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마르탱 게르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저서와 그 내용을 둘러싼 논란까지 살펴보고 나니 새삼스레 이 저자에게 관심이 생겼다. 내친 김에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당당히 한 장을 차지한 그의 이력과 저술에 대한 개요까지 읽고 나니, 이미 오래 전에 사놓기만 하고 아직 한 번도 완독하지는 못한 저서들이 생각났다.


예를 들어 <주변부의 여성들>에서는 구입 당시의 관심사였던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에 대한 장만 쏙 빼서 읽었고, <책략가의 여행>과 <선물의 역사>는 우연히 중고가 있기에 사다 놓았지만 이후로는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절판된 모양인데, 저자가 2023년 말에 타계했으니 조만간 재간행될 법도 하건만 아직 소식이 없어 살짝 의아하기도 하다.


그중 가장 얇고 만만해 보인 것이 <선물의 역사>라서 선뜻 책장에서 꺼내 뒤적여 보았는데, 알고 보니 단순히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뭔가를 주고받는 전통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화폐를 이용한 시장 경제 이전 시대의 선물 경제에 대한 연구라고 해서 살짝 당황했다. 결국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16세기 프랑스에서 찾아내는 셈이랄까.


모스와 데이비스는 각각 인류학과 역사학의 관점에서 선물 경제를 논의하는데, 희한하게도 나귀님은 마루 책더미에서 알레스터 크롤리 전기와 해커의 역사 사이에 애매하게 놓인 <증여론>을 오며가며 쳐다볼 때마다 어째서인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생각나서 한동안 외면하던 차였다. 막상 작년에 두툼한 마르셀 모스 전기까지 정가 인하로 사놓고서도 말이다!


모스와 데이비스의 선물 연구는 하나같이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을 깔고 있다. 즉 화폐는 근대의 발명품에 불과하며, 인류는 훨씬 더 이전부터 거래를 해 왔다는 것이니, 마치 현재의 제도가 절대적인 것처럼 간주하지는 말자는 내용이다. 데이비스가 결론 부분에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언급하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가뜩이나 짧은 역사와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이 모든 문제 제기에 대한 현실적 반박이 될 수도 있기는 하다. 게다가 이미 갈 데까지 간 정보화 사회에 와서 마치 <펠레의 새 옷>에 나타난 것처럼 이웃간의 정이 넘쳐나는 물물교환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도 솔직히 말이 안 되고.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북펀드에서 <증여론>의 새로운 번역이 나온다고 하기에 뭔가 새삼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무려 '마르셀 모스 선집'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미 두 권이 간행되었다니 <증여론>이 세 번째 권인 셈일까. 한길사 번역본과 달리 모스의 다른 글 몇 가지도 부록으로 추가되었다고 하니, 한 번 살펴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이후로도 여러 권이 예정된 듯한데 과연 완간될지 궁금하다. 물론 '발렌타인데이의 수제 초콜릿이 화이트데이의 명품 백과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모스의 이론으로 입증되든가, 아니면 카리나가 팬들의 수많은 선물 공세에 지친 나머지 <증여론>을 뒤적였다고 고백하지 않는 한, 지금 와서 새삼스레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리는 없겠지만...




[*] 글을 다 쓰고 나서 검색해 보니, 나탈리 데이비스의 저서 제목처럼 아예 <선물론>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또 다른 번역서도 있었다. 서울대출판부에서 간행하는 '서울대 클래식' 가운데 하나로 나온 책인데, 어째서인지 알라딘에서는 마르셀 모스가 아니라 역자 오명석의 이름만 저자로 등록되어 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닌 편역서이기는 하지만, 판권에 저자명이 '마르셀 모스'로 나와 있으니 그대로 따라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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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필리핀의 어느 유명 관광지에서 고래상어 관광을 결국 중단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고래상어라면 이름과 달리 '고래' 아닌 '상어'이며, 길이가 15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물고기이지만 의외로 성격이 온순한 까닭에 관광 자원으로 이용되었던 모양인데, 해안으로 유인하려 살포한 먹이가 부패하며 생긴 수질 오염 등의 논란이 그간 지속되었던 모양이다.


