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남자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리처드 매드슨의 1950년대의 시대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SF적 공포소설이자 서스펜스를 안겨주는 <줄어드는 남자>를 비롯해서 단편 9편이 수록되어 있는 멋진 책이 우리를 찾아 왔다.

우선 타이틀 작품인 <줄어드는 남자>를 보면 1950년대 한 남자가 안개와 같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원인도 모르게 계속 줄어드는 상황을 남자의 줄어드는 키에 따라 변화되는 심리 상황과 이제 소멸의 날을 얼마 남기지 않고 집 지하실에 갇혀서 독거미를 피하고 생존을 위해 크래커 부스러기와 물을 구하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남자로써 큰 키와 군인이었던 건장한 모습으로 아내와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싶었던 스콧은 키가 줄어들 때마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 경제력의 상실로 돈 때문에 언론에 자신의 이야기를 팔고 그러다 생계를 위해 아내가 돈을 벌게 한다. 당시의 전형적인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내에게 자신은 어린아이처럼 동정 받는 처지라고 자학하고 아버지라는 어른의 권위는 키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의 어쩔 수 없는 절망을 느끼게 된다.

지금이라면 달랐을지 모른다. 아니 적어도 그가 자신의 모습에서 우월함을 찾는 남성이 아니었다면 좀 더 절망에서 희망을 찾기가, 그리고 가족과 남은 날들은 좀 더 평화롭게 어쩌면 소멸의 날까지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너무 늦게 깨달았고 너무 오래 자신만의 문제로 가족을 돌아보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키가 아니더라도 그 시대 남성들이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는 위기감에 대한 표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남성상의 변화를 작가가 감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과 줄어드는 원인의 하나가 방사능이라는 것이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남아 표출된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개인이 짊어지게 되는 사회에 대한 불만에 대한 표현이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스콧은 끝내 제대군인 대출을 거절받기 때문이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희망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절대 자살하지 않는 인간이라면 지금 절망하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어쩌면 당신이 찾고 있는 원더랜드가 있을지 모르니까. 인생에서 좌절과 절망과 공포와 슬픔과 고립 같은 것들을 한번이라도 겪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진리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단편 중에서는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작품일 것이다. <시험>은 이런 작품의 소재는 SF작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쓰는 것 같다. 인구 과잉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우리에게 좀 더 와 닿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홀리데이 맨>은 짧지만 기발한 작품이었다. <몽타주>는 인생이 영원할 것 같지만 찰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배달>은 한 마을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벌이는 음모에 대한 이야기다. <예약손님>은 이발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짧고 강렬하다. <결투>는 영화로 본 것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거대한 트럭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작가들이 많이 차용하지 않았나 싶다. <파리지옥>은 한 남자의 스트레스로 인한 광기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버튼, 버튼>을 들고 싶다. 어느 날 하나의 상자가 배달된다. 그리고 한 남자가 찾아온다. 버튼만 누르면 오천달러를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버튼을 누르면 그들이 모르는 누군가가 죽게 된다고, 말하자면 그것은 죽음의 버튼인 것이다.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릴까? 쉽게 NO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지금도 죽고 있다. 이 땅에서도, 지구상 어디에서도. 하지만 그 버튼이 과연 하나뿐일까? 누군가도 그런 상자를 받아 누르고 돈을 받으려 하는데 그가 모르는 상대가 나라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정말 버튼 하나가 인간을 고민하게 만드는데 어쩌면 이 작품은 2차 대전에서 미국이 버튼 하나 눌러서 원자폭탄을 터트린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후 5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그들은 여전히 너무 쉽게 버튼을 누르고 있고 우리도 따라하려 하고 있다.

