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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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레단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름 모를 남자가 침입을 했다가 발레단원과 싸움 중 살해된 것이다. 가가형사는 정당방위인지를 알아본다. 이 신원 불명의 남자의 신원을 알아내는 것이 문젠데 신원 확인 결과 전혀 죄를 지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발레단과의 어떤 접점도 찾을 수 없어 수사는 미진해지는데 갑자기 발레단의 안무가가 독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발레단 자체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발레단원 모두를 조사하기에 이른다. 

언젠가 하나에 미치지 않으면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유행을 했다. 그건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단 한가지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산다는 게 자기 마음대로, 마음 먹은데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선택이라면 그것보다 더 난감해지는 일은 없다. 이 작품은 발레라는 춤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주 위험하고 폐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독살 트릭은 작품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엘러리 퀸의 <X의 비극>에서 사용한 트릭을 차용한 점이다. 물론 그 방법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다.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예전 외국 작품에서 사용한 트릭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좀 더 다르게 만들어 그들에게 어울리게 표현하고 그 트릭이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남긴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유사품이나 표절이 아닌 트릭의 업그레이드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있게 어떤 작품에서 본 것 같은 독살이라고 쓸 수 있는 것이다. 

가가는 수사 중에 사랑에 빠진다. 아주 노골적으로 표시를 하고 다닌다. 역시 가가의 성격이 나타난다. 거기다가 학생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아버지와의 소통 방법도 이어지고 있다. 그때는 쪽지였지만 이제 따로 사는 부자는 전화 메시지로 소통의 작은 끈을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가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들 부자 사이가 딱히 나빠보이지 않는다. 단지 습관의 문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잠자는 숲>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발레단이 공연을 하는 것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다. 그 숲은 폐쇄된 숲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곳도 발레 리허설 도중이라서 일종의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할 수 있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원, 알리바이 공작은 잠자는 숲에서 누군가 꿈을 꾸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가가는 말한다. 자신이 교사를 그만 둔 이유를. 그 이유는 학생들에게 자신은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것이 학생들을 망치는 일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잘못된 일이 되기도 한다. 작품은 이런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가가 시리즈는 본격 추리소설이다. 범인이 누구인가가 문제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단순히 본격 추리소설만을 쓰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담아내고 있다. 트릭, 인간 관계, 사랑, 꿈, 인생의 선택 등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본격 추리소설을 보여주는 동시에 묘사하고 있다. 이 폐쇄적인 발레단의 모습은 가가의 생각처럼 잠자는 숲과 같다. 그리고 이 잠자는 숲은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한정된 공간이란 것은 이름만 바꾸면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이니까. 마지막 가가의 사랑이 참 애틋하다. 결국 키스로 공주의 잠을 깨우는 왕자는 가가 형사려나.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다음에는 결혼한 가가의 모습을 보게 될지 아니면 다시 혼자 있는 가가의 모습을 보게 될지 그것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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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7-1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중 누군가~] [내가 그를~] 2권을 읽었는데 발레리나 이야기는 코뺴기도 안 보여요. 그냥 가가 형사 혼자 묵묵히 범인을 쫓는...내심 발레리나의 뒷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아쉬웠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3 13:2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ㅎㅎㅎ

아 만두님 후기는 늘 읽어도 참좋아요~

물만두 2009-07-13 14:00   좋아요 0 | URL
아니 이럴수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따져야겠군요 ㅜ.ㅜ

휘모리님 감사요^^ㅋㅋㅋ

비연 2009-07-1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발레리나와 가가형사의 뒷얘기가 궁금한데, 없어요..ㅜㅜ

물만두 2009-07-13 14:00   좋아요 0 | URL
말도 안됩니다.
작가가 시리즈의 정석을 파괴하다니 나쁘네요 ㅜ.ㅜ

울보 2009-07-1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분 책 또한권 구입해두었는데 얼른 읽어야지요,,,만두님 방가방가,,

물만두 2009-07-13 18:57   좋아요 0 | URL
울보님 이 작가 작품은 계속 나오네요.
방가방가요^^

soyo12 2009-07-15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가가형사 참 좋아요.^.~