마침 인도와 캄보디아에서도 코끼리와 원숭이가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온 관광객을 습격했다는 보도까지 덩달아 나온 것으로 미루어, 이것 역시 코로나 대유행 직후에 대두한 오버투어리즘 논란의 연장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색다른 콘텐츠를 만들려는 욕심에 유튜버가 위험을 자초한다는 비판도 있으니, 이래저래 참 백해무익한 것이 유튜브인가 싶다.


그러고 보니 고래상어 목격담은 <콘티키>에 수록된 내용으로 처음 접했었다. 노르웨이의 인류학자 토르 헤이에르달은 고대 남아메리카 원주민이 태평양을 건너 폴리네시아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가설을 직접 검증하기 위해 1947년에 '콘티키'라는 이름의 뗏목을 직접 제작해서 바다로 나갔는데, 101일 간의 여행 중에 만난 기묘한 생물 중 하나가 바로 고래상어였다.


즉 하루는 동료 중 한 명이 우연히 바닷속을 들여다보니, 길이 15미터의 뗏목보다 더 큰 물고기가 바로 밑에서 헤엄치기에 기겁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는 고래상어를 가까이서 관찰한 사례가 드물다 보니 혹시나 그놈이 뗏목을 공격하기라도 할까봐 모두들 잔뜩 긴장했는데, 의외로 온순한 녀석이여서 그냥 뗏목을 졸졸 따라오다 사라졌다고 전한다.


고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왕고래'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원래 고래 중에서도 가장 큰 흰긴수염고래를 가리키는 명칭이라는데, 석유 탐사 대상 해역인 이른바 제8광구의 여러 구역명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즉 대왕고래 말고도 '오징어', '명태', '마귀상어' 구역이 있다는데, 아쉽게도 '고래상어'까진 없는 듯하다.


이른바 대왕고래 사업이 논란이 되었던 까닭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직접 발표에 나서는 등, 각종 논란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려는 깜짝쇼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후 조사를 담당한 해외 업체의 실체에 대한 의문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논란만 지속되다가, 결국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만 재차 확인된 모양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국의 근해 석유 탐사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세기 전 박정희 정부 시절에 처음 추진된 사업이었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석유 파동이 거듭되면서 에너지 위기를 겪은 직후의 일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여차 하면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에 "제7광구"라는 노래가 나올 정도로 기대도 컸지만 그때도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만 나왔다.


물론 석유 산업의 역사를 서술한 다니엘 예긴의 책을 보면, 석유 탐사는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결코 하루이틀에 결론이 나올 만큼 간단한 일까진 아니다. 예를 들어 '석유 위에 떠 있는 나라'로 비유되는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도 수많은 실패 끝에 가망이 없다고 간주되어서 탐사업체가 철수하기 직전에야 간신히 석유 발견에 성공한 경우에 해당했다.


그러니 산유국의 꿈과 희망을 갖는 것까지 뭐라 할 수 없지만, 단지 정권의 무능과 대통령의 비리를 가려 보려는 발버둥에서 저 오래 묵은 떡밥을 도로 꺼내든 행태는 얄팍하고 한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후 결국 비상 계엄까지 저지른 것을 보면, 대왕고래 프로젝트야말로 역사의 시계를 반세기 전으로 되돌리려는 부질없는 시도의 전초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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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현역 장교가 내연 관계인 여성 군무원을 살해하며 벌어진 이른바 '화천군 북한강 토막 살인 사건'이 밝혀져서 한창 떠들썩했었다. 그런데 마침 가해자인 양광준의 얼굴이 공개되자, 이를 보도한 어느 뉴스의 아나운서가 대뜸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얼굴만 봐서는 흉악스럽게 생기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걸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롬브로소의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얼마 전에 <범죄인의 탄생>과 <여성 범죄인>을 꺼내서 훑어본 다음이고 보니, 범죄자의 외모와 그 범죄성의 관계를 언급한 뉴스 아나운서의 발언에 문득 저 근대 이탈리아의 범죄학자가 심어 놓은 대중적 선입견이 얼마나 지속적인지를 깨닫게 된 까닭이었다.


