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은 죽지 않는다 - The Gifted Nobless Club 19
이슬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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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하고 환타지적인 작품이다. 알 수 없는 시대, 빌런트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얀 트로닉이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한 뒤 그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귀족이라는 존재는 유명무실해졌지만 아직 그 뿌리는 남아 있는 키르헨펠 자작 가문의 어린 소녀 에이레네가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달라며 의뢰를 해온다. 이 심장병으로 급사한 죽음은 사소해보이지만 거대한 사건 해결의 시발점이 된다. 

그녀의 의뢰는 어머니의 죽음이 단순한 병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고의적 살인이었는지를 밝히는 것과 백부집에 있는 것이 불안하니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트로닉은 일단 가장 안전한 장소인 친구의 바에 그녀를 맡긴다. 에이레네는 의심스러워하지만 그가 믿는 절대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에이레네의 어머니의 죽음의 자연사라고 한 의사를 찾아가 그가 공모한 것인지 확인해본다. 의사의 이야기는 믿을만 했는데 돌연 그 의사가 거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제야 그는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와 그가 어떤 방법을 썼는지 조사를 한다. 

에이레네의 집안에 삼촌 브루너는 마법사다. 그를 의심하고 조사하던 중 정치에 뜻을 둔 에이레네의 백부가 정치인의 죽음으로 자리가 난 곳에 들어가는데 실패했음을 알게 된다. 그 정치인의 죽음이 에이레네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심장병에 의한 급사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의심에 부채질을 하며 브루너를 가르치는 상급 마법사를 의심하는 데에 이른다. 이때 브루너가 에이레네를 데려가 가두는 일이 벌어진다. 트로닉은 에이레네를 구하기 위해 키르헨펠 집안으로 들어가 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에이레네를 구하지만 브루너는 놓치고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그는 마법사와 이상한 그림자라는 집단 사람에게 휘둘리는 처지가 된다.  

작품의 영어 제목을 The Gifted로 적어 놓은데는 그만한 뜻이 있었다. 이 기프트라는 것은 하나의 특별한 재능을 뜻한다. 이 재능은 오너에게서 전해지는 능력인데 자신이 기프트인지 오너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알아도 이용당할까봐서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얀도 그런 기프트다. 그는 보안관 시절 강도에게 아내와 딸을 잃었다. 그때 딸에게서 기프트를 받아 오너가 되었다. 기프트는 오너가 죽으며 물려주는 것이다. 또한 에이레네의 엄마도 기프트였고 죽는 순간 그것을 에이레네가 물려받았다. 그녀는 그것을 모를뿐이다. 

재능은 인간에게 독인가, 약인가를 묻고 있다. 마치 엑스맨에 등장하는 돌연변이 인간을 보는 느낌을 준다. 그들처럼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에 고뇌하는 평범한 사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탐정을 하는 트로닉,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 줄도 모르는 에이레네와 같이 이 작품에서는 그것을 기프트로 표현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도 재능을 타고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재능을 사장시키기도 하고 하는 일들을 접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사는 것도  같다.  

작품은 이 작품 한권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을 남긴다. 좀 더 시리즈로 만들어 기프트를 가진 오너들과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그림자 집단의 음모를 얀 트로닉이 해결하는 내용도 좋고 바를 운영하는 그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아직 못 들었다. 정부와의 문제, 보안과의 의리 등, 얀 트로닉을 주인공으로 좋은 시리즈가 될 것 같은 작품이다. 작품의 첫 작품으로 본다면 참 괜찮은 작품이다. 제발 더 나와주기를 기대해본다. 제목처럼 탐정 얀 트로닉은 게속 죽지 않고 독자들에게 살아 남는 캐릭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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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6-09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나라 작품인가요? 우와!

물만두 2010-06-09 13:36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작품인데 꽤 괜찮습니다.
 
