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슬비 > 태양계의 비경 7가지

올 여름 지구에서의 피서는 즐거우셨나요? 언제 태양계로 피서를 떠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태양계 7대 비경을 조금 앞서(!) 소개합니다.

 

1. 수성의 칼로리스 충돌분지

 

지난 3일 미국항공우주국의 탐사선 ‘메신저’가 수성을 향해 7년간의 대장정에 나서기도 했다. 한낮에는 영상 400℃가 넘게 치솟는 수성의 표면에는 운석 충돌 구덩이인 크레이터가 많다. 마치 ‘곰보투성이’의 달을 연상시킬 정도다. 칼로리스 충돌분지는 수성에서 가장 큰 구덩이로 지름이 1300㎞에 달한다. 수성의 지름이 4880㎞임에 비하면 엄청난 크기다. 칼로리스 분지는 과거에 큰 물체가 충돌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생긴 충격파로 칼로리스의 정반대편에는 작은 언덕들이 여럿 솟아 있고, 분지에는 충돌의 결과로 보이는 균열도 있다.

 

 

2. 금성의 거대 용암지형

 

금성의 적도 부근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비슷한 크기의 아프로디테 대륙이 있다. 금성에서 가장 큰 대륙이다. 표면 곳곳에 거대한 화산이 여럿 있고, 용암이 흘렀던 수로가 길게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곰인형의 얼굴을 닮은 용암지형도 있다. ‘애니’(아일랜드 켈트족 다산의 여신)라 불리는 이 지형은 땅속 마그마가 표면을 뚫고 분출하지 못하고 표면에 힘을 가해 생긴 지름 200㎞의 원형 균열이다.

 

3. 태양계 최고봉인 화성 ‘올림푸스’

 

전쟁의 신을 연상시키는 붉은 화성의 적도 부근에 길이가 5000㎞에 달하는 거대한 협곡인 마리너 협곡의 북서쪽에는 인상적으로 솟은 타르시스 대륙이 있다. 곳곳의 웅장한 산들 가운데 가장 큰 봉우리가 바로 올림푸스 산이다. 지름이 500㎞ 이상이고 높이가 25㎞를 넘는 이 거봉은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만일 미래에 이 산에 오른다면 화성의 중력이 지구 중력의 0.4배에 불과해 절반 정도의 힘으로 충분할 것이다. 붉은 행성을 뒤로한 채 목성으로 향하면 두 가지 비경을 만날 수 있다. 목성의 대적반과 위성 이오의 펠레가 그들이다.

 

4. 태양계 최대 폭풍 ‘대적반’

 

목성의 대적반은 크기가 3만㎞ 정도에 달하는 태양계 최대 폭풍으로 17세기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이래 아직까지 대기에 남아 있다. 지구의 폭풍은 대륙의 마찰 때문에 평균수명이 수 주 정도인 반면, 목성의 대적반은 별다른 마찰이 없기 때문에 이처럼 오래 버티는 것이다.

 

5. 이오(목성의 위성)의 활화산 ‘펠레’

 

이오는 목성이 미치는 강한 중력으로 가열된 탓에 화산 활동이 활발하다. 표면에는 빨갛고 노란 얼룩 같은 화산들이 피자 파이를 연상시키듯이 점점이 박혀 있다. 이들 가운데 거대한 화산이 바로 펠레(20세기 축구스타인 브라질 선수의 이름이 아니라 하와이 원주민이 숭상하는 불의 여신)다. 이오 표면에서 300㎞ 이상의 고도까지 황산 가스를 뿜어내는 펠레는 태양계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활화산이다.

 

6. 토성 고리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를 방문한 네티즌들이 태양계에서 가장 가고 싶은 미래 여행지로 꼽은 곳이다.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밝은 고리 셋은 각각 A, B, C고리라 불린다. 이 중에서 B고리가 가장 밝고 입자가 가장 조밀해 고리 전체 질량을 거의 차지한다. 만일 B고리의 물질을 다 모으면 지름 250㎞ 얼음 위성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A와 B고리 사이에는 거대한 틈새인 카시니 간극이 있다. 그래도 토성 고리 가운데 A고리 바깥쪽에 있는 F고리가 가장 특이하다. 곱슬머리처럼 꼬여 있기 때문. F고리는 1979년 파이어니어 11호가 처음 발견했다.

