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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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0살. 딱 거기까지. 대학 다니고, 취직 하고, 물론 결혼도 해야겠지. 참! 애기도 낳아야 하는데…….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으면서 이 많은 것을 어떻게 10여년 안에 하려했는지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오래 전에 상상해보았던 미래의 모습은 30살까지만. 그 이상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어느 덧 서른을 넘어, 마흔의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아직도 마음은 20대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데, 웃을 때마다 눈가에 잡히는 주름과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흰 머리들을 보면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흔에 들어서면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해질 무렵 다가오는 존재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하려 하는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혼란의 시간. 젊다고 하기에도, 나이 들었다 하기에도 애매한 ‘마흔’과 묘하게 겹쳐졌다.

생각 없이 생활에 젖어들기도 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 시기. 나의 마흔은 전자에 가까웠다. 많은 일들이 정신없이 다가왔고, 집과 직장을 바쁘게 오고 갔다. 쉬어 본 기억이 아득했고 늘 시간에 쫓겼다.

 

느림으로 다가온 충격. 정신없이 엑셀을 밟던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게 되었다. 간간히 쉬면서 현재의 삶을 돌아보았다. 삶을 쉬어가게 하는 책읽기. 겉표지에 붉은 색으로 작게 쓰인 이 말은 책읽기 자체가 삶을 쉬어가게 한다는 의미였겠지만, 나에게는 이 책이 ‘삶을 쉬어가게 하는 책’이 되었다.

어떤 책이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책 이었나 판단을 해 본다. 판단 기준은 나를 얼마나 움직이게 했느냐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나에게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내면이 서서히 변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비움 중에 마음을 비우는 일이 어렵기로는 으뜸이다.(p17)’주변에 얽혀있는 인간관계에 버거움이 느껴지던 시기였기에 많은 공감이 갔다. 노래 제목에 나오는 것처럼 나에게는 힐링이 필요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일생을 통해 풀어가야 할 숙제이겠지만, 저자가 쓴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속으로 느리게 걸어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옆에 있는 것처럼 위안을 주었다.

 

책꽂이와 방에 있는 몇몇 물건들을 정리했다.‘삶을 간소하게 할 때 소중한 것들이 문득 일상에서 솟아오른다.(p53)’책을 읽는 중간 중간 방을 둘러보니 쓸데없이 널려있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언젠가 써먹을 물건들은 영원히 써먹지 못할 물건들이다.(p59)’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보관해두었던 화장품 샘플들을 버렸다. 이미 유통기간은 지났겠지만 아까워서 붙잡고 있던 것들이다. 물건들을 과감하게 치우니 속이 후련했다.

 

‘쉼’에 대한 부분을 읽고서는 며칠 동안 퇴근 후에 일부러 쉬어보기도 했다. 많이 바빴던 시기였지만 ‘쉼은 빈둥거림이 아니다. 그것은 한가로운 바쁨이다. 자신의 내면과 만나기 위해 바쁜 게 쉼이다.(p42)'라는 문장이 나의 마음을 자극했다.

마음껏 게을러져보았다. ‘게으름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자의 능력이다.(p203)’어떤 면에서 게으름은 보통 능력으로는 힘든 일이다. 조바심이 생기는 마음을 느긋하게 다스린다는 것이 나로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나의 내면에 대해 생각해봤던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집에서도 업무 처리를 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갔다 했을 텐데, 과감하게 사무실에 노트북을 버려두고 퇴근했다. 일단 일에서 멀어지니 마음이 가뿐해졌다. 한 권의 책을 느리게 읽으면서 갖는 시간들은 잔잔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내면이 채워지고, 내면과 끊임없이 만나는 듯한 느낌은 신선한 돌파구였다.

덕분에 사무실에서의 나는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드렸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지는 않았다. 긴박한 시간들이 오히려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듯 했다.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수록 생은 안으로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뻗어나간다.(p76)’쉼은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게으름 뒤에 쓰나미처럼 몰려온 일들을 감당하기에도 충분할 만큼 나를 강하게 했다. ‘유유자적한 삶의 근본은 가볍게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로 깊어지는 것이다. 큰 배를 띄우기 위해서 우리는 자꾸만 더 깊어져야 한다.(p278)’쉬면서 함께 한 책들은 나의 내면을 더욱 깊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가져보게 되었다. 이제는 나에게 다가온 ‘개와 늑대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경계에 있는 요소가 어디로든 속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듯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이 마흔’은 아직 젊은 개가 될 수도, 이미 나이 들어버린 늑대가 될 수도 있다.

