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 첫화면에 뜨는 구글 홈페이지의 로고가 어째서인지 흑백으로 나와 있기에 눌러보니 지난 12월 29일에 무려 100세의 나이로 사망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거행되는 현지 시간 1월 9일이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된 까닭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여객기 사고로 인해 지난 주 내내 국가 애도 기간이었다. 그 여파로 방송이며 공연 등이 줄줄이 연기되고, '나는 많이 추모하는데 너는 왜 덜 추모하느냐'며 꼬투리 잡는 경우까지 생기자, 강요된 추모에 불만도 속출한 듯하다.


검색해 보니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국가 애도 기간은 천안함과 이태원에 이어서 이번 여객기 사고까지 모두 세 번 선포되었으며, 하루짜리 국가 애도의 날은 천안함과 9/11 때에, 그리고 의외로 1972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사망 때에 선포되었다고 한다.


트루먼이라면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었던 사람 중에 하나였다. 원래는 부통령이었다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대통령 직위를 승계하게 되었는데, 누가 봐도 대통령 감까지는 아닌 소박한 인물이다 보니 우려를 자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다가 갖가지 난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보니 새로운 정부 출범부터 미국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렵사리 재선에까지 성공하며 비교적 무난하게 임기를 마치게 되었다.


지금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순위를 매길 때에 10위권 내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나름대로의 인기 대통령이지만, 재임 중에만 해도 트루먼은 솔직하다 못해 거칠게까지 느껴지는 돌출 발언 등으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르는 등 전반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트루먼보다도 한층 더 인기가 없었던 대통령이 바로 최근 사망한 지미 카터이다. 우리에게는 퇴임 후의 각종 특사며 평화 운동 등으로 널리 알려지며 좋은 이미지를 쌓았지만, 재임 중의 카터는 연이은 정책 실패로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대통령이었다.


그나마 트루먼은 재선에도 성공했지만 카터는 재선에도 실패했고, 역대 미국 대통령의 평가에서도 트루먼은 갈수록 순위가 높아지는 반면 카터는 여전히 바닥 근처를 헤매고 있는 실정이니, 퇴임 후의 좋은 이미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의외로 보일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카터야말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 무능이 드러나는 지위까지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의 사례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트루먼 같은 예외도 있으니 법칙까지는 아닌 것도 같지만, 최근 한국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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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알라딘 중고샵을 기웃거리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경상도 사투리로 옮긴 <애린 왕자>라는 책을 발견했다. 지역 방언으로 구술하거나 저술한 책이 나온 경우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해외 유명 고전까지 사투리로 옮긴 경우는 처음 보는 셈이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십중팔구 누가 진반농반으로 만든 이벤트성 출판물이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최근 다시 알아보니 경상도 버전 <애린 왕자>에 이어서 전라도 버전 <에린 왕자>와 강원도 버전 <언나 왕자>까지 나와 있었다. 심지어 다른 출판사에서는 제주도 버전 <두린 왕자>까지 만들어서 내놓았다!


이쯤 되면 <어린 왕자>의 사투리 번역물 제작이 수년 전의 온갖 복각본과 초판본과 대만 카스테라와 탕후루처럼 일종의 유행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서울 버전 <어린 왕자>는 물론이고,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89-31 버전 <알라딘 왕자>'도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왜 하필 <어린 왕자>일까? 그야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번역본만 해도 부지기수일 터인데, 그 내용의 모호함 역시 인기를 더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랑스어 전공자인 지인의 말로는 원문 자체도 사실 그리 쉽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 문장이라던데.


왜 하필 사투리일까? 이건 솔직히 나귀님도 모르겠다. 다만 일단 프랑스어에서 표준어로 번역하고, 다시 사투리로 번역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으리라 짐작해 보면, 십중팔구 어떤 필요보다는 단순한 재미 때문에 만든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심지어 한 출판사가 세 종이나 냈으니까.


그렇다면 정작 그 지역 출신으로 사투리를 아는 독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마침 제주도 출신인 바깥양반에게 알라딘 미리보기에 올라온 <두린 왕자>를 보여주었더니, 처음에는 우스워하더니만 조금 읽다 말고 뭔가 좀 어색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현대식 표기법을 고수해서 생긴 한계일까.


제주어의 경우에는 민속학자 진성기가 채록한 자료집이 여러 권 있는데, 그중 <남국의 민담>과 <남국의 민요> 같은 책을 보면 아래아('아'와 '오'의 중간 발음이라는데, 때로는 둘 중 하나로 발음하는 듯하다) 표기를 비롯해서 미묘한 현지 발음을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다. 