작품 모두가 읽어보면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나는 전설이다>도 읽어야겠다. 이런 좋은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고 넘어간다는 건 왠지 손해 보는 일 같다. 지금 이 책을 볼까 망설이는 당신도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스티븐 킹의 말이 아니더라도 장편은 장편대로 단편은 단편대로 놓치면 아까운 작품들의 퍼레이드다. ‘줄어드는 남자’를 읽으면 매드슨의 존재는 점점 더 커지니 그는 계속 커지는 남자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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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2007-12-0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입고가 가뭄에 콩나듯 하는 도서관에서 홧김에 빌려본 '나는 전설이다'를 단순한 좀비소설로 치부하고 영화화 된다는 것에 신기해 하고 있었는데 만두님처럼 '나는 전설이다'부터 다시 차근차근 신간까지 읽어봐야 겠군요....단편에는 너무 약해요...ㅠㅠ 즐길수 있는 비법이 혹시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물만두 2007-12-08 12:13   좋아요 0 | URL
어, 비법은 그냥 좋아하는 건데요^^;;;
단편집만 따로 나온 걸 한번 차근차근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stella.K 2007-12-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년대 SF라니 땡기네.^^

물만두 2007-12-10 10:08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초등학교때부터 나는 늘 평범했다.

성적도 늘 중상 정도였다.

그러던 성적이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더니 뒤에서 세는게 더 빠르게 되어 버렸다.

헉...

이 성적표에 대한 나의 놀라움은 잠시였고 이 첫 성적표를 보여드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우선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다.

그리고 싹싹 빌어 성적표를 받고 아저씨 입막음을 했다.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친구 언니 타자기를 이용해서 위조를 할 생각이었다.

우선 성적표 칸을 네모 반듯하게 오린다.

그리고 뒤에 종이에 타자로 친 점수를 붙인다.

문방구로 가서 복사를 한다.

부모님께 새로 나온 성적표라고 구라를 치고 보여드린다.

이게 내 생각이었다.

근데 성적표의 칸을 잘못 오리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우띠 얼마나 손이 떨리던지...

성적표가 찢어지고 말았다 ㅜ.ㅜ

거기다 언니가 뭐하는 짓이냐고 옆에서 지켜보며 째려보는데 어찌나 낯이 뜨겁던지.

친구가 이리저리 얘기를 해주는데 타자를 칠줄도 몰라서 찍다 망치고 찍다 망치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고 나자빠졌다.

구멍난대다 찢어진 성적표를 보일 수는 더더욱 없어서 거짓말을 했다.

학교에서 전산 사고 났다고.

크억...

엄마는 내 말을 믿으셨다.

그리고 그 뒤에 성적표는 보여드렸다.

더 이상 속인다는 건 고등학교 3년을 그래야 한다는 얘긴데 차라리 엄마 잔소리 듣는게 더 낫다 싶었다.

내 다음 성적표를 받은 부모님 표정은 이걸 죽여 살려 였지만

다행히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니가 알아서 하거라의 방목주의셨기에 나는 살아남을수 있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그 우체부 아저씨 엄마랑 무지 친하셨는데 진짜 말씀 안하셨을까?

엄마는 아시고도 말씀 안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인데 여쭐 수도 없는 새가슴인 나는

성적표 얘기만 나오면 이때 생각이 난다.

물론 수학 2 빵점 맞은 성적표도 안 보여드렸다.

이십년도 지난 일이니 지금은 이것도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 난 제정신이 아니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리버리한 건 어쩔 수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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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0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딱 한번 스리슬쩍 칼로 긁고 5를 8로 교묘하게 고친 적이 있었습니다만....
누가봐도 티가나는 위조였지만 그냥 넘어가주시더군요. 다시 말해 물만두님 어머님도 분명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셨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만두 2007-12-07 14:06   좋아요 0 | URL
그때는 모르셨을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알고 계셨으리란 생각이 들더군요.^^
칼도 생각해봤지만 너무 고칠게 많아서 전 못했답니다^^;;;

보석 2007-12-0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도 딱 한번 시도했는데 무척 성공적이어서 그냥 넘어갈 뻔~했는데 막판에 들통나서 비 오는 날 먼지나게 맞았어요. 하하;;