표지를 감싸고 있는 말처럼 마흔에 멈추어 읽은 이 책은 남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데 이정표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잠시 멈춤과 천천히 쉬어가는 법을 알려주었고, 깊어져야하는 내면을 바라보게 해 주었으며, 뛰는 가슴으로 뜨거운 현재를 맞이하게 해주었다.

‘마흔의 삶을 사랑하라! 간절하게 갈망할 것, 자유로울 것, 사람을 사랑하며 살 것!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첫 번째 날이다. 오늘을 뜨겁게 끌어안으라!(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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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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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으로 할까? 아냐. 그건 너무 긴데... 뭐 적당한 거 없을까?’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리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평소 모으던 성냥갑이 눈에 들어왔다. 심!봤!다! 성냥개비가 그렇게 반갑긴 처음이었다. 왔다갔다 움직이기에 길이도 편하고 부러뜨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바닥에 연습장을 펴고, 몇 개의 성냥갑을 털어냈다. 읽던 책을 펼쳐놓고 성냥개비들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엄마 몰래 쌀알도 갖다놓았다. 산가지 대용으로 성냥을 구해놓고선 이리 놓아보고, 저리 놓아보고... 잘 이해도 안 되는 내용이 뭐 그리 궁금했는지... 책 한 권을 옆에 놓고 며칠을 끙끙댔다. 대학교 때의 일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 같은데 억울하게도 책의 내용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64괘를 읽어보면서 들었던 느낌과 열정은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있다. 운명이라는 것은 좋았다가도 안 좋아지고, 안 좋았다가도 좋아지곤 한다는 것. 언젠가는 이 가난이 나아지리라는‘희망’과 ‘알고 싶다’라는 강한 욕망이 복합된 감정이었다. 점이라든가 사주라든가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는 편은 아니었는데,‘운명’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곤 했다.

 

시원시원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던 고미숙 선생님의 책은 잊었던 그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운명’이라는 말 자체도 끌림을 주는데, 나의 운명을 사용하는 설명서라니. 책을 읽으면 정말 내 운명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될까? 궁금했다.

1부까지는 읽기에 편안했다. 음양오행은 중학교 2학년 과정에서 물질관을 가르치면서 간단하게 언급했던 내용이라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2부에 가상의 인간 ‘곰진’이가 등장해서부터였다. 다른 사람의 사주에 맞춰 내용을 이해하자니 지식 자체는 이해가 된다고 해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의 사주가 필요했다.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할 사주를 책에 맞추어 풀어보기로 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천간과‘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지지를 빈 종이에 적었다. 본격적인 전문 지식에 들어가니 이것저것 기록할 것이 늘어났다. 연월일시 두 글자씩 ‘8자’만 적으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종이가 꾸역꾸역 늘어나는 한자어로 점점 빽빽해졌다.

인터넷에서 만세력을 찾아보고 나의 ‘팔자’를 득템했다. 나를 나타낸다는 일간이 ‘정화(丁火)’임을 알았다. ‘정화’는 은은한 불, 촛불이나 전등, 난로불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성격에 의하면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이기도 하고 아무 댓가 없이 자신을 태워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얼굴이 갸름하고 미인이며 여성적이고 따뜻하다. 자상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겸손하며 은근하다. 목(木)을 만나야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고, 순수하게 관심을 갖더라도 이유가 불분명하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쉽게 자신을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것을 안고 사는 사람, 한 번 화가 나면 불같이 화를 내서 끝장을 봐 버린다고 했다. 평소 생각하는 나의 성향과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갔다. 특히, 한 번 화가 나면 끝장을 봐 버린다는 부분이 기가 막히게 맞았다.

