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선한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그림책들을 소개 합니다.
일러스트 속에 담고 있는 의미도 읽을 수록 다시 우러나오는 그림책들입니다.
- 백만마리 고양이 - 시공주니어
이전에 [그림책의 역사]책을 읽었을 때 이 백만마리 고양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4~5살 무렵 함께 읽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참 반가웠었는데, 미국 최초의 근대적 그림책이라고 소개했었던 것 같습니다.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만 길러봤으면 하는 할머니 소망을 들어 주기 위해 할아버지는 고양이를 찾으로 길을 나서는데 수천, 수만, 수백만 고양이 중 하나를 고를 수가 없어서 다 데리고 옵니다.
그러다 고양이 끼리 싸움이 나면서 서로 잡아 먹게 되는데 모두 사라지고 없어지게 되고 단 한 마리 볼품없는 어린 고양이 한 마리만 남게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 고양이를 데려다 정성껏 키우게 되는데, 비쩍 마른 아기 고양이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예쁜 고양이가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흰색 바탕에 검은 색만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등과 둥근 능선, 하나하나 틀린 작은 고양이들이 상당히 자유분방하게 느껴지네요.
얼마전, 아끼던 우산을 잃어버렸습니다. 클림프 그림이 그려진 우사으로 아이와 전시를 보러 갔을 때 사서 애지중지 들고 다녔죠.
잃어 버리고 속상해 하니 아이가 그러더군요. 또 하나 사면 되지라구요..
그래서 "니가 제일 좋아하는 저 건담 장난감 망가져도 아무렇지도 않겠네? 하나 새로 사면 되니까."라고 하니. 아무 말을 안하네요.
세상에 아무리 똑같은 우산이 있어도 제 마음을 담은 우산은 바로 잃어버린 그 우산임을 이제사 깨달았나 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백만마리 고양이 보다는 그 작은 하얀 고양이가 가장 소중하겠지요.
이 그림책으로 칼뎃콧 상을 수상했습니다.
- 아저씨 우산
모자에 코트를 멋들어 지게 코디하는 이 아저씨는 우산을 아껴도 너무 아낍니다.
비가와도 우산이 상할까봐 펴지를 못하지요.
그러다 어느날 아이들의 "비가 내리면 또롱 도롱 또로롱 비가 내리면 참방 참방 참~방" 노래 소리를 듣고 정말 그럴까 하고 드디어 시도를 해 봅니다.
펼쳐진 우산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지붕인 양 그렇게 화면을 꽈악.. 채웁니다.
그저 우산을 감상만 했을 때보다 비에 푹 젖은 우산의 가치를 깨달은 아저씨는 [우산]만이 아니라 [비오는 날]을 즐길 수 있게 된 듯 합니다.
어린 아이가 읽는 동화책인 것 같지만, 큰 아이의 경우에도 여러 의미를 되세길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어떤 물건이, 어떤 성격이 [아저씨의 우산]일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네요.
- 오리와 부엉이
가느다란 펜으로 그린 세밀화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세상에나 얼마나 오랜기간 공을 드려 그렸을 까요.
오리와 부엉이는 만나서 헤어지는 줄곳 싸웁니다.
야행성이면서 나무 위에 사는 부엉이와 낮에 활동하며 물가에 사는 오리는 먹이의 종류도 잡는 방법도 모두 틀립니다.
서로 자신이 맞고 남은 틀리다며 투닥투닥 다투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건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지만, 그래도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면 또 다툽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흥미있어 하면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인정을 해 주면서 서로를 각각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 줍니다.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서 스텐드를 켜 놓고 읽으니 더 재미있습니다. 흑백의 조화, 상세한 자연의 표현 모두 아이가 감탄을 하네요. 물론 스토리도 재미있어 하구요.
저는 이 그림책을 보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떠오릅니다.
내 기준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면 조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직도 사회에는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유로, 나보다 다리가 하나 없는 이유로, 그리고 아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틀렸다"라는 잣대로 바라보는 경우가 왕왕 있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라고 이야기 하며 꿈나라로 갔습니다.
- 샤를 페로의 그림책 푸른 수염
프랑스인인 샤를 페로는 루이14세의 변호사로 일했다고 합니다.
공직을 떠난 후 잊혀져 가는 민담을 동화로 써 왔는데 [신데렐라, 백설공주, 장화신은 고양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빨간모자 등] 이 그로 인해 글로 정착이 되었지요.
푸른 수염은 아내에게 열쇠를 맡기면서 절대 비밀의 방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 들이 의례 그러하듯 아내는 열쇠로 비밀의 방에 들어 가서 푸른 수엽의 이전 아내들의 주검을 보게 되지요.
언니와 오빠의 도움으로 아내는 목숨을 구하게 되고 푸른 수염의 재산으로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믿음과 배신, 돈과 사랑, 욕망이 어우러진 스릴러라고 표현하는 푸른 수염은 그 당시로는 재미있는 동화책이었을 지 몰라도 현시대에서 아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잔인하네요. (적어도 제 눈에는 말입니다.)
