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7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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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와카타케 나나미표 일상의 미스터리 시리즈가 이번에는 장편으로 나왔다. 가상의 도시 하자키를 배경으로 바다가 보이는 빌라 매그놀리아에 사는 사람들과 작은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중심이 되어 사건의 발생보다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코지 미스터리다. 처음에 와카타케 나나미를 좋아하는 동생이 이 작품을 읽더니 너무 등장인물이 많고 개인사가 많아 혼동되서 못보겠다고 했다. 그게 작가의 트릭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흥미를 가지고 다시 읽을까 하는 생각에 인물이 많은 것은 시리즈라서 그렇다고 떡밥을 뿌렸다. 역시 동생은 그 떡밥을 물어 다시 일겠다고 한다. 음화화화~ 

빌라 매그놀리아에는 거품 경제의 몰락과 함께 위치도 안좋고 교통도 불편한 곳이라 이사간 사람들이 많고 남은 사람들은 떠날 수 없거나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한적한 곳이 좋아 애써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울려 산다. 그러니만큼 빈집도 있다. 하필이면 그 빈집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어떻게 잠긴 집 안에서 시체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범인은 왜 시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인지 경찰은 처음부터 범인은 빌라 주민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고 탐문 수사에 들어간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빌라 최고의 트러블메이커로 불리는 부인이 살해된 것이다.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등장 인물마다 가지고 있는 사연들이 나열된다.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있으랴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사연을 그다지 구구절절 읊지 않는 경향이 있는 관계로 그것이 미스터리적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사연이 또 숨기고 싶은 비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각각의 사연들을 읽는 것도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별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사연들이 모여 사건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작가의 교묘한 글솜씨에 감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이 작품은 코지 미스터리다. 유머러스한 부분을 빠트리면 안되기 때문에 요소요소 웃음짓게 만드는 것을 빼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것을 끌고 가고 있다. 남자 동창 두명이 산다고 호모로 오해받는 학원 강사들, 엄마와 함께 살면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여자, 빌라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루머를 퍼트리는 걸 낙으로 생각하며 사는 수다쟁이 아줌마와 유명한 추리소설가와 알코올 중독자 부인, 번역가, 작은 호텔을 시어머니와 경영하는 과부, 남편이 행방불명된 쌍둥이 엄마 등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같아 동질감을 주기도 한다. 

가상의 도시가 배경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사연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연과 다르지 않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과 고충, 고통과 걱정 또한 같다. 여기에 엿보기 좋아하는 이웃과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과 의견 차이와 충돌이 있고 비슷한 교감을 나누며 같은 취미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모습은 어디나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이웃은 멀어진지 오래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불편하나마 사건이 있으면 나와주는 빌라 매그놀리아의 주민들처럼이라도 되어보는 건 어떠냐고 묻는 듯 하다. 곪은 상처는 터져야 한다고 작품속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우리네 삶속의 곪은 상처를 터트릴 수 있는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기도 하다. 

경찰도 수사를 하고 추리소설가도 수사를 하고 쌍둥이도 탐정놀이를 하고 빌라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수사를 하려는 모습과 감춘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과정, 어쩌면 너무 많은 용의자와 너무 많은 탐색자들이 더 문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매력이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까지 읽을수록 점점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이라 책을 덮자마자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 기대가 된다. 등장 인물의 사연에 사건 하나라거나, 한 가구당 사건 하나가 얽히는 것으로 작가가 마음을 먹는다면 지금 다섯편 정도 나온 것 같은데 얼마든지 더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게 또한 시리즈만이 가지는 장점이기도 하니까. 암튼 다음 작품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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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1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구당 한사건..이야 무궁무진한 이야기 전개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원래 사람사는 곳은 아무리 좁아도 버라이어티한거죠~
표지는 맘에 안들어요--;

물만두 2010-08-12 19:3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일상의 미스터리라도 흥미진진한거겠죠.
저도 표지는 참 그렇습니다 ㅜ.ㅜ

메시지 2010-08-1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책 한권으로는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안녕하시지요?

물만두 2010-08-13 12:11   좋아요 0 | URL
우와 이거 몇백년만이랍니까? 뉘시온지... 이럴려고 했다구요^^
잘 계셨나요? 반갑습니다.
우리네 사연이 다 그렇지않나 싶어요.
 
