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기담 - 왕조실록에서 찾은 조선 사회의 뜻밖의 사건들 기담 시리즈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기담(奇談)이라는 제목에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내심 기대했다. 우리나라라고 그런 이야기가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글이라는 문구에서 이미 파악을 했어야 했다. 그 안에 설령 언급된 기이한 이야기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으로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란 힘들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에 그렇게 특이한 이야기가 있기는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제목은 조선 기담이나 기이한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고 약간 특이한 이야기, 아니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읽다보면 저자의 글 솜씨가 워낙 옆으로 잘 빠지는 통에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난다. 저자도 이야기하듯이 조선왕조실록에서 그 뒤 어떻게 되었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더라는 것처럼.

작품은 이미 본 이야기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도 있는데 별로 재미있지도 않고 기이하지도 않다. 마지막에 <정조, 정약용에게 소주 원샷을 강요하다>는 정조가 술을 좋아했고 금주령을 풀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정약용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했고 아들들에게 공부하고 술을 멀리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 어디에 기담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

차라리 저자가 이런 이야기들을 그대로 풀어내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말고 이야기로 재미있게 각색했다면 읽기에나 좀 낫을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귀신 이야기가 나와도 무섭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읽다보면 울화만 돋우니 고등학교 국사시간이 생각나기만 했다.

조선시대 바바리맨이 있었다는 얘기도 읽고 나면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일 뿐 바바리맨의 이야기라기보다 행실이 안 좋았던 양반도 출세한다는 이야기로 흘러 조선시대 임금이고 양반이고 이들이 나라 말아먹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한센병, 일명 문둥이라 불린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려주는 엽기적인 사건은 그 사건 이면에 서정주의 문둥이라는 시처럼 슬픔을 느끼게 된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이 시는 어쩌면 옛날부터 내려온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실화를 담고 있다는 생각에 그때나 지금이나 서러운 사람들은 늘 서럽게만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왕조실록에서 찾은 조선사회의 뜻밖의 사건들’은 읽고 나면 뜻밖이 아닌 사건들이다. 다음에 다시 이런 책이 나온다면 그때는 읽기에 참 많이 망설여질 것 같다. 역사를 재미있게 읽게 하고 싶은 저자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재미없게 쓰면 독자는 어쩌란 말인지. 좀 더 글 쓰는 솜씨를 다듬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뒷북을 친 감도 없지 않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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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2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뜻밖의 한국사'를 읽은적이 있습니다만, 괜찮았던것 같아요.
저자의 생각이 별로 기입되지 않은 서술형이어서..^^ 이 책은 제목을 잘못 지었군요.

물만두 2007-11-26 10:35   좋아요 0 | URL
네, 제목만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비슷한 얘기들이 좀 많아서요.

진/우맘 2007-11-2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 원샷이 기담이라니...거참....^^;;; 덕분에 쓸데없는 책 한 권 덜 읽겠습니다.

물만두 2007-11-27 11:20   좋아요 0 | URL
제목과 참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도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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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1 마녀 1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딱히 제목이 마녀라고 해서 중세의 마녀사냥을 연상시키는 기독교적인 마녀가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다. 한 가지 이야기도 아니고 여러 단편들의 모음이라 각 나라의 샤머니즘에 대한, 주술사의 이야기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무당이라는 일종의 마녀와 같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귀신도 보인다고 하고 미래를 예언하고 액을 막아주기도 한다. 지금은 시대에 따라 그들도 변했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단골이라는 말의 어원이 무당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현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돌을 쌓고 기도를 하고 나무 한그루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어쩌면 그 길고 오랜 생명력과 자연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주술사들인 마녀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모든 만물의 조화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 나라의 마녀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지켜라.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지켜라.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세상엔 더 많고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고 지식의 늪에 빠지지 말고 아집의 희생양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런가? 이미 파괴될 것은 다 파괴되어 버렸고 오래전부터 우린 피라미드의 웅장함만을 보려하지 그것을 쌓느라 죽어간 이들은 잊은 지 오래인데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말해 무엇 하며 아마존 밀림도 다 파괴되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사라지는 언어가 있고 멸종되는 종족이 있고 멸종되는 생명체가 있는데...