진성기는 제주도 출신으로 해방 이후 현지 민속 연구를 사실상 개척한 선각자라고 할 수 있는데, 사설 박물관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지역 관청에 밉보여 골탕을 먹기도 하고, 지인에게 크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알고 있다. 저서로 '제주민속총서' 20여 권이 있다.


'제주민속총서'에는 신화, 전설, 민담, 민요, 무가 등 다양한 자료가 담겨 있는데, 검색해 보니 이와는 별개로 진성기가 신약성서 "마가복음"을 제주도 사투리로 번역한 단행본도 간행했다고 하니, 이것 역시 지역 방언의 특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투리라면 한때 표준어에 어긋나는 나쁜 습관처럼 간주되어 고쳐야 할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보다는 영어 학습에서 흔히 말하듯 일종의 이중언어구사능력이라고 바라보는 편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프리카나 인도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한 사람이 여러 부족의 언어를 구사하듯이 말이다.


약점 대신 장점이라 생각하면,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도 제법 신선한 특기일 수 있겠다. 서울 출신 나귀님도 진성기 책에서 배운 민담 "청가개비"를 명절마다 구연해서 제주도 노인네들에게 삥 뜯고 있으니 <에린 왕자>나 <두린 왕자>를 구매한 독자들도 한 번 도전해 보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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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얼핏 보니 알라딘에서 이동식 책 선반을 사은품으로 주는 이벤트를 하는 것 같더니만,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아예 굿즈로 만들어 2만 원대에 판매하는 모양이다. 정식 명칭은 본투리드 3단 트롤리라는데, 쉽게 말해 바퀴가 달려 끌고 다닐 수 있게 만든 플라스틱 3단 선반이다.


그런데 나귀님 경험상 저런 물건은 생각만큼 유용하지도 않고 튼튼하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알라딘 트롤리는 한 칸이 폭 45센티, 깊이 26센티, 높이 25센티로 나오는데 일반적인 신국판 도서 규격이 가로 15센티, 세로 22센티이므로, 아무리 많이 넣어 보아야 한 칸에 한 줄씩만 들어간다.


예를 들어 집집마다 한 질씩은 있을 법한 '해리 포터' 시리즈의 구판을 가지고 알아보자면, 1999년에 나온 <마법사의 돌> 1권이 신국판, 236쪽, 두께 2센티, 무게 458그램이다. 단순 계산하면 트롤리 한 칸에 22권이 들어가는데, 문제는 '해리 포터 시리즈' 완질이 무려 23권이라는 거다.


어찌어찌 쑤셔넣어서 한 칸에 전23권 완질이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알라딘 트롤리가 모두 3칸이므로 결국 해리 포터 완질 3세트 총69권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각 권의 무게가 1권과 동일하게 458그램이라 가정하고 계산해 보면, 완질 3세트의 무게는 30킬로그램이 넘어버린다.


알라딘 트롤리의 상품 정보에는 안전 하중이 선반당 3.5킬로그램, 총10.5킬로그램이라고 나온다. 결국 해리 포터 구판과 비슷한 신국판 도서로 세 칸을 욕심껏 채우면 무게 한도의 세 배를 초과해서 파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빈 공간이 아까워도 해리 포터 한 세트 이상은 무리이겠다. 


그런데 최근 새로 나온 해리 포터 20주년판은 전23권의 무게가 12.7킬로그램에 달한다니, 겨우 한 세트만으로도 알라딘 트롤리의 무게 한도를 초과하는 셈이다. 혹시나 구판이나 양장본이나 일러스트판이나 원서나 기타 관련서까지 올려둔 광팬이라면 혹시나 망가질까 조마조마하지 않겠나.


판타지 소설만의 문제도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단독 저서 16종의 무게가 총5킬로그램인데, 공저와 선집과 특별판까지 합치면 10킬로그램 가까이 되어서 역시나 아슬아슬하다. 구판이나 영역본까지 정성껏 모아둔 사람이라면 파손 가능성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에 알라딘 트롤리는 결국 실용성이라고는 떨어지는 장식용 가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세 칸이나 되지만 한 칸만 책으로 가득 채워도 파손 위험이 있다니, 실제로는 상품 소개 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처럼 책이 아닌 다른 물건이나 담으라는 뜻이 아닐까.


나귀님처럼 책을 제법 가진 사람들이 이런 제품들을 불신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디자인이나 재질이나 간에 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책을 안 보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판매하는 제품이다 보니, 실제로 책을 보고 쌓아두는 사람에게는 불편하다는 것이다.