여왕벌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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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서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읋 떠올린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영향을 받았는지, 의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 <여왕벌>은 기존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풍에서 벗어나 좀 더 현대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고립되고 한정된 외딴섬, 외딴 지방을 벗어나 세상과 함께 변화속에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형식이 외딴섬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 이어 도시에서 이어지는 살인사건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이런 전조는 이미 전작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전집이 나온다면 전반부 작품과 후반부 작품의 변화를 비교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중국과 교류가 있어 중국풍 가옥이 있던 섬, 중국 월금을 닮았다고 월금도라 이름붙여진 월금도에서 아리따운 아가씨 도모코가 18세가 되어 양아버지에게로 가려 한다. 하지만 떠나기 전 그녀는 꼭 한번 닫혀 있는 방을 보고 싶어 열어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예감한다. 19년전, 그녀가 태어나기전에. 아버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어린 나이에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가정교사와 할머니 손에 자란 도모코는 도시로 나가 결혼할 상대를 골라 결혼할 예정이다. 그런데 긴다이치 코스케가 일찌감치 등장한다. 그것은 그녀가 월금도를 벗어나면 안된다는 협박 편지때문이었다. 그 협박을 도모코도 받는다. 그리고 그 협박대로 사건이 일어난다.  

19년전에 도대체 무슨 비극이 있었던 것이기에 도모코의 앞날에 비극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작품은 독자를 궁금증에 빠트리며 범인을 긴다이치 코스케와 함께 추리하게 하고 있다. 이 미스터리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괴롭히고 사건을 풀지 못하는 탐정을 괴롭힌다. 작품은 월금도를 떠난 뒤 도모코가 발을 디디는 곳마다 사건이 일어나게 하고 있다. 그 사건들은 호텔과 공연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주로 도모코에게 구애를 하고자 하는 남자들이 살해당해 도모코가 남자를 죽게 하는 마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심지어 긴다이치 코스케까지도 공격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도모코는 점점 의지가 강해지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점점 코너에 몰리는 느낌이  들게 한다. 증거마저 빼앗기고 말았으니 원. 정말 도모코는 섬을 나와서는 안되는 존재였단 말인지 자책하게 만든다. 그리고 점차 밝혀지는 진실, 도모코가 알아야 할 진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여왕벌이라는 제목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제목이 보여지는 그대로를 말하자면 여왕벌에게 몰려들어 자손을 남기는 사명을 다한 숫벌들이 죽는다는 그런 의미다. 이 작품에서는 도모코를 지칭한다. 아름답고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자들을 홀리는 색기가 가득한 여자가 되어가는 도모코의 운명. 하지만 이것은 타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않고 자신만의 사랑에 집착하는 광기어린 탐욕이 만들어낸 위장일 뿐이다. 사랑에 집착하는 이기심이 늘 사건을 만들고 피바람을 부르는 것이다. 동서고금에 언제나 존재했던 인간의 너무 뻔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작가는 자신의 작품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말처럼 무대는 갖춰졌고 모든 인물들은 모여 있었다. 수상한 이들도 있고 풀어야할 수수께끼도 있다. 이를테면 도모코의 친부가 남긴 '박쥐'가 무엇인가 하는 것, 그리고 도모코의 주위를 맴도는 남자들의 속마음들이 이 작품을 연극처럼, 영화처럼 보게 만들고 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글인 동시에 움직이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간중간 나레이션이 들어가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나 드라마로도 많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작품은 영화를 보고 싶다. 미스터리가 있고 로맨스가 있고 인간의 욕망과 질투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간결하면서 의외로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아가사 크리스티식 미스터리 로망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어 더 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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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2010-08-09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덕에 긴다이치코스케라는 탐정을 알게 되었죠.
또 좋은 책 하나 업어 갑니다. ^^

물만두 2010-08-09 16:08   좋아요 1 | URL
재미나게 보세요^^

paviana 2010-08-10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 마크스의 산을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상권 읽다가 포기했어요. 속상해요.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더라구요. 근데 도서관에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없어요.제가 신청해야 될까봐요.

물만두 2010-08-10 21:07   좋아요 1 | URL
마크스의 산 재미있는 작품인데 글에 집중하기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인데 포기하시다니 아깝네요.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은 좀 더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저두 속상하네요 ㅜ.ㅜ
 
악마는 꿈꾸지 않는다 - 2010 올해의 추리소설
정석화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화남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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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소설은 그래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더디고 미약하다 할지라도 분명 나아지고 있다. 한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출판하는 단편집을 읽으면 그것을 느끼게 된다. 가끔 정체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뒷걸음질치는 것만같아 속상할 때도 있지만 이 단편집을 보면 분명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그러니 언젠가 한국 추리소설의 르네상스는 올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작가들이 추리소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좀 더 나은 대접을 해준다면 말이다.  

