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죽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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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와카타케 나나미의 까칠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다. 첫번째 작품 <네 탓이야>에서 일어난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단편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니의 자살로 어울리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전에 몸담고 있던 하세가와 탐정 사무소 소장의 부름을 받고 돈도 떨어진 터라 계약직 탐정으로 일하기로 한다. 나이 스물 아홉에 어딘가 정착을 하거나 장래 생각을 할 때도 되었건만 하무라는 발을 땅에 붙이고 사는 것이 무리라는 듯 빈곤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선택한다. 그런 그에게 들어오는 조사가 여전히 그에게는 트러블만 남기는 것 같이 느껴진다.  

계절별로 사건이 하나씩 일어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맡은 사건들이 펼쳐진다. 처음 사건은 마지막 사건과 이어지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짙은 감색의 악마>는 유명인이 된 여자를 스토커로부터 지켜주는 이야기인데 그녀를 지킨다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고 그 뒤에 누군가 있음을 하무라가 직감하면서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이야기다. <시인의 죽음>은 친구 약혼자의 자살 이유를 알아내는 이야기다. 친구의 불행으로 친구가 신혼집으로 장만한 아파트에 방 하나를 공짜나 다름없이 얻어 살게 된 하무라는 그 뒤 공짜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에게는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가 있고 벗어나려고 애쓰는 시늉만 하면서 자기 위안으로 삼는 굴레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 한번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다면 벗어나게 되는 모양이다. 그것이 어떤 식이 되든간에. 

<아마, 더워서>는 사건을 일으킨 여자 엄마가 의뢰를 하는 일이다. 직장에서 남자를 찌른 여자는 정신 병원에 갇혔다. 그녀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주간지 가십적인 문제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는지 하무라는 파헤치고자 한다. 사건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 그 근원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더운 여름이 지나서 다행이다. <철창살의 여자>는 서지학을 위해 인물의 정보를 모으는 대학생의 의뢰로 한 자살한 화가의 자료를 모으게 된 하무라가 그 작가의 은둔 생활과 자살, 그리고 하나의 그림에 의문을 가지면서 조사하게 되는 이야기다. 읽다보니 마치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이 생각났다. 

<아베마리아>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알아내달라는 의뢰를 받고 1년만에 탐정 일을 시작한 미즈타니가 하나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을 일으킨 여자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이면에 그의 크리스마스이브의 이야기이기도 한 작품이다. 겨울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상하고 쓸쓸하고 왠지 서글프다. 그리고 차가운 공포의 여운을 남긴다. <의뢰인은 죽었다>는 친구의 친구에게 묘한 건강검진 결과가 왔다는 상담을 받고 가짜라고만 말해준 하무라는 며칠 뒤 그녀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책한다. 의뢰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면 살았을텐데를 생각하며 하무라는 그녀의 자살을 조사한다. 건강검진 때문에 자살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탐정의 여름휴가>는 하무라의 공짜를 싫어하는 성격으로 뜨악해하지만 그녀의 집주인인 친구 미노리가 의문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탐정 친구 3년이면 준 탐정은 되는 모양이다.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는 또 미노리의 엄마 친구의 공짜 의뢰다. 방값을 해야 하기에 또 맡는 하무라는 아무래도 정많고 의리 있는 친구다. 십년 전 친구의 자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다. 그 친구의 죽음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자살이라면 이유는 무엇인지 인정사정없이 하무라는 파헤친다. <편리한 지옥>은 맨 처음 사건에 등장한 이상한 남자가 등장해서 하무라가 알고 싶어하는 친구가 죽은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주문한다. 알고 싶은 과거의 일과 현재의 주변 사람에게 일어날 일 가운데 어떤 것이 소중한 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마지막이 오싹한 작품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죽은 이의 삶을 조사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죽음은 극복하지 못한 하무라의 가정사에 원인이 있다. 죽은 이에대한 집착은 하세가와 소장의 말마따나 하무라가 언니의 자살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원인이 있을거라는 것이 끈질기게 조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것은 까칠하고 냉소적이며 쿨한 탐정이라는 하무라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기 때문에 더욱 가시를 세우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지 모른다. 학교때 왕따 경험도 있다니까. 