그 때부터 이 책과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주말부터 이틀을 책에 코를 박은 채 노트북을 옆에 놓고 잘 모르는 용어는 인터넷으로 자세히 찾아가며 읽었다. 『10대와 통하는 미디어』(손석춘, 철수와 영희)에 나오는 어떤 이는 광고를 가리켜 변기통에 머리를 쳐 박는 것과 같다고 했다는 데, 혹시 내가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운명’이 변기통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의 핵심은 운명 자체보다 그것을 맞이하는 자세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지론은 나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그것을 맞이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유없는 행동은 없지만, 결국 중요한 단 하나의 이유가 사람을 움직인다. 다른 모든 이유를 떠나서 나는 궁금했다. 내가 어떤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명을 운전한다’(p182)는 것이 ‘운명론’이라면 나의 그것을 잘 운전하고 싶었다.

8글자의 음과 양을 찾고 목화토금수의 5행을 적었다. 나를 제외한 7개의 글자가 양목 1개, 양화 2개, 음토와 양토 1개씩, 음금 1개, 음수 1개가 나왔다. 흠~ 나는 오행이 조화로운 인간이야~ 나름 흐믓해하며 책을 읽어내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십신(十神)’이라는 존재가 떠억 등장을 해버린 것이다. 5행 중 ‘나와 같은 것(비겁), 내가 생하는 것(식상), 내가 극하는 것(재성), 나를 극하는 것(관성), 나를 생하는 것(인성)’이 각각 두 개씩이라 ‘십신’이다.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떠듬떠듬 적어내리고 잘 모르는 부분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나에게는 십신도 비교적 고르게 있었다. 비겁에서는 겁재 2개, 식상에서는 식신, 상관이 1개씩, 재성은 편재, 관성은 편관, 인성은 정인이다. 하지만, 다른 건 다 하나씩인데, 겁재가 2개나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겁재란 ‘나의 재산을 겁탈한다.’는 뜻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살짝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보니 다른 각도에서 이해가 되었다. 무엇인가 가지고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겁재를 내 직업과 연관시켜 보았다. 흔히들 교사를 ‘배워서 남 주는 직업’이라고 하니 교사야말로 내 사주에 나와 있는 나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해석에 따라 전혀 반대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지에 숨어있는 천간이라는 ‘지장간’도 찾아보고 대운이 찾아온다는 나이도 알아보았다. 특히 강한 대운이라는 갑, 자, 진술축미가 내 사주에는 10세, 40세, 70세, 80세, 90세, 100세에 들어있었다. 40세는 이미 지났으니 70세 이후 쓰나미처럼 몰려올 대운을 확인하려면 나는 기필코 오래 살아야한다^^;

 

이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릴 차례다. 우선 태어난 시각까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나의 두 딸과 남편, 생일을 알고 있는 주변인들을 훑었다. 아빠, 엄마, 언니, 여동생, 남동생, 시부모님, 형부, 올케, 친구들을 일간 별로 분류했다.

내 주변에는 음의 금속 ‘신금(申金)’이 7명, 양의 금속‘경금(庚金)’이 2명, 음의 불 ‘정화(丁火)’가 1명, 양의 불 ‘병화(丙火)’가 1명, 음의 물 ‘계수(癸水)’가 1명, 양의 물 ‘임수(壬水)’가 3명, 음의 목 ‘을목(乙木)’이 2명 있었다. 신금이 가장 많다. 금속이라면 불의 기운인 내가 녹이는 존재인데, 그럼 내가 그들에게 안 좋은 존재란 말인가? 흠~ 이 인간과는 별로 맞지 않았는데, 나를 극하는 물의 기운이라서 그랬구나. 어라? 나의 오랜 친구가 나와는 상극이네? 공감 가는 일간도 있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되겠어.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해.