 

7. 인간이 남긴 발자국

 

인류 역사상 처음 달에 인간이 남긴 발자국도 놓칠 수 없는 비경. “내게는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닐 암스트롱의 말을 떠올리면서 달의 발자국을 구경한다면 감흥이 남다를 것이다. 또 미래 관광객이 달 표면에 남긴 발자국을 장식품으로 만든다면 색다른 관광기념품이 될지 모른다. 우주여행은 아직까지 억만장자가 수백 억 원을 주고 우주정거장을 잠깐 방문하는 정도다. 하지만 21세기 중반이 넘어가면 좀 더 저렴한 가격(물론 비싸긴 하겠지만)에 태양계를 대상으로 하는 관광여행상품도 등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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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장애에 좋은 석류

빨간 꽃처럼 생긴 석류는 껍질을 벗겨 보면 구슬과 같은 씨앗이 송글송글 달려 있죠? 맛은 약간 시큼하면서도 달아 옛날에는 고급식품으로 통하였다고 하는 데요. 강장제로도 유명한 석류에는 어떤 영양성분과 효능이 있는 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양 성분
 
  • 석류는 과실류가 그렇듯이 수분이 83.1%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외 탄수화물 17.6g, 칼슘 8mg, 인 15mg, 비타민C 10mg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 그 외에도 포도당·과당, 시트르산과 각종 수용성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 있습니다.
  • 석류에는 새콤한 맛을 주는 구연산등의 유기산이 1.5%나 함유 되어 있습니다.
  • 줄기와 뿌리의 껍질에는 휘발성 알카로이드인 페레치에린, 아소페레치에린, 메칠페레치에린 등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 열매의 껍질에는 탄닌, 점액질, 고미질등이 있으며 꽃에는 퓨니신이, 씨에는 퓨니신산의 글리세라이드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 특히 석류의 씨앗을 싸고 있는 막에 천연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함유되어 있어 여성에게 좋다고 합니다.
  •  
    효능 및 효과
     
  • 석류에는 비타민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어서 껍질이나 뿌리를 달인 물을 마시면 감기에 효험 있습니다.
  • 한방에서는 꽃을 달인 물은 자궁에 좋다고 합니다.
  • 석류의 씨앗을 싸고 있는 막에는 천연 에스트로겐 호르몬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여성에게 좋습니다.
  • 석류껍질은 한방에서 석류피라하여 장내 이상 발효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 석류의 꽃으로 만든 엽차는 장을 편안하게 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  
    활용방법
     
  • 석류꽃으로 엽차를 만들 때는 하루 12g, 정도의 꽃을 달여 먹습니다.
  •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날때 잎을 달인 물로 양치질을 합니다.
  •  
    석류차 & 석류주 만들기
     
  • 석류차 만들기
    1. 우선 석류 2개(600g), 설탕 500g을 준비한 다음 석류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빼고 반으로 나누어 놓습니다.
    2. 껍질 안쪽에 있는 석류 과육을 손으로 뜯어 그릇에 담고 석류 껍질은 큼직하게 뜯어 놓습니다.
    3. 석류 껍질과 과육을 설탕에 재어서 실온에 잠시 둡니다.
    4. 석류차를 담을 유리병을 끓는 물에 소독하여 물기를 빼 놓습니다.
    5. 설탕에 재어둔 석류를 유리병에 담고 밀봉하여 냉장보관합니다.
    6. 주전자에 사람 수대로 물을 1컵씩 붓고 과육을 1큰술씩 넣어 주홍빛이 돌 때까지 은근히 끓입니다.

  • 석류주 만들기
    1. 석류4개(280g), 설탕90g(약5/4 컵), 소주3.1/3컵(약 3병)의 잘 익은 석류를 골라 깨끗한 헝겊으로 겉껍질의 먼지를 깨끗이 닦습니다.
    2. 깨끗이 닦은 석류를 반으로 가른 다음 항아리에 담고 정량의 설탕과 소주를 섞어 붓습니다.
    3.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6개월 정도 밀봉한 채 두었다가 건더기는 건져냅니다.
  •  
    이런 점은 주의하세요!
     
