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리를 하다가 이전에 알맹이만 꺼내 놓았던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구판 <일본단편문학선>과 <나는 고양이다 (외)>를 케이스에 도로 넣다 보니, 새삼스레 케이스 앞면 하단에 있는 그림에 눈길이 갔다. 무슨 옛날 필사본의 삽화에서 가져온 듯한 모양새인데, 알파벳이 적혀 있기에 뭔가 궁금해 검색해 보니 무려 중세 영국의 헤이스팅스 전투를 묘사한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의 일부였다!


헤이스팅스 전투는 1066년에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가 후사를 두지 않고 사망하면서, 그 왕위를 물려받은 잉글랜드 귀족 해럴드와 그 왕위를 넘기라고 주장하는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이 벌인 전투이다. 그 결과 해럴드가 전사하고 윌리엄이 승리하면서 막이 오른 이른바 '노르만 정복'은 이후 영국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이 사건을 기념하려 제작되었다.


높이 50센티미터에 길이 70미터에 달하는 이 초대형 직조물은 해럴드가 에드워드의 명령에 따라 노르망디에 가서 윌리엄을 만난 장면부터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가 윌리엄에게 패해 전사하는 장면까지 총58개 장면에 걸쳐서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정복 과정을 묘사했다. 을유 세계문학전집 케이스에 나온 부분은 그중 23번째와 24번째 장면의 일부로, 해럴드가 윌리엄을 만나고 돌아와 즉위하는 내용이다.


왜 굳이 이 장면을 케이스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을유문화사 50년사나 창업자 정진숙 회장의 전기 같은 관련 자료를 다시 뒤져 보면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늘 보면서도 몰랐던 내용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감개무량이다. 한편으로는 그림에 나온 라틴어 문장만 검색해도 대번 결과를 도출하는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되었다. 진짜 세상 참 좋아졌구나!



[*] 헤이스팅스 전투 자체를 다룬 단행본까지는 없지만, 글항아리에서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전기가 나오기는 했다.(번역도 편집도 영 엉터리인 출판사이지만, 그래도 책 고르는 눈썰미 하나는 인정할 만하다!) 기타 중세사며 전쟁사 관련서를 뒤지면 관련 내용이 나올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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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70년 만에 부활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제작'이라기에 뭔가 궁금해 살펴보니, "이즈의 무희"와 시기며 배경이 유사한 "소년"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아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제야 원고가 발견된 것까지는 아니고, 예전에 잡지에 연재되다 중단되고 이후 전집에 수록되며 완결되었다니, 결국 아는 사람은 다 알았던 작품이었다고 봐야 맞겠다.


물론 전집에만 완결된 형태로 수록되었고,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이유 때문인지 그닥 주목받지 못하다가, 수년 전에 일본에서 단행본으로는 처음 간행되어 화제가 되었던 것까지는 옳은 모양이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표현은 과하지 않나 싶다. 전집에만 수록된 다른 작품이며 미발표 원고도 여럿일 터인데, 그러면 그 대부분은 수십 년째 '사망' 상태라는 것일까.


이 작가의 번역서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한 <川端康成全集>(전6권, 新丘文化社, 1969)만 해도 사후에 간행된 일어판 전집 전35권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격이니, 앞으로도 수많은 '부활'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다른 일본 작가며 세계 작가로 범위를 넓혀 보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사실상 세상 거의 모든 문학 작품이 '부활'을 기다린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소년"은 신구문화사 전집의 연보에도 언급되었으니, 저자의 이력에서 아주 잊힌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미완성 시절에도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 "이즈의 무희"며 "16세의 일기"와 함께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어쩌면 '소년 시절 3부작'으로서 함께 놓고 봐야 할 작품일지 모른다.("16세의 일기"는 신구문화사의 전집에만 들어 있다).


그나저나 이번 사안을 핑계로 신구문화사 전집을 오랜만에 꺼내 뒤적이니, 최인훈이 공역자로 참가한 <동경 사람> 후반부를 실은 제6권 말미에 수록된 세 가지 부록이 눈에 띈다. 첫째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에세이 "가와바따 문학의 아름다운 모순", 둘째는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영원한 나그네", 셋째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아름다운 일본의 나"이다.


