아지면 돌을 던질 수가 있지만 민주의 탈을 쓴 늑대들은 대부분 그냥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스탈린 한명보다 더 위험하지 않을까? 한명이든 백 명이든 같은 짓을 한다면 말이다.

이 작품을 다 읽고 그래도 읽기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스탈린에 대한 이야기나 작가의 글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역사란 언제나 자신들의 관점에서만 보고 쓰여 지는 것이라 사실일 수 없고 그것은 소설과 같다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허위 사실의 보도는 언제나 보고 싶은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부분만을 펼쳐 보인다는 것도.

역사는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고 인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지금 우리는 착각하며 살고 있다. 달리다 멈추기도 하는 기차처럼 멈췄을 때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스탈린을 너무 몰라서 이러는 걸까? 마르크스나 레닌도 모르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시 냉전 시대가 온다 해도 약소국인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지 답답할 뿐이다. 우리의 처지만 더 생각나게 한 작품이다. 결말부분이 그나마 인디애나 존스방식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없는괴물 2007-12-2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ㅡㅡ;; 스탈린 시대에 숙청당한 사람이 3천만명입니다. 히틀러가 죽였다는 유태인의 다섯 곱절이고, 2차 세계 대전 총 전사자랑 맞먹는 숫자입니다. 치적에 대한 평가는 어찌됐든 이만큼의 인명을 살상한 자를 착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아닙니까?

물만두 2007-12-28 15:24   좋아요 0 | URL
제 말은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더 낫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것도 책에 나오는 얘기지요. 제 논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구소련붕괴후 왜 스탈린을 다시 떠올리느냐는 점입니다. 독일에서도 히틀러 지지자가 늘고 있다더군요. 왜 그런가 하는 이유가 먼저여야 한다는 점이고요.
따지고 들자면 한도 없지만 그걸 따져야 하는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 자신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겁니다. 영국인이 걱정할 일일지도 모르지만요.
제 글 어디에도 스탈린을 착하다고 쓰진 않았습니다.

Koni 2007-12-2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탈린에 대한 러시아의 그런 분위기는 우리나라에서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삶이 팍팍해지더라도 성장주의, 경제주의에 대한 찬양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답니다. 리뷰와 좀 관계없는 이야기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여러 기대도 굳이 따지자면 미래의 희망을 덮어쓴 과거의 망령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물만두 2007-12-28 22:51   좋아요 0 | URL
그게 바로 현실에서 과거가 소설처럼 각색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그런 점과 뜬금없이 대영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서평이 책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지만 그런 점과 함께 지금의 정치 상황이 국민에 대한 감정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도 생각되어지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좌파정권의 몰락도 생각해볼 일이구요. 뭐, 여러가지 생각만 많았습니다.
 

* 시리즈

『学生アリス』シリーズ(江神二郎登場作品)학생 아리스 시리즈

月光ゲーム Yの悲劇'88  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孤島パズル   외딴섬 퍼즐

双頭の悪魔   쌍두의 악마
女王国の城

『作家アリス』シリーズ(火村英生登場作品)작가 아리스 시리즈

46番目の密室  46번째 밀실
国名シリーズ
- ロシア紅茶の謎(短編集)
  スウェーデン館の謎
  ブラジル蝶の謎(短編集)
  英国庭園の謎(短編集)
  ペルシャ猫の謎(短編集)
  マレー鉄道の謎
  スイス時計の謎(中編集)
  モロッコ水晶の謎(中編集)
ダリの繭
海のある奈良に死す
朱色の研究
暗い宿(短編集)
絶叫城殺人事件(短編集) 절규성 살인사건
白い兎が逃げる (中編集)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乱鴉の島

* その他

マジックミラー
山伏地蔵坊の放浪
幻想運河
ジュリエットの悲鳴
幽霊刑事
作家小説
まほろ市の殺人 冬―蜃気楼に手を振る
虹果て村の秘密

* エッセイ・評論

有栖の乱読
有栖川有栖の密室大図鑑
有栖川有栖の本格ミステリ・ライブラリー
作家の犯行現場
迷宮逍遥
赤い鳥は館に帰る
有栖川有栖の鉄道ミステリ・ライブラリー
謎は解ける方が魅力的
正しく時代に遅れるために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yo12 2008-07-2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이 엘러리 퀸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참 읽고 싶었던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번역되기 시작하네요.
빨리 국가명 시리즈를 읽어보고 싶어요. ^.~

