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꽃피우기 위해 애를 쓴다
정목 지음 / 꿈꾸는서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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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엉엉 울고 싶다. 큰소리로 실컷 울어본 지가 언제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종종 찾아들던 생각. 어른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는 울음이 때론 답답하고 서글프다.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스며들던 무렵 내게로 찾아온 책이다. 꽃도 꽃피우기 위해 애를 쓴다. 기다란 제목을 곱씹어보다 애를 쓴다는 대목에서 울컥한다. 안간힘을 다해 햇살을 향해 다가가려는 내게 너도 애 쓴다며 위로하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브로콜리처럼 생긴 겉표지의 나무 그림을 한참 바라본다. 브로콜리는 초록의 봉오리 하나하나가 꽃 한 송이라는 말을 듣고 경이롭게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안쪽 표지의 정목 스님 사진도 시선을 붙든다. 단아하고 정갈한 옷도 그렇고 마주 앉은 대상을 응시하는 가만가만한 시선에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늘을 숨 쉬는 삶과 관계와 죽음과 쉼과 위로에 관한 산문집이다. 여러 책들에서 조금씩 나왔음직한 비슷한 생각들이 담겨있지만, 스님의 글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느림의 미학이다. 스님의 호흡을 따라가며 어두운 구석에 고여 있던 감정의 찌꺼기를 조금씩 털어낸다. ‘따라쟁이라도 된 것처럼 스님의 문장을 따라 내 삶의 시계를 천천히 맞춰본다.

생은 간결할수록 아름답습니다.(p14)’란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널브러져있던 주변의 물건들을 정리한다. 관계도 마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어느 순간부터 의식적으로 숨을 깊게 쉰다. ‘부드러운 호흡으로 지그시 숨결을 응시해보십시오.(p50)’란 문장을 만난 이후이다. ‘숨결, 숨결.’ 숨결이란 말을 처음 보는 것처럼 조심스레 들이마신다. 숨에도 결이 있다는 의미가 새삼스럽다. 숨의 결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숨을 내쉰다. 그렇게 숨을 쉬며 주변을 천천히 바라보니 무엇이든 그 본질에 좀 더 가까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저 그 일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어떤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일 뿐, 그 조건을 낱낱이 설명하거나 알 수는 없습니다.(p67)’ 마음을 힘들게 했던 일들이 하나 둘 들썩이다 조용히 내려앉는다. 마음을 토닥이는 문장에 잠시 눈앞이 흐릿해진다.

관계에서 범하기 쉬운 실수를 일깨우는 문장도 마음에 남는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세요.(p120)’ 잠시 반성한다. 얼마나 많은 편견을 바탕에 깔고 상대를 바라보았던가. 그의 순수한 의도가 내게로 와서 얼마나 많이 왜곡되었던 걸까.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담하다. <다비>에서 헌 옷 벗어 장작 위에 누울 때(p168)’라 말한 김재진 시인의 표현 앞에서 한참을 머문다. 노래 타타타에서 언급되는 달관의 경지를 넘어선다. 육체와 삶과 죽음을 통달하는 시각이다. 몇 번을 곱씹어도 숙연하다.

가슴속에 있는 사연을 누군가가 이렇게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됩니다.(p254)’ 스님의 책을 읽고 있으니 내가 스님의 이야기를 듣는 셈인데, 나를 이해하는 듯 마음을 다독이는 문장을 곳곳에 만나다보면 내 얘기를 듣고 난 스님이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것 같다. 나는 나를 들어줄 어떤 대상이 필요했던 걸까.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이일순의 본문 그림도 좋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쉼과 위로를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는 설명을 보고 주제에 아주 걸 맞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둥근 모양과 연두 빛 색채가 좋은 여행자(p35)’, 진청의 하늘빛과 기린과 떨어지는 별똥별이 좋은  초대(p127)’, 나무의 갈색 빛이 좋은 함께(p173)’, 청보라 빛 하늘과 북두칠성이 좋은 -마을(p259)’. 특히 마음에 드는 그림의 제목을 하나하나 연결해보고는 놀란다. 제목까지 취향저격이라니.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고 많은 위로가 되는 시간들이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나무가 주는 이미지 때문일까.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조심스레 내뱉으며 오늘을 바라본다. 다시 한 번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따뜻해진 공기가 내 안으로 들어와 부드럽게 마음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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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7-07-26 09:20   좋아요 1 | URL
깊은 통찰력에 한동안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더군요. 시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구요.^^;