"가와바따 문학의 아름다운 모순"은 <설국>의 번역가이자 스웨덴까지도 동행해서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통역까지 담당했던 미국 출신의 일문학자 에드워드 G. 사이덴스티커가 (책에는 엉뚱하게도 "J. 사이덴스테커"라고 잘못 나왔다) 쓴 가와바타론이다. 도입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었을 당시 한국에 와서 여행 중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는 점이 흥미롭다.


"영원한 나그네"는 미시마가 감탄과 존경을 듬뿍 드러내며 쓴 가와바타론이다.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의 연세 지긋한 여직원이 가와바타의 팬이어서 <천우학>의 문학상 수상 기념 파티를 열었는데, "천 마리의 학"이라는 제목을 "천 개의 깃털을 가진 학"이라고 직역한 나머지 학 모양 장식을 달랑 하나만 올려 놓은 케이크를 내놓았다는 우스운 일화가 들어 있다.


이 글에서 미시마는 느긋하다 못해 무신경해 보이기까지 하는 가와바타의 평소 태도를 찬탄하지만, 사이덴스티커였다면 선뜻 동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저 소설가가 특유의 느긋한 성격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직전까지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면서, 그걸 번역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와바타는 "아름다운 일본의 나"에서도 유독 번역하기 힘든 일본 고시(古詩)며 인명을 줄줄이 인용하고 있었으니, 사이덴스티커의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짜증이 났을 것도 같다. 물론 그런 까다로운 성격까지 일일이 맞춰주며 보필한 것 덕분에 일문학자 겸 번역가로서 사이덴스티커의 주가가 급상승하며 입지가 튼튼해진 것도 사실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와바타의 인기는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에 반짝했지만, 이후로는 <설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절판될 만큼 한동안 시들해졌다. 이후 가르시아마르케스가 가와바타의 <잠자는 미녀>를 오마주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발표하고, 문학 전집 간행 열풍과 함께 이런저런 작품들이 재번역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나 싶더니, 또다시 대부분 사라졌다.


결국 제아무리 유명 작가라도 대표작 한두 가지를 제외하면 절판의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고, 소소한 작품까지 다 찾아 읽는 것은 극소수 열혈 독자의 몫인 듯하니, 이번에 자칭 '부활'한 <소년>은 과연 얼마나 갈지 지켜볼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문제의 '소년' 이름이 무려 '세이노'라는 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세이노의 또 다른 가르침'을 만났다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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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 광고 중에 "붉은 엄마" 운운하는 것이 있기에, 혹시 무슨 여성 공산주의자 이야기인가 궁금해 클릭해 보니, 빨갛긴 빨간데 빨갱이 이야기까지는 아닌 책이었다. 과민하지 않느냐고 핀잔을 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레드 엠마>, <레드 로자>, <레드 예니>라는 선례가 줄줄이 나와 있으니, 순진한 나귀님의 잘못이라고만 탓할 것도 아니다.


그중에서 <레드 엠마>는 아나키스트 에마 골드만의 자서전이고, <레드 로자>는 공산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전기 만화이며, <레드 예니>는 마르크스의 부인 예니 마르크스의 전기이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경우에는 아동 전기까지 몇 종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알고 있는데, 다방면의 여성 위인을 부각시키다 보니 벌어진 '에바'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 위에 언급한 3인 중 하나인 에마 골드만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지칭되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이건 노동운동가 마더 존스와 전염병유포자 장티푸스 메리에게도 붙었던 별칭이기도 했다. 장티푸스 메리의 경우에는 최근 들어 '억울한 피해자'라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지만, 실제로는 단속망을 피해 다니며 피해자를 양산한 무지한 범죄자일 뿐이다.


얼핏 보면 비판처럼 들리지만, 그런 별칭을 내놓은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면 오히려 칭찬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이라고 불렀고, 닉슨은 환각제 옹호자 티모시 리어리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불렀으며, 슈퍼맨은 배트맨을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불렀다고 하니까.