물만두 2009-07-22 10:42   좋아요 0 | URL
미투요^^
 
리바이어던 살인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형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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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아쿠닌의 에라스트 판도린 시리즈 세번째 작품인 <리바이어던 살인>은 판도린을 마치 셜록 홈즈처럼 묘사하고 있다. 거기에 한정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보슈 경감이 범인을 추적해서 탄 여객선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구성 속에 등장한 셜록 홈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1878년 파리에서 유명한 수집가 리틀비 경의 집에서 기이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 집에 있던 모든 사람과 리틀비 경이 살해되고 그의 수집품이 도난당한다. 하지만 값비싼 도난품은 센 강에서 발견이 되고 결국 사라진 것은 그것을 가져갈때 쌌던 스카프뿐이다. 범인에 대한 단서는 리틀비 경을 살해할 때 떨어뜨린 리바이어던 1등실 승객에게만 주어지는 금색 배지뿐이었는데 고슈 경감은 범인이 리바이어던에 탄 1등실 승객 중 배지를 하지 않은 인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배에 탄다. 그리고 배지가 없는 사람들을 추려 낸다. 그들은 의사 부부, 일본인 장교, 고고학 교수, 은행가의 젊은 임산부, 영국 귀족, 여행 중인 영국 여인, 그리고 주인공 판도린이다. 

작품은 이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시 유람선에서 도난 사건과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이 자신들이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이 있음을 암시하게 만들어 고슈 경감과 판도린의 수사와는 별도로 독자들이 범인을 알아낼 기회를 준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고전 추리소설의 특징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여기에 이들이 묘사하는 각자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전형적인 사람들의 시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각자의 생각속에서 19세기의 상류 사회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한정된 공간인 바다 위의 유람선 안에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있다. 

보슈 경감이 들려주는 여러 범죄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한 몫한다. 물론 그 이야기들이 모두 작품과 연관이 있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여성 마리 산폰의 이야기와 사라진 스카프에 얽힌 에메랄드 라자의 이야기는 당시 여성의 범죄에 대한 생각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또한 일본에 대한 이야기도 국제 정세 속에서 그들이 택한 것을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19세기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을 작게나마 들여다보게 한다. 여기에 그들이 캐릭터를 잘 묘사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첫번째 작품 <아자젤의 음모> 이후 판도린이 어떻게 변했을지가 무척 궁금했는데 두번째 작품을 읽지 않아도 그가 잘 극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으로 판도린은 더욱 추리 능력을 갈고 닦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는데 한마디로 어린 탐정 소년이 셜록 홈즈로 진화했음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판도린은 여전히 말을 더듬고 수줍은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탐정이 추리 결과를 이야기할때는 전혀 더듬지 않고 이야기한다. 이 시리즈가 좀 더 나오면 좋겠다. 현대에 19세기 러시아 탐정을, 고전적 추리소설 속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일본의 신본격 작품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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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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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어떤 작품은 한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또 읽을 기회란 좀처럼 갖기 힘들다. 너무 많은 책들이 나오고 그 책들을 한번 읽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주 운 좋게 예전에 읽었었다. 읽고 나서 하라 료라는 작가, 사와자키 탐정에게 반하고 말았다. 이런 작품을 나오게 해준 레이먼드 챈들러와 필립 말로에게 감사했을 정도였다. 재미있다거나 대단하다는 것만으로 모자라는 대단한 작품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명작이란 바로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든 하드보일드 탐정의 시작은 필립 말로부터고 레이먼드 챈들러가 추리문학에 끼친 영향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하고 그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 하라 료가 레이먼드 챈들러에서 벗어나 대가가 되었음을, 사와자키 탐정이 필립 말로와 같이 시니컬하고 고독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만의 독특함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를 일본의 레이먼드 챈들러가 아닌 일본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거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제 102회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 가운데 추리 소설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권위 있는 문학상에서 추리 소설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우리와는 참 많이 다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에 처음 등장한 사와자키 탐정이 두번째 등장하는 이 작품은 하라 료라는 작가, 사와자키라는 탐정의 이름을 독자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키게 되는 작품이다. 전작보다 더 치밀함을 보이고 하드보일드와 본격 미스터리를 절묘하게 구성한 작가의 뛰어난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일본에 한 획을 그은 걸작이기 때문이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각광받던 한 소녀, 마카베 사야카가 유괴된다. 공교롭게도 범인은 탐정 사와자키를 미끼로 이용을 한다. 그리고 그에게 돈을 운반하게 시키는데 사와자키는 돈을 운반하다가 두 명의 오토바이 폭주족같은 이들에게 맞고 쓰러져서 다음 운반 장소로 가지 못하게 된다. 설상가상 돈은 그때 누군가 훔친 뒤였다. 훔친 자가 범인인지 아닌지고 경찰은 판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범인은 연락을 끊고 그것이 경찰에서 사와자키를 더욱 공범으로 의심하게 만들게 된다. 죄책감이 든 사와자키는 이 일로 사건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즈음 소녀의 외삼촌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알리바이 조사를 의뢰 받는다. 조사를 하던 중 또 다시 범인의 전화가 걸려 오고 그 장소에서 사와자키는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동료 탐정이었던 전직 경찰 와타나베가 야쿠자의 돈과 경찰에게 넘길 각성제를 들고 도망간 이후 사와자키는 경찰과 야쿠자와 미묘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사와자키를 공범으로 봤던 것이다. 그 사건은 언제나 사와자키를 따라다니고 와타나베는 이따금 종이 비행기를 접어 그에게 근황을 알린다. 사와자키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없다. 그가 독신이라는 것 말고는. 하지만 점점 이 독특한 탐정 사와자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냉철한 모습 뒤에 감춰진 따뜻한 감성이 작가의 하드보일드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들과 함께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공들인 문장, 세밀한 묘사가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작가의 느림의 미학을 느끼게 하고 있다.  