간만에 좋은 만화를 봤다. 내용도 좋았고 볼펜으로만 그렸다는 그림도 좋았다. 볼펜으로도 이렇게 부드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다. 여러 단편들의 조합도 좋았지만 마녀라는 소재를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성황당도 사라지고 마을을 지키는 아름드리나무도 사라지고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도 사라지고 그러고 다시 돌아보니 우리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그것들을 잃으면서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고 그것들이 우리를 더 잘 지켜주고 있는지, 아니 이젠 누군가를 지킨다는 말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지킬 생각자체가 없으니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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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작품 걸작이다. 처음부터 사건을 무작정 들이댄다. 하지만 그건 그냥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시작은 지금부터다. 그러니까 서로 마주 보는 아파트에 동시에 두 남자가 입주를 한다. 입주하면서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스토킹한다고 생각하며 적으로 간주한다. 사실 이런 일은 있을 법하다. 마주 보는 창을 통해 한 사람이 망원경으로 뭔가를 본다고 치자. 물론 그는 맞은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망원경의 방향이 자신을 보고 있는 듯이 상대방이 느낀다면 그것처럼 불쾌한 일도 없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흔히 남자들이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뭘 봐? 딱 그 상황인 것이다. 취향도 똑같은 이들은 서로의 흉을 일기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것은 두 사람의 일기와 가끔 등장하는 관리인 여자의 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것만으로도 작가는 심하게 웃기고 있다. 처음 몇 장만 읽어도 낄낄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다 등장인물들이 몽땅 이상한 사람들뿐이다. 영화를 짜깁기해서 촬영을 안 하고 영화를 만든다는 영화감독이 있는가 하면 야리꾸리한 소설만 쓰는 할아버지 작가도 있다. 동물 괴롭히기와 말썽이 취미이자 특기라 선생님들도 두 손 들고 월반을 시킨 악동이 있는가 하면 한 겨울에도 짧은 조끼와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젊은 관리인도 있다. 또한 쥐를 애완동물로 키우는지 생계형으로 키우는지 무지막지하게 키우는 사람까지 있다. 으... 거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살해(?)당한 개를 찾아 협박을 하고 다니는 아줌마까지. 이들이 옆에 있다면 정말 정신 하나도 없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일기를 쓰는 두 주인공은 무얼 하는 사람들이냐 하면 한분은 라디오 작가고 한분은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들의 모임만으로도 충분한 시트콤인데 작가는 이들을 더욱 몰아붙이고 있다. 처음에는 유머로 시작한 작품이 미스터리로, 호러로 변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데. 하지만 단순한 현대인들의 소통부재를 이야기하기엔 조금 진부하다고 작가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만큼 이 작품은 작가도 이야기했듯이 소설의 진정한 서스펜스는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바로 이 질문에 있다. ‘저자는 과연 제대로인가?’. 저자는 정말 제대로 독자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치고 있다. 추리소설의 공식을 완전히 무시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추리소설의 형식을 찾아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은 반드시 읽어봐야만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줄거리로는 절대 이 작품의 진가를 냄새도 맡을 수 없다. 그러니 재미있고 스릴 있고 독특하고 뒤통수 제대로 맞고 싶은 독자들은 무조건 이 책의 늪 속으로 빠져드시길... 그 길밖에 느낄 수 있는 길은 없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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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책 2007-11-2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해요...또 사야 할 것 같네여.
물만두님의 리뷰는 죄다 지름신이야^^

물만두 2007-11-23 12:07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이매지 2007-11-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작이라니 정말 읽고 싶어지네요! 아흑-

물만두 2007-11-23 12:07   좋아요 0 | URL
리뷰도 못쓸만큼입니다^^;;;

모1 2007-11-2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물만두님..
처음 읽고 유머스러운가? 했더니 뒤로 갈수록 미스테리인가 보군요. 후후..
참 지난번에 나는 전설이다..인가 하는 책의리뷰 쓰시지 않았나요? 지구의 마지막 사람으로 남아서 좀비들과 싸운다는 고전물요. 그것 윌스미스 주연의 영화로 나왔다고 하는것 보면서 물만두님을 떠올렸었어요. 할리우드꺼 답게 내용은 오락물인듯 하지만요.