주말 사이에 뜬금없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까닭은 최근 한동훈이 이재명을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벌어진 갑론을박 뉴스 때문이다. 그걸 또 Most Dangerous Man in Korea라고 굳이 영어로 쓰니까, 정관사 The가 빠졌기 때문에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뜻이 되었다는 지적질이 민주당에서 나왔다고 하던가.


그런데 한국인 한정으로는 정관사 유무와 별개로 저 표현이 무슨 뜻인지 오해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 것이며, 곧바로 나온 반박에서 주장된 것처럼 정관사를 생략하는 사례도 없지 않은 듯하니, 민주당의 지적질 역시 '에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더'를 종종 빼먹는 것이야 정식 명칭이 '더불어민주당', 약칭이 '더민주'인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니까.


사실은 이런 식의 유치찬란한 치고받기야말로 오늘날 한국 정치의 저열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탄핵 심판을 앞두고 가뜩이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참으로 한가한 소리들을 하고 자빠진 것이 아닌가. 또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한동훈 때리기가 지난 대선의 윤석열처럼 민주당의 '도깨비 사과' 만들어주기 실책이 될 수도 있어 보이고.


그나저나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이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일 터이고. 이재명과 한동훈 모두 다음번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고 있을 터이니, 어쩐지 이 대목에서 밤마다 "골든글로브 3회 수상자"가 되는 꿈을 꾼다던 "골든글로브 2회 수상자" 짐 캐리의 발언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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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BC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방영 50주년을 맞이한 모양이다. 그렇잖아도 얼마 전부터 역대 출연자와 게스트가 총출동한 기념 영상이 유튜브에 연이어 올라오더니만! 30주년 때 제작진과 출연진의 인터뷰집이 나왔기에 읽어보려고 사다 놓았는데, 차마 완독하기도 전에 또다시 세월이 흘러 50주년이라니, 이래저래 세월무상이다.


이 프로그램의 전성기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였는데, 지금은 전설이 된 존 벨루시, 댄 애크로이드, 빌 머리, 체비 체이스, 에디 머피 등의 코미디언이 출연진으로 활동한 시기였다. 나귀님은 1990년대 초반부터 AFKN으로 시청했는데 데이너 카비, 필 하트먼, 마이크 마이어스 등이 주축이 되고 로브 슈나이더와 애덤 샌들러가 신인으로 등장했던 시절이다.


이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인기를 얻어 장편 영화로 각색된 경우도 여럿인데, 벨루시/애크로이드 콤비의 <블루스 브라더스>(1980)와 카비/마이어스 콤비의 <웨인스 월드>가 대표적이다. 나귀님이 재미있게 본 줄리아 스위니의 <잇츠 팻>(1994)도 영화화되었는데, 성 정체성이 모호한 외모로 번번이 주위를 난감하게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웃음 포인트였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우리나라에서도 <SNL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고 있는데, 처음에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가 <여의도 텔레토비>를 위시한 정치 풍자로 인기를 끌었고, 신동엽의 합류 이후로는 갖가지 수위 높은 묘사로 인기를 끌었다. 아울러 김민교, 김원해, 김슬기, 정명옥, 정성호, 정상훈, 주현영, 김아영 등 저평가된 배우가 재발견되었다.