등장인물들은 살면서 만나면 짜증이 날만한 인물들이다. 그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죽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유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는 게 지옥이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작은 일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가는 이런 작품에 능란해서 내 일상도 불안하게 만든다. 누가 알겠는가. 내 작고 소소한 일상도 사건이 숨어 꿈틀대고 있을지. 다음 작품이 기대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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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 드디어.
뭔 말이 필요할가 단지 시간이 부족할 뿐.
그래도 이 책만은 봐야 하리. 

 

만화가 나왔다.
오호라 기대된다. 

책은 많이 나오는데 내가 요즘 내 맘이 내 맘이 아닌 관계로 귀차니즘 몰입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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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고스트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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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은 첫 작품만이 호러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다음 작품들은 환타지적 느낌과 함께 인생을 추억하게 하고 있다. 어린 시절 공상의 세계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고 자신이 읽었던 책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만들고 사라져 가는 것들, 나이를 먹고 그저 스쳐 지난 일들이 어떻게 공상과 환상의 터널을 지나 공포로 인식되어 가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 작품 <신간 공포 걸작선>이 공포의 패턴을 따른 전형적 작품이라고 하면 마지막 작품 <자발적 감금>은 이 모든 작품들의 플랫랜드라고 할 만한 현실적 환상을 공포로 극대화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신간 공포 걸작선>은 공포 잡지 편집자가 자신의 마음에 든 공포 소설을 쓴 작가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로 소설을 읽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할 만한 공포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고 <20세기 고스트>는 유령이 나타나는 영화관에서 평생 영화관과 같이 늙어간 한 남자에 대한 따뜻하고 애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팝 아트>는 풍선 인간이라는 독특한 묘사로 인간의 고립과 소년들의 우정을 표현하고 있다.  

<메뚜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카프카의 <변신>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그 시대와 다른 현대 가정의 문제점과 변신한 주인공의 정서,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하면 곤충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변이되듯이 마찬가지로 그것을 작품에 잘 표현하고 있다. 카프카의 시대에는 <변신>이 어울리지만 현대에는 이런 '변신'이 더 잘 어울린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물론 카프카의 시대에도 변신은 슬픈 일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밤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아들들의 이야기로 오마쥬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은 작품이고 <집보다 나은 곳>은 읽으면서 정말 이것은 철저한 공상이기를 바란 작품이다. 집보다 나은 곳을 찾아 그곳을 편하게 생각하게 되는 현대인들이라니, 가족에게 보살핌이나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은 그 어떤 공포보다 더 심각한 공포로 다가왔다. <검은 전화>는 납치 감금된 소년이 겪은 일을 쓴 작품이고 <협살挾殺 위기>는 한 남자의 꼬여만 가는 인생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다. <마법 망토>는 어린 시절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이야기의 비틀린 성인 버전이다. 하지만 그 성인은 정신적으로 결코 아이에서 더 성숙해지지 않은 현대의 몸만 자란 어른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작품이다. 

<마지막 숨결>은 이 단편집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고 싶은 작품이다. 적절한 환상과 호러가 결합된 잔잔하면서도 소름 돋게 만드는 묘한 면이 돋보인다. 침묵의 박물관이라는 이상한 곳에 들어온 가족과 그곳의 관장인 전직 의사, 그가 소장하고 있는 것들은 유명인도 있고 무명인도 있지만 모두 죽기 직전 마지막 숨결을 담은 것으로 그는 그것들을 전시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그 침묵을 듣게 한다. 무섭지만 서글프고 안타깝지만 기이하게 듣고 싶어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세상 어딘가 이런 박물관도 어쩌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 감금>은 조금은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동생과 문제아 친구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형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은 그 형이 쓰는 글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자신의 친구에게 일어난 일, 그리고 동생에게 일어난 일이 쓰여 있는데 이 글에서 처음 플랫랜드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2차원세계를 다룬 작품을 상자라는 정사각형 모양의 것으로 잘 묘사한 기발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드윈 애벗이 쓴 수학 소설에서 시작된 것이 SF와 환타지 소설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니 모든 학문은 위대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 현대인의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시가 외치던 마지막 마법의 주문은 현대에 와서 공포로 바뀌었다. 집은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안전한 곳이 아니다. 집은 떠나고 싶은 곳이고 떄론 못 떠나게 가두는 곳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집들은 대부분 공포를 동반한다. 집이 그렇고 그 안에 사는 가족이 그렇다. 누가, 무엇이 먼저 변한 건지 모르겠다. 물론 때로는 떠난 이들이 그래도 돌아올 곳이 되어 주기도 한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공포를 환타지로 잘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작가는 오즈의 마법사의 마지막을 못봤던 이모젠처럼 우리 모두 오즈의 마법사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바꿔주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집이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조금은 색다른 조 힐의 단편들을 읽었다. 어떤 작품은 전형적 공포소설이었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환타지였고 어떤 작품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심심한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환타지는 공포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은 잘 표현하고 있다. 조 힐은 평범한 가운데 현대인의 공포와 환타지를 담아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 그건 놀라운 능력이다. 하나의 작품에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증명한 것이다. 나는 그가 아버지보다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청출어람, 징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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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 미스터리 야! 5
야나기 코지 지음, 안소현 옮김 / 들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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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읽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 덕이다. 한마디로 별 사건은 없는데 아주 유쾌한 작품이다.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재미있을만한 상황이 아닌데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렇게 썼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유머러스하게 적고 있다. 