연예인으로 범위를 넓혀보았다. 내가 그 인간들과 만날 일은 평생 없겠지만 도대체 왜 그 인간들에게 끌리는가를 알고 싶었다. 우선 태경님, 장근석, 정준영, 이민호를 따져보았다. 헉~! 근래 필이 꽂혀서 한참 열심히 보았던 드라마 ‘신의’의 주인공 이민호는 나와 N극과 S극이 끌리듯 강하게 합한다는 ‘임수’였다. 큰 물, 바다, 넓은 강을 뜻하는 양의 기운을 가진 물. 굉장히 유연하고 센스가 있으며 어디다 던져놓아도 알아서 잘 살아간다는, 지적인 이미지이며 부드럽고 섬세하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슈퍼스타 K4에 나오는 정준영도 ‘임수’였다. 어쩐지 그런 면이 살짝 끌렸어~^^; 어라? 그런데, 을목과 신금이 나온 다른 사람은? 생각해보니 그 연예인 자체보다는 드라마의 역할이나 보여지는 이미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임수’의 포스에 끌렸던 것도 같다.

아직도 데이터에 목이 말랐던 나는 다음 날 출근 후, 친한 선생님들 몇 명의 생일을 물었다. 태어난 시각까지 물어야 확실한 8자가 나오지만 그것까지 묻는 것은 너무 오버인 것 같아서 일간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우연의 결과일까? 그들의 일간은 대체적으로 나를 도와주거나 내가 도와주는 존재였다. 일간이 나타내는 성격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알려주었다. 대체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고 놀라워했고, 더 자세한 사주를 알려면 태어난 시각을 말하라고 하니 알아봐달라고 관심들을 보였다. 살짝 기분이 우쭐해졌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건 ‘합(合)’과 ‘충(衝)’을 따져보았을 때부터였다. 사실 ‘임수’와의 관계를 따져보았을 때부터 약간 갸우뚱하기는 했다. 물이라면 불을 극하는 존재인데 그것이 음과 양으로 결합하면 최고의 ‘합’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5행과의 관계는? 나무가 불을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양목이냐 음목이냐에 따라서도 다른 것이 아닌가? 또, 단순히 둘만의 관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순환이 되는 전 단계의 5행도 봐야 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많아도 1층을 올라서지 못하면 2층으로 갈 수 없는 것처럼 전 단계의 관계들이 해결되어야 다음 단계의 운명들이 활동할 수 있다고 했다.‘나와는 역시 맞지 않는 그런 인간이었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와 ‘합’하는 존재라는 해석이 나오는 순간, 이제까지 차곡히 쌓아올린 얄팍한 지식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즐겨찾기로 등록해놓은 8개의 운세 관련 블로그에 나온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면서 책에 나온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화토금수의 5행이 각각 천간에 있느냐, 지지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고, 일간을 어떻게 둘러싸느냐에 따라서도 운세의 해석은 변화무쌍했다. 그런데다 내 사주의 태과불급을 순환시킬 수 있다는 ‘용신(用神)’이 나오는 순간, 멘탈이 붕괴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서 공부를 해야 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어설피 알다가는 사주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는 것도 제대로 없으면서 관계들의 순환은 고려하지 않고 드러나는 것만으로 번드르하게 잘난 척을 하는 선무당이 될 뻔 했다. 아~! 내 운명을 아는 길은 멀고도 멀구나.

 

‘중요한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 내느냐, 혹은 겪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p182) 운명론의 핵심이다. ‘중요한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시선의 전환’(p6)이고, 운명에서는 관계와 배치와 순환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운명의 키는 자신 안에 있다. 해법 또한 자신에게 있다.’(p185)

 

오랜만에 나와 잘 맞는 ‘운명’적인 책이었다. 한 권의 책이 전할 수 있는 지식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움직이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해 나는 8개의 관련 사이트를 뒤졌고, 관련 용어들을 몇 번이나 찾아보았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이 책의 내용만으로 사주를 풀어낸다는 것은 당연히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운명이 궁금한 초보자들에게 더 깊은 공부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으로 아주 적당하며, 운명보다 중요한 것은 운명의 해법을 쥐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흘러야함을 끊임없이 알려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두 번째 읽은 날, 나는 선무당을 탈출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스스로 모르는 내가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를 알고 싶다. 그리고, 나의 운명과 당당히 마주하며 누리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제부터는 책을 읽으면서 찾아놓은 인터넷 사이트에 나오는 내용을 틈날 때마다 공부하려 한다. 사주명리학의 길은 무한히 넓고 깊겠지만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나의 사주를 알아보려 한다. 성냥개비를 가지고 이리저리 맞춰보던, 어쩌면 무모했던 대학교 때의 열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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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출간!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3-01-29 16:29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분석해낸 우리 사회의 현상과 욕망!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인문의역학 사회비평 에세이! 이 책의 키워드는 '몸과 우주'다. 몸과 우주, 우리는 이 단어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몸은 병원에 맡기고, 우주는 '천문학적 쇼'의 배경으로나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질병과 번뇌들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인문학의 화두는 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다..
 