내 어둠의 근원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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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이라는 나이에 엄마를 잃는다는 건 잔인한 일이다. 나는 지금 마흔이 넘었지만 엄마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더 끔찍한 사실은 엄마를 범죄로 잃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의 엄마를 살해한 것이다.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엄마 진 엘로이를 말이다. 하지만 아직 심각한 일은 남아 있다. 아들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그에게, 그의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작가는 이제 나이가 들어 어둠 속에 묻어 둔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 

진 엘로이는 빨간 머리의 백인 여성이었다. 1950년 후반 그는 이혼하고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왜 그녀가 멕시코인들이 사는 허름한 동네로 이사를 갔는지 당시 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간호사였고 술을 많이 마셨다. 어느 토요일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간 날 외출했다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는다. 같이 술을 마신 여자와 남자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증언들이 있었지만 범인을 찾을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천천히 아들의 삶에 어두운 상상력의 세계를 만들기만 했다. 

작품은 제임스 엘로이의 엄마 진 엘로이의 사건에서 시작해서 그후 제임스 엘로이가 자라는 과정과 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임스 엘로이의 청소년기에 있었던 약물과 알코올 중독, 절도, 노숙 등 그의 방황은 어떻게 그가 이런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의아하게 만든다. 그만큼 그에게 엄마를 일찍 잃은 빈자리는 컸고 엄마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한 불안감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공포로 남아 그가 현실에서 도피해서 환상속에 집을 짓게 만들었다. 그의 범죄 사건과 범죄 소설에의 탐닉은 그의 엄마에게로 가는 길이었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또한 동시대 경찰들의 사건 해결 과정과 미제로 남는 사건들을 보여주며 미국의 범죄와 경찰의 역사를 되집어간다. 그 뒤 소설가가 되어 그가 집착하게 되어 글로 쓴 LA 4부작속의 <블랙 달리아>, <LA 컨피덴셜>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엄마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고자 시간을 되돌리려 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한 경찰의 경험을 토대로 당시 너무 어리고 아버지의 말만 믿어 방치해둔 그가 해야만 했던 일인 엄마 진 엘로이 미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의 해결, 범죄자를 잡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놔주지 않던 근원적 어둠과 말이다.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을 하나의 사회적 문화의 비극으로, 인류의 비극으로까지 연결되게 잘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아픔은 비단 작가만의 아픔이 아닌 범죄에 희생된 모든 이들의 아픔이자 그런 범죄가 발생하게 만든 문화의 상처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엄마를 잃은 피해자의 아들이었음에도 보호받지 못한 채 사진이 찍히는 언론의 희생양이 된다. 하지만 그 뒤 그는 자라서 언론을 이용해서 엄마의 사건을 풀어보고자 한다. 작가에게 엄마는 금지된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세뇌시켰고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는 아니었지만 엄마에 대한 성적 집착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모든 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작가는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남은 엄마 진 엘로이 살인사건에 대한 제보 전화를 기다린다. 어쩌면 그것은 엄마에 대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애정 표현이자 진혼곡이 아닌가 싶다. 또한 작가로써 보여줄 수 있는 범죄의 역사에 대한 비가이기도 하다.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어둠의 근원은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어둠의 근원과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그 어둠을 잘 헤쳐나왔다. 그가 오늘날 범죄자가 아닌 작가로써 우리 앞에 우뚝 섰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니컬한 말투와 행동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작가의 글 속에서 비로소 엄마와 마주 선 아들의 코끗을 찡하게 만드는 울림이 들리는 듯하다. '엄마, 제가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늦어서 죄송해요.'라고 미안해 하는 모습이. 이 작품은 너무 진솔해서 불편하지만 그만큼 가치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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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ttugi 2010-06-0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네요.

물만두 2010-06-03 14:32   좋아요 0 | URL
제임스 엘로이가 아주 솔직하게 썼더라구요.
꼭 읽어보세요.
 
호수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109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구세희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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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당나라를 시대 배경으로 한 마을의 수령이라는 관직에 있는 디 공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살인사건을 풀어내는 활약상을 담아내고 있는 시리즈를 네덜란드 외교관 출신의 작가 로베르트 반 홀릭은 그림까지 삽입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게 잘 만들었다. 작품 속 실존인물인 디 공은 포청천을 연상시키지만 포청천의 이미지는 아니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중국 관리가 이런 스타일로 정형화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등장하는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디 공이 해결한 사건을 작가가 추리소설의 형식에 맞게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라고 하니 더욱 놀랍다. 