러일 전쟁을 벌이던 일본의 백년 전, 1905년이 작품 배경이다. 영어를 가르치지만 영어를 싫어하고 하이쿠와 가면극, 만담을 좋아하는 아주 별난 구사미가 나쓰메 소세키의 분신같은 선생님으로 등장하고 사건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고양이가 이름도 없이 살고 있다. 여기에 화자인 '나'는 집안이 몰락해서 셋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선생님 댁에 서생으로 더부살이하게 된다. 이들과 선생님의 괴짜 친구들인 미학자인 한마디로 뻥쟁이 메이테이, 박사를 꿈꾸며 늘 이상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는 간게쓰씨가 등장한다. 

각기 단편으로 이루어졌지만 별 다른 추리적이랄 것도, 사건이랄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 펼처진다. 사건마다 늘 고양이가 관련되어 있고 서생이 탐정처럼 사건을 해결한다. 게으르고 신경질을 잘 내는 선생님은 귀찮은 일은 모두 서생에게 시킨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대화속에, 사건 이면의 사회속에 담겨 있다. 작품은 그 시대상을 잘 보여주며 읽는 내내 낄낄거리게 만든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는 러일전쟁에 참가하는 군인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시작은 선생님 댁 고양이가 쥐를 가로채는 도둑 고양이로 몰리면서 그 사연을 알아내는 것이었지만. 여기에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할 수도 없어 바보처럼 굴기로 작정한 것 같은 모습이. 외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노모의 눈물을 오늘날 일본인들은 떠올리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것보다 서민들은 쥐를 잡아 받는 돈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은 각박한 현실은 언제나 소시민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는 이 또한 그런 이들일테고. 나쓰메 소세키를 돈에 넣으면 뭘하나? 반성없는 역사는 여전한데.
 
<춤추는 고양이>는 떡을 먹고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던 고양이와 그 고양이 친구 얼룩이의 죽음의 내막을 알아보는 이야기다. 그 시대 서양 문물을 마구잡이식으로 들여오고 비판없이 받아들인 것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들어 있다. <도둑과 '코’사랑>은 선생님 댁에 도둑이 들어 참마를 훔쳐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가네다라는 자본주의를 너무도 잘 받아들인 집안이 등장해서 선생님과 악연이 된다. <라쿠운칸 대 전쟁>은 정말 유치찬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선생님도 이정도면 손발 다 들게 만드는데 라쿠운칸 학생들이 하는 야구를 전쟁이라 생각하고 날아드는 공을 덤덤탄이라 여기는 선생님의 모습은 접하지 않았던 문물에 대한 나이 든 사람의 반응과은 아이들의 반응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또 어쩌다 미국에서 온 비싼 야구용품으로 야구를 하게 됐는지도 참 어이없었다.  

