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NBC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방영 50주년을 맞이한 모양이다. 그렇잖아도 얼마 전부터 역대 출연자와 게스트가 총출동한 기념 영상이 유튜브에 연이어 올라오더니만! 30주년 때 제작진과 출연진의 인터뷰집이 나왔기에 읽어보려고 사다 놓았는데, 차마 완독하기도 전에 또다시 세월이 흘러 50주년이라니, 이래저래 세월무상이다.
이 프로그램의 전성기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였는데, 지금은 전설이 된 존 벨루시, 댄 애크로이드, 빌 머리, 체비 체이스, 에디 머피 등의 코미디언이 출연진으로 활동한 시기였다. 나귀님은 1990년대 초반부터 AFKN으로 시청했는데 데이너 카비, 필 하트먼, 마이크 마이어스 등이 주축이 되고 로브 슈나이더와 애덤 샌들러가 신인으로 등장했던 시절이다.
이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인기를 얻어 장편 영화로 각색된 경우도 여럿인데, 벨루시/애크로이드 콤비의 <블루스 브라더스>(1980)와 카비/마이어스 콤비의 <웨인스 월드>가 대표적이다. 나귀님이 재미있게 본 줄리아 스위니의 <잇츠 팻>(1994)도 영화화되었는데, 성 정체성이 모호한 외모로 번번이 주위를 난감하게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웃음 포인트였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우리나라에서도 <SNL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고 있는데, 처음에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가 <여의도 텔레토비>를 위시한 정치 풍자로 인기를 끌었고, 신동엽의 합류 이후로는 갖가지 수위 높은 묘사로 인기를 끌었다. 아울러 김민교, 김원해, 김슬기, 정명옥, 정성호, 정상훈, 주현영, 김아영 등 저평가된 배우가 재발견되었다.
정치 풍자의 경우에는 <여의도 텔레토비> 시절 여당에서 문제 제기가 들어오자 납작 엎드리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한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지금은 일반 풍자에 대해서도 일부 시청자의 문제 제기로 인해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인기 드라마 패러디인 "더칼로리"와 "젖년이"의 경우, 실존 인물 한강과 하니의 분장과 성대모사의 경우가 그랬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어차피 코미디인데 그 내용을 가지고 정색하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기는 한다. 정치인의 편협함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이제는 일반 시청자의 기분까지도 따져야 하는 걸까. 내가 기억하기에 <SNL 코리아>의 원형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마치 '불가능은 없다'는 듯 이보다 훨씬 수위 높은 내용을 서슴없이 방영해 왔으니까.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정치 풍자는 무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구토(!) 사건 패러디였다. 1992년에 부시가 일본을 방문해서 만찬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구토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방영되어 충격을 안겼는데, 당시 68세였던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부각되면서 결국 재선에 실패한 단임 대통령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는 당시 부시 역할을 도맡은 데이너 커비가 구토 장면을 재연하고, 필 하트먼이 <JFK>의 감독 올리버 스톤 역할을 맡아서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겠다며 해당 장면을 반복해서 재생하고 역재생(!)하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지지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겠지만, 정작 부시는 말년까지 커비와 친분을 유지했다고 전한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이 프로그램의 간판과도 같아서, 이번 트럼프 당선 직후에도 그간 노골적인 비판을 가한 것을 사과하는 척 하다가 '앞으로도 놀려먹을 거리가 생겨 신난다'며 태세 전환을 보여주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과 정치인뿐 아니라 그 지지자들의 심기라도 건드릴까 노심초사하니, 이것 역시 민주주의가 덜 발달한 증거일 수 있겠다.
원판은 19금 묘사도 대단했는데, 어째서인지 배우 커스티 앨리만 게스트로 나왔다 하면 남성 출연진이 줄줄이 나타나 키스를 퍼붓고, 그 수위가 점점 올라가다 못해 나중에는 성행위 묘사까지 등장하기도 했었다! 그런가 하면 문학상 시상 패러디에서는 하트먼과 스위니가 가브리엘 가르시아마르케스와 수전 손택으로 분장했을 정도로 풍자의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일부 내용은 당시의 국내 프로그램이 그대로 베껴먹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패트릭 스웨이즈의 <사랑과 영혼> 패러디이다. 죽은 남자가 유령이 되어 찾아왔다가, 방귀와 트림을 비롯해서 애인이 혼자 있을 때 하는 온갖 지저분한 버릇을 목격하고 질겁해서 도망간다는 내용인데, 듣자 하니 나중에 이경규가 "시네마 천국" 코너에서 그대로 베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웃겼던 오프닝은 매컬리 컬킨 편이었는데, 당시 겨우 11세였다.(물론 최연소 기록은 무려 7세에 게스트로 출연한 아역 선배 드루 베리모어가 여전히 갖고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컬킨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뚱보' 크리스 팔리를 때려눕히고, 벌칙으로 배우 대기실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뉴욕 생방송, 토요일 밤!"이라는 시작 구호를 외친다.
원래는 이 구호와 함께 출연진이 소개되고 관객의 박수 속에 게스트가 무대에 등장하는데, 컬킨의 경우에는 막상 무대에 올라와 보니 스튜디오가 텅 비어 있다. <나 홀로 집에>처럼 모두가 그를 깜박하고 남겨둔 채 떠나 버린 것이다. 혼자가 된 컬킨은 스튜디오 곳곳을 돌아다니며 놀고, 뒤늦게야 실수를 깨닫고 돌아온 제작진과 상봉하여 다시 쇼를 시작한다.
매컬리 컬킨이라면 한때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몰락한 아역 배우라는 인상이 짙은 듯하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이가 벌어 놓은 막대한 재산을 둘러싸고 소송전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아역 배우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할 때에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역변의 아이콘" 재키 쿠건의 사례를 계기로 제정된 법률 덕분에 재산은 보전한 모양이다.
아역 배우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사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안성기나 강수연이나 윤유선 같은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김민희나 안정훈이나 이민우처럼 연기력이 뛰어나도 성인이 되어서는 오히려 외면당해서 입지가 줄어드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그나저나 이민우보다 선배였던 아역 배우 이종민은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아역 배우는 이재은인데, 8세에 <하늘아 하늘아>에서 혜경궁 홍씨 아역으로 나왔던 귀염뽀짝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후의 우여곡절 행보를 바라보며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물론 가장 씁쓸한 사례라면 '장닭'과 '금동이'처럼 범죄까지 저지르는 바람에 연예계를 떠나 쓸쓸한 최후를 맞은 경우라고 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세상을 떠난 배우 김새론도 아역으로 유명했었는데, 잘못된 선택이 반복되며 딱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안타깝다. 세상에는 재능이 있어도 행운이 없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행운이 있어도 재능이 없는 사람도 있으니, 두 가지 모두를 가졌다면 더 겸손하게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사후에까지 지속되는 논란을 지켜보니 그저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