명판관 디런지에, 통칭 디 공으로 불리는 디 공에게는 그를 옆에서 보좌하는 홍 수형리와 녹림회라는 패거리에 있다가 디 공에게 감화되어 그의 부하가 되기로 자처한 마중과 차오타이가 있다. 작품은 명판관 디 공의 활약과 법 집행과정, 관리로써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디 공이 등장하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의 고뇌를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디 공이 한위안이라는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한지 두어달이 지나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 것이다. 그에 앞서 하나의 괴이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는데 호수에 대한 괴담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읽는 내내 어떤 연관성을 찾으려 애를 썼지만 못 찾았다. 명나라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오타인지 아니면 후대의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디 공을 초대해서 마을 유지들이 호수에 꽃배를 띄우고 기녀를 불러 놀던 중 한 기녀가 디 공에게 마을의 비밀을 알릴 것이 있다고 말한 뒤 살해당한다. 디 공도 마을이 너무나 조용해서 무언가 의심을 하고 있던 차에 이런 일이 일어나 우선 단순 살인 사건에 대한 일로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연회에 참석했던 이의 딸이 결혼한 다음날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거기에 신랑은 호수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고. 사돈지간에 고소 고발이 오가고 그 와중에 며느리의 시신을 임시로 관에 넣어 절에 안장했는데 관뚜껑을 열자 왠 남자의 시신이 들어 있는 헤괴한 일까지 벌어진다. 조용했던 마을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인지 디 공은 의문만 쌓여가는데 용의자로 지목했던 이가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오니 사건은 단순한 치정 사건을 넘어 더 큰 위험을 알리며 디 공을 불안하게 한다. 

아기자기하게 소품정도로 시작한 사건이 하나, 둘 이어지면서 눈덩이가 구르면서 커지듯이 스케일이 커지는 양상을 띠어 마지막에는 조금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사건 하나 하나의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과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하나의 작품에 인간의 모든 욕망이 담겨져 있고 그것이 살인 사건마다 달리 표현되는 것이 좋았다. 여기에 바둑을 이용한 트릭이라던가 고전적이면서도 그 시대에 통용되었을 법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트릭은 트릭대로 좋았다. 디 공과 주변인들의 모습은 활력넘쳤다. 마지막 그는 사건 해결과 동시에 자신의 목숨도 구한다.
 
그 옛날 당나라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 현대에서 일어나는 그런 사건과 다르지 않은 사건이고 사람들 사는 모습도 다르지 않다. 또한 사랑과 오해, 편견이 섞여 디 공의 판단을 흐리고 호수의 괴담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언제나 진실보다 거짓이 더 그럴듯 해보인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인 모양이다. 디 공 시리즈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일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비교하게 되고 서양의 역사 추리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디 공 시리즈가 더 많이 출판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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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5-3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디공 시리즈가 또 한권 추가 되었네요^^

물만두 2010-06-01 09:53   좋아요 0 | URL
2권이 한꺼번에 출간되었지요.
황금 살인자도 나왔습니다^^
 
초록 캡슐의 수수께끼 노블우드 클럽 7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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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서 무차별 독살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으로 한 젊은 여성이 지목된다. 마저리 윌슨. 마커스 체스니라는 특이한 성격의 부자의 조카다. 하지만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 그들은 19세기 일어났던 독살 사건을 떠올리며 그녀를 경계한다. 사탕 가게에 독 초콜릿을 넣어 어린 아이가 죽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집안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 여행을 가고 거기서 마저리는 하딩이라는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 돌아온다. 그들은 거기까지 경찰이 따라갔다는 건 몰랐다. 엘리엇 형사가 그들을 조사하기 위해 따라갔다가 마저리를 사랑하게 된 채 돌아왔다. 

