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물건 - 물건들 사이로 엄마와 떠난 시간 여행
심혜진 지음, 이입분 구술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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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시리즈'가 안방극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많겠지만 그중 우리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할 만한 그 시절의 가구, 물건, 옷, 신발 들도 크게 한 몫했다. 도대체 어디서 구했을까 싶을 정도로 과거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서 신통방통하게 생각했다. 다이얼식 전화기만 해도 추억 돋는데 그 아래 깔려 있는 손뜨게 레이스. TV위에 어김없이 놓여 있는 못난이 인형 삼형제. 이런 소소한 소품들을 보면서 어린시절을 떠올려 보곤 했다.

<엄마와 물건>을 읽으면서도 아주 어린시절을 떠 올리게 하는 물건들이 있었다. 그 첫번째가 이태리 타월이다. 어릴 때 나도 이태리 타월을 써서 때를 벗겼다. 그러다 이태리 타월로 때를 미는 것이 피부에 자극이 크다고 들은 후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이제는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태리 타월 부터 시작해서 손톱깍이, 우산, 진공청소기, 다리미, 가스보일러, 고무장갑 등 스물한가지 물건들에 대한 변천을 어머니의 입을 빌려 알려준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는 심혜진 작가님이지만, 책의 표지에 있듯 어머니의 구술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의 옛이야기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신문기사들을 통해서 스물한가지 물건들이 그 이후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까지 함께 알려주어 흥미로웠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봤던 과거의 물건은 '추억'에 가깝다면 <엄마와 물건>에 등장하는 과거의 물건들은 '역사'에 더 가깝다. 그 역사란 제품의 역사일 수도 있지만, '가사노동의 역사'이자,' 여성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가는 역사', '가사일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의 변화' 라고 볼 수도 있다.

오래전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중세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그림에 등장한 인테리어의 변천을 통해 가사노동의 변화를 알려주었다. 긴 세월 동안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가는 여성의 역사'를 따라가 보았을 뿐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해야 했던 평민과 노예 및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했던 왕족과 귀족으로 살아야 했던 시절에서 '나를 위한 삶'으로 바뀌어 가는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가사일을 도와 주는 제품이 개발될 때마다 여성입장에서는 노동에서 좀 더 편리해졌고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도 바뀌었다. 그런데 마냥 쉽게 핑크빛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인 인식은 '남성중심' 이었기 때문에 가사일을 도와주는 기계들, 제품이 생길 때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남성'기준이었다. 고무장갑의 대한 기사만 해도 손 시림과 살이 트는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기 보다, '고운 손'을 가꾸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성에게 유독 '아름다움'을 강요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사치와 허영'이라고 비난하는 이중 잣대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이런 시선은 은밀히 남아 있는데 과거에는 더 했기 때문에 고무장갑을 쉬이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세탁기, 전기밥솥, 냉장고, 다리미기와 같은 제품들은 확실히 가사일을 편리하게 도와 주었다. 하지만 '바깥일'하는 남자들로 하여금 '집안일'은 도깨비 방망이가 뚝딱 하면 되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밥은 전기밥솥이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빨래가 되고 나면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고 마르면 차곡차곡 게고, 몇 옷은 다림질을 해야 하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은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생리대와 브레지어의 변천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다른 제품의 눈부신 발전과 마찬가지로 생리대도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돌이켜 보면 생리대 품질 향상만큼 변한것은 생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같다. 어릴 때 엄마 심부름으로 생리대를 사러 가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줬던 기억이 있다. 생리대는 숨겨야 했던 물건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TV에 광고를 시작하고, 마트에서 다른 물건과 함께 내어놓고 계산을 하고, 회사에서 생리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브레지어는 아직 모르겠다. 제품 자체야 눈부신 발전을 했다. 와이어가 옥죄던 제품에서 무봉제에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무더운 여름날 남자들은 이제 넥타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로 많이 바뀐 반면, 여성들의 브레지어 착용은 여전히 의무이자 책임이다. 여름날 에어콘이 신통찮을 때 남자들이 넥타이 때문에 덥다고 말할 때 여자들은 속으로 '우리도 브레지어 때문에 더워 죽겠어요.' 삼킨다.

