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주 전 제주도 노인네가 보낸 한라봉인지 천혜향인지, 하여튼 왕귤 한 박스를 바깥양반이 받아 왔다기에 큰길까지 나가서 카트에 싣고 달달대며 걸어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소리를 지른다. 뒤를 돌아보니 웬 할아버지 한 분이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가리키며 우리를 쳐다보고, 그제야 바깥양반이 놀라서 달려가 주워 오면서 노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과일 상자를 실은 김에 바깥양반이 들고 있던 에코백 가운데 하나도 실어서 끌고 가던 중이었는데, 카트가 흔들리다 보니 옷가지를 넣어 둔 비닐 봉지 가운데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는데도 우리가 모르고 그냥 가니까, 마침 뒤에 따라오던 노인이 그걸 보고 알려주려고 소리를 지른 모양이다. 젊은이라면 주워서 따라왔겠지만, 그게 어려우니 소리를 지른 게 아닐까.
비닐봉지를 에코백에 도로 넣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게 입구를 여미고, 카트를 정리해서 다시 끌고 가다 보니, 방금 전의 그 노인이 저만치 앞에서 휘청휘청 걸어간다. 좁은 길이다 보니 쌩하니 앞질러 가기도 민망해서 한동안 천천히 따라가는데, 등산복에 운동화 차림이나 어디 운동이라도 다녀오시는 모양이지만, 연세가 많다 보니 걸음도 가볍진 않아 보인다.
문득 왕귤이나 몇 개 드릴까 싶어 바깥양반에게 물어보니 선뜻 그러자고 한다. 두 개 꺼내서 바깥양반에게 건네주었더니, 어느 정도 멀어진 노인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잡아, 마침 길이 넓어진 곳에서 과일을 건네드린다. 노인도 처음에는 안 받겠다며 손사래친다. 고마워서 드리는 거랬더니만 그럼 하나만 받겠다는 걸 실랑이 끝에 다 드리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던 물건을 덕분에 찾게 되었으니 작게나마 고마움의 표시를 하려는 것인데 뭘 그렇게 한사코 거절하시나 싶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귀님도 예전에 한 번은 근처에서 어느 초딩이 하는 비슷한 행동을 한사코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바깥양반과 함께 세탁소에 가려고 또 다른 골목을 지나가는데 어린애들 여러 명이 모여 놀고 있었다.
그중 제일 큰 여자아이를 여럿이 에워싸고 뭘 들여다보는 듯하더니, 우리가 지나가는 걸 보고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큰애가 선뜻 다가와서 뭔가를 내밀며 도와달라고 한다. 가만 보니 애들 먹는 사탕인지 비타민인지를 담은 플라스틱 통인데, 너무 꽉 닫혔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함부로 못 열게 하는 무슨 장치가 되어 있었는지 열지 못해서 애를 먹었던 모양이다.
바깥양반이 받아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손쉽게 열어 건네주자 아이들이 환호하는데, 맹랑한 꼬마가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것'이라며 별사탕처럼 보이는 알갱이 두 개를 꺼내 바깥양반에게 건넨다. 처음에는 황당해 하면서 괜찮다고 했지만, '도와주셨으니까 보답을 해야 한다'며 의외로 의젓한 여자아이의 태도가 재미있었는지 결국 바깥양반도 받아 먹었다.
곧이어 꼬맹이가 사탕을 손바닥에 얹어서 나한테도 다가오기에, '이 나이에 뭔 애들 사탕까지 빼앗아 먹겠나' 싶어서 손사래치고 뒤돌아 걸어오는데, 꼭 받아야 한다며 졸졸 따라오기까지 하니 어쩔 수 없다 싶어서 결국 두 알 받아먹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원체 작고 밍밍했던 사탕 맛은 금세 잊어버렸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재미있는 사건으로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후에도 종종 세탁소를 오가면서 그 꼬마를 만났던 장소에 도착하면 주위를 한 번 두리번거리게 된 것도 그래서이고, 그게 벌써 십수 년 전이니 지금은 그 맹랑한 녀석도 어엿한 아가씨가 (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버진'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느새 그 지역도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서 골목은 막히고 주택은 헐려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으니 뭔가 아쉽다.