체사레 롬브로소(1835-1909)는 '범죄학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다. 그 이론의 핵심은 '태생적 범죄자'이다. 즉 범죄란 문명에 반대되는 원시적 행위이며, 범죄자란 원시적 악덕이 격세유전으로 발현된 사례라는 것이다. 이는 모든 범죄가 의도적이므로 엄벌하자는 베카리아의 주장에 반대되는 것으로, 범죄자의 선처를 호소한 진보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롬브로소의 범죄학은 그 방법에서 여러 가지 허술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당대부터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범죄인의 탄생>과 <여성범죄인>은 영어판 편역본을 재번역한 것인데, 영어판 편역자는 롬브로소의 사상이 왜곡되고 오해되었다고 항변하면서, 이 저자가 19세기의 통념을 답습한 동시에 혜안도 보여준 부분에 주목하자고 권유한다.


물론 롬브로소의 범죄학이 역사적으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과학적 범죄인류학'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오늘날에는 사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봐야 맞을 듯하다. 비록 진화론과 인류학 같은 나름 과학적인 방법론을 도입하긴 했지만 주먹구구식에 불과하며, 애초 장담과 달리 과학적이지도 엄밀하지도 못한 주관적 해석이 많기 때문이다.


롬브로소의 이론에서 가장 악명 높은 대목은 골상학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귀가 커서 도드라지는 것'을 범죄자의 특성으로 간주하는 식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저서인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사이비 과학인 사회적 진화론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물론 롬브로소의 영어판 편역자들은 굴드가 왜곡했다고 주장하지만).


주저인 <범죄인의 탄생>(1867)만 해도 범죄자는 열등한 존재라는 전제로 시작하며, 자매편인 <여성범죄인>(1893) 역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따라서 롬브로소의 저술 역시 예를 들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 관련 저술처럼 그저 개척자로서의 의의와 역사적인 가치만 지닐 뿐,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기는 불가능한 내용이다.


다만 그 이론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근대 범죄학의 창시자로서 롬브로소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대표적인 것이 사람의 외모와 범죄 성향의 관련성을 은연중 떠올리게 되는 버릇이다. 이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악역 전문 배우'들의 모습을 통해서 반복되고 강화되면서 강아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범죄의 유전적 소질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지만, 자칫 범죄로 이어지기 쉬운 과격한 성격 같은 경우에는 집안 내력의 영향도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여기에 에드워드 O. 윌슨이 개척한 사회생물학의 결론 같은 것을 감안하면 마치 롬브로소의 이론이 현대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보이지만, 설령 방향이 얼추 맞더라도 '범죄인' 이론은 사이비 과학일 뿐이다.


오늘날에 와서 롬브로소의 기여를 굳이 찾자면 사상 최초로 범죄라는 사회 현상을 과학과 통계 같은 체계적인 방법으로 분석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정작 그 창시자 본인의 실제 행동이 그리 엄밀하지 못한 까닭에 그 주장 자체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반면에 외모와 범죄의 연관성 같은 대중의 편견만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아쉽다고 하겠다.


물론 외모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편견임을 알더라도 막상 떨치기는 어려운데, 어떤 면에서는 롬브로소가 조장한 이런 편견이 꽤나 보편적 편견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레스코프의 소설 <괴물 셀리반>이 멋진 반박을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레스코프의 교훈보다는 롬브로소의 이론을 따라 살아가는 듯하다.