물만두 2007-12-07 15:16   좋아요 0 | URL
차라리 저는 맞는게 더 낫겠다 싶더라구요^^:;;

비로그인 2007-12-0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핫.
그 때에, 컴퓨터가 있었다면 좀 더 수월했을텐데 말입니다.
저도 예전에 타자기를 잠깐 쳐봐서 아는데요, 성적표 만들겠다고 치다가 틀려서 끙끙
했을 만두님 상상하니까 너무 재밌습니다. ^^

물만두 2007-12-07 18:57   좋아요 0 | URL
그땐 제가 미쳤었나봅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있었다면 완전범죄도 노려봤을텐데 아쉬워요^^;;;

마노아 2007-12-0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년 지났는데 함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물만두 2007-12-07 18:57   좋아요 0 | URL
물어보고 이 추위에 먼지나게 맞으라구요?^^;;;

순오기 2007-12-0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런~~~~ 비스무리한 경험들 보물창고에 다 쟁여 놓으셨군요. ㅋㅋ

물만두 2007-12-07 18:58   좋아요 0 | URL
뭐, 우리가 다 비슷하지 않겠습니까^^ㅋㅋㅋ

sooninara 2007-12-0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적표위조라니..공부는 못했지만 워낙 새가슴에 그런쪽으론 젬병이라서
나오는 족족 그냥 보여드렸다는..ㅋㅋ

물만두 2007-12-07 20:13   좋아요 1 | URL
나도 성공이 아니라 하려다 말았다고 ㅜ.ㅜ

비로그인 2007-12-07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자기는 원시적인 물건이라 칸을 잘 맞히기도 어렵고 칠 때도 힘이 들어가 종이가 타자기에 끼기 때문에 님께서는 굉장히 어려운 선택을 하신 셈이 되었습니다.
저는...매번 야단을 맞으며 성적표를 보여드렸습니다.

물만두 2007-12-07 20:49   좋아요 1 | URL
그걸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냥 생각난 것만 믿었다가 힘만 빼고 말았죠^^:;;

딸기 2007-12-07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언니 넘 재밌어요
세상에... 수정액으로 살짝 고치거나 칼로 긁는 것도 아니고
타자기까지 동원해서 고난이도 위조를 하려 하셨단 말씀이십니까!

물만두 2007-12-08 10:09   좋아요 1 | URL
수정액은 티가 나고 칼로 긁어도 티가 나잖여~
나는 완전범죄를 꿈꿨던것이제 ㅡㅡ;;;

chika 2007-12-07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왜 다들 만두언냐가 수학 빵쩜!! 맞았단 얘기엔 안놀래는걸까요? @@
당연하단 뜻? =3=3=3=3=3=3=3=3=3=3

chika 2007-12-07 22:21   좋아요 1 | URL
댓글에러... 그래도 꿋꿋이 네번의 시도 끝에 성공! 움화홧~
내가 눈오는 날 옥상에서 먼지나게 맞을라고..미쳤지~
=3=3=3
참, 그래도 추천은 내가 했시유우~ =3=3=3=3

물만두 2007-12-08 10:11   좋아요 1 | URL
니 옥상 올라오거라~
그 빵점 얘기는 다 아는 야그잖여~
그나마 추천땜에 봐준다^^

미미달 2007-12-08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큭 만두님도 그런 면이 ㅋㅋㅋㅋㅋ
전 위조는 못하겠더라구요. 요즘 나오는 성적표 위조하는 것도 참 장난이 아니어요.
컬러풀하면서도 디자인도 쓸데없이 조잡하고 말이죠. -_ㅠ ㅋㅋㅋㅋ

물만두 2007-12-08 10:13   좋아요 1 | URL
그때도 약간 색깔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어요.
아마 처음이라 많이 당황해서 그랬을겁니다.
제가 일을 좀 저지르는 편이긴 해요.
아무도 모르게 말이죠^^ㅋㅋㅋ
 