작품의 서두가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무차별 독살 사건을 다룬 작품인가 생각했다. 그런 작품이 꽤 있었기에 딕슨 카의 작품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독살 사건이 아닌 그의 장기인 밀실 트릭, 아니 심리 트릭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나는 독살 사건을 들이댄다. 이 작가의 대범함은 어디까지인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스니 가에서 마커스는 조카딸의 혐의를 풀 방법을 알아냈다고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펠 박사도 초대하지만 그는 가지 않았다. 거기에는 마커스의 동생인 의사 조 박사가 마을 임산부의 분만 때문에 참가하지 않은 것을 빼면 그 집안 사람 모두가 참가했다. 조카딸 마저리, 그녀의 약혼자 하딩, 마커스의 친구이자 심리학 교수인 잉그람 교수, 하딩이 필름에 그 퍼포먼스 장면을 담기로 하고 그들은 마커스가 한 모든 행동과 일어난 일에 대해 설문지에 대답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직후 마커스가 청산가리에 독살되었음을 알게 된다. 퍼포먼스의 중간에 누군가 들어와 그의 입안에 직접 넣은 초록 캡슐속에 들어 있던 것을 삼키고고 죽은 것이다. 게다가 하인 윌버 에밋은 누군가에 맞아 쓰러진 채 정원에서 발견되었다가 다시 독살당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였을까? 범인은 외부인일까, 내부인일까? 내부인이라면 이들의 견고한 알리바이는 믿을 만한가? 외부인이라면 이런 모임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또한 이 일은 마을의 무차별 독살 살인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지 궁금증은 증폭되고 런던 경시청 형사는 지방 경찰이 범인으로 이미 단정지어 버린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경찰은 범인에게 사건을 꿰어 맞추려고만 한다. 이때 펠 박사는 자신을 자책하며 늦게 사건에 뛰어 들어 범인의 범죄를 증명하러 나선다. 

너무도 한정된 공간에서 너무도 한정된 인물들 사이에서 범인을 가려야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런 것이 더 어렵다. 왜냐하면 마커스가 펠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듯이 '모든 증인들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검은 안경을 쓰고 있는 거나 다름 없소. 그들은 명백하게 볼 수도 없고 그들이 본 걸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할 거요.'가 정답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작가가 남긴 단서만 잘 따라가도 범인을 펠 박사처럼 찾게 되는데 그 단서를 명백하게 볼 수도 없고 본 걸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추리 소설이 재미있는 것이다. 앗, 하고 머리를 치며 놓친 것을 아쉬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모든 것을 보며주면서 그것이 더욱 당혹스럽게 만드는 심리트릭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 범인을 일찍 찾게 되면 너무 싱거워 의심하게 되고 뻔하다 생각하게 된다. 한번 꼬아서 생각하다보면 이미 작가의 심리전에 말린 것이다. 누구의 말도 믿어서는 안되고 스스로 보고 들은 단서만을 제대로 챙겨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펠 박사처럼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는 없더라고 범인은 누구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이야기를 이렇게 치밀하게 구성하다니 역시 존 딕슨 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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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수집하는 노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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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가 쓴 다섯 명의 저명한 미국 작가들의 말년,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마크 트웨인,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에드거 앨런 포우, 에밀리 디킨슨의 실화를 섞어 근사한 픽션을 선사하고 있다. 작품들은 사실적으로, 몽롱한 허무한 꿈처럼, 아름다운 환타지로, 포우적 느낌으로, SF적인 블랙 유머로 포장되어 있다.  

처음 작품을 읽을 때 나는 내가 또 실수했음을 느꼈다. 정말 이 책이 아닌가벼~였다. 미스터리나 적어도 고딕적 느낌의 작품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제목에서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사실적 이야기인지 전혀 몰랐고 알았더라도 <소녀 수집하는 노인>이라면 좀 그렇지 않은가 싶다. 차라리 제목을 뒤에 등장하는 <죽은 이후의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등대>나 <에밀리 디킨슨 레플리럭스>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 낯설다. 하지만 독특한 작가만의 세계가 엿보인다. 다른 작가에 대한 꼼꼼한 조사와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글을 쓰는 것은 대단한 모험일 것이다. 그런 일을 과감하게 해내다니 역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만 하다 싶다. 읽으면서 작가들의 모르던 면을 알게 되고 작가 나름의 고찰에 내 생각까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며 문학이란 이렇게 이어지는 인류의 유산임을 거창하게 되새기게 되었다. 