스스로 생을 버린 한 어리고 고운 여배우가 살아생전 브레지어를 하지 않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악플에 시달렸던 사실은 여전히 가슴 한 켯을 답답하게 짓누른다. 평생 착용한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더 허전한 것이 브레지어다. 평생 목줄을 차고 있는 개처럼 풀어놔도 도망갈 줄 모른다.

오래전, 명절 날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를 보고 기차에서도 수유공간이 필요하다는 기사에 달린 여성비하 댓글에 분노했던 적도 있었다.

이 책에 스마트폰이나 헤드셋, 인바디를 잴 수 있는 체중계, 전자담배 같은 제품을 함께 언급했다면 '편리함'에 비중을 두고 읽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뽑은 물건들은 여가나 취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집에서 '맨 손'으로 했던 일을 도와주는 것들이고 우리 어머니의 살림살이 이야기다보니 단순히 '편리함'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나, 그리도 나의 다름 세대로 연결되는 여성의 지위가 더 눈에 들어왔다.

점차 집안일에 대한 가치가 존중되고, 집안일을 남녀가리지 않게 하고, 남성에게서 지나친 남성상을, 여성에게서 지나친 여성상을 바라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훗날 저자의 자녀가 저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엄마와 물건2>를 쓰게 된다면, 그때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지위 변화를 논할 의미가 없는 그런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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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위험한 과학책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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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책에서 손을 떼게 해 주지 않는다. 정말 기발하고 유쾌한 책이다.

책에서는 자신이 웹툰 작가라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저자 랜들 먼로는 NASA에서 로봇공학자로 일했다.

그가 활동하는 곳은 미국 사이언스 웹툰 xkcd 이다. 막대인간(이전에 졸라맨이라고 불렀던) 으로 간단한 그림을 그리면서 내용는 수과학이며 표현은 유머와 풍자다. what if 는 <위험한 과학책>으로, How to는 <더 위험한 과학책>으로 출간했고 이번 책은 그 후속작 <아주 위험한 과학책>이다. (다음 책은 얼마만큼 위험한 제목이 붙으려나)

그러고 보니 이 책 어디선가 본 적 있다 싶었더니, 우리집 서재에 <위험한 과학책>이 꽂혀 있다. 처음 출간될 때 사놓고 읽지 않았나 보다. 이 책도 마저 읽어야 겠다.

국제천문연맹에서 한 소행성에 먼로의 이름을 붙여서 '4942먼로'라고 할 정도이니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랜들 먼로에 대해 찾아보니 그림책에 깨알같이 등장해서 웃음과 재미를 주는 캐릭터들의 정보가 있다. 특히 남녀 주인공 두 명의 이름은 각각 큐볼(cueball)과 매건(Megan)으로 왠지 랜들 먼로와 그의 아내같은 느낌이다.

검은 모자 (Black hat)은 비관적인 성격이며 남을 곤경에 빠뜨리곤 하는데 이번 책에서는 딱히 등장하지 않은 것 같고 <위험한 과학책>에서 달에 레이저를 쏘았다고 한다. 흰 모자(White hat)은 바뚤어진 사상을 가졌는데 이번 책에서는 종종 나타나 잔소리를 한다. 베레모 남자(Beret guy)ㄷ는 낙천적이며 순진한 성격으로 이번 책에도 등장한다.

<아주 위험한 과학책>에서는 63개 질문에 대한 착실한 답변과 5가지 짧은 대답으로 구성되어있다.

위험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실제로는 발생가능성이 적으나 실현된다면 인류나 지구, 우주가 사라질 정도의 결과를 초래할 호기심들이 질문이어서다.


그런데 그 질문이 인류멸망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첫번째 질문 처럼 아멜리아 어린이의 '수프로 태양계를 채운다면' 과 같은 어린아이다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질문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이런 질문하면 '쓰읍,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공부나 해' 라고 했을 텐데 랜들 먼로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책 맨 뒤의 <감사의 글>을 보면 질문에 도움을 준 분들을 언급한다. 책의 내용만 귀여운 것이 아니라 감사의 글도 정이 넘친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나쁜일이라고 말해주었지만 '더 재미있을 것 같으니' 익명으로 해 달라고 한 연방 검사에게도 감사드립니다.'라니. 마지막 페이지까지 유머가 넘친다.