친절한 사기꾼
후지무라 이즈미 지음, 김현영 옮김 / 시아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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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라 생각하고 아버지에 대해 비밀 이야기를 했다 합격한 회사에 친구가 그 말을 퍼트리는 바람에 취소당하고, 취직한 증권회사에서는 상사보다 능력 있으면서 아부 못하고 애교 없다는 이유로 상사의 농간으로 퇴직당하고 거기다 동종업계에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는 바람에 재취업도 할 수 없게 되고, 사귀던 호스트에게 전 재산을 사기 당하자 술에 취해 거리를 방황하던 리리코는 노숙자 젠씨를 만나 그가 아버지와 같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사기로 자신을 망친 사람들에게 복수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살려 복수 사업을 시작한다.

이 책은 사기를 당할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남에게 사기 치면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지만 그래도 한번쯤 복수를 꿈꿔본 소시민들에게는 후련한 보상심리를 안겨줄 것이다. 책을 읽는데 자꾸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칼 갈아요~’ 우리는 잘못도 비슷하게 저지르고 당하기도 비슷하게 당한다. 그러니 이 책을 보고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꿈꾸는 이들은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이 툭 잘린 듯 끝나서 어? 파본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이 결말 없는 끝은 뭔지 참... 하긴 이 책에 결말이 있을 리가 없다. 아직 복수를 꿈꾸는 이들은 리리코를 찾을 테고 리리코는 언젠가 만날 아버지를 기다리며 이 일을 계속할 테니까. 그래도 친절하지 않은 마지막이었다.

‘친절한’이라는 단어와 ‘사기꾼’이라는 안 어울리는 조합도 없을 것이다. 결국 리리코도 사업만 복수지 그 뒤에 복수라는 이유로 복수의 대상에게 더 심하게 대하니 그렇게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드는 일도 있지만 이건 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작품의 결론은 사기는 치지도 말고 당하지도 말고 죄짓지 말고 살자가 아닌가 싶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을 테니까.

이 중에 아이들을 운이 없어 일류가 되지 못한 자신 대신 일류로 만들겠다고 사채까지 써서 학원 보낸 아줌마의 사연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학부모들이 꼭 좀 봤으면 좋겠다. 어떤 것을 일류라 생각하는지도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고 어쩌면 당신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고도 싶다. 하지만 그분들은 이 책 볼 시간도 없겠지.

그래도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과 대놓고 사기꾼임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괜찮아 보이는 건 사기꾼이 아닌척하면서 사기치고, 빼앗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뻔뻔한 사람들이, 그런 가진 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뼈 빠지게 일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그걸 날로 먹는 사람들 천지고 오히려 당하는 사람을 바보라 여기게 만드는 사회 현상이, 그런 얼굴 두꺼운 사람들이 판을 치고 날뛰게 만드는 오늘날 우리들의 우스운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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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이시다 이라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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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었다. 누군가 나를 땅에 파묻고 있다. 나는 그걸 보고 있다. 죽어서 나는 유령이 된 것이다. 주인공 준이치의 살해 후 어딘가에 묻히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준이치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다시 기억을 돌리는 장면을 다음에는 보여준다. 그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준이치가 죽기 2년간의 시간이 죽은 뒤에도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봐도 기억할 수 없는 기억상실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죽인 사람이 누군지, 왜 자신을 죽였는지를 모른다. 단지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을 파묻던 두 명의 얼굴과 자신이 2년 전까지 했던 사업에 대한 것뿐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을 파헤치러 날아오른다.

독특한 미스터리 작품이다. 인간의 원한이란 이래서 질기다고 하는 모양이다. 아니 원한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그것보다는 호기심? 의문? 모르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하는 인간의 천성이 죽어 유령이 된 이에게까지 사건 해결을 하라고 하고 있다. 물론 당연하다. 누군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원인도 모른 채 성불하거나 천국 또는 극락에 갈 수 있겠는가.