작품은 사와자키의 끈질긴 탐문 조사를 따르고 있다. 경찰이 헛다리를 짚는 동안 사와자키는 사건의 본질을 꾀뚫어보고 마지막에 탐정 특유의 권리인 모든 진상을 밝힌다. 이 작품은 1980년대 말에 발표된 작품이다. 하지만 모든 걸작이 그렇듯이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왜 독자들이 이 느리게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을 끈기있게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지를 알려준다. 그것이 바로 장편 단 4권으로 거장이 된 하라 료가 지닌 힘이다. 그나저나 와타나베는 언제까지 사와자키의 주변만을 맴돌건지, 언제쯤 사와자키는 와타나베의 그림자를 떨쳐 버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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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7-0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헉 하게 만드네요 ^^

물만두 2009-07-09 11:36   좋아요 0 | URL
정말 헉하게 좋은 작품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7-0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좋아너무좋아요
읽어야겠어요.

물만두 2009-07-09 11:37   좋아요 0 | URL
당근당근입니다.

카스피 2009-07-09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라 료의 작품은 읽는이를 즐겁게 하지만 4편밖에 없어서 좀 안타깝다고들 하더군요^^

물만두 2009-07-09 11:38   좋아요 0 | URL
네, 안타까운만큼 더 좋은 것 같아요.
단편집까지 몽땅 출판해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7-09 11:41   좋아요 0 | URL
아니 네편 밖에 없다구요!
아쉬워라..

물만두 2009-07-09 19:09   좋아요 0 | URL
계속 더 쓰시겠지요.
나온 것만 장편이 4권입니다.

Koni 2009-07-1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면 제목이 더 짠해요. 1편 보고 꽤 쿨한 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라 료의 장편이 4편뿐이라니 너무하군요! ㅠ_ㅠ 그거라도 빨리빨리 번역되면 좋겠어요.

물만두 2009-07-13 11:27   좋아요 0 | URL
쿨하면서 감성적인 탐정이죠.
3편은 나올겁니다. 내년쯤에 나오려나요 ㅡㅡ;;;
 
전설 없는 땅 1 미도리의 책장 9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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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누군가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어렵게 주어지기도 하고 때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일을 보면서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살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은 주어져야 하는데 그것조차 목숨걸고 찾아 헤매야 한다면 산다는 게 인간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작품은 내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한 가문 엘리손도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와 남미로 이주해온 일본인의 이야기가 두 축을 이루면서 작품은 카리브해의 끈적끈적한 습한 날씨처럼 끈적거리는 피의 축제를 준비한다. 엘리손도 가의 고갈된 유전 지대에서 일본인이 탐을 내는 희귀 광물이 발견된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 엘리손도 가의 당주는 일본인의 애를 태우다가 장남에게 살해당하고 돌아온 탕아 차남은 형을 죽인 뒤 베로니카와 함께 일본인에게 채굴권을 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곳에 새롭게 터전을 잡은 콜롬비아에서 온 사이비 종교 집단을 몰아내야 한다. 지체없이 알프레도는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한편 3년전 탈취한 2천만달러를 나눠야 하는데 행방을 알고 있는 단바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안 가지 시로는 단바를 탈옥시키기 위해 베네주엘라에서 양아치 4명을 고용하고 단바를 탈옥시킨다. 그 와중에 콜롬비아 게릴라에게 쫓기다 다시 국경 경비대에 잡혔다 탈옥한 뒤 2천만달러가 있는 곳까지 가는데 그곳에는 이미 막달레나 마리아라는 젊은 여자가 이끄는 4백여명의 종교집단이 자리를 잡고 있고 설상가상 그녀는 그들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그들을 환영한다. 어찌된 일인지 단바는 이들의 모습에 이끌려 그들을 도와주기로 하고 돈은 그 뒤에 나누겠다고 한다. 이제 희토류라는 광물 체굴권과 2천만달러라는 거액을 놓고 한 판 피의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 몇 장을 읽자마자 나는 한숨을 내 쉬었다. 안 읽었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고. 이렇게 재미있으면서 진지하고 인간에 대한 느낌을 생생히 전달하며 인간의 습성과 정치, 경제를 아우르며 한 눈에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사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신화처럼 또는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작품이다. 미화되지 않은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베네주엘라의 우기에 내리는 비처럼 마음을 강타하고 다시 쨍쨍한 햇볕에 열 받게 하고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어 찜찜하고 씁쓸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매춘을 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 열아홉에 가장이 되어 뇌물받는 법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경비대원, 물라토, 메스티소, 과히로 등 다양한 인간들, 가난한 인간들, 혁명을 쫓는 일본인, 그저 돈을 쫓는 일본인, 게릴라 대장, 배신자 등 결코 상류층이 될 수도, 부자가 될 수도 없는 인간 군상들과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오늘의 모습을,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년 전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여기에 더해 혁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 덧없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혁명도 생존의 하나일 뿐이란 느낌만 든다.
 