책 자체도 재미있지만 질문을 한 사람들의 패턴도 보인다.

일단 아이들. 자유로운 상상력이 넘치는 아이들 덕분에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질문을 접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덩달아 과학상식도 올라가는 덤을 얻었다.


다음으로 알쓸신잡에 나올법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바나나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 안에 넣을 수 있을까요? 제 친구들은 이걸로 10년 넘게 논쟁하고 있어요.' - 조너스 -

10년 넘에 이런 논쟁을 하는 친구들이라면 평생 지기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데다 성향도 같아 보여서다. 참고로 정답은 '네'이다. 통계조사와 수식으로 계산한 결과 1년 동안 재배되는 바나나는 사람의 발목 정도 채울 수 있다.

아, 나도 궁금했던 질문이 있다. '일생동안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영어) 책이 너무 많아진 것은 인류 역사의 어느 지점인가요?' - 그레고리 월모트 -

내가 어릴 때도 책은 많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TV에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서점에 가면 책이 넘쳐난다. 거기다 책을 내는 사람도 일반인으로 확대되었다.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책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질문의 답을 추론하는 과정은 작가들이 1분에 몇 단어를 쓰는지 계산해 내는지에서 시작해서 결론은 '활동하는 작가가 수배명이 되기 전 어느 때'라고 했고 잡지 <시드>는 전체 저자의 수가 1500년 근처에 이 지점에 도달했으며 그 이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질문도 기발하다. '한쪽 눈을 뽑아 다른 쪽 눈을 들여다보게 하면 나는 무엇을 보게 될가요? (신경과 혈관은 상하지 않는다고 가정합니다.)' - 렌카, 체코 공화국

답은 눈을 보게 된다고 한다. 다반 눈은 흐릿한 이중상에 둘러싸이고 방을 배경으로 겹쳐진 얼굴과 손을 보게 된다.


어릴 때 부터 궁금했던 질문이 있는데 혹시나 여기 있을까 하고 찾아봤는데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있는가?' 이다. 빠른 속도로 추락할 때 어떤 장치로 그 속에 있는 사람이 무중력 상태처럼 붕 뜨게 만들면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부딪칠 때 충격을 덜 받게 만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고 꼬맹이 때 궁금해 했던 적이 있다.

나도 랜드 먼로에게 질문해볼까하고 생각했다가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나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MIT공대 연구원이 알려준 방법은 바닥에 드러누워 팔과 다리를 최대한 뻗어야 충격이 완화된다고 한다. 몸무게를 신체 모든 면적에 분산시키는 것인데 사람이 많으면 기마자세로 무릎과 허리를 구부리면 관절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눈높이이를 맞춰주는 부모들이다.

'저의 일곱 살 아들 오웬의 질문이에요. 전 세계를 1.8미터 높이의 눈으로 덮으려면 얼마나 많은 눈송이가 있어야 할까요? 왜 1.8미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물었어요.' -제드 스콧-