물만두 2007-11-23 12:09   좋아요 0 | URL
모1님 저두요^^
끝에 가서는 눈물도 핑~ 그런 작품입니다.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때문에 있는데 안 읽었어요.
영화도 나온김에 읽어볼까 합니다.

jedai2000 2007-11-2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만들면서 제가 느꼈던 점들이랑 소름이 끼치도록 일치하네요. 평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물만두 2007-11-23 14:08   좋아요 0 | URL
조금만 더 쓰면 스포일러가 될까봐 못쓰겠더라구요.
정말 쓰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딱 한마디로 걸작이라는 말이 제격이더라구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비로그인 2007-11-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지네요.
여유가 생기면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물만두 2007-11-23 19:03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도넛공주 2007-11-2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서 읽어야 되겠습니다!

물만두 2007-11-23 19:03   좋아요 0 | URL
암요^^

BRINY 2007-11-2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살까 말까~

물만두 2007-11-24 11:00   좋아요 0 | URL
사세요^^

비로그인 2007-11-2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물만두 2007-11-24 11:00   좋아요 0 | URL
보세요~~~~~

Apple 2007-11-2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요거 궁금해집니다.+_+봐야겠어요!

물만두 2007-11-24 11:00   좋아요 0 | URL
암요^^

Volkswagen 2007-11-24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입질하셨습니다. -.-:: 다른 거 주문했는데 취소하고 또 다시 주문서 작성!
잘 지내죠? ^^*

물만두 2007-11-24 11:01   좋아요 0 | URL
전문이잖여^^;;;
당근~ 자기도?

2007-11-24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4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뽀송이 2007-11-2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읽어야할 분위기!!
걸작인데다... 줄거리로는 절대 책의 진가를 냄새도 맡을 수 없다니...
거기다가 얕은 내 머리에 제대로 한방 먹인다는?? 챙겨가요.^.~

물만두 2007-11-25 11:01   좋아요 0 | URL
넵~

마태우스 2007-11-25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래요! 전 웃긴 책이 좋아요!

물만두 2007-11-26 10:35   좋아요 0 | URL
네^^

2007-11-2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6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07-11-2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안 그래도 관심 생기더니만...^^;;;

물만두 2007-11-27 11:19   좋아요 0 | URL
암요^^

werpoll 2007-11-2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만두님!
저도.... 지름신이 오셨어요ㅜㅜㅋ
꼭읽어봐야겠어요!!

물만두 2007-11-28 10:15   좋아요 0 | URL
토탐정님 방가방가^^
기말 시험 끝나셨나봅니다^^

coolcat75 2007-12-02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지네요~~ㅠ.ㅠ

물만두 2007-12-11 09:48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applepie 2007-12-1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사야겠는데요...
지금 한꺼번에 지를 책 목록을 만들고 있는데 추가했습니다.

물만두 2007-12-11 09:48   좋아요 0 | URL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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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계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종신 검시관>이 구라이시라는 인물을 조명한 작품이라면 이 단편집은 기본적으로는 D현경의 인사 담당관으로 현경 최연소 경시인 후타와타리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여기저기 모든 단편에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이름만 언급되기도 하는 현경의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늘의 계절>은 그 후타와타리가 처음 등장해서 애를 먹는 작품이다. 퇴직하는 고위층의 낙하산 인사까지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인사부에 말 그대로 그늘의 계절이라 할 수 있는 인사철이 와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낙하산 임기가 끝난 분께서 물러나기를 거절한다. 날고 기는 엘리트 후타와타리라고 해도 형사로써 카리스마 넘치는 오사카베에게는 이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그의 속마음이라도 알고 싶지만 탈 없이 끝날 거라는 말만 듣는다.