역시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고 더 좋다고 말하게 된다. <곰 인형을 안은 소녀>는 한 남자의 죄를 묻는 작품이다. 정석화의 작품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뛰어나다. 추리소설로만 한정짓기 아깝다. <그놈이 그놈>은 베스트극장같은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든다. <나의 치명적인 연애>는 범죄에 대한 탐닉은 섹스보다 강렬하고 마약보다 끊기 어렵다는 것으로 정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녹의 마녀>는 돈이 화자가 되어 세상을 보는 이야기다. 정말 돈 자체에 의지가 있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까하는 생각이 부질없이 들었다. <서명합니다>는 인터넷의 세상속에서 네티즌이 무심코 하는 일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요즘 많은 작가들이 소재로 삼는 것 중 하나가 인터넷, 컴퓨터의 정보 수집 등인데 단편으로 쓰기에는 좀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표적>은 뉴스에서 총기 사고와 안전문제에 대해 다룬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은 이런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다음은 누가 표적이 될지, 노리든 아니든 누군가 내게 총을 겨눌 수 있는 세상이 공포로 다가온다. <악마는 꿈꾸지 않는다>는 표제작이자 현대 사회의 모순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아이를 두번씩 유괴당한 사장과 같은 사건을 두번이나 맞게 된 형사. 진실과 거짓, 가해와 피해 사이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 작품이다. 역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단편이다.  

<영국 신사의 일곱 번째 진공관 앰프>는 무슨 푸른 수염을 보는 느낌을 주는 작품인데 뭘 말하고 하는 지 잘 모르겠고 <원더 레이디스와 처녀시대>는 오히려 단순해서 좋았다. 가장 기본적인 추리소설의 맛을 제대로 살린 작품으로 재미있었다. 소년 탐정의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재의 추적>은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는 사채와 자살, 떨어져 사는 가족에 대한 단상을 그린 작품이다. <처녀작 공포증>은 마지막에 임팩트를 주는 작품이었다. 작가들에게 처녀작은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첫 작품으로 쓰린 질타를 받은 작가라면 다음 작품을 쓰기까지 심한 좌절감을 겪거나 성공한 뒤 바라보게 되는 첫 작품은 자신의 명성에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작가의 유머러스하게 쓴 이야기가 보는 재미를 더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이 단편집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대인들에게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무감각의 단상이다.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면서 그 안에 그들의 고단하고 지친 살이를 담아내고 그들이 무심코 벌이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범죄와 의도했더라도 경미한 죄책감, 또는 아무도 피해입지 않으면 어떤 일을 벌여도 된다는 인식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들의 그런 무심함이 어쩌면 작금의 사회에 더 큰 문제는 아닌가 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추리소설이 가지는 장점이다. 아주 간결하고 명료하게 자신이 살고 있는 오늘을 반성하게 만드는 것. 이런 점을 작가들이 단편들속에 잘 살리고 있다. 

좋은 작품도 있고 평범한 작품도 있었지만 이 작품들은 대부분 현대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무릇 추리소설이란 현대 사회의 그늘을 조명해야 한다. 늘 주시해서 일깨우고 알려줘야 한다. 그 방식이 과격하고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그것이 추리소설이, 추리소설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도 많이 세분화된다. 하지만 이것만 잃지 않는다면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계속 전진한다면 빛나는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악마는 꿈꾸지 않지만 우리는 꿈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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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 상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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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를 읽지 않고 텐도 아라타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던 전설적인 작품이다. 2000년대 초,중반 무렵 절판된 이 책들을 얼마나 찾았던지. 출판사에 전화하고 재간해달라고 읍소하고 중고서점 찾아다니고 책 찾는다고 광고하고 그리고 겨우 구해 읽은 뒤 찾아온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라니. 단 한줄의 글도 쓸 수 없었던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던 작품이다. 