이 질문의 핵심은 눈송이보다 '왜 1.8미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물었어요'다. 세상에 이리 다정한 부모님이라니. 오웬은 보지 않아도 함박 웃음 띈 행복한 아이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성인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책이다. 무엇보다 과학책을 읽으면서 이리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우가 또 있나 싶다. 괜히 밀리언셀러에 오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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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위험한 과학책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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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과학책인데 입꼬리가 올라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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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가 자라 서툰 어른이 되었습니다
포슈 지음, 김진아 옮김 / 페이퍼버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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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몇 가지 패턴을 보인다. 학문적인 연구를 한 책들은 서구권 책들이 많았고, 마음 관리와 심리 상담치료를 주제로 한 책들은 중국과 일본의 심리 상담 전문가의 책들이 제법 많다. 우리나라 책은 몇 명의 유명 의사와 학자책들인 것에 비하면 외국의 책들은 양부터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나라도 심리 상담을 위한 병원이나 상담소 문턱이 이전보다 낮아지긴 했으나 좀 더 일상에 스며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착한 아이가 자라 서툰 어른이 되었습니다>는 정신과 클리닉에 병설된 상담 센터에서 일한 심리상담사 포슈의 책이다. 수개월을 대기해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38가지 주제 대부분 누구나 한 번 정도 고민해 본 사안들이고 저자의 해법이 참으로 따뜻해서이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하고 아이 키우다 보면 늘그막에 철이 들기도 하면서 매사에 적당히 둔해지고 둥글둥글 해진다. 이 책이 주는 해법 중 일부는 이미 체감한 것이 많아서 저자의 말이 얼마나 배려심 깊은지 더욱 잘 알겠다. 한편으로는 내가 한참 혈기왕성하고 어깨가 무거울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인생살이 해법을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책을 읽는 혜택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도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내가 직접 부딪쳐서 얻은 소중한 경험과 책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은 지혜라고 하더라도 자꾸만 잊게 된다. 그럴 때 책을 읽게 되면 그 당시 깨달음이 다시금 우리의 의식 속에서 기지개를 편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부제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자기 긍정의 심리학'이라고 적혀 있다. 문장구조만 보면 '오직 당신만을 위한'이 수식어이고 '자기 긍정의 심리학'이 키워드 같으나, 책을 읽다 보면 '오직 당신만을 위한 '에 더 무게감이 실린다.


이 책은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모두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하며 그 이유를 우리의 '과거'에서 찾는다. 과거에서 찾다 보니 우리의 부모님의 서툰 양육법과 자꾸만 만나게 된다. 그로 인해 작고 연약할 때 우리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기제로 인해 오늘 우리가 '서툰 어른'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도닥거려 준다.

남 탓만 하는 사람도 있으나 내 탓이라고 자신을 책망하는 사람도 많다. 저자는 세상에는 '당신 때문이 아닌' 일이 많다며 그동안 애썼다며 우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저자가 내담자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 준 문구가 있다.


"그렇지만 일대일 상담과는 달리, 한 번에 많은 이들에게 말을 전할 수 있기에 생기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그 말에 편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노력한 것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곁이 있는 바람에 고생하거나, 혼자서 애를 써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경우, '그럼 어쩌라는 거야?'하고 오히려 화가 날 수도 있을 거예요.

이처럼 누군가에게 있어 구원처럼 들리는 말이 또 누군가에게는 아주 괴로운 상처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정답이다'라고 단정 짓는 말은 트위터에서 언급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지요.

무엇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상황과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아주 오래된 착각을 바로잡아주고, 타인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말고 나의 인생을 살라고 말해 주면서, 앞으로는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용기를 가져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인정해 주고 충분히 행복해질 자격이 있음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를 돌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긍정의 심리학이 싹 틀 것이라고 격려해 준다.

38가지 심리 솔루션 중 몇 가지만 언급해 보자.



  • 당신을 향한 칭찬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칭찬을 받아도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원인은 칭찬의 포인트가 벗어나서, 칭찬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린 시절 부모님께 지적받은 부분을 칭찬받아서이지 그 사람들이 이상해서가 아니다. 칭찬받으면 의심이 가고 납득이 안되어도 '칭찬받았다'라는 사실만 받아들이고 '고맙다'라고 말해보도록 하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인간관계가 자꾸만 엉키는 원인

노력해도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는 처음부터 엇나가서이다. 남에게 기대면 안 된다, 남을 믿지 않는 게 좋다, 나약해지면 안 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 마라 등이 어긋난 생각이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에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을지 모른다. 당신 주변에 '우연히 기댈 수 없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 세상에는 '기대도 괜찮은 사람들', '날 의지하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 당신의 마음을 옭아매는 말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사고가 나를 괴롭히는 말버릇이 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다 옛날 일이야!'라고 말을 덧붙여 보자. 그러면 과거에 부정적인 말로 심어진 착각의 영향은 점점 작아질 것이다.



  • 남을 꼭 믿어야 할까?