어느 조직이건 이런 낙하산 인사도 자기 식구 감싸기와 자신들의 파워를 알리는 것인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니까 입맛은 쓰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겠다. 이 단편만으로도 경찰 조직 안에서도 사람이 나름대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모양새건 간에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닌 조직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는 점, 그 안에 들어가면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의 소리>는 경찰 감찰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매일 오후 세시 우편물이 온다. 그 중 투서도 있고 고발도 있다. 이것을 파악해서 상벌로 가르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신도는 자신도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음 인사에서는 병 때문에 이곳에 발령받았지만 다른 곳으로 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17년째 경시가 되지 못하고 고발의 주인공이 된 인물을 동정한다. 하지만 내용의 사실 확인은 중요하기에 그의 예전 부하 직원에게 조사를 의뢰한다.

승진을 그들은 하늘의 소리라고 한다. 얼마나 그들이 승진에 목을 매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조직에서는 후배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선배들은 자진 사퇴를 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그런 곳도 있으니 승진을 못하고 후배에게 번번이 밀려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 전에 읽은 <은행원 니시지키씨의 행방>에서 지점장까지는 하고 물러나야지 하던 그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검은 선>에서는 갑자기 실종된 여경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직까지 경직된 경찰 사회에서 여자들이 설 자리가 얼마나 좁은가를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뭐, 어디는 여자들이 일하기 편하랴 싶지만 특히 여자와 함께 일하는 것을 남자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경찰의 일을 남자들의 일이라고 규정지은 그들의 사고를 깨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도 된다.

<가방>은 경찰 경무부 비서과라는 조금은 생경한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읽다보면 익숙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의원들의 질의에 응답을 잘할 수 있도록 발로 뛰고 인맥을 쌓는 곳인 것이다. 이곳에서 자칭 엘리트가 있다. 쓰게는 그래서 한 의원의 폭탄 질문을 알아내려 전전긍긍하면서도 신도가 후타와타리에게 물어보라는 것을 흘려버린다. 후타와타리보다 자신이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조직이라는 곳은 물고 물리는 곳이다. 약점을 잡히지 말고 남의 약점을 잡아야 하는 곳이다. 아마도 이것은 비단 여기 경찰 내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요코야마 히데오는 특유의 미스터리와 휴머니즘을 바탕에 두고 쓰고 있다. ‘세상사는 미스터리요, 호러다.’라는 작가의 말이 앞에 쓰여 있다. 그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단편들이다. 하나하나 읽으면 경찰이라는 조직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삶이 느껴지고 그들도 그저 조직의 일원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경찰이 등장하지만 경찰 소설은 아니라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산다는 것이 무서워진다. 몰랐을 때나 자신만만하고 세상이 코딱지 만해 보였지, 사람은 커지고 경험도 쌓이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많아지는데 왜 세상은 더욱 거대하게만 보이고 자꾸만 나는 움츠려 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사회가 계속 주입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읽어보면 이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경찰 내부에서 발견하는 ‘나’는 조금 색다른 경험일 것 같다. 경찰 내부의 일상의 미스터리라고나 할까, 그런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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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리스 브루클린 밀리언셀러 클럽 72
조나단 레덤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영국추리작가협회 골드대거상 수상작품인 이 작품은 묘한 하드보일드 작품이다. 제목에서처럼 모성애를 자극한다고 할까 아무튼 난 라이어넬의 투렛어에 반해버렸다.

투렛 증후군이란 말은 들어봤을 것이다. 투렛 증후군이란 틱증과 함께 반복되는 무의식적 행동에 의해 특성화된 신경장애가 나타나는 유전병이라고 백과사건에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코의 경련과 얼굴을 찡그리는 현상을 포함한 안면경련, 머리경련, 발을 구르거나 몸을 꼬거나 구부리는 증세 등이 나타난다. 이상하게 말하거나 부적절한 소리·단어·문장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드물게 나타난다. 대개 18세 이전에 발병한다고 하며 대개의 경우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지 않는 가벼운 증상이라고 쓰여 있다.