그 작품이 새로 출간되었다. 두권으로 깔끔하게 출판되었다. 역시 읽는 내내 분노와 슬픈과 한숨이 교차하며 콧물,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유키, 쇼이치로, 료헤이의 십칠년을 넘나드는 생존증명서같은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됨과 동시에 상처의 치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잘 자라 각자의 일에 열심인 이들, 유능한 수간호사가 된 유키, 변호사가 된 쇼이치로, 경찰이 된 료헤이. 하지만 상처를 끓어안고 사는 삶, 그리고 죄책감을 짊어지고 사는 삶은 공허하기만 해서 쇼이치로와 료헤이는 유키가 모르는 사이 유키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들이 루핀, 모울, 지라프라 불리던 시절에 그들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무언가를 찾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던 것이, 그들의 구원이 그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과 절대 나아지지 않는 현실은 그들고 하여금 막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는 많다. 하지만 이렇게 잔인한 부모가 있으리라고는 뉴스에서만 봤지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그 잔인함이 너무도 능청스러워 더 소름끼쳤다. 그래, 어른으로 산다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건 나보다 약한 아이를 골라 화풀이를 하는 사회의 생리를 보는 것만 같아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내 자신이 너무 미안해졌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원에서 만난 세 명의 아이들이 겪은 이야기를 하는 그들의 과거와 다 자라 성인으로 살아가는 현재를 넘나들면서 현실에서의 미스터리를 재구성하고 현재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유추하도록 짜임새있게 구성된 작품이다. 아이를 학대한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 살해되는 사건, 유키의 어머니가 불 탄 집에서 발견된 사건, 유키의 동생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여기에 마치 그들에게 진짜 진실을 말하라고만 부추기는 느낌을 주는 마지막까지 그들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 잔인한 작가. 역시 구원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었다. 

살아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살아 있어야 용서도 하고 용서도 받고 화해도 하고 이해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거니까. 불행도 미움도 상처도 죽으면 없어질 것 같지만 사실 그저 묻히는 것 뿐이다. 그런 것은 묻혀서는 안된다. 행복해져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상처는 나아야 한다. 아픔은 극복하고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당당해지고 남과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 아니 내가 남보다 낫다고 느낄 때 비로소 구원되는 것이다. 신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으로. 그래야 그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아픔을 되물림하지 않게 된다. 

작품을 보면 상처입었던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신들의 어린 시절 상처와 미성숙된 자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게 빈곡의 악순환처럼 학대는 되물림된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아이에게 뜨거운 물을 뿌려 화상을 입힌 엄마는 그래도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를 찾는다. 아이는 이럴때 죄책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엄마를 옹호하게 된다고. 도대체 누가 부모고 누가 자식인지 모르겠다. 텐도 아라타는 그래도 가족이 구원이라고 말하는 작가다. 그 가족이 이런 가족은 아닐 것이다. 상처만 주는 가족이라면 없느니만 못하지 않나 싶다.  

산다는 건 고행과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을 더하게 된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건 불행은 작아보이게 만들려 애쓰며 극복해 나아가고 행복은 더 크게 만끽하며 오래도록 간직하고 추억하기 때문이다. 어른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아이가, 어린 아이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없이 산다면 어떻겠는가?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끽해야 십몇년이 전부다. 우린 그 십몇년의 기억을 안고 평생을 행,불행속에 살아가게 된다.  

어른들이여, 생각해보라. 그 짧은 시간은 우리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빼앗고 짓밟고 고통속에 가두고 싶은가 말이다. 우릴 제발 그러지 말자. 가족은 그러지 말라고 만드는 거다. 사회란 그러지 말게 하자고 존재하는 것이다. 더 나이를 먹으면 우린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 돌아감이 고단하지 않게 우리 모두를 위해 우리의 아이들만은 제발 지켜주자. 최소한 인간이라면 사는 동안 이건 지켜야 하는 일이다. 

쓰다보니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다. 이 작품은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품이다. 아이가 있는 부모, 부모가 될 예비 부부들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과 사회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아직도 답답하고 울렁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겠지만 어딘가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을 이들에게 그저 잘 살아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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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8-17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도하는 사람>을 다 읽고 얼마전에 <영원의 아이.상>을 읽기 시작했었는데요... 조금 덴도 아라타와는 안 맞는 느낌이 크네요.;; 잠시 중단하고 다른 책들을 읽고 있는데 조만간 다시 읽어 봐야 겠습니다.

물만두 2010-08-17 14:22   좋아요 2 | URL
음, 원래 텐도 아라타에게 더 맞는 작품은 영원의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꾸준히 그런 느낌이 드는데 그것들이 영원의 아이가 가장 강렬했고 조금씩 순화되어 등장하는 느낌을 줍니다. 아마 님께서 이 작품을 먼저 읽으셨더라면 다른 느낌이 드셨을겁니다. 그때는 오히려 애도하는 사람이 텐도 아라타와 덜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언제나 가족이 주제인 것만은 분명한 작가입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시어요.
 