책이 하찮아 보여도 열 권, 스무 권이 모이면 그 무게는 상당하다. 그러니 책을 쌓아 두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 세상 그 어떤 책장도 허술해 보일 수밖에 없다. 넣으라는 공간마다 최대한 넣다 보면 가로판은 아래로 늘어지고 세로판도 옆으로 휘어져서 머지않아 못과 나사로 보강해야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책장도 책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으니, 이동식 트롤리 따위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때 나귀님도 커다란 텔레비전을 너끈히 지탱한다는 이동식 받침대를 동네 가구점에서 구입해 보았는데, 책을 올려놓으니 일주일도 못 가서 플라스틱 바퀴가 망가지고 말았다.


고심 끝에 발견한 해결책은 화물 운반용 달리였다. 택배 기사가 물건을 담아 끌고 다니는 초록색 카트와 유사한 물건인데, 손잡이 없이 빨간색 바퀴와 초록색 상판만 있는 것을 달리라고 한다. 가로 40센티, 세로 60센티짜리 소형 달리 다섯 개를 구입해서 2단 책장을 두 개씩 올려 놓았다.


2단 책장 두 개면 대략 신국판 서적이 200권쯤 들어가는데, 달리 한 대에 최대 100킬로그램까지는 버틴다고 하니 끄떡없다. 물론 무게가 상당하다 보니 밀어서 움직이기도 아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퀴가 빠지거나 우그러지는 등 망가지는 조짐은 20년 가까이 되는 지금까지도 없어 보인다.


책을 가진 사람이 이동식 책장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이동의 편리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공간의 효율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동식 책장이 있더라도 수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넓은 공간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언제라도 공간을 창출할 준비를 갖춘다는 의미일 뿐이다.


나귀님도 처음 달리를 이용해서 튼튼한 이동식 책장을 만들었을 때에는 이리저리 굴려서 이런저런 공간을 연출해 보며 큰 만족감을 느꼈고, 나중에 예정에도 없던 부엌 공사를 할 때에는 줄줄이 방으로 입장시켜 창출한 마루 공간에 부엌 살림을 쌓아두는 등 상당히 유용하게 써먹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책을 사는 사람의 욕심이 끝없다는 점이다. 이동식 책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빈 자리, 즉 책장이 옮겨갈 여유 공간이다. 그런데 책을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공간이 모자라게 마련이니, 책을 사다 보면 언젠가는 이동식 책장에 필요한 빈 자리에조차도 책이 쌓여 버리고 만다. 


지금 나귀님의 마루 풍경이 딱 그러하니, 한때 어디로든 굴러다닐 수 있었던 이동식 책장도 지금은 앞뒤며 옆쪽까지 이런저런 책더미에 가로막혀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그 책더미만 치우면 다시 움직일 수 있겠지만, 그 가동 범위도 예전보다는 현격히 줄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동식 책선반에 가장 혹할 만한 사람이야말로 정작 그 제품의 혜택을 가장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오히려 책을 모으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알라딘에서 판매하는 것과 같은 작고 소중한 이동식 책선반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25. 03. 04. 추가: 최근 알라딘에서는 '트롤리'와 유사하지만 형태는 다른 '북 카트'라는 물건도 내놓은 모양인데, 이것 역시 무게 한도가 10킬로그램이니 '해리 포터' 한 질을 싣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낱권 스물세 권 가운데 뭘 싣고 뭘 싣지 말아야 할지, 어떤 권을 집어넣고 어떤 권을 뺄지 고민하는 탓에 밥맛도 없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으며, 짜증이 늘어 주위 사람과 곧잘 다투고, 부부 관계도 냉랭해지다 못해 험악해져서 출산율 급감에 일조하게 되지 않을까. 나귀님 입장에서 보자면 솔직히 왜 만들고 왜 사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물건이긴 하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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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황의 허드슨 강변 중국사 에세이를 계속 읽다 보니, 풍도라는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대목이 있었다. "전통적인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안다. 그리고 천지의 많은 일들을 모두 동일한 도덕 기준으로 측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편협한 역사관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예외의 일도 있으니, 풍도와 같은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하겠다"(325쪽)