인간의 탐욕과 생존 본능만이 살아 숨쉬는 제3세계의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같이 느껴지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다. 결국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탐욕도 어떻게 보면 생존 본능의 발전된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악의 바닥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왜 힘없는 인간들은 나아질 수 없는 것일까? 인간에게 희망이란 무엇일까? 책을 덮으며 이런 물음을 계속 되내일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전설 없는 땅이 어디 있으랴. 단지 잊혀지고 사라졌을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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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07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이 감탄하시니 정말 재미있는 책인가 봐요.일본에서는 추리 소설이 주류문학에 편입되선지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것 같군요.

물만두 2009-07-07 11:15   좋아요 1 | URL
네. 읽을까 말까 하다 읽었는데 책 펴자마자 반했습니다. 캐릭터 좋고 내용 좋고 작가의 필력 좋고 더 이상 나무랄데 없는 작품입니다.
요즘 추리소설 주류가 아닌 나라는 울나라뿐일겁니다.

... 2009-07-0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두 권이기도 하구, 나온지 좀 됬기도 하고, 리뷰가 거의 안 올라와서 보관함에 밀어넣고 머뭇거리는 중이었어요.
물만두님의 리뷰를 보니 꼭 구매해야하는 책이군요..

물만두 2009-07-07 11:16   좋아요 0 | URL
2권이라도 금방 읽힙니다. 상이란 상을 다 휩쓸었던데 그럴만한 작품이더라구요. 전 이 작가의 다른 작품 읽을 예정입니다.

비로그인 2009-07-0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읽어도 읽어도 또 이렇게 모르던 좋은 책들이 있다니 신기하지요?
오늘같은 날씨는.. 물만두도 좋지만 통통 따끈 고기만두가 그리워지는 날이네요 ㅎ

물만두 2009-07-07 11:59   좋아요 0 | URL
그게 책 읽는 자들의 행복이자 고민 아니겠습니까^^ㅋㅋ
그래서 저희는 만두국을 먹을 예정이랍니다~

비로그인 2009-07-07 13:03   좋아요 0 | URL
행복이자 고민이라.. 딱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물만두님이 만두국을 드신다니 그야 말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니고 뭐랍니까 ㅋㅋ

물만두 2009-07-07 14:30   좋아요 0 | URL
어쩌겠어요?
날은 덥고 저도 살아야지요.
내 뱃속에 있음 그것도 만두 아니겠어요^^ㅋㅋㅋ

다락방 2009-07-0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저도 흥미가 생기는데요! 읽어봐야겠어요.

물만두 2009-07-07 11:59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7-0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지름만두시라니까요 ㅎㅎ

물만두 2009-07-07 14:31   좋아요 0 | URL
혹자는 호객만두라고도 합지요^^ㅋㅋㅋ

chika 2009-07-0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리소설이 주류가 아닌 나라는 울나라뿐이다. ㅋㅋㅋ
- 아파 죽어가는 와중에 웃겨 죽슴다. ㅋ

물만두 2009-07-07 16:06   좋아요 0 | URL
이게 웃을 일이여~~~~~~
뭐, 웃어야지 어쩌겠어^^ㅋㅋㅋ

chika 2009-07-07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신간도서를 착착 읽고 리뷰써주시니 감사할따름입니다. 저는 천천히 살라구요. 지난번에도 책살때 분명 언냐가 리뷰를 썼음직한 책이었는데 없어서 땡스투를 못해 속상했었어요.
우웅~

물만두 2009-07-07 16:06   좋아요 0 | URL
나도 한계가 있다구 ㅜ.ㅜ
슬프네. 땡스투~~~~~

울보 2009-07-08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의 리뷰는 역시 더운데 잘계시지요,,

물만두 2009-07-08 10:14   좋아요 0 | URL
울보님 용쓰고 있답니다.
님도 건강하시고 류도 건강하죠^^
 

 

염력 방화 능력을 가진 여성 준코가 사회악과 벌이는 분투기를 그린 초능력 미스터리물.
미미여사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믿고 읽기에 충분하다.
안 읽는다면 킹왕짱 불나겠지. 속에서.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명성은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알 것이고 전작을 읽었다면 그보다 백배는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안 읽으면 평생 후회할 작품이다. 