 
 
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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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상태인 물은 99℃까지는 아무 일 없이 그렁그렁하다가 100℃가 되었을 때 갑자기 도약하여 자유로운 기체가 되어버린다. 상상력이 뛴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내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책 속에서 펼쳐지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재미있다!’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드는 생각이었다.

 

단 몇 줄이라도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쓰라고 해도 제대로 독후감을 쓰지 않거나 서너 줄을 겨우 끄적이던 녀석들이 이번 책은 꽤나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지나가면 ‘멍...크르르르르 멍’하며 짖는 개가 제일 무섭다고 적은 도연이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어떤 전설이 있을까를 상상하며 기나긴 글을 쓴다. 맨날 독서감상문을 올리고 싶은데 정작 쓰려고 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승균이는 상여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고, 뜬소문을 너무 믿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느낀 점을 다섯줄이나 적어낸다. 처음으로 독후감을 선보인 영현이는 책의 겉표지를 보고 ‘무슨 신기한 구멍 같은 것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말한다.

그런 아이들의 글을 독서 토론 자료와 함께 정리하는 나는 왠지 뭉클 하는 느낌으로 코끝이 찡해진다. ‘이제 이 아이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하는구나’ 하고.

 

나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떠돌던 소문을 떠올렸다. 체육대회가 있던 오후였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공중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서둘러서 교실로 들어갔고, 그날 체육대회는 취소되었다.

당시 학교 건물 한 쪽 옆에서는 삐져나온 철골을 산소용접기로 절단하고 있었다는데, 산소통이 갑자기 튀어올랐다가 아이들 사이로 떨어져서 한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명이 짧다는 말이 있어 절에 데려가서 길러졌었다고 한다. 그날 옆에 있던 짝꿍도 날아오는 통에 맞아 발등을 찍혔다는데, 피하라고 말해도 아이가 꿈쩍도 안하더란다. 아이는 통에 머리를 찍혔고 머릿속에서 뇌가 두부처럼 모락모락 김이 나면서 바닥에 쏟아졌다는 말도 들렸다.

그 후에 학교에는 무서운 소문이 떠돌았다. 학교 건물 밖에는 운동장 한 구석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화장실 옆으로 낙엽 같은 것을 담곤 했던 커다란 시멘트 쓰레기통이 있었다. 바로 그 쓰레기통에 그날 쏟아진 뇌를 버렸다는 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죽은 오후가 되면 화장실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너무 무서워서 오후반이 끝나고 운동장을 지나올 때면 눈을 질끈 감고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 덧없는‘삶’이란 것을 나름 고민도 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까지가 사실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지만 이 일은 우리 초등학교에서 공공연히 떠돌던 전설로 남았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떠돌고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있기 마련이다. 내용이 무섭든 재미있든 엉뚱하든지 간에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상상을 하고, 이야기에 또 다른 이야기를 보탠다. 상상력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라난다.

‘읽히기 위해 쓰인 글은 독자에게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 재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p147, 작가의 말)