그제야 <풍도의 길>이라는 책을 예전에 사다 놓은 것이 기억나서 책장에서 꺼내 놓았는데, 차일피일 하다가 이번 주말에 다시 생각나서 결국 완독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레이 황의 평가를 통해 그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까닭이고, 또 한편으로는 대통령과 총리가 줄줄이 탄핵된 상황에서 대행의 대행을 맡아 사상 최악의 여객기 사고 등 각종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어느 불운한 관료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풍도의 길>은 제목 그대로 중국 오대의 관료 풍도(882-954)의 전기인데, 구입 당시에는 그 소재보다 저자며 작품 자체의 이력이 더욱 흥미로웠다. 저자 도나미 마모루는 교토 대학에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제자였으며, 대학원 졸업 직후인 30세 때에 "중국인물총서"라는 전집에 들어갈 풍도의 전기를 저술했다. 이후 그 내용을 보완해 문고본으로 재간행한 것이 <풍도의 길>의 번역 대본인 <풍도: 난세의 재상>이라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진순신 등이 공저한 <영웅의 역사>(전10권)가 번역되었는데, 과거 일본에서는 이런 식의 중국사 인물 전기 시리즈가 유행한 모양이다. <풍도의 길> 초판이 포함된 "중국인물총서"도 그중 하나로서 1966-1967년에 전24권으로 간행되었고, 유방과 항우부터 강희제와 모택동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을 망라했다. 그중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수양제>와 카노 나오사다의 <제갈공명>은 우리나라에도 나왔다.


풍도는 중국의 당송 왕조 전환기에 해당하는 오대십국 시대(907-979)에 살았던 사람으로, 이른바 '오대'에 해당하는 "다섯 왕조, 여덟 성씨, 열한 군주"[五朝八姓十一帝]를 연이어 섬긴 유별난 이력으로 유명한 관료이다. 70대까지 장수하면서 무려 50년간이나 고위 관직을 역임했고, 그중 20년간은 오늘날의 총리 격인 재상으로 재직했으니, 이처럼 남다른 이력만 놓고 보아도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대의 여러 왕조는 변방의 유목 민족 출신으로 무력을 중시한 까닭에 군신간에는 물론이고 가족간에도 유혈 사태가 그치지 않았을 만큼 난폭했었으니, 한인 풍도의 장기 재직은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급기야 후세의 역사가 중에서도 의리를 중시한 쪽에서는 아첨꾼이자 기회주의자라 혹평하고, 실리를 중시한 쪽에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라 호평하는 등, 풍도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역시 극과 극을 달렸다.


물론 풍도가 실력 없이 아첨에만 능한 사람이었다면 그처럼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아무와도 다투지 않고, 뇌물을 일체 거절했으며, 겸손한 언행을 유지하고, 군사 정책에 관여하지 않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기에 힘썼다. 이단적 사상가로 유명한 이탁오는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는 맹자의 말을 빌려 풍도의 소신을 요약했는데, 전쟁이 지속되는 세상에서는 참으로 귀한 태도였다.


오대 다섯 왕조를 거치며 권좌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풍도는 사회 안정을 위해 가급적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려 노력했다. 그중에는 출판과 관련된 사업도 있었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내용이 들쑥날쑥해서 통일되지 않은 구경(九經)의 교정본을 인쇄 간행한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무려 21년에 걸쳐 진행된 이 사업을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이룩한 업적에 버금간다고 바라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물론 풍도라고 해서 항상 옳기만 했던 것까지는 아니었다. 성격상 매사에 온건한 해결을 도모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무리하지 않으려다 보니 항상 남의 눈치를 볼 수 없었고, 때로는 군주나 군대의 불의와 난폭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군주를 섬긴 것 역시 보기에 따라서는 보신과 배신을 거듭했다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했을 터이니, 지조를 중시했던 선비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풍도의 유명한 일화를 살펴보면 역시나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승전 기념으로 약탈을 허락한 거란의 군주에게 '부처도 할 수 없는 일을 전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간언하여 무고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막았던 일이다. 일신의 안락만을 도모했다는 한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와서는 풍도의 실리주의 노선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법하다.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의 중국 관료는 그렇다 치고, 이쯤 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또 다른 관료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무려 '대통령 대행 겸 국무총리 대행 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가진 인물인데,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갑작스레 급변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떠밀려서 마지못해 국가의 수장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 아니겠는가.