재벌가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에게 의절 당하고 그때 받은 돈으로 벤처회사를 돕는 엔젤펀드를 만들어 친구가 운영하는 게임업체 같은 분야에 투자를 했는데 유령이라도 고유의 능력 한 가지는 있다는 다른 유령의 말에 자신이 전기를 다루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그 기술을 연습해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2년간의 투자 회사를 살피다가 리스크가 큰 무모한 투자를 한 회사를 뽑아 그 회사들을 살피기로 하는데 거기서 자신을 파묻던 일당을 만나 사건을 하나씩 알게 된다.

준이치의 인생도 참 기구하다. 출생과 동시에 어머니를 여의고 좋아하던 여자애는 자신의 친구를 좋아하고 스무 살에 아버지에게 의절당하고 대인기피증까지 있어 변변한 친구 하나 없이 이렇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해서 자신은 절대 결혼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여인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고 자신을 살해한 인물들은 그 여자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다. 유령이 되었지만, 자신이 살해당한 이유보다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 되어버려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유령이라도 아직 시련은 남아 있고 유령 미스터리라도 반전은 남아 있어 눈물 나게 뒤통수를 친다.

제목의 천사를 뜻하는 엔젤은 기업에 투자하는 준이치의 사업을 뜻하기도 하고 준이치가 유령이 되어 날아다니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엔딩부분에 있지 않나 싶다. 천사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결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가 생각나버렸다. 인간이라 인간적인 것이 천사로 포장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죽어도 인간은 인간인 것을. 그리고 죽는다고 그 성격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준이치만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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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0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 '죽어도 인간은 인간인 것을. 그리고 죽는다고 그 성격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 부분이 마음에 듭니다. ^^

있죠, 만두님 서재 벽지...팥죽이 생각납니다. (꼬르륵)

물만두 2007-12-06 11:1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동지팥죽^^

비로그인 2007-12-06 14:18   좋아요 0 | URL
흐엥..팥죽 달라는 말이었지, 약올리라는 말은 아니었다구욤!
ㅜ_ㅜ....

물만두 2007-12-06 15:15   좋아요 0 | URL
울지마세요. 팥죽배달되면 한그릇 배달해드리고 싶잖아요 ㅜ.ㅜ

비로그인 2007-12-06 18:09   좋아요 0 | URL
그럼, 적립해 주세요.
나중에 만두님 만나면 꼭 얻어먹을테얏! (>_<) 으갸갸갸갸하핫.

물만두 2007-12-06 18:43   좋아요 0 | URL
만나면요^^
근데 저 만나기 쉽지 않을텐데 우짜쓰까요^^;;;

2007-12-0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07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달 2007-12-07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시다 이라도 꾸준히 내는군요 작품 ㅋㅋ

물만두 2007-12-07 11: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영원히 사라지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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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의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반전 미스터리’다. 그는 작품마다 반생반사, 반전에 살고 반전에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반전은 없겠지 하고 마음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전을 시도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반전을 트릭으로 이용을 하고 있다. 과감하게 복선을 드러내고 있는데 반전으로 무장을 시켜 그것을 쉽게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11년 전 윌의 형 켄은 윌과 막 헤어진 여자 친구 줄리를 살해하고 사라진다. 11년 동안 가족 모두는 그가 살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고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머니는 임종 직전 윌에게 켄이 살아있음을 유언처럼 남긴다. 윌은 혼란스럽기만 한데 갑자기 여자 친구가 사라지고 FBI는 그의 여자 친구 실러가 살인사건 현장에 있었다며 그를 심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러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은 마치 윌을 11년 전 사건과 똑같은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 같기만 하다. 이렇게 해서 평탄한 생활을 하던 겁쟁이 윌은 사건에 개입을 하게 된다.

