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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날 그후 - SF거장 14인이 그린 핵전쟁 그 이후의 세상
노먼 스핀래드 외 지음, 마틴 H. 그린버그 외 엮음, 김상온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여기서 최후의 날이란 핵전쟁, 즉 메가워 이후를 말한다. 앨빈 토플러는 “SF는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 사회학이다.” 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공감한다. 범죄소설이 현대 사회학이고 현대를 잘 나타내는 것이듯이 SF 작품을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또한 그것들은 몇 십 년 후 맞기도 해서 그들이 책에서 사용된 용어가 그대로 적용되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3차 대전을 사람들은 핵전쟁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미 많은 나라가 핵보유국이고 핵확산금지조약을 했음에도 핵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이 자신들이 만든 조약에 구멍을 만들어 놓고 핵 자체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북한이 플루토늄을 어떻게 했네 아니네 하고 이라크 같은 나라만 잡을 생각을 하는데 이용할 뿐이니 다른 나라들이 핵을 보유하고자 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미국과 맞설 수 있다는 뜻이 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메가워 이후 가장 많은 타격을 입는 나라로 미국이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세계 멸망, 최후의 날 그 후 자신들의 후손들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은 그런 지구 종말이나 유성충돌로 인해 지구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가 보고 생각해볼 점은 많다.
인간은 미련 때문에 망하지만 미련(未練)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작품을 모두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과거에 대한 미련, 그리움, 향수,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메가워 이후 인간에게서 문명을 빼앗지만 인간 본성은 빼앗지 못한다. 그것은 즉 다시 시간이 흐르면 인간은 또 다시 메가워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법이니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것은 태초에 있었던 인간의 시작점이다. 그런 이유로 읽은 뒤 뒷맛은 쓰다. 반어적 표현이나 그들의 두려움이 결국 그들이 맨 밑에 깔리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라니 그것에 비하면 차라리 노먼 스핀래드의 <거대한 섬광>으로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조차 모르게 하는 것은 낫다.
정말 작가들에게 묻고 싶다. 메가워 이 후 백인들, 아니 미국의 존재가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하루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끔찍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정말로 지구라는 세계의 최후의 날 그 후가 걱정이 되는 건지. 아니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파괴가 걱정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다시 그 이전의 아무 것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 지금의 문명이 과연 파괴되지 않고 지켜야만 할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워드 무어의 <현대판 롯>과 할란 엘리슨의 <소년과 개>가 가장 그 이 후를 잘 나타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로버트 셰클리의 <세상을 파는 가게>였다. 인간의 미련에 그 날 이 후 우리가 그리워 할 것은 이런 것일 테니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시카고 어비스 역으로>도 그리워하겠지만 말이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폴 앤더슨의 <내일의 아이들>은 그 무엇보다 두려운 경고다. 이것만은 피하기 위해서라도 메가워는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미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날을 위해 지금이라도 준비를 해보면 어떨지...
존 윈덤의 <바퀴>는 이 단편선 보다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에 대해 쓴 갈릴레오의 아이들에 수록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물론 이런 일도 일어나겠지만 세상에 종교가 모두 이렇게 될 것 같아 더 걱정이 된다. 그날은 지옥을 연상케 할 테니까.
로버트 애버나시의 <누가 상속자인가>와 윌리엄 텐의 <동쪽으로 출발!>은 근본적인 인간 생활의 충돌과 단물 다 빼먹고 이제 쫓겨 다시 제자리고 가는 모습에서 인간이란 이런 존재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의 사회의 발전사나 문명사 같은 것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못의 시인? 화해의 몸짓?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기분이 언짢아 지는 작품이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내일도 모르는 데 어찌 알겠는가마는 모두가 공감하는 것 한 가지는 전쟁이 만약 일어난다면 그것은 핵전쟁이고 지구 문명의 멸망, 나아가서는 인간이라는 종의 멸망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살아남은 자가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고 그 살아감마저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학, 인문학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앨빈 토플러도 인정한 미래 사회학,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의 미래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되지 않게 할 수 있기 위해 이 작품들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