이 이야기에는 재미 안에 훈훈한 의미가 담겨있다. 방앗간 할아버지와 돼지 할아버지와의 관계, 준영이를 전설로 묶어 같이 뛰어놀게 한 장난꾸러기 세 아이들 사이의 관계, 밤나무 아래에서 준영이와 이어진 돼지할아버지와의 관계, 돼지할아버지와 세 아이들과의 관계, 새롭게 전학 온 아이와 펼쳐질 또 다른 관계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정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이 느낀 재미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변화되어갈까? 앞으로 또 어떤 책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될까?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을 기대하며 느꼈던 궁금함이 아이들을 향해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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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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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늘 고향 쪽으로 뻗어있고 붓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해 달린다.’M 커피 광고 문구다. 가끔 광고를 보고 싶어서 TV를 넋 놓고 볼 때가 있다. 단 하나의 문장이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시처럼 치열한 문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느낌이 참 좋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물렀던 부분은 큼직한 글씨로 쓰인 ‘책읽기 좋은날’이라는 제목도, 색감 좋은 겉표지의 그림도 아니었다. 희미한 듯 한 구석에 세로로 적힌 문장 한 줄.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 조심스러운 설렘이 느껴지는 문장. 불현듯 CF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이 한 권의 책은 나의 삶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겉표지까지 합치면 400여 페이지가 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짤막한 광고 한 편을 보는 것처럼 3페이지 이내로 구성된 리뷰들은 이런 걱정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서론, 본론, 결론이 나누어져 경직된 글이 아닌, 툭툭 던지듯 쓰인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서 경계를 풀어버린다. 작가의 짧은 경험과 간혹 섞여있는 유머가 중간 중간 피식 웃음을 안겨준다.

소개된 책은 매우 다양하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 많고, 만화부터 소설, 수필, 시, 철학서, 전문서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이 전시되어 있다. 어떤 책은 읽기도 전에 나와 잘 안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또 다른 책은 언젠가 한 번 사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내가 이런 책에 끌리는구나!’책을 통해 나를 다시 읽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강신주, 동녘)은 저자에 반해서 읽고 싶은 책이다. ‘그의 상담에는 가출 아니면 출가밖에 없다’(p99)는 저자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과감한 결단력에 호감이 갔다. 이런 사람이 쓰는 글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물론 ≪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 사계절)을 읽은 적이 있기는 하다. 그때에는 그저 철학을 비교적 쉽게 풀어쓰려하는 사람이려니 했었는데, 새로운 각도에서 저자의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123권의 책 중에 읽어본 책을 헤아려보니 ≪황홀한 글감옥≫(조정래, 시사IN북)(p241) 단 한 권이다.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글쓰기에 관하여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많아서 좋았던. 나의 독서경험이 이 책에서는 1/123 이라는 사실이 슬쩍 민망해지기는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읽었느냐보다 얼마나 느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스스로를 격려해본다.^^;

 

웃음과 관련된 책이 당겼다. 요즘 내가 지쳐있나 보다. 화장실 유머를 글로 구사한다는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데이비드 세다리스, 웅진지식하우스)도 읽어보고 싶다. ‘남이 처리하지 못한 화장실에서 오해받지 않고 나오는 법’(p162)은 경험한 적이 있는 일이라 정말 답을 알고 싶은 내용이다. ‘나보다 아이큐가 높은 고양이들도 있다. 이 결과 놀란 사람은 나뿐이었다.’(p162~163)는 은근히 생각할수록 키득거리게 하는 문장이다. 일로 쌓인 스트레스가 몇 개의 문장으로 잠시 풀렸다. 작가의 말대로 ‘울적한 날이면 이 책을 뒤적이며 웃는 법을 다시 익힐 수 있.’(p163)을 것만 같다.

또 다른 책인 ≪너한테 꽃은 나 하나로 족하지 않아?≫(데이비드 세다리스, 학고재)는 작가가 붙인 리뷰의 제목이 따뜻해서 끌리는 책이다. ‘평생 웃음은 내가 책임질게(p362)'라는 말은 지금 되뇌어도 따뜻한 난로 같이 든든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다니카와 슌타로, 문학과지성사)은 소개되어있는 시구의 문장이 나를 끌어당긴다. 동명의 시로 추정되는 내용 중 ‘만유인력이란 /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p314)라고 표현된 부분이 인상적이다.‘만유인력’이라는 말의 뜻을 20년 가까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만물에는 있다,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식으로만 풀이를 해 주었을 뿐. 어떻게 만유인력에서 고독의 힘을 연상할 수 있을까? 중력장으로 일그러진 우주 공간을 보고 서로를 원한다는 생각을 하고, 팽창하는 우주를 보고 불안함을 연상한다. 시인의 무한한 상상력이 놀랍다. 오카리나의 선율이 아름다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작사했다고 하니, 나중에 이 노래의 가사도 찾아봐야겠다.