정치 풍자의 경우에는 <여의도 텔레토비> 시절 여당에서 문제 제기가 들어오자 납작 엎드리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한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지금은 일반 풍자에 대해서도 일부 시청자의 문제 제기로 인해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인기 드라마 패러디인 "더칼로리"와 "젖년이"의 경우, 실존 인물 한강과 하니의 분장과 성대모사의 경우가 그랬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어차피 코미디인데 그 내용을 가지고 정색하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기는 한다. 정치인의 편협함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이제는 일반 시청자의 기분까지도 따져야 하는 걸까. 내가 기억하기에 <SNL 코리아>의 원형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마치 '불가능은 없다'는 듯 이보다 훨씬 수위 높은 내용을 서슴없이 방영해 왔으니까.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정치 풍자는 무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구토(!) 사건 패러디였다. 1992년에 부시가 일본을 방문해서 만찬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구토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방영되어 충격을 안겼는데, 당시 68세였던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부각되면서 결국 재선에 실패한 단임 대통령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는 당시 부시 역할을 도맡은 데이너 커비가 구토 장면을 재연하고, 필 하트먼이 <JFK>의 감독 올리버 스톤 역할을 맡아서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겠다며 해당 장면을 반복해서 재생하고 역재생(!)하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지지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겠지만, 정작 부시는 말년까지 커비와 친분을 유지했다고 전한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이 프로그램의 간판과도 같아서, 이번 트럼프 당선 직후에도 그간 노골적인 비판을 가한 것을 사과하는 척 하다가 '앞으로도 놀려먹을 거리가 생겨 신난다'며 태세 전환을 보여주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과 정치인뿐 아니라 그 지지자들의 심기라도 건드릴까 노심초사하니, 이것 역시 민주주의가 덜 발달한 증거일 수 있겠다.


원판은 19금 묘사도 대단했는데, 어째서인지 배우 커스티 앨리만 게스트로 나왔다 하면 남성 출연진이 줄줄이 나타나 키스를 퍼붓고, 그 수위가 점점 올라가다 못해 나중에는 성행위 묘사까지 등장하기도 했었다! 그런가 하면 문학상 시상 패러디에서는 하트먼과 스위니가 가브리엘 가르시아마르케스와 수전 손택으로 분장했을 정도로 풍자의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일부 내용은 당시의 국내 프로그램이 그대로 베껴먹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패트릭 스웨이즈의 <사랑과 영혼> 패러디이다. 죽은 남자가 유령이 되어 찾아왔다가, 방귀와 트림을 비롯해서 애인이 혼자 있을 때 하는 온갖 지저분한 버릇을 목격하고 질겁해서 도망간다는 내용인데, 듣자 하니 나중에 이경규가 "시네마 천국" 코너에서 그대로 베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웃겼던 오프닝은 매컬리 컬킨 편이었는데, 당시 겨우 11세였다.(물론 최연소 기록은 무려 7세에 게스트로 출연한 아역 선배 드루 베리모어가 여전히 갖고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컬킨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뚱보' 크리스 팔리를 때려눕히고, 벌칙으로 배우 대기실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뉴욕 생방송, 토요일 밤!"이라는 시작 구호를 외친다.


원래는 이 구호와 함께 출연진이 소개되고 관객의 박수 속에 게스트가 무대에 등장하는데, 컬킨의 경우에는 막상 무대에 올라와 보니 스튜디오가 텅 비어 있다. <나 홀로 집에>처럼 모두가 그를 깜박하고 남겨둔 채 떠나 버린 것이다. 혼자가 된 컬킨은 스튜디오 곳곳을 돌아다니며 놀고, 뒤늦게야 실수를 깨닫고 돌아온 제작진과 상봉하여 다시 쇼를 시작한다.


매컬리 컬킨이라면 한때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몰락한 아역 배우라는 인상이 짙은 듯하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이가 벌어 놓은 막대한 재산을 둘러싸고 소송전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아역 배우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할 때에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역변의 아이콘" 재키 쿠건의 사례를 계기로 제정된 법률 덕분에 재산은 보전한 모양이다.


아역 배우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사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안성기나 강수연이나 윤유선 같은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김민희나 안정훈이나 이민우처럼 연기력이 뛰어나도 성인이 되어서는 오히려 외면당해서 입지가 줄어드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그나저나 이민우보다 선배였던 아역 배우 이종민은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아역 배우는 이재은인데, 8세에 <하늘아 하늘아>에서 혜경궁 홍씨 아역으로 나왔던 귀염뽀짝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후의 우여곡절 행보를 바라보며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물론 가장 씁쓸한 사례라면 '장닭'과 '금동이'처럼 범죄까지 저지르는 바람에 연예계를 떠나 쓸쓸한 최후를 맞은 경우라고 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세상을 떠난 배우 김새론도 아역으로 유명했었는데, 잘못된 선택이 반복되며 딱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안타깝다. 세상에는 재능이 있어도 행운이 없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행운이 있어도 재능이 없는 사람도 있으니, 두 가지 모두를 가졌다면 더 겸손하게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사후에까지 지속되는 논란을 지켜보니 그저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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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니 최근 일본에서 쌀값이 한 달 사이에 무려 두 배 이상 폭등했다는 모양이다. 다른 물가는 비싸도 식품 가격은 유난히 저렴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갑자기 이런 상황이 닥쳤는지 의문이다.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일각에서는 날씨와 전쟁 등의 영향으로 식량 생산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투기 세력이 개입한 결과로도 보는 모양이다.