사실 그냥 고맙다는 말 한 마디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일에 굳이 왕귤이라는 선물까지 동원한 까닭도 역시나 재미 때문이었다. 뭐랄까, 가끔은 이런 일도 있어야 재미있지 싶은 생각이라고나 할까. 별 것 아닌 사탕 두 개가 우리 부부에게는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역시나 별 것 아닌 왕귤 두 개가 저 노인에게도 비슷한 추억이 되었으면 싶어서.
물론 그렇다고 심성이 곱거나 순진무구한 나귀님까지는 아니다 보니, 딱 여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은근 걱정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좋은 일을 했으니, 혹시 셜리 잭슨의 단편 소설에서처럼 ("평범한 날에 땅콩을 들고"라는 작품인데 <제비뽑기>에는 없는 듯하다) 내일은 또 나쁜 일을 해서 상쇄 작용을 일으켜야 하나 싶은 의문이 생긴 까닭이다.
그 작품에서는 어느 화창한 날에 산책을 나간 신사가 처음 본 사람에게도 연이어 배려와 선행을 베풀고, 심지어 단지 잘 어울릴 듯하다는 이유로 생판 초면인 남녀를 중매하고 데이트 비용까지 건네준다. 이렇게 훈훈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남편을 맞이하는 부인이 오늘 하루 자기가 범한 악행들을 열거하더니, 내일은 다시 당신 차례라고 상기시킨다.
셜리 잭슨의 작품 속 부부가 하루씩 역할을 바꿔 가면서 소소한 선행과 악행을 거듭하는 것과 유사하게, 김용의 무협 소설에는 사람을 함부로 해치는 악한 아내와 그렇게 다친 사람을 도로 살려내는 의사 남편도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십중팔구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부분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만든 인물이 아닐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귀님이 사소한 선행으로 좋아진 기분을 직접 악행으로 상쇄시킬 필요까지는 없었다. 집에 다 왔을 즈음 옆집 아가씨가 쓰레기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나와 우리집 쪽에 갖다 놓더니, 이쪽을 흘끗 쳐다보고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기껏 훈훈해진 마음이 불과 십 분만에 싸늘히 식어버렸으니, 세상의 선과 악은 자동으로 균형을 맞추나 싶다.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층간 소음 때문에 윗집과 갈등이라지만, 단독주택에 살면 쓰레기 문제로 옆집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집 앞에 놓으면 되는데 굳이 남의 집 앞에 쓰레기 봉지를 갖다 놓는 것부터 시작해서, 담배꽁초와 음식물 쓰레기는 물론이고 각종 폐기물까지도 무단 투기하는 경우가 빈번하니, 정말 헉핀의 말마따나 인간이 싫어지게 된다.
다음날 내다 보니 '폐기물 쓰레기는 전용 봉지에 담아서 내놓지 않으면 수거 불가'라는 환경미화원의 경고문이 비닐봉지에 적혀 있었다. 그래도 이웃끼리 얼굴 붉히는 일은 없어야지 하는 생각에 (물론 이미 몇 번 싸워 보았지만 실효가 없었던 것도 증명되었으므로) 꾹꾹 참고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오랜만에 또 찾아가서 따져야 하려나 싶어서 심란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비닐봉지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결국 수거되었는지, 아니면 배출자가 도로 가져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옆집 아가씨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쓰레기를 도로 가져가서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다시 배출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만 탄핵 심판의 각종 궤변에 지친 나귀님도 인간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 우리나라에 번역된 셜리 잭슨의 작품에 관해서는 10년 전쯤에 한 번 정리한 바 있다. 그중 "제비뽑기"와 "소금기둥"은 새로 간행된 단편집 <제비뽑기>에 수록되었지만, 다음 몇 가지 작품은 아직 새로운 번역이 나오지 않은 듯해서 참고 삼아 적어본다.
A. <현대미국문학전집>(전6권, 시사영어사, 1971) IV권 수록 작품:
(1) "버스"(The Bus)
(2) "어느 날 땅콩을 가지고"(One Ordinary Day, With Peanuts, 1955)
(3) "생일 파아티"(Birthday Party, 1963)
(4) "아름다운 집"(The Lovely House)
B. <에드가 상 수상 작품집 II>(정태원 편역, 명지사, 1993 2쇄) 수록 작품:
(5) "악의 가능성(The Possibility of Evil,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