물만두 2008-07-28 11:05   좋아요 0 | URL
그게 번역이 되었으면 저도 좋겠습니다^^
 

50년후면 석유가 고갈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석유없는 세상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은 에너지를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석유전쟁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석유 쟁탈전, 음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순한 SF작품은 아니라고 하는데 가격이 부담된다 ㅡㅡ;;;

레이먼드 카버의 비루한 일상에,
보르헤스의 마술적 상상력,
카프카의 몽환적 알레고리와
커트 보네거트의 비틀린 풍자까지,
이게 가능하다면 대단한 작품인데 어디 읽고나서 판단해야겠다.
이정도면 천재라는 얘기가 되는데...

제목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1984>와 <멋진 신세계>의 계보를 잇는 디스토피아 소설로서,
약물로써 국민을 통제하는 파시스트 체제를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도 약물에 의한 환각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아, 살인 등장이라는 봐야겠다.
흠... 이 작품도 광고가 좀...
그래도 현 유럽을 풍자했다고 하니 얼마나 풍자했는지 봐야겠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산속에서 발견된 의문의 사나이.
내가 관심가는 인물은 이 인물이다.
머리하면 기억이 돌아오나?
기억력감퇴가 심각한 내가 이 이발소에 가면 회복이 될까?
그것이 궁금하다!!!

드디어 나왔구만.
암스테르담...
내년에는 반드시 찾아서 읽어야지.
못찾으면 산다 ㅡ.ㅡ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07-12-2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일리움 보다는 싸네요. ㅎㅎ;

물만두 2007-12-27 12:05   좋아요 0 | URL
일리움도 그래서 못봤어요 ㅠ.ㅠ

아영엄마 2007-12-2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댁에 책이 너무 많아서 못 찾는 경우가 많군요. @@ (SF는 어려워서 환상문학 쪽에 더 관심이 가긴 합니다만 책 홍보 문구를 100% 믿을 순 없겠죠? ^^;)

물만두 2007-12-27 12:40   좋아요 0 | URL
그게 아니라 엄마가 어디 두셨는지를 잊으시기 때문입니다 ㅜ.ㅜ
홍보는 그것이 문제죠^^;;

아영엄마 2007-12-27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din.co.kr/zigi/1788682
이번회 퀴즈에서는 물만두님이 일등하셨네요. 저는 날마다 잊어버린다죠. ^^;;

물만두 2007-12-27 12: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08-01-09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9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카쿠치바 전설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아카쿠치바 가문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기묘하면서 재미있게 일본의 전후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가문의 가업인 제철소의 변화와 몰락의 길을 걷는 3대의 모습은 새로울 것은 없는데도 아름답고 독특하게 전개된다. 한마디로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라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읽으면서 계속 이 작은 한권의 책속에 옹골차게 철의 여인 3대의 이야기를 가지치기를 잘해서 넣을 것만을 잘 담아 넣었다고 감탄했다.

염상섭의 <삼대>를 읽고 감탄했던 예전의 밤이 생각났다. 우리네 격동의 일제시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모습의 3대의 남자들의 동시대 모습을 담고 있는 그 책은 조덕기 집안의 삼대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의 관습에 집착하는 고집 센 노인인 할아버지 조의관과 과거와 단절하고 신문물을 받아들여 기독교인이며 학교사업을 하는 인텔리이나 난봉꾼에 도덕관념이 전혀 없는 노름꾼인 아버지 조상훈. 그리고 그들과 상관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소심한 주인공 조덕기. 그들 삼대와 그 주변 인물과 상황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염상섭의 <삼대>가 한 시대를 사는 수평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이 작품은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흐르는 세월 속에 여인들의 이야기를 세 부분으로 나눠서 쓰고 있다. 그들은 동시대 사람이 아니고 각기 다른 세월, 다른 시대, 변하는 각자의 시대를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내고 있다. 그런 부분을 비교해서 읽는다면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따져 읽지 않고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에서의 미스터리적 요소는 그다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2007년 제6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요는 산의 아이로 그 지방에 남겨진 아이였지만 양부모를 잘 만나 잘 컸고 아카쿠치바라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그 집안 마님인 다쓰에 의해 그 집안 며느리가 된다. 그녀는 천리안 사모님이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미래를 내다보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 될 사람을 처음 만나고 그 남자가 어떻게 죽을지가 보였으니 그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자신의 시대인들이 갖고 있는 순종과 노력이라는 이름아래 잘 참고 인내하며 살았다. 그 천리안 덕분에 아카쿠치바의 사업인 제철업은 남편에게 잘 물려지게 된다.