<교풍 발표회>는 읽으면서 어린 시절 읽었던 전래 동화가 생각났다. 그 이야기의 시발점이 어딘지가 궁금해졌다. 내가 아는 이야기는 중국에서 잘난 사신이 왔는데 조선에서는 떡보를 내보내 중국(명인지 청인지는 모르겠다.) 사신이 하늘은 둥글다고 손으로 원을 그리자 떡보가 네모를 그리고 그걸 사신은 땅은 평평하다로 받아들이고 삼강을 아느냐고 손가락 3개를 폈더니 떡보는 손가락을 5개를 폈는데 그걸 사신은 오륜도 안다로 받아들여 학문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물러났다는 이야기다. 떡보야 가래떡을 아냐고 해서 인절미도 안다는 뜻으로 네모를 보여준 거고 3개까지 먹는다고 해서 자기는 5개도 먹는다고 한 거였다. 이 선문답이 일본에서는 메롱~까지 가니 포복절도했다. 우리 얘기보다 더 웃겼다. 정말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봄바람이 부는 달밤에 고양이, 가출하다>는 그래도 고양이가 사라지자 고양이를 찾으려고 모두 애를 쓰는 모습이 고양이가 그 집에서 산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원래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는 안다고 있을 때 잘해줘야 하는 법이다. 뭐, 이 선생님께서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지가 문제겠지만. 고양이가 가출할 이유를 그렇게나 자세히 기억하는 걸 보면 마음에 고양이가 있었던 거 아닐까 싶다. 제목은 멋있는데 내용은 사실 별거 없었지만. 

정말 내용이 별거 없고 말들이 자꾸 옆으로 새서 책을 덮자마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이것을 정말 염두에 두고 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썼다면 대단한 작가다. 그 대가의 작품을 똑같이 쓰면서 추리소설로 만든 야나기 코지도 대단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다르게 읽기인지 아니면 색다르게 즐기기인지는 원작을 안 읽어서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캐릭터를 잘 묘사한 점은 높이 사고 싶다. 또한 그 시대를 잘 표현한 것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을 웃음으로 풍자한 것도 좋았다. 가끔 보여주는 뼈 있는 말은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마디로 사건과 추리도 괜찮았지만 그보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참, 서생의 이런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나는 서생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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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9-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리뷰를 읽으니 이 책을 꼭 읽고 싶네요^^
나는 고양이다도 한번 읽어보세요.무척 재미있읍니다.

물만두 2009-09-15 10:15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그래볼려고 생각중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9-15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를 좋아하는지라 몇번 들었다 놓았는데 읽어야겠네요 ^^

물만두 2009-09-15 10:15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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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작가의 작품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공포와 광기의 소품집이었다. 다른 작가에 비해 더 잔인하거나 그로테스크하지도 않았고 과도한 광기에 집착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작가는 그저 적절하게 현대 사회의 모습을 어두운 쪽에서 그려냈을 뿐이다. 세상을 밝게 보는 건 동화책이면 충분하다. 로맨스 소설도 있다. 그러니 어둡게 보는 것도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 그 작가가 이번에는 좀 더 의미심장한 제목인 <남의 일>이란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남의 일>은 교통사고를 당한 남녀가 사람을 발견하고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차에 다리가 끼어 운전석에서 나올 수 없는 남자와 다친 여자, 밖으로 튕겨져 나간 딸 아이를 걱정하는 모습과 그런 그들의 애원을 남의 일로 치부하고 도와주지 않는 남자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모습속에서 보이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자식 해체>는 자식이 커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부모를 구타하는 지경에 이르자 자식을 살해하려고 모의하는 부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남편은 돈 버느라 힘들게 살았다는 이유로 아내와 아들을 구타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인물이다. 그정도는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아내는 남편에게 맞고 살았는데 아들에게까지 맞고 산다고 한탄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막힌 반전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자식 해체가 아닌 가정 해체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더불어 <정년 기일(忌日)>은 회사에서 정년 퇴직을 하자마자 부하직원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그들에게 했던 것에 대한 앙갚음을 당하는 씁쓸한 퇴직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렇게 맞고 도망치듯 나온 뒤 앞서 정년을 맞이한 친구를 만난 주인공이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더욱 놀랍다. 가정과 회사에서 모두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아버지들의 이야기와 그들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거기에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와 국가의 모습은 곧 우리에게도 닥칠 현실이라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딱 한 입에......>는 마치 스탠리 앨린의 <특별 요리>, 로알드 달의 <맛>, 던세이니의 <두 병의 소스>를 생각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한 노인이 자신의 딸을 유괴했다고 집으로 쳐들어 온다. 그 집은 요리 평론가의 집이다. 아내는 남편의 비평에 망한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역시나 남자는 자신의 요리를 남편이 맛보면 딸을 돌려보내주겠노라고 한다. 그리고 아내는 맛없는 그의 요리를 맛보고 남편이 혹평은 당연했다고 생각한다. 남편도 그의 음식을 맛본다. 그리고 딱 한 입에 알아낸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추리소설다운 작품이었고 마지막까지 오싹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포비아 소환>은 한 조직 폭력단에서 외국인 노인과 소녀에게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거나 말썽을 피운 사람들을 제거하는데 이용하는 이야기다. 소녀는 순식간에 사람을 넋 나간 사람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것은 그녀가 인간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는 공포를 조종할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자신이 두려워하는 끝없는 공포속에 갇히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데 그런 공포를 이용하는 자들이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공포를 조종하고 악용하는 일 말이다. 