 

쓸쓸한 여인들과 불쾌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단편 8가지를 수록.
상권도 아직 못 읽었는데 중권이 나왔다.
하권까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가 이 작품만 있는 것도 아닌데 또 나왔다.
이게 몇번째냐고요.
번역에 기대를 걸어본다.
제발 출판 안된 루 아처 시리즈 좀 출판해주세요!!! 

 

정치 금융 스릴러라니 안 좋은 소재만 모았네 그려.
단 쿠바의 뒷골목이 어떨지가 궁금하다. 

 

방탕과 타락으로 가득한 전 귀족 가문에서 일어난 복잡한 3중 살인사건을 명쾌한 추리로 해결하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을 그린다. 전후의 혼란과 귀족 계급의 몰락 등 당대 사회상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잘 담아내지 않던 사회파 미스터리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니 더욱 기대가 크다. 

 

3편보다 늦게 나온 2편이다.
본격추리 2번째 단편집이다.

호반정 사건
악귀
지붕 속 산책자
그는 누구인가?
달과 장갑
호리코시 수사1과장 귀하
음울한 짐승 

지금 생각나는 건 이 두편뿐인데 더 겹치는 작품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호리코시 수사1과장 귀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공포와 미스터리의 만남.
현대 기담을 추리소설로 만들어 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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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obat 2009-07-0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두사 컬렉션의 작품 선정은 대단히 좋은 편인데, 로스 맥도널드 중에서 왜 하필 이걸...;; <몰타의 매>를 달랑 하나 내놓고 대실 해밋의 다른 작품은 낼 계획이 없다고 못박아 버린 열린책들이 떠오릅니다.

물만두 2009-07-03 15: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왜 하필이면입니다 ㅜ.ㅜ

카스피 2009-07-0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긴다이치 코스케시리즈가 계속 나오네요 만쉐이^^

물만두 2009-07-03 15:56   좋아요 0 | URL
정말 만쉐이 입니다^^

Forgettable. 2009-07-0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긴다이치 코스케시리즈가 계속 나오네요 만쉐이^^ 2
저는 뭔과 귀족, 부자 얘기가 좋은가봐요 ㅋㅋ

소개 감사합니다 ㅎㅎ

물만두 2009-07-03 15:5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ㅋㅋㅋ

이매지 2009-07-03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ㅎㅎㅎ
전 사실 저거 드라마로 봤었는데 원작이 더 궁금했었거든요^^

마츠모토 세이쵸는 아직 상권도 사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벌써 중권이;;;;

물만두 2009-07-03 19:21   좋아요 0 | URL
늘 기다리게 되죠^^
저는 사지도 못했습니다. 하권이 나오면 살까 망설이는 중입니다.

보석 2009-07-03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긴다이치 코스케다..[크로스 파이어]는 오늘 제 손에 들어왔지요. 우훗(자랑 자랑)
책은 꾸준히 읽는데 리뷰는...

물만두 2009-07-03 19:22   좋아요 0 | URL
저는 가가형사 시리즈를 몽땅 사서요.
크로스 파이어도 읽어야 하는데 미미여사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우훗~ 저한테 자랑하셔봐야 소용없다구용^^ㅋㅋㅋ

무스탕 2009-07-0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곤소곤..
있잖아요.. 전 사실 만두님 추리소설 추천보다 만두님 등장이 더 반가워요 :)
건강하게 여름나세요~ ^^*)

물만두 2009-07-04 10:17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방가방가^^
님도 건강하게 여름 잘 보내세요~

soyo12 2009-07-0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악마 피리도 드라마로 봤는데, ㅋㅋ 머릿 속에 스토리가 섞여 있네요.^.~

물만두 2009-07-04 10:17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2009-07-06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6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핑크팬더 2009-07-19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다이치 고스케가 돌아왔군요~~!!!!! 와우 드디어 올것이 왔다~!!!! 아싸비~!!!

물만두 2009-07-22 10:43   좋아요 0 | URL
암요. 돌아와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