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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식탁
설재인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평점 :
살면서 단 한 번도 미움받지 않거나 실수하지 않거나 하는 일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겐 선인이 될수도 있지만 악인이 될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생각이 깔린 채로 시작한다.
내향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여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빈승은 어느 날 목소리를 듣게 된다. '미미'는 그에게 복권을 사게 하였는데 그 복권이 당첨 되어 빈승은 가게를 차리게 된다. 마치 꿈에서 조상님이 로또 번호를 불러줬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조현병이 복권도 당첨될 수 있게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로 미지의 존재가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않나. 그런 존재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일지도.
뱅상 식탁은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폐쇄적인 레스토랑이다. 4개의 식탁이 있고, 각 식탁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모든 식탁의 소리는 주방으로 흘러들어간다. 빈승은 손님들이 폐쇄적이라고 믿는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녹음한다. 손님들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들어갈 수 없어 식당 입구에서 빈승에게 폰을 맡겨야만 했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보통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은 여자 손님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연인끼리 데이트를 한다 해도 여자가 있고 불륜이라도 여자가 있고 친구끼리 온다면 여자친구들일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남자들끼리 폐쇄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찾는 경우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빈승 역시 마찬가지 의문을 가졌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라면 너무 편파적이고 지엽적인 환경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미는 의뢰인이 이 실험을 원하다는 말로 이 실험을 강행했다. 과연 이 실험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책을 읽을수록 밀그램의 전기 고문 실험이 떠올랐다. 권위에 복종하는 그 실험은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문제를 틀렸을때 전기 고문 버튼을 누르게 한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전기 고문 버튼을 눌렀다. 조금 결은 다를 수 있지만 빈승은 자신을 과대평가해 준 미미가 시켰기에 비이성적인 행동임을 알면서도 그 일을 자행한다.
각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위선이나 뻔뻔함이나 거짓 같은 추악함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감정적으로 잠식당한 사람이 어떻게 조종당하는지도 볼 수 있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상황에 휩쓸리다가 희생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말이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하필 살아남아 제일 득의양양한 사람이 그 사람이라니. 책을 다 읽고 동생에게 이러이러한 사람이 승리하는 내용이라고 했더니 동생이 바로 "난 읽지 않겠어." 란다.
나와 동생들에겐 나름 발작 버튼이니까.
그들 중에 과연 죽어야 할만큼의 죄를 지은 사람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찌른 사람의 죄의 형량이 죽음이라면 찌르도록 교묘히 유도한 사람의 형량은 얼마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가면을 쓰고 선한척 할 수 있을까. 얼마나 합리화를 하면 자신이 선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걸까.
다시금 나는 누구에게 악인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악인은 몇 있는데 그들에게도 나는 악인일까, 아니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악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