2017-07-23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4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시계만큼 시간의 흐름을 착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또 있을까.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바늘을 한참 바라보면, 시간도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오후 427분이 24시간마다 완벽하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선이 곡선으로 왜곡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계를 떠올린다. 삶의 시계는 이야기 안에서 직선으로 뻗은 철길처럼 펼쳐진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기에 반복되거나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간과 관계들.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공통적으로 펼쳐지는 상실감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책 표지처럼 깊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즐겨본다. 보다,말하다,읽다시리즈로 추상적으로만 접하던 작가. TV를 통해 실물을 보니 호기심이 생긴다. 일단 목소리가 좋다는 이유 하나면 충분하다. 드라마 <킬미힐미>가 생각난다. 이런 목소리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쓸까. 그의 소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는 편이다. 표지를 관찰하고, 표지 안쪽의 작가 소개를 꼼꼼하게 읽는다. 본문을 읽듯 차례를 읽고 마지막 표지 뒤편까지 한 장 한 장 눈자국을 찍는다. 이번에는 뒤에 실린 작가의 말부터 본다. 편집자의 의도대로 재배치된 순서대로 읽고 싶지 않다. 작가가 교정을 보며 다시 읽어보았다는 발표 순서대로 7편을 읽는다.

다 읽고 나서는 작가의 말을 다시 읽는다. 그 어떤 작가도 스스로 쓴 작품에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글을 잘 분석하는 사람이다. 7편의 이야기는 상실이라는 기본 코드를 공통적으로 지닌 채 다양한 전개로 변주된다.

 

판타지적인 요소도, 추리 소설처럼 극적인 반전이 있는 요소가 곳곳에 펼쳐진다. 얼핏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은근히 다음이 궁금하다. 결말이 도무지 예측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슈트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후배가, 최은지와 박인수에서는 주인공 아버지의 죽음이 잠시나마 등장한다. 아이를 찾습니다에서도 아버지의 관점에서 실종되었다 찾은 아이와 아내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부러 표현하지 않아도 절로 풍기는 고독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p12, 오직 두 사람)’이 배어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어떤 말을 남에게 하고 살지요.(p38, 오직 두 사람)’ 소설이 다큐는 아니지만, 이 글들을 썼던 당시의 작가는 외로웠을 것 같다는 짐작을 감히 해본다.

 

묘하다. 마냥 슬픈 것도 아니고, 마냥 아픈 것도 아니고, 마냥 먹먹한 것도 아니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뒤엉켜서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아버지의 감정들이 그대로 내게 투영되어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이었다, 어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내 가족을 향했다, 언젠가 들었던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옮겨간다. 내게 아직 남아있을 관계의 앙금들이 선명하게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p65, 아이를 찾습니다)’는 문장이 무섭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상황을 겪는 신의 장난처럼 풀리지 않은 관계들이 화석처럼 굳어져 무감각한 일상이 되어 버릴까봐.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드라마든 소설이든 열린 결말이나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뒤에는 찜찜함이 따라온다. ‘그래서 그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동화 같은 끝맺음이 좋다. 밥을 먹고 나서 숭늉까지 마신 후의 개운함과 비슷한.