  • 뿌리와 꽃을 달여 마실 때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달여 먹으면 도리어 몸에 해롭습니다.
  • 하루에 5~10g정도의 양을 달여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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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짱 2004-08-29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서재에는 웰빙상식이 듬뿍이네요.^^

    꼬마요정 2004-08-29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칭찬해 주시니 고마워요~~^^*
     

    콩나물해장국

     

       

    열량(1인분 기준) : 95Kcal
    활용 : 일상식, 해장요리
    재료(4인분 기준)
      대파 1대, 다진마늘 1작은술, 콩나물 200g, 소금, 달걀 2개, 북어채 40g, 후추, 국간장 2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무 150g, 고춧가루 2작은술
     

    1. 콩나물은 머리와 꼬리를 떼어 손질하여 깨끗이 씻어둔다.
    2. 대파는 가운데를 반갈라 4cm 길이로 자른다.
    3.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북어채를 볶다가 물을 넣고 끓인후 국간장을 넣어 색을 낸다.
    4. 3에 무, 콩나물 순으로 넣어 끓인다.
    5. 4에 소금, 다진마늘, 후추로 양념을 하고 달걀을 풀어넣은 후 준비해둔 대파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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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칸 커피와 토스트로 여는 좋은 아침!]
      


    뉴욕식 브런치
      토스트 대신
      베이글이나 도넛도 괜찮다.
      빵의 스프레드는
      버터와 생크림,
      그리고 순한 아메리칸
      커피를 함께 마신다.                                          아메리칸 커피 만들기
      기분좋은 아침을 위해                                              1. 아메리칸커피는
      빵에 분설탕을 뿌리는것을                                살짝 볶은 원두를 사용해
      잊지 말자.                                                                      엷게 만들고
                                                                                크림을 넣지않은 채
                                                                               큰 잔에 담아 마신다.
                                                                               2. 살짝 볶은 원두를
                                                                                       분쇄기에 갈고
                                                                                     커피메이커에서
                                                                                       흐리게 뽑는다.
                                                                           3. 물 150cc 기준 4-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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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     애


     영국 스트래트퍼드 출신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3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확실한 기록은 아니며 단지 그각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로 미루어 추정해 낸 것에 불과하다. 또 하나 그가 1564년 4월 26일에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그것을 보충해 주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한 위대한 문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 전반에 걸친 확실한 자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조부인 리처드 셰익스피어는 농부로서 장남 헨리와 차남 존의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존 셰익스피어는 스트래트퍼드에서 농산물 판매에 손을 대어 상당한 치부를 했으며, 중에는 그곳에서 유력한 명사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1557년 그는 스트래트퍼드 근방에 있는 윌름코트의 지주인 로버트 아든의 막내딸인 메리와 결혼하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그들 사이에 출생한 8남매 중 장남이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 자세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나, 사업의 부진으로 가산이 기울기 전인 1580년까지는 그래머 스쿨(Grammer School)에 다녔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18세가 되었을 때 윌리엄은 앤 헤서웨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그녀는 그보다 8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그들 사이에는 스잔나와 햄닛, 주디스의 3남매가 있었다.

     윌리엄이 어떻게 청년기를 보냈는가에 대해서도 역시 구구한 억측들이 많은데, 그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그가 1590년을 전후한 무렵에 런던에서 극작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는 설이다. 셰익스피어가 최초의 작품집을 출판한 것은 1593년으로 되어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가 그 작품집의 제목이었다. 그는 <소네트>의 대부분을 이무렵 집필했다. 이 무렵 그는 벌린 맨(Lord Chamberlain's Men)이라는 극단의 단원으로 희곡 작품을 쓰는 한편 배우 생활도 겸했다. 