당신이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건, 어쩌면 과거에 상처받은 경험으로부터 '이제 남은 안 믿는 게 낫다'라고 마음에 브레이크가 걸려있어서 일지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은 과거에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과는 다를지 모른다.



  • 당신을 괴롭히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착한 아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릴 때 필요했던 착한 아이라는 기술이 당신을 괴롭힌다면 어른이 된 지금의 당신은 '이제 그 기술을 쓰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를 다룰 수 있다.



  •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른 날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맞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혹은 '뒹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일반적으로 '좋다'라고 여겨지는 일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 미움받지 않기 위한 선택

중요한 것은 부탁을 들어줄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가 아니다. 어떤 이유로 움직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후회가 남기 쉬운 것은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선택이다.



  • 누군가와 함께 일 때 괴로워진다는 건

상대방 감정에는 민감하지만 자신의 마음에는 둔감한 사람이 있다. 상대방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어떤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을 주어로 삼는다. 이 주어를 '나 자신'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할 수 있게 된다. 평소처럼 상대방을 우선으로 생각한 후, 마지막에 반드시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꼭 생각하자.



  •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한 말

용기를 내서 누군가에게 '쉬고 싶다' '괴롭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간혹 "그런 건 빨리 말해야지", "왜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참았니?"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 괴롭고 슬프기도 하고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것에 억울함과 짜증을 느낄 때도 있다.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버티면서 혼자 참아왔던 사람들이다. 즉,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여기까지 버티는 선택지밖에 없어서 였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참 애썼다고 스스로를 칭찬하자.


*서평용으로 받은 책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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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엄마에게 - 엄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엄마 탐구 일지
리니 지음 / 터닝페이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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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보고 당황했다. 엄마에 대한 에세이인 줄 알았더니 예쁜 빈 노트가 왔다.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채우는 '엄마를 위한 책' 이었다.

저자는 어떤 인스타그램에서 '셀프 탐구 일지'를 보고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해 보았다. 그런데 셀프 질문 & 답변을 할수록 엄마가 보고 싶어져서 이번에는 '엄마 탐구 일지'를 적어보기로 했다. 술술 써 내려갈 줄 알았는데 웬걸,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엄마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에 대해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엄마에 대해 알아갔다.

엄마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책 한 장, 한 장 넘기며 질문에 대해 답을 해 보았다.

처음은 '우리 엄마를 소개합니다.'이다.

엄마의 이름, 엄마의 나이, 엄마가 태어난 곳, 엄마의 형제자매.. 키, 혈액형, 직업, 특징, 취미, 습관.. 언뜻 보면 쉽게 답할 수 있겠으나 이 질문들 아래 추가 질문들이 있다. 엄마의 이름에서는 그 뜻을 알아보고, 엄마가 태어난 곳뿐 아니라 고향 풍경도 물어본다. 그래도 제법 뿌듯했다. 엄마에 대해 아주 모르는 게 아니어서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챕터로 넘어가 봤다.

엄마는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며 지낼까요? 엄마의 스마트폰에 내 연락처는 뭐라고 저장되어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엄마 폰에 나는 뭐라고 저장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아니 엄마에 대해 궁금해졌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챕터에서는 나를 임신하고 낳고 키웠던 순간들에 대한 질문이 있다. 저자가 말해주어서 깨달았다. 엄마가 우리 삼 남매 낳았을 때가 20대였다는 사실을. 지금 20대를 보면 어리디 어려 보이는데, 엄마는 20대에 이미 아이 셋의 엄마로 살고 계셨다. 나는 서른에 엄마가 되었다. 지금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의 30대 사진을 보면 '저 어설픈 청춘이 아이를 키웠구나'싶은데 엄마는 나보다 훨씬 먼저 엄마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탐구 일지는 엄마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며 '엄마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려준다. 엄마 자신에 대한 질문, 엄마로서의 질문, 엄마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귀한 딸이었음을 알려주는 질문, 그리고 마지막은 엄마에 대한 내 생각까지 질문한다. 엄마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 여자의 인생의 발자취를 쫓아가보게 한다.