일각에서는 박근혜와 윤석열 정부 모두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갑작스레 탄핵 역풍을 두 번이나 맞았으니 지독히 관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오는 모양인데, 설상가상으로 대행의 대행이 되자마자 초대형 사고까지 터졌으니 그런 하마평조차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판이다. 이제 좋건 싫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니, 이런 그가 과연 통치자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한 풍도의 소신을 따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글을 마무리하고 나서 검색해 보니, 풍도가 처세술에 대해서 적은 글인 "영고감"을 번역 해설한 <소인경>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원문과 번역보다 해설이 너덧 배는 더 많은 것으로 미루어 '풍도'보다는 '처세'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부 내용은 살짝 의아하기도 하다. 서문에서는 풍도의 호 "장락로"(長樂老)를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노인"(7쪽)이라고 해석했던데, 도나미 마모루의 설명에 따르면 풍도의 가문이 시평(始平)과 장락(長樂)이라는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장락 출신의 노인"이라는 뜻일 뿐이라기 때문이다. <풍도의 길>은 아쉽게도 현재 절판인데 나중에라도 개정판이 나오면 좋겠다. 오대십국 시기에 대한 단행본 자체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참고 자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울러 초판에서 빈번했던 초보적인 수준의 오타는 제발 좀 고쳐졌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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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예배에 가서 새벽에 들어온다는 바깥양반을 기다리며 새해 벽두에 카프카의 초단편 "법의 문 앞에서"를 읽어보았다. 여당이며 야당이며 저마다 법을 내세우며 대치 중인 시국이라,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가마저 과연 어떤 법이 어떤 법을 누를 수 있는지조차 설왕설래하는 상황이니, 도대체 법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까닭이다.


물론 카프카의 작품답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 남자가 법의 문 앞에 다가섰는데, 문지기에게 입장을 요구하지만 들어주지 않는다. 힘으로 통과하더라도 그 안에는 더 많은 문지기가 있다는 말에 남자는 포기하고, 이후 오랜 시간 법의 문 앞에 앉아서 문지기를 설득하며, 언젠가는 그곳을 통과하고 말겠다는 희망인지 착각인지에 빠져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가 결국 노쇠하여 숨을 거두기 직전에야 그는 '왜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이 법의 문을 통과하러 오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고, 마치 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한 문지기로부터 '왜냐하면 이 법의 문은 오로지 당신만이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곧 죽을 예정이므로 나는 이제 이 문을 닫아 걸겠다'는 답변을 얻는다.


젊어서 읽었을 때에는 카프카 특유의 역설과 부조리가 담긴 작품 중 하나로 간과하고 넘어갔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일단 법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만 놓고 보아도 이래저래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이 본래 미완성작 <소송>에 등장하는 작중작이었다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제목에서 가리키는 사법 절차가 줄곧 헛바퀴만 돌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를 구글링해 보니,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는 힘 없는 개인에게 불친절한 법의 부조리를 비판했다는 해석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원칙적으로야 주인공의 입장을 허가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주인공의 입장을 불허하는 저 불가해한 문의 성격마냥 법 자체가 모순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며칠 전에 생중계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 시도를 지켜보니, 마치 카프카의 작품 속 내용과도 유사한 모순과 부조리가 현실에서 펼쳐진 셈은 아닌가 싶어 한심할 수밖에 없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을 법에 의거해 체포하려는 법의 집행자들이 또 다른 법에 의거해 법을 위반한 사람을 지키려는 또 다른 법의 집행자들에게 가로막힌 셈이었으니까.


법의 보호 대상인 대통령을 법의 명령에 따라 체포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아니, 애초부터 법을 수호하기로 약속한 대통령이 법을 어긴 것 자체는 정당한가? 흥미로운 사실은 마치 법의 정의와 한계에 대한 논란처럼 보이는 이런 모순과 대치가 실제로는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의지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의지가 법을 왜곡해 모순을 만든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검사 출신의 법잘알이고, 그를 체포하려는 사법 기관은 물론이고 그를 반대하고 두둔하는 입법 기관의 여야 정치인들조차도 모두 법잘알이다. 저마다 법에 대한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의견조차도 맞서고 엇갈려서 대치를 이어 나가고 있으니, 카프카의 소설에 나온 남자와 유사한 수많은 법알못의 처지야 굳이 말할 필요조차도 없을 법하다.


비상 계엄 이후 현재까지 법과 법의 대치 상황은 법에 대한 준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약점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우리 역사에 기록될 법하다. 물론 이런 대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가깝게는 트럼프의 지난 임기에 벌어진 미국 의회 공격 사태가 있었고, 멀게는 민주주의의 온상인 고대 그리스에서도 비일비재했으니까.


일각에서는 문자 그대로 민중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상적으로 간주하는 고대 그리스에서조차도 일각의 지적처럼 민주주의는 변덕스럽고 예측불허라 불안정한 체제였다. 애초에 민주주의 자체에 큰 기대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그래서인데, 최근 한 달 간의 한국 정치 상황은 그런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이니 더욱 민망하기 그지없다.


현직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벌어진 법과 법의 대치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같이 법잘알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들어가려는 사람과 막아서는 사람, 또는 끌어내려는 사람과 나오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나뉘어 벌이는 대결이야말로 카프카가 묘사한 저 법의 문 앞에 섰던 두 사람의 대치 상황 못지않게 기묘하다는 점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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