그런 걸 왜 좋아할까. 책을 덮고 나서 다시 한 번 내면을 들여다본다. 이미 알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동화 같은 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싶던 건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안간힘이었음을.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p269, 작가의 말)’ 애써 가리고 있던 위선이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다. 그래도 마음 한켠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상실감을 깊이 느끼고 글로 표현한 사람이 세상 어딘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조금은 덜 외롭게 견뎌내며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읽는 내내 먹먹하고 답답하고 뭉클했지만 해피엔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후련하다. 슬픔을 슬픔으로 위로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실컷 울고 난 후에 느껴지는 따뜻한 개운함이었을까.

 

 

*p40,6째줄: 실을 요전까지 쓰다~ →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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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주로 일하던

어미의 소원은

이팝꽃처럼 솔솔

갓 지어낸 밥 한 공기

내 새끼 뱃속에 담아

배불리는 것이었다

 

부처님 공양하고

남은 밥 찐 도시락

어느 날 삭아버려

축 늘어진 이팝꽃

자식은 밥을 버리며

철없이 투덜댔다

 

30년 뒤 절 마당

갓 지어낸 밥 한 공기

이팝꽃처럼 솔솔

지어주고 싶었지

버려진 이팝꽃은

노모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뜨겁게

피어나고 있었다

 

 

* 2017. 5. 20. H백일장(글제: 이팝꽃이 피면),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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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4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4 0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방향으로만 가던 삶이었다. 고지식하고 소심하고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아까 오다가 봤던 떡볶이 집, 학교 끝나고 가볼래? ? 그런 게 있었어? 등하굣길을 같이 오가던 친구가 본 것을 못 볼 정도로 걸을 때조차 앞만 보던 아이였다. 그런 삶을 걸어 중학교 과학 교사가 되었다.

직진만 하는 빛이었던 나는 수업은 그런대로 잘했다. 하지만 간혹 아이들과 면담을 하거나 생활지도를 할 때면 스스로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껴야 했다. 모범생들에게는 더없이 바람직한 교사였으나 소위 날라리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꽉 막힌 교사였다.

몰려드는 학교 일에 육아와 가사를 더한 삶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30대 후반까지 회색빛 시간은 강한 탄성력으로 나를 찾아왔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넘쳐나던 일들은 무거운 자석이 된 몸에 철가루처럼 들러붙었다. 밤이 되면 몸은 쭉 가라앉았고 마음은 텅 비어 황량한 바람으로 그득했다.

 

샘은 되게 자유롭게 보여요.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반의 방과후 수업을 하고 난 후였다. 앞자리에 앉은 녀석이 킥킥 대며 말을 건넨다. 뿌듯해진 나는 훗~ 썩소를 날리며 상큼한 바람이 되어 쉬는 시간 속으로 정신없이 빠진 복도를 휘리릭 날아갔다.

그랬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녀석들의 ** 샘은 달라져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웃는 자연인이었고, 가끔은 썰렁한 농담으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어설픈 개그맨이었으며, 아픔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편안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담자였다. 더 이상 한 방향만 바라보지 않는, 둘레둘레 주변을 살피는 교사가 된 나는, 큰 딸이 가장 존경하는 친구 같은 엄마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전과 달라진 삶의 터닝 포인트를 찾아 시간을 조금씩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은 시 한 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먹먹한 일이지만, 2005, 근무하던 학교의 한 아이가 자살을 했다. 전날까지 그 반 수업을 했기에 한동안 나는 심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어찌할 바 모르는 마음 끝에 마음의 색맹이라는 시를 썼다. 내 옆 자리는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우연히 시를 본 선생님께서는 문장을 조금 수정해주셨다. 어순만 바뀌었을 뿐인데 느낌이 확 달라졌다. 소질이 있으신데요? 글을 써보세요. 제가요?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배경지식이 워낙 습자지처럼 얄팍해서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책을 좀 읽어보시는 건 어떠세요? 얼마 뒤 선생님은 교육에 관한 책을 소개해주셨고 가끔씩 다양한 장르의 책을 권해주셨다.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적어보고 독후감을 써보라고도 하셨다. 내 삶의 길에 책들이 한 권 두 권 레드카펫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12여년을 책과 함께 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 되어 꾸역꾸역 책을 읽었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멘트처럼 책과 함께 한 모든 날들이 좋았다.’라 외치지는 못하겠다. 700쪽이 넘는 기세춘의 장자를 읽을 때에는 토할 뻔했다. 책을 펼친 날보다 베고 잔 날이 더 많았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한 제자가 전화할 때마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 뭐하세요? , 책 읽어. 곧 주무시겠네요? 책 읽는 속도가 느렸던 나에게 독서는 차라리 스스로 선택한 고행이었다.