오빠가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해서 아카쿠치바 가문에 데릴사위를 들이게 되는 장녀 게마리는 한마디로 방황과 불타는 젊음이라는 주체할 수 없는 시대를 산다. 불량 서클 아이언 엔젤의 두목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일대를 평정하는 것을 꿈으로 삼고 나날을 보냈지만 친구의 허망한 죽음으로 서클에서 은퇴하고 만화가가 되어 자신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 <아이언 엔젤>을 그린다.

이런 특징 있는 할머니와 엄마와는 달리 특이할 것 하나 없는 화자인 도코는 버블 경제 붕괴 뒤 허무하고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이유를 찾지 못한 지금 세대 젊은이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면서 그런 자신에게서 아카쿠치바라는 가문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한다.

신화와도 같았던 일본의 경제 부흥기, 그 뒤에 찾아온 추락,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날을 관통하며 한 집안의 이야기이면서 한 나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구가 둥글어 한 바퀴 돌면 제자리 듯이 모두가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한 지방의 전래 민속 설화와 접목해서 재미있게 작가는 끝까지 쓰고 있다.

끝에서 미스터리에 대한 살인자와 살해당한 사람을 찾는 도코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내가 기대한 미스터리가 없었지만 읽는 내내 사람이 자신의 시대를 열심히 산다는 것은, 그 시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내게도 한 시대가 있었고 지금도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전설은 아니더라도 어떤 것에서든 최고는 아니더라도 내 시대가 끝날 때 나 혼자만이라도 만족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각 시대마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사람이 한 명씩 등장한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지탱해주고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 ‘나’를 둘러싼 주변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전설은 생겨나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기를 반복하면서 변형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카쿠치바 전설>이라는 작품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대나 역사도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다. 한 가문이 한 여인의 삶으로 이어지듯이 말이다.

단 한 권의 책에 어쩌면 삼대의 시대별 특징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한 인물의 계속되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시대를 상징하는 주인공의 두드러짐이 삼대로 구별될 뿐, 그 안에 만요나 그 밖의 사람들은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 한 그대로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만요의 일대기로도 볼 수 있다. 만요에서 시작해서 만요에서 끝이 난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전설은 현실 속에 있건 주변부에 머무르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 보여 진다.

읽어보면 우리도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열심히 산 사람과 몰락한 사람과 광기에 내몰린 사람과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가 살았던 시대를 이야기하고 우리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앞으로 우리 또는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전설이다. 사람의 삶도 전설이다. 지나간 과거는 모두 전설이 된다. 그 하나의 전설이 여기에 있다.

<아카쿠치바 전설>은 2007년 올 해 읽은 작품 가운데 감히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이다. 책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다. 존재와 소멸, 사랑과 이별 같은 사람냄새가 가득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추리소설이 부담스럽다고 생각되는 독자들에게 추리소설 같지 않은 추리소설, 추리소설이 이런 작품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 한 권을 추천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7-12-2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님 완전 평론수준이어요. 저도 올해는 무리고 내년엔 꼭 읽어볼래요

물만두 2007-12-26 10:25   좋아요 0 | URL
아, 좀 길죠^^;;;

stella.K 2007-12-2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엔 이제야 올렸군요. 왜 이제야...? 읽고 싶어지잖아요. 흐흑!

물만두 2007-12-26 14:09   좋아요 0 | URL
그게 또 올려도 되는지를 몰라서 망설였답니다^^:;;

BRINY 2007-12-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은 했는데, 도입부가 그다지 안끌려서 밀어두고 있던 책이네요. 만두님 리뷰에 힘입어 다시 손에 들어볼까봐요.

물만두 2007-12-26 18:44   좋아요 0 | URL
도입부만 지나면 순식간에 읽게 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