책을 넘기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우리 집은 상당히 화목했다. 그 중심에는 아빠가 있었다. 당시 보기 드물게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아빠였다. 내 나이에 어린 시절 가족들이 둘러앉아 부루마블 게임을 한 사람이 몇 있겠는가. 저녁이면 아빠 손잡고 동네 산책도 자주 다니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는 전화가 오면 부모님이 받아서 수화기를 바꾸어 주었던 때다. 내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매번 그냥 넘기지 않고 다정한 농담과 인사 몇 마디씩 꼭 하고 나를 부르곤 하셨다. 기억이 나지는 않아도 무슨 일이 있으면 아빠에게 먼저 이야기했었다.

아빠는 희한하게 하루 한 번씩 집 앞 가게에 가서 과자 한 봉지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매번 과자 한 봉지 사러 나가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어서 한 박스째 사자고 했더니, 그렇게 사면 맛이 없다고 하셨다. 투덜거리면서 한 봉지씩 사 왔다.

돌이켜 보니, 내가 워낙 움직이지 않는 스타일이니 그 정도라도 움직여보라고 심부름을 시켰던 것 같다. 잔소리 하나 없이 칭찬으로 나를 키우신 분이라 딸내미가 약하게 태어나서 비쩍 마른 데다 운동은 전혀 못하니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까 고심하셨던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박스째 과자를 사자는 말에 아빠가 순간 움찔하셨을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한 봉지씩 사나, 박스째 사나 과자 맛이 다 똑같지, 맛이 없어질게 뭐람.

반면 엄마는 말씀이 그리 많지 않은 성격이었다. 우리 삼 남매, 가족들, 고모, 삼촌, 할머니 챙길 사람이 많았다. 요즘 말로 육아는 아빠 담당이었던 것 같고 엄마는 살림만 해도 일이 많았다. 학창 시절 엄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분이셔서 학부모 면담 날이면 친구들이 뛰어가서 엄마를 몰래 훔쳐보고 와서 괜히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여자들 키는 중학생이면 다 크는데 나는 늦자라서 고2, 고3이 되어서야 폭풍 성장을 했다. 그전에는 전교에서도 작은 쪼꼬미였는데 엄마는 늘씬하고 키도 커서 나더러 주워왔다는 거다. 그랬어도 예쁜 엄마라고 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엄마에게는 단 한 번도 무엇을 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공부를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기도 했으나 그래도 아빠는 방 정리 정돈하라고는 하셨는데 엄마는 항상 그냥 내버려 두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의 성적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고3 때였던가 잠시 공부에 지쳤을 때가 있었다. 한 며칠 잠시 책을 멀리했으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책상에 앉아 있기는 똑같고 책을 들여다보는 대신 다른 상상을 했으니.

그런데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OO가 요즘 공부를 통 못하는 것 같네." 하셨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하라고 한 적 없던 엄마가 딱 한 번 저 말씀 하셨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안 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구나. 엄마가 아닌 것 같아도 나를 보고 계셨구나.

어느 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가 친정집에 들렸는데 난생처음 엄마와 집 근처 언덕 산책을 갔다. 거기서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와 만난 일, 결혼하고 살림하면서 시댁 식구들 때문에 힘들었던 일. 그때 잠자고 듣기만 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왜 이다지도 엄마에 대해 몰랐을까. 엄마는 왜 티 한 점 내지 않고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하셨을까. 1시간도 안되는 대화였는데 엄마는 왠지 후련해 보였다. 그때 엄마가 해 준 이야기들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아린다.

나와 둘도 없는 죽마고우였던 아빠는 오래전 예고도 없이 떠나셨고, 엄마는 집안의 무거운 짐은 다 덜어놓으셨으나 몇 십 년을 함께한 병 때문에 자유롭게 다니시기에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이래서 젊어서 놀라고 하나.

이 책의 짧은 리뷰 중에 "내용을 다 채워서 어버이날 선물 들려야겠어요." 가 있었다.

나도 엄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이 책 페이지를 하나씩 채워 나갈 때마다 그날의 산책처럼 엄마가 기뻐하고 후련해 하실 것 같다.


* 서평용으로 받은 책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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