옛 동화책은 그 시대의 사상과 역사가 녹아져 있다 보니 그에 대한 이해가 없이 읽으면 그 적나라한 그 시대의 "감정"에 대해 당황을 할 때가 종종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에게 보여 줄 때 조심하게 되네요. 특히 이 책처럼 원작에 충실한 책은 더 그러합니다.
- 고녀석 맛있겠다
표지와 제목만 보고서는 늑대와 돼지 이야기에서의 늑대 인상을 가진 티라노사우르스가 당하는 유쾌발랄 이야기 인 줄 알았네요.
그런데 가슴이 몽클몽클 해 지더니 마지막 장면에서는 슬프기 까지 합니다.
아기 공룡 안킬로사우르스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꺾을 수 없었던 티라노사우르스는 아빠인 양 행세를 하며 자신이 가르쳐 줄 수 있을 만한 것은 다 알려주면서 안킬로사우르스를 보호해 줍니다.
결국 티라노사우르스는 안킬로사우르스를 진짜 부모에게 보내는 데 그 뒷모습이 여간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몇 해 전, [가부와 메이 이야기] 시리즈를 아이와 함께 읽은 적이 있습니다. 늑대 가부와 양 메이의 사랑이야기였지요.
본능을 억누른 사랑이야기라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애틋하게 읽었었는데 (당시 아이보다 제가 더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고녀석 맛있겠다]도 진한 감동을 줍니다.
- 첼로켜는 고슈
저자인 미야자와 겐지는 일본을 대표하는 동화작가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동화인 [은하철도의 밤] 저자이기도 합니다.
제 눈에는 이 책은 그림덕분에 더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무표정한 느낌의 사람들, 음악이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고요한 정막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 같은 느낌..
고슈가 첼로 연주자로 거듭나는 과정이 그림으로 인해 점점 활기 있게 느껴지네요.
솜씨가 서툰 고슈를 위해 매일 밤 나타나 주었던 동물들. 그 동물들로 인해 고슈의 음악은 피가 흐르는 듯 생기를 찾아 갑니다.
그런데 왠지 이 동물들이 동일 인물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고슈의 부족한 점을 일깨우기 위해 고양이로, 너구리로, 들쥐로 그렇게 변해서 나타나주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말이지요.
- 수호의 하얀말
몽골의 악기인 '마두금'이 생기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양치기 소년 수호는 하얀 망아지를 발견하곤 정성껏 치료를 해 줍니다.
하얀 망아지는 수호의 사랑덕분에 아주 훌륭한 말로 성장하게 되지요.
어느날 원님은 말 달리기 대회를 열어 우승자는 딸과 결혼을 시켜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승을 한 수호의 출신을 보고는 약속을 지키기는 커녕 하얀말을 빼앗아 버리지요.
하얀말은 원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수호를 찾아 돌아 오나 이미 심한 상처를 입어 수호의 품에서 죽고 말고 수호는 하얀 말을 마두금으로 재 탄생시킵니다.
우리나라 전설과도 비슷한 마두금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7년간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책은 아마도 몽골의 느낌이 살아 있어서 그런지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다고 하네요.
- 눈을 감고 떠나는 색깔여행
점자 책입니다. 까만 색 밖에 없지만 그 어떤 그림책 보다도 활홀한 색에 감탄하며 읽을 책입니다.
상세 내용 -> http://blog.aladin.co.kr/mycuteboy/3399244
- 건축가 로베르토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를 보고 아이 아빠가 "너 커서 건축가할래?" 하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건축가 김수근 이야기] 그림책을 읽었었는데, 그저 설계해서 높이 쌓아올리고 외장을 꾸미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인가 보다 했다가 건축에도 예술가의 혼이 있음을 알게 되어 신선하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건축가 로베르토]는 그 어떤 댓가나 보답을 요구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그리고 [그 집에 살 곤충을 위해서] 설계를 하고 집을 짓습니다.
무당벌레의 집에서 알 수 있듯이, 로베르토는 집의 거주자의 편리성 뿐 아니라 쓰라린 기억도 어루어 많져주는 집인 것이죠.
책의 그림은 순수그림이 아니라 여러 잡지책에서 이리 저리 오린 사진을 코라주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건축이야 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공간이 아니라 선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리 저리 짜집기 하며 새롭게 만드는 영역일 수 있겠다 싶네요. 꼴라주 처럼 말이지요.
어릴 때는 "대통령이 될래~" 라고 말했던 친구의 꿈이 허황되어도 보이더니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런 꿈이야 말로 어린이 다운 꿈 같습니다.
아이의 꿈이 벌써 여러 차례 바뀌어 지금은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뭐가 되고 싶어 하건, 그래! 될 수 있어!라고 말해 줘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