그나저나 철 지난 롬브로소의 이론을 오늘 다시 되새겨본 까닭은 며칠 전 대전에서 일어난 현직 교사의 초등학생 살해 사건 때문이다. 사건의 성격이나 잔혹성 모두 유례가 없는 경우이다 보니 크게 공분이 일어난 상황인데, 어쩌면 사건의 여파나 국민적 관심의 정도를 감안해서라도 조만간 가해자의 얼굴과 실명 등 인적사항이 공개되지 않을까 짐작해 보게 된다.


만약 얼굴이 공개되면 십중팔구 롬브로소의 유산인 외모와 범죄성에 대한 언급도 여기저기서 뒤따라나오지 않을까. 어쩌면 멀끔하지 못한 외모에서부터 범죄성이 농후했었다는 비난이 나올 수도 있고, 또 이와는 정반대로 멀끔한 외모 뒤에 범죄성을 숨기고 있었으니 가증스럽다는 비난이 나올 수도 있을 법하다. 물론 어느 쪽이든 간에 근거는 없는 이야기겠지만...



[*] 기억을 더듬어 보니, 롬브로소의 저서는 1970년대에 나온 을유문화사의 (세로쓰기) 세계사상전집 가운데 한 권에 수록된 <천재론>을 읽은 것이 처음이었다.(이건 지금도 새로운 번역본이 간행된 듯하다). <범죄인의 탄생>과 <여성 범죄인>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2000년대에 들어서 미국의 법사학자들이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발췌해서 편역한 영역본을 재번역한 것이다. 편역자들은 롬브로소의 저서가 이전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영어권에 소개된 적이 없으며, 그로 인해 오해와 왜곡이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새로운 영역본 편역서에서는 롬브로소의 주장을 온전한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평하지만, 사실 이것도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오늘날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이나 중언부언 산만한 부분은 모두 걸러낸 편집본인 한에는 원저자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온전히 보여준다고 보기는 어려울 법하다. 여하간 의의도 있지만 한계도 뚜렷한 롬브로소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도 오래 전에 사다 놓은 것이 있으니 다시 꺼내 뒤져 보아야 하는데 귀찮...


[**] 글을 올리면서 보니 <범죄인의 탄생>의 또 다른 번역본도 <태생적 범죄자>라는 제목으로 나온 모양인데, 알라딘 서지정보에는 관련 소개 내용이 부족한 까닭에 어떤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다만 저자명부터 "롬브로소 체세레"라고 쓴 것을 보면 그리 신뢰할 만한 번역본까지는 아닌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런 나귀님의 태도 역시 외모와 범죄성에 대한 저 범죄학자의 유산처럼 편견에 불과하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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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 기사를 보니, 최근 탄핵 재판을 통해 점차 뚜렷해지는 현직 대통령의 부정 선거 주장을 비롯한 각종 음모론의 출처가 다름 아닌 극우 유튜브라는 지적이 있다. 평생 칼잡이 노릇을 하며 각종 법률을 뒤적여봤던 사람이니 뭔가 더 거창한 파시즘이라도 구상했던 걸까 싶었더니만, 기껏해야 극우 유튜버 따위에 선동당해 망동을 저질렀다니 한심한 일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굳이 남을 흉볼 것도 없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그 동영상 사이트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 대부분이 알고리즘의 노예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푸바오 동영상을 하나 보면 계속 자연농원 콘텐츠만 추천되고, 수도꼭지가 고장나서 휴대전화로 하나 검색하면 계속 수도꼭지 판매 광고가 따라다닌다.