 

마을에 독서 모임을 같이 만들어볼래요? 2008, 마침 사는 동네가 같았던 선생님께서는 지역의 청소년문화의집을 거점으로 하여 청소년 독서모임을 제안하셨다. 제가요? 전공도 아닌데 어찌. 책 읽는 데 전공 구분이 있나요? 뭐든 3명만 되면 시작할 수 있어요. 선생님의 수업과 책을 좋아하는 제자 두 명을 포섭하여 4명으로 출발했다. 2009년에는 어린이 독서모임을, 2010년에는 성인 독서모임이 만들어졌다. 자발적인 모임이기에 구성원들은 수시로 변동되었다. 매월 같은 책을 한두 권 읽고 토론을 했는데,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15명이 넘어설 때도 있었다. 꾸준히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 하셨다. 모임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업그레이드되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내공을 키운 나는 어린이 독서모임의 진행자가 되었다.

 

2012, 인터넷 서점에 리뷰를 써보는 건 어때요? 독서모임 3종 세트에 매달 두 권 정도씩, 최소 5~6권의 책을 읽고 토론 자료를 제작하는 데 슬그머니 지쳐갔던 내게 선생님은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의 리뷰를 시작으로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서재에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다. ‘책이 자꾸 자신을 만나게 한다.’던 작가의 말처럼 지금까지 100편의 리뷰를 올리며 100번 이상의 나를 만났다. 걸어오는 중간에 시에 매료되어 오늘까지 349편의 시를 올렸다.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품게 되었다.

 

빛은 매질을 경계로 굴절한다. 내 삶은 선생님을 만나고, 450여 권의 책을 매질로 만나면서 서서히 바뀌어가며 빛이 났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은 멀고, 그보다 더 먼 길은 발바닥까지 가는 길이라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어둡고 소외되고 낮은 곳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다가갔다. 둘째 아이와 촛불을 들며 구호를 외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하게 의사 표현을 했다. 아직은 발바닥만 가끔 들썩일 정도로 많이 부족하지만, 머지않아 마음 가는 곳으로 용기 있게 뛰어갈 날이 올 것이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라고 한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나는 나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 2017. 5. D수기 공모전(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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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1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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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1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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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속 화석인 양

굳어버린 몇 글자

덤덤하게 박힌 채

스쳐가던 이름인데

당신이 걸어온 자취

숨죽이며 따라가 보니

어느 순간 내 심장이

욱신욱신 꿈틀댑니다

 

눈가엔 붉은 꽃잎

코끝엔 맑은 이슬

두 손은 축축해지고

두 볼은 달아올라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바닥으로

어느 순간 내 시간이

덜컹덜컹 흔들립니다

 

사십구 년 나의 삶은

나만 보며 평범했는데

사십구 년 당신 삶은

조국을 보며 치열했군요

사람으로 살기 위해

행동으로 살기 위해

죽음까지 당당했던

마지막까지 한결같던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죽는다하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산다하는가

죽어도 죽지 않은

당신의 쟁쟁한 외침

내 삶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갑니다

 

백십 년을 건너온

당신의 굳은 의지

내내 숭고한 숨결로

내 숨결로 이어져

여전히

생생합니다

아직도

뜨겁습니다

 

스키드 마크처럼

선명하게 새겨진 이여!

서서히 뜨거워지는

나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해갈까요

지금

살기 위해

나는

 

 

* 2017. 6. I추모글쓰기대회, 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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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1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1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