이것이 라이어넬이 지니고 있는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다. 이로 인해 그는 고아원에서 한 번도 입양된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그를 프랭크가 받아주었다. 그와 3명의 아이들과 함께.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프랭크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프랭크맨으로 불렀고 그들이 하는 일을 탐정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년이 그렇게 흘렀다. 그들은 나이를 먹었고 프랭크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라이어넬은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서 독자적으로 프랭크를 살해한 살인범을 찾아 브루클린을 돌아다니고 위험에 빠지고 조사하고 알아내고 브루클린 밖까지 나가게 된다.

책을 처음 읽을 때 왜 제목을 ‘엄마 없는 브루클린’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머더리스라는 단어는 내가 라이어넬은 아니지만 라이어넬이라면 여러 가지로 바꿔 부를 것 같고 누구든 제목이 쉽게 각인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 브루클린의 고아소년들은 엄마 없이 브루클린에서 성장한다. 그들에게 프랭크는 어쩌면 부모고 형이고 의지할 가족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홀로 서기를 한다. 엄마가 있든 없든 자라면 누구나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듯이. 그들에게 그런 일이 자란 환경이 달랐듯이 다르게 닥쳤을 뿐이다.

한편에서는 사건을 추적하고 이야기를 종합해서 아귀를 맞추는 똑똑한 라이어넬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계속 랩처럼 언어를 일그러트리고 변형시키고 욕을 해대는 라이어넬이 있다. 그 사이에서 음악과 책을 동시에 즐기듯이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고 넘어간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작가는 라이어넬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통해 전혀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세상을 투렛 증후군에 빠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라이어넬의 행동쯤은 별거 아니라고. 듣다보면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라이어넬이 만들어내는 아름답고도 파괴적인 언어의 향연에 빠질 거라 생각한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하기 전에는 <스탠 바이 미>와 같은 어린 아이들의 성장 소설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작품을 다 읽은 뒤 <스탠 바이 미>는 잊기로 했다. 이제 내게는 엄마 없는 브루클린의 라이어넬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작품이다. 필립 말로가 와서 울고 갈 작품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필립 말로와 비교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라이어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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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obat 2007-11-2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밀리언셀러 클럽 제목 붙이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나름 노린 바가 보이긴 하는데 효과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만두 2007-11-21 10:59   좋아요 0 | URL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 책은 좀 그렇더군요.

stella.K 2007-11-2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확 끌리는군요. 근데 마지막 문장이 좀...사람 자체는 비교할 수 없는데 작품으로선 필립 말로만큼이나 좋다. 뭐 그런 건가요?^^

물만두 2007-11-21 11:00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필립 말로를 안 좋아해요. 그리고 캐릭터의 비굡니다^^;;;

다락방 2007-11-2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필립 말로에 푹 빠져서 「호숫가의 여인」을 읽고 있는데요, 라이어넬이 필립 말로보다 훨씬 멋지다는 거죠? 저도 보관함에 넣고 가야겠어요 :)

물만두 2007-11-21 12:45   좋아요 0 | URL
아, 폼잡는데는 필립 말로를 따라갈 탐정은 없죠. 단 제 맘에 드는 멋진 탐정이란 얘깁니다. 아마도 말빨에서 필립 말로가 밀리지 않을까 싶군요^^;;;
호숫가의 여인 괜찮죠. 기나긴 이별이 필립 말로 작품 가운데 가장 맘에 들더군요.

비로그인 2007-11-2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으로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데 리뷰가 끌립니다.
님의 말씀대로 올해가 가기 전에 읽어보렵니다.꼭!

물만두 2007-11-22 10:26   좋아요 0 | URL
꼭 보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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