바깥양반이 쓰는 태블릿으로 종종 유튜브를 시청하는 나귀님이다 보니 그놈의 알고리즘 때문에 골탕 먹은 적이 종종 있다. 한 번은 기타 연주 동영상을 찾다 보니 웬 아가씨가 코스프레 차림으로 나와서 실력을 뽐내는 것이 추천된다. 그래서 몇 개 봤더니만, 나중에는 아예 비키니 차림으로 연주를 하는 동영상까지 연이어 추천되는 바람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유튜브에 이상한 동영상이 추천되기 시작하면 재빨리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을 마구마구 클릭해서 알고리즘을 정화하면 된다기에, 바오가족부터 미소아라티티며 다람쥐츄츄며 루몽다로까지 총동원해서 간신히 바꿔놓기는 했는데, 그래도 잊을 만하면 그놈의 아가씨가 또다시 헐벗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동영상이 떠서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가만 살펴보니, 십중팔구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의도로 과감한 노출을 시도하는 동영상 제작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언젠가 낚시 콘텐츠에서도 웬 아가씨가 나오는 동영상이 추천을 많이 받았기에 도대체 뭘 잡았나 궁금해서 한참 들여다보았는데, 물고기 잡는 장면은 없고 그냥 몸에 착 달라붙는 옷 입고 물가를 돌아다니는 것밖에는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어느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에로티시즘의 궁극은 다 벗기는 게 아니라 살짝 입히는 것이라던데, 나귀님은 아직 그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는지, 입었건 벗었건 간에 결론만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즉 비키니를 입건, 레깅스를 입건, 아니면 홀딱 벗었건 간에 기타를 잘 치는지, 낚시를 잘 하는지, 아니면 다른 일을 잘 하는지 여부만 그저 궁금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제프 벡의 베이시스트 탈 윌켄펠드가 그런 경우다. 수년 전 타계한 저 유명 기타리스트의 라이브 동영상 가운데 하나에서 함께 등장해 연주하는 모습으로 처음 봤는데, 중년 아재들 사이에서 나이도 어려 보이는 (실제로 20대 초였다!) 아가씨가 산발한 머리로 잘 따라가는 모습이며, 그걸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호응하는 벡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벡은 윌켄펠드가 솔로 연주를 할 때마다 만면에 미소를 짓는가 하면, 심지어 '아이고 무서워라!' 하는 몸짓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아가씨 역시 솔로 연주를 끝마치면 '나 잘했죠?'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다 서로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미 페이지가 객석에 앉았고 에릭 클랩턴이 게스트로 나왔던 어느 클럽 공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빠와 딸 뻘인 거장 기타리스트와 신예 베이시스트가 척척 호흡을 맞추는 모습에 감동한 사람이 많았는지, 급기야 그녀가 그의 딸이라는 헛소문까지도 돌았던 모양이다. 제프 벡 타계 후에 탈 윌켄펠드가 SNS에 올린 추모 글에서도 '진짜 아빠처럼 돌봐주신 까닭에 내가 친딸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한동안 위키피디아에 적혀 있기도 했다'는 내용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어디선가 탈 윌켄펠드가 인기를 끈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슴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베이스의 형태상 위쪽 굴곡에 오른쪽 가슴이 자연스레 얹히며 자연스레 눈에 띄게 되었는데, 얇은 티셔츠에 노브라이다 보니 젖꼭지가 도드라진 모습이 보였다는 거다. 나귀님은 눈이 나빠서인지 화면이 작아서인지 잘 보이지도 않던데, 어떻게 그걸 또 찾아냈을까.


아쉬운 점은 제프 벡과 탈 윌켄펠드가 함께 한 공연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인지, 이미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다 보고 나니 더 이상은 알고리즘에서도 추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도 생각나서 하나 틀어 보았는데 이후로는 아무 소식도 없다. 그러고 보니 래리 칼튼의 스틸리 댄 기타 솔로도 작년에는 하루 한 번씩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나오지 않고.


물론 유튜브도 처음부터 아무거나 추천하는 것은 아니고 과거 검색 이력을 토대로 삼는 것이니 나름대로는 논리적이고 편리할 수 있겠지만, 나귀님의 경우에는 종종 일종의 참견이자 족쇄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SNS나 포털 사이트에서도 검색 결과를 이용해 이런저런 제안을 내놓는 세상이니, 이것도 일종의 감시 사회가 아닌지.