     32세가 되었을 때 그는 극작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해 있었다. 이때부터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고 연극계에서도 확고한 지위를 굳혀 갔다. 또한 사교계에도 진출하여 사우댐프던 백작을 비롯해 각계의 명사들과 알 게 되었다.  그는 1596년에서 1600년 초까지 주로  희곡에 있어서의 시의 기능적 역할에 관한 탐구를 계속했다. 결국 그는 수많은 시작을 통해 극중인물의 대사를 더욱 심도 깊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1596년 8월 아들인 햄림의 죽음으로 인해 셰익스피어는 고향인 스트래트퍼드를 방문했다. 고향에서 가족들과 옛 친지들을 만나본 뒤 그는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는 데 힘을 썼다. 스트래트퍼드에서 돌아온 그는 1599년 템스강가에 건축된 글로브 극장 부근에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셰익스피어는 1600년 이후 일련의 비통한 비극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을 시도하게 된 그의 내적인 변화가 무엇인지에 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1601년 에섹스 경의 반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절친한 친지이며 후원자였던 사우댐프던 백작이 종신형을 받은 사실과 아버지 존의 죽음이 셰익스피어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하다.게다가 막내 동생 에드먼드가 유행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1608년에는 어머니 메리까지 사망하여 셰익스피어는 매우 심각한 실의에 차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언제 다시 고향인 스트래트퍼드로 돌아왔는지 그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런던의 유행병을 피해 낙향해있었던 듯하다. 그는 1610년에서 14년까지 스트래트퍼드의 많은 부동산을 사들였고 이후에 그곳에 머무른 흔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1616년 1월 25일 자신의 유언장을 작성한 그는 3월 25일에 그것에 서명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아마 이때 이미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깨달았던 듯하다.  이렇게 해서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616년 4월 23일 53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친구여, 제발 여기에 뭍힌 흙을파내지 말아주오
           .이 묘석을 아껴주는 이에게는 축복이
           ,나의 유골을건드리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지니라.

       이런 소박한 묘석에 안타까움을 느낀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 또 지역민들이 세익스피어를 지 상 최고의 천재들   서열에 올리고자 그후 7년만에 라틴어로 된 기념비를 세웠다.

     대부분의 걸출한 문호들의 천재성이 먼 훗날에야 인정받아 발굴작업이 뒤늦게 시작되는데, 세 익스피어는 생전에 발군의 성가를 누렸고, 사후에도 극장폐쇄령이 내린 1642년까지 그의 극이 무 대에서 공연열기를 더해 갔으니 성가는 생존시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그의 천재성을 일찍부터 인 정한 동시대의 극작가이자 평론가 벤 존슨(Ben Jonson)이 문학이론의 바탕 위에서 세익스피어의 진가를 논하여 널리 알렸다. 이에 힘입어 극장폐쇄령으로 지하에 묻혀버릴 뻔한 보석이 영원 히 보존될 수 있었으니, 이는 작가에게 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다행스런 일이다.

      세익스피어의 실체 논란   

     지금 세익스피어의 창작물로 알려진 작품들이 스트라트포드에서 탄생한 세익스피어가 아닌 다 른 원작자가 있다는 설이 심심찮게 대두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런 설은 세익스피어 개인 의 천재성을 아무리 인정한다 해도 그런 거작을 그 기간 동안에 연속 창작할 만한 재능을 닦은 수학 경력을 세익스피어의 생애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유일의 수학경력으로 치는 그 래 머스쿨의 경우도 공식기록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그 연령 때 아버지의 지위나 가세의 유복함 등 으로 미루어 추정된 것이라며 그의 방황기에 보인 질낮은 행위 등으로 봐서 도저히 그런 차원높 은 걸작을 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여러가지 반증을 제시한다. 스트라트포드 출신의 세 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는 이들을 묶어 앤티스트라트포디이언(Anti-Stratfordian)이라 하는데, 이들이 내세 우 는 제3의 인물도 제각기 구구하여 30여명이나 거명된다.

     그중에서 크게 득세한 설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설, 옥스포드 백작(Earl of Oxford) 설, 크리스토퍼 말로우(Christopher Marlowe)설, 엘리자베스 여왕의 숨겨진 사생아 설 등이다. 베이컨 설은 세익스피어의 동시대인으로서 최고지성인이었던 베이컨 정도 의 통찰력이 없이는 그런 대작을 창작할 수 없다는 가정에다 베이컨의 저술이 세익스피어의 글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근거에 바탕을 둔다. 엘리자베스 여왕 사생아 설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숨 겨 진 사생아가 때로는 프란시스 베이컨, 때로는 윌리엄 세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다는데, [햄릿]을 쓴 것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불륜으로 자신을 낳은 데 대한 힐책의 행위라는 등의 주 장 을 편다. 그러나 이런 설들이 모두 세익스피어의 사후 200년이 지난 19세기에 고개를 들기 시 작 하여 세인의 주목을 끌려하다가 설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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