 

역시 광고 카피는 언제나 내게 매력적이다. ≪짜릿하고 따뜻하게≫(이시은, 달)는 ‘일본의 명광고 카피를 소개하며 그에 얽힌 개인사를 풀어낸 에세이집’(p335)이라 한다. 한 번 읽어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인상 깊은 광고 카피들도 많은데……. 광고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낸 책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 명의 인터뷰어가 여러 명의 카피라이터를 만나 그 카피에 얽힌 에피소드, 평소 문구를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가,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시간은 언제인가 등 생생한 광고 아이디어의 세계를 알리는 책도 있었으면 한다. 내가 읽은 독서량이 지극히 적으니 이런 책이 이미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이유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저 좋아서 읽는다. 무엇을 위해서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사양한다. ‘해야 하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책 하나쯤은 온전히 도락(道樂)으로 남아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p393) 공감한다. ‘그저 좋아서’라는 말이 그저 좋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 - 랄프 에머슨’(p258) 리뷰가 갖는 매력 중 하나이다. 이미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읽는다면 ‘아! 이 사람은 이 책을 이런 각도에서 보았구나!’공감도 해보고,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리뷰라면 나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리뷰는 원래의 책과 독자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끈이다.

‘책을 읽는 독법에는 정답이 없다. 어디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답이 없듯이 그 책을 어떻게 해석할지에도 답은 없다.’(p394) 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 책을 내 방식으로 해석하여 리뷰를 쓰는 것처럼 해석은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책은 그 책을 읽는 사람의 것이다.’(p394)

 

≪책읽기 좋은날≫을 통해 나는 나를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새삼 발견할 수 있었으며 요즘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책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두고두고 펼치면서 소개된 책들을 음미하고, 한 권 한 권 찾아서 읽고 싶은 마음이다. 그때그때마다 샘솟는 물처럼 새로워지는 나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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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ungho 2012-11-1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앞으로도 더욱 따뜻한 서평 기대하겠습니다.
 
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한 권의 책이 ‘의미 있었다’라 말하게 하는 최소한의 것은 무엇일까? 책이 보여주는 색깔이 평소 좋아하는 것이 아니어도,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단 한 줄의 문장이나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이라도 마음에 들어온다면 그것만으로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온 책이었다.

깔끔한 표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다소 답답하게 흐르는 이야기, 독립 영화나 프랑스 영화를 생각할 때 연상되는 무채색의 배경, 그 안에서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 섞여 있는 여러 이야기들, 주인공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의 상처받은 삶이 느리고도 습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사랑’이라는 제목이 강렬했던 탓일까? 참 묘한 것은 이 책을 읽어가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심코 넘어갔던,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갔던, 때로는 의도적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했던 관계들까지도……. ‘관계를 정의하는 최소한의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계속 머물렀다.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과 자신의 미움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p78~79)'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도 있지만, 어쩌면 세 단계를 거치면서 변해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 사랑을 지키고자 한 사람, 그러다 미움을 품게 된 사람, 시간이 흘러 아무 것도 지킬 수 없게 된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만큼 스스로 아픔을 품게 된다고는 하지만 아무 것도 지킬 수 없는 무감각함이 오히려 더 큰 아픔이라는 생각이 든다. 2도 화상의 아픔보다 감각조차 느낄 수 없는 3도 화상이 더욱 큰 상처인 것처럼.

한 사람에게 얽혀있는 수많은 관계들도 세 가지 유형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사랑으로 지키고 싶은 사람, 미움으로 머무는 사람, 아무 것도 지키지 않게 되는 사람.

 

내 핸드폰의 ‘친구’폴더에는 2명의 전화번호가 들어있다. 그 중 한 명은 내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친구이다.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절대로 묻지 않기에 어쩌면 그저 그런 관계의 사람들보다 나에 대해 모를 수 있지만, 그 점이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오묘한 관계이다.