<소녀 수집하는 노인>은 소녀들과 펜팔을 했다는 마크 트웨인의 실명의 존재를 등장시켜 그 남자가 마크 트웨인 사후에 마크 트웨인 대역을 하며 살아가면서 소녀들을 좋아하고 그런 소녀중 한명과 나누는 편지와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노인과 소녀, 아버지와 딸,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으로 요약되는 작품 속에서 마크 트웨인의 노년을 본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너무도 치밀하게 작가는 마치 자신이 마크 트웨인인냥 쓴 것 같이 느껴졌다.

<아이다호에서 보낸 헤밍웨이의 마지막 나날들>은 헤밍웨이의 유년의 상처와 노년의 절망이 고스란히 담긴 가슴 아픈 작품이다. 대가의 말년이 이렇게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면 그의 자살은 정당했다고 말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헤밍웨이에 대해 작가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자살을 결심하지만 자살하지 못하고 아내를 경멸하지만 결국 그 아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 작가가 마지막에는 잔인하게 느껴졌다. 내가 헤밍웨이를 동정하게 될 줄이야... 이 작가의 이런 면이 나를 놀라게 한다. 

<성 바르톨로뮤 병원의 대문호>의 주인공 헨리 제임스의 작품 <나사의 회전>의 그 고딕적 분위기를 좋아했기에 그의 등장이 반가웠다. 자신이 나이가 들었지만 전쟁중에 무언가 하고자 자원봉사를 성 바르톨로뮤 병원에서 하며 노년의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간호부장이 몽둥이를 든 일과 그래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점은 시대상과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노인네의 자기 과시 또는 자기 만족, 작가 특유의 집착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그의 환상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몰라도 그의 마지막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죽은 이후의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등대>는 에드거 앨런 포에게 정말 딱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고독, 그의 비참했던 말년을 생각하면 외로운 등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존재 그 자체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이 이야기가 실화이기를 바란다.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작가의 독창적 느낌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모를 일이다. 죽은 이후 정말 에드거 앨런 포가 어딘가 외로운 등대 하나 꿰어 차고 앉아 누군가와 소박한 행복을 꿈꾸고 있을지. 자신이 살아 생전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것을 말이다. 나는 정말 그가 그런 삶을 살고 있기를 작품으로나마 꿈 꾼다. 그것이 비상식적이라해도 말이다.

<에밀리 디킨슨 레플리럭스>은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동경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꿀 만한 이야기다. 미래, 내가 좋아하는 실존 인물의 사이보그 인형을 살 수 있다. 한 부부는 망설이다가 에밀리 디킨슨을 주문한다. 시인과의 대화라니 멋있지 않은가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에밀리 디킨슨은 그가 살던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주인님과 주인마님이 된 그들은 그가 불편하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주는 작품인데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고 작품의 엔딩이 이 모든 작품들의 주제를 대변하는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었다. 

다섯 작가, 다섯 명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죽음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나이듬과 병들고 고독과 싸우다 소멸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지만 그래도 그 죽음을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하며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은 대문호들의 모습이나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나 매한가지다. 덧없고 후회되는 날들, 원말과 집착으로 얼룩진 인생이지만 마지막 소멸의 순간이 올때까지 나름의 꿈은 간직하고 죽음을 맞이하라고 작가가 대문호들의 모습속에서 속삭이는 것 같이 느껴져 이해되지 않던 처음과는 달리 마지막 책을 덮으며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오늘 또 한명의 좋은 작가를 만나 즐거웠다. 소멸을 향해 가는 나의 하루들 중 그로 인해 행복한 며칠이 또 채워졌음에 감사한다. 죽음은 탄생의 또 다른 말이고 소멸은 생성과 같은 말임을 나는 안다. 인간의 범 우주적 삶은 그러한 것들의 연속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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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10-06-0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작품으로 캐롤 오츠를 시작해볼랍니다^^

물만두 2010-06-01 14:43   좋아요 0 | URL
그러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