비키니 기타 연주 동영상 따위는 안 보는 사람도 알고리즘의 냉혹함을 무시했다가는 언젠가 낭패할 것이다. 한 번은 하수구 수리를 알아보려고 현직 유튜버의 동영상을 하나 틀었더니만, 이후로는 유튜브만 접속하면 구체적으로 현장 내시경 화면까지 포함해서 하수구 뚫는 동영상만 줄기차게 나오는 바람에 한동안 식사 중에는 라디오만 들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한편으로는 마치 콘텐츠가 무궁무진해 보이는 유튜브에도 한계 효용 법칙이 적용되는 듯하다. 뭐든지 처음에나 신기했지 나중에는 익숙해져 시들한 것이 사람 심리이다 보니, 심지어 넷플릭스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결국에는 '볼 게 없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유튜브도 마찬가지인 듯한데 알라딘은 또 채널을 신설했다 하니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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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으면서 NBC 뉴스를 보는데, 미국의 어느 학교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판정에 불복하며 링크에 뛰어나가 학생 심판을 밀친 막장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바깥양반이 휴대전화로 뭘 검색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밀치다'(shove)라는 단어가 있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네."


언어 덕후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어 애호가쯤은 되는 바깥양반이고, 특히 영어를 잘 해서 중학교 때부터 동급생을 상대로 과외를 해서 짭짤한 수입을 올렸고 (하지만 엄마한테 다 빼앗겼다!) 대학 시절 내내 생계 수단이었을 정도인데, 가끔은 터무니없이 쉬운 단어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은 "메기"(catfish)를 보고는 저게 뭐냐고 묻기에, 톰과 헉이 낚시로 즐겨 잡은 물고기 아니냐고 대답해 주었더니만 처음 보는 단어란다. 물론 나귀님도 항상 다 알진 못하니 한 번은 바트 심슨이 칠판에 쓴 "광합성"(photosynthesis)이라는 단어를 "사진 합성"으로 오해한 바 있다.


이런 무지나 오해가 발생하는 까닭은 당연히 영어가 모국어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각자의 분야며 기호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어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니, 누구나 모르는 말이 있고, 또 의미를 잘못 아는 말이 있다. 


즉 언어란 것은 아무리 알아도 다 아는 게 아니다. 자칭 언어 학습 권위자들은 완벽이니 정복이라는 말을 종종 입에 올리지만, 그게 말이 쉽지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까. 아무리 공부해도 모르는 단어가 있고, 아무리 책을 읽어도 모르는 내용이 있고, 알던 것도 곧잘 잊어버리게 마련인데.


그러고 보니 최근 나온 책 중에 일본인 히키코모리가 인터넷으로 루마니아어를 독학해 현지에서 작가로 등단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알라딘에서 '루마니아어'나 '루마니아'로 검색해 보아도 나오지 않으니, 뭔가 제목이나 부제에라도 그 나라 이름을 넣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구글링해 보니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라는 책인데, 지난번에 잠깐 언급한 노라 에프런의 일화에서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 제목'으로 꼽힌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의'(of)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어떤 영화 제목(지금도 기억이 안 난다!)만큼이나 기억에 남지 않는 제목이다.


물론 루마니아에 대해서라면 그곳 출신 저자의 책 몇 권을 읽은 것이 전부인 나귀님이지만, 언젠가 듀이 십진분류법에서 언어(400) 분야의 하위 분류에 루마니아어가 영어(420), 독일어(430), 프랑스어(440), 스페인/포르투갈어(460)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을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동유럽의 올망졸망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인구나 영향력도 많지 않은 루마니아인데, 어째서 언어는 이렇게 중시되는 걸까? 알고 보니 루마니아어가 슬라브어보다는 로망스어에 가깝다 보니, 19세기 유럽중심주의의 산물인 듀이 십진분류법에서 이탈리아/루마니아어(450)로 분류된 것이다.