그 사이에 미국에서는 조류 독감의 영향으로 달걀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는 뉴스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수년 전 비슷한 이유로 달걀 품귀 현상이 벌어져 미국 달걀을 수입해 온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달걀을 수입하게 된 모양이다. 트럼프는 역시나 평소대로 이것 역시 바이든 정부의 잘못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급기야 미국에서는 집집마다 필요한 달걀을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암탉을 대여하는 신규 사업까지 생겨났다니, 이래저래 희한한 일이다. 1970년대의 중동 전쟁과 오일 쇼크 당시에 미국에서도 집집마다 정원에 꽃 대신 채소를 길렀다는 일화를 레이 황도 언급한 바 있었는데, 신냉전 시대의 도래와 함께 졸지에 반세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간 듯한 모양새다.


물론 닭을 길러 달걀을 직접 생산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 뒷마당의 제국>이라는 책을 보면 언론인인 저자가 뉴욕의 자택 뒷마당에 텃밭과 축사를 만들어 야채와 가축을 직접 돌보았던 체험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1년여의 악전고투 속에 얻은 수확물이라고 해야 야채와 고기 모두 지극히 빈약하기 짝이 없어서 허탈했다고 전한다.


농사 경험이 전무한 저자로서는 부득이한 결과였는지 몰라도, 반대로 농촌 출신인 사람은 도시에서도 약간의 흙만 있다면 뭐라도 농사를 지으려는 욕망이 꿈틀대는 모양이다. 나귀님 집에서도 한때 마당이며 화단에 각종 채소를 길렀고, 그걸 다시 닭과 토끼에게 먹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식품 가격이 비싸니 도시에서는 닭 먹이 구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이쯤 되니 <채링크로스 84번지>에서 미국에 살던 저자가 전쟁의 여파로 식량 배급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던 런던의 단골 서점에 달걀과 햄을 비롯한 식품 소포를 보내주어서 모두로부터 은인 대접을 받았던 일화도 떠오른다. 나귀님도 이번 기회에 아마존 본사에 달걀 한 판 보내 볼까 싶어서 어제 마트에 갔더니, 의외로 가격이 만만찮아 포기하고 말았다.


육류 생산의 경우에는 밀집 사육의 폐해를 비롯해서 오래 전부터 문제점이 지적되었는데, 지금은 기후 변화 때문에 유제품이나 채소류나 곡물류의 생산까지도 차질을 빚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4년 만에 돌아온 트럼프가 관세 장벽을 세우겠다며 연일 폭주하고 있으니, 한국과 일본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밥상 물가 고민은 향후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어쩌면 미국의 달걀 품귀 사태로 인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오랜 의문에 대해서도 잠정적 해결책이 제시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달걀이 없으면 닭을 대여해서 해결할 수 있지만, 닭이 없다고 달걀을 대여해 봐야 딱히 해결되는 것은 없어 보이니까. 다시 말해 달걀에서 닭을 도출하기보다는 닭에서 달걀을 도출하기가 더 쉽다는 거다.


여기서 문득 생각난 것이 클라리스 리스펙토르의 단편 "달걀과 닭"이다. 얼핏 보면 횡설수설인데, 또 어찌 보면 달걀은 '현재'의 은유이기도 하고 '생명'의 은유이기도 하며, '우주처럼 커다란 삼중당문고'처럼 수많은 의미를 빨아들였다 뱉어냈다 하는 것도 같다. 물론 지금 가장 잘 어울리는 비유는 달걀도 '트럼프'나 '탄핵'처럼 예측불허라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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