<레저레는 무서워>는 한 특별한 아이들만 다니는 사립 고등학교에서 레저레가 무서워서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받은 담임이 학교와 상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은 정말 우리 사회가 계급 사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는 계급으로 이미 나뉘어 버린 사회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저 레저레가 무섭기만 하다. 

<인간 실격>은 인간이 어디까지 바닥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살을 많잉 하는 다리에서 불치병에 걸려 자살하려는 여자와 동반 자살을 했다 자신만 살아 다시 자살하려는 남자가 만나 서로 먼저 자살하겠다고 한다. 자살 그 자체가 인간 실격일까? 아니면 자살을 구경하는 것이 인간 실격일까? 죽을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 것은? 앞에서 등장한 <새끼 고양이와 천연가스>처럼 현실과 게임을 동일시하고 인간의 죽음, 살인은 남의 일이라고 만연된 생각이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 남의 불행을 즐기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즐거우면 그만인 세상이니까.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의 경계는 모호하다. 범죄라는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추리소설도 그 기반에 공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범죄 자체가 이미 공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작가의 작품은 공포소설과 추리소설이 공존하는 범죄소설이고 개인적으로는 현대 사회를 통찰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인의 심리적 공포는 그 사회에서 기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 심리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작품들은 세상을 '나'위주로 살다가는 큰 코 다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결코 아니고 '나'와 '남'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공포란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사회의 문제점이 감춰져 있다가 썩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등장하는 것이다. 그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결국 몇 가지로 요약된다. 가정의 문제,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학교와 기업 등의 문제, 그리고 국가의 문제다. 가장 기본은 역시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 그 가정을 구성하는 가족의 문제로 돌아간다. 또한 그런 그들 가족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유입되어 유발된다. 그러니 어느 하나가 아닌 전체 시스템의 문제라 할 수밖에 없다.  

가족에게조차 공포를 느껴야 한다면 이 세상에 무섭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말이다. 가족의 무관심, 폭력, 냉대는 학교와 사회 생활을 하게 되는 조직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는 것이고 그것은 도돌이표처럼 끊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돌아와 나를 망치고 남을 방관자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를 남으로 만들어 무관심을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현대 사회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공포가 문제가 아니라. 본질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품을 볼 때 겉의 잔인함과 광기, 살인과 엽기적 발상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표현하고자 한 것을 봐야 한다. 그것 자체가 <남의 일>을 남의 일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무심한 눈길로 누군가를 그저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비켜 지나가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누군가 당신을 똑같이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는 결국 '그러니까 너만 아니면 돼.'가 된다는 이기심이 공포인 것이다. 나는 곧 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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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9-09-1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재밌나요? 왠지 기대되는데 책 표지가 너무 취향이 아니라 꺼리게 되더라고요.ㅠ ㅠ
저도 횡메르카토르 지도 재밌게 봤는데 이 작품도 꼭 봐야겠어요.^^

물만두 2009-09-12 10:16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전 더 재미있었습니다.
표지가 별로인 작품이 어디 이 작품뿐인가요?
이 작품은 그나마 양호하다 생각됩니다 ㅡㅡ;;;

세실 2009-09-1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잘 지내시죠?
요즘 통 근황을 몰라서 문득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동갑내기 친구의 우정이어요. 히~~

물만두 2009-09-12 15:55   좋아요 0 | URL
세실니임~ 방가방가요^^
님도 잘 계시죠?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