작가는 처음 살해자로 지목된 아들을 가진 집안과 살해된 딸을 가진 피해자 집안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다룬다. 살인 용의자의 아들을 뒀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 부모와 그런 형을 뒀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전면에 나설 수 없는 동생의 아픔과 아직도 죽은 딸을 잊지 못하고 가해자를 원망하는 부모와 언니를 잊지 못하고 언니와 닮은 외모로 자란 동생의 11년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품은 양파를 벗기는 느낌을 준다. 조금 읽다 반전에 놀라 오오~하며 정신없이 읽다보면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까도 까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처럼 반전은 놀라도 놀라도 계속된다. 이렇게 반전을 좋아하고 사용하는 작가가 또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런 반전은 읽는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한 몫 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시 밤거리 가출 청소년들을 돕는 윌의 직업을 통해 사회가 품고 있는 어두운 사실, 변하지 않을 모습을 들려준다. 돕는다는 말은 하지만 진정 돕는 것인지, 그들이 받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건지 고민하게 한다. 그 어린 가출 청소년들은 마약과 매춘, 구걸 그리고 갱단의 조직원이 되거나 아니면 좀 더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나쁜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마약을 팔거나, 매춘부를 거느리거나.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마약에 절어 죽거나 매춘을 하다 죽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하며 길거리에서 인생을 마감할 것이고 그들을 살리기에는 노력도 힘도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할런 코벤은 스쳐 지나가듯 보여주며 독자에게 생각하기를 유도한다. 물론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지는 과정에서 그의 동료이자 인맥의 끝없음을 보여주지만 과거를 알 수 없는 스퀘어즈를 들러리로 만들어버렸다는 아쉬움도 있다. 원래부터 조연으로 끝날 인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스퀘어즈의 존재가 작품의 하나의 키워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삶의 대비라는. 같은 출발을 했던 이들의 다른 선택에 대한, 그리고 그 후의 이어짐에 대한...

작품을 덮은 지금 반전의 쓰나미에 혹사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반전의 대가답게 마지막까지 반전으로 놀라게 하는 점은 높이 사고 싶지만 이젠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할런 코벤이기에 용서가 된다. 이런 두께의 작품을 쉽게 읽게 만드니까. 뭐, 몇 장을 안남기고도 반전을 일으켜서 어쩌려고 이러나 살짝 걱정했지만 마무리는 반전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반전은 아, 작품을 통째로 뒤집어버리는 과감한 반전이었다. 배신과 감동,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무튼 할런 코벤의 작품은 중독성이 강하다. ‘스릴러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책’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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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12-0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 좋습니까? 서평단 뜨길래 신청해 봤는데 우찌될런지...!^^

물만두 2007-12-04 12:15   좋아요 0 | URL
제가 할런 코벤 좋아하잖아요^^

좋은책과함께 2007-12-0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단한번의시선은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마지막기회나 밀약은 저한텐 좀 아니였거든요 그래서 이책두 구입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중인데 믿구 구입해두 괜찮을까요?

물만두 2007-12-04 12:18   좋아요 0 | URL
아이고, 마지막 기회랑 밀약을 먼저 보셨어야 하는데요.
단한번의 시선보다는 좀 약한 작품들입니다만 할런 코벤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세요. 아님 서점에서 좀 읽어보시고 구입하시던가요.
이게 얇은 분권이라는 약점도 있습니다.

보석 2007-12-0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전작이 취향이 아니라 망설여지는데 스토리는 무척 끌립니다.

물만두 2007-12-04 12:44   좋아요 0 | URL
스토리 좋습니다.

비연 2007-12-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한번의 시선이..제 스탈이 아니었기에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만두님이 추천해주시니..보관함에 홀랑 집어넣게 되네요 ㅋㅋㅋ
요즘 우째 지내세요, 날도 추워지는데..

물만두 2007-12-05 10:10   좋아요 0 | URL
서평단 모집한답니다^^
그거랑 비슷한데요~
똑같이 지냅니다.
님 추운데 감기 조심하이소~!!!

다락방 2007-12-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끌리는 리뷰로군요. 저는 반전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이 책은 보관함에 넣어봐야겠어요. 올 겨울에 읽어볼까요. 훗 :)

물만두 2007-12-05 10:11   좋아요 0 | URL
이 책 반전으로 시작해서 반전으로 끝납니다.
그래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