연문기담 - 추리편 김내성 걸작 시리즈
김내성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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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성의 <쌍무지개뜨는 언덕>을 본 게 초등학교때다. 그 작품이 김내성의 작품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때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새삼 기특하게 느껴진다. 그 작가가 우리나라 추리문학의 대부라 부를만한 인물이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내가 왜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이야기하는고 하니 작가의 이 단편집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사랑과 가족을 소재로 미스터리 작품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김내성표 사랑과 미스터리다. 

<연문기담>은 재치 만점의 작품이다. 김내성표 코지 미스터리 내지는 일상의 미스터리라고 부르고 싶다. 올드미스로 불리는 명랑시인이 장안의 화제인물인 음악 박사에게 러브레터를 받지만 서로 썼네 안썼네 하며 신경전을 벌이다 마지막 미스터리가 풀린다는 내용이다. 이런 작품은 지금 시대에도 통할 법한 유머러스한 작품이었다.  

<타원형의 거울>은 일본잡지 프로필에 실린 김내성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데뷔작이라니 놀랍다. 추리소설 잡지에서 화제의 미해결 사건을 소재로 공모전을 한다. 사건의 내막은 한 집안에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가 같이 산다. 사건은 벌어지게 마련이라 아내가 살해당한다. 하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내연남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고 남편은 아내를 못 잊어 자살을 한다. 여기에 내연남이던 시인이 공모전에 자신의 추리를 써서 보내 당선이 되는데 그는 당선 직후 두려움에 떨게 된다. 마지막 반전이 역시 김내성이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가상범인>은 김내성이 만든 탐정 유불란이 등장하는 첫 작품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남편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리자 무죄를 증명하고자 연극을 만들어 당시 사건을 자신의 추리로 관객과 경찰 관계자,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범인에게 대결을 신청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가 지목한 범인은 피하지 않고 그의 장단에 맞춰준다. 너무 쉽게 풀려 오히려 마지막까지 결말을 짐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나저나 나는 김내성이 만든 탐정 유불란이 참 맘에 안든다.  

<벌처기>는 깔끔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작품 속에서 그 시대 인텔리 계층의 생각을 알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영화를 보러가는데 그 영화가 독일이 만든 일종의 선전 영화가 아닌가 싶다. 또한 그들은 독일에 대한 사상을 좋아하고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웃는다. 일본의 사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려니 하고 싶어도 좀 찜찜했다. 하지만 추리소설로만 보면 좋다. 범인과 변호사, 증인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알리바이 트릭이 무너진 점을 밝히는 마지막에는 안타까움마저 느껴졌다.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비밀의 문>은 처음 시작부터 결말이 보이기는 했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황금가면에 대한 약간의 패러디와 그것과 함께 단편들을 모두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애정에 대한 문제를 잘 결합한 작품이다. 박사의 가장 중요한 것을 훔치겠다는 괴도 그림자의 편지, 그 편지에 살인 광선검을 지키려는 박사와 혼기 찬 박사의 딸과 그 딸에게 청혼한 세 청년. 단순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힌다면 그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흔히 이 시대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우리나라 과학자의 살인광선검 개발이라든가 하는 점은 그냥 소설로 생각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런데 이 작품은 지금 나와도 아버지들이 갈등하게 되는 주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내성이 그렇게 일찍 타계하지만 않았더라도 우리나라 추리소설계는 달라졌을거라는 말이 지배적이다.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새롭게 김내성을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내성의 작품 출판을 계기로 더 좋은 국내 작가들이 더 많이 나와주고 국내 작가들이 더 좋은 글들을 써주기를 기대해 본다. 꿈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니까. 읽는 내내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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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27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원형의 거울은 무슨 단편집에서 본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나 절대 끝은 기억나지 않는~ 아무래도 장바구니만 묵직해집니다^^

물만두 2010-07-27 21:13   좋아요 1 | URL
잡지에 실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니라면 예전에 나온 걸 읽으셨던지요. 김내성 작가 작품은 정말 한국 미스터리팬이라면 꼭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스피 2010-07-28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김내성 단편집인것 같군요.타원형 거울은 계간 추리인지에 실린것 같은데,마인의 재간이후 김내성 작품이 재 발굴되는것 같아서 무척 반갑습니다^^

물만두 2010-07-28 14:16   좋아요 1 | URL
단편집입니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