반면 유럽의 대표 언어 예닐곱 가지 이외의 모든 언어를 '다른 기타 언어'(490)로 몰아넣어서 지금 현실에는 안 맞다 보니, 이제는 나라마다 수정판 십진분류법을 사용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한국 십진분류법에서는 언어(700) 분야의 이탈리아어(780) 항목에 루마니아어(789)가 들어가 있다.


인터넷 시대가 되니 언어 학습의 방법도 달라져서, 지금은 한국 드라마나 가요에 심취한 끝에 한국어 능력자가 되었다는 외국인도 많이 나오니 신기한 일이다. 물론 예전에도 미국 팝송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어 영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된 '덕후'들이 적지 않았었지만.


바깥양반도 언어 애호가라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것저것 배우기는 한 모양이고, 그중에서도 라틴어와 일본어와 독일어는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독학했던 모양이다. 나귀님도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문법책이나, 콥트어와 우가릿어 사전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호기심일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어학 능력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바깥양반이 어떤 독일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사전에도 없는 이상한 단어가 나온다며 투덜거리기에 흘끗 보니 "Brechts Svejk"였다. "브레히트가 각색한 <병사 슈베이크>"를 말하는 것 아니겠냐니까 "깜놀"하더라는.


여기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이스라엘 셰플러의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에 나오는 고전학자 해리 울프슨의 일화다. 갓 입학한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이러저러한 논문을 쓰고 싶다고 말하자, 반색하며 자기가 가진 책을 꺼내 건네면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자네, 페니키아어는 할 줄 알겠지?"


민음사의 번역본은 워낙 오역투성이라서 추천할 수 없지만, 울프슨의 인품과 학식을 보여주는 일화만큼은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연구로 유명했던 이 학자의 업적도 지금은 구닥다리라 거의 잊히고 말았다니, 학문의 세계 역시 언어의 세계처럼 얼마나 넓디넓은 것인가!


그러고 보니 최근 이집트 상형문자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책도 나왔던데, 한때 <람세스>라는 소설의 인기 덕분에 이집트 관련서가 우후죽순으로 나오면서 (지금은 다 절판되었지만) 덩달아 상형문자에 관한 책도 몇 권 나왔었다. 지금은 전공자도 생겼다니 관련서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이집트 상형문자라고 하니, 예전에 단골 헌책방 사장님에게 들은 한 가지 기막힌 사연도 생각난다. 예전의 단골 손님 중에 중년의 언어 덕후가 있어서 언어에 대한 외국 서적이 나오면 반색하며 구입했는데, 그 손님이 가장 애타게 찾던 것이 영어로 된 이집트 상형문자 문법책이었다고 한다.


급기야 제목과 저자 이름까지 적어서 건네주며, 얼마가 되어도 상관없으니 꼭 구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나. 헌책방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책을 무작정 구해 달라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그냥 알았다고만 하셨는데, 나중에 진짜로 그 책이 나왔다!


하지만 그 언어 덕후 손님은 안타깝게도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라, 그토록 찾던 책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마땅한 임자도 없는 책이 되고 말았지만, 그 사연이 참으로 딱하고 기막히다 보니 헌책방 사장님도 그 상형문자 책을 차마 팔지 못하고 갖고 계셨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평소 앉아 계시던 책상 밑으로 손을 넣어 낡고 두툼한 책을 꺼내 보여주셨는데, 한 눈에도 반세기 이상은 묵은 것처럼 보이는 느낌이었다. 휴대전화도 없었던 시절이니 사진으로 남기지도 못했는데, 제목이라도 적어 놓을 것을 그랬나 싶어 아쉽기도 하다.


헌책방을 하다 보면 책과 사람의 인연을 숙고하게 된다고 종종 말씀하셨던 사장님이신데, 지금은 아쉽게도 가게 운영을 그만 두시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이집트 상형문자 문법책은 어떻게 되었는지 가끔 궁금한 생각도 든다. 물론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였다면 당연히 매입 불가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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