직장에서 만났기에 처음부터 그 친구가 ‘친구’폴더에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기타’에서, 다음에는‘직장’으로, ‘동호회’로 가더니 ‘친구’폴더까지 와버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인간관계는 아날로그적이므로 분명 전환되는 시점이 있었을 텐데 서서히 색깔이 변하는 노을처럼 마음이 점점 물들어가게 된 걸까?

드러내는 만큼의 아픔만을 바라보고, 드러내고 싶지 않는 아픔의 시간은 웃음으로 같이 위로해주는, 같이 있으면 편안함을 주고, 떨어져있어도 애절하게 그립지는 않은 친구. 학창시절에 들었던 말이 정말로 맞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우정은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처럼 투명한 ‘무색’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알게 된 지 7년 쯤 되었을까? 며칠 전, 그 친구가 내게 처음으로 질문을 하면서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나는 그 질문에 덤덤하게 답을 했고, 우리는 좀 더 많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과 평소 좋아하는 책의 장르, 작가, 그 작가의 작품들, 음악, 가수, 스타일, 굳이 감추려하지 않았지만 아무 것도 지키지 않게 되는 사람들, 이제는 무덤덤하게 답할 수 있는 관계들에 대하여. 말을 하다 보니 그날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도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이상한 날이었다. 지난 7년 간 나누었던 대화보다 더 많은 말들이 오간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친구의 마음 가까이에 한 발짝 다가선 듯했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저마다 깊은 우물에 종이배 하나가 까닥까닥 떠 있는 게 아닐까.(p16)' 일부러 외면하고 내팽개쳤던 마음이 조금씩 떠올라 종이배처럼 까닥거렸다.

근처 악세서리 가게에 가서 내 머리띠도 사고, 생일 선물로 미리 머리띠도 사주었다. “내 생일 선물은 알아서 구체적으로 정해서 알려줄게~! 아예 내가 사서 비용 청구할 수도 있어~.”“오우~! 그런 거 완전 좋아~!”낄낄대면서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 이런 말을 맘 편히 할 수 있는 사이인 것이 너무 좋았다. 어떤 것이 이쁜가 이것저것 해보고, 이리저리 거울도 쳐다보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행동들이 어색하고도 즐거웠다. 악세서리 가게 앞집에서 파는 순대도 같이 먹고, 생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도 마셨다. 어렸을 때는 물건을 사러갈 정도로 가정이 넉넉지 못했고, 그런 물건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직장을 잡아 돈을 벌게 되었을 때는 일상을 공유할 만큼 가까운 친구가 없었더랬다. 그 친구는 알까? 내게는 여자 친구와 이런 물건을 같이 사본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다음 날, 다시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요즘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네. 지금 가도 돼?”“그럼! 맛있는 거 사 줄께!”사실 야간 운전을 할 때에는 눈이 다소 침침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 운전이 늘 긴장되기는 하지만, 그 친구는 종종 그런 걱정을 넘어서게 한다. 보고 싶다는 쑥스러운 마음을 스트레스로 포장해가서 만족스러운 양과 질을 지닌 쟁반짜장도 먹고, 복잡하게 얽힌 직장 일도 풀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었다. “커피 마실래?”“음~ 뭐 마실까?”“뭘 생각해? 또 캬라멜 마끼아또에 생크림 듬뿍 얹은 거 먹을 거면서…….”그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헉! 어떻게 알았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내게 있어 이 친구는 어떤 의미일까?’책에서 읽었던 또 다른 문장이 생각났다. ‘꿰매야 할 것…….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닐까.(p81)' 이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을 조금씩 꿰매어주고 있었다.

언제든 전화하면 그 자리에 있는 친구가 많이 고맙다.

‘나는 모든 문제를 최소한의 것들을 되찾게 해서 풀지요. 난마처럼 얽히는 이 많은 고통과 상처가 실은, 가장 최소한의 것을 지키지 못해 생기거든요.(p342)'

나와 그 친구를 ‘친구’이게 하는 최소한의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친구’폴더에 담겨있는 그 친구의 전화번호처럼 내 마음의 폴더에 담아 오래도록 지켜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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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년 2012-09-2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소한의 사랑'은 '최소한 나와 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예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